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츠라 마사카즈는 1962년 후쿠이현에서 태어난 일본의 만화가이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만화계에 입문하여, 1980년 테즈카상에 작품을 출품했다. 1981년에는 '전학생은 헨소우세이!?'로 테즈카상 준입선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윙맨', '비디오 걸', 'I"s', 'ZETMAN' 등이 있으며, 동료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와 협력하여 '사치에 짱 구!!'와 'JIYA'를 제작하기도 했다. 카츠라는 변신 히어로물, 연애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영화 감상, 배트맨 굿즈 수집 등 취미 생활을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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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라 마사카즈는 후쿠이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또는 3학년 때 테즈카 상에 작품을 출품하여 상금을 받기 위해 만화 업계에 발을 들였다.[1]
''비디오 걸 아이''는 OVA으로 제작되었고, 실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5권으로 구성된 ''DNA²''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짧은 OVA로 각색되었다. ''I"s''는 두 개의 OVA 시리즈로 각색되었는데, 하나는 2화짜리 사이드 스토리이고, 다른 하나는 만화의 6화짜리 요약본이다.
카츠라는 ''비디오 걸 아이'' OVA의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곡의 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8년토리야마 아키라와 협력하여 ''점프 SQ'' 단편 ''사치에 짱 굿!!''을 제작했고,[2][3]2009년에는 ''주간 영 점프''에 3화짜리 단편 ''Jiya''를 위해 다시 함께 작업했다.[6] 두 사람은 1980년대 초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소개로 친구가 되었으며, 서로의 만화에 서로를 패러디하기도 했다.[1][4]
2008년 카츠라는 반다이의 "무비 리얼라이제이션" 액션 피규어 라인에 맞춰 영화 ''다크 나이트''에 사용된 코스튬을 기반으로 한 배트맨 의상 디자인 일러스트를 제작했다.[7]
2. 1. 초기 (1962년 ~ 1980년대 초)
1962년 (쇼와 37년) 후쿠이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려 수상 경력도 있었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울트라 시리즈나 가면라이더 시리즈와 같은 특촬 히어로물에 열중했다.[19]
초등학생 때 지바현지바시 무라타정으로 이사했고,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같은 현 이치하라시 야와타로 이사하여 20세까지 그곳에서 보냈다.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 그림 그리는 다른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때 만화 업계에 발을 들였는데, 테즈카 상에 작품을 출품하여 상금을 받기 위해서였다.[1] 그러나 그는 만화를 읽고 자라지 않았으며, 대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1]
중학교 때 V55 (테크닉스)라는 500000JPY짜리 컴포넌트 스테레오를 갖고 싶어서, 당시 500000JPY의 상금을 노리고 데즈카상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처음 사용한 도구는 테즈카 오사무의 입문서를 읽고 용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20] 그전까지는 만화가를 목표로 한 적도 없고 만화도 거의 읽지 않았기에,[21] 처음에는 상금만이 목적이었다. 목표로 했던 컴포넌트는 상금을 받기 전에 사게 되었지만, 만화를 계속 그리면서 그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21]
1980년 고등학교 졸업 직전, 프레시 점프상에 투고한 작품이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눈에 띄었고, 동시에 테즈카상에 응모한 「츠바사」가 가작에 입선했다.[22] 고등학교 시절 전자전대 덴지맨을 계기로 토에이의 특수 촬영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들었다.[23] 특수 촬영 히어로물의 팬이었기에, SF 작품만을 그렸지만, 담당 편집자 토리시마의 권유로 러브 코미디 작품 「전학생은 변장생!?」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테즈카상 준 입선에 입상하여 『주간 소년 점프』 (이하 『WJ』)에 게재되었고, 전문학교 재학 중에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후 『WJ』에서 『윙맨』 연재를 시작하여 바빠졌고, 3학년 진급에 실패하면서[21] 전문학교를 중퇴했다.[12] 『윙맨』은 히어로물에 러브 코미디 요소를 더한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22] 『드래곤볼』 종료 후, 『초기동원 밴더』, 『프레젠트 프롬 레몬』 등 단기 연재가 이어지며 불운의 시대를 맞이했다.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지원으로 연애물에 착수, 1989년에 "비디오 걸"을 발표하고, 같은 해 이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 걸 아이』 연재를 시작한다.
『비디오 걸 아이』는 단행본 15권까지 이어진 히트작으로, OVA화, 실사 영화화 등 다양한 미디어 믹스 전개가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카츠라에게 만화가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1989년영화 『배트맨』을 계기로 카츠라는 『배트맨』의 팬이 되었다.[24]
2. 3. 주간 영 점프 이적 이후 (2002년 ~ 현재)
2000년 (헤이세이 12년)에 『I"s』 연재가 종료되고 같은 해에 게재된 단편 「Dr. 챤버리」를 마지막으로, 카츠라는 오랫동안 활동 무대로 삼았던 『주간 소년 점프』를 떠났다.[31]2002년 (헤이세이 14년)에 발표된 『M 완전판』 이후 활동 무대를 『주간 영 점프』로 옮겨, 같은 해부터 『ZETMAN』 연재를 시작했다. 5년 이상[32] 연재가 이어지고 있으며, 카츠라의 최장 작품이 되었다.
이적 후에 발매된 『I"s』의 완전판은 『주간 소년 점프』 연재 작품임에도 영 점프 코믹스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2008년에는 절친이자 드래곤볼 및 닥터 슬럼프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와 협력하여 점프 SQ 단편 사치에 짱 굿!!을 제작했다.[2][3] 두 사람은 1980년대 초, 그들의 공동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소개로 친구가 되었으며, 서로의 만화에 서로를 패러디하기도 했다.[1][4] 토리야마는 두 캐릭터가 "융합"하는 아이디어를 드래곤볼에 적용하게 된 것은 카츠라의 아이디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퓨전 기술이 탄생했다고 한다.[5] 그러나 카츠라는 이것이 루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 그에게 그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토리야마가 듣지 않았고 나중에 토리야마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 그들은 2009년주간 영 점프에 3화짜리 단편 ''Jiya''를 위해 다시 함께 작업했다.[6]
2008년 카츠라는 반다이의 "무비 리얼라이제이션" 액션 피규어 라인에 맞춰 영화 다크 나이트에 사용된 코스튬을 기반으로 한 배트맨 의상 디자인 일러스트를 제작했다.[7]
2. 4. 토리야마 아키라와의 협업
토리야마 아키라와 카츠라 마사카즈는 토리시마 카즈히코를 통해 알게 된 절친한 친구 사이로, 서로를 몇 안 되는 만화가 친구 중 가장 가깝게 여긴다.[112][113] 어시스턴트 경험이 없는[114] 카츠라는 토리야마에게 만화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115] 토리야마를 "스승과 같다[116]", "학교 선생님 같은 존재[9]"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초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소개로 만나[1][4]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계왕에게 선보인 개그는 카츠라가 고안한 것이며, 퓨전 포즈에도 카츠라가 관여했다.[121] 토리야마는 ''드래곤볼''의 퓨전 기술이 카츠라의 아이디어라고 언급했지만,[5] 카츠라는 자신이 제안은 했으나 토리야마가 듣지 않았고 나중에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반박했다.[1] 한편, "스즈카제의 판테온"은 토리야마와의 대화 중에 탄생했고,[116] 『D・N・A²』에서 주인공이 머리 색을 바꿔 변신하는 설정은 토리야마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115] 카츠라가 "슈퍼 사이야인과 비슷하지 않냐"고 묻자, 토리야마는 "괜찮아, 아무도 모를 거야"라고 답했지만, 독자들은 "베끼지 마!"라며 비판했다.
초기에 두 사람은 서로 시골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닥터 슬럼프』에 카츠라를 시골뜨기 캐릭터로,[117] 『윙맨』에 토리야마를 도시 사람인 척하는 "학생회 토리야마[118]"나 "Mr. 마야리토[119]"로 등장시키는 등 상대방이 더 촌스럽다고 놀리는 모습을 『점프』 지면에서 보여주었다. 카츠라가 병으로 『윙맨』을 잠시 쉬었을 때, 토리야마는 "힘내라! 힘내라! 카츠라 군!" 응원 코너에 "시골 친구"로서 제목과 그림을 기고하기도 했다.[120]
2008년, 두 사람은 『점프 SQ』에 단편 『사치에 짱 굿!!』(원작: 토리야마 아키라, 만화: 카츠라 마사카즈)을 공동 제작했다.[2][3] 2009년 말부터는 『주간 영 점프』에서 『JIYA -지야-』를 3회 단기 연재했다(「카츠라 마사카즈×토리야마 아키라 합작 단편집 카츠라 아키라」 수록).[123][124][125][126]
OVA 『비디오 걸 AI』의 사운드트랙CD (둘 다 발매는 빅터 음악 산업)에서, 노래, 작사, 작곡에 일부 참여하고 있다.
발매일
음반 제목
수록곡
참여
1992년 3월 27일
비디오 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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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27일
「비디오 걸 2nd」 이미지 사운드트랙 -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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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풍
같은 만화가이자 친구인 토리야마 아키라는 카츠라의 작풍에 대해 "(카츠라는)감동시키고 싶어 안달이다"라고 평했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인간적인 면을 표현하는 것을 싫어하고 밝고 시시한 대화를 좋아하는 반면, 카츠라는 다소 어둡고[21] 감동을 자아내는 듯한 묘사를 좋아한다[39]。 카츠라는 아스나 히로시의 "슬픈"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21]。
『코미커즈』 1997년 10월호에서는 "미소녀와 히어로를 컬러로 그리게 하면 따라올 자가 없다[40]"라는 표현으로 카츠라의 작품의 특징을 설명했다.
4. 1. 히어로물
테즈카 상 가작 수상작인 '츠바사'부터 장기 연재작인 'ZETMAN'에 이르기까지, 변신 히어로를 다룬 작품이 많다.[41] 상술한 바와 같이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촬 히어로에 열중하여 그 트레이스 같은 작품만 그렸던 적이 있어, 초기의 작품에는 특촬 히어로물의 영향이 강하다. 또한, '배트맨' 공개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같은 작품의 영향을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 (특촬 히어로・배트맨에 대해서는 취미 절에서 후술)
카츠라 본인은 히어로물에 대한 고집이 있어, 'ZETMAN'에 대해서는 이야기의 구상으로는 변신 히어로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내가 하는 한 히어로잖아"라는 생각에서 변신 히어로물로 그리고 있다.[42]
4. 2. 연애물
드래곤볼 종료 후, 카츠라는 초기동원 밴더, 프레젠트 프롬 레몬 등 단기 연재작 2편으로 불운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의 지원으로 "연애물"에 도전, 드래곤볼과는 반대로 연애에 SF 요소를 도입한 단편 비디오 걸을 1989년에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디오 걸 아이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비디오 걸 아이는 단행본 15권까지 발매되며 OVA, 실사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믹스가 이루어진 히트작이 되었다. 이 작품은 카츠라에게 만화가로서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작품 스타일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같은 만화가이자 친구인 토리야마 아키라는 카츠라의 작풍에 대해 "(카츠라는)감동시키고 싶어 안달이다"라고 평했다. 카츠라는 아스나 히로시의 "슬픈" 작품의 영향을 받아 다소 어둡고 감동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21].
코미커즈 1997년 10월호에서는 "미소녀와 히어로를 컬러로 그리게 하면 따라올 자가 없다[40]"라는 표현으로 카츠라의 작품의 특징을 설명했다. 카츠라는 소년 잡지 연재를 위해 러브 코미디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여[40], 비디오 걸 아이, I"s와 같이 연애 요소가 강한 작품을 통해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러한 연애 요소는 편집부의 의향을 반영한 것이며[30], 첫 러브 코미디 작품인 전학생은 헨소우세이!?도 담당자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집필한 것이었다[33]. 카츠라는 연애 작품이 자신의 취미와는 다르지만 싫어하지는 않으며, 첫 러브 코미디를 큰 어려움 없이 그릴 수 있었던 것이 이후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회상한다[33].
한편, 연애물에 대해서는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내 인생의 개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언급하고 있다[13].
4. 3. 그림체
카츠라 마사카즈는 그림 실력이 높이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그림 실력을 그다지 평가하지 않으며, 작품에 맞춰 의도적으로 그림체를 변화시켜 왔다.[14][21][56]
큰 전환점은 비디오 걸의 원형인 단편 「비디오 걸」 무렵으로, 그전까지의 그림체를 버리고 현실적인 그림체를 추구하기 시작했다.[57]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자신의 그림보다 현실의 여자아이가 더 귀엽다고 생각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58][57]
이후 DNA²에서는 코믹적인 느낌을 살려 그렸고,[56] ZETMAN에서는 진지한 스토리에 맞춰 극화체로 그렸다.[59]토리야마 아키라와의 합작 사치에 쨩 GO!!에서는 스스로 봉인했던 데포르메 그림체에도 도전했다.[47]
카츠라의 미소녀 그림은 정평이 나 있지만, 윙맨 연재 당시 담당 편집자에게 "성적 매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33] 이후 소녀의 귀여운 몸짓이나 표정, 성적 매력을 의식하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33]
초기부터 미소녀 묘사는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특히 엉덩이 묘사는 평가가 높다. 토리야마 아키라는 "카츠라 군이라면 엉덩이"라며 『사치에 짱 구!!』 주인공 사치에의 점을 엉덩이에 설정하기도 했다.[62]
미소녀를 그릴 때, 카츠라는 그라비아 잡지 등에서 이미지를 얻지만 특정 모델을 정하지는 않는다.[64] 특정 모델을 정하고 그리면 그림의 밸런스가 좋지 않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65]
카츠라 마사카즈의 취미는 영화 감상[66]과 굿즈 컬렉션[40]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촬 히어로에도 열중했었다[23]。
영화 감상을 위해 자택 지하에는 배트맨 굿즈 컬렉션 룸을 겸한 AV 룸을 설치했으며, 상당한 예산을 들이고 있다[67]。 좋아하는 영화 감독으로는 샘 레이미를 꼽았으며, 『이블 데드』부터의 열렬한 팬이다[68]。2002년(헤이세이 14년)의 『스파이더맨』 개봉 당시 레이미가 방일했을 때, 『주간 영 점프』의 기획으로 대담을 가졌다[69]。
특수 촬영 변신 히어로의 팬이며,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슈퍼 전대 시리즈의 『전자전대 덴지맨』, 우주형사 시리즈의 『우주형사 샤이다』, 울트라 시리즈의 『울트라맨』을 꼽고 있다[44]。특히 고등학교 시절[23]에 만난 『덴지맨』은 특수 촬영 히어로에 열중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으로, "에포크"이며 "내 안에서 전대물 중 저 작품을 뛰어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수 촬영에 대한 열정은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전문학교 시절에는 자주 제작 영화에서 『태양전대 선발칸』의 코스프레를 했으며[21], 학교 축제에는 『대전대 고글 파이브』의 레드의 코스프레로 참가했다[71]。
특수 촬영은 단순한 취미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토에이 작품은 카츠라가 히어로물을 그리게 된 원점이다[33]。데뷔 시기에 집필된 단편 「학원부대3파로칸」과 그 속편 「학원부대3파로칸II」는 전대물의 자기소개 액션을 만화로 표현할 목적으로 집필되었으며[72], 『선발칸』이나 『배틀피버 J』와 같은 전대물의 패러디 작품이다。
데뷔의 계기가 된 단편 「츠바사」는 『덴지맨』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그린 작품이며[72], 이 작품을 바탕으로 그려진 연재 데뷔작 『윙맨』도 여러 면에서 특수 촬영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애초에 이 작품은 "토에이의 특수 촬영물을, 스스로 움직이게 해보고 싶다"는 동기로 그려진 작품이며, 작중 히어로인 윙맨의 디자인은 새를 기본으로 한 다음, "덴지맨의 눈이 없는 부분"과 "가슴에서 팔까지의 하얀 라인"을 바탕으로, 덴지맨의 심플함을 목표로 디자인된 것이다[44]。또한 『윙맨』이라는 명칭도 울트라맨에 글자 수와 "우"로 시작하여 "맨"으로 끝나는 부분을 맞춰서 명명된 것이다[44]。
연재 시작 후에는 윙맨의 의상을 맞춤 제작으로 제작。자신의 체형에 맞춘 특주품이며 제작 비용은 100만엔 이상이었다。그 의상을 입고, 단행본 각 권의 목차 배경에 사진을 게재[73], 또한 단행본에서는 보너스 페이지에서 변신 액션의 해설도 작성하고 있다[74]。『팬 로드』1984년 4월호에서도 윙맨의 의상을 들고 "카츠라 마사카즈 선생님 코스프레 대담"을 진행하여, 팬 로드 측이 준비한 당시 여성 코스플레이어 "오가와 미쿠"와 지면을 장식했다。또한, 『주간 소년 점프』1985년 6월 17일호에서 연재 100회를 맞이한 기념으로, 새 코스튬을 제작(레인보우 조형 기획제[75]), 카츠라가 직접 착용하여 권두 화보에서 선보였다。
카츠라는 배트맨 굿즈 수집가로도 유명하며, 1997년의 『배트맨 & 로빈 Mr. 프리즈의 역습』 및 2012년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팜플렛에 코멘트를 기고[40], 2008년에 반다이에서 발매된 『다크 나이트』의 액션 피규어 『MOVIE REALIZATION BATMAN&BAT-POD』에서는 슈퍼바이저를 맡아 디자인 어레인지와 패키지 일러스트를 담당했다[18][76][77]。 팬이 된 계기는 1989년 영화 『배트맨』(팀 버튼)이며[78][79][24], 이 작품으로 인해 『윙맨』의 연재 종료 후 싫증을 느끼고 있던 히어로물에 대한 열정이 재연되었다고 한다[21]。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카츠라에게 배트맨의 매력은 배트맨의 캐릭터성에 있다고 한다[78]。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박쥐 복장을 하고 어느 쪽이 악당인지 모르는 대응으로 깡패를 협박하는 행동이나, 무서운 용모를 하고 항상 화를 내는 정의의 아군 배트맨과 바보처럼 웃고 있는 악역 조커 둘 다 똑같이 광기에 차 있는 것이, 토에이 특촬물에 의해 만들어진 카츠라에게 있어서의 히어로상과는 달라 신선했던 점[78][80], 그리고 자신이 히어로인 것을 보고 싶어하는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 『윙맨』의 켄타와 싱크로한 점[78]을 그 매료된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적 캐릭터로는 조커를 꼽으며, 적이 조커였던 것도 배트맨에 몰두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10]。
배트맨은 카츠라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SHADOW LADY』와 단편 「ZETMAN」은 배트맨 세계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다[30][85]。 보다 직접적인 묘사로는, 머리의 "뾰족한 귀"를 배트로 바꾼 패러디 캐릭터 "밧토 맨"이 『전영소녀』의 작중에 등장하고 있다[86]。
애견은 배트맨 등장 캐릭터의 알프레드에서 따와 암컷이기 때문에 "알프레코"라고 이름 붙였다[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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