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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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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새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 시설이다. 솔니차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로, 기원전 4700년에 건설되었다. 몰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 요새"로 불렸으며, 인더스 문명과 중국에서도 요새가 존재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대표적인 요새 건축물이다.

중세 시대에는 몰타에 요새가 건설되었고, 로마 제국 점령 시기에는 발레타와 플로리아나 라인이 건설되었다. 프랑스 점령 시기에는 타스삼라 포대가 건설되었으며, 영국 점령 시기에는 요새가 재정비되었다. 19세기에는 폭발성 포탄의 등장으로 요새 구조가 변화했으며, 20세기 이후에는 현대전의 발전으로 요새의 중요성이 감소했다.

현대에는 야전 축성이 주로 사용되며, 항공기 및 미사일 기술 발전으로 요새의 전략적 필요성은 줄어들었지만,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지하 진지를 구축한 사례처럼 지원과 방호 측면에서 가치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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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지도
개요
영어Fortress
정의방어적인 군사 시설
용도주거
방어
감옥
군사 훈련
역사
어원영어 "fortress" (힘)
라틴어 "fortis" (강한)
발전고대 문명부터 존재
기술 발전과 함께 변화
고대 요새: 단순한 성벽
중세 요새: 성과 같은 복잡한 구조
근대 요새: 포격 방어 강화
주요 특징높은 성벽
해자
망루
요새포
현대적 변화현대전에서 중요도 감소
기갑 부대, 공중 공격에 취약
일부는 역사 유적으로 보존
종류
산성산 위에 지어진 요새
해상 요새해안가 또는 섬에 지어진 요새
도시 요새도시 전체를 둘러싼 요새
예시
유럽몽생미셸
카르카손
성 미켈 성
아시아중국 만리장성
고려 시대의 읍성
일본 오사카 성
아메리카아카풀코 요새
영화
관련 영화요새
참고 자료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Fortification and Siegecraft

2. 역사

군사적인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방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략적인 중요 지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 준비로, 평시부터 영구적인 축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축성으로 건설된 군사 시설은 그 구조, 군사적 기능, 내구성 등에 따라 일반적인 진지와 구별하여 요새라고 부른다.

요새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기본적인 기능으로는 주변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 어느 정도의 전술적인 공격을 막는 보루, 그리고 여러 보루가 기능적으로 체계화된 전략적 방어선 등이 있다. 피난처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일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기능이지만, 요새의 원초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보루는 시설의 군사화를 더욱 진행한 것으로, 방어 전투에 필요한 방벽과 무기를 갖추고, 지휘에 필요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전략적 방어선은 보루를 적대 세력에 대해 횡으로 연속해서 배치한 것으로, 중국만리장성, 로마의 방어 요새선이 그 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대포가 공성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성벽 방어가 어려워졌다. 이탈리아 전쟁에서 이 대포에 대항하기 위한 요새 건축법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반월형 요새와 능보를 가진 '''성형요새''' (초기 능보식 요새)는 공격 전면을 넓게 확보하고 측면을 최소화하여 사각지대 없는 밀집된 화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영구 요새(Permanent fortification)는 군사, 교통, 산업의 요충지 및 그 주변에 영구적으로 구축된다.

총기 도입 이후,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항공기와 장거리 대구경포가 발달하면서 요새는 점차 지하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지하에 콘크리트와 철골 철근을 사용하여 폭격에 견딜 수 있도록 요새를 건설하였다. 폭탄과 미사일이 발달하면서 지하화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산악 지대의 암반을 뚫어 터널 내부에 시설을 건설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영구 요새는 요충지 주변에 건설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위장이 매우 중요했다. 포대와 관측소 등은 식물이나 그물, 위장 민가 등으로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엔 폭발성 포탄이 등장하면서 요새화의 새로운 진화가 요구되었다. 그 결과 요새의 측면은 매우 낮아졌으며, 요새 자체는 적군의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표적을 제공하면서 완만하게 경사진 열린 공간을 카포니어로 덮인 도랑과 함께 둘러쌌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도랑 안쪽 면에 가라앉은 구불구불한 다리를 통해야만 했다. 또한 요새 대부분을 지하로 이동시키고 대포만 개방된 위치에 설치하였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밖에서 쏘는 포탄을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철거하고, 도시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 다시 성곽을 축조하였다.

20세기와 21세기 초에는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요새들이 많이 지어졌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전이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요새는 쓸모없게 되었다.

2. 1. 고대

고대에는 도시 방어를 위해 과 같은 성곽이나 보루를 건설하였다. 요새는 주변 주민들을 보호하는 피난처이자, 적의 공격을 막는 보루였으며, 여러 보루가 체계화된 전략적 방어선 역할을 했다. 중국만리장성이나 로마의 방어 요새선이 대표적인 전략적 방어선의 예시이다.

  • '''신석기 유럽:''' 불가리아의 솔니차타 유적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중 하나로, 기원전 4700년에 건설되었다.
  • '''몰타섬:''' 몰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 요새"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요새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보르-인-나두르 유적은 청동기 시대에 요새화된 정착지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 '''인더스 문명:''' 인더스 문명 유적지에서도 요새화의 증거가 발견된다. 모헨조다로는 성벽은 없었지만, 경비탑과 방어 요새를 갖춘 행정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중국:''' 진시황은 북방 국경 지역의 요새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다. 명나라 시기에 벽돌과 돌로 재건축되어 더욱 견고해졌다. 항저우, 난징, 상하이, 쑤저우 등에는 도시 방어를 위한 성벽이 구축되었다.

2. 1. 1. 신석기 시대 유럽

솔니차타


불가리아 프로바디아 마을 근처에 기원전 4700년에 시작된 오늘날 '''솔니차타'''라고 불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정착촌은 요새화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높이 약 1.83m, 두께 약 1.37m의 돌 블럭으로 매우 높게 지어진 성벽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이다.[1]

2. 1. 2. 몰타

영국 육군의 휘트워스 포터 소장은 1858년 저서에서 몰타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 요새"라고 표현하였다.[6] 1893년 보스턴 출신의 작가 Maturin Murray Ballou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몰타의 방어선보다 더 완벽한 요새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7]

보르-인-나두르(Borġ in-Nadur)


몰타의 첫 요새는 보르-인-나두르 마을의 내륙 방향을 방어하고 있는 D자형 요새이다. 청동기 시대에 요새화된 정착지로 확인된 몰타의 6개 유적지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8]

Fort St. Angelo


그랜드 하버의 중심에 위치한 몰타 비르 구에 있는 요새이다. 중세 시대에 ''Castrum Maris'' 라는 이름의 성으로 지어졌고, 후에 요새화된 구조로 재건되었다.

2. 1. 3. 인더스 문명

돌라비라


인도에는 후기 석기 시대부터 영국 통치 시대까지 수많은 요새가 있으며, 특히 수많은 인더스 문명 유적지에서 요새화의 증거가 발견된다. 모헨조다로는 성벽이 없었지만, 주요 정착지 서쪽에 경비탑이 있고 남쪽에 방어 요새가 있는 구조였다. 하라파 등 다른 주요 인더스 계곡 도시의 구조를 고려하면, 모헨조다로가 행정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4]

2. 1. 4. 중국

춘추시대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성벽 축조 기술이 발달한 중국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북방 국경 지역에 남아있는 요새들을 연결하는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다. 이 시기에는 다진 흙을 사용했기 때문에 구조가 튼튼하지 못했다. 이후 명나라 시기에 벽돌과 돌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재건축되었고, 1200개의 망루를 설치하여 몽골 침략자들의 접근을 감시했다.

만리장성


중국은 도시 지역 방어를 위해 성벽을 세워 방어벽을 구축했는데, 항저우, 난징, 상하이, 쑤저우 성벽 등이 대표적이다.

항저우 성벽

2. 2. 중세 (1530 이전)

방어를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형에 평시부터 영구적인 축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건설된 군사 시설을 요새라고 한다. 요새는 주변 주민을 보호하고, 전술적인 공격을 막는 보루의 역할을 하며, 여러 보루가 체계화된 전략적 방어선으로 기능한다.

고대에는 도시 방어를 위해 성곽이나 보루가 건설되었다. 문서를 참고하라.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대포가 공성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성벽 방어가 어려워졌다. 이탈리아 전쟁을 거치며 대포에 대항하기 위한 '''성형요새'''(초기 능보식 요새)가 등장했다. 이는 공격 전면을 넓게 확보하고 측면을 줄여 사각지대 없는 밀집된 화망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

2. 3. 로마 제국 점령 시기 (1530~1798)

1530년, 몰타 제도는 북아프리카 항구 도시 트리폴리와 함께 찰스 5세 황제에 의해 성 요한 기사단에게 주어졌다. 기사단은 비르구를 수도로 삼고 정착했다. 이후 몰타는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요새화되기 시작했다.

2. 3. 1. 발레타(Valletta)

몰타의 행정 단위이자 수도로, 1565년 대공성전에서 몰타 기사단이 시칠리아 증원군의 도움으로 승리한 후 건설한 요새 도시이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섬을 지키는 데 성공한 장 파리소 드 발레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9]

2. 3. 2. 플로리아나 라인

몰타 플로리아나에 건설되어 있는 요새 라인으로, 요새 도시 발레타를 둘러싸고 외곽 방어선을 형성한다. 1636년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라인을 설계한 군사 기술자 피에트로 파올로 플로리아니(Pietro Paolo Florian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0]

2. 4. 프랑스 점령 시기 (1798~1800)

프랑스는 1798년 지중해 전역에서 몰타에서 교단을 축출했고 교단은 며칠 후 항복했다. 몰타인들은 처음에는 프랑스 점령군을 환영했지만 여러 가지 개혁과 교회 약탈로 인해 몇 달 후에 반란을 일으켰고, Mdina와 본섬의 도시와 마을뿐만 아니라 잠시 독립한 Gozo를 장악하여 잘 방어된 항구 지역에서 프랑스군을 봉쇄했다.

가르가르(Għargħar) 포대에서 본 발레타를 그린 그림


1798-1800년의 프랑스 봉쇄 기간 동안 반란군 Vincenzo Borg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1798년 10월 6일에 완성되었다. 5개의 8파운드 대포로 무장했으며 포대는 단 하나의 총으로 무장한 ''Il-Ħarrub ta' Stiefnu''에 고급 초소를 가지고 있었다. 포대의 수비대는 1799년 12월 338명으로 구성되었다. 점령된 수도 발레타에 발포를 시도했지만 너무 멀어서 포격의 효과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비에 용이하여 1799년에 포대 공격을 시도했던 프랑스 군을 물리쳤다. 포대는 1811년에도 여전히 존재했지만 다른 프랑스 봉쇄 요새와 마찬가지로 1814년 이후에 해체되었다고 추정된다.[11]

몰타어 로 ''tas-Samra''로 알려진 Atocia의 성모 예배당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으며 성 니콜라스에게 헌정되었다. 플로리아나 라인과 가장 가까운 포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중요한 요새였다. 프랑스 군과의 포위전 동안 프랑스 군은 타스삼라 포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5시간 동안 끊임없이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포격 중 세 명의 몰타인이 프랑스의 포격으로 사망했다. 이에 몰타 반란군은 반항의 표시로 예배당에서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떼어 지붕에 세우고 검은 깃발을 날렸다는 일화도 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타스삼라 포대에서 발사된 대포가 발레타를 강타하여 프랑스 군인들을 사살하기도 하였다.[11]

2. 5. 영국 점령 시기 (1800~1979)

영국은 1800년에 몰타 섬을 보호령으로 점령했고, 나중에는 1813년에 식민지로 삼았다. 당시 영국 민정 장관 헨리 피고트(Henry Pigot)는 1801년에 발레타의 요새 대부분을 철거하자는 주장을 펼쳤으나, 영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의 힘을 믿었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몰타의 요새들은 여러 차례 재정비를 거치며 사용되었다.[2][3]

2. 6. 총기 도입 이후의 요새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대포가 공성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성벽을 이용한 방어는 점점 어려워졌다. 이탈리아 전쟁에서는 이러한 대포에 대응하기 위한 요새 건축 기술이 발전하였다. 그 결과, 공격 전면을 넓게 확보하고 측면을 최소화하여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화망을 형성할 수 있는 반월형 요새와 능보를 갖춘 '''성형요새''' (초기 능보식 요새)가 등장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돌과 벽돌을 사용한 영구 요새가 많았고, 근대 이전의 성곽처럼 대부분의 시설이 지상 또는 반지하 형태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항공기와 장거리 대구경포가 발달하면서 요새는 점차 지하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지하에 콘크리트와 철골 철근을 사용하여 폭격에 견딜 수 있도록 요새를 건설하였다.

폭탄과 미사일이 발달하면서 지하화는 더욱 가속화되었고, 산악 지대의 암반을 뚫어 터널 내부에 시설을 건설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영구 요새는 침입해 온 적에 대한 방어전을 펼치기 위해 적에게 정확한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시설을 은폐하는 것이 중요했다 (독일의 지그프리트선이나 대서양 방벽처럼 정치적 과시를 위해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영구 요새는 요충지 주변에 건설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위장이 매우 중요했다. 포대와 관측소 등은 식물이나 그물, 위장 민가 등으로 가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일반적으로 일본을 포함한 각국은 법률로 영구 요새 주변을 일반인과 외국인의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사진 촬영이나 스케치 등을 금지했다. 이러한 금지 사항을 위반할 경우 엄중하게 처벌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지도에서는 요새 지역을 공백으로 표시하거나 위장된 지형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었다.

2. 6. 1. 19세기

19세기엔 폭발성 포탄이 등장하면서 요새화의 새로운 진화가 요구되었다. 당시 요새를 둘러싸고 있던 도랑, 급경사와 카운터 스카프 구조는 폭발성 포탄에 취약한 구조였기 때문에 새로운 구조의 요새를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로 요새의 측면은 매우 낮아졌으며, 요새 자체는 적군의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표적을 제공하면서 완만하게 경사진 열린 공간을 카포니어로 덮인 도랑과 함께 둘러쌈으로서 적군의 엄폐 가능성을 제거했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도랑의 안쪽 면에 가라앉은 구불구불한 다리를 통해야만 했다. 또한 요새의 대부분을 지하로 이동시키고 대포만 개방된 위치에 설치하였다. 단순히 도시를 둘러싸는 구조였던 기존의 요새로는 성벽 밖에서 쏘는 포탄을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철거하고 도시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포탄으로 도시 내부에 충격을 줄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 다시 성곽을 축조하였다.

2. 6. 2. 20~21세기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요새들이 많이 지어졌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전이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요새는 쓸모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국가에서는 요새 건설을 계속했지만(1930~1940년대 몰타의 캠벨 요새), 지하 벙커를 제외하고는 현대전에서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요새는 없었다. 결국 대다수의 요새는 철거되었고, 일부는 관광지나 유명한 지역 명소로 남아 있다.[1]

3. 요새 건축론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


로마 제국 국경은 2세기 로마 제국이 최대로 팽창했던 시기의 경계선으로, 영국 북부 대서양 연안에서 유럽을 거쳐 흑해에 이르고, 다시 홍해를 거쳐 아프리카 북단을 가로질러 대서양 연안에 이르는 5,000km에 달하는 유적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로마 제국 국경 유적은 성벽, 해자, 보루, 요새, 망루, 민간인 정착지 등으로 구성된다. 독일에 속하는 로마 제국 국경의 두 부분은 독일 북서부에서 남동부 도나우 강까지 550km에 달하며, 고대 로마의 방어 기술과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군사 전략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군사적인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방어가 필요하며, 전략적인 중요 지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 준비로 평시부터 영구적인 축성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축성으로 건설된 군사 시설은 구조, 군사적 기능, 내구성에 따라 일반적인 진지와 구별하여 요새라고 불린다.

요새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주변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 어느 정도의 전술적인 공격을 막는 보루, 그리고 여러 보루가 기능적으로 체계화된 전략적 방어선이다. 피난처는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일부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기능이지만, 요새의 원초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보루는 시설의 군사화를 더욱 진행한 것으로, 방어 전투에 필요한 방벽과 무기를 갖추고, 지휘와 병참la에 필요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전략적 방어선은 보루를 적대 세력에 대해 횡으로 연속해서 배치한 것으로, 중국만리장성, 로마의 방어 요새선이 그 예이다.

고대에는 도시 방비를 위해 성곽이나 보루가 건설되었다. 근대 이후로는 화포 정비 이후의 축성을 가리킨다. 성벽으로 시가지를 둘러싸고 성채를 가진 성벽도시가 대륙에서 많이 보였으나, 일본에서는 시가지를 둘러싸지 않는 요새적인 성이 기본이 되었으며 시가지를 포함하는 총공을 가진 성은 많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대포가 공성병기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성벽 방어가 어려워졌다. 이탈리아 전쟁에서 대포에 대항하기 위한 요새 건축법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데, 반월형 요새와 능보를 가진 '''성형요새''' (초기 능보식 요새)이다. 이는 공격 전면을 넓게 하고 측면을 작게 하여 사각지대가 없는 밀집된 화망을 형성할 수 있었다.

3. 1. 비트루비우스

비트루비우스는 B.C. 1세기의 로마 군사 건축가로, 『건축십서』를 작성하여 황제에게 바쳤다. 이는 당대 로마제국 내 다양한 건축, 토목 분야에 교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17] 로마 제국 군사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성벽 건축론은 대체적으로 로마 제국 국경 내 축조된 요새 축성 방식에 따른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십서』에서 성탑을 성벽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적이 성벽에 바싹 붙어서 공격할 때, 양쪽 성탑에서 무방비 상태인 적의 옆구리를 공격할 수 있다. 특히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접근로는 가파른 절벽에서 우회시켜 성문에 도달하도록 하고, 도로의 흐름도 곧바르게 하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공격해올 때 방패로 가리지 못한 적군의 오른쪽을 아군 측 성벽에서 공격하기 쉽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성곽의 전체 형태는 여러 곳에서 적이 잘 보이도록 네모꼴이나 마름모꼴이 아니라 원형으로 배치해야 한다. 마름모꼴 모양으로 튀어나온 성곽 도시는 성의 돌출 각도로 인해 방어 측면에서 볼 때 적보다 아군 쪽이 더 불리해서 방비하기가 곤란하다.[17]

이러한 성벽건축론은 중세 성채 축조에 반영되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구이디 성(Castello dei Conti Guidi)
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도시 중앙에 광장을 설치하고 그 주변으로 공공 시설물을 설치하여 요새화하였다. 요새 설계는 방사형으로 계획하고, 외곽에 화포 운용을 위해 돌출하여 설치한 포대(Bastion)는 비트루비우스의 성탑건축론을 적용 및 발달시킨 사례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부르크 성(Coburg Veste)
이 있다.

3. 2. 바티스타 안토넬리 (1547–1616)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 가테오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티스타 안토넬리는 군사 엔지니어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과 스페인 왕국의 요구에 따른 요새 축성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안토넬리가 활동할 당시 시대적 배경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의 영향력이 카리브해 및 신대륙에 점차 커지는 시기로서 현지 거점 운용을 위한 군사 시설 확충이 대두되었다. 주요 업적으로는 산후앙 데 울루아 섬 증축이 있다.[17]

산후앙 데 울루아 섬(San Juan de Ulúa)의 요새


16세기에 본격적으로 스페인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산후앙 데 울루아 섬은 카리브 해 영역을 지휘 통제하는 주요 군사 요새로 변모하였다. 스페인이 멕시코 베라 크루스를 점령한 이래 이곳은 남미에서 수확 및 노획한 물자를 저장하는 중간 기지창 역할을 하였다. 모래섬을 개조한 이 요새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1590년대 전후에 안토넬리에 의해 증축되었고, 1735년 보방식으로 근대화되어 현재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산후앙 데 울루아는 멕시코만과 카리브해를 통제하는 군사 요충지였다가, 멕시코가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재차 군사 전략상 입지 여건으로 인해 프랑스와 미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1915년 이래 멕시코 정부에 의해 관리되었고 요새 기능이 사라진 1900년대 중반까지 이 요새는 수용소 시설로 기능하였다.[17]

4. 근현대 주요 요새



16세기에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산후앙 데 울루아 섬은 카리브 해 영역을 지휘 통제하는 주요 군사 요새로 변모하였다. 스페인이 멕시코 베라크루스를 점령한 이래 이곳은 남미에서 수확 및 노획한 물자를 저장하는 중간 기지창 역할을 하였다. 모래섬을 개조한 이 요새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1590년대 전후에 안토넬리에 의해 증축되었고, 1735년 보방식으로 근대화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산후앙 데 울루아는 멕시코만과 카리브 해를 통제하는 군사 요충지였다가, 멕시코가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다시 군사 전략상 입지 여건으로 인해 프랑스와 미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1915년부터 멕시코 정부에 의해 관리되었고 요새 기능이 사라진 1900년대 중반까지 이 요새는 수용소 시설로 기능하였다.[17]

참조

[1] 서적 日本の要塞-忘れ去られた帝国の城塞
[2] 서적 日本の要塞-忘れ去られた帝国の城塞
[3] 간행물 法令全書 https://dl.ndl.go.jp[...] 内閣官報局
[4] 웹인용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stdict.korea[...]
[5] 백과사전 Fortification and Siegecraft
[6] 서적 A History of the Fortress of Malta 1858
[7] 서적 The Story of Malta https://archive.org/[...] 1893
[8] 서적 Moltese Fortifications 1984
[9] 논문 Town Planning in Malta, 1530–1798 1964-10
[10] 논문 The Development of the Bastion of Provence, Floriana Lines 2022-12-26
[11] 논문 Maltese 'siege' batteries of the blockade 1798-1800 2008
[12] 문서 Verdala 이야기
[13] 뉴스 ‘Long overdue’: Indians celebrate as Dholavira gets UNESCO World Heritage tag https://indianexpres[...] 2021
[14] 웹사이트 Mohenjo-Daro | Pakistan Tourism Portal
[15] 서적 Insight Guides: China 5/E. Apa Publications
[16] 서적 Rough guide to China
[17] 논문 서구 요새 발달사 연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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