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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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톤헨지는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위치한 선사 시대 유적으로,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에 여러 단계에 걸쳐 건설되었다. 셰일, 블루스톤, 사암 등으로 구성된 스톤헨지는 원형 제방, 해자, 오브리 구멍, 힐 스톤, 사암 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문학적, 종교적, 의례적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 방법과 용도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며, 20세기 이후에는 네오드루이드교 등 신이교주의자들의 종교적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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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톤헨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위치 정보 | |
| 위치 | 잉글랜드 윌트셔주 | 
| 지역 | 솔즈베리 평원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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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류 | 기념물 | 
| 재료 | 사르센, 청석 | 
| 건설 시기 |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 | 
| 높이 | 각 입석은 약 13피트 높이 | 
| 소유권 | 영국 왕실 | 
| 관리 | 잉글리시 헤리티지 | 
| 공개 여부 | 공개 | 
| 웹사이트 | 스톤헨지 공식 웹사이트 | 
| 유산 정보 | |
| 세계 유산 지정 | 1986년 (제10차 회의) | 
| 세계 유산 번호 | 373 | 
| 세계 유산 기준 | i, ii, iii | 
| 세계 유산 종류 | 문화유산 | 
| 세계 유산 일부 |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및 관련 유적 | 
| 세계 유산 지역 | 유럽 및 북미 | 
| 지정 문화재 | 스톤헨지, 애비뉴, 그리고 카운티스 농장에 있는 원형 고분 묘지의 일부를 형성하는 애비뉴에 인접한 세 개의 고분 | 
| 지정 문화재 지정일 | 1882년 8월 18일 | 
| 지정 문화재 번호 | 1010140 | 
| 추가 정보 | |
| 건설 시기 상세 정보 | 기원전 2800년~기원전 2200년, 기원전 2100년, 기원전 2000년~기원전 1100년 | 
| 건설 문화 | 윈드밀힐 문화인, 비커 문화인, 에식스 문화인 | 
| 발굴 | 여러 차례 | 
| 발굴자 | 불명 | 
| 상태 | 양호 | 
2. 유적 구조
스톤헨지는 셰일 서클, 블루스톤 서클, 사르센석 서클로 구성되어 있다. 셰일 서클은 30개의 셰일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돌을 가로로 눕혀 원형으로 배치한 것이다. 안쪽의 블루스톤 서클은 크기가 작고 모양도 불규칙하며, 중앙에는 제단처럼 보이는 블루스톤(청회색 사암, 휘록암, 유문암)이 있다. 사용된 석재는 셰일과 블루스톤, 사르센석(잉글랜드 중남부에 산재하는 사암)으로, 각각 바깥쪽 원과 안쪽 원을 구성하고 있다.[12] 
스톤헨지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2000년경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건설되었다.[206] 최소 1500년에 걸쳐 여러 건설 단계를 거쳤으며, 기념물 주변에서 대규모 건설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있어 이 지역의 역사를 6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셰일 서클 바깥에는 Y홀, Z홀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원을 그리듯 파여 있다. 그 바깥쪽에는 오브리 홀이라는 56개의 구덩이들이 파여 있으며, 그 뒤로는 두 개의 입석이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 셰일 서클 바깥에는 힐스톤이라는 돌이 혼자 서있고, 이 돌과 셰일 서클 사이에는 도살석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들은 모두 태양의 빛과 관련하여 일직선으로 놓여 있어, 해시계였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묘지일 가능성도 있다.[10]
3. 건립 시기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더링턴 월스를 중심으로 한 스톤헨지 강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스톤헨지는 그 존재 초기부터 매장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10]
스톤헨지 유적은 2000년에 걸쳐 여러 단계로 건설되었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다양한 활동 단계의 연대 측정과 이해는 지층 교란에 의한 자연 백악의 페리글래셜 영향과 동물의 굴 파기, 초기 발굴 기록의 질이 낮음, 그리고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연대가 부족하여 복잡하다.
3. 1. 스톤헨지 1 (기원전 3100년경)
최초의 기념물은 직경 약 110m의 울타리로, 후기 백악기(산토니절) 시대의 시포드 백악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제방과 해자로 구성되었다. 북동쪽에는 큰 입구가, 남쪽에는 작은 입구가 있었다. 이 기념물은 약간 경사진 곳의 열린 초원에 세워졌다.[79] 건설자들은 해자 바닥에 사슴과 소의 뼈와 함께 일부 가공된 규암 도구들을 놓았다. 뼈들은 해자를 파는 데 사용된 뿔 찍개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었고, 뼈를 매장한 사람들은 매장 전에 꽤 오랫동안 뼈들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자는 연속적이었지만, 이 지역의 초기 도로 울타리와 마찬가지로 구역으로 나뉘어 파였다. 해자에서 파낸 백악은 제방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 이 1단계는 기원전 31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후 해자는 자연적으로 퇴적되기 시작했다. 울타리 안쪽 가장자리에는 직경 약 1m인 56개의 구덩이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17세기 골동품 수집가인 존 오브리(John Aubrey)의 이름을 따서 오브리 구멍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구멍들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으로 여겨진다.[22] 이 구덩이들과 제방, 해자는 함께 울타리 또는 문 해자로 알려져 있다.[22] 이 구덩이들에는 목재 원형을 만드는 기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발굴 증거는 없다. 최근 발굴 조사 결과 오브리 구멍이 원래는 블루스톤 원형을 세우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23]
3. 2. 스톤헨지 2 (기원전 2900년경)
마이크 파커 피어슨이 이끄는 스톤헨지 강가 프로젝트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초기부터 매장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0] 기원전 3천년기 초, 울타리 안에 목조 구조물이 건설되었음을 시사하는 많은 포스트홀(post hole)들이 발견되었다. 북동쪽 입구에는 추가적인 기둥들이 세워졌고, 남쪽 입구로부터는 평행하게 기둥들이 안쪽으로 뻗어 있었다. 이 포스트홀들은 오브리홀(Aubrey Holes)보다 직경이 약 0.4m 정도로 더 작고, 훨씬 불규칙하게 배치되었다. 성벽은 의도적으로 높이가 낮춰졌고, 해자는 계속해서 퇴적되었다.
오브리홀 중 최소 25개에는 기념물 건설 후 2세기 동안 이루어진 후기의 침입적인 화장 매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멍들의 초기 기능이 무엇이었든, 두 번째 단계 동안 장례 기능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30개의 추가적인 화장 매장이 울타리의 해자와 기념물 내 다른 지점들, 주로 동쪽 절반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스톤헨지는 이 시기에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장 매장지로 기능했던 것으로 해석되며,[28] 영국 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 매장지로 여겨진다. 해자 매립토에서 불에 타지 않은 인간 뼈 조각들도 발견되었다. 이 단계의 특징과 관련하여 발견된 후기 신석기 시대의 홈이 있는 토기가 연대 측정의 근거를 제공한다.
3. 3. 스톤헨지 3 (기원전 2600년경 ~ 기원전 1600년경)
스톤헨지는 최소 1500년에 걸쳐 여러 건설 단계를 거쳤다. 기념물 주변에서 대규모 건설이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의 역사를 6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양한 활동 단계의 연대 측정과 이해는 지층 교란에 의한 자연 백악의 페리글래셜 영향과 동물의 굴 파기, 초기 발굴 기록의 질이 낮음, 그리고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연대가 부족하여 복잡하다.
고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스톤헨지 3기의 현대적인 단계 구분은 다음과 같다.
각 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3. 3. 1. 스톤헨지 3 I (기원전 2600년경)
기원전 2600년경, 건설자들은 목재 사용을 중단하고 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적지 중앙에는 두 개의 동심원형 구멍 배열(Q 및 R 구멍)이 파였다. 이 구멍들에는 최대 80개의 입석(세워진 돌)이 있었지만, 현재는 43개만 확인할 수 있다. 블루스톤(그중 일부는 화성암인 돌레라이트로 만들어짐)은 웨일스의 프레셀리 언덕에서 약 241.40km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29] 그러나 남중부 영국 내에 빙하 퇴적의 증거는 없다.[30]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웨일스의 채석장에서 거석 채석의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블루스톤이 인간에 의해 채석되었고 빙하 작용에 의해 운반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31]
크리미히 근처 프레셀리의 크레이그 로스-이-펠린에서 거석 블루스톤 채석장이 발견되면서 장거리 인간 수송 이론이 뒷받침되었다.[30] 다른 입석은 나중에 문설주로 사용된 작은 사암(사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약 2톤 무게의 이 돌들은 기둥과 직사각형 기둥 골조를 사용하여 들어 올려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셀리 근처 와운 몬에 110m 돌 원형이 있었고, 이곳에는 스톤헨지의 돌 일부 또는 전부가 있었을 수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스톤헨지 블루스톤의 특이한 횡단면과 일치하는 바위 구멍이 포함되어 있다.[32] 각 석주는 높이 약 2m, 너비 약 1m 에서 1.5m, 두께 약 0.8m이다.
제단석은 세니층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프레셀리 언덕에서 동쪽으로 약 80.47km 떨어진 브레컨 비컨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30] 2024년 커틴 대학교 연구팀은 제단석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 파편의 화학적 조성을 분석하고 연대 측정한 결과, 오카디안 분지의 암석과 가장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33] 연구원들은 이것이 돌이 약 약 692.02km 운반되었음을 의미하며, 남부 영국과 북부 스코틀랜드 사이의 문화적 연관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33]
이 시기에 북동쪽 입구가 넓어졌고, 그 결과 하지 동쪽 해돋이와 동지 서쪽 해넘이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념물의 이 단계는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작은 입석들은 제거되었고 Q와 R 구멍은 의도적으로 메워졌다.
힐 스톤은 제3기 사암으로, 북동쪽 입구 외부에 세워졌을 수도 있다. 정확한 연대 측정이 불가능하며 3단계 중 언제든지 설치되었을 수 있다. 처음에는 두 번째 돌이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북동쪽 입구 안쪽에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큰 현관 돌이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인 무너진 슬로터 스톤만 4.9m 길이로 남아 있다. 3단계로 대략 연대 측정되는 다른 특징에는 네 개의 스테이션 스톤이 있으며, 그중 두 개는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언덕은 무덤이 없지만 "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스톤헨지 거리는 두 개의 평행한 도랑과 제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3.22km 에번 강으로 이어진다.
3. 3. 2. 스톤헨지 3 II (기원전 2600년 ~ 기원전 2400년)
기원전 2600년경, 건설자들은 목재 대신 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적지 중앙에 두 개의 동심원 형태의 구멍(Q홀과 R홀)을 파서 블루스톤을 세웠다. 이 돌들은 웨일스의 프레셀리 언덕에서 약 약 241.40km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29] 그러나 남부 영국 내에 빙하 퇴적의 증거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30] 2019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웨일스 채석장에서 거석 채석의 증거가 발견되어, 블루스톤이 인간에 의해 채석 및 운반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31]
2011년, 크리미히 근처 크레이그 로스-이-펠린에서 블루스톤 채석장이 발견되면서, 장거리 운반설이 더욱 뒷받침되었다.[30] 다른 입석은 사암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약 2톤 무게의 돌들은 기둥과 직사각형 기둥을 이용해 들어 올려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셀리 근처 와운 몬에는 110m 돌 원형이 있었는데, 스톤헨지의 돌 일부가 이곳에서 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32] 각 석주는 높이 약 2m, 너비 1m에서 1.5m, 두께 약 0.8m이다.
제단석은 세니층에서 유래한 것으로, 브레컨 비컨스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30] 2024년 커틴 대학교 연구팀은 제단석 파편의 화학적 조성을 분석하여, 오카디안 분지의 암석과 가장 일치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돌이 약 약 692.02km 운반되었음을 의미하며, 남부 영국과 북부 스코틀랜드 간 문화적 연관성을 보여준다.[33]
이 시기에 북동쪽 입구가 넓어져, 하지 일출과 동지 일몰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단계는 미완성으로, 작은 입석들은 제거되고 Q와 R 구멍은 메워졌다.
힐 스톤은 제3기 사암으로, 이 시기 또는 스톤헨지 3단계 중 언제든지 설치되었을 수 있다. 처음에는 두 번째 돌이 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북동쪽 입구 안쪽에는 현관 돌이 세워졌는데, 현재는 슬로터 스톤만 남아있다. 스톤헨지 3단계로 추정되는 다른 특징에는 네 개의 스테이션 스톤이 있으며, 그중 두 개는 언덕 위에 있었다. 스톤헨지 거리는 에번 강으로 이어진다.
후대 청동기 시대에는 청석들이 재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외곽 사암 원 안에 놓여졌고, 목재 가공 스타일의 절단이 있어, 더 큰 구조물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20년, 브라이턴 대학교 연구팀은 거대한 사암들이 웨스트 우즈에서 발견된 사암들과 화학적으로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89] 1958년에 채취된 코어 샘플 분석 결과, 52개의 거석 중 50개가 웨스트 우즈의 사암과 일치했다.[89][90][91]
2017년과 2018년, 마이크 파커 피어슨 교수팀은 와운 몬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 이 유적지가 스톤헨지의 원래 블루스톤 원과 같은 크기의 110m 지름의 돌 원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지(midsummer solstice)를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92][93]
와운 몬의 원형에는 오각형 모양의 돌 하나가 빠진 구멍이 있었는데, 이는 스톤헨지의 오각형 돌과 매우 흡사하다.[92][93] 광여기 루미네선스를 통한 발광 연대 측정은 와운 몬의 없는 돌들이 기원전 3400~3200년경에 세워졌고, 300~400년 후에 제거되었음을 시사한다.[92][93] 이는 같은 돌들이 스톤헨지에서 옮겨져 사용된 후, 나중에 현재 위치로 재정비되고, 사암이 추가되었다는 이론과 일치한다.[92][93]
파커 피어슨 팀의 2021년 추가 연구에 따르면 와운 몬 원형은 완성되지 않았으며, 제거된 돌은 13개 이하라고 결론지었다.[94]
2021년 2월,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근처 고속도로 터널 발굴 작업 중 "엄청난 양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175] 발견된 유물에는 청동기시대 무덤, 신석기시대 토기, C자형 울타리 등이 포함된다.[95]
2022년 1월,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주변 현장 조사에서 수천 개의 선사 시대 구덩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1만 년 전 것이었고 사냥 도구가 포함되어 있었다.[96][97]
2024년 8월, 네이처(Nature)지는 호주 커틴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제단석의 기원이 약 700km 떨어진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오카디안 분지에서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98]
기원전 3천년기 말, 약 40km 북쪽 말버러 다운즈 채석장에서 운반된 30개의 거대한 사암이 등장한다. 이 돌들은 30개가 지름 33m 원형으로 세워지고, 그 위에 30개의 가로돌이 놓였다. 가로돌은 장부 맞춤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각 세로돌은 높이 약 4.1m, 너비 2.1m, 무게 약 25톤이다. 돌 원형 내측에 면한 측면은 외측보다 매끄럽게 가공되었다. 가로돌 상단은 지표면으로부터 4.9m 높이에 있다.
원형 내측에는 가공된 사암으로 만든 5개의 트릴리톤이 말굽 모양으로 배치되었다. 이 거석들은 10개가 세로돌, 5개가 가로돌인데, 각각 무게가 50톤에 달하며, 복잡한 연결 구조로 쌓여 있다. 가장 작은 것은 높이 약 6m, 가장 큰 것은 높이 7.3m이다.
스톤 53 표면에는 단검과 14개의 도끼날 그림이 새겨져 있다. 최신 레이저 스캔에 의해 이 해석이 뒷받침되었다. 이 시기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해 기원전 2440년부터 21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에임즈베리의 궁수는 이 단계의 유적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3. 3. 3. 스톤헨지 3 III (기원전 2400년 ~ 기원전 2280년)
이 단계에서 블루스톤의 재배치가 더 진행되었다. 블루스톤들은 사르센석 두 개의 원형 사이에 원형으로, 그리고 안쪽 원형의 중앙에 타원형으로 배치되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블루스톤들 중 일부가 웨일스에서 가져온 두 번째 그룹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돌들은 스톤헨지 3단계 III에서 추론된 연결된 상인방 없이 간격을 두고 세워졌다. 제단석은 이 시기에 타원형 내부에서 이동되어 수직으로 재건립되었을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인상적인 작업 단계로 보일 수 있지만, 스톤헨지 3단계 IV는 바로 이전 단계에 비해 다소 조잡하게 건설되었는데, 새로 설치된 블루스톤들이 잘 고정되지 않아 쓰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0]
3. 3. 4. 스톤헨지 3 IV (기원전 2280년 ~ 기원전 1930년)
블루스톤은 청동기 시대 후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듬어진 것 같다. 일부 돌에는 거대한 사암(sarsen)과 마찬가지로 통나무를 가공하는 기법으로 자른 흔적이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 블루스톤이 옆돌과 연결되어 더 큰 구조물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음을 시사한다.[206]
이 시기에는 블루스톤이 다시 재배치되어 두 개의 큰 사암 사이의 원형 배열 안과, 원형 배열 중앙의 타원형 안에 놓였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의 일부 블루스톤이 웨일스산의 또 다른 그룹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돌이 스톤헨지 3iii에서 가져온 횡석(橫石)과 연결되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졌다. 제단석이 타원형에서 제거되어 수직으로 세워졌을 가능성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설 단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스톤헨지 3iv는 오히려 그 이전 단계보다 조잡한 형태이며, 새로 세운 블루스톤이 모두 제대로 설치된 것도 아니고, 차례로 무너졌다. 그러나 이 단계 이후에는 소규모 재건축만 이루어졌다. 스톤헨지 3iv는 기원전 2280년부터 1930년까지의 시기이다.[206]
3. 3. 5. 스톤헨지 3 V (기원전 1930년 ~ 기원전 1600년)
블루스톤 원형의 북동쪽 부분을 제거하여 말굽 모양 구조를 만들었는데, 이를 블루스톤 말굽이라고 한다. 이는 중앙에 있는 거대한 사암 트릴리톤의 배열을 모방한 것으로, 기원전 2270년부터 1930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는 노퍽의 시헨지와 동시대의 유적이다.[206]
3. 3. 6. 스톤헨지 3 VI (기원전 1600년경)
가장 바깥쪽의 큰 사암(砂岩) 원형 배열 바깥쪽에 두 개의 구덩이 원형 배열이 더 파여졌다. 이것은 Y홀과 Z홀(11, 12)이라고 불린다.[206] Z홀은 큰 사암 원형 배열보다 2m 바깥쪽에, Y홀은 그보다 더 8m 바깥쪽에 있다. 이들은 각각 30개의 구덩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구덩이는 사암 원형 배열에 있는 돌과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덩이에는 돌이 놓이지 않았지만, 그 후 수 세기 동안 자연적으로 메워졌다. 구덩이를 메운 흙 위쪽 부분은 철기시대(鉄器時代)와 로마 시대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스톤헨지에 있는 유적은 기원전 1600년경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206]
4. 스톤헨지의 기능과 건설
스톤헨지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되어 논쟁 중이다. 거대한 삼석기둥, 중앙의 말굽형 배열, 힐스톤, 제방으로 둘러싸인 길 등은 동지 해넘이와 하지 해돋이에 맞춰 정렬되어 있다.[45][46] 이러한 배치는 기념물 설계에 천문 관측 기능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일식, 동지, 춘분 등 중요한 천체 현상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48] 발굴된 동물 뼈는 사람들이 겨울에 이곳에 모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49]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스톤헨지 강가 프로젝트에서 스톤헨지가 매장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3천년대 중반 전성기까지 매장지였으며, 화장 매장은 기념물 사용의 후기 시대의 많은 매장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10] 1960년대 제럴드 호킨스는 스톤헨지가 56년 주기로 태양과 달을 관측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주장했다.[48]
제프리 와인라이트와 티모시 다빌은 스톤헨지가 치유의 장소였다고 주장하며, 루르드와 같은 곳이었다고 보았다.[52] 이들은 이 지역의 많은 매장과 무덤에서 외상 변형의 증거가 발견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조상 숭배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53] 동위원소 분석 결과 매장된 사람들 중 일부는 지중해나 독일 알프스 산기슭 등 다른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54]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스톤헨지가 의례적 풍경의 일부였으며, 더링턴 월스와 연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링턴 월스 헨지 주변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소였고, 스톤헨지는 죽은 자들의 영역이었다고 보았다. 에이번 강을 따라 스톤헨지에 이르는 여정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의례적 통과의 일부였으며, 조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41] 셰필드 대학교 연구팀은 스톤헨지가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건설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건설 당시 영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문화적 통합 시기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44][55]
스톤헨지에는 블루스톤과 사르센이 사용되었다. 블루스톤은 현무암, 응회암, 유문암, 사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레셀리 힐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30]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사르센은 웨스트 우즈에서 유래했다.[34] 런던 왕립 예술 대학 연구원들은 블루스톤이 "비정상적인 음향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돌을 치면 "큰 쨍그랑 소리"가 나는데, 이러한 특성을 가진 암석은 프레셀리의 카른 멜린 산맥에서 자주 발견된다. 마엔클로초그는 18세기까지 지역 블루스톤을 교회 종으로 사용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음향 특성이 블루스톤이 먼 거리를 운반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에는 주요 기술적 업적으로 여겨졌으며, 울리는 돌은 신비로운 힘이나 치유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고, 스톤헨지는 의식과 관련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울리는 돌"의 존재는 스톤헨지가 "치유의 장소"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56]
4. 1. 건설 기술
스톤헨지 건설에는 신석기 시대의 기본적인 기술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돌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삼각대와 같이 기본적인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50]돌을 운반하는 방법으로는 통나무를 굴려 길을 만들거나, 동물성 지방을 바른 썰매를 사용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었다.[51] 1995년에는 스톤헨지 근처에서 40톤의 돌판을 실은 썰매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 28.97km를 끌고 가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웨일스에서 스톤헨지까지 육로와 해로를 통해 큰 돌을 운반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육로에서는 자원자들이 나무 썰매를 끌었지만, 해상에서는 배에 실은 돌이 브리스틀 해협의 파도에 침몰하기도 했다.
돌을 세우는 방법으로는 나무 A자형 지지대를 세우고 밧줄을 이용해 끌어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돌은 나무 플랫폼에 실어 단계적으로 들어 올린 후 옆으로 미끄러뜨리거나 경사면을 따라 밀어 올렸을 것이다. 돌에는 홈과 촉, 장부 맞춤과 같은 정교한 목공 기술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목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50]
알렉산더 솜은 스톤헨지가 메갈리스 야드(megalithic yard)라는 단위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건설되었다고 주장했다.
큰 사암에 새겨진 무늬는 브리튼 제도의 거석 예술에서는 이례적인 것으로, 추상적인 디자인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말굽 모양으로 돌을 배치하는 것 또한 다른 문명에서는 원형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도끼 모티브는 당시 브리타니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으므로, 스톤헨지 건설의 최소 두 단계는 대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들은 스톤헨지가 이질적인 디자인을 가지게 된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하지만, 전반적으로 스톤헨지는 어떤 선사 시대 유럽 문명의 맥락에서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스톤헨지 건설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톤헨지 1은 약 11,000인시(460인일), 스톤헨지 2는 360,000인시(15,000인일 또는 41인년), 스톤헨지 3의 다양한 부분에는 1,750만 인시(73,000인일 또는 200인년)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가공하는 데는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했음에도 약 2,000만 인시(830,000인일 또는 2,300인년)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건축물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전된 사회 조직이 필요했을 것이다.
5. 스톤헨지 관련 이론
스톤헨지는 선사 시대 유적이므로,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따라서 스톤헨지의 기능, 건설 방법, 건설 주체 등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존재한다.[44]
스톤헨지의 거대한 삼석기둥, 중앙의 다섯 삼석기둥의 말굽형 배열, 힐스톤, 제방으로 둘러싸인 길은 겨울 동지의 해넘이와 여름 동지의 해돋이에 정렬되어 있다.[45][46] 이는 우연이 아니라, 자연 지형이 이 선을 따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으며, 건설에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47] 일식, 동지, 춘분 등 천체 현상을 예측하는 천문 관측소 기능을 했다는 추측도 있다.[48] 발굴된 동물 뼈는 겨울에 사람들이 모였음을 시사한다.[49]
스톤헨지 건설에는 삼각대 같은 기본적인 신석기 시대 기술이 사용되었을 것이다.[50] 돌을 옮기는 방법으로는 통나무 굴림, 동물성 지방을 바른 썰매 이용 등이 거론된다.[51] 1995년에는 40톤 돌판을 실은 썰매를 100여 명이 약 28.97km 동안 미는 실험이 성공했다.[51]
런던 고고학회장 제프리 와인라이트와 번머스 대학교 티모시 다빌은 스톤헨지가 치유 장소였을 것이라 제안했다.[52] 이들은 이 지역 무덤에서 발견되는 외상 변형 증거를 근거로 들었다.[53] 동위원소 분석 결과, 기원전 1550년경 십대 소년은 지중해 근처, 기원전 2300년 금속 세공인 "에임즈베리 궁수"는 독일 알프스 산기슭, "보스콤 궁수들"은 웨일스나 프랑스 브르타뉴 출신으로 추정된다.[54]
셰필드 대학교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스톤헨지가 의례적 풍경의 일부로, 에이번 강을 통해 더링턴 월스와 연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더링턴 월스는 산 자, 스톤헨지는 죽은 자의 영역이며, 에이번 강을 따라 스톤헨지로 가는 여정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의례적 통과이자 조상 숭배 의식이었다.[41] 그는 스톤헨지가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건설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44][55]
스톤헨지에는 블루스톤과 사르센이 사용되었다. 블루스톤은 현무암, 응회암 등으로, 약 약 225.31km 떨어진 남서 웨일스 프레셀리 힐스에서 왔다.[30] 사암 제단석은 동웨일스, 사르센은 약 25.75km 떨어진 웨스트 우즈에서 유래했다.[34]
런던 왕립 예술 대학 연구원들은 블루스톤이 "큰 쨍그랑 소리"를 내는 음향 특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마엔클로초그는 18세기까지 블루스톤을 교회 종으로 사용했다. 이는 "치유 장소" 가설을 뒷받침한다.[56]
기원전 3300~1500년 사이 곡물 재배가 쇠퇴하고 목축 중심 생계 방식으로 회귀했다. 스톤헨지 건설은 농업 증거가 불확실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포버티 포인트,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도 유사하다.[57]
DNA 연구 결과, 스톤헨지 I, II 건설자는 초기 유럽 농경민 75%, 서유럽 사냥 채집인 25% 유전자를 가졌다. 이들은 이베리아를 거쳐 기원전 4000년경 영국에 왔다. 다뉴브 강 이동 집단 기여는 미미했다.[59] 농업 기술은 아나톨리아에서 유래했다.[59]
스톤헨지 3기(기원전 2600~2400년) 건설 시기, 종형컵 문화인이 왔다.[60] 500년간 공존하며 환형 구조물을 신앙에 통합했을 것이다.[60]
스톤헨지가 여성 성기, 힐스톤이 남근 형태라는 주장, UFO 목격과 연관된 외계인 착륙 지점 설도 있다.
뉴에이지, 네오 페건 신앙은 신성한 장소로 보지만, 고고학 유적 등으로 보는 주류 관점과 대립한다.
5. 1. 초기 해석
초기에는 스톤헨지가 초자연적인 힘이나 외계인의 개입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마법사 머린이 거인들을 부려 만들었다거나, 머린이 아일랜드의 킬라로우 산(Mount Callan)에서 마법으로 옮겨왔다는 전설,[206] 악마가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1130년경 헌팅턴의 헨리(Henry of Huntingdon)가 스톤헨지에 대해 처음 언급했고, 그 직후 제프리 가우프리(Geoffrey of Monmouth)가 아서왕과 관련짓는 허구의 기록을 남기면서 스톤헨지는 중세 유럽의 로맨스에 편입되었다.1615년, 이니고 존스는 스톤헨지가 카엘루스(그리스의 천왕신 우라노스의 라틴어 이름)에게 바쳐진 로마의 신전이며, 토스카나 양식 건축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후대의 주석가들은 데인족이 건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세기 말까지 스톤헨지는 앵글로색슨족 등 비교적 새로운 민족이 만든 것으로 널리 여겨졌다.
존 오브리는 1640년경 스톤헨지를 조사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스톤헨지의 측량도를 남겼고, 오브리 홀 등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이 측량도 덕분에 스톤헨지의 형태와 크기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졌고, 돌의 배치가 천문학적 또는 역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브리는 스톤헨지를 드루이드와 관련된 유적으로 잘못 결론지었다.
윌리엄 스터클리는 1740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에서 오브리의 견해를 지지하며, 드루이드를 기독교와 연결시키려 했다.
하지만 19세기 전환기에 존 러벅(John Lubbock)이 근처 고분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을 근거로 스톤헨지가 청동기 시대의 유적임을 밝혀내면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잃었다.
5. 2. 고대 천문학과 스톤헨지
스톤헨지는 기록을 남기지 않은 문화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건설 방법과 용도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특히 거대한 삼석기둥, 중앙에 있는 다섯 개의 삼석기둥의 말굽형 배열, 힐스톤, 그리고 제방으로 둘러싸인 길은 겨울 동지의 해넘이와 여름 동지의 반대쪽 해돋이에 정렬되어 있다.[45][46] 이러한 배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기념물이 있는 곳의 자연 지형이 이 선을 따랐고, 건설에 영감을 주었을 수 있다.[47]이 기념물의 설계에는 천체 관측소 기능이 포함되어 있어 일식, 동지, 춘분 및 건설자들의 신앙 체계에 중요한 다른 천체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48] 1963년 영국 출신의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는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고, 1965년에 ''Stonehenge Decoded''(해독된 스톤헨지)를 출판하면서 큰 논쟁을 일으켰다. 호킨스는 달과 태양을 기반으로 한 많은 천문학적 배치가 보인다고 주장했고, 스톤헨지가 일식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에는 영국의 천문학자 C. A. 뉴햄과 프레드 호일, 그리고 공학 교수 알렉산더 톰도 참여했다.[48]
그러나 리처드 J. C. 애킨슨을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석기 시대의 계산기" 해석 방법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비판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천문학적 주장이 과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5. 3. 블루스톤
마이크 파커 피어슨이 이끄는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와운 몬 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스톤헨지에 사용된 블루스톤이 웨일스의 프레셀리 언덕에 있는 와운 몬이라는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졌다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92][93] 와운 몬의 석원은 스톤헨지 원형(110m)과 크기가 같았으며, 블루스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중 한 돌은 스톤헨지에서 재사용된 흔적이 있었는데, 독특한 오각형 모양과 채워진 구멍에서 나온 루미네선스 연대 측정으로 확인되었다. 측정 결과, 이 석원은 기원전 3400~3200년경에 세워졌고, 300~400년 후에 해체되었으며, 이는 스톤헨지 건설 시기와 일치한다.[92][93] 같은 시기에 그 지역에서 인간 활동이 중단된 사실은 이동을 이유로 제시되었지만, 다른 돌들은 다른 곳에서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진다.[92][93]일반적으로 블루스톤(그중 일부는 화성암인 돌레라이트로 만들어짐)은 건설자들이 웨일스의 현대 펨브룩셔에 있는 프레셀리 언덕에서 운반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이론은 아일랜드 해 빙하에 의해 빙하 암괴로 유적지 근처로 운반되었다는 것이다.[29] 그러나 남중부 영국 내에 빙하 퇴적의 증거는 없다.[30] 2019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웨일스의 채석장에서 거석 채석의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스톤헨지의 블루스톤의 원천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블루스톤이 인간에 의해 채석되었고 빙하 작용에 의해 운반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31]
로저 머서(Roger Mercer)는 블루스톤이 정교하게 가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펨브로크셔(Pembrokeshire)에 있는 더 오래된 미확인 유적에서 솔즈베리(Salisbury)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존 F.S. 스톤(John F.S. Stone)은 블루스톤 유적이 스톤헨지의 카스(Causeway)보다 더 오래전에 세워진 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고 생각했다. 만약 머서의 이론이 맞다면 블루스톤은 동맹을 굳히거나, 정복한 적에게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옮겨졌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타원형으로 배치된 블루스톤은 스톤헨지 3단계(Stonehenge III)와 비슷하며, 프레셀리 힐스(Preseli Hills)의 베드 아서(Bedd Arthur) 유적, 펨브로크셔 해안 남서쪽 바다에 있는 스코머 섬(Skomer Island)에서도 발견된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화성암인 블루스톤과 퇴적암인 사암(대砂岩)이 서로 다른 지형, 서로 다른 배경에서 발생한 두 문화의 동맹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현재 블루스톤의 주요 산지는 카른 메닌(Carn Menyn)에 있는 디아베이스(드레라이트) 노두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오픈 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의 올웬 윌리엄스-소프(Olwen Williams-Thorpe)가 이끈 연구에 따르면, 프레셀리 힐스의 더 넓은 지역에 블루스톤 산지가 퍼져 있었다.
오브리 바얼(Aubrey Burl)은 블루스톤이 인간에 의해 운반된 것이 아니라, 플라이스토세(更新世)에 웨일스에서부터의 길의 적어도 일부는 빙하에 의해 운반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프레셀리에서 솔즈베리 평원까지 빙하가 활동했다는 지질학적 증거는 없지만, 주변에서는 이와 같은 특이한 디아베이스 샘플이 발견되지 않았다.
5. 4. 의식 장소로서의 스톤헨지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더링턴 월스를 중심으로 한 스톤헨지 강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스톤헨지가 그 존재 초기부터 매장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10] 그는 스톤헨지가 기원전 3천년대 중반 전성기까지 매장지였으며, 이곳이 죽은 자들의 영역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10]스톤헨지는 의례적 풍경의 일부였고 에이번 강을 통해 더링턴 월스와 연결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더링턴 월스 헨지 주변 지역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소였고, 스톤헨지는 죽은 자들의 영역이었다. 에이번 강을 따라 스톤헨지에 도달하는 여정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의례적 통과의 일부였으며, 과거 조상과 최근 사망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41]
많은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가 당시 솔즈베리 평원에서 흔했던 목조 건축물을 영구적인 석조 건축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고 믿는다. 마이크 파커 피어슨과 마다가스카르 고고학자 라밀리소니나는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나무는 산 자와, 돌은 조상인 죽은 자와 연결된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들은 스톤헨지가 죽은 자를 기리는 긴 의식 행렬의 경계 표지였다고 주장했다. 이 행렬은 우드헨지와 더링턴 월에서 해돋이 때 동쪽에서 시작하여 에이번 강을 따라 행진한 후 해질녘 서쪽의 스톤헨지에 이르렀으며, 이는 나무에서 시작하여 물을 건너 돌에 이르는, 즉 생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상징적인 행렬이었다.[41]
5. 5. 건설 기술과 설계
스톤헨지 건설에는 돌을 옮기고 배치하는 데 있어 정교한 기술이 사용되었다. 삼각대와 같은 기본적인 신석기 시대 기술로도 거대한 돌을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50] 통나무를 굴려 돌을 옮기거나, 동물성 지방을 바른 썰매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51] 1995년에는 40톤의 돌판을 실은 썰매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버러 다운스에서 약 28.97km 떨어진 곳까지 옮기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도 했다.[51]돌을 세우는 방법으로는 나무 A자형 지지대를 사용하고 밧줄로 돌을 끌어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횡석은 나무 플랫폼을 이용해 단계적으로 들어 올린 후 미끄러뜨리거나 경사면을 이용했을 것이다. 돌에 새겨진 홈은 당시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목공 기술을 보유했음을 보여준다.
알렉산더 솜(Alexander Thom)은 스톤헨지 건설에 메갈리스 야드(megalithic yard)라는 길이 단위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스톤헨지의 건설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톤헨지 1단계에는 약 11,000인시(460인일), 2단계에는 360,000인시(15,000인일 또는 41인년), 3단계에는 최대 1,750만 인시(73,000인일 또는 200인년)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 가공에는 약 2,000만 인시(830,000인일 또는 2,300인년)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건축물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전된 사회 조직이 필요했을 것이다.
스톤헨지의 거석은 블루스톤과 사르센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루스톤은 현무암, 응회암, 유문암, 사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레셀리 힐스에서 약 225.31km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30] 사르센은 웨스트 우즈에서 약 25.75km 떨어진 곳에서 유래한 것으로 분석되었다.[34]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사르센은 스톤헨지에서 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웨스트 우즈의 사암과 화학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9]
2017년과 2018년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와운 몬 유적지는 스톤헨지와 같은 크기의 110m 지름의 돌 원형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지를 향하고 있었다.[92][93] 와운 몬의 돌 구멍과 스톤헨지의 돌 사이에는 모양과 시기 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되어, 와운 몬의 돌이 스톤헨지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92][93]
5. 6. 기타 견해
스톤헨지는 기록을 남기지 않은 문화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건설 방법과 용도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돌들과 관련된 많은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44]이 유적이 여성의 성기를 나타낸다는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https://www.observer.co.uk/uk_news/story/0,6903,992215,00.html 옵저버지 기사) 또한 힐스톤이 남근의 형태라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서 UFO 목격 정보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외계인 착륙 지점이라는 설도 등장했지만, 아마도 워민스터 근교의 국방 시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뉴에이지와 네오 페건 신앙에서는 스톤헨지를 신성한 장소로 보고 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고고학 유적, 관광 명소, 또는 마케팅 도구로 생각하는 주류의 관점과 대립할 수 있다.
6. 현대사
12세기 제프리 오브 먼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는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스톤헨지가 아일랜드에서 옮겨졌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106] 제프리의 이야기는 와스의 『브뤼트 연대기』, 레이먼의 『브뤼트 연대기』 등 다양한 작품에서 변형되어 나타났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스톤헨지의 돌들은 거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일랜드로 가져온 치유의 돌이었다. 5세기 왕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는 멀린의 조언에 따라 우서 펜드래건(아더 왕의 아버지)과 함께 군대를 보내 아일랜드에서 돌들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은 아일랜드 군대를 물리쳤지만 거대한 돌들을 옮길 수 없었다. 멀린의 도움으로 돌들을 브리튼으로 운반하여 원래 있던 위치처럼 다시 세웠다.[107] 고고학자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스톤헨지의 청색석이 웨일스의 와운 몬 돌 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증거가 있으므로 이 이야기에는 "진실의 한 조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109]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삭슨족 왕 헹기스트는 브리튼 켈트족 전사들을 향연에 초대했지만, 배신하여 420명을 죽였다. 헹기스트는 그 행위에 대한 후회를 표시하기 위해 스톤헨지를 세웠다고 한다.[110]
힐스톤은 과거 "수도사의 발꿈치"로 알려졌다. 17세기 이전부터 전해지는 민담에서는 악마가 아일랜드 여자에게서 돌을 사서 솔즈베리 평원으로 가져왔는데, 그중 하나를 프라이어가 발꿈치로 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04]
스톤헨지는 아더왕 전설과도 관련이 있다. 제프리 오브 몽머스는 마법사 멀린의 명령으로 거인이 킬라라우스 산에 세운 돌을 아일랜드에서 옮겼다고 서술하고 있다.
헨리 8세가 에임즈베리 수도원과 그 주변 토지를 소유한 이후 스톤헨지는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 1915년 세실 처브는 스톤헨지를 6600GBP(2023년 기준 약 527100GBP)에 매입하여 3년 후 국가에 기증했다.[111]
처브가 기증한 부지는 약 12헥타르였으며, 기념물과 가까운 곳에 스톤헨지 비행장(Stonehenge Aerodrome)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었다. 1927년 스톤헨지 주변 토지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경매에 부쳐졌고, 기념물 주변 경관 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117] 조지 5세(George V)의 기부를 시작으로 모금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1930년대까지 비행장 부지가 정리되고 토지는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관리하에 놓였다.[115]
20세기 동안 스톤헨지는 네오드루이드를 중심으로 네오파가니즘과 뉴에이지 신앙 신봉자들에게 종교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1905년 고대 드루이드 협회는 스톤헨지에서 대규모 입회식을 거행했다.[128]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스톤헨지 자유 축제가 열렸으나, 1985년 빈필드 전투 이후 축제 개최가 금지되었다. 이후 스톤헨지를 의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었으나, 아서 유서 펜드래곤 등의 운동가들이 얻어낸 유럽 인권 재판소 판결에 따라 제한이 해제되었다.[130] 스톤헨지는 네오드루이드, 이교 및 기타 "지구 기반" 종교들에게 예배의 장소이다.[132] 2000년부터 하지 공개 접근 행사가 열리고 있다.
| 연도 | 일출 | 비고/참석 인원 (괄호 안) | 
|---|---|---|
| 2000 | 수요일 아침 | 최초의 관리되는 공개 접근 (6,000) | 
| 2001 | 처음에는 흐림 | 접근 시간 연장 | 
| 2002 | 비 | FIFA 월드컵 경기로 인해 조기 이탈 (22,000)[134][135] | 
| 2003 | 맑음 | 기록적인 참석자 수 (30,000)[136] | 
| 2004 | 안개 낀 일출 | 금성의 태양면 통과 (21,000)[137] | 
| 2005 | 맑음 | (23,000) | 
| 2006 | 비와 구름 | 낮은 참석률 (18,700) | 
| 2007 | 흐림, 나중에 더 밝아짐 | (24,093)[139] | 
| 2008 | 흐림, 비 약간 | (36,290)[140] | 
| 2009 | 흐림, 나중에 더 밝아짐 | (36,500)[141] | 
| 2010 | 상당히 맑음 | 조상 조각상 전시 (22,000)[142][143] | 
| 2011 | 비와 구름 | (18,000)[144] | 
| 2012 | 폭우 | 금성의 태양면 통과 (14,500)[145] | 
| 2013 | 회색 구름 | (21,000)[146][147] | 
| 2014 | 상당히 맑음 | (37,500)[148][149] | 
| 2015 | 맑음 | (23,000)[150] | 
| 2016 | 맑음 | 알코올 금지, 딸기 보름달 (12,000)[151][152][153] | 
| 2017 | 상당히 맑음 | 추가 보안 강화 (13,000)[154][155] | 
| 2018 | 맑은 일출 | 스톤헨지 기증 100주년 (9,500)[156] | 
| 2019 | 맑음 | (10,000)[157] | 
| 2020 | 일요일 아침 | 봉쇄로 모임 취소[158] | 
| 2021 | 흐림 | 봉쇄에도 불구, 수백 명 진입[159] | 
| 2022 | 흐림 | 봉쇄 이후 첫 공식 모임 (6,000)[160] | 
| 2023 | 안개 낀 아침 | (10,000)[161] | 
| 2024 | 맑은 일출 | 저스트 스톱 오일 시위에도 불구, 평화롭게 진행 (15,000)[162][163] | 
| 2025 | 미정 | 
스톤헨지는 오랜 역사 동안 파손 행위를 겪어왔다. 19세기에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돌 조각을 떼어가기도 했다.[183]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훼손하는 사건이 반복되었다.[185][186] 2008년에는 두 명의 남성이 힐 스톤에서 작은 조각을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했다.[189]
2024년 6월 19일, 기후 운동 단체인 저스트 스톱 오일이 기둥돌 세 개에 주황색 옥수수 가루 페인트를 뿌렸다. 리시 수낵 총리와 키어 스타머 경 노동당 당수는 이 행위를 비난했다.[196]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피해를 조사했고, 압축 공기로 페인트를 제거한 후 돌에 "눈에 보이는 손상이 없다"고 보고했다.[197][199]
6. 1. 고고학 연구 및 복원
17세기부터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스톤헨지는 여러 차례 발굴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존 오브리는 1666년에 스톤헨지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으로, 그의 이름을 딴 오브리 구멍을 기록했다.[43] 윌리엄 스터클리는 18세기 초에 오브리의 작업을 이어받아 주변 기념물과 커서스, 애비뉴를 확인하고, 드루이드와 연관시켰다.[66]

1740년, 배스 건축가 존 우드는 스톤헨지의 가장 정확한 초기 계획을 작성했다.[67]
윌리엄 커닝턴은 19세기 초에 스톤헨지 주변과 내부를 발굴하여 숯이 된 나무, 동물 뼈, 도자기 등을 발견하고 슬로터 스톤이 한때 서 있던 구멍을 확인했다.[71] 리처드 콜트 호어는 커닝턴의 작업을 지원하여 솔즈베리 평원의 고분들을 발굴하고, 발굴 시 금속 토큰을 남겨 다른 발굴자들에게 알렸다. 커닝턴의 발견물은 윌트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877년, 찰스 다윈은 스톤헨지에서 잔해가 지면으로 가라앉는 속도를 실험했다. 1901년, 윌리엄 고울랜드는 사르센석 56번을 곧게 세우고 콘크리트로 고정하는 복원 작업을 감독하고, 추가 발굴을 통해 돌의 건립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밝혀냈다.[68]


1920년, 윌리엄 홀리는 여섯 개 돌의 기초와 외곽 해자를 발굴하고, 오브리 구덩이를 재발견하고, Y와 Z 구멍을 찾았다.[71]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리처드 애킨슨, 스튜어트 피고트, 존 F. S. 스톤은 홀리의 작업을 재발굴하여 사르센석에서 조각된 도끼와 단검을 발견하고, 기념물 건설의 세 가지 주요 단계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1958년과 1963년에 걸쳐 스톤헨지의 돌들을 다시 세우고 콘크리트 기초에 고정하는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72][73][74]
1978년, 애킨슨과 존 에반스는 외곽 해자에서 스톤헨지 궁수의 유해를 발견했다.[75] 1980년대 초, 줄리안 C. 리차드스는 스톤헨지 주변 지역 프로젝트를 이끌며 주변 지역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다.[76]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마이크 파커 피어슨이 이끈 스톤헨지 강가 프로젝트는 더링턴 월즈를 중심으로 스톤헨지 주변 유적과의 관계를 조사했다. 2008년, 팀 다빌과 제프리 와인라이트는 청석 기둥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한 발굴을 진행했다.
2010년, 스톤헨지 숨겨진 풍경 프로젝트는 주요 유적지에서 1km도 채 안 되는 곳에서 "헨지(henge)-같은" 유적을 발견했다. 2011년, 버밍엄 대학교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커서스 통로 내에 위치한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를 발견했다.
2014년, 버밍엄 대학교는 더링턴 근처의 돌과 나무 구조물 및 매장 무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과 2018년에 마이크 파커 피어슨 교수의 팀이 프레셀리 언덕에 있는 와운 몬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에 따르면, 이 유적지는 원래 스톤헨지의 원래 블루스톤 원과 같은 크기의 지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지를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92][93]
6. 2. 민간 전승
12세기 제프리 오브 먼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는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스톤헨지가 아일랜드에서 옮겨졌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106] 제프리의 이야기는 널리 퍼져 와스의 노르망디어 프랑스어 작품인 『브뤼트 연대기』, 레이먼의 중세 영어 작품인 『브뤼트 연대기』, 웨일스어 작품인 『브뤼트 이 브렌히네드』 등 그의 작품을 각색한 다양한 변형이 나타났다.이 이야기에 따르면 스톤헨지의 돌들은 거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일랜드로 가져온 치유의 돌이었다. 이 돌들은 킬라라우스 산(위스니치 언덕일 가능성이 있음[108])에 세워져 거인의 고리 또는 거인의 원으로 알려졌다. 5세기 왕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는 솔즈베리에서 삭슨족에게 살해된 브리튼 켈트 귀족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자 했고, 멀린은 그에게 거인의 고리를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왕은 멀린과 우서 펜드래건(아더 왕의 아버지)과 1,5000명의 군대를 보내 아일랜드에서 돌들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은 길로마니우스가 이끄는 아일랜드 군대를 물리쳤지만 거대한 돌들을 옮길 수 없었다. 멀린의 도움으로 그들은 돌들을 브리튼으로 운반하여 원래 있던 위치처럼 다시 세웠다.[107] 고고학자 마이크 파커 피어슨은 스톤헨지의 청색석이 웨일스의 아일랜드 해안에 있는 와운 몬 돌 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증거가 있으므로 이 이야기에는 "진실의 한 조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109]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삭슨족 왕 헹기스트는 브리튼 켈트족 전사들을 향연에 초대했지만, 배신적으로 자신의 부하들에게 손님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하여 420명을 죽였다. 헹기스트는 그 행위에 대한 후회를 표시하기 위해 스톤헨지를 세웠다고 한다.[110]

힐스톤은 과거 "수도사의 발꿈치"로 알려졌다. 17세기 이전부터 전해지는 민담에 따르면, 돌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수도사의 발꿈치 (Friar's Heel)"는 게르만 신화의 여신 프레이야와 웨일스어의 "길" 또는 "태양의 날"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프레이야의 신성한 돌" 또는 "Freya Sul"이 변형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스톤헨지는 아더왕 전설과도 관련이 있다. 제프리 오브 몽머스는 마법사 멀린의 명령으로 거인이 킬라라우스 산에 세운 돌을 아일랜드에서 옮겼다고 서술하고 있다(그 거인은 그 돌을 아프리카에서 샀다고 한다). 그것이 암즈베리 근처에 재건된 후, 제프리는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우서 펜드래건, 콘스탄틴 3세가 환상열석 내부에 매장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브리타니아 열왕사』의 많은 부분에서 제프리는 브리튼의 전설과 자신의 상상을 혼합하고 있다. 암브로시우스와 인근 암즈베리를 연결하는 증거가 되는 지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가 선사시대 유적과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를 관련지었기 때문일 수 있다.
6. 3. 소유권 및 보존
헨리 8세가 에임즈베리 수도원과 그 주변 토지를 소유한 이후 스톤헨지는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 1540년 헨리 8세는 그 토지를 허트퍼드 백작에게 주었다. 그 후 칼레톤 경을 거쳐 퀸즈베리 후작에게 넘어갔다. 앤트로버스 가문은 1824년에 그 토지를 매입했다.1915년 코즈모 고든 안트로버스 경은 스톤헨지를 경매에 부쳤다. 솔즈베리의 나이트 프랭크 앤 럿틀리 부동산 중개업체가 주관한 경매는 1915년 9월 21일에 열렸고, "15번째 필지. 인접한 구릉지 약 30에이커, 2로드, 37퍼치[12.44ha]와 함께 스톤헨지"를 포함하고 있었다.[111]
세실 처브는 6,600파운드(2023년 기준 약 527100GBP)에 그 부지를 매입하여 3년 후 특정 조건을 붙여 국가에 기증했다. 그는 아내를 위해 매입했다는 추측도 있지만, 지역 주민이 새로운 소유주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매입했다.[111]

처브가 매입하여 국가에 기증한 부지는 약 12헥타르(30에이커)에 불과했으며, 기념물과 가까운 곳에 여러 건물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톤헨지 비행장(Stonehenge Aerodrome)이었다. 돌에서 약 300미터(1,000피트)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비행장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왕립비행대(Royal Flying Corps)를 위해 건설되었으며,[112] 커다란 돌과 벽돌로 지어진 격납고는 주변 경관을 지배하고 있었다.[113][114]
스톤헨지 바닥(Stonehenge Bottom)의 건조한 계곡에는 나중에 A303과 A344 도로로 지정될 도로의 주요 교차로와 함께 여러 채의 오두막과 카페가 건설되었다.

1927년 스톤헨지 주변 토지는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경매에 부쳐졌다. A구역은 기념물의 바로 서쪽에 위치했으며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스톤헨지 비행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B구역은 주요 도로 건너편 남쪽에, C구역은 북쪽에 위치하여 스톤헨지 커서스(Stonehenge Cursus)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다.[115][116]
개발업자들의 관심이 있었고, 1927년 8월에는 기념물의 "주변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117] 조지 5세(George V)가 주요 기부자로 참여하며 모금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1927년 10월까지 8,000파운드가 모금되어 A구역을 매입하고 비행장 철거를 시작할 수 있었다.[118][119][120][121][122] 이 기금은 수년간 계속되어 나머지 토지를 국가에 확보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C구역에 대한 모금은 1929년까지 계속되었다.[115]
토지는 보존을 위해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관리하에 놓였다. 마지막 대형 항공기 격납고는 1930년에 철거되었고,[123] 1930년대 중반까지 비행장 부지는 정리되었다.[124]
최근에는 이 토지가 초지 복원 계획의 일부가 되어 주변 들판을 토착 초크 초원(chalk grassland)으로 되돌리는 사업이 진행되었다.[125] 2022년 내셔널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NHLF)는 내셔널 트러스트에 스톤헨지 경관의 170헥타르를 추가로 매입하기 위한 보조금을 제공했다.[126]
스톤헨지는 다른 대부분의 역사적 유적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보존이 필요하다. 20세기 초까지 많은 돌들이 무너지거나 기울어져 있었지만, 골동품 수집가의 도면 정보를 바탕으로 원래 위치로 조심스럽게 돌려놓는 보존 작업이 이루어졌다.
스톤헨지는 이교 신봉자들의 순례지였으며, 1870년대에는 하지의 일출에 많은 방문객을 모았다. 재구성된 드루이드 의례의 첫 기록은 1905년 드루이드 단체가 의식을 거행했을 때의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철기 시대의 드루이드 신앙과 현대 드루이드교는 다르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톤헨지는 점차 흰옷을 입은 마법사들이 행하는 심오한 의식과 연관되게 되었다.
1972년부터 1984년까지 하지에는 가 열렸고, 방문객은 500명에서 3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1985년 고등법원이 축제 개최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축제를 열려고 한 방문객과 경찰 간에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그 이후로 스톤헨지를 의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National Lampoon's European Vacation의 제작자가 로케이션 헌팅을 하던 중 유적에 차를 부딪혀 손상시켰다.
2008년 5월, 영국의 문화재 보호 단체인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는 누군가가 스톤헨지 표면을 망치 등으로 깎아냈다는 사실을 밝혔다.[205]
6. 4. 신이교주의 (Neopaganism)
20세기 동안 스톤헨지는 네오드루이드를 중심으로 네오파가니즘과 뉴에이지 신앙 신봉자들에게 종교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역사가 로널드 허튼은 "현대 드루이드들이 고고학자들이 고대 드루이드들을 스톤헨지에서 몰아내고 있을 때 바로 스톤헨지에 도착한 것은 크고, 불편할 수도 있는 역설이었다"고 말했다.[127] 거석 기념물을 사용한 최초의 네오드루이드 그룹은 고대 드루이드 협회였는데, 1905년 8월에 그곳에서 대규모 입회식을 거행하여 259명의 신규 회원을 조직에 받아들였다. 이 집회는 언론에서 크게 조롱을 당했는데, 네오드루이드들이 흰 로브와 가짜 수염으로 구성된 의상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웃었다.[128]초기 의식에는 다원주의 서클이 느슨하게 조직한 스톤헨지 자유 축제가 보완되었는데, 이 축제는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열렸으며, 그 기간 동안 하지 방문객 수는 약 3만 명으로 증가했다.[129] 그러나 1985년에 대법원의 명령으로 축제 참가자들에게 이 장소가 폐쇄되었다.[130] 1985년 축제 종료의 결과로 경찰과 뉴에이지 여행자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는데, 이는 경찰이 여행자들의 행렬을 차단하여 스톤헨지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던 빈필드 전투로 알려지게 되었다. 1985년 전투가 있었던 해부터 어떤 종교적 이유로도 스톤헨지 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배제 구역" 정책은 거의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21세기가 도래하기 직전까지 방문객들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시기, 즉 동지와 하지, 그리고 춘분과 추분에는 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131]
그러나 아서 유서 펜드래곤과 같은 운동가들이 얻어낸 유럽 인권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제한이 해제되었다.[130] 이 판결은 어떤 진정한 종교의 신자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예배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고, 스톤헨지는 네오드루이드, 이교 및 기타 "지구 기반" 또는 "구" 종교들에게 예배의 장소이다.[132] 2000년에는 공개 하지 행사가 열렸고 약 7천 명이 참석했다. 2001년에는 약 1만 명으로 증가했다.[133]
6. 5. 환경 및 접근성
스톤헨지는 1915년 세실 처브가 경매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하여 3년 후 국가에 기증한 유적이다.[111] 처브가 기증한 부지는 약 12헥타르에 불과했으며, 주변에는 스톤헨지 비행장(Stonehenge Aerodrome)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었다.[112] 1927년 스톤헨지 주변 토지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경매에 부쳐졌고, 기념물 주변 경관 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117] 조지 5세(George V)의 기부를 시작으로 모금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1930년대까지 비행장 부지가 정리되고 토지는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관리하에 놓였다.[115]20세기 초, 스톤헨지의 많은 돌들이 무너지거나 기울어져 보존 작업이 이루어졌다. 1972년부터 1984년까지는 스톤헨지 자유 축제가 열렸으나, 1985년 콩밭 전투 이후 축제 개최가 금지되었다.
2008년에는 누군가가 스톤헨지 표면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205]
6. 6. 파손 행위 (Vandalism)
스톤헨지는 오랜 역사 동안 여러 차례 파손 행위를 겪어왔다. 17세기까지 건축 현장에 사용하기 위해 유적지에서 돌들이 사라졌고,[182] 19세기에는 관광객들이 끌개로 돌 조각을 떼어가 기념품으로 삼았다.[183]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훼손하는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했다. 당국은 수백 명의 경찰을 배치하고 스톤헨지 주변에 장벽을 설치하며 최대 6km까지 출입 금지 구역을 설정했다.[185][186] 1984년에는 보라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기념물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87] 정부는 파손 행위로부터 스톤헨지를 보호하기 위해 폐쇄했지만, 대중의 반발로 재개방했다.[188]
2008년에는 두 명의 남성이 망치와 드라이버로 힐 스톤(Heel Stone) 측면에서 10펜스 동전 크기의 작은 조각을 떼어냈다. 당국은 이를 "수십 년 만의 첫 번째 파손 행위"라고 묘사했다.[189]
2024년 6월 19일, 기후 운동 단체인 저스트 스톱 오일이 기둥돌 세 개에 주황색 옥수수 가루 페인트를 뿌렸다. 윌트셔 경찰은 옥스퍼드의 니암 린치(Niamh Lynch) 학생과 버밍엄의 라잔 나이두(Rajan Naidu)를 체포했다.[195] 리시 수낵 총리는 "파렴치한 파손 행위"라고 비난하며 저스트 스톱 오일 관련자들에게 이 행위를 비난할 것을 촉구했다. 노동당 당수인 키어 스타머 경은 이 파손 행위를 "터무니없는" 행위라고 칭하며, 저스트 스톱 오일을 "애처로운" 단체라고 비판했다. 그는 활동가들이 "법의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196] 잉글리시 헤리티지는 페인트로 인한 피해를 조사했고,[198] 압축 공기로 페인트를 제거한 후 돌에 "눈에 보이는 손상이 없다"고 보고했다.[197][199]
7. 대중문화
스톤헨지는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영감의 원천이자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세계 각지에는 스톤헨지를 본뜬 복제품들이 건설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워싱턴주 메리힐: 샘 힐이 건립한 실물 크기 복제품으로, 전쟁 기념물로 사용된다.
 - 뉴질랜드 와이라라파: 스톤헨지 아오테아로아는 현지 천체 관측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복제품이다. 피닉스 천문학 협회가 목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건설했다.
 - 미주리주 로라: 미주리 공과대학교에 있는 2분의 1 크기 복제품으로, '로라 스톤헨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1984년 당시 희귀했던 워터젯 가공법으로 암석을 절삭하여 제작되었으며, 1985년 미국 엔지니어 협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재료는 화강암이다.
 - 네브래스카주 얼라이언스: 카헨지는 1987년 예술가 짐 레이놀드가 미국산 빈티지카를 사용하여 제작했다.
 - 텍사스: 스톤헨지 II는 어도비 벽돌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베를린 옛 국경 지대에는 3대의 구 소련식 장갑차로 만들어진 탱크헨지가 있었다.
 - 버지니아주 내추럴 브리지 근처: 스티로폼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스톤헨지인 폼헨지가 있다.
 
스톤헨지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 록 밴드 블랙 사바스: 1983-1984년 재결합 투어에서 스톤헨지 무대 세트를 사용했으나, 대부분의 공연장에 설치하기에는 너무 컸다.
 - 영화 '스파이널 탭': 블랙 사바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밴드가 스톤헨지 세트를 주문했지만 피트와 인치 단위를 혼동하여 미니어처 세트가 배달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
 
현대 복제품 외에도, 스톤헨지라는 이름을 공유하거나 유사한 형태를 가진 고고학 유적지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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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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