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회빈 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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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회빈 강씨는 조선 인조의 며느리이자 소현세자의 부인이다. 1611년에 태어나 1627년 소현세자와 혼인하여 4남 5녀를 두었으며, 병자호란으로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 귀국 후 소현세자가 의문사하고 인조가 강빈을 독살 혐의로 몰아 사사했다. 이후 1718년 숙종 때 복권되어 민회빈으로 추증되었으며, 드라마와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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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 강씨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민회빈 강씨 |
한글 표기 | 민회빈 강씨 |
한자 표기 | 愍懷嬪 姜氏 |
로마자 표기 | Minhoe-bin Gangssi |
이칭 | 강빈, 역강, 소현세자빈 |
신분 | |
작위 | 조선의 세자빈 |
생애 | |
출생 | 1611년 4월 18일 (음력 1611년 3월 6일) |
출생지 | 한성 |
사망 | 1646년 4월 30일 (음력 1646년 3월 15일) |
사망지 | 한성 |
묘소 | 영회원(永懷園) |
묘소 위치 |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소현세자 |
자녀 | 3남 3녀 (4남 5녀) |
아들 | 경선군 경완군 경안군 |
딸 | 경숙군주 경녕군주 경순군주 |
아버지 | 강석기 |
어머니 | 신예옥 |
재위 | |
세자빈 책봉 | 1627년 12월 4일 ~ 1645년 4월 26일 (음력) |
이전 세자빈 | 폐세자빈 박씨 |
다음 세자빈 | 세자빈 장씨 (인선왕후) |
가문 | |
가문 | 금천 강씨 |
2. 생애
1627년 16세에 소현세자와 혼인하여 세자빈이 되었다. 1637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했다. 소현세자와의 사이에 3남 5녀를 낳았다.
1645년 남편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1646년 인조의 수라상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자 인조는 강씨를 의심하였다. 이 사건으로 강씨는 폐서인이 된 후 사약을 받고 사망하였다. 향년 36세(만 35세). 강씨의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 모두 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되는 멸문의 화를 당하였다.[3]
실록에서는 소현세자가 사망한 이후부터 세자빈 강씨를 '''강빈'''(姜嬪)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현세자빈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뒤를 이은 효종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소현세자빈의 복권을 요청하지 못했다. 이후 신원될 때까지 '역적 강씨'라는 뜻의 '''역강'''(逆姜)으로 불렸다.
1718년(숙종 44년), 숙종이 소현세자빈과 그 일가의 죄를 신원하고 소현세자빈의 위호를 회복시켜 '''민회빈'''(愍懷嬪)으로 추증하였다.[3]
2. 1. 탄생과 가계
1611년(광해군 3년) 4월 18일(음력 3월 6일), 강석기와 그의 부인 고령 신씨 신예옥(申禮玉)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4]본관은 금천 강씨이며, 귀주 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장수 강감찬의 18대손이다. 어머니 신예옥의 외할머니는 신수근의 손녀이며, 신수근은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외손자이므로, 강씨는 세종의 외8대손이기도 하다.[5]
외할머니를 통해 명숙공주의 증손녀이기도 한데, 명숙공주는 소혜왕후와 의경세자의 외동딸이었다. 또한 소헌왕후와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6대손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를 통해서는 신숙주의 5대손이었다.
colspan="2" | | 본관 | 생몰년 | 부모 | 비고 | |
---|---|---|---|---|---|
부 | 강석기 | 금천 강씨 | 1580년 - 1643년 | 강찬(姜燦) 광산 김씨 김은휘(金殷輝)[18] | |
모 | 신예옥(申禮玉) | 고령 신씨 | ? - 1647년 | 신식(申湜) 광주 노씨 노춘복(盧春福)[19] | 1647년(인조 25년) 처형됨[4] |
2. 2. 세자빈 책봉
1627년(인조 5년) 12월 4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6], 12월 27일 소현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소현세자와의 사이에서 4남 5녀를 두었다.2. 3. 병자호란과 볼모 생활
1636년(인조 14년) 12월 14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강화도로 피난하였으나 다음해인 1637년(인조 15년) 1월 26일,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청군에 붙잡혔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하자 이후 강화조약에 따라 남편인 소현세자, 시동생인 봉림대군(효종)과 그의 부인인 풍안부부인 장씨(인선왕후)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3]1645년(인조 23년) 정월, 명나라가 멸망한 다음 해,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는 8년간의 인질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볼모 생활이 길어지면서 인조와 소현세자 부부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생겼고, 인조의 냉대 속에 반목하게 된다. 여기에 인조의 후궁인 조소용(귀인 조씨)이 세자 부부와 인조의 사이를 이간질 하면서 더욱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2. 4.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 옥사
1645년(인조 23년) 정월,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는 8년간의 인질 생활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볼모 생활이 길어지면서 인조와 소현세자 부부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생겼고, 인조의 냉대 속에 반목하게 된다. 여기에 인조의 후궁인 귀인 조씨가 세자 부부와 인조의 사이를 이간질 하면서 더욱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3]1645년(인조 23년) 4월 26일,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인조는 장례를 앞당겨 입관을 서두르고, 세자에게 시침한 어의 이형익을 처벌하지 않았다. 또한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을 제치고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7]
1646년(인조 24년) 1월 3일, 인조의 식사 중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인조는 강빈을 의심하여 강빈의 궁인들을 잡아 심문하였다.[9] 이후 옥사는 확대되어 시녀와 궁인들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나 불복하였다. 인조는 강빈을 미워하여 대신들의 주청을 물리치고 강하게 처벌할 뜻을 내비친다.
대신들과 세자인 봉림대군 또한 사건의 진상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성급히 처벌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주청했으나 인조는 단호하였고, 강빈을 옹호하는 대신들의 발언에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었다.[10]
인조는 강빈을 '개새끼같은 것' 이라고 칭하였고 이후 마음을 바꿔 강빈을 폐출하여 사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사헌 홍무적, 지평 조한영, 부제학 유백증 등이 강빈의 사사를 반대하였으며[11], 간원들 또한 강빈을 죽이는 것은 부당하며 폐출만 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인조는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강빈을 사사할 것을 전교하였다.[12]
전 세자빈에게 적대적이었던 귀인 조씨는 그녀가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왕은 반역죄로 그녀에게 사약을 내렸다.
2. 5. 최후
1646년(인조 24년) 1월 3일, 인조의 식사 중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조는 강빈을 의심하여 강빈의 궁인들을 잡아 심문하였다.[9] 옥사는 확대되어 시녀와 궁인들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나 불복하였다. 인조는 강빈을 미워하여 대신들의 주청을 물리치고 강하게 처벌할 뜻을 내비쳤다.대신들과 세자인 봉림대군 또한 사건의 진상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성급히 처벌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주청했으나, 인조는 단호하였다. 강빈을 옹호하는 대신들의 발언에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었다.[10]
인조는 강빈을 '개새끼같은 것' 이라고 칭하였고, 이후 마음을 바꿔 강빈을 폐출하여 사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사헌 홍무적, 지평 조한영, 부제학 유백증 등이 강빈의 사사를 반대하였으며[11], 간원들 또한 강빈을 죽이는 것은 부당하며 폐출만 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인조는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강빈을 사사할 것을 전교하였다.[12]
1646년(인조 24년) 4월 30일(음력 3월 15일), 강빈은 사약을 받고 사망하였다.
인조는 강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손자이자 강빈의 세 아들 또한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다. 1648년(인조 26년) 첫째 아들 석철은 장독으로 죽고, 둘째 아들 석린은 병으로 죽었으며, 셋째 아들 석견만이 살아남아 효종 때에 귀양에서 벗어났다. 강빈의 늙은 어머니와 네 명의 오빠는 매를 맞아 죽었고, 세 어린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는데 그중 두 명이 죽었다. 옥천 조씨 귀인은 강씨 세자의 남편이 죽는 원인이기도 했다.
2. 6. 사후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에 항복하면서,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하였다. 귀국 후 인조의 냉대를 받았고, 소현세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1646년(인조 24년) 1월 3일, 인조의 수라상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자, 인조는 강씨를 의심하여 궁인들을 심문하였다.[9] 이 사건으로 강씨는 폐서인이 된 후 사사되었다. 강씨의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 모두 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되는 멸문의 화를 당하였다.[3]실록에서는 소현세자가 사망한 이후부터 세자빈 강씨를 ''''강빈'''(姜嬪)'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현세자빈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뒤를 이은 효종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소현세자빈의 복권을 요청하지 못했다. 이후 신원될 때까지 '역적 강씨'라는 뜻의 ''''역강'''(逆姜)'으로 불렸다.
인조는 강빈을 '개새끼같은 것'이라고 칭하였고, 이후 강빈을 폐출하여 사사하기로 결정하였다. 대사헌 홍무적, 지평 조한영, 부제학 유백증 등이 강빈의 사사를 반대하였으며[11], 간원들 또한 강빈을 죽이는 것은 부당하며 폐출만 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인조는 모두 묵살하고 강빈을 사사할 것을 전교하였다.[12]
김자점과 귀인 조씨 일파는 정치적 공세를 펼쳤고, 김집 등은 효종 때 경안군(강빈의 셋째 아들)의 석방을 탄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13] 서인 산림 계열은 강빈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여겼으며, 김집, 송시열, 송준길은 소현세자와 강빈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여러번 건의하였다. 이 때문에 남인으로부터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효종은 심양에 볼모로 잡혀있을 당시 강씨의 행적을 언급하였고, 강씨가 소현세자 사후에 낳은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며 강씨를 비난하였다.[14] 효종은 강씨의 죄를 신원해달라고 주청할 경우, 역당으로 논하여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 경고하였다.[15]
1654년(효종 5년) 황해감사 김홍욱[16]은 강빈 옥사의 조작을 탄원하며 억울하게 죽은 강빈의 신원 회복과 경안군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효종은 김홍욱을 국문 끝에 장살로 죽였다.[17]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강빈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김수항의 신원 상소로 복관되었다.
사후 72년 만인 1718년(숙종 44년), 숙종이 소현세자빈과 그 일가의 죄를 신원하고 소현세자빈의 위호를 회복시켜 '''민회빈'''(愍懷嬪)으로 추증하였다.[3]
3. 평가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한 소현세자의 부인 민회빈 강씨는 귀국 후 인조의 냉대를 받았다. 소현세자가 급사하는 등의 아픔을 겪다가, 다음 해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를 받아 폐서인 된 후 사사되었다. 세자빈의 어머니와 오빠, 남동생 모두가 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되는 멸문의 화를 당하였다.[3]
실록에서는 소현세자가 사망한 이후부터 세자빈 강씨를 ''''강빈'''(姜嬪)'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대에 이미 소현세자빈의 억울한 죽음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였으나, 뒤를 이은 효종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소현세자빈의 복권을 청하지 못하였다. 이후 신원될 때까지 '역적 강씨'라는 뜻인 ''''역강'''(逆姜)'으로 칭해졌다.
강빈과 그녀의 아들들의 옥사는 김자점과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 일파의 정치공세성 성격이 짙었으므로 김집 등은 효종 때 경안군(강빈의 셋째 아들)의 석방을 탄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13]
이후 서인 산림 계열은 강빈이 억울하게 죽었다 여겼으며 김집, 송시열, 송준길은 소현세자와 강빈의 명예회복과 복권을 여러번 건의하였다. 이 때문에 남인으로부터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효종은 심양에 볼모로 잡혀있을 당시 강씨의 행적을 언급하였고 강씨가 소현세자 사후에 낳은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며 강씨를 비난하였다.[14]
효종은 추후 강씨의 죄를 신원해달라고 주청할 경우, 역당으로 논하여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 경고하였다.[15]
1654년(효종 5년) 황해감사 김홍욱[16]은 강빈 옥사의 조작을 탄원하며 억울하게 죽은 강빈의 신원 회복과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 석견(경안군)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효종은 김홍욱을 국문 끝에 장살로 죽였다.[17]
숙종 때 송시열이 다시 그녀의 억울함을 주장하여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뒤 김수항의 신원 상소로 복관되었다.
1718년(숙종 44년), 숙종이 소현세자빈과 그 일가의 죄를 신원하고 소현세자빈의 위호를 회복시켜 '''민회빈'''(愍懷嬪)으로 추증하였다. 사후 72년만의 일이었다.[3]
4. 가족 관계
5. 대중문화 속 민회빈 강씨
민회빈 강씨는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졌다. 관련 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 박안식, 《소현세자》 (창작과 비평사, 1996)
- 박정애, 《강빈》 (예담, 2006)
- 김용상, 《별궁의 노래》 (순, 2009)
- 이정근, 《소현세자》 (책으로보는세상, 2009)
- 김혜경, 《소현세자빈 강빈》 (문학스케치, 2010)
- 김용상, 《민회빈 강씨》 (멜론, 2011)
- 이수광, 《소현세자 독살 사건》 (산호와진주, 2011)
5. 1. 드라마
- 1981년 KBS1 드라마 《대명》에서 이미희가 연기했다.
- 2005년 EBS 드라마 《역사극장》에서 김예령이 연기했다.
- 2007년 KBS1 드라마 《한국사전》에서 이선영이 연기했다.
- 2008년 KBS2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양소민이 연기했다.
- 2010년 KBS2 드라마 《추노》에서 김하윤이 연기했다.
- 2012년 MBC 드라마 《마의》에서 경수진이 연기했다.
- 2013년 JTBC 드라마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에서 송선미가 연기했다.
- 2014년 tvN 드라마 《삼총사》에서 서현진이 연기했다.
- 2015년 MBC 드라마 《화정》에서 김희정이 연기했다.
- 2022년 영화 《올빼미》에서 조윤서가 연기했다.
- 2023년 MBC 드라마 《연인》에서 전혜원이 연기했다.
5. 2. 영화
- 1981년 KBS1 TV 드라마 《대명》에서 이미희가 연기했다.[1]
- 2005년 EBS TV 드라마 《역사극장》에서 김예령이 연기했다.[1]
- 2007년 KBS1 TV 드라마 《한국사전》에서 이선영이 연기했다.[1]
- 2008년 KBS2 TV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양소민이 연기했다.[1]
- 2010년 KBS2 TV 드라마 《추노》에서 김하윤이 연기했다.[1]
- 2012년 MBC TV 드라마 《마의》에서 경수진이 연기했다.[1]
- 2013년 JTBC TV 드라마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에서 송선미가 연기했다.[1]
- 2014년 tvN TV 드라마 《삼총사》에서 서현진이 연기했다.[1]
- 2015년 MBC TV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 김희정이 연기했다.[1]
- 2022년 영화 《올빼미》에서 조윤서가 연기했다.[1]
- 2023년 MBC TV 드라마 《연인》에서 전혜원이 연기했다.[1]
참조
[1]
문서
Sometimes can be Crown Princess Kang ({{Korean|강빈|姜嬪|Gang-bin|Kang-pin}})
[2]
문서
In lunar calendar, the crown princess was born on 6 March 1611 and died on 15 March 1646
[3]
실록
임금이 소현세자빈 강씨의 위호를 회복시키다
1718-04-08
[4]
실록
1647-04-25
[5]
문서
세종 → 임영대군 → 중모현주 → 신수근 → 신홍필 → 신영이 → 노춘복 → 신예옥 → 민회빈 강씨
[6]
실록
세자빈을 책봉하는 예를 행하다
1627-12-04
[7]
실록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부인 장씨를 세자빈으로 책봉하다
1645-09-27
[8]
문서
왕실 종친으로 성종의 5대손이다. 한준겸의 사위이며 소현세자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9]
실록
전복구이에 독이 있자 강빈을 의심하여 그 궁인과 어주 나인를 심문하다
1646-01-03
[10]
실록
대신들이 강빈을 비호하자 노여워하고 한편 의심하다
1646-02-05
[11]
실록
대사헌 홍무적이 강빈을 죽일 수 없음을 아뢰고 체직을 청하다
1646-02-07
[12]
실록
강빈을 폐출한 다음 사사하라는 전교
1646-03-15
[13]
서적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석필
[14]
실록
1652-04-26
[15]
실록
한희유의 일과 역강의 옥사에 대한 발언 등에 대해 신하들에게 이르다
1652-06-03
[16]
문서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5대조이자, 추사 김정희의 7대조이다.
[17]
실록
김홍욱이 곤장을 맞다가 죽다
1654-07-17
[18]
문서
강석기의 어머니와 송준길의 어머니는 김은휘(金殷輝, 1541~1611)의 딸로 서로 자매지간이므로 강석기와 송준길은 이종사촌이다. 송준길은 인현왕후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19]
문서
세종의 외7대손 세종 → 임영대군 → 중모현주 → 신수근 → 신홍필 → 신영이 → 노춘복 → 신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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