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레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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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산비탈레 성당은 이탈리아 라벤나에 위치한 6세기에 완공된 중요한 비잔틴 건축물이다. 팔각형 평면과 로마 및 비잔틴 건축 요소의 조화가 특징이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외부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비잔틴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이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며, 전설에 따르면 성 비탈리스의 순교지 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모자이크는 성가대석, 개선 아치,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테오도라 황후를 묘사한 패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로마 제국의 예술과 권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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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레 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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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일반 정보 | |
건물의 이름 | 산비탈레 대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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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소속 | 로마 가톨릭교회 |
교구 | 라벤나-체르비아 대교구 |
건축 양식 | 비잔틴 건축 |
위치 | 이탈리아, 라벤나 |
유네스코 세계유산 | https://whc.unesco.org/en/list/788 |
건축 | |
건축가 | 알 수 없음 |
착공 | 527년 |
완공 | 547년 |
건설 비용 | 26,000 솔리디 |
상세 정보 | |
좌표 | 44°25′44″N 12°11′46″E |
웹사이트 | http://www.ravennamosaici.it/ |
2. 역사
산비탈레 성당은 로마 건축의 요소(돔, 출입구, 계단 탑)와 비잔티움의 요소(다각형 후진, 주두, 폭이 좁은 벽돌 등)가 결합된 건물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밖에서 그려진 가장 크고 잘 보존된 비잔티움 모자이크가 풍부하여 유명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의 양식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유일한 성당으로 비잔티움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오늘날에는 사라진 동로마 제국 궁정 접견실의 형태를 보여준다.
중앙 볼트는 벽돌 대신 서로 삽입된 속이 빈 튜브를 사용한 서양 기술을 적용했다. 이는 이후 현대의 구조용 점토 타일로 발전한 테라코타 형태를 구조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이다. 주랑과 갤러리는 중세 시대에 나중에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다.[4] 돔의 바로크 프레스코는 1778년에서 1782년 사이에 S. 바로치, 우발도 간돌피, 야코포 과라나가 제작했다.[5]
2. 1. 건립 배경
성당 건설은 동고트 왕국이 라벤나를 지배하던 527년에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시작하였고, 547년 라벤나 총독부 시대에 라벤나의 제27대 교구장 막시밀리아누스가 완공하였다.[20]전설에 따르면 이 성당은 성 비탈리스가 순교한 장소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인이 밀라노의 비탈리스인지, 아니면 성 암브로시오가 393년에 볼로냐에서 성 아그리콜라의 시신과 함께 발굴한 다른 성 비탈리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18] 5세기경 성 비탈리스의 유물이 라벤나로 옮겨졌으며, 현재 성당 서쪽에 십자형 평면 건물 형태의 작은 영묘가 최초로 건설되었다. 6세기 초, 성 비탈리스가 밀라노의 유명한 순교자 성 게르바시우스와 성 프로타시우스의 아버지라는 설이 퍼졌지만, 이전까지 성 비탈리스는 유명한 순교자가 아니었고 숭배도 중요하지 않았기에, 왜 그 영묘가 웅장한 교회당으로 재건되었는지는 미스터리이다. 다만,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던 도시 메디올라눔에 대한 경쟁 심리가 그 이유 중 일부로 여겨진다.[19]
이 성당 건설에는 그리스인 은행가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가 자금을 지원했는데, 그는 산타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건설에도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2] 성당 건설에는 26,000 솔리두스 (당시 통용되던 금화)가 소요되었다.[3] 진정한 건설 후원자는 동로마 황제였는데, 그는 성당 건설을 새로 정복한 영토를 제국에 신속히 편입시키는 선전 수단으로 생각했다.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의 기증자 초상화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모자이크에 있는 궁정 인물들 중 하나로 나타날 수 있다.[3] 그는 비잔틴 제국 동부 지역 출신으로, 그곳에는 오랫동안 공공 기부 전통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오늘날 성당 건설은 521년부터 532년 사이, 에클레시우스 주교 재임 기간에 기공된 것으로 보이지만, 1층에 주교 우르시키누스(재위 534년-536년)와 주교 빅토르(재위 538년-545년)의 모노그램이 새겨진 주두가 있어, 실제 공사는 534년 이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에클레시우스 재임 중에 공사가 시작되었다면, 당시 라벤나는 동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성당은 테오도릭의 딸 아마라순타 섭정 시대에 착공된 것이다.
2. 2. 건설 과정
성당의 건설은 라벤나가 동고트 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527년에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시작하여, 동로마의 라벤나 총독부 시대인 547년 라벤나의 제27대 교구장 막시밀리아누스 때에 완공되었다.[20]전설에 따르면 이 성당은 성 비탈리스가 순교한 장소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18] 그러나 이 성인이 밀라노의 비탈리스인지 아니면 성 암브로시오가 393년에 볼로냐에서 성 아그리콜라의 시신과 함께 발굴한 다른 성 비탈리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성당을 건설하는 데에는 그리스인 은행가인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의 지원이 있었는데, 그는 같은 시기에 산타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을 건설할 때에도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2] 성당 건설에는 26,000 솔리두스가 소요되었다.[3] 성당 건설 계획은 새로 정복한 영토들을 제국에 신속히 편입시키는 한 방법으로 생각했던 동로마 황제의 선전 수단이었다.
산 비탈레 성당의 건축은 526년 라벤나의 주교 에클레시우스의 지시로 시작되었다. 당시 라벤나는 동고트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막시미아누스 주교는 서부 로마 제국을 부분적으로 재정복한 후 유스티니아누스가 라벤나 총독부를 건설한 547년에 공사를 완료했다.
성당 건축은 지역 은행가이자 건축가인 율리우스 아르겐타리우스가 후원했다. 율리우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그는 비슷한 시기에 근처의 클라세의 산타폴리나레 성당 건설도 후원했다.[2] 율리우스 아르겐타리우스의 기증자 초상화는 유스티니아누스 모자이크에 있는 궁정 인물들 중 하나로 나타날 수 있다. 율리우스는 비잔틴 제국의 동부 지역 출신으로, 그곳에는 오랫동안 공공 기부를 해온 전통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중앙 볼트는 벽돌 대신 서로 삽입된 속이 빈 튜브의 서양 기술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이후 현대의 구조용 점토 타일로 발전한 테라코타 형태를 구조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이다. 주랑과 갤러리는 중세 시대에 나중에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다.[4]
돔의 바로크 프레스코는 1778년에서 1782년 사이에 S. 바로치, 우발도 간돌피, 야코포 과라나에 의해 제작되었다.[5]
3. 건축
산 비탈레 성당은 로마 건축과 비잔틴 건축 양식이 결합된 건물이다. 돔, 출입구 모양, 계단식 탑은 로마 양식이며, 다각형 앱스, 주두, 좁은 벽돌, 초기 플라잉 버트레스는 비잔틴 양식이다. 특히 비잔틴 모자이크가 풍부하며, 이스탄불 외부에 있는 가장 크고 잘 보존된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6]
성당 건설 경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530년 동로마 제국 속주로 재편입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유래한 양식으로 건설된 것은 확실하다. 구조체에 사용된 벽돌도 북이탈리아 특유의 것이 아니다. 성 세르기오스와 바쿠스 교회와 유사점이 있지만, 건설 시기가 더 빠르다고 증명할 수 없고, 뚜렷한 차이점도 있다.[22] 황제 궁전의 황금 홀과 유사한 건축물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 역시 후대에 건설된 것이다. 건축가는 동방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23]
내부 공간에는 이탈리아 전통의 특질도 보인다. 얇은 벽돌을 두꺼운 모르타르 줄눈으로 쌓는 방식은 동방의 것이지만,[24] 돔은 굽지 않은 도제 파이프를 쌓아 만들어 라벤나 지역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또한, 내진은 8개의 아케이드 상부에 높은 창이 있는 드럼을 가지고 그 위에 돔이 얹혀 있는 구조로, 하기아 소피아와 달리 돔의 존재를 덜 의식하게 하고 아케이드와 돔의 인상을 날카롭게 대비시킨다.[25]
건축 당시 내부는 마르마라해 프로코네소스 섬에서 채취한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18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다. 하부 대리석 또한 후대에 보충되었다. 그러나 내진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남아 있어 당시의 장엄했던 내부 공간을 짐작하게 한다.
3. 1. 구조
교회의 주요 건물은 팔각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로마 건축과 비잔틴 건축 요소를 결합했다. 돔, 출입구 모양 및 계단식 탑은 로마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다각형 앱스, 주두, 좁은 벽돌, 그리고 초기 플라잉 버트레스의 예는 비잔틴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 교회는 특히 비잔틴 모자이크의 풍부함으로 유명하며, 이는 이스탄불 외부에 있는 가장 크고 잘 보존된 표본이다.[6] 산 비탈레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시대의 주요 교회 중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교회이기 때문에 비잔틴 미술에서 극도로 중요하다. 성 세르기오스와 바쿠스 교회처럼 전체적인 디자인은 "이중 쉘 팔각형"이다.[6]일부에서는 이 교회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비잔틴 황궁의 알현실의 설계를 반영한다고 추측한다. 종탑에는 4개의 종이 있다. 테너 종은 16세기에 제작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 교회는 성 비탈리스의 순교지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7]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 비탈레 성당 건설의 경위는 여전히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530년에 동로마 제국의 속주로 재편입되었을 때, 성당이 어디까지 건설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구성은 그전까지의 서방의 전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유래한 것임이 명확하다. 구조체에 사용된 벽돌도 북이탈리아 특유의 것이 아니다. 다만, 수도의 어떤 특정 교회당에서 파생된 것인지에 대한 확증은 얻지 못했다. 유사점이 지적되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Little Hagia Sophia|작은 아야 소피아|label=아기이 세르기오스 케 바코스 성당영어는 산 비탈레보다 건설 시기가 빠르다고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래에 언급하는 바와 같은 현저한 차이점도 지적되고 있다.[22] 또한 황제 궁전의 황금 홀(현존하지 않음)이 산 비탈레의 내부 공간과 유사한 건축물이었던 것 같지만, 이것은 건설이 후대의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건축물은 산 비탈레와 같은 계통에 속하며, 이 공사를 주도한 건축가는 동방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23]
한편, 산 비탈레 성당의 내부 공간에는 이탈리아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질도 보인다. 얇은 벽돌을 두꺼운 모르타르 줄눈으로 적층하여 구조체를 구축하는 수법은 동방의 것이지만,[24] 돔 부분은 굽지 않은 도제 파이프를 적층하여 구축되어 있으며, 이는 시공 자체가 라벤나, 또는 그 지배 지역의 장인의 손에 의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산 비탈레의 내진은, 후진을 포함한 8개의 아케이드 상부에 높은 창이 있는 드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부에 돔이 얹혀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아기이 세르기오스 케 바코스 성당의 경우,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첫 번째 돔과 마찬가지로, 아케이드 바로 위에 돔을 얹고 있으며, 돔 자체가 내부 공간을 꽤나 답답한 인상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 산 비탈레의 경우, 아케이드와 돔 사이에 드럼이 있기 때문에 돔의 존재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하고, 양자의 인상을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다.[25]
3. 2. 내부 공간
중앙 부분은 지붕이 하나로 겹쳐진 회랑 두 개에 둘러싸여 있다. 위쪽 회랑은 마트리모네움(''matrimoneum'')이라는 곳으로, 유부녀를 위한 공간이었다. 아치형 채광창 위 트리포리움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이야기, 이사악의 희생 등 구약성경 속 희생 이야기들을 묘사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아치형 채광창 위에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예레미야와 이사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와 거대한 메달을 손에 든 한 쌍의 천사들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29] 창틀 옆 구석 벽 쪽에는 흰 옷을 입은 복음사가 네 명의 모자이크가 각자의 상징(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 아래에 있다. 특히 사자는 야생적인 사나움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29]사제석의 교차한 십자형 둥근 천장에는 잎, 과일, 꽃 등의 모자이크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를 둘러싼 꼭대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꼭대기에는 네 명의 천사가 호위하고 있으며, 각 면은 꽃, 별, 새, 짐승, 공작 등으로 풍부하게 덮여 있다. 아치 위 양쪽 면에는 두 명의 천사가 원반을 들고 있고 그 뒤로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그려져 있다. 이 도시들은 인류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 베들레헴은 기독교도)[29]
모든 모자이크 그림은 헬레니즘-로마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다. 덕분에 그림에 생동감과 표현력이 풍부하며, 다채로운 색채와 확실한 원근, 풍경과 식물, 새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 이 모자이크들은 라벤나가 아직 고트족의 지배를 받던 때 완성되었다.[29]
후진(後陣) 측면에는 일반적인 비잔티움 건축에서 보이는 두 개의 경당이 있었다. 제대를 보관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와 성찬용 그릇, 전례복, 성서 등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이 그것인데, 디아코니콘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전례 도구들을 보관하는 직분인 부제(''deacon'')가 담당했기 때문에 붙여졌다.[29]
내부에 있는 개선 아치 안쪽 둘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를 묘사한 열다섯 개의 대형 모자이크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525년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묘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금색 띠에 칭칭 감긴 꽃, 새, 무수한 뿔로 덮여 있다. 아치 천장 최고점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푸른 구체 위에 앉아 오른손으로 성 비탈리스에게 순교자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왼쪽에는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비탈레 성당 모형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29]


건축 당시 내부는 마르마라해 프로코네소스 섬에서 채취한 대리석과 이를 가공한 기둥, 제단, 그리고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오늘날 이 대리석과 모자이크는 사라졌으며, 드럼과 돔은 18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다. 하부 대리석 또한 후대에 보충된 것이다. 그러나 내진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남아 있어, 당시 장엄했던 내부 공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29]
내진 입구 아치 부분 중앙 꼭대기에는 그리스도, 그 좌우에는 12사도 메달리온이 배치되어 있다. 내진 천장이 되는 대천개에는 덩굴무늬와 다양한 상징을 조합하여 남색 바탕과 금색 조합을 기조로 그렸으며, 중앙 꼭대기에는 금색 광배를 가진 어린 양(그리스도를 나타냄)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네 명의 천사가 받치고 있다.[29]
내진 북쪽, 남쪽 벽면 2층 갤러리에는 바위에 앉아 있는 복음사가 마태오, 마르코, 요한, 루카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팀파눔(반원형 부분)을 사이에 두고 예언자 모세와 예레미야, 모세와 이사야가 배치되어 있다. 팀파눔에는 구약성서의 장면인 아브라함과 이삭, 아브라함의 환대, 아벨이 바치는 어린 양과 멜기세덱이 바치는 빵이 그려져 있다.[29]
지성소 동쪽 벽면 위에는 천사와 성 비탈리스(왼쪽), 주교 에클레시우스(오른쪽)에게 옹호받는 일곱 개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든 그리스도가 묘사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황후 테오도라를 비롯한 조정 신하들로 구성된 예배자들이 묘사되어 있다.[29]
상단의 화려한 모자이크뿐만 아니라 후진 바닥도 흰색을 바탕으로 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29]
4. 모자이크
산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는 헬레니즘-로마 전통에 따라 제작되어 생동감 있고 표현력이 풍부하며, 다채로운 색채와 확실한 원근, 풍경과 식물, 새의 생생한 묘사가 엿보인다. 이는 라벤나가 아직 동고트 왕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완성되었다.
사제석의 교차한 십자형 둥근 천장에는 잎과 과일, 꽃 등의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하였는데,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를 둘러싼 꼭대기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 명의 천사가 호위하고 있으며, 각각의 면에는 꽃, 별, 새, 짐승과 공작 등으로 풍부하게 뒤덮여 있다. 아치 위의 양쪽 면에는 두 명의 천사가 원반을 들고 있고 그 뒤로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그려져 있다. 이 도시들은 인류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이고 베들레헴은 기독교도임)
트리포리움 위 반원벽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이야기, 이삭의 희생 등 구약성경 속 희생 이야기들을 묘사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아치형 채광창 위에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예레미야와 이사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와 거대한 메달을 손에 든 한 쌍의 천사들 등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9] 창틀이 있는 창 옆에 있는 구석의 벽 쪽에는, 네 명의 흰 옷을 입은 사대 복음사가들의 모자이크가 그들의 상징(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 아래에 있다. 특히 사자는 야생적인 사나움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내부에 있는 개선문의 안쪽 둘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를 묘사한 열다섯 개의 대형 모자이크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525년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에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묘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금색 띠에 칭칭 감긴 꽃들과 함께 새들과 무수한 뿔로 덮여있다. 아치 천장의 최고점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푸른 구체 위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비탈리스 성인에게 순교자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 비탈레 성당의 모형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후진의 측면에는 일반적인 비잔티움 건축에서 보이는 두 개의 경당이 있었다. 제대를 보관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와 성찬용 그릇, 전례복, 성서 등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이 그것인데, 디아코니콘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전례 도구들을 보관하는 직분인 부제(''deacon'')가 담당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29]
4. 1. 주제와 내용
산비탈레 성당의 중앙부는 두 겹의 주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위층은 ''마트리모네움''이라 불리며 기혼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리포리움 위쪽 반원벽에는 구약성서 속 희생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들이 있다. 아브라함의 환대와 이삭의 희생,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이야기, 예레미야와 이사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대표,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각 반원벽에는 십자가가 있는 메달을 든 한 쌍의 천사가 장식되어 있다. 측벽의 창 옆 모서리에는 흰색 옷을 입은 사대 복음사가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그들의 상징(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사자는 맹렬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성가대의 십자 리브 볼트는 잎, 과일, 꽃의 모자이크 화환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어린 양을 에워싼 왕관으로 이어진다. 왕관은 네 명의 천사가 받치고 있으며, 모든 면은 공작새를 포함한 꽃, 별, 새, 동물로 풍성하게 덮여 있다. 아치 위 양쪽에는 두 천사가 원반을 들고 있고, 그 옆에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다. 이는 인류를 상징하는데, 예루살렘은 유대인을, 베들레헴은 이방인을 나타낸다.
이 모자이크들은 모두 헬레니즘-로마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다. 생동감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다채로운 색상과 원근법을 보여주고, 풍경, 식물, 새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다색 색상과 형태뿐만 아니라 표현보다 기하학적 패턴을 선호하는 것은 후기 고대 시대의 보석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9] 이는 라벤나가 동고트 왕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완성되었다. 제사석과 부제관은 비잔틴 건축의 전형적인 두 예배당이다.
내부 개선문 안쪽은 예수 그리스도와 12명의 사도, 성 비탈레의 아들인 성 게르바시우스와 성 프로타시우스를 묘사한 15개의 모자이크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주현절은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인 525년에 시작되었으며, 꼬인 꽃, 새, 풍요의 뿔이 있는 큰 금색 띠가 있다.
압스 모자이크는 푸른 지구 위에 앉아 자주색 옷을 입은 젊은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 천사들에 둘러싸인 그리스도는 오른손으로 성 비탈레에게 순교자의 왕관을 바치고, 왼쪽에 있는 주교 에클레시우스는 교회의 모형을 바친다.
산 비탈레 성당 후진 측 벽면 하단에는 547년에 완성된 두 개의 유명한 모자이크 패널이 있다. 왼쪽에는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금 후광을 두르고 티리안 퍼플을 입고 궁정 관리, 장군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 라벤나의 주교 막시미아누스, 팔라티나에 근위병 및 집사들과 함께 서 있는 모자이크가 있다.[10] 황제의 머리 주위 후광은 앱스 돔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후광을 가진 황실 가족을 묘사하는 전통의 일부이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중앙에 서 있으며, 오른쪽에 군인, 왼쪽에 성직자가 있어 그가 제국의 교회와 국가의 지도자임을 강조한다. 막시미아누스 주교의 이름이 나중에 그의 머리 위에 삽입된 것은 547년에 모자이크가 수정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모자이크의 금색 배경은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수행원들이 교회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물들은 V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 유스티니아누스는 앞과 중앙에, 막시미아누스 주교는 그의 왼쪽에, 덜 중요한 인물들은 그들 뒤에 배치되어 중요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배치는 모자이크에 있는 인물들의 겹쳐진 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1]
반대쪽 벽에는 황후 테오도라가 황금 후광, 왕관, 보석을 착용하고 궁정 여성들과 환관들과 함께 엄숙하고 격식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더 정교한 패널이 있다. 황후는 성혈을 위한 성찬 용기를 들고 있으며, 분수, 돔, 호화로운 장식과 함께 더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12] 이들은 정교한 패턴의 직물로 장식되어 있는데, 아마도 사산 제국에서 수입된 고급 실크일 것이다.[13] 테오도라가 548년 사망 후에 묘사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14] 547년에 모자이크가 완성되었다는 다른 증거로 인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15] 이것은 황후 테오도라의 유일한 확실한 이미지이며, 시대의 일부 정치적 수사와 대조된다.[16]
내진부 입구 아치 부분에는 중앙 꼭대기에 그리스도, 그 좌우에 12사도 메달리온이 배치되어 있다. 내진 천장에는 덩굴 무늬와 다양한 상징을 조합하여 남색 바탕과 금색을 기조로 그렸으며, 중앙 꼭대기에는 금색 광배를 가진 어린 양(그리스도를 나타냄)이 있고, 이를 4명의 천사가 받치고 있다.
내진 북쪽, 남쪽 벽면 2층 갤러리에는 바위에 앉아 있는 복음사가 마태오, 마르코, 요한, 루카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팀파눔을 사이에 두고 예언자 모세와 예레미야, 모세와 이사야가 배치되어 있다. 팀파눔에는 구약성서의 장면인 아브라함과 이삭, 아브라함의 환대, 아벨이 바치는 어린 양과 멜기세덱이 바치는 빵이 그려져 있다.
지성소 동쪽 벽면 위에는 천사와 성인 비탈리스(왼쪽), 주교 에클레시우스(오른쪽)에게 옹호받는 일곱 개의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든 그리스도가 묘사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황후 테오도라를 비롯한 조정 신하들로 구성된 예배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상단의 화려한 모자이크뿐만 아니라 후진의 바닥도 흰색을 바탕으로 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4. 2. 양식과 특징
중앙 부분은 겹쳐진 지붕이 있는 회랑 두 개에 둘러싸여 있다. 위쪽 회랑은 마트리모네움(''matrimoneum'')이라 불리는 곳으로, 기혼 여성을 위한 공간이었다. 트리포리움 위 반원벽에는 아브라함과 멜키체덱의 이야기, 이삭의 희생 등 구약성경 속 희생 이야기들을 묘사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아치형 채광창 위에는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예레미야와 이사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우두머리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십자가와 거대한 메달을 손에 든 한 쌍의 천사들 등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9] 창틀이 있는 창 옆에 있는 구석의 벽 쪽에는, 네 명의 흰 옷을 입은 사대 복음사가들의 모자이크가 그들의 상징(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 아래에 있다. 특히 사자는 야생적인 사나움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사제석의 교차한 십자형 둥근 천장에는 잎과 과일, 꽃 등의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하였는데,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묘사된 예수를 둘러싼 꼭대기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네 명의 천사가 호위하고 있으며, 각각의 면에는 꽃, 별, 새, 짐승과 공작 등으로 풍부하게 뒤덮여 있다. 아치 위의 양쪽 면에는 두 명의 천사가 원반을 들고 있고 그 뒤로는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그려져 있다. 이 도시들은 인류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이고 베들레헴은 기독교도임)
모든 모자이크 그림은 헬레니즘-로마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다. 그 덕분에 그림에 생동감이 있고 표현력이 풍부하며, 다채로운 색채와 확실한 원근, 풍경과 식물, 새의 생생한 묘사가 엿보인다. 라벤나가 아직 동고트 왕국의 지배에 있을 때에 모자이크들이 완성되었다.
후진의 측면에는 일반적인 비잔티움 건축에서 보이는 두 개의 경당이 있었다. 제대를 보관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와 성찬용 그릇, 전례복, 성서 등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이 그것인데, 디아코니콘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전례 도구들을 보관하는 직분인 부제(''deacon'')가 담당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29]
내부에 있는 개선문의 안쪽 둘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를 묘사한 열다섯 개의 대형 모자이크 메달로 장식되어 있다.
525년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에 하느님의 현현(顯現)을 묘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금색 띠에 칭칭 감긴 꽃들과 함께 새들과 무수한 뿔로 덮여있다. 아치 천장의 최고점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푸른 구체 위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비탈리스 성인에게 순교자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비탈레 성당의 모형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4. 3. 주요 모자이크
산 비탈레 성당의 주요 모자이크는 헬레니즘-로마 전통에 따라 제작되어 생동감, 풍부한 색채, 원근감, 풍경과 동식물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특징이다.내진 입구 아치 부분 중앙에는 그리스도가 있고, 그 좌우에는 12사도가 메달리온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내진 천장에는 덩굴 무늬와 다양한 상징이 남색 바탕과 금색의 조합으로 그려져 있으며, 중앙에는 금색 후광을 가진 어린 양(그리스도를 상징)이 있고, 이를 4명의 천사가 받치고 있다.
내진 북쪽과 남쪽 벽면 2층 갤러리에는 바위에 앉아 있는 복음사가 마태오, 마르코, 요한, 루카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 팀파눔(반원형 부분)에는 예언자 모세와 예레미야, 모세와 이사야가 배치되어 있다. 팀파눔에는 구약성서 속 아브라함과 이삭, 아브라함의 환대, 아벨이 바치는 어린 양과 멜기세덱이 바치는 빵이 그려져 있다.
지성소 동쪽 벽면 위에는 천사와 성 비탈리스(왼쪽), 주교 에클레시우스(오른쪽)에게 옹호받는 일곱 개의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든 그리스도가 묘사되어 있다. 그 아래에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황후 테오도라를 비롯한 조정 신하들이 묘사되어 있다.
개선 아치 안쪽 둘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 성 제르바시오와 성 프로타시오를 묘사한 열다섯 개의 대형 모자이크 메달리온으로 장식되어 있다.[29] 525년 에클레시우스 주교 때에는 주현절 묘사가 시작되었는데, 커다란 금색 띠에 칭칭 감긴 꽃들과 함께 새들과 무수한 뿔로 덮여있다. 아치 천장의 최고점에는 자줏빛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가 푸른 구체 위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비탈리스 성인에게 순교자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 비탈레 성당의 모형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후진 아래쪽에는 547년에 제작된 두 개의 유명한 모자이크 패널화가 있다.
- 왼쪽 패널: 궁정 관리, 막시미아누스 주교, 근위병, 부제 등을 거느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황금 후광을 두르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를 가운데에 놓고 왼편에는 병사들, 오른편에는 성직자들이 앉아 있는데, 이는 유스티니아누스가 속계와 교계 모두의 지도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손에 성반을 든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로서의 직무수행에 바빠서 3일간 면도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10] 모자이크의 금빛 배경은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측근들이 성당 안에 있으며 영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인물들은 V자형으로 배치되어 유스티니아누스는 맨 앞 가운데에 있으며, 왼쪽에는 막시미아누스 주교가 있고,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 뒤에 있다. 이런 배치는 모자이크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발이 포개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11]
- 오른쪽 패널: 황금 후광이 있는 테오도라 황후가 시녀들을 거느린 채, 왕관과 보석을 몸에 두르고 엄숙하고 절제된 모습을 하고 있다. 테오도라는 마치 여신처럼 묘사되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모자이크와는 달리,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테오도라는 성혈을 위한 성찬 용기를 들고 있다.[12] 이 패널화는 세속적인 비잔티움 모자이크 예술에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그림이며, 동로마 세계의 광명과 영화, 영광을 빛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5. 갤러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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図説世界建築史5ビザンティン建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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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y Christian and Byzantine Architecture
[24]
문서
구조의 차이는, 즉시 측에 건설되고 있는 걀라·플라키디아 묘당과 비교하면 명료하다.
[25]
문서
이 때문에, C.망고는 이 건물의 건축가를 북 이탈리아 출신자로 하고 있다.
[26]
문서
근년에는 테오도라의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베리사리우스의 아내 안토니나, 그 오른쪽의 여성은 베리사리우스와 안토니나의 외동딸 요안니나와의 설이 있다. 요안니나로 생각되는 여성은 왼손으로 슬쩍 안토니나로 생각되는 여성에게 접촉하고 있지만, 이것은 양인이 친족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27]
문서
근년에는 베리사리우스의 아내로 테오도라의 친구 안토니나가 아닌가와의 설이 부상하고 있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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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洋美術史入門
筑摩書房
[29]
서적
임석재 서양 건축사 2 - 기독교와 인간
북하우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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