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맨사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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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맨사 스미스는 1972년 미국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시기에 소련의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핵전쟁의 위험에 대한 우려를 담은 편지를 보내면서 '최연소 친선 대사'로 불리며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안드로포프의 초대로 소련을 방문하여 소련 아이들과 교류하고, 이후 일본을 방문하여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으나, 그녀의 활동은 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냉전 완화에 기여했으며, 그녀를 기리는 기념 사업이 미국, 소련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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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맨사 스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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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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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서맨사 리드 스미스 |
출생일 | 1972년 6월 29일 |
출생지 | 미국 메인주 홀턴 |
사망일 | 1985년 8월 25일 (향년 13세) |
사망지 | 미국 메인주 오번 |
사망 원인 | 비행기 추락 |
안장 위치 | 메인주 아미티 이스타브룩 공동묘지 (화장 후 매장) |
다른 이름 | 미국의 최연소 대사 미국의 꼬마 외교관 미국의 연인 친선 대사 (소련) |
직업 | 평화 운동가 아역 배우 |
활동 기간 | 1982년–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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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작품 | |
영화 | 《브루스터즈 밀리언스》(자신 역) |
기타 정보 | |
웹사이트 | samanthasmith.info |
2. 당시의 역사적 상황
1980년대 초반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다시금 심화되던 시기였다. 양국 간의 군비 경쟁과 이념 대립으로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었다.[5]
이러한 가운데 1982년 11월, 소련에서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유리 안드로포프가 새로운 지도자로 취임했다.[119] KGB 의장 출신인 그의 등장은 서방 세계에 큰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고, 언론들은 그를 세계 평화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묘사했다.[119][3][78]
당시 미소 양국은 우주 공간에서의 군비 경쟁을 포함하여[121][76] 군사적 대치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데탕트 시기의 긴장 완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었다.[5] 유럽에서는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었고,[5][81]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계속되고 있었다.[5][81]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반핵 시위가 확산되었고,[122][5][80] 핵전쟁의 공포를 그린 TV 영화 《그날 이후》가 방영되기도 했다.[122][80]
이처럼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1982년 11월 22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안드로포프를 표지 인물로 선정했다. 이 잡지를 본 미국의 어린 소녀 서맨사 스미스는 어머니에게 "모두가 그를 두려워한다면, 왜 아무도 그에게 직접 전쟁을 원하는지 편지로 묻지 않나요?"라고 물었고, 이는 곧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 편지로 이어지게 된다.[123][6][81]
2. 1. 냉전과 핵무기 경쟁
1982년 11월, 소련에서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사망하고 후임으로 유리 안드로포프가 취임했다. 서방 언론은 대체로 그의 취임을 부정적으로 보도하며 세계 안정을 위협할 인물로 평가했다.[119] 이는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헝가리 주재 소련 대사로서 강경 진압에 관여했고, KGB 의장(1967-1982) 시절 프라하의 봄 진압과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한 전력 때문이었다.[3] 안드로포프는 "인권을 위한 노력들은 소련을 약화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20][4][79]
당시 미국과 소련 간의 국제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었다. 데탕트로 형성되었던 긴장 완화 분위기는 사실상 붕괴되었다.[5] 양국은 인공위성 궤도에서 발사 가능한 무기(위성 공격 무기, 전략방위구상 등) 개발을 추진했으며,[76] 이는 긴장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계획을 중단하라는 국내외 압력도 존재했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과학자들과 무기 전문가들의 로비 활동에 직면했고,[121] 소련 정부는 "우주 군사화를 막는 것이 인류의 시급한 과제"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76] 지상에서는 소련이 SS-20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배치하자, NATO는 이에 대응하여 순항 미사일과 퍼싱 II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다.[5] 또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3년째 이어지며 국제 정세는 더욱 악화됐다.[81]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럽과 북미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확산되었다.[5] 1983년 11월 20일에는 ABC에서 핵전쟁 이후의 참상을 그린 TV 영화 《더 데이 애프터》(The Day After)가 방영되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122][80]
1982년 11월 22일, 잡지 〈타임〉은 안드로포프 서기장을 표지 인물로 다룬 호를 발행했다. 이 잡지를 본 서맨사 스미스는 어머니에게 "만약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아닌지 편지로 물어보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네가 직접 해보지 그러니?"라고 답했다.[123][6][81]
2. 2. 데탕트의 붕괴와 신냉전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사망 이후 유리 안드로포프가 새로운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했다.[119][3][78] 서방 언론은 대체로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세계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는 안드로포프가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헝가리 주재 소련 대사로서 강경 진압에 관여했다는 의혹과,[119][3] KGB 의장 재임 시절(1967-1982)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고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 인사들을 억압한 전력 때문이었다.[119][3][78] 안드로포프는 인권 운동을 소련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치부하기도 했다.[120][4][79]
이 시기 미국과 소련 간의 국제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양국은 지구 궤도상의 인공위성에서 발사 가능한 무기(위성 공격 무기, 전략방위구상 등)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121][76]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무기 개발 계획을 중단하라는 국내외적 압력도 커지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과학자들과 무기 전문가들의 로비 활동에 직면했고,[121][76] 소련 정부는 "우주 공간의 군사적 이용을 방지하는 것이 인류에게 시급한 과제"라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76]
데탕트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었다. 소련은 SS-20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고, 이에 대응하여 NATO는 순항 미사일과 퍼싱 II 미사일을 배치하며 군비 경쟁이 심화되었다.[5][81] 또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3년째 이어지면서 국제적 긴장을 더욱 악화시켰다.[5][81]
이러한 냉전 심화와 핵 위협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유럽과 북미 전역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확산되었다.[122][5][80] 특히 1983년 11월 20일, ABC에서 방영된 핵전쟁 이후의 참상을 그린 TV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122][5][80]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2년 11월 22일, 잡지 〈타임〉은 안드로포프 서기장을 표지 인물로 다루었다. 서맨사 스미스는 이 잡지를 보고 어머니에게 "만약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아닌지 편지를 써서 물어보지 않나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네가 직접 해보지 그러니?"라고 답했다.[123][6][81]
3. 생애
서맨사 리드 스미스(1972년 6월 29일 ~ 1985년 8월 25일)는 냉전 시대 미국의 평화 운동가이자 아역 배우였다. 그녀는 1982년 10살의 나이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편지를 보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양국 간의 친선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스미스는 1972년 6월 29일, 메인주 호울턴에서 제인 고스혼[7]과 아서 스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보여, 5살 때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 존경을 표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1980년 가족과 함께 메인주 맨체스터로 이주하여 맨체스터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학 강사였고[8], 어머니는 사회복지사로 일했다.[10]
1982년 11월, 10살의 스미스는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던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양국 간의 긴장 관계를 우려하며 전쟁 가능성에 대해 묻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소련의 주요 신문인 프라우다에 실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12] 1983년 4월 안드로포프로부터 직접 답장을 받게 되었다.[125][14][15] 안드로포프는 답장에서 스미스를 소련으로 초대했고, 스미스는 같은 해 7월 부모님과 함께 소련을 방문하여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아르텍 국제 어린이 캠프 등을 둘러보며 평화와 우호의 메시지를 전했다.[26]
소련 방문 이후 스미스는 '미국의 최연소 친선 대사'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일본을 방문하여 평화 심포지엄에 참여하고,[28]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소련으로의 여행''(Journey to the Soviet Union)을 출간했으며,[32] 디즈니 채널의 정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34][35] TV 드라마 ''라임 스트리트''(Lime Street)에 출연하는 등[37][38]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85년 8월 25일, 스미스는 ''라임 스트리트'' 촬영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로 귀가하던 중, 메인주 오번 인근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아버지와 함께 사망했다.[39] 당시 그녀의 나이는 13세였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국과 소련 양국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짧지만 의미 있었던 삶과 평화를 향한 노력을 추모했다.[45][47]
3. 1. 안드로포프에게 보낸 편지
1982년 11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유리 안드로포프가 제6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하자, 서방 언론은 그를 집중 조명했다. 대부분의 기사는 안드로포프를 서방 세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인물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주 헝가리 대사였고, KGB 의장으로서 반체제 인사들을 억압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78] 그는 "인권 운동은 제국주의자들이 소련의 기반을 흔들려는 음모의 일부"라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졌다.[79]당시 미국과 소련은 위성 공격 무기나 전략방위구상과 같은 우주 기반 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며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이러한 계획에 대한 반대 여론도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를 상대로 과학자들과 무기 전문가들의 로비 활동이 활발했고, 소련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결국 소련 정부는 "우주 공간의 군사적 이용 방지가 인류의 시급한 과제"라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76] 유럽과 북미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빈번했고, 1983년 11월 20일 ABC에서 방영된 핵전쟁 이후를 그린 TV 영화 더 데이 애프터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80]
미소 데탕트는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소련은 SS-20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배치했고, 이에 맞서 레이건 행정부는 순항 미사일과 퍼싱 II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3년째 이어지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포프는 1982년 11월 22일자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 잡지를 본 10살의 서맨사 스미스는 어머니에게 "모두가 그를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왜 아무도 그에게 직접 전쟁을 할 생각이 있는지 묻지 않는 걸까?"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그럼 네가 한번 물어보렴?"이라고 답했다.[81]
이에 스미스는 1982년 11월,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77]
:친애하는 안드로포프 서기장님께.
:저는 서맨사 스미스이며 10살입니다. 새로운 서기장이 되신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미국과 소련이 핵 전쟁을 할까봐 걱정해왔습니다. 서기장님은 정말 전쟁을 하길 원하시나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실건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서맨사 스미스 올림[11]
이 편지는 소련의 관영 신문인 프라우다에 실렸다.[12][82] 스미스는 자신의 편지가 실린 것을 기뻐했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 그녀는 주미 소련 대사인 아나톨리 도브리닌에게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답장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13] 마침내 1983년 4월 26일, 안드로포프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125][83]
:친애하는 서맨사 양에게.
:최근 저는 서맨사 양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서맨사 양은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소설책인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베키를 닮은, 용감하고 정직한 소녀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 소련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맨사 양은 우리와 미국 사이에 핵 전쟁이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죠. 그리고 전쟁 발생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건지 물어봤습니다. 서맨사 양의 질문은 전세계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기에, 저는 정직하게 답하고자 합니다.
:예, 서맨사 양. 소련에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떠한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소련 사람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창시자 레닌이 가르쳐준 것이기도 하죠.
:소련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습니다. 42년 전, 세계 정복을 노렸던 나치 독일은 소련을 공격해 수많은 도시와 마을을 불태우고 소련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결국 그 전쟁에서는 우리가 이겼고,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었습니다. 소련은 미국과 함께 나치로부터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싸웠습니다. 서맨사 양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이 부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가깝든 멀든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며 평화 속에 살아가길 원합니다. 미국과 같은 큰 나라와는 더더욱 말이죠.
:미국과 소련에는 한 번에 수백만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핵무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핵무기 사용을 원치 않습니다. 소련은 절대로 먼저 핵무기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선언한 바 있으니까요. 우리는 핵무기 추가 개발을 중단하고 지구에 있는 모든 비축 무기의 폐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서맨사 양이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한데 대해서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봅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간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노동자, 농민, 작가, 의사, 어른, 정부 각료 중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우리는 밀을 경작하고, 무언가를 건설하고 발명하며, 책을 쓰고 우주여행을 하는 그런 평화를 원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또한 서맨사 양을 위해서도요.
:만약 서맨사 양의 부모님이 허락한다면, 서맨사 양을 이번 여름의 적절한 시기에 우리 소련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바다에서 국제 어린이 캠프인 Artek에 방문함과 동시에 서맨사 양은 우리 소련에 대해 알게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 소련에 있는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서로의 우정을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하세요.
:편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맨사 양의 젊은 시기에 행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길 바랍니다.
:유리 안드로포프.[14][15]
3. 2. 안드로포프의 답장과 소련 방문
1982년 11월 서맨사 스미스가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편지는 소련의 국영 신문인 ''프라우다''에 실렸다.[12][82] 스미스는 자신의 편지가 실린 것에 기뻐했지만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녀는 주 미국 소련 대사에게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답장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13] 마침내 1983년 4월 26일, 그녀는 안드로포프로부터 답장을 받았다.[125][83]안드로포프는 답장에서 스미스를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용감하고 정직한 소녀 베키에 비유하며, 핵전쟁에 대한 스미스의 우려에 공감했다. 그는 소련이 평화를 원하며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함께 싸웠던 역사를 언급하며, 미국과 같은 위대한 나라와 평화롭게 교류하고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안드로포프는 소련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으며, 핵무기 생산 중단과 폐기를 제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미스의 질문에 답하며 소련은 세계나 미국을 정복할 의사가 없으며, 노동자, 농민, 작가, 의사, 어른, 아이, 정부 관료 등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안드로포프는 스미스와 부모님을 여름에 소련으로 공식 초청하며, 스미스가 직접 소련을 방문하여 소련 사람들이 평화와 우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확인해 보기를 제안했다.[14][15]

이 답장은 큰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스미스는 테드 코펠[16][84], 조니 카슨 등 유명 언론인과 인터뷰하며 미국의 주요 뉴스 프로그램에 연일 등장했다.
1983년 7월 7일, 스미스는 부모님과 함께 모스크바로 가서 안드로포프의 손님으로 2주간의 소련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26] 그녀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크림 반도 구르주프에 위치한 소련의 대표적인 국제 어린이 캠프인 아르텍에서 시간을 보냈다. 스미스는 나중에 쓴 책에서 레닌그라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함과 선물에 감동했다고 회상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우리와 똑같다"고 말하기도 했다.[17][85]

아르텍 캠프에서 스미스는 특별 대우를 사양하고 다른 소련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원했다.[21] 영어를 구사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그녀와 함께 지내며 의사소통을 도왔다.[18] 그녀는 9명의 다른 소녀들과 기숙사를 함께 쓰며 수영을 하고, 러시아 노래와 춤을 배웠다.[19] 그곳에서 레닌그라드 출신의 나타샤 카시리나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20][21] 또한 아르텍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에 참여하여 나타샤와 함께 "항상 햇살이 비추기를!"이라는 노래를 불렀다.[20][21]
그러나 스미스는 방문 기간 동안 안드로포프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 통화만 했다.[22][86] 당시 안드로포프는 심각한 신부전증을 앓고 있어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였고, 결국 스미스가 귀국한 지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 9일에 사망했다.[23][19][87] 스미스는 또한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도 전화 통화를 했다.[24][19][88]
스미스의 소련 방문은 소련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그녀의 사진과 기사가 연일 주요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 그녀는 소련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많은 호감을 얻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 방문을 일종의 "미국식 홍보 활동"으로 보거나,[25][89] 스미스가 본의 아니게 소련의 선전 도구로 이용된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다.[1][27][77][91]
1983년 7월 22일, 스미스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메인주 주민들은 레드 카펫과 리무진으로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했으며,[26][90] 미국 내에서도 그녀의 인기는 계속 높아졌다.
3. 3. '최연소 친선 대사' 활동
1983년 7월 22일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메인주 사람들은 장미, 레드 카펫, 리무진으로 그녀를 환영했고,[26][90] 그녀의 인기는 조국에서도 계속 높아졌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스미스가 무심코 소련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믿으며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했다.[1][27][77][91]1983년 12월, 스미스는 "미국의 가장 어린 대사"로서 역할을 이어가며 일본으로 초청받았다.[28][92] 그녀는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당시)를 만나고 고베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심포지엄 연설에서 스미스는 소련과 미국 지도자들이 매년 2주 동안 서로의 손녀를 교환할 것을 제안하며, 그렇게 하면 대통령이 "손녀가 방문하는 나라에 폭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9][93]
그녀의 활동은 다른 어린이 친선 대사들의 교류를 촉발했으며,[94] 소련의 11세 소녀 카티야 리체바가 미국을 방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30][31][95] 이후 스미스는 자신의 소련 방문 경험을 담은 책 Journey to the Soviet Union영어을 썼다.[32][70]
스미스는 미디어 유명인사로서의 활동도 이어갔다. 1984년에는 디즈니 채널의 어린이 특별 프로그램 Samantha Smith Goes to Washington... Campaign '84영어의 진행자를 맡아[34][35][96]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선거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 존 글렌, 제시 잭슨 등을 인터뷰했다. 같은 해 시트콤 Charles in Charge영어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명성은 스토커를 끌어들이기도 했는데, 훗날 배우 레베카 셰이퍼를 살해한 로버트 존 바르도가 한때 스미스를 스토킹 대상으로 삼았던 사실이 알려졌다.[36][97] 바르도는 스미스를 만나기 위해 메인주까지 갔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고, 이후 스미스의 사망으로 스토킹 시도를 중단했다.[36]
1985년에는 텔레비전 시리즈 Lime Street영어에서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함께 공동 주연을 맡아[37][38][98][99]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3. 4. 갑작스러운 죽음
1985년 8월 25일, 스미스와 그녀의 아버지는 ''라임 스트리트'' 촬영을 마치고 바 하버 항공 1808편을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다.[39] 메인주 오번의 오번/루이스턴 지방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비치크래프트 모델 99 통근용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약 1221.33m 떨어진 지점에서 나무에 부딪혀 추락하면서 탑승자 6명과 승무원 2명 전원이 사망했다.[39]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많은 추측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소련에서는 타살 의혹이 널리 퍼졌다.[40] 1985년 CIA 보고서에 따르면, 소련 언론이 직접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소련 시민들은 스미스가 양국 간 우호 관계 증진 노력을 방해하려는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믿었다.[41][42] 미국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타살 혐의의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공식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보고서는 비행기가 EDT 기준 22시 05분에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61km 떨어진 지점에서 추락했으며, "지면 충돌 시 비교적 가파른 비행 경로 각도와 자세 및 속도로 인해 탑승자가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43] 또한 사고 당시 비가 오는 밤이었고, 조종사들의 경험이 부족했으며, 우발적인 레이더 고장이 발생했다고 밝혔다.[44]
약 1,000명이 메인주 오거스타에서 열린 스미스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그녀는 평화를 추구한 인물로서 모스크바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장례식에는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워싱턴 D.C. 주재 소련 대사관의 Владимир Кулагин|블라디미르 쿨라긴ru 공사가 참석했으며, 쿨라긴 공사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인적인 조의 메시지를 낭독했다.[45]
사만다 스미스를 알았던 소련의 모든 사람은 수백만 명의 소련 젊은이들처럼 평화를 꿈꾸고 미국과 소련 국민 간의 우정을 꿈꾸었던 이 미국 소녀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46]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도 스미스의 어머니에게 서면으로 조의를 표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 아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당신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사만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이상과 꾸밈없는 따뜻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기억할 것입니다.[47]
사만다와 그녀의 아버지의 유해는 화장되었으며,[48] 메인주 아미티의 에스타브룩 묘지에 안장되었다.[49]
4. 서맨사 스미스가 남긴 영향
서맨사 스미스의 활동은 러시아와 그녀의 고향인 메인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가 사망한 후, 모스크바에는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나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도난당했다. 2003년 보로네시의 퇴역 군인 발렌틴 바울린의 노력으로 개인 기부금을 모아 다시 세워졌다.[51] 아르텍 국제 어린이 캠프에도 1986년 '사만다 스미스 골목'이 조성되었고,[50] 2023년 7월에는 청동 기념비가 건립되어 받침대에 "언제나 햇살이 가득하길"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73][74] 아르텍 박물관에는 "사만다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특정 기간(6월 20일~7월 11일)의 캠프 활동은 "사만다의 미소"라고 불린다.[21]
소련은 그녀의 초상이 담긴 기념 우표를 발행했으며, 1976년 러시아 천문학자 류드밀라 체르니흐가 발견한 소행성 3147번은 1986년 3147 사만다로 명명되었다.[52][53] 또한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55] 구 소련의 산,[56] 튤립과 달리아의 품종, 여객선, 1986년에 건조된 보트 등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 부랴티야와 브랸스크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정착지에는 사만다 스미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21]
미국에서도 그녀를 기리는 활동이 이어졌다. 메인주에서는 매년 6월 첫째 월요일을 주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사만다 스미스 데이'로 지정하고 있다.[58] 오거스타의 메인 주립 박물관 근처에는 스미스가 곰 새끼를 발치에 두고 비둘기를 날리는 모습을 묘사한 청동상이 세워졌다.[59] 곰 새끼는 메인주와 러시아를 동시에 상징한다. 1985년에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인트클레어 강을 따라 미시간주에 평화의 정원이 조성되었다.[57] 워싱턴주 새매미시와[60] 뉴욕 퀸스 자메이카에 있는 초등학교가[61]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85년 10월, 스미스의 어머니 제인 스미스는 미국과 소련(1991년 이후 구 소련 후계 국가) 간의 학생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사만다 스미스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1990년대 중반 활동이 중단되었고, 20년 간의 휴면 끝에 2014년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27][63]
스미스의 이야기는 여러 문화 콘텐츠에 영감을 주었다. 1987년 미국 시트콤 ''The Golden Girls''의 "고르바초프에게 보내는 편지" 에피소드와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슈퍼맨 4: 핵전쟁''에서 한 소년이 핵무기 경쟁을 막기 위해 슈퍼맨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스미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64] 덴마크 작곡가 페르 뇌르고르는 1985년 비올라 협주곡 "어린 아이를 기억하며(Remembering a Child)"를 그녀에게 헌정했다.[54] 엘리엇 홀트의 2013년 소설 ''You Are One of Them''은 스미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로 사용했다.[71] 1980년대 중반에는 로버트 와그너를 프로듀서로 하여 ''사만다 스미스 이야기''라는 제목의 TV 영화 제작이 추진되었으나, 방송사의 관심을 얻지 못해 무산되었다.[65][66][67]
그녀의 명성은 스토커를 끌어들이기도 했는데, 훗날 배우 레베카 셰이퍼를 살해한 로버트 존 발도가 한때 스미스를 스토킹했다.[97]
스미스가 살아남았다면 무엇을 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2003년 그녀의 어머니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일축했다. 스미스가 사망했을 때 겨우 13세였고, 그녀의 꿈은 수의사에서 발레 무용수까지 다양했기 때문이다.[68] 스미스 자신은 생전에 디즈니 채널 특별 프로그램에서 성인이 되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대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8년, 스미스는 "미국과 소련 국민 간의 더 나은 이해를 돕고 그 결과 핵전쟁을 벌일 뻔했던 초강대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평화 수도원 용기상(Peace Abbey Courage of Conscience Award)을 사후 수상했다.[69] 평화 수도원은 또한 "미국 전역의 50개 선정된 시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평화를 교육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평화 문학을 장려하기 위해" 사만다 스미스 명예 평화 문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70]
2015년 비행기 사고 30주년을 맞아 메인 주립 박물관은 스미스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에는 아르텍 캠프에서의 모습, 그녀가 받은 전통 러시아 의상, 그녀가 표지에 실린 ''소비에트 라이프'' 잡지 등이 포함되었다.[72]
1985년 8월 25일, TV 드라마 "라임 스트리트" 촬영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로 귀가하던 중, 루이스턴-오번 지역 공항 착륙 접근 중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100] 그녀의 장례식은 메인주 오거스타에서 열렸으며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모스크바에서는 그녀를 평화의 챔피언으로 칭송했다. 장례식에는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주미 소련 대사관의 Владимир Кулагин|블라디미르 쿨라긴ru 공사가 참석했으며, 쿨라긴 공사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서기장의 조의를 대독했다.[104]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도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편지를 보냈다.[105]
4. 1. 냉전 완화에 기여
1982년 11월,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10세 소녀 서맨사 스미스는 새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서방 언론은 KGB 의장 출신인 안드로포프를 서방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하고 있었고[78][79], 미국과 소련은 위성 공격 무기와 전략방위구상 같은 군비 경쟁을 벌이며 국제적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76] 유럽과 북미에서는 대규모 반핵 운동이 벌어졌고, 핵전쟁의 공포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80]서맨사는 『타임』 표지에 실린 안드로포프를 보고 어머니에게 "왜 아무도 그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직접 묻지 않느냐"고 물었고, 어머니의 제안으로 직접 편지를 쓰게 되었다.[81] 편지에서 서맨사는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안드로포프에게 전쟁 의사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지 물었다. 또한 "하느님은 우리에게 평화롭게 살도록 이 세상을 만드셨지, 싸우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편지는 소련의 공식 신문인 ''프라우다''에 게재되었고[82], 서맨사가 답장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자 주미 소련 대사관을 통해 문의한 끝에 1983년 4월 26일 안드로포프에게서 직접 답장을 받았다.[83] 안드로포프는 답장에서 서맨사를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 등장인물에 비유하며 용기를 칭찬하고, 소련은 평화를 원하며 핵무기 선제 사용 포기와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의 전쟁 경험을 언급하며 소련 국민들이 전쟁의 참상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하고, 서맨사를 소련으로 공식 초청했다.
1983년 7월, 서맨사는 부모와 함께 2주간 소련을 방문하여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크림 반도의 구르주프에 있는 국제 어린이 캠프 '아르텍' 등을 여행했다. 아르텍 캠프에서는 특별 대우를 거절하고 다른 소련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러시아 문화와 생활을 경험했다.[85]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양국 국민 간의 공통점을 강조했다.[85]
건강 악화로 안드로포프 서기장과의 직접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지만[86][87], 전화 통화는 이루어졌다. 또한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도 통화했다.[88] 서맨사의 방문은 소련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큰 호응을 얻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89][77][91]
귀국 후 서맨사는 '최연소 친선 대사'로 불리며 미국 내에서도 큰 환영을 받았다.[90] 1983년 12월에는 일본에 초청받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를 만나고 국제 어린이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미소 양국 정상이 매년 2주간 서로의 손자를 교환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93]
서맨사의 활동은 소련 소녀 카챠 리초바의 미국 방문[95]과 같은 후속적인 어린이 친선 교류를 촉발했다.[94]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소비에트 연방으로의 모험』을 저술했으며, 1984년에는 디즈니 채널의 선거 특별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96], 1985년에는 TV 드라마 「라임 스트리트」에 출연하는 등[98][99] 평화와 이해 증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서맨사 스미스의 편지와 소련 방문은 비록 냉전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극심한 군사적 대립과 불신 속에서 양국 국민 간의 인간적인 교류와 이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어린이의 순수한 시각에서 던진 평화에 대한 질문은 경직된 미소 관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고, 전 세계적으로 평화에 대한 열망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하던 강경한 대소련 정책 속에서 평화와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는다.
4. 2. 민간 외교의 중요성
냉전이 한창이던 1982년, 10살 소녀 서맨사 스미스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보낸 편지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민간 외교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다.[77] 당시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경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극심한 긴장 상태에 있었고, 서방 언론은 안드로포프를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78][79]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스미스는 "왜 당신이 세계 정복을 원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평화롭게 살도록 이 세상을 만드셨지, 싸우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라며 솔직하게 질문했다.[81]스미스의 편지는 소련의 공식 신문인 ''프라우다''에 게재되었고[82], 1983년 4월 26일 안드로포프는 직접 답장을 보내왔다.[83] 안드로포프는 답장에서 핵전쟁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며, 소련 역시 평화를 원하고 핵무기 폐기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국민들도...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들과 당신, 서맨사를 위한 평화를 원합니다."라고 강조하며 스미스를 소련으로 공식 초청했다.
1983년 7월, 스미스는 부모와 함께 2주간 소련을 방문하여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그리고 크림 반도의 국제 어린이 캠프인 아르텍 등을 방문했다. 비록 건강 문제로 안드로포프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86][87], 전화 통화를 나누고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도 대화했다.[88] 특히 아르텍 캠프에서는 다른 소련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모스크바 기자회견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85]고 말하며 양국 국민 간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보였다.
스미스의 방문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미국과 소련 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그녀의 활동을 "미국식의 조작된 홍보 활동"으로 여기거나[89], 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77][91]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냉전의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순수한 어린이가 보여준 용기와 평화의 메시지에 감동했다. 스미스는 귀국 후 "최연소 친선 대사"로 불리며 일본에 초청받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를 만나고 국제 어린이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등[92]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포지엄 연설에서는 양국 정상이 서로의 손자를 2주간 교환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93]
스미스의 활동은 소련의 11세 소녀 카챠 리초바가 미국을 방문하는 등 다른 어린이 친선 대사들의 교류로 이어지는[94][95]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았다. 비록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서맨사 스미스의 이야기는 정부 간의 공식적인 외교 채널 외에도, 개인 차원의 진솔한 소통과 교류가 국가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이는 경직된 국제 관계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민간 외교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 기념 및 추모 사업
서맨사 스미스의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특히 그녀가 살았던 메인주와 방문했던 소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를 기리고 있다.[106][107]
소련에서는 그녀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었고,[108][109] 모스크바와 보로네시에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거리, 소행성 3147 사만다,[108][109] 산, 다이아몬드[111], 튤립과 달리아의 재배 품종, 여객선[75] 등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 메인주에서는 매년 6월 첫째 월요일을 '서맨사 스미스 데이'로 지정하는 주법이 제정되었고,[113] 오거스타에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다.[114] 또한 워싱턴주와 뉴욕주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있으며,[115][116] 미소 간 학생 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서맨사 스미스 재단'이 설립되기도 했다.[117][91]
덴마크의 작곡가 페어 노르고르는 1985년 그녀를 기리기 위해 비올라 협주곡 Remembering Child|리멤버링 차일드eng를 작곡했다.[110]
5. 1. 소련/러시아
서맨사 스미스의 활동과 비극적인 죽음 이후, 소련과 이후 러시아에서는 그녀를 기리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소련 정부는 1985년 그녀의 초상화가 담긴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1986년에는 크림 반도에 위치한 아르텍 국제 소년단 캠프의 한 거리가 '서맨사 스미스 거리'로 명명되었다.[50][106] 아르텍 캠프는 매년 6월 20일부터 7월 11일까지 열리는 제7차 캠프를 "서맨다의 미소"라고 부르며, 캠프 박물관에는 "서맨다의 장소"라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21] 2023년 7월에는 아르텍 캠프에 그녀의 청동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받침대에는 "언제나 햇살이 가득하길"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73][74]
모스크바에도 스미스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나,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혼란한 시기인 2003년에 금속 절도범들에 의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보로네시에 거주하는 퇴역 군인 발렌틴 바울린이 개인적으로 기금을 모아 새로운 기념비를 세웠다.[51][107]
1976년 러시아 천문학자 류드밀라 체르니흐가 발견한 소행성 3147번은 1986년 그녀를 기리기 위해 '3147 사만다'로 명명되었다.[52][53][108][109] 또한 1986년에 건조된 여객선 한 척에도 Саманта Смит|사만타 스미트ru라는 이름이 붙여졌다.[2][75]
이 외에도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55][111], 구 소련 영토 내의 한 산[56][112], 튤립과 달리아의 품종[2][75] 등 다양한 대상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졌다. 러시아의 부랴티야와 브랸스크주, 그리고 구 소련 공화국이었던 카자흐스탄의 일부 정착지에는 서맨사 스미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21]
5. 2. 미국
메인주에서는 매년 6월 첫째 월요일을 주법에 따라 공식적으로 '사만다 스미스 데이'로 지정하고 있다.[58][113] 오거스타의 메인 주립 박물관 근처에는 스미스를 기리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비둘기를 날리는 스미스의 발치에 곰 새끼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59][114] 이 곰 새끼는 메인주와 러시아를 모두 상징한다.워싱턴주 새머미시와[60][115] 뉴욕 퀸스 자메이카에는[61][116] 그녀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있다. 1985년에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시간주 세인트클레어 강을 따라 평화의 정원이 조성되었다.[57]
1985년 10월, 스미스의 어머니 제인은 '사만다 스미스 재단'을 설립하여 미국과 소련(1991년 12월 이후에는 구 소련의 후계 국가) 간의 학생 교류를 촉진했다.[27][117] 그러나 재단은 1990년대 중반에 활동이 중단되었고,[91] 20년 동안 활동을 중단한 후 2014년에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63]
스미스의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987년 미국 시트콤 ''The Golden Girls''의 에피소드 "고르바초프에게 보내는 편지"는 스미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감을 얻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슈퍼맨 4: 핵전쟁''에는 한 소년이 핵무기 경쟁을 막기 위해 슈퍼맨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포함되었는데, 크리스토퍼 리브에 따르면 이 장면 역시 스미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64] 1980년대 중반에는 로버트 와그너를 프로듀서로 하여 ''사만다 스미스 이야기''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영화 제작이 추진되기도 했다.[65] 컬럼비아 픽처스 텔레비전과 R. J. 와그너 프로덕션이 NBC 방영을 목표로 제작을 준비했고 소련의 소빈 필름도 공동 제작에 관심을 보였으나,[66] 결국 방송사의 관심을 얻지 못하여 제작은 무산되었다.[67]
2008년, 스미스는 "미국과 소련 국민 간의 더 나은 이해를 돕고 그 결과 핵전쟁을 벌일 뻔했던 초강대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평화 수도원 용기상(Peace Abbey Courage of Conscience Award|피스 애비 용기상영어)을 사후에 받았다.[69] 평화 수도원은 이와 함께 "미국 전역의 50개 선정된 시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평화를 교육하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평화 문학을 장려하기 위해" 사만다 스미스 명예 평화 문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70]
엘리엇 홀트의 2013년 소설 ''You Are One of Them''은 스미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로 사용했다.[71] 2015년 비행기 사고 30주년을 맞아 메인 주립 박물관은 스미스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회를 열었다.[72]
스미스의 사망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어머니 제인에게 보낸 위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 "많은 미국인들이, 정말 수백만 명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사만다의 멋진 미소, 그녀의 의지, 그리고 그녀의 사랑스러운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그녀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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