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양미술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국립서양미술관은 마쓰카타 고지로의 미술품 소장품을 중심으로 1959년 6월 10일에 설립된 미술관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본관은 극동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의 건축물로, 201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약 4,500점의 서양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여 국내외 작품을 선보인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59년 설립된 미술관 - 이시카와현립 미술관
이시카와현립 미술관은 가나자와시에 위치하여 소장품 전시와 문화 행사를 통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미술관으로, 특히 노토반도 지진 피해 이후 복구 작업과 지역 사회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 찬디가르
찬디가르는 1947년 인도 분할 이후 펀자브 주의 새로운 수도로 건설된 계획 도시이며,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카피톨 콤플렉스를 비롯한 건축물로 유명하고, 펀자브 주와 하리아나 주의 공동 수도이자 연방 직할지이다. -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 롱샹 순례자 성당
롱샹 순례자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하여 프랑스 동부 벨포르 인근 언덕에 재건축된 성당 건축물로, 장소의 정신을 반영한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 서양 미술 -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사는 유럽, 중동, 러시아,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기원전 4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미술 역사를 다루며, 동굴 벽화에서 시작해 고대 문명, 그리스-로마 미술, 중세 미술,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거쳐 현대 미술 사조에 이른다. - 서양 미술 - 서양화
서양화는 서구 문명권에서 발전한 회화의 한 갈래로, 고대 미술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을 거쳐 19세기 개인의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20세기 다양한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통해 현대 미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국립서양미술관 | |
---|---|
지도 | |
기본 정보 | |
명칭 | 국립서양미술관 |
로마자 표기 | Gokuritsu Seiyō Bijutsukan |
영어 명칭 |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
약칭 | NMWA |
종류 | 미술관 |
전문 분야 |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미술 |
소장 작품 수 | 5772점 (기탁 작품 319점 별도) |
방문객 수 | 1,162,345명 (2016년) |
관장 | 마부치 아키코: 2013년 8월 - 2021년 3월 31일 다나카 마사유키: 2021년 4월 1일 취임 |
운영 주체 | 독립행정법인국립미술관 |
개관 | 1959년 6월 10일 |
소재지 | 일본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 공원 7-7 |
우편번호 | 110-0007 |
접근 | JR, 도쿄 메트로 우에노역에서 도보 게이세이 본선 게이세이우에노역에서 도보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건축 | |
건물 설계 | 르 코르뷔지에 |
연면적 | 17,369 제곱미터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공식 명칭 | 서양 국립 미술관 |
위치 | 우에노 황실 공원, 다이토구, 도쿄, 일본 7-7 |
일부 |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 근대 운동에 대한 탁월한 기여 |
기준 | (i), (ii), (vi) |
ID | 1321rev-016 |
등재 년도 | 2016년 |
면적 | 0.93 헥타르 |
완충 구역 | 116.17 헥타르 |
기타 | |
![]() | |
![]() |
2. 역사
국립서양미술관(NMWA)은 1959년 6월 10일에 설립되었다.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의 미술품 소장품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그의 사상이 미술관 건립에 반영되었다.[2] 마쓰카타는 서양 미술 전문 국립 미술관 건립을 희망했다.[2]
미술관은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개관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수집했다.[3] 주 목적은 대중에게 서양 미술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3] 개관 이후 일본 유일의 서양 미술 전문 국립 기관으로서 전시, 연구, 복원,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3]
1959년(쇼와 34년) 설립된 국립서양미술관은 서양미술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유일의 국립미술관이다.[28] 마쓰카타 고지로가 유럽에서 수집한 인상파 등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의 회화·조각 중심의 마쓰카타 컬렉션이 소장품의 기초가 되었다.[28] 마쓰카타 컬렉션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적국 자산으로 압류되었으나, 미술관 신설을 조건으로 반환되어 본관이 건설되었다.
본관 설계는 르 코르뷔지에가 담당했고, 그의 제자인 마에카와 쿠니오, 사카쿠라 준조, 요시카와 타카마사가 실시 설계 및 감리에 협력하여 완성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건축물로서는 일본에서 유일하다.[29] 신관은 마에카와 쿠니오가 설계했다.
본관은 1998년(헤이세이 10년) 공공건축 100선에 선정되었고,[30] 2003년 DOCOMOMO JAPAN 선정 일본에서의 모더니즘 건축에 선정되었으며, 2007년(헤이세이 19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31][29] 2009년(헤이세이 21년)에는 “국립서양미술관 원지”로서 국가 등록기념물(명승지 관계)로 등록되었다.[32]
개관 후에는 마쓰카타 컬렉션 외에도 중세 말기·르네상스 시대 이후,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회화·조각 작품을 구입하여 상설 전시하고 있다.[28] 특히 서양의 올드 마스터(18세기 이전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으로서 일본에서 손꼽힌다.
2023년(레이와 5년) 가와사키 중공업과 오피셜 파트너 계약을 체결했다.[33]
2. 1. 설립 배경 및 마쓰카타 컬렉션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는 가와사키 중공업 사장으로 재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16년부터 유럽에서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34] 그러나 마쓰카타 고지로가 미술품을 수집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겹치며, 그가 사장으로 있던 가와사키 중공업은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이기도 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마쓰카타가 수집한 서양 미술품 중 상당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적국 자산으로 압류되었다.[35]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 일본은 프랑스에 마쓰카타 컬렉션 반환을 요청했다. 프랑스는 컬렉션을 보관할 미술관을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하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반환에 동의했다.
프랑스 측은 미술품이 일단 프랑스 소유가 된 후 일본에 "기증"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기증 반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36]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반환된 마쓰카타 컬렉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2. 2.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본관은 스위스계 프랑스 건축가 샤를-에두아르 잔느레(1887~1965)가 설계했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극동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이다.[15] 1959년 3월에 완공된 이 다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과 프랑스 간의 외교 관계 재개를 상징한다.[17]1955년 3월 건설 예정지에서 지진제가 거행되었고,[22] 같은 해 11월 르 코르뷔지에가 일본에 와서 건설 예정지를 시찰했다.[22] 르 코르뷔지에는 교토, 나라를 방문한 후 귀국했는데, 이 8일간의 일본 여행은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방일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1956년 7월에 기본 설계안, 1957년 3월에 실시 설계안, 그리고 6월에는 실시 설계 부속 설명서와 설계서 원도를 제출했다.[22][23]
르 코르뷔지에는 박물관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마스터플랜을 설계했다. 설계 자체가 당초 계획을 훨씬 넘어서는 건물로 발전하면서 도서관, 소규모 강당, 귀빈실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외된 요소들은 향후 확장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도에 남겨졌다.[19]
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세 명의 일본인 제자, 마에카와 쿠니오(Kunio Maekawa), 사카쿠라 준조(Junzo Sakakura) 및 요시자카 타카마사(Takamasa Yoshizaka)에게 상세한 도면 개발 및 건설 감독 책임을 맡겼다.[18] 이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제출한 설계안을 바탕으로 실시 설계를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안은 미술관 본관 외에 강당과 도서관이 들어가는 부속동, 극장홀 동을 포함하는 대규모였지만, 재정난으로 부속동과 극장홀의 건설은 보류되었다. 그러나 홀은 후에 미술관 맞은편에 도쿄문화회관(마에카와 쿠니오 설계)이 세워져 형태를 바꿔 실현되었다.
건물의 모든 요소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가 적용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모듈러를 개발했는데, 이는 인체의 크기와 비율을 기반으로 건축을 인간의 정신에 맞추고 무한한 비율의 가능성을 인간의 형태에 맞게 조율하는 수단이다. 새로운 서양미술관에서는 구조 부재부터 건축 세부 사항과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모듈러 시스템이 적용되었다.[19]
1998년 이 건물은 종전 건설성의 조사에서 지역 사회에 잘 자리 잡은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17] 2005년에는 국제 기구 DOCOMOMO로부터 일본의 100대 모더니즘 건축물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24]
;세계유산
2007년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이 건물은 중요문화재로서 세계유산 문화재 후보 목록에 일본에 의해 등재되었다.
2016년 7월, 유네스코는 르 코르뷔지에의 17개 작품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는데, 여기에는 1959년에 건립된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포함되어 있다.[25]
프랑스 정부는 세계유산 등록의 전제 조건인 임시목록에 프랑스 국내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13개를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과 도시계획”(''L’œuvre architecturale et urbaine de Le Corbusier프랑스어'')으로 등재했다. 2007년 7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국립서양미술관을 포함하여 유네스코에 추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9월 14일 일본 정부는 프랑스 정부와 협력하는 형태로 유네스코에 국립서양미술관을 추천하기로 결정했고, 10월 9일까지 유네스코 임시목록에 등재되었다. 2008년 1월 7일 일본 정부의 “세계유산 조약 관계 부처 연락회의”에서 세계유산 후보로 유네스코에 추천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2009년 6월 27일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사 결과 “정보 조회”로 평가되어 등록은 보류되었다.[45] 2011년 2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추가 정보를 포함한 개정 추천서가 유네스코에 제출되었으나,[46] 같은 해 5월 28일 유네스코 자문 기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의 평가 결과, 세계유산 등록에 적합하지 않고 재추천도 불가능하다는 “미등재” 권고가 이루어졌다.[47] 그러나 같은 해 6월에 열린 제3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이코모스의 평가보다 상위인 “등재 연기” 평가를 받았고,[48] 그 후 국제 협의 등 재추천을 향한 활동이 계속되었다.[49]
세계 7개국에 산재하는 총 23개의 건축물을 일괄하여 유네스코에 신청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또한 일본 국내에 있는 문화유산을 외국 정부가 추천한 것도 역사상 처음이었다. 국립서양미술관은 2007년 12월 21일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50] 이는 건축 후 48년 시점의 지정으로, “건축 후 50년 이상 된 것이 대상”으로 여겨져 온 건축물의 중요문화재 지정 기준을 넘어선 최초의 사례이다.
이코모스는 2016년 5월 17일, 국립서양미술관을 포함한 7개국 17개 자산으로 구성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근대 건축 운동에 대한 현저한 공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것을 권고했고,[51] 7월 17일 제40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52]
3. 전시
국립서양미술관은 매년 특별전을 기획, 개최하며 국내외 사립 컬렉션 및 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을 전시한다.[3] 1963년 마르크 샤갈 작품 450점을 모아 국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전시회를 개최, 15개국에서 온 샤갈 작품들과 소련 대여 회화 8점을 포함하여 작가 생전 가장 종합적인 전시로 평가받았다.[4]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여 2019년 1월 런던 국립미술관은 60여 점의 회화를 대여, 도쿄 국립서양미술관과 오사카 국립미술관 순회 전시를 발표했다.[5]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포함되어 일본에 처음 소개될 예정이었다.[6]
3. 1. 상설 전시
국립서양미술관(NMWA)은 설립 이후 매년 미술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품을 구축하고 발전시켜 왔다.[3]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회화와 조각 작품 등 약 4,5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개관 이후 수십 년 동안 소장품은 계속 확장되었다.[2]마쓰카타 컬렉션을 중심으로, 중세 말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을 시대별, 사조별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이전의 종교화와 19-20세기 프랑스 회화 작품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회화: 18세기 이전'''
본관에는 베로네세[7], 루벤스[8], 브뤼겔, 프라고나르[9] 등의 작품을 포함한 18세기 이전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회화 작품의 상당수는 기독교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종교화이다.
'''회화: 19세기-20세기'''
신관에는 외젠 들라크루아, 귀스타브 쿠르베, 에두아르 마네, 르누아르, 모네, 반 고흐, 고갱, 모로 등의 작품을 포함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의 프랑스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10] 또한, 마르케, 피카소, 수틴, 에른스트, 미로, 뒤뷔페, 폴록 등 차세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11]
'''드로잉'''
부셰, 프라고나르, 들라크루아, 모로, 로댕, 세잔 등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화'''
뒤러, 홀바인, 렘브란트, 칼로, 피라네시, 고야, 클링거 등의 작품이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걸쳐 전시되어 있다.[12]
2019년 3월 말 현재 소장 작품 수는 6429점이다. 상세 내역은 다음과 같다. [58]
종류 | 회화 | 소묘 | 판화 | 조각 | 사진 | 공예 | 서적 | 기타 참고품 |
---|---|---|---|---|---|---|---|---|
수량 | 504점 | 400점 | 4153점 | 105점 | 104점 | 824점 | 72점 | 267점 |
작품 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판화 작품 중 약 1700점은 도미에의 판화이다.[59]
'''주요 작품'''
- 14세기 시에나파 『성 미카엘과 용』 14세기
- 크리벨리 『성 아우구스티누스』1487년경 (구 마쓰카타 컬렉션)
- 베로네세 『성 카타리나의 신비로운 결혼』1547년경
- 틴토레토 『다비드로 변장한 젊은 남자의 초상』1555-1560년경
- 바사리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1570년경
- 얀 브뤼헐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는 숲 풍경』1599년
- 라 투르 『성 토마스』1624년경
- 레니 『루크레티아』1636-1638년경
- 돌치 『슬픔에 잠긴 성모』1650년경
- 리베라 『철학자 크라테스』1636년
- 루벤스 『잠자는 두 아이』1612-1613년경, 『풍요』1630년경
- 카페 『자화상』1783년경
- 들라크루아 『예수의 장례식』1859년
- 코로 『나폴리 해변의 추억』1870-72년
- 밀레 『봄 (다프니스와 클로에)』1865년 (마쓰카타 컬렉션)
- 모로 『감옥의 살로메』1873-76년경 (마쓰카타 컬렉션)
- 쿠르베 『생각에 잠긴 집시 여인』1869년 (마쓰카타 컬렉션)
- 피사로 『정담』1881년경 (마쓰카타 컬렉션)
- 모네 『보트 놀이』1887년 (마쓰카타 컬렉션)
- 모네 『수련』1916년 (마쓰카타 컬렉션)
- 르누아르 『알제리풍 파리 여인들』1872년 (마쓰카타 컬렉션)
- 고갱 『해변에 선 브르타뉴 소녀들』1889년 (마쓰카타 컬렉션)
- 로세티 『사랑의 잔』1867년 (구 마쓰카타 컬렉션)
- 드니 『춤추는 여인들』1905년 (마쓰카타 컬렉션)
- 로댕 『청동 시대』, 『세례자 요한』,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 (마쓰카타 컬렉션)
3. 2. 특별 전시
국립서양미술관은 매년 특별전을 기획하고 개최하며, 국내외의 다양한 사립 컬렉션과 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을 전시한다.[3]연도 | 전시명 | 내용 및 특징 | 관람객 수 (참고) | 비고 |
---|---|---|---|---|
1963년 | 마르크 샤갈 | 15개국에서 온 샤갈의 작품 450점 전시. 소련 대여 회화 8점 포함. 작가 생전 가장 종합적인 전시로 평가.[4] | 국제 미술계에 큰 반향 | |
1964년 | 밀로의 비너스 특별 공개 | 38일간 전시 (4월 8일 ~ 5월 15일). 입장 행렬은 우에노 공원을 가로질러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아래까지 이어짐.[41] | 83만 명 이상 | 당시 일본 최고 기록 |
1994년 | 바른스 컬렉션전 | 문외불출 컬렉션 최초 공개. 62일간 전시. 혼잡한 날에는 입장 대기 시간 7시간 기록.[42] | 107만 명 이상 | |
2020년 |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품전 | 도쿄 올림픽 기념 도쿄 국립서양미술관과 오사카 국립미술관 순회 전시. 60여 점 회화 작품 대여.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일본 최초 공개.[5][6] | 2019년 1월 발표 | |
2024년 | 여기는 미래의 아티스트들이 잠들 수 있는 방이 될 수 있었을까? | 내람회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는 항의 활동 발생.[43] |
3. 3. 소장품
국립서양미술관(NMWA)은 설립 이후 매년 미술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품을 구축하고 발전시키고 있다.[3]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회화와 조각 작품 등 약 4,50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2]'''회화: 18세기 이전'''
본관에는 베로네세[7], 루벤스[8], 브뤼겔, 프라고나르[9] 등의 작품을 포함한 18세기 이전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기독교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종교화이다.
'''회화: 19세기-20세기'''
신관에는 들라크루아, 쿠르베, 에두아르 마네(Manet),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Monet), 빈센트 반 고흐(Van Gogh), 폴 고갱(Gauguin), 모로 등의 작품을 포함한 19세기부터 20세기 초 프랑스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10] 마르케, 파블로 피카소(Picasso), 수틴, 에른스트, 후안 미로(Miró), 뒤뷔페, 폴록 등 차세대 예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11]
'''드로잉'''
부셰, 프라고나르, 들라크루아, 모로, 오귀스트 로댕(Rodin), 폴 세잔(Cézanne) 등 18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화'''
알브레히트 뒤러(Dürer), 홀바인, 렘브란트(Rembrandt), 칼로, 피라네시, 고야, 클링거 등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판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12]
'''주요 작품'''
작품 | 작가 | 제작 연도 | 비고 |
---|---|---|---|
--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 1916년 | 캔버스에 유채, 200.5cm × 201cm |
--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 1872년 | |
--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 ||
--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 ||
--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
2019년 3월 말 현재 소장 작품 수는 6,429점이다.[58] 이 중 판화 작품이 약 4,153점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그중 약 1,700점은 동부미술관 폐관 시 양도받은 도미에의 판화이다.[59]
'''소장 작품 목록 (일부)'''
- 14세기 시에나파 『성 미카엘과 용』 14세기
- 크리벨리 『성 아우구스티누스』1487년경 (구 마쓰카타 컬렉션)
- 베로네세 『성 카타리나의 신비로운 결혼』1547년경
- 틴토레토 『다비드로 변장한 젊은 남자의 초상』1555-1560년경
- 바사리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1570년경
- 얀 브뤼겔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는 숲 풍경』1599년
- 라 투르 『성 토마스』1624년경
- 레니 『루크레티아』1636-1638년경
- 돌치 『슬픔에 잠긴 성모』1650년경
- 리베라 『철학자 크라테스』1636년
- 루벤스 『잠자는 두 아이』1612-1613년경, 『풍요』1630년경
- 카페 『자화상』1783년경
- 들라크루아 『예수의 장례식』1859년
- 코로 『나폴리 해변의 추억』1870-72년
- 밀레 『봄 (다프니스와 클로에)』1865년 (마쓰카타 컬렉션)
- 모로 『감옥의 살로메』1873-76년경 (마쓰카타 컬렉션)
- 쿠르베 『생각에 잠긴 집시 여인』1869년 (마쓰카타 컬렉션)
- 피사로 『정담』1881년경 (마쓰카타 컬렉션)
- 모네 『보트 놀이』1887년 (마쓰카타 컬렉션)
- 모네 『수련』1916년 (마쓰카타 컬렉션)
- 르누아르 『알제리풍 파리 여인들』1872년 (마쓰카타 컬렉션)
- 고갱 『해변에 선 브르타뉴 소녀들』1889년 (마쓰카타 컬렉션)
- 로세티 『사랑의 잔』1867년 (구 마쓰카타 컬렉션)
- 드니 『춤추는 여인들』1905년 (마쓰카타 컬렉션)
- 로댕 『청동 시대』, 『세례자 요한』, 『생각하는 사람』, 『칼레 시민』, 『지옥의 문』 등 (마쓰카타 컬렉션)
서양미술관에는 195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반환된 작품 외에도, 구 마쓰카타 컬렉션에 유래하는 작품이 있다. 도미에 『관극』, 마네 『블랑 씨의 초상』, 피사로 『수확』은 마쓰카타가의 나스 별장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오랫동안 브리지스톤 미술관에 위탁되어 있었으나 1984년 마쓰카타가로부터 서양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카를로 크리벨리 『성 아우구스티누스』, 로세티 『사랑의 잔』, 존 에버렛 밀레이 『아기 오리들』, 세간티니 『양털 깎기』 등은 소실된 구 마쓰카타 컬렉션 작품을 구입 또는 기증받아 얻은 것이다.
4. 건축물
본관은 스위스계 프랑스 건축가 샤를-에두아르 잔느레(1887~1965)가 설계했으며, 그의 작품 중 극동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이다.[15] 개관 당시 ''뉴욕 타임스''는 건물 자체가 내부의 그림들과 견줄 만한 "예술적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16] 1959년 3월에 완공된 다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과 프랑스 간의 외교 관계 재개를 상징한다.[17] 건물 배치는 르 코르뷔지에가 같은 시기에 설계하고 있던 아마다바드(Ahmedabad) 산스카르 켄드라(Sanskar Kendra) 박물관의 영향을 받았다.[20]
외부는 내벽에 의해 지지되는 U자형 프레임에 설치된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덮여 있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로 건설되었으며 기둥은 매끄러운 콘크리트 마감을 하고 있다.[21] 건물의 모든 요소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가 적용되었다.
마에카와 쿠니오는 신관 설계를 맡았으며,[23] 1979년에 새로운 별관을 증축했다.[23] 1998년에는 건물 전체를 지반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는 대규모 면진 개보수 공사를 실시했는데, 이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면진 개보수 공사였다.
항목 | 내용 |
---|---|
설계 | 르 코르뷔지에(본관)・마에카와 쿠니오(신관)・전카와 건축설계사무소(기획전시관) |
시공 | 시미즈 건설(본관・신관・기획전시관) |
준공 | 1959년(본관)・1979년(신관)・1997년(기획전시관) |
연면적 | 17369m2 |
소재지 |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7-7 |
4. 1. 본관
본관은 스위스계 프랑스 건축가 샤를-에두아르 잔느레(1887~1965)가 설계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극동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이다.[15] 1959년 3월에 완공된 이 다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과 프랑스 간의 외교 관계 재개를 상징한다.[17]박물관은 정사각형 평면으로, 전시실의 주요 부분은 필로티(piloti) 위에 1층 높이로 올라가 있다. 건물 배치는 같은 시기에 설계되고 있던 르 코르뷔지에의 아마다바드(Ahmedabad) 산스카르 켄드라(Sanskar Kendra) 박물관의 영향을 받았다.[20]
관람객은 19세기 홀(19th Century Hall)을 통해 지상층으로 들어간다. 이중 높이의 이 공간은 위쪽에서 북쪽 유리 피라미드형 채광창으로 빛이 들어오며, 철근 콘크리트 보와 기둥이 교차되어 있다. 입구 반대편 홀에는 산책로 경사로를 통해 회화 전시실로 올라갈 수 있으며,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상을 더 잘 볼 수 있다. 회화 전시실은 19세기 홀을 감싸고 있으며, 천장은 처음에는 낮지만 주변부는 2층 높이로 올라가 그림을 전시한다. 또한 이 층에는 19세기 홀로 돌출된 발코니가 있어 관람객의 시선을 재배치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네 개의 조명 트러프를 통해 자연 채광이 가능하도록 회화 전시실을 설계했지만,[21]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인공 조명으로 전시실이 밝혀진다.[22]
외부적으로 건물은 내벽에 의해 지지되는 U자형 프레임에 설치된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덮여 있다. 건물은 일반적으로 철근 콘크리트로 건설되었으며 기둥은 매끄러운 콘크리트 마감을 하고 있다.[21] 2년 이상의 공사 끝에 1959년 6월 10일 개관하였다.[19] 건물의 모든 요소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가 적용되었다.
1층 중앙 부분은 옥상의 채광창까지 뚫린 홀로, 르 코르뷔지에에 의해 “19세기 홀”이라고 명명되었고, 현재는 로댕의 조각 전시장이 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는 조각 작품을 바라보면서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경사가 완만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2층은 중앙의 뚫린 홀을 둘러싼 회랑 형태의 전시실이 되어 있다. 이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무한 성장 건축”이라는 컨셉트에 기반한 것으로, 소라게가 성장하듯이, 장래 확장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외측으로 건물을 계속해서 덧붙일 수 있는 구조이다. 2층 전시실은 내측 부분의 천장고가 낮다. 이 낮은 천장 위는 자연광을 받아들여 밝기를 조절하기 위한 공간으로 설치되었지만, 현재는 자연광이 아닌 형광등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층 전시실의 북쪽, 동쪽, 남쪽 3곳에는 중3층이 설치되어 있고, 좁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는 소형 작품의 전시장으로 설치되었지만, 계단이 좁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44]
4. 2. 신관 및 기타 시설
마에카와 쿠니오가 신관 설계를 맡았다.[23] 1964년에는 사카쿠라 어소시에이츠(Sakakura Associates)가 강당과 사무동을 설계하고, 1984년에는 매표소를 설계했다. 1979년에 마에카와 어소시에이츠는 새로운 별관을 증축했다.[23] 1998년에는 건설성(Ministry of Construction), 요코야마 엔지니어링(Yokoyama Engineering), 시미즈 건설과 함께 지진에 강한 기초를 설치했다.[23]항목 | 내용 |
---|---|
설계 | 르 코르뷔지에(본관)・마에카와 쿠니오(신관)・전카와 건축설계사무소(기획전시관) |
시공 | 시미즈 건설(본관・신관・기획전시관) |
준공 | 1959년(본관)・1979년(신관)・1997년(기획전시관) |
연면적 | 17369m2 |
소재지 |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7-7 |
4. 3. 면진 개보수
국립서양미술관은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는 대규모 면진 개보수 공사를 실시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면진 개보수 공사였다. 이 공사를 통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인명과 작품도 지진으로부터 보호하고, 미술관으로서 안전하게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정의 조각에도 면진대를 설치하는 등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지진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다. 면진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패널을 설치하여 그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5. 사회적 기여 및 논란
국립서양미술관은 서양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일본 유일의 미술관으로서, 일본 사회에 서양 미술을 소개하고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미술관 운영과 관련하여 몇 가지 논란도 있다.
5. 1. 논란
2024년 3월 11일,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린 "여기는 미래의 아티스트들이 잠들 수 있는 방이 될 수 있었을까?" (담당 학예원: 신도 준) 내람회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있었다.[43] 이는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을 반영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요약에 언급된 마쓰카타 컬렉션의 윤리적 문제 (예: 강제징용 노동자 착취) 관련 내용은 주어진 원문에 없으므로, 이 섹션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6. 접근성
참조
[1]
웹사이트
Visitor Figures 2016
https://www.museus.g[...]
The Art Newspaper Review
2017-04-00
[2]
웹사이트
NMWA collection
http://www.nmwa.go.j[...]
[3]
웹사이트
NMWA outline
http://www.nmwa.go.j[...]
[4]
뉴스
Japan Assembling a Large Chagall Show; 450 Works From 15 Nations to Be Lent For Tokyo Display; Value of Exhibition Estimated at Nearly $14 Million Planned for 7 Years Designed by Le Corbusler
https://select.nytim[...]
New York Times
1963-09-24
[5]
웹사이트
National Gallery in London to send Van Gogh's Sunflowers to Japan
http://theartnewspap[...]
2019-01-09
[6]
뉴스
National Gallery makes its biggest loan of art to Japan
https://www.ft.com/c[...]
Financial Times
2019-01-10
[7]
웹사이트
NMWA 14th-16th centuries
http://www.nmwa.go.j[...]
[8]
웹사이트
NMWA 17th century
http://www.nmwa.go.j[...]
[9]
웹사이트
NMWA 18th century
http://www.nmwa.go.j[...]
[10]
웹사이트
NMWA pre-WWII artists
http://www.nmwa.go.j[...]
[11]
웹사이트
NMWA post-WWII artists
http://www.nmwa.go.j[...]
[12]
웹사이트
NMWA prints study
http://www.nmwa.go.j[...]
[13]
웹사이트
IAI-National Museums of Art union catalog
http://search.artmus[...]
[14]
웹사이트
MOMAK union catalog
http://www.momak.go.[...]
[15]
서적
The Architecture of Tokyo: An Architectural History
https://books.google[...]
2001
[16]
뉴스
French Art in Tokyo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1959-06-21
[17]
웹사이트
NMWA building
http://www.nmwa.go.j[...]
[18]
서적
2001
[19]
서적
1959
[20]
서적
2001
[21]
서적
1959
[22]
간행물
Discover Architecture Map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23]
서적
2001
[24]
간행물
Do_co,mo.mo Japan: the 100 selection
The Japan Architect
2005-00-00
[25]
웹사이트
Le Corbusier works named as UN world heritage sites
https://www.bbc.com/[...]
2016-07-17
[26]
웹사이트
The Art Newspaper Ranking VISITOR FIGURES 2016
https://www.museus.g[...]
The Art Newspaper
[27]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館長の馬渕明子が退任。新館長には田中正之が就任
https://bijutsutecho[...]
美術出版社
2021-04-01
[28]
웹사이트
美術館概要|国立西洋美術館
https://www.nmwa.go.[...]
[29]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本館
https://kunishitei.b[...]
文化庁
[30]
웹사이트
公共建築100選
http://j100s.com/kou[...]
[31]
보도자료
「国立西洋美術館本館」が国の重要文化財(建造物)に指定されました
https://www.nmwa.go.[...]
国立西洋美術館
[32]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園地
https://kunishitei.b[...]
文化庁
[33]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とのパートナーシップについて {{!}} 企業情報
https://www.khi.co.j[...]
[34]
웹사이트
川崎重工と国立西洋美術館、初のオフィシャルパートナー契約を締結
https://www.khi.co.j[...]
川崎重工業・国立西洋美術館
2023-03-17
[35]
간행물
芸術新潮
[36]
서적
石田(1995)p.148
[37]
웹사이트
松方幸次郎 :: 東文研アーカイブデータベース
https://www.tobunken[...]
2022-02-10
[38]
웹사이트
Salles, Georges
https://arthistorian[...]
2022-02-11
[39]
간행물
石田(1995)pp.137 - 138;『芸術新潮』710号、p.37
[40]
간행물
石田(1995)p.153;『芸術新潮』710号、p.34
[41]
간행물
『芸術新潮』710号、pp.54 - 57
[42]
간행물
『芸術新潮』710号、pp.63
[43]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でパレスチナ人虐殺反対のパフォーマンス、警察による介入も
https://www.timeout.[...]
2024-03-16
[44]
간행물
『芸術新潮』710号、pp.72 - 74;『国立西洋美術館公式ガイドブック』、pp.54 - 61
[45]
웹사이트
第33回世界遺産委員会について
http://www.city.tait[...]
台東区
2014-01-24
[46]
웹사이트
世界遺産登録推進NEWS NO.13
http://www.city.tait[...]
台東区
2014-01-24
[47]
웹사이트
世界遺産登録推進NEWS NO.15
http://www.city.tait[...]
台東区
2014-01-24
[48]
웹사이트
世界遺産登録推進NEWS NO.16
http://www.city.tait[...]
台東区
2014-01-24
[49]
웹사이트
「世界遺産への登録をめざして」リーフレット
http://www.city.tait[...]
台東区
2014-01-24
[50]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本館」が国の重要文化財(建造物)に指定されました
https://www.nmwa.go.[...]
国立西洋美術館
2022-04-18
[51]
뉴스
国立西洋美術館、文化遺産登録へ…イコモス勧告
http://www.yomiuri.c[...]
読売新聞社
2016-05-18
[52]
뉴스
西洋美術館、世界遺産に…ル・コルビュジエ建築
http://www.yomiuri.c[...]
読売新聞社
2016-07-14
[53]
뉴스
国立美術館など6館が休館延長を決定。長引く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影響
https://bijutsutecho[...]
美術手帖
2020-03-13
[54]
웹사이트
世界文化遺産「国立西洋美術館」全館休館のお知らせ
https://www.city.tai[...]
2022-02-10
[55]
보도자료
国立西洋美術館の全館休館について
https://www.nmwa.go.[...]
国立西洋美術館
2020-09-30
[56]
보도자료
国立西洋美術館2022 年 4 月 9 日(土)リニューアルオープン
https://www.nmwa.go.[...]
国立西洋美術館
2021-11-29
[57]
웹사이트
国立西洋美術館がリニューアルオープン。コルビュジエが構想した前庭や名品のそろう常設展がふたたび
https://bijutsutecho[...]
美術手帖
2022-08-30
[58]
서적
『国立西洋美術館概要 2019年』による。
[59]
간행물
『国立西洋美術館公式ガイドブック』、p.68
[60]
웹사이트
交通案内
https://www.nmwa.go.[...]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