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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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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피타이는 테살리아 출신의 아이올리아 부족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며 켄타우로스와의 연관성을 갖는다. 그들은 켄타우로마키아로 알려진 켄타우로스와의 전투로 유명하며, 이 전투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을 상징한다. 라피타이는 기마술에 능숙하며, 아르고 원정 및 트로이 전쟁에도 참여했다. 라피타이와 켄타우로스의 전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과 르네상스 시대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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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타이
개요
이름라피타이
다른 이름라피테스
로마자 표기Lapithai
관련 장소페네이오스강 주변
주요 사건켄타우로스와의 싸움 (켄타우로마키아)
신화 속 기원
조상이아페토스
스틸베
아폴론
라피테스
특징
묘사용맹한 전사, 말 사육 기술 뛰어남
주요 인물페이리토오스
카이네우스
폴리페모스
코로노스
레온테우스
포세이돈
테세우스
켄타우로마키아
원인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
발단켄타우로스족의 술 취한 난동 및 신부 납치 시도
결과라피타이족의 승리, 켄타우로스족 축출
영웅테세우스
네스토르
카이네우스
페이리토오스

2. 역사적 배경

라피테스족은 강의 신 페네이오스를 조상으로 하는 종족으로, 주로 테살리아 평원과 오사 산, 펠리온 산 산악 지대 일대에 살았다.[20] 이들은 보통 그리스인의 한 분파로 여겨지며, 야만적인 켄타우로스족의 적대자로서 '창을 휘두르는 라피타이족'으로 칭송받을 만큼 무용이 뛰어났다.[21]

익시온, 프레기아스, 페이리토오스, 카이네우스, 폴리페모스와 같은 영웅들을 배출했지만, 이들은 종종 무모하고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익시온과 프레기아스는 신에 대한 모독적인 행위로 인해 저승에서 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라피테스족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 때 일어난 켄타우로스족과의 싸움(켄타우로마키아)이다. 이 사건은 예술의 모티브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메토프의 조각군과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주제로도 유명하다.

라피테스족은 테살리아 지방의 이올코스에서 시작된 아르고 원정과 트로이 전쟁에도 참가했다.

2. 1. 기원

라피타이족은 아이올리아 부족으로, 미르미돈족과 마찬가지로 테살리아 출신이었다. 족보에 따르면 그들은 켄타우로스와 친족 관계였다. 한 설에 따르면 라피테스(Λαπίθης)와 켄타우로스(Κένταυρος)는 신 아폴론과 강신 페네우스의 딸인 님프 스틸베의 쌍둥이 아들이라고 한다. 라피테스는 용감한 전사였지만, 켄타우로스는 기형적인 존재였고 나중에 암말과 교미하여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종족을 낳았다. 라피테스는 라피트족의 어원적인 조상이었으며,[2][3] 그의 후손으로는 익시온, 피리토스, 카이네우스, 코로누스와 같은 라피트 전사 및 왕, 그리고 예언자 암피쿠스와 그의 아들 몹소스 등이 있다.

라피테스족은 강의 신페네이오스를 조상으로 하는 종족으로, 주로 페네이오스 강 유역에 펼쳐진 테살리아 평원과 오사 산, 펠리온 산 산악 지대 일대에 살았다[20]。 보통은 그리스인의 한 분파로 여겨진다.

신화에 따르면, 강의 신 페네이오스와 클레오사 사이에서 퓌세우스와 스틸베가 태어났고, 스틸베와 아폴론 사이에서 두 아들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22]。 이 중 라피테스가 페네이오스 강가에 정착하여 왕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을 라피테스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라피테스에서 유래한다.

라피테스의 두 아들 포르바스와 페리파스는 모두 라피테스족의 왕이 되었지만, 포르바스는 초대를 받아 엘리스 지방으로 갔고[23], 그에게 전설적인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악토르가 태어났다[24]。 한편, 테살리아 지방에 남은 페리파스에게는 여덟 아들이 태어났고, 장남 안티온은 페리메레(아뮈타온의 딸)와의 사이에서 익시온을 낳았다. 이 익시온에게 페이리토오스와[25] 켄타우로스족이 태어났다[26]

라피테스 가계도


2. 2. 주요 인물 및 가계

라피타이족은 아이올리아 부족으로, 미르미돈족과 마찬가지로 테살리아 출신이었다. 족보에 따르면 그들은 켄타우로스와 친족 관계였다. 한 설에 따르면 라피테스 (Λαπίθης)와 켄타우로스 (Κένταυρος)는 신 아폴론과 강신 페네우스의 딸인 님프 스틸베의 쌍둥이 아들이라고 한다.[2] 라피테스는 용감한 전사였지만, 켄타우로스는 기형적인 존재였고 나중에 암말과 교미하여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종족을 낳았다. 라피테스는 라피트족의 어원적인 조상이었으며,[3] 그의 후손으로는 익시온, 피리토스, 카이네우스, 코로누스와 같은 라피트 전사 및 왕, 그리고 예언자 암피쿠스와 그의 아들 몹소스 등이 있다.

트로이 전쟁 이전 세대의 라피트 왕이었던 피리토스의 어머니는 에이오네우스 또는 데이오네우스의 딸인 디아였다. 익시온은 피리토스의 아버지였지만, 많은 영웅처럼 피리토스에게도 불멸의 아버지와 인간 아버지가 있었다. 제우스가 그의 불멸의 아버지였지만, 신은 디아를 덮기 위해 종마의 모습을 취해야 했는데, 라피타이는 반인반마 사촌들처럼 테살리아의 초원에서 말을 타는 기수였고, 말로 유명했다.[5] 라피타이는 재갈의 비트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에 따르면, 강의 신 페네이오스와 클레오사 사이에서 퓌세우스와 스틸베가 태어났고, 스틸베와 아폴론 사이에서 두 아들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22] 이 중 라피테스가 페네이오스 강가에 정착하여 왕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을 라피테스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라피테스에서 유래한다.

라피테스의 두 아들 포르바스와 페리파스는 모두 라피테스족의 왕이 되었지만, 포르바스는 초대를 받아 엘리스 지방으로 갔고,[23] 그에게 전설적인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악토르가 태어났다.[24] 한편, 테살리아 지방에 남은 페리파스에게는 여덟 아들이 태어났고, 장남 안티온은 페리메레(아뮈타온의 딸)와의 사이에서 익시온을 낳았다. 이 익시온에게 페이리토오스와[25] 켄타우로스족이 태어났다.[26]

전설에 따르면 익시온은 장인을 살해하고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유혹하려 했다고 한다. 이에 제우스는 구름으로 헤라의 모습을 본뜬 가짜 헤라를 만들어 익시온과 관계를 맺게 하였고, 그 사이에서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고 한다. 결국 그는 번개에 맞아 죽고, 영원히 회전하는 '지옥의 불수레'에 으로 묶였다고 한다.

라피테스
이름출처켄타우로마키비고
헤시오도스오비디우스기타참여자~에게 살해됨
악토르[11]켄타우로스 클라니스
암픽스
카이네우스켄타우로스에게 산 채로 묻히거나, 스스로 죽었다.과거 카에니스라는 여성이었음
브로테아스켄타우로스 그리네우스
켈라돈켄타우로스 아미코스
카락소스로이토스
코메테스우연히 친구인 카락소스에게
코리투스켄타우로스 로이토스
키멜루스켄타우로스 네소스
드리아스아레스 또는 이아페토스의 아들[12]
에우아그루스켄타우로스 로이토스
엑사디우스
할레수스켄타우로스 라트레우스
호플레우스
마카레우스
몹수스[13]암피쿠스의 아들이자 예언자
오레이오스켄타우로스 그리네우스미칼레의 아들
펠라테스펠라 출신의 라피테스
페리파스[14]
팔레레우스
포르바스[15][16][17]트리오파스의 아들이거나 아폴론의 아들인 라피토스의 아들
폴리페모스엘라토스의 아들.[18]
페이리토오스
프로로쿠스
테크타푸스켄타우로스 파이코메스올레누스의 아들
기타 동맹
크란토르켄타우로스 데몰레온아민토르의 아들
네스토르
펠레우스
테세우스


2. 3. 켄타우로스와의 전쟁 (켄타우로마키아)

페이리토스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할 때, 켄타우로스들도 이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켄타우로스들은 술을 마시고 야성이 드러나 자제력을 잃었는데, 에우리티온이라는 켄타우로스가 신부 히포다메이아를 강간하려 했다.[6] 이에 격분한 라피타이인들은 켄타우로스들과 집단 싸움을 벌였고, 마침 결혼식에 초대받았던 테세우스도 라피타이인들 편에서 싸워 켄타우로스들을 격퇴했다. 결국 켄타우로스들은 패배하여 테살리아에서 쫓겨났다. 이 싸움은 '''켄타우로마키아'''라고 불린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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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와 절친한 사이여서 함께 모험과 탐험을 했다. 페이리토오스가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했을 때, 양가 친족들과 테세우스, 켄타우로스 등 다른 테살리아 주민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결혼식 도중, 호색한 켄타우로스들은 포도주에 취해 다른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을 납치하려 했다. 특히 에우리토스(에우리티온이라고도 함)는 술에 취해 신부 히포다메이아를 유혹하려 했다. 연회장은 대혼란에 빠졌고, 켄타우로스에게서 여자들을 지키려는 라피테스족은 다른 지방에서 온 영웅들의 힘을 빌려 켄타우로스와 싸웠다.[34]

테세우스는 술 항아리를 에우리토스의 머리에 던져 쓰러뜨리고, 비아노르의 등에 올라타 곤봉으로 쳐 죽였다. 페이리토오스는 떡갈나무를 뽑으려는 페트라이오스, 또는 뤼코스, 크로미스, 펠롭스를 창으로 쓰러뜨렸다. 페이리토오스에게 쫓긴 딕테우스는 벼랑에서 떨어져 물푸레나무에 몸통이 꿰뚫렸다. 엑사디오스는 사슴 뿔로 그뤼네우스의 두 눈을 찔렀다. 드뤼아스는 불타는 말뚝으로 로이토스를 쫓아내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켄타우로스를 죽였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는 데모레온을 창으로 찔렀다. 페리파스는 퓌라이토스를, 앰퓌코스는 에케크로스를, 마카레우스는 엘리구두보스를, 예언자 몹소스는 호디테스를 쳤다. 불멸의 카이네우스는 켄타우로스에 의해 나무에 산 채로 묻힌 끝에 새가 되었지만, 라피테스족은 켄타우로스의 많은 수를 죽이거나 테살리아 지방에서 추방했다.[34]

; 라피테스족 전사 목록

:이하는 『일리아스』 1권(Il), 『헤라클레스의 방패』(SH), 『변신 이야기』(Ov, 전사 제외)에 따른다.

이름철자(el)철자(la)IlSHOv
앰퓌코스Ampyxla
엑사디오스ΕξάδιοςelExadiosla
카이네우스ΚαινεύςelKaineusla
드뤼아스ΔρύαςelDryāsla
팔레로스ΦάληροςelPhalērosla
프로로코스Πρόλοχοςelprolochosla
페이리토오스ΠειρίθοοςelPeirithoosla
페리파스ΠερίφαςelPeriphāsla
호플레우스´ΟπλεοςelHopleusla
폴리페모스ΠολύφημοςelPolyphēmosla
포르바스ΦόρβαςelPhorbāsla
마카레우스ΜακαρεύςelMakareusla
몹소스ΜόψοςelMopsusla


2. 4. 아르고 원정과 트로이 전쟁

라피테스족은 테살리아 지방의 이올코스에서 시작된 아르고 원정과 트로이 전쟁에도 참가했다.

신화에 따르면, 강의 신 페네이오스와 클레오사 사이에서 퓌세우스와 스틸베가 태어났고, 스틸베아폴론 사이에서 두 아들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22] 이 중 라피테스가 페네이오스 강가에 정착하여 왕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을 라피테스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라피테스에서 유래한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제2권의 군선 목록에서 폴리포이테스 왕(페이리토오스의 아들)이 아르기사(아르그라, 현 아기아 소피아), 귀르토네 (귀르톤, 현 바클레나), 오르테(현 차리차니, en), 에로네(현 카라초리), 백악의 오로오소온(현 엘라소나, en)의 군세를 이끌었다는 것, 그의 아버지 페이리토오스가 켄타우로스 족을 페리온 산에서 아이티케스로 몰아냈다는 것, 카이네우스의 손자 레온테우스도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28]

호메로스가 언급한 도시들 중 아르기사, 귀르토네, 에로네는 페네이오스 강 중류 유역의 도시이며, 오르테, 오로오소온은 에로네의 북쪽, 올림포스 산 기슭의 유로포스 강 유역의 도시이다.

몇몇 라피테스족은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에 참여했다. 문헌에 따라 페이리토오스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와 함께 명부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불참한 것으로 여겨진다.[35] 아폴로도로스카이네우스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일반적인 카이네우스의 계보 전승과 일치하지 않는다.[36]

; 라피테스족 참가자 목록

: 아래는 아폴로도로스(Ap), 『아르고나우티카』(AR), 히기누스(Hy)에 의한 것이다.

이름철자(el)철자(la)ApARHy
카이네우스ΚαινεύςelKaineusla
코로노스ΚόρωνοςelKorōnosla
프리아소스Priāsosla
페이리토오스ΠειρίθοοςelPeirithoosla
포코스ΦῶκοςelPhōkosla
폴리페모스ΠολύφημοςelPolyphēmosla
몹소스ΜόψοςelMopsusla


3. 문화

켄타우로마키에서 라피타이족은 페이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켄타우로스와 싸웠다. 켄타우로스들은 초대받았지만 술에 익숙하지 않아 야만적인 본성을 드러냈다. 신부 히포다미아가 나타났을 때, 켄타우로스 유리티온이 그녀를 납치하려 했고,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여성과 소년들을 덮쳤다. 이어진 전투에서 테세우스가 라피타이족을 도왔고, 그들은 유리티온을 쫓아냈다. 패배한 켄타우로스들은 테살리아에서 북서쪽으로 추방되었다.[6]

라피타이족 카이네우스는 원래 여자였으나 포세이돈의 총애를 받아 남자로 변했고, 불멸의 전사가 되었다. 켄타우로스와의 전투에서 카이네우스는 불멸임을 증명했지만, 켄타우로스들이 바위와 나무 줄기로 그를 짓밟아 땅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고, 모래 머리 새의 모습으로 풀려났다.

이후 켄타우로스들은 쉽게 패배하지 않았다. 신화적 언급에 따르면 말레아곶과 고대 엘리스의 산적 요새 폴로에에 원시 라피타이족이 켄타우로스에 의해 쫓겨난 잔재로 존재했다. 몇몇 역사적인 그리스 도시들은 라피타이족과 관련된 이름을 가졌고, 코린토스의 킵셀리데스는 카이네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아티카의 필라이데스는 라피타이족의 코로누스를 조상으로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가 철학을 통해 발전하면서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 간의 전투는 문명과 야만 사이의 내면적 투쟁으로 묘사되었으며, 이는 포도주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라피테스의 이해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페이디아스 학파의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 전투를 인류와 괴물, 문명화된 그리스인과 "야만인" 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전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 신전, 도기 화가들의 ''심포지엄'' 주제로도 묘사되었다.[7]

르네상스 시대에 이 전투는 격렬한 대결을 묘사하기 좋은 주제로 예술가들에게 선호되었다. 미켈란젤로는 1492년경 대리석 부조로 제작했고,[9] 피에로 디 코시모의 ''켄타우로스와 라피테스 간의 전투''는 런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10] 루카 시뇨렐리의 ''성인과 함께 옥좌에 앉은 성모'' (1491)에도 켄타우로마키가 있는 프리즈가 그려졌다.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라피테스족은 기마술에 능숙하고, 고삐와 마장을 고안하여 사람들에게 속보를 가르쳤다고 한다.[27]

4. 영역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제2권의 군선 목록에서 폴리포이테스 왕(페이리토오스의 아들)이 아르기사(아르그라, 현 아기아 소피아), 귀르토네 (귀르톤, 현 바클레나), 오르테(현 차리차니, en), 에로네(현 카라초리), 백악의 오로오소온(현 엘라소나, en)의 군세를 이끌었다고 언급한다.[28] 페이리토오스가 켄타우로스 족을 페리온 산에서 아이티케스로 몰아냈으며, 카이네우스의 손자 레온테우스도 전쟁에 참가했다.[28]

호메로스가 언급한 도시들 중 아르기사, 귀르토네, 에로네는 페네이오스 강 중류 유역의 도시이며, 오르테, 오로오소온은 에로네의 북쪽, 올림포스 산 기슭의 유로포스 강 유역의 도시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테살리아 평원은 원래 페라이보이족의 땅이었으나, 익시온과 페이리토오스가 진출하여 그들을 페이네이오스강 내륙으로 몰아냈다. 페이리토오스는 펠리온 산에서 켄타우로스족을 몰아냈다. 페라이보이족 대부분은 핀도스 산맥이나 아타마니아, 드로피아 지방의 산지로 이동했지만, 일부는 북부 올림포스 산 주변에 남아있었고, 양 부족이 혼재하는 지역도 있었다. 라리사는 여전히 페라이보이족이 영유하여, 평원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을 지배했다.[29]

하지만 이 두 부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는 라피테스족 영웅 폴리페모스의 출신지를 라리사로 উল্লেখ하고 있으며,[30] 스트라본은 시모니데스가 테살리아 지방 주민을 "페라이보이와 라피타이"라고 불렀다고 언급한다. 스트라본은 라피테스족의 영역을 귈톤, 페이네이오스강 어귀, 오사 산, 펠리온 산, 데메트리아스(en), 평원부의 라리사와 크란논(현 크란노나스, en), 스코투사(현 팔리오카스트로), 몹시온(현 마크리호리, en), 아트락스(현 알레파카), 네소니스 호, 보이베이스 호(현 비비이스 호) 주변 지역으로 보고 있다.[20]

5. 예술 작품

켄타우로마키에서 라피타이족은 페이리토스의 결혼 잔치에서 켄타우로스와 싸웠다. 초대받은 켄타우로스들은 술에 익숙하지 않아 야만적인 본성이 드러났다. 신부 히포다미아가 나타났을 때, 켄타우로스 유리티온이 그녀를 납치하려 했고,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여성과 소년들을 덮쳤다. 이어진 전투에서 테세우스가 라피타이족을 도왔고, 유리티온은 쫓겨났다. 패배한 켄타우로스들은 테살리아에서 북서쪽으로 추방되었다.[6]

라피타이족 카이네우스는 원래 카에니스라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포세이돈의 총애를 받아 남자로 변했고 불멸의 전사가 되었다. 켄타우로스와의 전투에서 카이네우스는 불멸임을 증명했지만, 켄타우로스들이 바위와 나무 줄기로 짓밟아 땅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고 모래 머리 새의 모습으로 풀려났다.[6]

이후의 싸움에서 켄타우로스들은 쉽게 패배하지 않았다. 신화에서는 말레아곶과 고대 엘리스의 산적 요새 폴로에에 원시 라피타이족이 존재했던 것을 켄타우로스에 의해 그곳으로 몰려간 무리의 잔재로 설명했다. 몇몇 역사적인 그리스 도시들은 라피타이족과 관련된 이름을 가졌고, 코린토스의 킵셀리데스는 카이네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으며, 아티카의 필라이데스는 라피타이족의 코로누스를 조상으로 주장했다.[6]

그리스 신화가 철학을 통해 더욱 매개되면서,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 간의 전투는 문명과 야만 사이의 내면적 투쟁의 측면을 띠게 되었다. 포도주는 물로 희석하여 과도하게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라피테스의 이해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페이디아스 학파의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 전투를 인류와 괴물, 문명화된 그리스인과 "야만인"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라피테스와 켄타우로스 간의 전투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된 메토프와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 신전에 묘사되었다.[7] 이 전투는 도기 화가들에게 친숙한 ''심포지엄'' 주제였다.

프랑스 시인 호세 마리아 데 에레디아 (1842–1905)는 이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한 소네트를 ''레 트로페''에 포함시켰다.[8]

르네상스 시대에 이 전투는 격렬한 대결에서 밀집된 인물들을 묘사할 수 있어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1492년경 피렌체에서 이 주제를 대리석 부조로 제작했다.[9] 피에로 디 코시모의 패널 ''켄타우로스와 라피테스 간의 전투''는 런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10] 1500년에서 1515년 사이에 그려졌다. 루카 시뇨렐리는 15세기 초 토스카나의 코르토나에서 발견된 로마 석관에서 영감을 받아 ''성인과 함께 옥좌에 앉은 성모'' (1491)에 켄타우로마키가 있는 프리즈를 그렸다.

; 파르테논 신전의 메토프 조각군

: 아테네파르테논 신전메토프에는 방위별로 다른 신화가 그려져 있는데, 남쪽에는 라피테스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이 묘사되어 있다.

; 회화 작품

:

피에로 디 코시모가 그린 그림 『라피테스족과 켄타우로스의 싸움』. 1500년-1515년경, 71×260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참조

[1] 서적 "[[Bibliotheca historica]]"
[2] 서적 Iliad
[3] 서적 "[[Bibliotheca historica]]"
[4] 서적 Description of Greece
[5] 서적 "[[Bibliotheca historica]]"
[6] 간행물 La Centauromachia del sarcofago della necropoli di Pianabella-Ostia: Considerazioni sulla iconografia 2007-07/09
[7] 서적 "[[Description of Greece]]"
[8] 서적 Les Trophées
[9] picture of a bas-relief sculpture The Battle of the Lapiths and Centaurs http://www.artrenewa[...] 2012-12-01
[10] image of painting Battle of the Lapiths and Centaurs http://www.nationalg[...] 2012-12-17
[11] 서적 Argonautica
[12] 서적 Fabulae
[13] 서적 "[[Geographica]]"
[14] 서적 "[[Bibliotheca historica]]"
[15] 서적 "[[Bibliotheca historica]]"
[16] 서적 "[[Metamorphoses]]"
[17] 서적 "[[Description of Greece]]"
[18] 서적 The Voyage of Argo
[19] 문서 "[[アポローン]]の子とされる"
[20] 문서 ストラボン、9巻5・20。
[21] 문서 『イーリアス』12巻128行。
[22] 문서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ロス、4巻69・1。
[23] 문서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ロス、4巻69・2。
[24] 문서 一般的な伝承では、アウゲイアースは[[太陽神]][[ヘーリオス]]の子とされる。
[25] 문서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ロス、4巻69・3。
[26] 문서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ロス、4巻69・5。
[27] 문서 ウェルギリウス『農耕詩』3巻115行−117行。
[28] 문서 『イーリアス』2巻738−747行。
[29] 문서 ストラボン、9巻5・19。
[30] 문서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アルゴナウタイ』1巻40行。
[31] 문서 『イーリアス』1巻263行以下。
[32] 문서 『イーリアス』2巻740行。
[33] 문서 アクーシラーオス断片([[オクシュリュンコス・パピルス]])
[34] 문서 オウィディウス『変身物語』12巻。
[35] 문서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1巻101-104。
[36] 서적 アポロードロス、1巻9・16
[37] 서적 ヒュギーヌス、14
[38] 서적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1巻57-58
[39] 서적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1巻1177-1283
[40] 서적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1巻1321-1323
[41] 서적 ロドスのアポローニオス、1巻1345-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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