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적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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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행적 은혜는 기독교 신학에서 개종 이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며,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 발전시킨 개념이다. 이 개념은 로마 가톨릭교회, 알미니우스주의, 개혁주의 신학 등 다양한 신학적 입장에서 다르게 이해되며, 후속 은혜와 구분된다. 선행적 은혜는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중요한 주제였으며, 한국 개신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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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적 은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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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유형 | 기독교 신학적 개념 |
종교 | 기독교 |
신학적 관점 | |
강조점 | 하느님의 은총의 보편성, 인간 의지의 자유, 구원의 가능성 |
관련 교리 | 예정론, 인간의 자유 의지, 죄, 구원 |
논쟁점 | 은총과 자유 의지의 관계,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역할 |
주요 지지자 | 야고보 알미니우스, 존 웨슬리 |
반대자 | 장 칼뱅, 마르틴 루터 |
역사적 배경 | |
기원 | 17세기 초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 유래 |
발전 | 감리교 신학에서 중요한 위치 차지 |
현대적 해석 | 다양한 교파에서 은총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 |
주요 내용 | |
정의 |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보편적인 은총, 인간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선행적인 역사 |
역할 | 인간의 죄성을 깨닫게 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킴 |
효과 | 인간의 자유 의지를 회복시켜 하느님을 선택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함 |
신학적 의미 | |
인간의 존엄성 |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존중하며, 구원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 |
자유 의지 |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 |
하느님의 사랑 |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심 |
논쟁과 비판 | |
칼뱅주의 비판 | 선행적 은총은 하느님의 주권과 예정론을 약화시킨다고 비판 |
은총의 효과 | 선행적 은총이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한 논쟁 |
관련 성경 구절 | |
요한복음 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디도서 2:11 |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가 나타나 |
로마서 2:4 | 혹 네가 하느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
참고 문헌 | |
한국어 문헌 | 기독교 대백과사전 조직신학 개론 알미니안주의 신학 |
영어 문헌 | "Arminian Theology: Myths and Realities" by Roger E. Olson "Grace for All: The Arminian Dynamics of Salvation" by Clark Pinnock |
2. 정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암브로시우스(c. 339-c. 397)의 저작을 바탕으로 "선행적 은혜"(gratia praeveniensla, 문자적으로 "선행하는 은혜") 개념을 시작하고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영어 표현에서 "선행하는"을 의미하는 "prevenient"라는 단어의 고어 사용에서 유래했다. 선행적 은혜는 개종에 앞서 한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며, "소명" 또는 "부르심"의 개념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의도와 관련하여 선행적 은혜에 대한 이해에는 몇 가지 변형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에서는 믿음을 돕는 예비적 은혜로,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은혜로 본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개선하지 않고 구원 목적이 없는 공통 은혜와 하나님이 거부할 수 없도록 믿도록 부르시는 유효한 부르심 두 가지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은혜가 그 효과와 관련하여 고려될 때, 선행적 은혜는 후속 은혜와 구별된다. 후속 은혜의 본질은 신학적 결정론 또는 하나님의 섭리의 비결정론적 본질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다. 존 웨슬리는 후속 은혜의 두 가지 형태, 즉 칭의(구원의 은혜라고도 함)와 성화를 명명했으며, 이 두 가지는 저항할 수 있다. 반대로 칼뱅주의자들은 칭의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로 간주했다.
2. 1. 개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암브로시우스(c. 339-c. 397)의 저작을 바탕으로 "선행적 은혜"(gratia praeveniensla, 문자적으로 "선행하는 은혜") 개념을 시작하고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영어 표현에서 "선행하는"을 의미하는 "prevenient"라는 단어의 고어 사용에서 유래했다. 선행적 은혜는 개종에 앞서 한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며, "소명" 또는 "부르심"의 개념과 유사하다.하나님의 의도와 관련하여 선행적 은혜에 대한 이해에는 몇 가지 변형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에서는 믿음을 돕는 예비적 은혜로, 알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은혜로 본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개선하지 않고 구원 목적이 없는 공통 은혜와 하나님이 거부할 수 없도록 믿도록 부르시는 유효한 부르심 두 가지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은혜가 그 효과와 관련하여 고려될 때, 선행적 은혜는 후속 은혜와 구별된다. 후속 은혜의 본질은 신학적 결정론 또는 하나님의 섭리의 비결정론적 본질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다. 존 웨슬리는 후속 은혜의 두 가지 형태, 즉 칭의(구원의 은혜라고도 함)와 성화를 명명했으며, 이 두 가지는 저항할 수 있다. 반대로 칼뱅주의자들은 칭의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로 간주했다.
2. 2. 후속 은혜와의 관계
3. 역사
선행적 은혜(Gratia praeveniensla)라는 개념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응하여 선행적 은혜가 개종을 위해 인간의 의지를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암브로시우스 (c. 339–c. 397)에게 호소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행적 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암브로시우스의 일련의 인용문으로 응답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의 영적인 도움 없이 자유 의지를 "포로가 된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captivatumla)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은총의 영향을 통해 이 의지는 영적으로 "자유롭게 된 의지" 또는 문자 그대로 "해방된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liberatumla)가 된다. 선행적 은혜는 먼저 필수적인 영적 계몽을 부여한 다음, 믿을 수 있는 권능이 선택된 자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로 이어지는 은혜를 선택된 자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529년 오렌지 공의회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어거스틴의 교리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옹호할 것인지를 다루었다. 반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온건한 형태로, 구원의 첫 단계는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되며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공의회의 결정은 "반어거스틴주의"로 여겨질 수 있다. 공의회는 믿음이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이지만, 그 시작조차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마음을 밝히고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고 정의했다. 이는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믿음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하는 선행적 은혜의 작용을 설명한다. 반면에 오렌지 공의회는 예정설이 저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정죄했는데, 이는 어거스틴의 구원론에서 암시된 것이었다.
공의회의 규정은 선행적 은혜의 개념과 관련된 어거스틴의 저서를 직접 인용했다 (규정 1, 2, 5, 6, 7). 보니파시오 2세 (532년 사망)는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행적 은혜의 개념을 확인했다.
종교 개혁 이후, 선행적 은혜 개념은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원죄"(Original Sin),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감에 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양심에 대하여"(On Conscience),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Free Grace) 등에서 선행적 은혜를 강조했다. 케네스 J. 콜린스(Kenneth J. Collins)는 그의 저서 ''Wesley on Salvation: A Study in the Standard Sermons''(1989)에서 웨슬리의 선행적 은혜와 인간의 죄에 대한 관점을 분석했다. 도날 도르(Donal Dorr)는 ''Irish Theological Quarterly''에 기고한 "전적인 부패와 웨슬리안 전통: 선행적 은혜"(Total Corruption and the Wesleyan Tradition: Prevenient Grace)에서 웨슬리안 전통에서의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다. 레오 G. 콕스(Leo G. Cox)는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에 "선행적 은혜 - 웨슬리안 관점"(Prevenient Grace - A Wesleyan View)을 기고하여 웨슬리안 관점에서의 선행적 은혜를 설명했다. J. 케네스 그리더(J. Kenneth Grider)는 ''A Wesleyan-Holiness Theology''(1994)에서 은혜의 첫 번째 사역으로서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으며, 스티브 하퍼(Steve Harper)는 ''John Wesley's Message for Today''(1983)에서 시작하는 능력으로서의 선행적 은혜를 강조했다. 토마스 A. 랭포드(Thomas A. Langford)는 ''Practical Divinity: Theology in the Wesleyan Tradition''(1982)에서 웨슬리의 은혜 신학을 설명했고, 랜디 매독스(Randy Maddox)는 ''Responsible Grace: John Wesley's Practical Theology''(1994)에서 웨슬리의 실천 신학에서 나타나는 책임 있는 은혜를 다루었다. 토마스 제이 오드(Thomas Jay Oord)와 마이클 로달(Michael Lodahl)은 ''Relational Holiness: Responding to the Call of Love''(2005)에서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관계적 거룩함을 설명하면서 선행적 은혜를 언급했다. 토마스 오든은 ''John Wesley's Scriptural Christianity: A Plain Exposition of His Teaching on Christian Doctrine''(1994)에서 웨슬리의 가르침 중 은혜와 예정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다. ''The United Methodist Hymnal''(1989)에는 "선행적 은혜" 섹션에 337번부터 360번까지의 찬송가가 수록되어 있다.
3. 1. 기원
선행적 은혜(Gratia praeveniensla)라는 개념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응하여 선행적 은혜가 개종을 위해 인간의 의지를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가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암브로시우스 (c. 339–c. 397)에게 호소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행적 은혜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암브로시우스의 일련의 인용문으로 응답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의 영적인 도움 없이 자유 의지를 "포로가 된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captivatumla)라고 묘사했다.그러나 은총의 영향을 통해 이 의지는 영적으로 "자유롭게 된 의지" 또는 문자 그대로 "해방된 자유 의지"(liberum arbitrium liberatumla)가 된다. 선행적 은혜는 먼저 필수적인 영적 계몽을 부여한 다음, 믿을 수 있는 권능이 선택된 자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칭의로 이어지는 은혜를 선택된 자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3. 2. 발전
529년 오렌지 공의회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어거스틴의 교리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옹호할 것인지를 다루었다. 반펠라기우스주의는 펠라기우스주의의 온건한 형태로, 구원의 첫 단계는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되며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공의회의 결정은 "반어거스틴주의"로 여겨질 수 있다. 공의회는 믿음이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이지만, 그 시작조차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마음을 밝히고 믿음을 가능하게 한다고 정의했다. 이는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믿음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하는 선행적 은혜의 작용을 설명한다. 반면에 오렌지 공의회는 예정설이 저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정죄했는데, 이는 어거스틴의 구원론에서 암시된 것이었다.
공의회의 규정은 선행적 은혜의 개념과 관련된 어거스틴의 저서를 직접 인용했다 (규정 1, 2, 5, 6, 7). 보니파시오 2세 (532년 사망)는 아를의 카이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행적 은혜의 개념을 확인했다.
3. 3. 종교개혁 이후
종교 개혁 이후, 선행적 은혜 개념은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원죄"(Original Sin),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감에 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양심에 대하여"(On Conscience),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Free Grace) 등에서 선행적 은혜를 강조했다. 케네스 J. 콜린스(Kenneth J. Collins)는 그의 저서 ''Wesley on Salvation: A Study in the Standard Sermons''(1989)에서 웨슬리의 선행적 은혜와 인간의 죄에 대한 관점을 분석했다. 도날 도르(Donal Dorr)는 ''Irish Theological Quarterly''에 기고한 "전적인 부패와 웨슬리안 전통: 선행적 은혜"(Total Corruption and the Wesleyan Tradition: Prevenient Grace)에서 웨슬리안 전통에서의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다. 레오 G. 콕스(Leo G. Cox)는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에 "선행적 은혜 - 웨슬리안 관점"(Prevenient Grace - A Wesleyan View)을 기고하여 웨슬리안 관점에서의 선행적 은혜를 설명했다. J. 케네스 그리더(J. Kenneth Grider)는 ''A Wesleyan-Holiness Theology''(1994)에서 은혜의 첫 번째 사역으로서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으며, 스티브 하퍼(Steve Harper)는 ''John Wesley's Message for Today''(1983)에서 시작하는 능력으로서의 선행적 은혜를 강조했다. 토마스 A. 랭포드(Thomas A. Langford)는 ''Practical Divinity: Theology in the Wesleyan Tradition''(1982)에서 웨슬리의 은혜 신학을 설명했고, 랜디 매독스(Randy Maddox)는 ''Responsible Grace: John Wesley's Practical Theology''(1994)에서 웨슬리의 실천 신학에서 나타나는 책임 있는 은혜를 다루었다. 토마스 제이 오드(Thomas Jay Oord)와 마이클 로달(Michael Lodahl)은 ''Relational Holiness: Responding to the Call of Love''(2005)에서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관계적 거룩함을 설명하면서 선행적 은혜를 언급했다. 토마스 오든은 ''John Wesley's Scriptural Christianity: A Plain Exposition of His Teaching on Christian Doctrine''(1994)에서 웨슬리의 가르침 중 은혜와 예정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선행적 은혜를 다루었다. ''The United Methodist Hymnal''(1989)에는 "선행적 은혜" 섹션에 337번부터 360번까지의 찬송가가 수록되어 있다.4. 가톨릭 신학에서의 선행적 은혜
529년의 제2차 오렌지 공의회는 신앙이 자유로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을 계몽하고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서조차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고 진술했다.
제18조에 "은총은 어떤 공로에도 선행하지 않는다. 선행을 행한다면 보상이 주어지지만, 당연하지 않은 은총이 앞서 작용하여 선행을 행할 수 있게 한다[성 프로스페르]." 제23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뜻을 준비하셔서 선을 갈망하게 하신다고 언급한다. 제25조는 "모든 선행에 있어서, 우리 자신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믿음과 그분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시는데, 이는 우리 쪽의 선행 없이 이루어진다."
선행적 은총은 트리엔트 공의회 (1545–63) 제6차 회기의 다섯 번째 장에서 논의되었으며, "''a Dei per dominum Christum Iesum praeveniente gratia''"라는 구절을 사용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예비 은총"으로 번역된다.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다시 돌아서서 그 은총에 자유롭게 동의함으로써 의롭게 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는 "성령 없이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하기 시작할 때마다 선행적 은총을 통해 기도의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성령입니다."라고 설명한다.
5. 알미니안주의 신학에서의 선행적 은혜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는 전적 타락을 옹호했지만, 선행적 은혜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제안에 응답할 수 있게 한다고 믿었다. "은혜와 자유 의지에 관해, 나는 성경과 정통적인 합의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자유 의지는 은혜 없이는 어떤 참되고 영적인 선도 시작하거나 완성할 수 없다. [...] 이 은혜는 [''prævenit''] 앞서 가고, 동행하며, 뒤따른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하도록 자극하고, 돕고, 작용하며,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지 않도록 협력한다."
신학자 로버트 E. 피치릴리는 아르미니우스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아르미니우스가 '선행적 은혜'로 의미한 것은 실제 거듭남에 앞서서 나타나며, 궁극적으로 거부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거듭남으로 이끄는 은혜이다. 그는 이 '성령의 도움'이 "펠라기우스주의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할 만큼"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아르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일원론적 사역을 포함하는 "선행적" 또는 "선행하는" 은혜와 협력주의적 사역을 포함하는 "후속적" 또는 "따르는" 은혜를 구별했다.
존 웨슬리는 그의 설교 85번, "우리 자신의 구원을 실천함에 관하여"에서 "선행적 은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첫 번째 소망, 그분의 뜻에 대한 빛의 첫 번째 새벽, 그리고 그분께 죄를 지었다는 최초의 가볍고 일시적인 깨달음을 이끌어낸다"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원죄에 대한 믿음과 개신교의 교리인 오직 은혜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두 가지 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행적 은혜를 주장했다.
토마스 오든은 선행적 은혜를 "구원하는 은혜에 더 협력하도록 시작하게 하는 은혜이다. 의지에 은혜에 반응할 수 있는 회복된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롭고 점점 더 칭의를 위한 조건을 받는데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웨슬리안들은 일반적으로 선행적 은혜와 관련된 두 가지 형태의 부르심을 구별한다. 첫째는 성령이 양심에 비밀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편적 부르심이고, 둘째는 성경에 나타난 계시된 말씀에 의한 직접적인 부르심이다.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가 1563년에 채택한 39개 신조를 미국 감리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신조로 개정했다. 제8조는 연합 감리교회, 나사렛 교회, 불의 기둥 교회와 같은 많은 웨슬리안 또는 성결 운동 교파의 공식 교리이다. 그 내용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상태는 자신의 자연적인 힘과 행위로 하나님을 믿고 부르도록 자신을 돌이키고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의지를 갖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 좋은 의지를 가질 때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먼저 [앞서] 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기쁘고 받아들여질 좋은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이다.
유아 세례는 감리교에서 선행적 은혜를 기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감리교 찬송가에는 선행적 은혜에 관한 섹션이 있다. 찰스 웨슬리의 "오라, 죄인들아, 복음 잔치로"는 이 교리에 대해 쓰여진 가장 잘 알려진 찬송가 중 하나이며, "너희는 한 사람도 뒤에 남겨질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명하셨기 때문이라... 초청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라는 가사를 포함한다.
일부에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선행적 은혜 개념을 "보편적 능력 부여"라고 칭하며, 하나님이 모든 개인에게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선행적 은혜가 보편적으로 향하기보다는 개인에게 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이 "관계적 역학—상호 작용, 영향력과 반응, 관계적 움직임"에서 인간에게 미치는 성령의 능력 부여적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대인 간의 소통 및 영향력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왔다가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칼뱅주의자들은 이 은혜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구원의 결정적 요소는 인간의 의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자유 의지와 개인의 선택을 구원에 필요한 선행으로 보고, 따라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반박한다. 이는 구원의 제공, 즉 시작, 활성화 및 획득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각각 선행적 은혜, 칭의적 은혜, 중생적 은혜의 결과이다.
게다가, 그들은 칼뱅주의가 신적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성을 가르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더라도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 결과적으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선택은 선행이다. 따라서 칼뱅주의자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자유 의지적이든 반결정론적이든) 구원의 선택의 칭찬받을 만함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게다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구원의 제공을 받아들이는 자유 의지적 선택이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5. 1. 고전적 알미니안주의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는 전적 타락을 옹호했지만, 선행적 은혜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제안에 응답할 수 있게 한다고 믿었다. "은혜와 자유 의지에 관해, 나는 성경과 정통적인 합의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자유 의지는 은혜 없이는 어떤 참되고 영적인 선도 시작하거나 완성할 수 없다. [...] 이 은혜는 [''prævenit''] 앞서 가고, 동행하며, 뒤따른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하도록 자극하고, 돕고, 작용하며, 우리가 헛되이 의지하지 않도록 협력한다."신학자 로버트 E. 피치릴리는 아르미니우스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아르미니우스가 '선행적 은혜'로 의미한 것은 실제 거듭남에 앞서서 나타나며, 궁극적으로 거부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거듭남으로 이끄는 은혜이다. 그는 이 '성령의 도움'이 "펠라기우스주의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할 만큼"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아르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일원론적 사역을 포함하는 "선행적" 또는 "선행하는" 은혜와 협력주의적 사역을 포함하는 "후속적" 또는 "따르는" 은혜를 구별했다.
5. 2. 웨슬리안 알미니안주의
존 웨슬리는 그의 설교 85번, "우리 자신의 구원을 실천함에 관하여"에서 "선행적 은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첫 번째 소망, 그분의 뜻에 대한 빛의 첫 번째 새벽, 그리고 그분께 죄를 지었다는 최초의 가볍고 일시적인 깨달음을 이끌어낸다"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원죄에 대한 믿음과 개신교의 교리인 오직 은혜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두 가지 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행적 은혜를 주장했다.토마스 오든은 선행적 은혜를 "구원하는 은혜에 더 협력하도록 시작하게 하는 은혜이다. 의지에 은혜에 반응할 수 있는 회복된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롭고 점점 더 칭의를 위한 조건을 받는데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웨슬리안들은 일반적으로 선행적 은혜와 관련된 두 가지 형태의 부르심을 구별한다. 첫째는 성령이 양심에 비밀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편적 부르심이고, 둘째는 성경에 나타난 계시된 말씀에 의한 직접적인 부르심이다.
존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가 1563년에 채택한 39개 신조를 미국 감리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신조로 개정했다. 제8조는 연합 감리교회, 나사렛 교회, 불의 기둥 교회와 같은 많은 웨슬리안 또는 성결 운동 교파의 공식 교리이다. 그 내용은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상태는 자신의 자연적인 힘과 행위로 하나님을 믿고 부르도록 자신을 돌이키고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의지를 갖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 좋은 의지를 가질 때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먼저 [앞서] 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기쁘고 받아들여질 좋은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이다.
유아 세례는 감리교에서 선행적 은혜를 기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감리교 찬송가에는 선행적 은혜에 관한 섹션이 있다. 찰스 웨슬리의 "오라, 죄인들아, 복음 잔치로"는 이 교리에 대해 쓰여진 가장 잘 알려진 찬송가 중 하나이며, "너희는 한 사람도 뒤에 남겨질 필요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명하셨기 때문이라... 초청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라는 가사를 포함한다.
## 비판과 반론
일부에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선행적 은혜 개념을 "보편적 능력 부여"라고 칭하며, 하나님이 모든 개인에게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선행적 은혜가 보편적으로 향하기보다는 개인에게 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이 "관계적 역학—상호 작용, 영향력과 반응, 관계적 움직임"에서 인간에게 미치는 성령의 능력 부여적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대인 간의 소통 및 영향력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왔다가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칼뱅주의자들은 이 은혜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구원의 결정적 요소는 인간의 의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자유 의지와 개인의 선택을 구원에 필요한 선행으로 보고, 따라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반박한다. 이는 구원의 제공, 즉 시작, 활성화 및 획득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각각 선행적 은혜, 칭의적 은혜, 중생적 은혜의 결과이다.
게다가, 그들은 칼뱅주의가 신적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성을 가르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더라도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 결과적으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선택은 선행이다. 따라서 칼뱅주의자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자유 의지적이든 반결정론적이든) 구원의 선택의 칭찬받을 만함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게다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구원의 제공을 받아들이는 자유 의지적 선택이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5. 2. 1. 비판과 반론
일부에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선행적 은혜 개념을 "보편적 능력 부여"라고 칭하며, 하나님이 모든 개인에게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선행적 은혜가 보편적으로 향하기보다는 개인에게 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이 "관계적 역학—상호 작용, 영향력과 반응, 관계적 움직임"에서 인간에게 미치는 성령의 능력 부여적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대인 간의 소통 및 영향력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왔다가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칼뱅주의자들은 이 은혜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구원의 결정적 요소는 인간의 의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자유 의지와 개인의 선택을 구원에 필요한 선행으로 보고, 따라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반박한다. 이는 구원의 제공, 즉 시작, 활성화 및 획득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각각 선행적 은혜, 칭의적 은혜, 중생적 은혜의 결과이다.
게다가, 그들은 칼뱅주의가 신적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성을 가르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더라도 자발적으로 행동할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 결과적으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선택은 선행이다. 따라서 칼뱅주의자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자유 의지적이든 반결정론적이든) 구원의 선택의 칭찬받을 만함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게다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구원의 제공을 받아들이는 자유 의지적 선택이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6. 개혁주의 신학에서의 선행적 은혜
칼뱅주의 신자들은 그들만의 선행적 은혜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유효한 소명과 동일시되며, 즉시 필연적으로 믿음이 따른다. 이러한 선행적 은혜의 분배 이후 구원의 필연성 때문에, 칭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은혜라고 불린다.
칼뱅주의 형태의 선행적 은혜는 또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인 자비를 보이시고, 죄를 억제하시며, 인류에게 하나님과 그들의 죄인됨, 그리고 죄로부터의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지식을 주시는 일반 은총과 관련이 있다. 이 은혜는 구원의 목적이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핑계를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 은총은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결정적인 배교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문제에 대해, 존 칼빈(John Calvin)은 불신자들에게 나타났다가 잠시 동안만 작용하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은혜(때로는 "소멸하는 은혜"라고 불림)의 개념을 공식화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성령은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은혜와 구별할 수 없는 효력을 창출하여, 또한 보이는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 일시적인 은혜는 또한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존 오웬(John Owen), A. W. 핑크(A. W. Pink), 그리고 로레인 보에트너(Loraine Boettner)와 같은 후기 칼뱅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칼빈은 겉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릴 수 있지만, 결국 불경건하게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은 불신자들에게도 열등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6. 1. 일반 은총
칼뱅주의 신학은 유효한 소명과 동일시되는 선행적 은혜 교리를 제시하며, 이는 즉각적인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은혜라고 불리는데, 이는 구원의 필연성 때문이다.칼뱅주의의 선행적 은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일반 은총과 관련이 있다. 일반 은총은 죄를 억제하고 인류에게 하나님과 죄, 그리고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이 은혜는 구원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없앤다. 일반 은총은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듯 보이지만 결국 배교하는 이들을 설명한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일시적인 은혜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불신자들에게 나타나 잠시 작용하다 사라지는 은혜를 말한다. 칼빈에 따르면, 성령은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은혜와 구별할 수 없는 효력을 창출하여 겉으로 보이는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이다. 이러한 일시적인 은혜 개념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존 오웬(John Owen), A. W. 핑크(A. W. Pink), 로레인 보에트너(Loraine Boettner)와 같은 후기 칼뱅주의 신학자들도 지지했다.
6. 2. 유효한 부르심 (거부할 수 없는 은혜)
칼뱅주의 신자들은 선행적 은혜를 유효한 소명과 동일시하며, 이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은혜라고 불리는데, 이는 구원의 필연성 때문이다. 칼뱅주의에서 선행적 은혜는 일반 은총과 관련이 있다. 일반 은총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죄를 억제하며, 하나님과 죄,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지식을 주는 것이다. 이 은혜는 구원 목적은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일반 은총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배교하는 사람들을 설명한다. 존 칼빈은 일시적인 은혜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불신자들에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은혜다. 칼빈에 따르면, 불신자들은 일시적인 은혜로 인해 택함 받은 자들과 유사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성령은 불신자들에게도 열등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칼빈은 겉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릴 수 있지만, 결국 불경건하게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은혜는 테오도르 베자, 윌리엄 퍼킨스, 존 오웬, A. W. 핑크, 로레인 보에트너와 같은 후기 칼뱅주의 신학자들도 지지했다.
6. 3. 일시적 은혜
6. 3. 1. 비판과 반론
칼뱅주의의 일반 은총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만들지만, 비(非) 칼뱅주의자들은 이것이 그들에게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은총이 배교의 외형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작용한다는 점에 관해, 비(非) 칼뱅주의자들은 이것이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에 반한다고 여긴다. 비(非) 칼뱅주의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시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일시적인 신자들을 속여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동료 신자들이) 진실한 신자이며 한때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만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이것은 자신을 진실과 신실함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반한다. 또한, 그리스도인 신자들이 삶 속에서 구원의 진정한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본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점은 이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깨달음을 받는 사람들이 한동안 진실로 선택받은 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희망에 속고 있다. 이 끔찍한 가능성은 구원의 확신과 확실성으로 고심하는 칼뱅주의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다.7. 한국 개신교에 미친 영향
참조
[1]
서적
The Later Christian Fathers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2]
간행물
Council of Trent, session 6, chapter 5
http://www.thecou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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