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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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제키엘은 기원전 598년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예언자 활동을 시작한 인물로, 그의 예언은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 전에는 백성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예언했으며, 멸망 후에는 포로들을 위로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다. 에제키엘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율법과 성전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그의 예언이 대회의에 의해 수집되었다고 전해지며, 기독교에서는 성인으로 기념되고,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로 인정받는다. 에제키엘의 무덤은 이라크 알키플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598년 제1회 유폐 때 바빌론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소명을 받고 활약한 예언자이다. 그의 예언 내용은 에스겔서에 담겨 있다. 에스겔서의 저자는 자신을 부시의 아들인 에제키엘로 소개하며, 사제(코헨) 가문 출신이라고 밝힌다.[2]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신성한 만남이 에제키엘 1장:1-2절에 따라 "30년"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에제키엘은 자신이 예언자로 소명을 받는 과정을 묘사하며, 하느님과의 만남과 그 곁에 네 개의 바퀴가 달린 네 생물체를 자세히 설명한다.[3]
에제키엘은 기원전 598년 제1차 유폐 때 바빌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소명을 받고 예언자로서 활동하였다. 그의 예언은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다.[37]
2. 성경 속 에제키엘
성경에 따르면 에제키엘과 그의 아내는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 니푸르 근처 텔아비브의 케바르 강둑에서 다른 유다 왕국의 유배자들과 함께 살았다. (에제키엘 1장:1절과 3:15절) תֵּל אָבִיב|텔아비브he는 현대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텔아비브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지명의 이름은 에제키엘 3:15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녀가 있었다는 언급은 없다. 에제키엘의 생애에 관해서는 에제키엘서 외에는 기록이 없으며, 그 에제키엘서도 개인적인 묘사가 매우 적어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알려진 것은 에제키엘이 제사장이었으며 아버지를 부지라고 불렀고 포로민의 장로들로부터 상담을 받는 존재였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제사장의 가계였을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34] 기원전 597년의 첫 번째 바빌론 포로에서 강제 이송된 사람 중 한 명이며 바빌론의 크발 강변의 텔아비브의 난민 사회에 살았다는 점, 아내가 예루살렘 함락 전날에 죽었다는 정도이다.[35][36]
예언자로서의 에제키엘은 포로로 잡혀간 지 5년째인 기원전 593년, 크바르 강가에 살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자 활동을 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 환상으로 시작되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나를 거역하는 백성에게로 보내노라 그들이나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되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그들은 낯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손이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며 네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에제키엘 2:3-4)
에제키엘서 전반부 24장까지는 우상 숭배나 이교도와의 간음 등 불신앙적인 행위를 유대 백성에게 경고하고 심판이 임할 것을 알리고 있다.[35]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네 등을 내게로 돌렸으니 네가 네 음란과 음행의 죄를 감당할지니라" (에제키엘 23:35)
다음 32장까지는 주변 국가인 이집트 등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진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이요, 이방 나라의 멸망의 때라 칼이 애굽에 임하리니 애굽에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고통이 있고 그들이 그 재물을 빼앗기고 그 기초가 훼파될 것이며 구스와 붓과 루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그들의 동맹 백성이 다 칼에 엎드러지리라" (에제키엘 30:3-5)
다음으로 예루살렘 함락 후 포로로 잡힌 백성에 대한 위로와 조국으로의 귀환 약속 등이 예언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내가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경작을 받고 씨를 뿌릴지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을 많게 하리니 이는 온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곳을 건축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리니 그들이 번성하여 생육할 것이라 내가 너희로 전과 같이 사람을 거하게 하며 너희를 처음보다 더 낫게 대우하리니 그때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제키엘 36:8-11)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간 모든 나라에서 데려오며 그 사방에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다가 그들을 그 땅 이스라엘의 산에서 한 나라를 이루게 하되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려 그들이 다시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다시는 그 우상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하여 그들이 내 백성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제키엘 37:21-23)
또한 40장 이후에는 성전 재건과 예배 규정, 미래 국가에 대한 세부 규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 함락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귀환의 희망을 잃었던 백성들도 에제키엘의 국가 재건 예언과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듣고 귀환의 희망을 품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귀환하는 백성들에 의한 제2 성전 건설과 국가 부흥으로 이어지게 된다.[35]
2. 1. 연대기
기원전 598년 제1회 유폐 때 바빌론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소명(召命)을 받고 활약한 예언자이다. 그의 예언 내용은 에스겔서에 담겨 있다. 나라가 망하게 되는 기원전 587년까지는 백성들의 죄를 책하고 예루살렘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포로로 된 백성들을 위로하고 복지(福祉)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괴롭힌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분산된 이스라엘 민족 집결(集結), 다윗의 자손에 의한 통치, 신전의 회복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재건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그는 조상의 죄가 자손에 미친다는 예로부터의 생각을 부정하고 죄를 범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초로 '개인'이 자각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계약'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 국가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의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원하게 되었던 것은 '개인'의 자각과 더불어 유태교 교단(敎團)의 발전상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37]
본문에서 "서른째 해"는 기원전 597년에 시작된 여호야긴 유다 왕국 국왕의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한 망명의 다섯째 해로 식별된다(비록 왕국은 시드기야 치하에서 존속하도록 허용되었지만).[4] 이는 에제키엘의 환시가 기원전 593년에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에제키엘의 마지막 기록된 예언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 16년 후인 기원전 571년 4월이다.[5][6] 따라서 에제키엘의 예언은 약 22년 동안 일어났다.[7]
"서른째 해"는 에제키엘이 첫 환시를 보았을 때의 나이를 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그가 마지막 환시를 보았을 때 52세였음을 의미한다.[6][8] 그러나 에제키엘 1:1에 대한 ''타르굼 요나단''과 2세기 랍비 문헌 ''세데르 올람 라바''(26장)는 이를 기원전 622년, 즉 요시야가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예레미야의 예언 시기에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를 요시야에게 제시한 지 "서른 해"로 해석한다.[8][9] 에제키엘이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면 이 두 해석을 조화시킬 수 있다.
3. 예언 활동
예언자로서 에제키엘은 포로로 잡혀간 지 5년째인 기원전 593년, 크바르 강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 활동을 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 환상으로 시작되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나를 거역하는 백성에게로 보내노라 그들이나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되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그들은 낯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손이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며 네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에스겔서 2:3-4)
그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까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했다. 예루살렘 함락 후에는 포로로 잡힌 백성을 위로하고, 조국의 회복과 번영을 예언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들에 대한 심판,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의 재결합, 다윗 왕조의 통치, 성전의 회복과 이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강조했다.[37]
또한, 에제키엘은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통적인 생각 대신, 죄를 지은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개인'의 자각이라는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국가 붕괴 이후, 율법에 따른 이스라엘 재건을 추구하게 된 것은 이러한 개인의 자각과 더불어 유대교 교단의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닌다.[37]
3. 1. 예루살렘 심판 예언
기원전 598년 제1회 유폐 때 바빌론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소명(召命)을 받고 활약한 예언자이다. 그의 예언 내용은 <에스겔서>에 담겨 있다. 나라가 망하게 되는 기원전 587년까지는 백성들의 죄를 책하고 예루살렘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다.[37] 에스겔서 전반부 24장까지는 우상 숭배나 이교도와의 간음 등 불신앙적인 행위를 유대 백성에게 경고하고 심판이 임할 것을 알리고 있다.[35]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네 등을 내게로 돌렸으니 네가 네 음란과 음행의 죄를 감당할지니라" (에제키엘 23:35)
3. 2. 주변 국가 심판 예언
에제키엘서 32장까지는 주변 국가인 이집트 등에 대한 심판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날은 여호와의 날이요, 이방 나라의 멸망의 때라 칼이 애굽에 임하리니 애굽에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고통이 있고 그들이 그 재물을 빼앗기고 그 기초가 훼파될 것이며 구스와 붓과 루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그들의 동맹 백성이 다 칼에 엎드러지리라" (에스겔서 30:3-5)[35]
3. 3. 이스라엘 회복 예언
기원전 598년 제1회 유폐 때 바빌론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소명(召命)을 받고 활약한 예언자이다. 그의 예언 내용은 에스겔서에 담겨 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으나,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듣고는 포로로 된 백성들을 위로하고 복지(福祉)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분산된 이스라엘 민족의 집결(集結), 다윗의 자손에 의한 통치, 신전 회복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재건을 강조하고 있다.[37]
예루살렘 함락 후 포로로 잡힌 백성에 대한 위로와 조국으로의 귀환 약속 등이 예언되었다. 에스겔서 36장 8-11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 내가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경작을 받고 씨를 뿌릴지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을 많게 하리니 이는 온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곳을 건축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리니 그들이 번성하여 생육할 것이라 내가 너희로 전과 같이 사람을 거하게 하며 너희를 처음보다 더 낫게 대우하리니 그때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에스겔서 37장 21-23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간 모든 나라에서 데려오며 그 사방에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다가 그들을 그 땅 이스라엘의 산에서 한 나라를 이루게 하되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려 그들이 다시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다시는 그 우상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하여 그들이 내 백성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또한 40장 이후에는 성전 재건과 예배 규정, 미래 국가에 대한 세부 규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 함락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귀환의 희망을 잃었던 백성들도 에제키엘의 국가 재건 예언과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듣고 귀환의 희망을 품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귀환하는 백성들에 의한 제2 성전 건설과 국가 부흥으로 이어진다.[35]
4. 에제키엘의 신학 사상
에제키엘은 기원전 598년 제1차 바빌론 유수 때 바빌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소명을 받고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예언은 에스겔서에 담겨 있다. 기원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기 전까지 에제키엘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예루살렘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듣고는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회복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의 집결, 다윗 왕조의 부활, 성전 회복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재건을 강조하였다.[37]
4. 1. 개인의 책임 강조
에제키엘은 조상의 죄가 자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의 생각을 부정하고, 죄를 지은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최초로 '개인'이 자각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계약'을 전제로 성립한 국가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의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원하게 되었던 것은 '개인'의 자각과 더불어 유태교 교단(敎團)의 발전상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37]4. 2. 율법과 성전의 중요성
에스겔서에 담긴 그의 예언 내용은 기원전 587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백성들의 죄를 책하고 예루살렘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포로로 된 백성들을 위로하고 복지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괴롭힌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 분산된 이스라엘 민족의 집결, 다윗의 자손에 의한 통치, 신전의 회복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재건을 강조하고 있다.[37]그는 조상의 죄가 자손에 미친다는 예로부터의 생각을 부정하고 죄를 범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최초로 '개인'이 자각된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계약'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 국가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의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원하게 되었던 것은 '개인'의 자각과 더불어 유태교 교단의 발전상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37]
5. 유대교 전통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에제키엘은 에스겔서를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예언들은 대회의에 의해 수집되었다고 한다.[10]
에제키엘은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탈무드[11]와 미드라쉬[12]에 따르면, 개종자이자 전직 매춘부인 라합과의 결혼을 통해 여호수아의 후손이라고 한다. 랍비 문헌에 나오는 몇몇 진술은 에제키엘이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아 "부지"라고 불린 예레미야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13]
요세푸스에 따르면, 에제키엘은 이미 이스라엘 땅에서 예언자로서 활동했으며, 여호야킨 왕과 나라의 귀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추방되었을 때에도 이 재능을 유지했다.[14] 요세푸스는 네부카드네자르의 바빌론 군대가 기원전 598년 여호야킨을 폐위시킨 후 유다에서 3천 명을 추방했다고 전한다.[15]
라바는 바빌론 탈무드에서 에제키엘이 하나님의 보좌 (메르카바)의 모습을 묘사했지만, 이는 그가 예언자 이사야보다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와 반대로 이사야는 신성한 영광을 그가 섬기는 왕실을 묘사하는 궁정 신하처럼 묘사한 반면, 에제키엘은 먼 장엄함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농부처럼 썼다.[16] 에제키엘은 다른 모든 예언자들처럼, 마치 엉성한 거울을 통해 본 것처럼, 하나님의 흐릿한 반사만을 보았다.[17]
미드라쉬 ''쉬르 하쉬림 라바''에 따르면, 하나니야, 미샤엘, 아자리아가 네부카드네자르의 명령에 저항하고 그의 우상을 숭배하기보다는 불에 의한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한 사람이 에제키엘이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그들이 기적적인 구원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밝히셨고, 예언자는 "유다의 남은 자"인 이들을 슬퍼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명을 희생하기로 완전히 결심하고 떠났을 때, 에제키엘은 다음과 같은 계시를 받았다.
6. 기독교 전통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에제키엘은 7월 21일에 성인으로 기념된다. 전통적인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에서는 7월 21일이 현대의 그레고리력으로 8월 5일에 해당한다.[19]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성인 달력에서는 8월 28일에, 로마 순교록에서는 4월 10일에 에제키엘을 기념한다.
일부 루터교 교회에서도 7월 21일에 그를 기념한다.[20]
성 보나벤투라는 "닫힌 문"에 대한 에제키엘의 진술을 성육신의 예언으로 해석했는데, 여기서 "문"은 성모 마리아를, "왕자"는 예수를 의미한다. 이는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가톨릭 교회에서 주님 대축일의 저녁 기도 때 읽는 독서 중 하나이다. 이 이미지는 또한 전통적인 가톨릭 크리스마스 찬송가 "Gaudete"와 "어떤 사람도 문을 통하듯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가 인용한 보나벤투라의 말에서도 발견된다.[21] 이 이미지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인류에게 "천국의 문"으로 주셨다는 개념의 기초를 제공하며(여기서 교회의 봉헌과 Porta Coeli 수도원의 봉헌이 시작됨), 이는 ''Salve Regina''(은총을 받으신 마리아) 기도에서도 언급되는 생각이다.
존 B. 테일러는 이 주제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전달했다고 평가한다.[22]
7. 이슬람 전통
حزقيال|Ḥazqiyālar은 이슬람 전통에서 예언자로 인정받고 있다. 꾸란에는 이름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고전 시대와 현대 시대의 무슬림 학자들은 에제키엘을 이슬람 예언자 목록에 포함시켰다.
꾸란은 ''Dhū al-Kifl'' (ذو الكفلar)이라는 예언자를 언급한다. Dhu al-Kifl의 정체성은 논쟁의 대상이지만, 종종 에제키엘과 동일시된다. 카르스텐 니부어는 그의 저서 ''Reisebeschreibung nach Arabian''에서[23] 이라크 나자프와 힐라 중간 지점에 있는 알 키플을 방문했다고 말하며, ''키플''이 ''에제키엘''의 아랍어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그의 책에서 에제키엘의 무덤이 알 키플에 있었고 유대인들이 순례를 왔다고 설명했다. "Dhu al-Kifl"이라는 이름은 "두 배의 소유자" 또는 "접힌 것의 소유자"를 의미한다(ذوar ''dhū'' "소유자, 소유주" 및 الكفلar ''al-kifl'' "두 배, 접힌").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에제키엘의 사명을 Dhu al-Kifl의 묘사와 유사하게 보았다. 유배 기간 동안 군주제와 국가는 멸망했고, 정치적, 국가적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영적인 토대를 세우는 것이 필요해졌고, 에제키엘은 시대의 징후를 관찰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교리를 추론함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했다. 그의 책의 두 부분과 일치하게 그의 인격과 설교는 모두 이중적이다.
Dhu al-Kifl을 에제키엘과 동일시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무슬림들은 에제키엘을 예언자로 여겨왔다. 에제키엘은 모든 ''예언자 이야기'' 모음에 등장한다.[24] 무슬림 해석은 에제키엘의 아버지를 부지(''Budhi'')로, 에제키엘에게 ''ibn al-‘ajūz''라는 칭호를 부여하는데, 이는 "늙은 (남자)의 아들"을 의미하며 그의 부모가 그를 낳았을 때 매우 늙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가 연상되는 전승에 따르면, 에제키엘의 어머니는 늙은 나이에 자녀의 출산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에제키엘을 선물로 받았다.[25]
8. 에제키엘의 무덤
에제키엘의 무덤은 이라크 알키플에 있으며, 바빌론 근처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대교 성지였으며, 그 위에 시아파 이슬람교 신자를 위한 알누카일라 모스크가 세워졌다.[26] 1950년대 이라크 유대인들의 이주로 이라크 유대인 공동체의 존재가 줄어들었지만, 사용되지 않는 회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27] 2020년에는 회당을 모스크로 개조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28][29]
튀르키예 디야르바키르 주의 에르가니 지역에 있는 묘소 또한 에제키엘의 묘소로 여겨진다. 이곳은 도시 중심부에서 5km 떨어진 언덕에 있으며, 지역 무슬림들이 '마캄 다으'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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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ティンデル聖書注解 エゼキエル書
いのちのことば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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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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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에제키엘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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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에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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