동해중부선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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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해중부선 (일제강점기)은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설 경편철도 노선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 부설 면허를 받아 대구에서 포항, 서악에서 울산을 거쳐 동래, 울산에서 장생포로 이어지는 노선을 계획했다. 1917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되어 1921년에는 불국사~울산 구간까지 운행되었고, 이후 조선중앙철도, 조선철도를 거쳐 1928년 조선총독부 철도에 인수되어 동해중부선으로 개칭되었다. 1930년 기준으로 대구에서 학산까지의 본선과 경주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지선이 운영되었으며, 1936년부터 표준궤로 개량되면서 일부 구간은 대구선, 중앙선, 동해남부선으로 편입되고 포항~학산 구간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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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선은 부산에서 강원도, 북한 원산을 잇는 철도 노선으로, 일제강점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6.25 전쟁으로 동해북부선이 폐선되고 분단되었으나,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중단된 후 현재 동해남부선 일부 구간이 광역전철로 운행 중이며, 포항~영덕 구간이 개통되었다. - 1917년 개통한 철도 노선 - 대구선
대구선은 영천역과 동대구역을 잇는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으로, 경동선의 일부로 개통되어 확장과 개량을 거쳐 복선 전철화되었으며, 중앙선 및 경부선과의 연계로 대구와 경북 지역 철도 교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ITX-마음이 운행 중이다.
2. 역사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설 경편철도 노선이었던 동해중부선은 1928년 7월 1일 조선총독부 철도에 인수되어 동해중부선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26]
조선총독부는 '조선철도12년계획'에 따라 동해중부선을 국유철도 노선으로 편입시키고 표준궤로 개량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1936년 경주~울산 구간이 동해남부선에 편입되었고,[29] 1938년에는 대구~영천 구간이 대구선으로, 영천~경주 구간이 경경남부선으로 분리되었다.[31] 1939년 영천~경주 구간이 표준궤로 개궤되었으며,[32] 1945년 경주~포항 구간이 동해남부선에 편입되고 포항~학산 구간은 폐선되면서 동해중부선은 완전히 폐지되었다.[33]
자세한 연혁은 다음과 같다.
2. 1. 조선경편철도 시대
1916년 1월, 조선경편철도는 경부선 대구역에서 동해안의 포항에 이르는 구간과, 도중의 서악역에서 분기하여 울산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구간, 그리고 울산에서 분기하여 장생포에 이르는 구간의 총 185.1km 부설 면허를 신청하여 2월 15일에 허가받았다.[20] 1917년 2월에 대구에서부터 착공하여 12월에 대구 ~ 하양 구간이 개통되었고,[20] 1918년에는 하양 ~ 포항 구간이,[21][22][23] 1919년에는 포항 ~ 학산 구간이 개통되었다.[25] 동래 방면으로는 1918년에 서악 ~ 경주 구간이,[23] 1919년에 경주 ~ 불국사 구간이,[24] 1921년에 불국사 ~ 울산 구간이 개통되어[25] 면허 구간 중 총 148.1km이 개통되었다.1919년 9월 27일, 조선경편철도는 조선중앙철도로 사명을 변경했다. 1921년 11월 1일에는 노선 명칭이 부여되어 대구 ~ 학산 구간은 구포선(邱浦線), 서악 ~ 울산 구간은 울산선(蔚山線)이 되었다. 1923년 9월 1일, 조선중앙철도는 조선철도에 합병되었고, 조선철도는 이 노선을 '''경동선'''(慶東線)이라고 불렀다.
1927년에는 경주읍내 구간이 이설되어 포항 방면과 울산 방면의 분기역이 경주역으로 변경되었다.
2. 2. 조선철도 시대
조선경편철도는 1916년 1월 경부선 대구역에서 동해안의 포항에 이르는 구간과, 도중의 서악역에서 분기하여 울산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구간, 그리고 울산에서 분기하여 장생포에 이르는 구간 등 총 185.1km의 부설 면허를 신청하여 2월 15일에 허가받았다.[20] 1917년 2월 대구에서부터 착공하여, 1917년 12월 대구-하양 구간,[20] 1918년 하양-포항 구간, 1919년 포항-학산 구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동래 방면으로는 1918년 서악-경주 구간, 1919년 경주-불국사 구간, 1921년 불국사-울산 구간이 개통되어, 면허 구간 중 총 148.1km이 개통되었다.1923년, 조선중앙철도는 조선철도에 합병되었고, 조선철도는 이 노선을 '''경동선'''(慶東線)이라 불렀다. 1927년, 경주읍내 구간이 이설되면서 포항 방면과 울산 방면의 분기역이 경주역으로 변경되었다.
울산-동래 구간 및 울산-장생포 구간은 결국 개통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의 '조선철도12년계획'에 따라 매수되어 '''동해중부선'''으로 개칭, 국유철도 노선이 되었다.
조선철도 시대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2. 3. 조선총독부 철도 시대
동해중부선은 본래 조선경편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설 경편철도 노선이었다. 1916년 1월, 경부본선 대구역에서 포항에 이르는 구간과, 서악역에서 분기하여 울산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구간, 울산에서 분기하여 장생포에 이르는 구간 등 총 185.1km의 부설 면허를 신청하여 2월 15일에 허가받았다. 1917년 2월 대구에서부터 착공하여, 1918년에 하양~포항 구간이 개통되고, 1919년에 포항~학산 구간이 개통되었다. 동래 방면으로는 1918년에 서악~경주 구간, 1919년에 경주~불국사 구간, 1921년에 불국사~울산 구간이 개통되어 면허 구간 중 총 148.1km이 개통되었다.1923년, 조선중앙철도는 조선철도주식회사에 합병되었고, 조선철도는 이 노선을 '''경동선'''(慶東線)이라고 불렀다. 1927년에는 경주읍내 구간이 이설되어 포항 방면과 울산 방면의 분기역이 경주역으로 변경되었다.
울산~동래 구간 및 울산~장생포 구간은 결국 개통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의 「조선철도12년계획」에 따라 매수되어 '''동해중부선'''으로 개칭되어 국유철도 노선이 되었다. 이후 표준궤로 개량하는 공사가 진행되어 1936년에 경주~울산 구간, 1938년에 대구~영천 구간, 1939년에 영천~경주 구간, 1945년에 경주~포항 구간이 표준궤로 개궤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구~영천 구간은 대구선에, 영천~경주 구간은 경경남부선에, 경주~울산 및 경주~포항 구간은 동해남부선에 각각 편입되었고, 잔여 구간인 포항~학산 구간은 폐지되었다.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동해중부선은 초기에 여객과 화물을 함께 운송하는 혼합 열차 형태로 운영되었다. 1922년 당시 운행 횟수는 대구-영천 간 5왕복, 영천-포항 간 4왕복, 포항-학산 간 4왕복, 서악-경주 간 8왕복, 경주-울산 간 3왕복이었다. 이후 조선철도에 합병되면서 대구-포항 간 여객열차가 1일 1왕복 추가되었고, 1926년에는 울산선 운행 횟수가 4왕복으로 늘어났다. 국유화 이후에는 나게하형 가솔린 동차가 도입되어 여객 운송을 담당하면서 혼합 열차는 점차 사라졌다.
3. 운영
1927년 당시 경동선은 대구역을 통해 조선총독부 철도국 노선, 일본 철도성 노선, 남만주철도 노선(화물) 등과 연결되었다. 또한 택산기선, 조선우선 등의 해상 운송, 대구, 경주, 영천, 포항, 울산 등지에서 버스 노선과도 연락운송을 시행하여 여객과 화물 운송을 원활하게 했다.[1] 국유화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연락운송규칙에 따라 전국적인 교통망과 연결되었다.[1]
조선철도는 탱크식 증기 기관차, 보기 객차, 유개화차, 무개화차 등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보유했다. 국유화 이후에도 나게하형 가솔린 동차 도입 외에는 기존 차량을 계속 사용했다.
3. 1. 운행
열차는 기본적으로 증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여객/화물 혼합열차로 편성되었고, 급행열차 없이 모든 열차가 각 역에 정차하였다. 부정기 화물열차를 제외하면 울산에서 대구 방면으로 직결 운행하는 열차는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대구 ~ 학산 구간(구포선)과 서악 ~ 울산 구간(울산선)은 별개의 노선처럼 운영되었다. 조선중앙철도가 운영하던 1922년 당시 1일 정기열차 운행 횟수는 다음과 같았다.
본래 구포선이 경주역을 경유하지 않은 이유는 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면서 경주읍내를 경유하면 형산강을 두 번 건너야 했기 때문에 건설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경주 지역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악 ~ 경주 간 1개 역을 왕복하는 구간 열차를 편성해야 했고, 결국 1927년에 경주역에서 분기하도록 노선이 변경되었다.
조선중앙철도가 조선철도에 합병된 후, 처음으로 여객열차가 편성되어 대구 ~ 포항 간을 1일 1왕복 운행하였다. 1926년에는 울산선 운행 횟수가 4왕복으로 증편되었다.
국유화된 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나게하형 가솔린 동차를 도입하면서 여객 운송은 점차 동차로 교체되었고, 여객/화물 혼합열차 편성은 사라졌다. 1923년에는 대구-포항 간 1일 1왕복 운행이 추가되었고, 1926년에는 대구-울산 간 1일 4왕복 운행이 추가되었다.
3. 2. 연락 운송
1927년 당시 경동선은 다음의 운송사업자와 연락운송을 시행하였다.[1]- 대구역 경유 조선총독부 철도국선
- 대구역,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부선 및 부관연락선 경유 일본 철도성선
- 대구역,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부본선 및 경의선 경유 남만주철도선 (화물)
- 택산기선(澤山汽船), 조선우선의 항로 (화물)
- 대구시내 및 경주읍내 버스
- 대구 ~ 성주간 버스
- 영천역 ~ 영천읍내간 버스
- 포항 ~ 영덕 ~ 영양간 버스
- 울산 ~ 부산, 동래 온천장, 방어동, 장생포간 버스
국유화된 후에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연락운송규칙에 따라 전국의 교통사업자와 연락운송을 시행하였다.[1]
3. 3. 차량
조선철도가 보유했던 차량은 다음과 같다. 국유화된 후에도 나게하형 가솔린 동차를 도입한 것 외에는 기존의 차량을 계속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여객차와 화물차를 모두 연결한 혼합 열차가 운행되었다. 1922년에는 대구-영천 간 1일 왕복 1회, 영천-포항 간 1일 왕복 4회, 포항-학산 간 1일 왕복 4회, 서악-경주 간 1일 왕복 8회, 경주-울산 간 1일 왕복 3회가 운행되었다. 전용 여객 열차는 조선총독부 철도가 설립된 후 도입되었으며, 1923년에는 대구-포항 간 1일 왕복 1회 운행이 추가되었고, 1926년에는 대구-울산 간 1일 왕복 4회 운행이 추가되었다.
4. 역 목록
1930년 4월 1일 기준으로 조선국유철도의 영업거리 단위가 마일에서 킬로미터로 개정되었다. 당시 동해중부선은 본선과 지선을 포함하여 여러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30년 기준 동해중부선의 본선은 대구역에서 시작하여 포항역을 거쳐 학산역까지 이어졌으며, 전 구간이 경상북도에 위치하였다.
1930년대 당시 동해중부선에는 구포선(대구 - 포항, 학산)과 울산선(경주 - 장생포) 등의 지선 노선이 있었다.
4. 1. 본선 (1930년 기준)
1930년 당시 동해중부선의 본선은 전 구간이 경상북도에 위치하였다. 노선은 대구역에서 시작하여 포항역을 거쳐 학산역까지 이어졌다.
4. 2. 지선 (1930년 기준)
1930년대 당시 동해중부선에는 여러 지선 노선이 있었다.
참조
[1]
서적
South Manchuria Railway, 朝鮮の私設鐵道 (Chōsen no Shisetsutetsudō)
1925
[2]
뉴스
Establishment of the Chosen Railway
http://newslibrary.n[...]
Dong-A Ilbo
1923-09-03
[3]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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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05-03
[4]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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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07-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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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06-1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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