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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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의 작가로, 스탈린 시대의 강제 노동 수용소의 현실을 다룬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소련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반체제 작가로 낙인 찍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며 《수용소 군도》와 같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소련 붕괴 후 러시아로 귀환하여 사회 개혁을 주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비판과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였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암병동》, 《붉은 바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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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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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
로마자 표기 | 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 |
출생일 | 1918년 12월 11일 |
출생지 | 키슬로보츠크,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
사망일 | 2008년 8월 3일 |
사망지 | 모스크바, 러시아 |
직업 | 소설가, 수필가, 역사가 |
국적 | 소비에트 연방 (1922–1974) 무국적 (1974–1990) 소비에트 연방 (1990–1991) 러시아 (1991년부터) |
모교 | 로스토프 국립 대학교 |
배우자 | |
자녀 | 예르몰라이, 이그나트 솔제니친, 스테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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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솔제니친 공식 웹사이트 |
문화어 | 알렉싼드르 이싸예비치 쏠제니쯴 |
수상 내역 | |
노벨 문학상 | 1970년 |
템플턴상 | 1983년 |
로모노소프 금메달 | 1998년 |
러시아 연방 국가상 | 2007년 |
국제 보테프 상 | 2008년 |
성 안드레이 훈장 | 거부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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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소비에트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에서 태어나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물리·수학을 전공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역사·철학·문학 전문 학교의 통신 과정을 이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했다. 1962년 소련 문학 잡지 <노비 미르>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련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를 발표하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두 번째 단편이 발표되면서부터 보수파 평론가들은 "역사적 진실을 잘못 이해한 작품"이라고 비판했으나, 이어서 스탈린 시대를 주제로 한 <암병동>과 <연옥 1번지>를 완성했다. 두 작품 모두 국내 출판이 금지되어 외국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들이 서방에서 출판되자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은 그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솔제니친 역시 이에 맞서는 공개 서한을 두 번에 걸쳐 작가 동맹에 보냈다.
1969년 11월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으나, 1970년 12월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흐루쇼프 정권에서 사실상 명예 회복 조치도 받았다. 1971년 제1차 세계 대전을 무대로 한 역사 소설 <1914년 8월>을 파리에서 출판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1973년 12월 28일,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서독으로 추방되었다.
1994년 러시아로 귀환한 후, 시베리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아들 이그나트 솔제니친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솔제니친은 물질주의와 구 소련 체제 등을 함께 비판하며 전통적인 애국주의로의 회귀를 촉구했으며, 2008년 8월 4일 새벽, 90세의 나이로 지병으로 별세하였다.[195] 러시아 언론들은 솔제니친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고 애도하였다.[196]
다른 작품으로 <자히르칼키타>, <사슴과 라겔리의 여인>, <오른손> 등이 있다.
2. 1. 출생과 성장 배경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1918년 소비에트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에서 태어났다.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물리·수학을 전공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역사·철학·문학 전문 학교의 통신 과정을 이수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하였다.[14][15] 그의 어머니는 1944년에 사망했다.[16]1936년 초, 솔제니친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작을 계획하면서 등장인물과 개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소설 『1914년 8월』로 이어졌으며, 그 당시 그가 쓴 일부 장은 아직 남아 있다. 솔제니친은 로스토프 주립대학교(en]])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동시에 그는 당시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던 모스크바 철학·문학·역사 연구소(ru)의 통신 과정을 수강했다. 그는 수용소에 수감될 때까지 국가 이념이나 소비에트 연방의 우월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17]
2. 2. 학창 시절과 결혼
1936년 초, 솔제니친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에 관한 작품을 구상했고, 이는 『1914년 8월』의 일부로 결실을 맺었다. 문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과 고향의 여건 때문에 로스토프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동시에 모스크바 철학·문학·역사 연구소의 통신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150] 또한, 모스크바 연극계 거장인 자바츠키에게 배우 수업을 받았으나 발성 문제로 포기했다.[150]1940년 4월 7일, 솔제니친은 화학 전공 학생이었던 나타리야 레셰토프스카야와 결혼했다.[153] 두 사람은 1952년에 이혼했지만, 1957년에 재혼[154]했고, 1972년에 다시 이혼했다. 1973년, 솔제니친은 수학자인 나타리야 스베틀로바(1939년생)와 재혼했다.[155] 스베틀로바와의 사이에는 세 아들 야르몰라이(1970년생), 이그나트(1972년생), 스테판(1973년생)이 있었다.[156]
2.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련군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장교로 참전하였다.[195] 전쟁 중 솔제니친은 적군(Red Army)에서 음향 탐지(sound-ranging) 포대장[18]으로 복무하며 전선에서 주요 작전에 참여했고 두 차례 훈장을 받았다. 1944년 7월 8일 독일 포대(artillery batteries) 두 곳의 위치를 음향 탐지하고 이를 향해 대응 사격(counterbattery fire)을 조정하여 파괴함으로써 적색성진훈장(Order of the Red Star)[19]을 받았다.2. 4. 체포와 수감
1945년 2월, 동프로이센에서 복무 중이던 솔제니친은 친구 니콜라이 비트케비치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서 조세프 스탈린을 "호자인"(Khozyain, "보스")과 "발라보스"(Balabos, 히브리어 ''baal ha-bayit''의 이디시어 표현으로 "집의 주인"을 의미)라고 부르며 비판했다.[25] 이 편지의 내용 때문에 솔제니친은 스메르시(SMERSH)에 의해 체포되었다.[24] 또한, 그는 같은 친구와 소련 정권을 대체할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26]솔제니친은 소련 형법 제58조 10항(반소비엣 선전)과 11항("적대 조직 설립") 위반으로 기소되었다.[27][28] 그는 모스크바의 루뱐카 감옥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1945년 5월 9일, 독일의 항복이 선포되었고 모스크바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불꽃놀이와 조명탄이 하늘을 수놓으며 대조국전쟁 승리를 자축했다. 루뱐카의 감방에서 솔제니친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창문 앞, 그리고 루뱐카의 다른 모든 감방, 모스크바 감옥의 모든 창문에서, 우리 전쟁 포로들과 전선 병사들 또한 불꽃놀이와 조명탄이 교차하는 모스크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감방에는 환희도, 포옹도, 키스도 없었다. 그 승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29]
1945년 7월 7일, 솔제니친은 NKVD 특별위원회에 의해 결석 재판을 받고 노동 수용소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제58조 위반 범죄자 대부분에게 일반적인 형량이었다.[30]
솔제니친은 여러 노동 수용소에서 형기를 복역했다. 이후 "중간 단계"라고 언급한 기간은 샤라슈카(sharashka, 국가보안위원회가 운영하는 특별 과학 연구 시설)에서 보냈다. 그는 거기서 레프 코펠레프를 만났는데, 코펠레프는 그의 책 『첫 번째 원』에 나오는 레프 루빈이라는 인물의 모델이 되었다.[31] 1950년, 솔제니친은 정치범을 위한 "특별 수용소"로 보내졌다. 카자흐스탄 에키바스투즈 마을의 수용소에서 그는 광부, 벽돌공, 주조 감독으로 일했다. 에키바스투즈에서의 경험은 그의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기반이 되었다. 그의 동료 정치범 중 한 명인 이온 모라루는 솔제니친이 에키바스투즈에서 글쓰기에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한다.[32] 그곳에서 솔제니친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암 진단을 받지 못했다.
1953년 3월, 형기가 끝난 후 솔제니친은 카자흐스탄 남카자흐스탄주 바이디벡 구의 마을 비를릭에 종신 유형으로 추방되었다.[33][34] 진단받지 못한 그의 암은 악화되어 그해 말에는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1954년, 솔제니친은 타슈켄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종양은 호전되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소설 『암 병동』의 기반이 되었고 단편 소설 "오른손"에도 반영되었다.
2. 5. 유형 생활과 암 투병
1945년 2월, 동프로이센 전선에서 솔제니친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 니콜라이 비트케비치[159]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시프 스탈린을 "호자인"(주인), "바라보스"(히브리어로 집 주인을 의미하는 ''baal ha-bayiθ''를 이디시어로 표현한 것)라고 언급하며 암암리에 스탈린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160] 그는 소련 형법 58조 10항 "반소 선전" 및 11항 "적대적 조직 설립" 혐의로 기소되었고,[161] 모스크바 루뱐카 수용소로 연행되어 심문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7일, 케니히스베르크에서 결석 재판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당시 형법 58조를 위반한 자들에게 내려지는 매우 일반적인 판결이었다.[162]형기 초반에는 여러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노역을 강요받았다. 그 후 그가 "중기"라고 언급한 시기에는 수감된 수학자로서 '샤라슈카'라고 불리는 소비에트 연방 내무성 국가안보국 특수 연구소에 수감되어 레프 코페레프를 만났다. 코페레프는 『연옥 1번지』에 등장하는 레프 루빈의 모델이 된 인물이었다. 1950년에는 카자흐스탄 예키바스투즈에 새로 설립된 정치범 전용 특별 수용소로 이감되어 잡역부, 석공, 주조공으로 3년을 보냈다. 예키바스투즈에서의 경험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집필의 기초가 되었다. 동료 정치범 중 한 명인 이온 모랄은 솔제니친이 예키바스투즈에서 자신의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했다고 증언하고 있다.[163] 예키바스투즈 수용소 시절 종양을 앓고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1953년 3월, 8년 형기를 마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석방되지 않고 카자흐스탄 북동부로의 영구 유배가 결정되었다. 당시 정치범들에게는 일반적인 형벌이었다. 같은 해 말까지 진단이 불확실했던 암이 진행되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이듬해 타슈켄트의 암 병동에서의 치료가 허용되어 종양의 진행은 소강 상태가 되었다. 거기서의 경험은 『암병동』 집필의 기초가 되었고, 단편 『오른손』에도 영향을 미쳤다. 투옥과 추방의 10년 동안 솔제니친은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후년의 삶에서 철학적, 종교적 입장을 확립했다. 이러한 변화는 100년 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에서 사상적 변화를 경험한 것과 몇 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솔제니친은 옥중 생활과 강제 노동의 결과 점차 철학적 성향의 기독교인으로 변화했다.[164][165] 그는 적군 장교로서의 여러 행동을 후회하며 강제 수용소 수감자와 자신을 비교했다. "저는 대위 계급장과 불길에 휩싸인 동프로이센을 진군하는 제 중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좋았던가?'" 그의 변화는 『수용소 군도』 제4장에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유형 시기에 종이와 펜도 없는 상황에서 쓰여진 28편의 시는 솔제니친의 지적, 정신적 장기 여정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초기 미발표 작품은 1999년 러시아어로 처음 발표되었고, 2006년 영어로 발췌하여 발표되었다.[166][167]
2. 6. 탈스탈린화와 작품 활동
1962년 소련 문학 잡지 <노비 미르>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스탈린 시대 강제 노동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련의 관료주의를 비판한 <유익한 사업을 위하여>를 발표하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다. 두 번째 단편이 발표되면서부터 보수파 평론가들은 "역사적 진실을 잘못 이해한 작품"이라고 비판했으나, 이어서 스탈린 시대를 주제로 한 <암병동>과 <연옥 1번지>를 완성하였다. 두 작품 모두 국내 출판이 금지되어 외국에서 출판하였다. 위의 작품들이 서방에서 출판되자 정부와 소련 작가 동맹은 그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솔제니친 역시 이에 맞서는 공개 서한을 두 번에 걸쳐 작가 동맹에 보냈다.[49]1969년 11월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으나, 1970년 12월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니키타 흐루쇼프 정권에서 조치하는 사실상 명예 회복 조치도 받았다. 1971년 제1차 세계 대전을 무대로 한 역사 소설 <1914년 8월>을 파리에서 출판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1973년 12월 28일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서독으로 추방되었다.[50][51]
1964년 흐루쇼프가 실각한 후 문화적 분위기는 다시 억압적으로 변했다. 솔제니친의 작품 출판은 곧 중단되었고, 작가로서 사회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으며, 1965년 KGB가 그의 논문 일부와 <첫 번째 원 안에서> 원고를 압수했다. 그럼에도 솔제니친은 가장 유명한 작품인 <수용소 군도>를 비밀리에 열정적으로 집필했다. 원고 압수는 처음에 그를 절망과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점차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라는 허울과 장식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지위는 익숙했지만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52]
1965년부터 1967년까지 KGB가 모스크바에서 솔제니친의 자료를 압수한 후, <수용소 군도>의 준비 초고는 소련 에스토니아에 있는 친구들의 집에서 몰래 완성된 타이프 원고로 바뀌었다. 솔제니친은 루뱐카 건물 감옥에서 변호사이자 에스토니아 전 교육부 장관인 아놀드 수시와 친구가 되었다. 완성된 후, 솔제니친의 원고는 소련 붕괴까지 아놀드 수시의 딸인 헬리 수시에 의해 에스토니아에서 KGB로부터 숨겨졌다.[53][54]
1969년 솔제니친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고,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련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당시 스톡홀름에서 직접 상을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모스크바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에서 특별한 시상식을 열자는 제안이 있었다. 스웨덴 정부는 이 해결책을 거부했는데, 그러한 시상식과 그에 따른 언론 보도가 소련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웨덴-소련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추방된 후 1974년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1973년 솔제니친의 또 다른 원고가 KGB에 의해 압수되었다. 친구인 엘리자베타 보로냔스카야가 5일 동안 끊임없이 심문을 받은 끝에 원고의 위치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1973년 9월 6일 솔제니친이 서방 기자들에게 한 진술에 따른 것이다. 솔제니친에 따르면,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자살했다."[55]
1971년 8월 8일 KGB는 실험적인 겔 기반 전달 방식으로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아마도 리신)을 사용하여 솔제니친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58][59] 이 시도로 그는 중병에 걸렸지만 살아남았다.[60][61]
<수용소 군도>는 소련에서 출판되지 않았지만, 당 통제 하에 있는 소련 언론의 비판을 광범위하게 받았다. 1974년 1월 14일 <프라우다>의 사설은 솔제니친이 "히틀러 추종자들"을 지지하고 "블라소프파와 반데라 갱단의 범죄를 변명했다"고 비난했다. 사설에 따르면 솔제니친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 사회주의 체제, 소련 국민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다."[62]
이 기간 동안 그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보호받았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솔제니친을 지지한 것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겪었고 결국 스스로 망명을 가게 되었다.[63]
2. 7. 반체제 작가로의 낙인과 국외 추방
1969년 11월, 솔제니친은 반소 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작가 동맹에서 추방되었다.[195] 그러나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흐루쇼프 정권에서 사실상 명예 회복 조치도 받았다. 1973년 12월 28일, 《수용소 군도》가 해외에서 발표되자 서독으로 추방되었다.[195]솔제니친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던 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들은 그를 체포 및 투옥하거나 자본주의 국가로 추방하는 방안을 고려했다.[64] KGB 국장 유리 안드로포프의 주도하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솔제니친이 서독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일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후, 그를 서독으로 직접 추방하기로 결정했다.[65]
1974년 2월 12일,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체포되어 다음 날 서독 프랑크푸르트로 추방되었고,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다.[83] KGB는 그의 저서 『수용소 군도』 1부 원고를 발견했다. 미군 무관 윌리엄 오돔은 작가의 작가 동맹 회원 카드와 제2차 세계 대전 군 공로 표창 등 솔제니친의 자료 상당 부분을 몰래 반출하는 데 성공했다.[172]
2. 8. 서방에서의 활동과 러시아 귀환
1974년 2월 12일,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체포되어 다음 날 서독 프랑크푸르트로 추방되었고,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다.[83] KGB는 그의 저서 『수용소 군도』 1부 원고를 발견했다. 미군 무관 윌리엄 오돔은 작가의 작가 동맹 회원 카드와 제2차 세계 대전 군 공로 표창 등 솔제니친의 자료 상당 부분을 몰래 반출하는 데 성공했다.서독에서 솔제니친은 하인리히 뵐의 집에 거주했다. 그 후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후버 연구소 내 후버 타워에 머물렀다가, 1976년 버몬트주 캐번디시로 이주했다. 1978년 하버드 대학교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졸업식 연설에서 언론, 영성과 전통적 가치관의 부재, 서구 문화의 인간 중심주의 등을 비판했다.[66]
1974년 9월 19일, 유리 안드로포프는 솔제니친과 그의 가족을 중상모략하고 소련 반체제 인사들과의 연락을 차단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승인했다. 이 계획은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등이 공동으로 승인했다.[67] KGB는 솔제니친에 대한 적대적인 책들을 여러 권 후원했고, 그 주변 사람들이 KGB 요원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는 자동차 사고, 뇌 수술 등의 불안한 이미지가 담긴 편지를 계속해서 받았다. 취리히에서 KGB의 괴롭힘을 받은 후, 솔제니친은 버몬트 주 캐번디시에 정착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줄였다.
그 후 17년 동안 솔제니친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역사 소설인 『붉은 바퀴』를 집필했다. 1992년까지 네 부분이 완성되었고, 몇몇 단편 작품도 썼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침략의 위험과 서구의 도덕적 약화를 경고했는데, 이는 서구 보수주의 진영에서 잘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은 그가 러시아 민족주의와 러시아 정교를 선호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였다.
솔제니친은 또한 현대 서구의 대중 문화를 비판했다. 그러나 서구의 "약점"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서구 민주 사회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감탄을 분명히 했다. 1993년 9월 14일, 리히텐슈타인 국제 철학 아카데미 연설에서 솔제니친은 서구가 "법치 하에서 역사적으로 독특한 시민 생활의 안정성을 잊지 말라"고 간청했다.[69]
1994년 고국 러시아로 돌아온 후 솔제니친은 스위스와 뉴잉글랜드에서 직접 목격한 지역 자치에 대한 감탄을 이야기했다.[70][71] 그는 "'지역 주민이 상급 당국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과정'을 칭찬했다."[72] 솔제니친의 애국심은 내향적이었다. 그는 1979년 BBC 인터뷰에서 "모든 외국 정복 환상을 포기하고 평화로운 회복 기간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73]
1990년 그의 소련 시민권이 회복되었고, 1994년 그는 미국 시민권자가 된 아내와 함께 러시아로 돌아왔다. 아들들은 미국에 남았고, 그는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 모스크바 서쪽 트로이체-리코보에 있는 다차에서 살았다. 전통적인 러시아 문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솔제니친은 『러시아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와 같은 저서에서 포스트소련 러시아에 대한 환멸을 표출했고, 강력한 대통령제 공화국과 활기찬 지방 자치 제도의 균형을 촉구했다.[74] 솔제니친은 또한 서구에서 보낸 세월에 대한 문학적 회고록인 『두 돌 사이의 곡물』을 출판했다.[75]
러시아로 돌아온 후 솔제니친은 텔레비전 토크쇼를 진행했다.[77] 최종적으로는 솔제니친이 한 달에 두 번 15분간 독백을 하는 형식이었으며, 1995년에 중단되었다.[78] 솔제니친은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했는데, 푸틴은 솔제니친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79]
솔제니친의 모든 아들은 미국 시민이 되었다.[80] 그중 이그낫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81]
2. 9. 러시아 귀환 이후의 활동과 사망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ru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1994년에 러시아로 귀환하였다. 같은 해 시베리아 과학 예술 아카데미의 언어, 문학 분과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95] 그는 물질주의와 구 소련 체제를 비판하며 전통적인 애국주의로의 회귀를 촉구했다.[195]1990년 그의 소련 시민권이 회복되었고, 1994년 미국 시민권자가 된 아내와 함께 러시아로 돌아왔다.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 모스크바 서쪽 트로이체-리코보(Troitse-Lykovo)에 있는 다차(dacha)에서 살았다.[74]
그는 『러시아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등 저서에서 포스트소련 러시아에 대한 환멸을 표출했고, 강력한 대통령제 공화국과 활기찬 지방 자치 제도의 균형을 촉구했다. 또한 8편의 2부작 단편 소설과 일련의 사색적인 "소품" 또는 산문시, 서구에서 보낸 세월에 대한 문학적 회고록인 『두 돌 사이의 곡물』을 출판했다.[75]
러시아 귀환 후 솔제니친은 텔레비전 토크쇼(talk show)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77]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했는데, 푸틴은 솔제니친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79]

솔제니친은 2008년 8월 3일 모스크바 근교에서 89세 나이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83][84] 2008년 8월 6일 모스크바 돈스코이 수도원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고,[85] 그가 직접 선택한 수도원 내 장소에 안장되었다.[86] 러시아 언론들은 솔제니친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고 애도하였다.[196]
3. 정치적, 종교적 성향
솔제니친은 중도주의를 중요시하면서 공산주의를 비판했지만, 반유대주의와 범슬라브주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러시아 귀국 후에는 보리스 옐친 정부의 급격한 경제 개혁을 비판하며 훈장 수상을 거부했다. 체첸 전쟁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체첸 독립을 지지하는 듯했으나, 후에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1983년 템플턴상을 수상하면서 "현대 비극의 원인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라며 기독교 신앙을 강조했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던 그는 소련 붕괴 이후 교회의 부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교회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1. 공산주의 비판과 반유대주의 논란
솔제니친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공산주의를 비판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연설에서 "공산주의는 아직도 치료할 수 없는 최악의 미치광이 병"이라고 비판했으며,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매달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판 없이 처형되었다고 말했다.[197] 그러나 그는 서구 비평가들로부터 반유대주의자이자 범슬라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그는 미국 상원 주최 회의에서 그의 저서 《1914년 8월》에 반유대주의적 분위기가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참석자들의 의견은 전형적이었다. 그 누구도 작품을 읽지 않은 대신 한두 전문가 의견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소련에서 《1914년 8월》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를 반애국주의자라고 매도한 것과 똑같았다."라며 반박했다.[198]1994년 러시아 귀국 후, 솔제니친은 보리스 옐친 행정부의 급격한 경제 개혁을 비판했다. 1998년 옐친 정부가 성 안드레이 페르보잔노보 훈장을 수여하려 하자 "몇몇 권력자들 때문에 러시아는 실패한 국가로 전락해버렸다. 나는 이 상은 수여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199]
윌리엄 해리슨에 따르면, 솔제니친은 소비에트 국가가 전통적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화를 억압했다고 주장한 극단적인 반동주의자였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포함하는 슬라브 통합 국가 건설을 촉구했고, 우크라이나 독립에 강력히 반대했다.[88] 그의 우크라이나 독립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급진적으로 변했다.[88] 해리슨은 또한 솔제니친이 범슬라브주의와 군주제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역사적 저술에는 이상화된 차르 시대에 대한 동경이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했다.[89]
솔제니친은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와 모스크바의 니콘 총대주교가 1666년 대분열을 일으켜 러시아 정교회를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다고 비난했다. 또한 분열을 일으킨 예배 변경을 거부한 옛 신앙인에 대해 파문, 시베리아 유배, 투옥, 고문, 심지어 화형까지 사용한 것을 비난했다.
솔제니친은 볼셰비키 혁명의 가장 큰 원인이 러시아 문화의 기독교 타파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1666년에 시작되어 차르 표트르 1세 통치 기간 동안 악화되었고, 계몽주의, 낭만주의 시대, 은세기 동안 유행병처럼 확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50년도 더 전, 제가 아직 어렸을 때, 많은 노인들이 러시아에 닥친 큰 재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 (중략) ...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90]
조셉 피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제니친은 옛 신앙인들이 매우 불공정하게 대우받았다고 언급하며 그들의 편에 섰지만, 종교가 현대 문화에 맞게 형태를 적응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9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바오로 6세 미사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 내 분열에 대해서는,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 모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지만, 종교가 변화를 허용하지 않으면 세상을 종교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92]
앵글리칸 공동체 내 여성 사제 서품 결정으로 인한 분열에 대해서는, 바뀌어서는 안 되는 확고한 경계가 있다면서도 여성 사제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93][94]
1974년 에세이 〈국가 삶에서의 회개와 자기 제한〉에서 솔제니친은 "러시아 비유대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무신론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이고 10월 혁명 이후 붉은 테러와 대량 학살에 참여한 양쪽 공동체의 "배신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 민족 친척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면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잃는다"고 말했다.[95]
1985년 뉴욕 타임스지에서 솔제니친의 소설 《1914년 8월》에 대한 서평에서 미국계 유대인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솔제니친이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로 반유대주의적이며, 유대인의 소행이라는 러시아 극우의 혁명관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했다.[96][97] 그러나 엘리 위젤은 솔제니친이 반유대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능적이고, 너무 정직하고, 너무 용감하며, 너무 위대한 작가"라고 반박했다.[98] 1998년 저서 《붕괴하는 러시아》에서 솔제니친은 러시아 극우의 반유대주의적이고 반프리메이슨적인 음모론에 대한 집착을 비판했다.[99]

2001년 솔제니친은 러시아-유대인 관계사에 관한 2권짜리 저서 (《200년 동안 함께》 2001, 2002)를 출판했다.[100] 이 책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새로운 비난을 불러일으켰다.[101][102][103][107] 그는 소련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러시아 비유대인과 유대인이 공유해야 한다는 자신의 촉구를 반복했다.[104] 그러나 그는 1882년 유대인 학살 희생자 수를 축소하고, 1911년 베일리스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구식 학문에 의존하고 현재 서구 학문을 무시하며, 자신의 선입견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인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05][106] 《200년 동안 함께》와 솔제니친에게 돌려진 "소련과 미래 러시아의 유대인"이라는 제목의 반유대주의적 에세이 사이의 유사점은 그가 반유대주의적 구절 뒤에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졌다. 솔제니친은 이 에세이가 KGB에 의해 도난당한 원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유대주의적으로 보이도록 편집된 후 출판되었다고 설명했다.[107][108] 그러나 역사가 세묜 레즈닉은 텍스트 분석을 통해 솔제니친의 저작권을 증명했다.[109]
솔제니친은 1975년 AFL–CIO 연설에서 1917년 볼셰비키가 만든 체제가 소련에 수많은 문제를 야기했으며, 홀로도모르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유럽의 바로 변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은 그것을 눈치채지도 못했습니다. 세계는 그것을 눈치채지도 못했습니다. 600만 명이나!"라고 덧붙였다.[135]
2008년 인터뷰에서 솔제니친은 우크라이나 기근이 인위적이고 국가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1921년-1922년 러시아 기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두 기근 모두 볼셰비키 부대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농민들로부터 수확물을 강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홀로도모르가 우크라이나인만을 희생시킨 집단 학살이라는 이론은 수십 년 후에 반러시아적인 극단적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신봉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서방 세계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오해 때문에 극단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위험성을 경고했다.[136]
솔제니친은 체첸 전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체첸에 침공한 것은 푸틴이 아니라, 다게스탄에 침공한 것은 마스하도프의 군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게스탄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 스타브로폴 지방도 포기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188]
3. 2. 러시아 정교회 신앙
1983년 5월, 고난의 운명을 견뎌낸 정교도로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런던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현대 비극의 원인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라며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현대 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했다.[181]영아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에는 독실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으나, 성장하면서 확신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의 고난과 내성을 거쳐 정교 신앙으로 회귀했다. 강제수용소 경험으로 인해 종교로 회귀한 사례는 솔제니친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빅토르 프랑클의 사례처럼, 그 회귀 방식도 일률적이지 않다.
솔제니친은 억울한 누명, 강제노동, 유형, 직업병, 국외 추방 등 인생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켰다.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금지된 소련에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1973년 3월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피멘 총대주교에게 공개 질문서를 보내, 무신론 국가에 지배되고 국가에 타협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체질을 비판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후에는 소련 시대 러시아 정교회가 혁명 정부에 대해 행한 타협을 “아첨했다”고 비판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 정교회가 격렬한 박해로 수만 명의 순교자와 희생자를 내고, 붕괴 시기, 굴욕, 빈곤, 약탈을 극복하고, 물질적인 궁핍에도 불구하고 소련 붕괴 후 부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으로부터 존경한다”고 칭찬했다. 현 상황에서 교회의 물질적인 궁핍을 고려하면, 신자는 단지 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무력함과 비천함을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181]
정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이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교회도 러시아 사회에서 마땅한 위치를 차지하고, 문제가 산적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정신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에 있는 다른 전통적인 종교와의 충돌을 초래하거나, 다종교, 다민족 국가의 일체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182]
또한, 정교회에 대한 언론의 편향 보도(네거티브 캠페인)를 “뻔뻔하다”고 비판했다.[183]
러시아인의 문화는 “제국의 강대함이 아니라, 다름 아닌 정교에 대한 신앙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고 했다. 러시아인의 단결 원천으로서 “인종이 아니라 정신”이며, 그것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러시아인의 “마음과 관습, 행동 속에 남아 있는 정교”라고 말했다. 인구, 영토, 국가 체제가 상실되어도 러시아인에게 언제까지나 남는 것은 “정교의 신앙”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고결한 감정”이라고 하며, 타락한 오늘날 러시아에서 정신적인 지주로서 정교를 자리매김했다.[184]
물질적인 면이나 교회 교육의 미회복 등 교회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우려했다. 한편, 주교·성직자 (정교회의 성직)을 둘러싼 엄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교회 제도는 더욱 발전하고 세련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교회가 혁명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정하면서, 전통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새로운 활동 방식을 찾는 제안을 했다.[185]
4. 주요 작품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ru, 1962) - 수용소 생활을 다룬 소설로, 솔제니친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 암 병동 (Раковый корпусru, 1968) - 암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린 소설이다.
- 수용소 군도 (Архипелаг ГУЛАГru, 1973) - 스탈린 시대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한 르포 문학이다.
- Communism: A Legacy of Terror|공산주의: 공포의 유산영어 (1975)
5. 유산 및 평가
솔제니친은 후기 정치 저술에서 새로운 러시아 민주주의의 과두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는 반대했다. 그는 극단적 민족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온건하고 자기 비판적인 애국심을 옹호했으며, 뉴잉글랜드의 타운 미팅과 스위스의 주(州)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지역 자치 정부를 촉구했다. 또한 전 소련의 "근접 해외 지역"에 있는 2,500만 명의 러시아계 주민들의 운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94]
솔제니친은 E. F. 슈마허의 사회경제 이론이 "사회가 정신을 되찾는 열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94] 1998년 러시아 최고 훈장인 성 안드레 훈장을 받는 것을 거부했는데, 그는 러시아를 극심한 곤경에 빠뜨린 정부로부터 상을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123] 2003년 인터뷰에서는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 매우 불행하고 어색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122]
2007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솔제니친은 1970년대에 그가 자주 이야기했던 "소비에트"와 "러시아"의 혼동이 서구, 옛 사회주의 국가 또는 옛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 그는 공산주의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의 쓰라린 페이지에 공산주의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123]
2008년 솔제니친은 푸틴을 칭찬하며 러시아가 러시아인이라는 의미를 재발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러시아가 직면한 과제를 맡을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라고 칭찬했다.[124]
워스터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센터는 작가를 홍보하고 그를 위한 공식 영어 웹사이트를 운영한다.[137]
1983년 10월, 프랑스 문학 기자 베르나르 피보는 미국 버몬트 주에 있는 솔제니친의 시골집에서 1시간짜리 텔레비전 인터뷰를 진행했다. 솔제니친은 자신의 글쓰기, 언어와 스타일의 변천, 가족,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의했으며, 생전에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138][139] 같은 해 초, 솔제니친은 영국 언론인 베르나르 레빈과 말콤 머거리지에 의해 각각 인터뷰를 받았다.[138]
1998년, 러시아 영화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4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베세디 스 솔제니치늠''(''솔제니친과의 대화'')을 제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솔제니친의 집에서 촬영되었으며, 그의 일상생활과 러시아 역사와 문학에 대한 그의 성찰을 보여준다.[140]
2009년 12월, 러시아 채널 ''로시야 K''는 장 크레푸와 니콜라스 밀레티치가 제작한 프랑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L'Histoire Secrète de l'Archipel du Goulag''(''굴라그 수용소의 비밀 역사'')[141]를 방영했다.[142] 이 다큐멘터리는 ''수용소 군도''의 창작과 출판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룬다.[141][143][144]
6. 한국과의 관계
솔제니친은 일본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1960년대 후반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야마가 소코의 철학에 공감하고 신도 켄진 감독의 영화 《나체의 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시베리아 억류 경험이 있는 우치무라 고우스케와 친분을 맺고 1970년대 TV아사히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남이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강연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귀국 후에는 NHK의 고바야시 카즈오 기자와 접촉했는데, 고바야시에 따르면 말년의 솔제니친은 텔레비전 출연료를 신경 썼다고 한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러시아 정부에 북방영토를 일본에 반환할 것을 주장했다.[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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