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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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빈관(일본)은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국빈 영접 시설로, 1909년 동궁어소로 건설되었다.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 중 최초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국립국회도서관 등 다양한 정부 기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974년 개수를 거쳐 현재의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본관, 일본식 별관 유신정, 위사 초소 등이 있으며, 2016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교토에도 교토 영빈관이 별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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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일본)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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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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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명칭 | 일본어: 赤坂離宮 (Akasaka Rikyū) 일본어: 迎賓館 (Geihinkan, 영빈관) 일본어: 東宮御所 (Tōgū Gosho, 동궁 어소) |
위치 | 모토아카사카, 미나토구, 도쿄, 일본 |
상세 정보 | |
면적 | 바닥 면적: 15,000 제곱미터 부지 면적: 117,000 제곱미터 |
건축 기간 | 1899년 – 1909년 |
용도 | 황태자 거주 태상천황 거주 |
건축가 | 카타야마 도쿠마 |
지정 | 국가: 일본 |
지정 날짜 | 2009년 |
건축 | |
구조 형식 | 철골 보강 벽돌 석조 |
층수 | 지상 2층, 지하 1층 |
주소 | 東京都미나토구모토아카사카 2초메 1-1 () |
2. 역사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에 있는 영빈관은 1909년(메이지 42년) 황태자의 거처인 동궁어소(東宮御所)로 건설되었다. 로쿠메이칸 등을 설계한 조시아 콘도르의 제자인 궁정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기슈번 도쿠가와 가문의 저택 부지에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이 너무 사치스럽다며 거주를 꺼려 동궁어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1923년(다이쇼 12년) 8월 이후 쇼와 천황이 섭정 시절에 5년간 이곳에 거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 법제 의견 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 헌법 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
1962년(쇼와 37년),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기존 영빈관(현 도쿄도 정원 미술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빈 시설 정비를 제안했고, 1967년(쇼와 42년)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74년(쇼와 49년) 3월, 5년간의 공사 끝에 영빈관이 완성되었고,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첫 국빈으로 방문했다.
1979년 6월 28일과 29일에는 제5회 선진국 수뇌 회담(도쿄 서미트)이 개최되었다. 회담 개최에 즈음하여 반대 운동이 벌어졌고, 6월 8일 새벽에는 중핵파가 영빈관 정문에 소형 트럭을 돌진시키는 테러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6]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규모 개수 공사가 진행되었고,[7]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는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로는 최초의 국보 지정이었다.
2015년,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영빈관의 일반 공개를 대폭 확대할 것을 발표했다. 2016년 4월부터 연중 일반 공개가 실시되었으며, 2016년도에 약 76만 5000명, 2017년도에 약 58만 3000명이 방문했다.[8]
2. 1.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에 있는 영빈관은 1909년(메이지 42년) 황태자의 거처인 동궁어소(東宮御所)로 건설되었다. 로쿠메이칸 등을 설계한 조시아 콘도르의 제자인 궁정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기슈번 도쿠가와 가문의 저택 부지에 네오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메이지 천황이 너무 사치스럽다며 거주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동궁어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1923년(다이쇼 12년) 8월 이후 쇼와 천황이 섭정 시절에 5년 간 이곳에 거주하였다.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 법제 의견 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 헌법 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
1962년(쇼와 37년), 당시 총리 이케다 하야토는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도쿄도 미나토구 시로카네다이의 구 아사카미야 저택(현재 도쿄도 정원 미술관)이 좁고 수행원이 동숙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영빈 시설 정비를 제안했고,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1967년(쇼와 42년),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영빈 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74년(쇼와 49년) 3월, 5년간의 공사(총 108억엔 투입) 끝에 본관은 무라노 도고, 일본식 별관은 다니구치 요시로의 설계로 영빈관이 완성되었다. 첫 국빈은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는 국보로 지정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국보가 되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었다. 이후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 법제 의견 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 헌법 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그 후, 당시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도쿄도 미나토구 시로카네다이의 구 아사카미야 저택(현재 도쿄도 정원 미술관)은 건물이 비좁고 수행원이 함께 숙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1962년(쇼와 37년) 당시 총리 이케다 하야토의 발의로 새로운 영빈 시설을 정비할 방침이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이케다 내각과 사토 에이사쿠 내각에서 검토를 거듭하여, 1967년(쇼와 42년)에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영빈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5년여의 시간과 1080억엔(공비 1010억엔, 내장비 70억엔)을 사용하여 본관은 무라노 도고, 일본식 별관은 다니구치 요시로의 설계 협력으로 1974년(쇼와 49년) 3월에 영빈관이 완성되었다. 새롭게 단장된 영빈관을 최초로 사용한 국빈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제럴드 포드였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에는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의 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국보가 되었다.
2. 3. 영빈관으로의 개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어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 법제 의견 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 헌법 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이후 도쿄도 미나토구 시로카네다이의 구 아사카미야 저택(현재 도쿄 도 정원 미술관)을 영빈관으로 사용했으나, 건물이 비좁고 수행원이 함께 묵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1962년(쇼와 37년)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발의로 새로운 영빈 시설 정비 방침이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이케다 내각과 사토 에이사쿠 내각은 검토를 거듭하여 1967년(쇼와 42년)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해 영빈 시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5년여의 시간과 1080억엔(공비 1010억엔, 내장비 7억엔)을 들여 본관은 무라노 도고, 일본식 별관은 다니구치 요시로의 설계 협력으로 1974년(쇼와 49년) 3월에 영빈관을 완성했다. 새롭게 단장된 영빈관의 첫 국빈은 제럴드 포드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국보가 되었다.
2. 4.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어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 법제 의견 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 헌법 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그 후, 당시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도쿄도 미나토구 시로카네다이의 구 아사카미야 저택(현재 도쿄 도 정원 미술관)은 건물이 비좁고 수행원이 동숙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1962년(쇼와 37년) 당시 총리 이케다 하야토의 발의로 새로운 영빈 시설을 정비할 방침이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이케다 내각과 사토 에이사쿠 내각에서 검토를 거듭한 결과, 1967년(쇼와 42년)에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영빈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5년여의 시간과 1080억엔(공비 1010억엔, 내장비 7억엔)을 사용하여 본관은 무라노 도고, 일본식 별관은 다니구치 요시로의 설계 협력으로 1974년(쇼와 49년) 3월에 영빈관이 완성되었다. 새롭게 단장된 영빈관을 최초로 사용한 국빈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제럴드 포드였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의 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국보가 되었다.
3. 주요 시설
영빈관의 주요 시설로는 본관, 1974년 다니구치 요시로가 설계한 일본식 별관(유심정), 그리고 정문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좌우에 위치한 옛 위사초소(국보)가 있다.
- 본관: 채란의 방, 화조의 방, 아침 해의 방, 하고로모의 방, 동쪽 방, 중앙 계단과 2층 대홀 등이 있다.
- 일본식 별관 (유심정): "일본다운 접대를 하는 시설"로 사용된다.
3. 1. 본관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에 있는 영빈관은 1909년(메이지 42년) 조시아 콘도르의 제자인 궁정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기슈번 도쿠가와 가문의 저택 부지에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설계하여 동궁어소(東宮御所)로 건설되었다. 하지만 메이지 천황이 너무 사치스럽다며 거주하기를 꺼려하여 동궁어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1923년(다이쇼 12년) 8월 이후 쇼와 천황이 섭정시절에 5년 간 거주한 것이 동궁어소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카사카 이궁은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이관되어 일본 국립국회도서관(1948년~1961년), 법무청법제의견장관(1948년~1960년), 재판관탄핵재판소(1948년~1970년), 내각헌법조사회(1956년~1960년),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1961년~1965년) 등으로 사용되었다.
1962년(쇼와 37년), 당시 총리 이케다 하야토의 발의로 새로운 영빈 시설을 정비할 방침이 각의에서 결정되었다. 1967년(쇼와 42년)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영빈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5년여의 시간과 1080억엔(공비 1010억엔, 내장비 7억엔)을 사용하여 본관은 무라노 도고, 일본식 별관은 다니구치 요시로의 설계 협력으로 1974년(쇼와 49년) 3월에 영빈관이 완성되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새롭게 단장된 영빈관을 최초로 사용한 국빈이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별궁)’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로서는 처음으로 국보가 되었다.


위치: 도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 1번지
건물 면적은 15000m2이며, 일본식 소규모 건물과 합쳐 117000m2의 부지를 차지한다.
본관은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특히 호프부르크 왕궁을 닮았다.[2] 메이지 시대에 건설된 건물 중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이다.[1]
궁전은 도로 횡단 없이 보도로 둘러싸여 있으며, 보도의 길이는 약 3.25km이다.
궁전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요츠야역이다.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를 지키면서 서양화와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던 시대를 상징하며, 천황을 "무공의 인물"이라는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정문 현관의 지붕 장식이나 내부 장식의 무늬 등에 갑옷 무사의 의장이 있는 등, 건물 전체가 서양의 궁전 건축에 일본풍의 의장이 섞인 장식이 되어 있다. 영국의 버킹엄 궁전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참고했다.[8] 또한,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신궁전)과의 유사성도 보인다.
전기가 드물었던 건축 당시의 일본에서, 영국제 자가 발전 장치를 갖추어 조명에 전기를 사용하고, 미국제 자동 온도 조절 기능이 있는 난방 장치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난방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내 온도가 갑자기 오르거나 내려가는 문제가 여러 번 발생했다고 한다. 벽돌과 석조로 된 서양식 건물은 고온 다습한 일본의 기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아, 늦봄부터 초가을에 걸쳐서는 날씨에 따라 실내 습도가 현저하게 높아지고, 난방은 있어도 냉방은 없었기 때문에 거주성이 현저히 낮았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가타야마 도쿠마는 전기식 제습기를 설치할 계획도 생각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건축 당시의 조도품은 태피스트리 등 일본제도 있었지만, 의자 등의 가구는 대부분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 수입한 것을 사용했다. 이 건물이 영빈관이 되었을 때 건물에서 방출된 이 가구의 일부는 현재, 메이지 마을 박물관에 보존·공개되고 있다.
1974년(쇼와 49년)의 개수 시에 금박을 입힌 빈객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9]
; 채란의 방
: 명칭은 좌우의 큰 거울 위와 회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난로 양옆에 있는 "난새"를 디자인한 금색 부조에서 유래한다. 실내는 앙피르 양식이며, 하얀 천장과 벽에는 금박이 입혀진 석고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10장의 거울이 방을 넓게 보이게 한다. 넓이는 약 160평방미터이다. 방문객이 처음 안내되는 대기실로 사용되거나, 만찬회 초대객의 국·공빈과의 알현 및 조약·협정의 조인식, 국·공빈과의 인터뷰 등에 사용된다.
; 화조의 방
: 명칭은 천장에 그려진 36장의 그림과, 난간에 덮인 고블랭 직물, 벽면에 장식된 와타나베 쇼테이 원화·도가와 소스케의 『칠보화조도 삼십 폭』에서 유래한다. 실내는 앙리 2세 양식이며, 허리벽은 갈색의 시오지재를 판재로 마감하여,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넓이는 약 330평방미터이다. 주로 국·공빈 주최의 공식 만찬회가 열리는 대식당이며, 최대 약 130명의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 아침 해의 방

: 명칭은 천장에 그려진 "아침 해를 등지고 여신이 전차(채리엇)를 달리는 모습"의 프레스코화에서 유래한다.[5] 천장화는 장경 8.26m, 단경 5.15m의 큰 타원형이다. 실내는 고전주의 양식이며, 벽에는 교토 니시진의 금화산 직물의 미술 직물이 덮여 있다. 넓이는 약 200평방미터이다. 국·공빈용 살롱으로 사용되며, 여기서 표경 방문 및 정상 회담 등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 하고로모의 방
: 명칭은 천장에 요곡의 "하고로모"의 경취를 그린 300평방미터의 곡면 화법에 의한 대벽화(프레스코화)가 있는 데에서 유래한다. 넓이는 약 330평방미터로, 전형적인 로코코 양식이다.[5] 실내는 아침 해의 방과 마찬가지로, 고전주의 양식이다. 정면의 중 2층에는 오케스트라 박스가 있다. 이것은 하고로모의 방이 무도회장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무도회가 열렸다는 기록은 없다. 영빈관 중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부품 7000개[8], 무게 800킬로그램)가 있다. 우천 시에 환영 행사를 하거나, 만찬회의 초대객에게 식전주나 식후주가 제공되는 장소이다.
; 동쪽 방
: 건물의 2층 동쪽 끝에 있다. 알함브라 궁전(스페인)을 본뜬 무어 양식의 아라베스크 장식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흡연실, 현재는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 참관 루트에는 들어가 있지 않고, 통상 비공개이다.
; 중앙 계단과 2층 대홀
: 유럽산 각종 대리석이 듬뿍 사용된 계단과 홀. 홀에는 고이소 료헤이의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방문한 빈객을 천황·황후가 맞이한다.
3. 2. 일본식 별관 (유신정)
1974년(쇼와 49년) 다니구치 요시로가 설계하였다. 주 화실(和室)에는 47첩 크기의 다다미가 깔려 있다. 현재 별관은 "일본다운 접대를 하는 시설"로서 주로 국빈과의 회식이나 다도회 등에 사용되고 있다. 2016년 12월에는 장기 제2기 예왕전 제2국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10]시설 유지를 위해 새로운 숙박 시설 설치 등 확충이 계획되고 있으며, 별관 증개축 사업 설계는 안도 타다오 등의 공동체가 맡았다.
이시카와현가나자와시에 있는 다니구치 요시로·요시오 기념 가나자와 건축관에는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 별관인 "유신정"(谷口吉郎 설계)의 광간과 다실을 재현한 전시물이 있다.
3. 3. 기타 시설
영빈관 정문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좌우(동서 방향)에는 옛 위사초소가 있다. 이 초소들은 대칭 구조로, 양쪽 모두 23.3×6.4m,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이며, 모임지붕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4. 국립 교토 영빈관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의 교토 교엔(京都御苑) 내에 위치한 국립 교토 영빈관은 1994년(헤이세이 6년)에 각의에서 건설이 결정되어 2005년(헤이세이 17년) 4월 17일에 개관하였다. 영문 표기는 ‘Kyoto State Guest House’이다.
서양식의 아카사카 영빈관과는 대조적인 일본식 건축물로서 닛켄 설계(日建設計)가 설계를 맡았고, 에도 시대에 소노 가문(園家)·야나기하라 가문(柳原家) 등 구게(公家)의 저택들이 세워져 있던 교토 교엔의 북동부에 건설되었다. 교토 영빈관의 부지는 약 20140m2이며, 총건평은 약 16000m2이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의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관 이후 교토 영빈관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 국빈은 2007년 11월 28일부터 11월 29일까지 체재하였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 주석 응우옌민찌엣이었다.
참조
[1]
웹사이트
http://www.bunka.go.[...]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09-10-16
[2]
웹사이트
http://www8.cao.go.j[...]
2010-03-04
[3]
웹사이트
http://www.f-showa.o[...]
2010-03-04
[4]
웹사이트
http://www.ndl.go.jp[...]
2010-03-04
[5]
서적
ビジュアル解説 インテリアの歴史
秀和システム
[6]
뉴스
迎賓館ねらい火炎車 中核派サミット・ゲリラ
朝日新聞
1979-06-08
[7]
웹사이트
迎賓館改修工事延長のお知らせ
https://www8.cao.go.[...]
内閣府
[8]
뉴스
【ぐるっと首都圏 旅するみつける】東京 迎賓館赤坂離宮/最高峰「おもてなし」空間/国内観光客に人気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9-01-27
[9]
뉴스
中日新聞
2019-12-22
[10]
웹사이트
叡王戦第2局こぼれ話。取材陣すらビクビクするような対局場、国宝「赤坂の迎賓館」とは?
https://www.shogi.or[...]
日本将棋連盟
2017-01-12
[11]
웹사이트
金沢市観光ガイドブック
https://www.kanazawa[...]
2021-11-19
[12]
웹사이트
華麗なる宮殿への招待 迎賓館百年の物語
https://www4.nhk.or.[...]
NHK
20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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