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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질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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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세계 질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국제 연맹을 통해 주창한 집단 안보, 민주주의, 자결주의를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시작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탈냉전 시대를 알리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구체적인 정의는 명확하지 않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새로운 질서 구상을 제시하며,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 이후 신세계 질서를 강조했다. 이후 다양한 인물과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언급하며, 미국, 중국 등 주요 강대국들의 글로벌 리더십과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 연맹 창설을 통해 집단 안보, 민주주의, 자결주의를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장했다.[11] 그는 미국의 국익뿐만 아니라 "세계를 민주주의에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도덕적인 측면에서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의 주장처럼, 인간 본성에 기반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유로 국제 연맹 가입을 거부했다.[11] 나치 활동가이자 훗날 독일 지도자가 된 아돌프 히틀러도 1928년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12]

우드로 윌슨과 국제 연맹의 기원


이후 국제 연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 용어의 사용 빈도는 줄었고, 국제 연합 결성 과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H. G. 웰스는 1940년에 "새로운 세계 질서"라는 책을 통해 세계 정부 수립을 통한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주장했다.

2. 1. 제1차 세계 대전과 국제 연맹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 연맹 창설을 통해 집단 안보, 민주주의, 자결주의를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주장했다.[11] 그는 미국의 국익뿐만 아니라 "세계를 민주주의에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도덕적인 측면에서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헨리 캐벗 로지 상원의원의 주장처럼, 인간 본성에 기반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유로 국제 연맹 가입을 거부했다.[11] 나치 활동가이자 훗날 독일 지도자가 된 아돌프 히틀러도 1928년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12]

이후 국제 연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 용어의 사용 빈도는 줄었고, 국제 연합 결성 과정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H. G. 웰스는 1940년에 "새로운 세계 질서"라는 책을 통해 세계 정부 수립을 통한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주장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과 국제 연합

2. 3. 냉전 시대

3. 냉전 이후의 신세계 질서

냉전 종식 이후, "신세계 질서"라는 용어는 탈냉전 시대를 알리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그 구체적인 정의는 명확하지 않았다.[90] 이 용어는 소련 붕괴, 몰타 회담, 조지 H. W. 부시의 1990년 9월 11일 연설 등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재정의되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구상 ==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8년 12월 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광범위한 새로운 질서 구상을 제시했다.[18] 그는 유엔의 중심 역할 강화와 모든 회원국의 적극적인 참여, 국가 간 관계의 탈이념화를 주장했다.[18] 고르바초프는 하나의 세계 경제를 옹호하고, CSCE 및 국제 사법 재판소와 같은 국제 기구에 소련의 가입을 지지했다.[18] 또한 유엔 평화 유지 역할 활성화와 초강대국 협력을 통한 지역 분쟁 해결을 강조하며, 무력 사용이나 위협은 더 이상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18] 그는 미국, 소련, 유럽, 인도, 중국, 일본, 브라질을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전망했다.[18]

고르바초프는 환경 보호, 개발 도상국의 채무 탕감, 핵무기 군축, 미사일 방어 조약 보존, 화학 무기 폐지 협약을 요청했다.[18]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군을 상당수 철수하고, 자유 유럽 방송 전파 방해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18] 그는 다원주의, 관용,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조하며, 전 세계적인 정치적 각성을 묘사했다.[18]

''타임''지는 고르바초프의 연설을 분석하며, 군사력 사용 포기 약속을 위협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소련에 도덕적 주도권을 부여하고 고르바초프를 서유럽에서 인기 있는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19] 이 기사는 고르바초프의 탈이념적 입장, 무력 사용 포기 의사, 동유럽 군대 감축 약속, ABM 조약 준수를 중요하게 언급했다.[19] 새로운 세계 질서는 군사 부문에서 국내 필요로 자원 이전, 법치주의에 기반한 세계 국가 공동체, 안보 동맹 감소, 유럽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19]

1988년 11월 21일, 러시아-인도 회담에서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는 델리 선언을 통해 소련이 약속한 비폭력과 평화적 공존의 원칙을 새로운 세계 질서로 묘사했다.[16] 또한 지속적인 평화, 핵 공포의 균형의 대안, 핵무기 시스템 해체, 전략 무기 감축, 궁극적으로 일반적이고 완전한 군비 축소 가능성을 포함했다.[16]

1988년 11월 24일, 만프레트 뵈르너 나토 사무총장은 소련이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혼합을 기반으로 하는 군사적 안정을 위한 나토의 원칙을 수용하여 "새로운 안보 프레임워크" 창출과 "새로운 세계 질서"로의 움직임을 촉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17]

유럽 공동체는 동서 양측이 자원을 풀링하고 초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특정 이익을 동등한 조건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21] 이는 미국에 덜 배타적으로 묶여 있고 "브레스트에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까지, 또는 적어도 더블린에서 루블린까지" 뻗어갈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되었다.[21]

== 몰타 회담 ==

조지 H. W. 부시와 스코크로프트는 저서 『변혁된 세계』에서 몰타 회담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쏟아지는 제안으로 그를 당황하게 하고, 미국이 회담에서 수세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세부적으로 설명했다.[23]

1989년 12월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몰타 회의는 신세계 질서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 언론에서는 봉쇄 정책이 초강대국 간의 협력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협력은 군비 및 병력 감축, 지역 분쟁 해결, 경제 성장 촉진, 동서 무역 제한 완화, 국제 경제 기구에 소련의 참여, 환경 보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24] 초강대국 협력에 따라, NATO는 협상 및 조약 검증을 위한 포럼으로 전환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부활한 4개 강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틀에 따라 NATO와 바르샤바 조약의 전면적인 해체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유럽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 주둔은 "역사적 대립"을 억제하여 유럽 통합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4]

독일 통일은 새로운 질서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트로브 탤벗은 이를 새로운 시대의 제동 장치로 보고, 몰타 회의가 독일 문제 때문에 "신세계 질서"를 막기 위한 초강대국의 보류 조치라고 믿었다.[25] 동유럽의 정치적 변화 또한 의제로 떠올랐다. 동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가 초강대국의 리더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강대국의 지배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믿었다.[26]

초강대국 협력에서 비롯된 새로운 안보 구조는 관찰자들에게 신세계 질서가 정치적 자유, 자결, 비간섭의 원칙에 기초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제3세계에서의 군사 분쟁 지원 종료, 전 세계적인 무기 판매 제한, 중동 (특히 시리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대한 더 적극적인 관여를 의미할 것이다. 미국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중국인권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더욱 강력하게 증진할 수 있었다.[24]

경제적으로 부채 탕감은 동서 경쟁이 남북 협력으로 이어지면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 독일, 일본이 세계 성장의 세 가지 동력이 되면서 경제적 삼극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한편, 소련의 사회 경제적 위기는 해외로의 국력 투사를 제한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미국의 지속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다.[24]

회의 결과와 발표 내용이 기대에 부응했는지 평가하는 평론가들은 실망감을 느꼈다. 부시는 신세계 질서에 대한 완전한 헌신보다는 "현상 유지 플러스"라는 개념 뒤에 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부시가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촉발한 통제 불능의 "치솟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24]

== 걸프 전쟁과 조지 H. W. 부시의 구상 ==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9월 11일 의회 합동 연설에서 "신세계 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법의 지배, 소련-미국 파트너십, 세계 경제 기구에 소련 통합, 강대국 협력 등을 강조했다.[32] 이 연설은 우드로 윌슨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이상주의에 비견되기도 했다.[32] 부시는 페르시아 만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보다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신세계 질서의 성공을 쿠웨이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연결하기 시작했다.[27][28]

제1차 걸프 전쟁 직전 부대를 맞이하는 부시


부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응 능력이 신세계 질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했다.[29] 1991년 3월 6일 의회 연설에서는 중동 개발 자금 제공, 비재래식 무기 확산 방지, 아랍-이스라엘 조약 성립 등을 포함한 중동 정책을 발표하고, 1991년 마드리드 회의 소집 의사를 밝혔다.[31][9]

언론은 부시의 연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힘에 대한 헌신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래에는 군사력의 중요성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32] 소련-미국 파트너십을 통해 유엔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념적 긴장으로 인해 제한적인 협력만 가능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32] 또한, 신세계 질서가 미국-소련 협력이 아닌 부시-고르바초프 개인의 협력에 기반하여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32]

G7과 같은 세계 경제 기구에 소련을 통합하고, 독일 주권 회복과 캄보디아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평화 계획 수용을 신세계 질서의 징후로 보았다.[32] 독일과 일본의 재등장과 그에 따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개혁 필요성도 제기되었다.[32]

일부 비평가들은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신세계 질서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했다.[33] 뉴욕 타임스는 미국 좌파는 신세계 질서를 "제국주의적 야망에 대한 합리화"라고 비판하고, 우파는 새로운 안보 체제를 거부하며 유엔 부활 가능성에 분개한다고 보도했다.[33] 팻 뷰캐넌은 걸프 전쟁이 신세계 질서, 유엔 평화 유지 개념,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34]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신세계 질서가 초강대국 간의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미국이 "다극 세계에서 단일 최고 강대국"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35]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1990년 "단극 시대"라는 글을 통해 냉전 이후 세계가 미국의 주도하에 단극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6][37]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미국 국무부 장관 (George H. W. Bush 재임 시절)


걸프 전쟁은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걸프전이 미국의 전쟁이며, 조지 W. 부시가 후세인을 격퇴하는 데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평가했다.[44] 유엔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의 전쟁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타협하지 않고 유엔 결의안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했다.[45]

2001년 ''대통령 연구 분기별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신세계 질서 개념이 공격적인 무력 사용 억제, 집단 안보 증진, 강대국 협력 활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57] 걸프 위기는 신세계 질서 개념 개발 및 실행의 촉매 역할을 했지만, 미국의 파병 결정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57]

딕 체니, 당시 국방부 장관 조지 H. W. 부시 행정부


부시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신세계 질서를 둘러싼 과장된 생각에 좌절했으며, 미국이 다자주의를 선호하지만 일방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57] 폴 울포위츠-루이스 리비의 1992년 국방 지침 보고서 초안은 미국의 일방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집단 행동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57]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이 공동선을 추구하고 주도하며 참여할 의무와 함께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8]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 장관


== 걸프 전쟁 이후의 논의 ==

걸프 전쟁 이후, "신세계 질서"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평가가 이루어졌다.[46] 존 루이스 개디스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 통합과 분열의 갈등, 민족주의와 종교성의 부활, 안보 위협의 확산, 집단 안보 등을 새로운 질서의 특징으로 제시했다.[46] 그는 통합의 측면에서 통신 변화, 국제 경제 시스템, 안보 위협의 성격, 새로운 아이디어의 확산으로 국가가 고립주의로 후퇴하는 것을 막을 것이며, 민주 평화 이론이 현실에 가까워질 기회가 있다고 보았다.[46] 그러나 분열적인 민족주의 압력, 활성화된 이슬람의 영향, 생태, 인구 통계, 전염병 위협, 국가의 자기 결정으로 인한 불안정한 효과, 에너지 시장의 안보 부담 등은 새로운 질서의 도전 과제로 지적했다.[46]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 이론을 통해 신세계 질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비판하고, 문명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53] 그는 냉전 종식 후 조화의 환상이 민족 간 갈등, 인종 청소, 법과 질서의 붕괴, 새로운 동맹 및 갈등 패턴, 신공산주의 및 신파시스트 운동, 종교적 근본주의 심화 등으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53]

스트로브 탤벗은 유엔이 페르시아 만 전쟁 이후 국가 간, 국가 내 사건에 대한 역할을 재정의하는 단계를 밟았다고 보았고,[47] 데이비드 거겐은 1990년대 초반 경기 침체가 신세계 질서 아이디어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48] 한스 쾨클러는 "신세계 질서"를 미국이 단극 환경에서 세계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묘사했다.[49] 조셉 나이는 소련 붕괴가 자유주의적 제도적 질서의 재등장을 허용했다고 보았고,[50] 존 이켄베리는 이 견해에 동의하며 냉전 이후 혼란을 예측한 비판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51] 앤 마리 슬로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질서의 회복을 "키메라"라고 부르며, 세계화로 인해 국가 권위가 해체, 분산되는 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보았다.[52]

노엄 촘스키는 "신세계 질서"를 강대국, 특히 미국이 세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확립하는 것으로 보았다.[55] 보리스 옐친빌 클린턴의 집권 이후 "신세계 질서"라는 용어는 "세계화", "단극 시대", "역사의 종말", "문명의 충돌" 등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56]

2001년 ''대통령 연구 분기별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신세계 질서" 개념이 공격적 무력 사용 억제, 집단 안보 증진, 강대국 협력 활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고 결론지었다.[57] 걸프 위기는 이러한 개념의 촉매였으며,[57] 찰스 W. 프리먼 주니어는 미국의 행동이 세계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57] 딕 체니상원에 페르시아만 전쟁의 우선순위로 추가 공격 방지, 석유 공급 보호, 신세계 질서 증진을 제시했다.[57] 부시는 유화 정책의 위험과 공격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57]

걸프 전쟁은 유엔의 신뢰성 시험 사례였으며, 미국은 강대국 협력과 유엔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57] 그러나 폴 울포위츠-루이스 리비의 1992년 국방 지침 보고서 유출은 미국의 일방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변화를 예고했다.[57]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이 공동선을 추구하고 주도하며 참여할 의무, 힘을 사용하는 데 책임, 국제 관계에서 예측 가능성과 안정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8]

3. 1.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구상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8년 12월 7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광범위한 새로운 질서 구상을 제시했다.[18] 그는 유엔의 중심 역할 강화와 모든 회원국의 적극적인 참여, 국가 간 관계의 탈이념화를 주장했다.[18] 고르바초프는 하나의 세계 경제를 옹호하고, CSCE 및 국제 사법 재판소와 같은 국제 기구에 소련의 가입을 지지했다.[18] 또한 유엔 평화 유지 역할 활성화와 초강대국 협력을 통한 지역 분쟁 해결을 강조하며, 무력 사용이나 위협은 더 이상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18] 그는 미국, 소련, 유럽, 인도, 중국, 일본, 브라질을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전망했다.[18]

고르바초프는 환경 보호, 개발 도상국의 채무 탕감, 핵무기 군축, 미사일 방어 조약 보존, 화학 무기 폐지 협약을 요청했다.[18]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군을 상당수 철수하고, 자유 유럽 방송 전파 방해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18] 그는 다원주의, 관용,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조하며, 전 세계적인 정치적 각성을 묘사했다.[18]

''타임''지는 고르바초프의 연설을 분석하며, 군사력 사용 포기 약속을 위협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소련에 도덕적 주도권을 부여하고 고르바초프를 서유럽에서 인기 있는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19] 이 기사는 고르바초프의 탈이념적 입장, 무력 사용 포기 의사, 동유럽 군대 감축 약속, ABM 조약 준수를 중요하게 언급했다.[19] 새로운 세계 질서는 군사 부문에서 국내 필요로 자원 이전, 법치주의에 기반한 세계 국가 공동체, 안보 동맹 감소, 유럽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19]

1988년 11월 21일, 러시아-인도 회담에서 라지브 간디 총리는 델리 선언을 통해 소련이 약속한 비폭력과 평화적 공존의 원칙을 새로운 세계 질서로 묘사했다.[16] 또한 지속적인 평화, 핵 공포의 균형의 대안, 핵무기 시스템 해체, 전략 무기 감축, 궁극적으로 일반적이고 완전한 군비 축소 가능성을 포함했다.[16]

1988년 11월 24일, 만프레트 뵈르너 나토 사무총장은 소련이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혼합을 기반으로 하는 군사적 안정을 위한 나토의 원칙을 수용하여 "새로운 안보 프레임워크" 창출과 "새로운 세계 질서"로의 움직임을 촉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17]

유럽 공동체는 동서 양측이 자원을 풀링하고 초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특정 이익을 동등한 조건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21] 이는 미국에 덜 배타적으로 묶여 있고 "브레스트에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까지, 또는 적어도 더블린에서 루블린까지" 뻗어갈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되었다.[21]

3. 2. 몰타 회담

조지 H. W. 부시와 스코크로프트는 저서 『변혁된 세계』에서 몰타 회담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쏟아지는 제안으로 그를 당황하게 하고, 미국이 회담에서 수세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전략을 세부적으로 설명했다.[23]

1989년 12월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몰타 회의는 신세계 질서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 언론에서는 봉쇄 정책이 초강대국 간의 협력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협력은 군비 및 병력 감축, 지역 분쟁 해결, 경제 성장 촉진, 동서 무역 제한 완화, 국제 경제 기구에 소련의 참여, 환경 보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24] 초강대국 협력에 따라, NATO는 협상 및 조약 검증을 위한 포럼으로 전환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부활한 4개 강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틀에 따라 NATO와 바르샤바 조약의 전면적인 해체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유럽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 주둔은 "역사적 대립"을 억제하여 유럽 통합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4]

독일 통일은 새로운 질서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트로브 탤벗은 이를 새로운 시대의 제동 장치로 보고, 몰타 회의가 독일 문제 때문에 "신세계 질서"를 막기 위한 초강대국의 보류 조치라고 믿었다.[25] 동유럽의 정치적 변화 또한 의제로 떠올랐다. 동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가 초강대국의 리더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초강대국의 지배가 끝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믿었다.[26]

초강대국 협력에서 비롯된 새로운 안보 구조는 관찰자들에게 신세계 질서가 정치적 자유, 자결, 비간섭의 원칙에 기초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제3세계에서의 군사 분쟁 지원 종료, 전 세계적인 무기 판매 제한, 중동 (특히 시리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 대한 더 적극적인 관여를 의미할 것이다. 미국은 이 기회를 활용하여 중국의 인권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더욱 강력하게 증진할 수 있었다.[24]

경제적으로 부채 탕감은 동서 경쟁이 남북 협력으로 이어지면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 독일, 일본이 세계 성장의 세 가지 동력이 되면서 경제적 삼극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한편, 소련의 사회 경제적 위기는 해외로의 국력 투사를 제한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미국의 지속적인 리더십이 필요했다.[24]

회의 결과와 발표 내용이 기대에 부응했는지 평가하는 평론가들은 실망감을 느꼈다. 부시는 신세계 질서에 대한 완전한 헌신보다는 "현상 유지 플러스"라는 개념 뒤에 숨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부시가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촉발한 통제 불능의 "치솟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24]

3. 3. 걸프 전쟁과 조지 H. W. 부시의 구상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9월 11일 의회 합동 연설에서 "신세계 질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법의 지배, 소련-미국 파트너십, 세계 경제 기구에 소련 통합, 강대국 협력 등을 강조했다.[32] 이 연설은 우드로 윌슨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이상주의에 비견되기도 했다.[32] 부시는 페르시아 만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보다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신세계 질서의 성공을 쿠웨이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연결하기 시작했다.[27][28]

부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응 능력이 신세계 질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했다.[29] 1991년 3월 6일 의회 연설에서는 중동 개발 자금 제공, 비재래식 무기 확산 방지, 아랍-이스라엘 조약 성립 등을 포함한 중동 정책을 발표하고, 1991년 마드리드 회의 소집 의사를 밝혔다.[31][9]

언론은 부시의 연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힘에 대한 헌신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래에는 군사력의 중요성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32] 소련-미국 파트너십을 통해 유엔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념적 긴장으로 인해 제한적인 협력만 가능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32] 또한, 신세계 질서가 미국-소련 협력이 아닌 부시-고르바초프 개인의 협력에 기반하여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었다.[32]

G7과 같은 세계 경제 기구에 소련을 통합하고, 독일 주권 회복과 캄보디아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평화 계획 수용을 신세계 질서의 징후로 보았다.[32] 독일과 일본의 재등장과 그에 따른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개혁 필요성도 제기되었다.[32]

일부 비평가들은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신세계 질서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했다.[33] 뉴욕 타임스는 미국 좌파는 신세계 질서를 "제국주의적 야망에 대한 합리화"라고 비판하고, 우파는 새로운 안보 체제를 거부하며 유엔 부활 가능성에 분개한다고 보도했다.[33] 팻 뷰캐넌은 걸프 전쟁이 신세계 질서, 유엔 평화 유지 개념,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34]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신세계 질서가 초강대국 간의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미국이 "다극 세계에서 단일 최고 강대국"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35]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1990년 "단극 시대"라는 글을 통해 냉전 이후 세계가 미국의 주도하에 단극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6][37]

걸프 전쟁은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걸프전이 미국의 전쟁이며, 조지 W. 부시가 후세인을 격퇴하는 데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평가했다.[44] 유엔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의 전쟁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타협하지 않고 유엔 결의안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했다.[45]

2001년 ''대통령 연구 분기별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신세계 질서 개념이 공격적인 무력 사용 억제, 집단 안보 증진, 강대국 협력 활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57] 걸프 위기는 신세계 질서 개념 개발 및 실행의 촉매 역할을 했지만, 미국의 파병 결정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57]

부시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신세계 질서를 둘러싼 과장된 생각에 좌절했으며, 미국이 다자주의를 선호하지만 일방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57] 폴 울포위츠-루이스 리비의 1992년 국방 지침 보고서 초안은 미국의 일방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집단 행동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57]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이 공동선을 추구하고 주도하며 참여할 의무와 함께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8]

3. 4. 걸프 전쟁 이후의 논의

걸프 전쟁 이후, "신세계 질서"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평가가 이루어졌다.[46] 존 루이스 개디스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 통합과 분열의 갈등, 민족주의와 종교성의 부활, 안보 위협의 확산, 집단 안보 등을 새로운 질서의 특징으로 제시했다.[46] 그는 통합의 측면에서 통신 변화, 국제 경제 시스템, 안보 위협의 성격, 새로운 아이디어의 확산으로 국가가 고립주의로 후퇴하는 것을 막을 것이며, 민주 평화 이론이 현실에 가까워질 기회가 있다고 보았다.[46] 그러나 분열적인 민족주의 압력, 활성화된 이슬람의 영향, 생태, 인구 통계, 전염병 위협, 국가의 자기 결정으로 인한 불안정한 효과, 에너지 시장의 안보 부담 등은 새로운 질서의 도전 과제로 지적했다.[46]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 이론을 통해 신세계 질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비판하고, 문명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53] 그는 냉전 종식 후 조화의 환상이 민족 간 갈등, 인종 청소, 법과 질서의 붕괴, 새로운 동맹 및 갈등 패턴, 신공산주의 및 신파시스트 운동, 종교적 근본주의 심화 등으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53]

스트로브 탤벗은 유엔이 페르시아 만 전쟁 이후 국가 간, 국가 내 사건에 대한 역할을 재정의하는 단계를 밟았다고 보았고,[47] 데이비드 거겐은 1990년대 초반 경기 침체가 신세계 질서 아이디어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48] 한스 쾨클러는 "신세계 질서"를 미국이 단극 환경에서 세계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묘사했다.[49] 조셉 나이는 소련 붕괴가 자유주의적 제도적 질서의 재등장을 허용했다고 보았고,[50] 존 이켄베리는 이 견해에 동의하며 냉전 이후 혼란을 예측한 비판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51] 앤 마리 슬로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질서의 회복을 "키메라"라고 부르며, 세계화로 인해 국가 권위가 해체, 분산되는 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보았다.[52]

노엄 촘스키는 "신세계 질서"를 강대국, 특히 미국이 세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확립하는 것으로 보았다.[55] 보리스 옐친빌 클린턴의 집권 이후 "신세계 질서"라는 용어는 "세계화", "단극 시대", "역사의 종말", "문명의 충돌" 등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56]

2001년 ''대통령 연구 분기별 보고서''는 부시 행정부의 "신세계 질서" 개념이 공격적 무력 사용 억제, 집단 안보 증진, 강대국 협력 활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가진다고 결론지었다.[57] 걸프 위기는 이러한 개념의 촉매였으며,[57] 찰스 W. 프리먼 주니어는 미국의 행동이 세계의 성격을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57] 딕 체니상원에 페르시아만 전쟁의 우선순위로 추가 공격 방지, 석유 공급 보호, 신세계 질서 증진을 제시했다.[57] 부시는 유화 정책의 위험과 공격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57]

걸프 전쟁은 유엔의 신뢰성 시험 사례였으며, 미국은 강대국 협력과 유엔 지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57] 그러나 폴 울포위츠-루이스 리비의 1992년 국방 지침 보고서 유출은 미국의 일방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변화를 예고했다.[57] 스코크로프트는 미국이 공동선을 추구하고 주도하며 참여할 의무, 힘을 사용하는 데 책임, 국제 관계에서 예측 가능성과 안정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8]

4. 현대적 사용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미국이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미국의 참여 없이는 신세계 질서를 이룰 수 없다고 언급했다.[59] 토니 블레어영국 총리는 좋든 싫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있다고 언급했다.[60]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또한 뉴델리 연설에서 아시아의 부상과 지구 온난화 및 세계 금융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새로운 세계 질서"를 요구했다.[66]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신세계 질서 구축을 시도했지만, 국제 사회의 반발과 국내 여론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조지 W. 부시(George H. W. Bush)가 "후세인을 격퇴하는 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언급하며, 이라크 공격은 부시의 동맹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측했다.[44]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연설하는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요구하며, 폭정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지아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세계 평화와 미래 세계 질서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76] 터키 대통령 압둘라 귈은 한 곳에서 모든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공동 결정을 내리고 세계와 협의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77]

일부 국제 관계 학자들은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 감소와 중국과 같은 비자유주의적 강대국의 부상이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세계 질서의 확립된 규범과 신념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엘리자베스 이코노미는 중국이 "글로벌 규범과 제도를 재구성"하려는 "혁명적 강국"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80] 러시아의 정치 분석가 레오니트 그리닌은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 내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81]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2021년 보아오 포럼 연설에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요구하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다른 국가의 내부 문제에 대한 간섭을 비판했다.[82]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2022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최근의 글로벌 문제 변화가 미국의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세계 질서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83]

4. 1.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세계 질서

4. 2. 조 바이든 대통령의 신세계 질서 구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3월 백악관에서 열린 재계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최근의 글로벌 문제 변화가 미국의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세계 질서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83] 바이든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가 "나머지 자유 세계"와 파트너십을 통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83]

1994년, 미국의 전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는 "신세계 질서는 미국이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미국의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라고 언급하며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59] 러시아의 정치 분석가 레오니트 그리닌은 미국이 새로운 세계 질서 내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81]

한편, 2000년대총리를 역임한 토니 블레어는 "좋든 싫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있다"고 언급하며[60]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61][62][63][64] 2022년 7월, 블레어는 연례 디칠리 강연에서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 이번 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서방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84] 그는 세계의 미래가 최소한 양극화될 것이고, 아마 다극화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동과 서가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동등한 수준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84]

5. 한국의 역할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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