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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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량 징관은 월주 산음 출신의 승려로, 화엄학 연구에 몰두하여 사법계 이론을 정립하는 등 중국 화엄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9세에 출가하여 화엄을 수학하고, 당나라 황제들의 존경을 받아 청량 국사 칭호를 받았으며, 7명의 황제를 가르쳤다. 그는 다양한 불교 종파와 선종, 유교, 도교 사상을 융합하여 화엄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화엄경소'와 '화엄경소초'를 저술하여 화엄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법계는 사상적 독창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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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징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청량 징관 |
존칭 | 청량국사 |
출생 | 개원 25년 |
사망 | 개성 3년 3월 6일 (838년4월 4일) |
속성 | 하후(夏侯)씨 |
출생지 | 월주 산음현 (절강성소흥시커차오구) |
입적지 | 종남산 |
종파 | 화엄종 |
사찰 | 오대산 청량사 |
사제 관계 | |
스승 | 법선, 법장 |
제자 | 규봉 종밀 |
저서 | |
주요 저서 | 『화엄경소』 『법계현경』 |
학문 | |
내전 | 화엄, 법화, 천태학, 우두선, 남종선, 북종선, 삼론교학 |
외전 | 경, 전, 자, 사를 비롯한 중국의 구류이학, 인도의 4베다, 5명 |
기타 | |
경전 번역 참여 | 대흥선사 역경장에서 6년간 경전 77부 번역에 기여 |
저서 | 총 42종 600여권 (현재 21종 400여권 남아있음) |
2. 생애
청량 징관은 당나라 시대의 승려로, 9살에 체진대사 문하에서 출가하여 '이관(理觀)'을 수행했다. 스승 법선화상으로부터 화엄을 전해받고 법계는 모두 너에게 있다고 인가를 받았다. 10가지 서원을 세워 수행을 철저히 했다.[22]
징관은 '사법계(四法界)'라는 독창적인 교학 체계를 제시하여 화엄종 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3][10] 사법계는 현상 세계를 이해하는 네 가지 관점을 의미한다.[15]
776년 오대산의 여러 사찰을 순례하고, 대화엄사에서 화엄경을 강의하면서 주석서를 지었다. 796년 반야(般若)가 주관하는 40화엄경 번역에 참여했고, 주석서를 지었다.[23]
월주 산음(현대 사오싱, 저장성) 출신으로,[3] 11세에 집을 떠나 본주(本州)의 보림사(寶林寺)에서 수련생이 되었다.[4] 20세(757년)에 탄이(曇一, 692-771) 아래서 정식 승려가 되었고, 창조(常照)에게서 보살계를 받았다.[3] 758년경 강소성 룬저우(현재의 전장)에 있는 기사사(棲霞寺)에서 수행했으며, 스승은 계율 스승인 리(醴律師, Li lüshi)였다.[5][4]
중국 중부, 서부, 북부를 여행하며 다양한 불교 스승 아래서 수많은 저술을 공부했다. 난징에서 현벽(玄璧) 스승에게 "삼론종"의 가르침을, 당 대종 재위 기간(762년–779년) 동안 와관사에서 대승기신론과 ''대반열반경''을 공부했다.[5] 천축사(天竺寺)에 머물면서 절강성 항저우 주변의 첸탕으로 여행하며 화엄경과 법장의 주석인 ''화엄경''을 공부하고 수행했다.
선종 혜능의 하택종 우태아 무명(722–793) 아래에서 선을 수행했다.[3] 775년-776년 천태종 경계 담연 (711–782)의 제자였으며, 담연과 함께 법화경과 유마경을 공부했다.[2] "우두선"의 혜충(慧忠, 683–769)과 법흠(法欽, 714–792), 북종 노산 의부의 제자인 혜운(慧 雲, 생몰년 미상) 아래에서도 선을 수행했다.[3] 중국 철학 고전, 역사, 어원학, 범자 문자, 인도 철학, 사 베다, 오명, 만트라, 의례 등 비불교 과목에도 정통했다.[6]
주요 관심사는 ''화엄경''과 화엄학 연구였다. 법장 제자 혜원 (慧遠, 673–743)의 제자 법선(法詵, 718–778)에게 화엄을 공부했다.[2][3] 곧 ''화엄경'' 강론 및 해설로 엘리트 사회에서 알려졌다.[7]
776년 오대산으로 돌아와( 문수보살 거처) 15년 동안 머물렀다.[3] 화엄사(華嚴寺)에 거주하며 승려들이 저작을 위한 누각을 지었다. 784년-787년 799년 완성된 시카난다의 80권 ''화엄경'' 번역본 주석을 썼다. 같은 해 당 대종에게 청량 국사(淸凉國師) 칭호를 받았다. 건타유하(Gandavyuha) 번역 완성 후 대종 황제 요청으로 화엄 주요 개념을 명확히 했다. 796년 당 대종 초청으로 장안에서 인도 스승 반야(般若, 734–c. 810)와 ''화엄경'' 번역에 참여했다.[3] 대종은 보라색 가사와 "불법의 스승"(''교수 화상'') 칭호를 수여했다. 보라색 가사의 스승(796년), 국사(799년), 승려 교수(대 승려), 주지 승려(승통), 법사 청량(795년) 등 명예 칭호를 받았다.
810년 당 헌종 (805–806 재위)이 "법계" 설명을 요청, 회의 후 승통("수행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9명의 황제 중 7명을 가르친 존경받는 스승이었다.[8]
진지한 불교 수행자로, "허리띠와 탁발승 바랑, 여성 피함, 재가자 집 방문 피함, 눕지 않음, 명성과 재산 버림, ''법화경'' 암송, ''화엄경'' 가르침, 대승 경전 공부, 모든 존재 위한 연민" 등 서약을 유지했다.[9] ''송 고승전''과 ''화엄종 오조 간략 소개''는 10가지 서약의 두 가지 세트를 제공한다.
11세에 월주 보림사에 출가하여 천태종, 율종, 삼론종, 선종 등을 폭넓게 배웠다. 오대산 청량사에 머물며 화엄을 연구했다.
중국 화엄종은 두순 - 지엄 - 법장 - '''징관'''-규봉종밀로 이어지는 조통설을 세웠다. 그러나 징관은 법장에게 배우지 않았고, 법장 제자 혜원의 제자 법선에게 화엄학을 배웠다. 징관은 스승의 스승 혜원을 법장 뜻을 계승하지 않았다고 비판, 후세 조통설 성립 과정에서 혜원은 제외되고 징관이 4조로 위치하게 되었다.
징관은 '사법계' 설을 세워 화엄 교학에 기여했다.
3. 사상
단계 설명 사법계(事法界) 범인(凡人)들이 일반적으로 사물을 보는 관점. 모든 현상은 개별적이고 환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화엄종에서 널리 사용되는 물과 파도의 비유에서 현상은 파도로 비유된다. 이법계(理法界) 모든 사물에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관점. 즉, 모든 현상이 리(理, 궁극 원리), 일심(一心)(一心|이신중국어), 불성과 같은 모든 법의 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물과 파도의 비유에서 원리는 물로 비유된다.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이치(理)와 구체적인 사물(事)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공존하며 상호 융합한다는 관점. 물과 파도의 비유에서 파도가 곧 물이다라는 것으로 비유된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일체의 사물이 공(空)하다는 이치가 사라지고, 일체의 사물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공존하며 완벽하게 융합된다는 관점. 모든 현상은 동일한 궁극적 근원을 공유하므로 서로 연결되고 상호 관통한다. 물-파도 비유에서 모든 파도가 같은 바다의 일부이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비유된다.
징관의 사법계는 인도 불교가 공(空)의 세계에 머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제시하여 중국 불교의 현실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선의 십우도에서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와 유사하다.
3. 1. 교리적 문제
청량징관은 법장의 사상을 면밀히 따르려 했다.[3] 그는 혜원(법장의 제자)이 법장의 가르침을 충분히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혜원은 법장의 교판 체계(판교)를 수정했는데,[3] 이 체계는 모든 불교 가르침을 소승, 초등 대승(중관 및 유가), 최종 대승(여래장 사상, ''대승기신론''), 돈교(《유마경》), 원교(화엄 일승)의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혜원은 유교와 도교를 이 체계에 포함시켰으나, 청량징관은 혜원과 도교 및 유교를 불교 교리 체계의 일부로 본 사람들을 비판했다.[3] 또한 혜원은 돈교가 완전한 침묵에 기반하고 있어 교리적 내용을 갖지 않으며, 궁극적 진리의 표현 불가능성에 대한 진술일 뿐이므로 교판 체계에 속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청량징관은 이 견해를 비판하며 "돈교"를 그 자체로 적절한 교리로 보았다.[10]
3. 2. 종교 융합
청량은 선종을 포함한 여러 불교 종파, 현장의 유식, 천태종 등을 참고하여 화엄 사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11][3][12] 배휴의 묘지명 등 청량의 생애에 대한 자료에는 그가 대승경전, 화엄경, 유식종의 저작(예: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삼론종, 여러 선사, 지의의 저작(예: 마하지관), 도생, 승조 등 다양한 중국 불교 전통과 경전을 폭넓게 연구했음이 나타나 있다.[11][3][12]
청량은 화엄 주석에서 종종 다른 종파의 관점을 통합했다. 예를 들어 법장이 현장의 유식유가행파를 비판했지만, 청량은 종종 현장의 ''성유식론''에 의존하고 인용했다.[3][12] 청량은 법장의 교리 도식인 돈오(頓悟)를 선불교 가르침으로 해석했는데, 법장은 이를 단지 유마경 가르침으로 보았다. 청량에 따르면 선의 가르침은 마음이 부처임을 가르치고 비언어적 방법을 통해 이 지혜를 전달한다.[10] 이처럼 청량은 화엄 다음으로 선불교 가르침을 매우 존중했던 것으로 보인다.[3] 청량은 부주석에서 자신의 저술이 "남종과 북종 선의 수행을 통합"하고 "천태와 남악혜사의 삼관(三觀)의 신비로운 의도를 융합"하는 데 의존한다고 말했다.[13] 이는 청량이 자신의 종교 융합적 경향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13]
선불교의 영향과 관련하여 청량은 북종, 남종, 우두 선의 자료를 활용했지만, 자신을 이들 중 어느 곳에도 속한다고 여기지 않고 "심종"(''xinzong'', 心宗)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의 영향을 받았지만, 요시즈 요시히데는 청량을 어떤 선종과 연관 짓기보다는 다양한 선의 자료를 활용하고 평가한 화엄의 대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3] 청량은 대승경전의 교리적 연구를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선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3]
청량은 저술에서 유교와 도교 자료를 활용했지만, 이는 단지 방편일 뿐이며 이러한 가르침을 불교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그는 "그들의 말을 빌리되 그 의미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14]
3. 3. 사법계(四法界)
청량징관이 화엄 사상에 기여한 주요 독창적인 내용은 사법계(四法界, 四法界|쓰파제중국어) 이론이다.[3][10] 이 이론은 청량징관의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華嚴法界觀門|화옌파제관먼중국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15] 법계는 보살이 알아야 할 궁극적 실재이며, 사법계는 궁극적 진리를 이해하는 네 가지 방식이다.[15]
사법계는 다음과 같다.[15][3][10][16]
# '''사법계''' (事法界, 事法界|스파제중국어)는 모든 법을 개별적인 현상(事, 事|스중국어)으로 간주하는 관점으로, 환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물과 파도에 대한 널리 사용되는 화엄의 비유에서, 현상은 파도로 상징된다.
# '''이법계''' (理法界, 理法界|리파제중국어)는 모든 현상을 ''리''(理, 理|리중국어, 궁극 원리), 즉 "공(空)", "일심(一心)"(一心|이신중국어)과 불성, 모든 법의 근원 또는 기원, 그리고 모든 법의 불변하는 본질, 즉 모든 것의 궁극적 본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궈첸에 따르면, 이는 불이원적이고 초월적인 절대이다. 물과 파도의 비유에서, 원리/본질은 물로 상징된다.
# '''이사무애법계''' (理事無礙法界, 理事無礙法界|리스우아이파제중국어)는 모든 현상과 궁극 원리, 즉 순수한 근원/본질의 상호 관통 및 융합을 의미한다. 물과 파도의 비유에서, 이 단계는 파도가 물''이다''는 것으로 상징된다.
# '''사사무애법계''' (事事無礙法界, 事事無礙法界|스스우아이파제중국어)는 모든 현상이 서로 완벽하게 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융합되지만, 또한 그 특수성을 잃지 않는다. 모든 현상은 동일한 궁극적 근원을 공유하므로, 서로 연결되고 상호 관통한다. 물-파도 비유에서, 이것은 모든 파도가 같은 바다의 일부이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상징된다.
임레 하마르에 따르면, 법장이 모든 법의 무애와 융합을 강조한 반면, 청량징관은 이사무애를 강조했다.[3] 하마르는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 공통 근원(일심, 순수한 근원)이 모든 현상의 상호 관련된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적고 있다.[3]
사법계란 현상 세계에 대한 네 가지 관점이다.
# '''사법계'''(事法界) - 우리 범인들의 일반적인 사물에 대한 관점이다.
# '''이법계'''(理法界) - 모든 사물에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관점.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 실체가 없고 공(空)하다는 이치와 구체적인 사물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공존한다는 관점.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 - 일체의 사물이 공(空)하다는 이치가 사라지고, 일체의 사물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공존한다는 관점.
인도 불교가 공의 세계에 머무는 것에 반해, 한 번 공의 세계에 들어갔다가 현상 세계로 돌아오는 점이 중국 불교다운 현실성을 느끼게 한다. 선의 십우도에서 마지막에 시내로 돌아오는 것(입전수수)과 공통점을 느끼게 한다.
4. 저서
- 華嚴經疏|화엄경소중국어
- 華嚴經疏鈔|화엄경소초중국어
- 演義鈔|연의초중국어
청량징관은 30편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4] 그의 저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大方廣佛華嚴經疏|대방광불화엄경소중국어』(T. 1735)와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중국어』(T. 1736)이다.[3]
청량징관의 주석은 가장 복잡하고 상세한 중국 불교 경전 주석 중 하나로, “현담(玄談)”이라고 불리는 상세한 서론, 경전의 정교한 구조 분석(과판[科判]), 경전 내용의 구절별 상세 설명을 포함한다. 그는 『화엄경』 주석에서 300개가 넘는 불교 경전을 인용하여 일종의 교리 개요 또는 불교 교리의 백과사전을 만들었으며, 중국 고전도 인용했다.[3]
청량징관의 다른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4][3]
- 《華嚴經綱要|화엄경강요중국어》
- 《五蘊觀|오온관중국어》
- 《三聖圓融觀門|삼성원융관문중국어》(T. 1882): 보현, 문수, 비로자나의 상호 융합된 본성에 대해 가르친다.
- 《華嚴心要法門|화엄심요법문중국어》(X. 1005): 순종(재위 805년) 황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으며, 규봉종밀이 이에 대한 주석을 썼다. 《경덕전등록(T. 2076)》에도 수록되어 있다.
- 《華嚴法界玄鏡|화엄법계현경중국어》(T. 1883): 두순의 《華嚴法界觀門|화엄법계관문중국어》에 대한 주석으로, 토마스 클리어리에 의해 번역되었다.
- 《新譯華嚴經七處九 會頌釋章|신역화엄경칠처구회송석장중국어》(T. 1738)
11세기에는 진수 징원(1011-1088 CE)이 80권의 중국어 ''화엄경''의 각 구절에 징관의 주석서를 통합한 최초의 편집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 결과 ''華嚴經疏注|화엄경소주중국어''가 출판되었다.[17]
- 「大方廣佛華嚴經疏|대방광불화엄경소중국어」(화엄경소, 대소 등으로 약칭): 팔십화엄의 주석서.
-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중국어」(연의초, 대소초 등으로 약칭): 화엄경소를 더욱 상세하게 설명한 것.
- 「法界玄鏡|법계현경중국어」
5. 청량징관에 대한 찬송
청량징관에 대한 찬송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화엄전에 있는 청량진관의 진영에는 다음과 같은 찬송이 적혀 있다.[24]
비로자나회해에서 보문의 지혜를
누가 그 정신을 화엄경에서 얻었을까?
감로법을 기울여 남긴 모습은 맑고 영원해
두루 마시게 하니 모두가 아름답고, 환영을 눈여겨보면
어떻게 홀로 칠제(七帝)의 사표이며 진실된 만세의 모범일까?
무경자수(1664~1727)는 청량국사 진영을 보고 다음과 같은 상찬(像讚)을 지었다.[25]
종이 위에 누가 공의 도리를 전하는 그림을 그렸는가?
국사의 진실하고 미묘한 참모습이여,
입은 불조의 산하를 다 마시고 눈은 하늘과 땅에 걸리니,
해와 달을 한가롭게 하며 도행은 우주에 현풍을 떨쳤다.
드높은 명망은 인천의 덕해에 너그러움이 되고
상이 없는 상 가운데 모범된 상으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본래 면목을 반조하게 하네
5. 1. 송광사 화엄전 진영 찬송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화엄전에 있는 청량진관의 진영에 적힌 찬송은 다음과 같다.비로자나회해에서 보문의 지혜를
누가 그 정신을 화엄경에서 얻었을까?
감로법을 기울여 남긴 모습은 맑고 영원해
두루 마시게 하니 모두가 아름답고, 환영을 눈여겨보면
어떻게 홀로 칠제(七帝)의 사표이며 진실된 만세의 모범일까.[24]
5. 2. 무경실중어록 진영 상찬
무경자수(1664~1727)가 청량국사 진영을 보고 지은 상찬(像讚)이다.
종이 위에 누가 공의 도리를 전하는 그림을 그렸는가?
국사의 진실하고 미묘한 참모습이여,
입은 불조의 산하를 다 마시고 눈은 하늘과 땅에 걸리니,
해와 달을 한가롭게 하며 도행은 우주에 현풍을 떨쳤다.
드높은 명망은 인천의 덕해에 너그러움이 되고
상이 없는 상 가운데 모범된 상으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본래 면목을 반조하게 하네[25]
6. 평가 및 영향
청량 징관은 천태종, 율종, 삼론종, 선종 등 여러 불교 종파에서 폭넓게 공부했으며, 특히 화엄종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오대산 청량사에 머물면서 화엄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3]
중국 화엄종은 두순, 지엄, 법장, '''징관''', 규봉종밀로 이어지는 계보를 확립했다. 하지만 징관은 법장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법장의 제자인 혜원의 제자 법선에게 화엄학을 배웠다.[2][3] 징관은 혜원이 법장의 가르침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고 비판했기 때문에, 후대에 화엄종 계보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혜원은 제외되고 징관이 4조(祖)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징관은 '사법계(四法界)' 설을 제시하여 화엄 교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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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93> 청량징관(淸凉澄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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