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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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팔의 역사는 다양한 어원 설화로 시작되며, 고대에는 키라트 왕조, 리차비 왕조 등이 번갈아 가며 통치했다. 굽타 제국 시대에는 네팔이 공물을 바치는 변방 왕국으로 기록되었고, 중세에는 타쿠리 왕조와 말라 왕조가 등장하여 예술과 건축이 발전했다. 18세기에는 샤 왕조가 고르카를 통일하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이후 라나 왕조가 등장하여 1951년 혁명으로 종식되었다. 1950년대에는 민주화 시도가 있었으나 판차야트 제도가 수립되었고, 1990년 혁명 이후 다당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네팔 내전(1996-2006)을 거쳐 2008년 연방 민주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2015년 헌법이 채택되었다. 이후 지진과 정치적 혼란을 겪었으며, 현재까지 여러 차례의 총선과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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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역사 | |
---|---|
지도 | |
개요 | |
국가 | 네팔 |
시대 | 남아시아사 |
위치 | 남아시아 |
선사 시대 | |
구석기 시대 | (2,500,000–250,000 BC) |
상세 내역 | 마드라스 문화 소안 문화 |
신석기 시대 | (10,800–3300 BC) |
상세 내역 | 비르하나 문화 (7570–6200 BC) 메르가르 문화 (7000–3300 BC) 에다칼 동굴 문화 (5000–3000 BC) |
금석 병용 시대 | (3500–1500 BC) |
상세 내역 | 아나르타 전통 (–1900 BC) 아하르-바나스 문화 (3000–1500 BC) 판두 문화 (1600–750 BC) 말와 문화 (1600–1300 BC) 조르웨 문화 (1400–700 BC) |
청동기 시대 | (3300–1300 BC) |
상세 내역 | 인더스 문명 (3300–1300 BC) 초기 하라파 문화 (3300–2600 BC) 성숙기 하라파 문화 (2600–1900 BC) 후기 하라파 문화 (1900–1300 BC) 베다 문명 (2000–500 BC) 오커 색깔 도자기 문화 (2000–1600 BC) 스와트 문화 (1600–500 BC) |
철기 시대 | (1500–200 BC) |
상세 내역 | 베다 문명 (1500–500 BC) 자나파다 (1500–600 BC) 흑색 및 적색 도자기 문화 (1300–1000 BC) 채색 회색 도자기 문화 (1200–600 BC) 북부 흑색 광택 도자기 (700–200 BC) 프라디오타 왕조 (799–684 BC) 하리얀카 왕조 (684–424 BC) 세 왕관을 쓴 왕국 ( – AD 1600) 마하 자나파다 (–300 BC) 아케메네스 제국 (550–330 BC) 로르 왕조 (450 BC – AD 489) 샤이슈나가 왕조 (424–345 BC) 난다 제국 (380–321 BC) 마케도니아 제국 (330–323 BC) 마우리아 제국 (321–184 BC) 셀레우코스 인도 (312–303 BC) 상감 시대 () 판디아 제국 ( – AD 1345) 체라 왕국 ( – AD 1102) 촐라 제국 ( – AD 1279) 팔라바 제국 ( – AD 800) 마하-메가-바하나 제국 () 파르티아 제국 (247 BC – AD 224) |
중세 왕국 | |
중세 왕국 | (230 BC – AD 1206) |
상세 내역 | 사타바하나 제국 (230 BC – AD 220) 쿤린다 왕국 (200 BC – AD 300) 미트라 왕조 () 슝가 제국 (185–73 BC) 인도-그리스 왕국 (180 BC – AD 10) 칸바 제국 (75–26 BC) 인도-스키타이 왕국 (50 BC – AD 400) 인도-파르티아 왕국 (AD 21 – ) 서부 사트라프 제국 (AD 35–405 ) 쿠샨 제국 (AD 60–240) 바르시바 왕조 (170–350) 파드마바티의 나가 (210–340) 사산 제국 (224–651) 인도-사산 왕국 (230–360) 바카타카 제국 () 칼라브라스 제국 () 굽타 제국 (280–550) 카담바 제국 (345–525) 서부 강가 왕국 (350–1000) 카마루파 왕국 (350–1100) 비슈누쿤디나 제국 (420–624) 마이트라카 제국 (475–767) 훈 왕국 (475–576) 라이 왕국 (489–632) 카불 샤히 제국 ( – 1026) 찰루키아 제국 (543–753) 마우카리 제국 () 하르샤 제국 (606–647) 티베트 제국 (618–841) 동부 찰루키아 왕국 (624–1075) 라시둔 칼리파국 (632–661) 구르자라-프라티하라 제국 (650–1036) 우마이야 칼리파국 (661–750) 말라붐 왕국 (694–1947) 바우마-카라 왕국 (736–916) 팔라 제국 (750–1174) 라슈트라쿠타 제국 (753–982) 파라마라 왕국 (800–1327) 야다바 제국 (850–1334) 소마밤시 왕국 (882–1110) 차울루키아 왕국 (942–1244) 서부 찰루키아 제국 (973–1189) 로하라 왕국 (1003–1320) 호이살라 제국 (1040–1347) 세나 제국 (1070–1230) 동부 강가 제국 (1078–1434) 카카티야 왕국 (1083–1323) 자모린 왕국 (1102–1766) 트리푸리의 칼라추리 (675–1210) 칼야니의 칼라추리 (1156–1184) 추티야 왕국 (1187–1673) 데바 왕국 () |
후기 중세 시대 | |
후기 중세 시대 | (1206–1526) |
상세 내역 | 가즈나 왕조 (977–1186) 구르 왕조 (1170–1206) 델리 술탄국 (1206–1526) 맘루크 술탄국 (1206–1290) 칼지 술탄국 (1290–1320) 투글루크 술탄국 (1320–1414) 사이이드 술탄국 (1414–1451) 로디 술탄국 (1451–1526) 아홈 왕국 (1228–1826) 치트라두르가 왕국 (1300–1779) 레디 왕국 (1325–1448) 비자야나가라 제국 (1336–1646) 벵골 술탄국 (1352–1576) 가르왈 왕국 (1358–1803) 마이소르 왕국 (1399–1947) 가자파티 제국 (1434–1541) 라다크 왕국 (1470–1842) 데칸 술탄국 (1490–1596) 아흐마드나가르 술탄국 (1490–1636) 베라르 술탄국 (1490–1574) 비다르 술탄국 (1492–1619) 비자푸르 술탄국 (1492–1686) 골콘다 술탄국 (1518–1687) 켈라디 왕국 (1499–1763) 코흐 왕국 (1515–1947) |
초기 근대 시대 | |
초기 근대 시대 | (1526–1858) |
상세 내역 | 무굴 제국 (1526–1858) 수르 제국 (1540–1556) 마두라이 왕국 (1529–1736) 탄자부르 왕국 (1532–1673) 보이 왕조 (1541–1804) 벵골 수바 (1576–1757) 마라바 왕국 (1600–1750) 시킴 왕국 (1642–1975) 톤다이만 왕국 (1650–1948) 마라타 제국 (1674–1818) 시크 연맹 (1707–1799) 트라방코르 왕국 (1729–1947) 시크 제국 (1799–1849) |
식민지 시대 | |
식민지 시대 | (1510–1961) |
상세 내역 | 포르투갈령 인도 (1510–1961) 네덜란드령 인도 (1605–1825) 덴마크령 인도 (1620–1869) 프랑스령 인도 (1759–1954) 회사 통치 (1757–1858) 영국령 인도 (1858–1947) |
국가 역사 | |
국가 역사 |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인도 몰디브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
지역 역사 | |
지역 역사 | 아삼 발루치스탄 벵골 비하르 구자라트 히마찰프라데시 카불 카르나타카 카슈미르 카이버파크툰크와 라자스탄 마하라슈트라 우타르프라데시 펀자브 오디샤 신드 남인도 타밀나두 티베트 |
전문 역사 | |
전문 역사 | 농업 건축 주화 인구 통계 왕조 경제 교육 인도학 동남아시아에 대한 영향 언어 문학 해양 금속 공학 군사 인도 분할 파키스탄 연구 철학 종교 과학 기술 연표 |
네팔의 역사 | |
고대 | 키라타 왕국 비데하 왕국 샤카 공화국 콜리야 공화국 고팔라 왕조 마히샤팔라 왕조 소마 왕조 205년 ~ 305년 리차비 왕조 400년 ~ 750년 |
중근세 | 아비라-굽타 왕조 6세기 ~ 7세기 타쿠리 왕조 600년 ~ 1200년 카튜리 왕조 700년 ~ 1065년 카사 왕국 954년 ~ 14세기 카르나타 왕조 1097년 ~ 1324년 말라 왕조 1201년 ~ 1482년 랄릿푸르 왕국 1482년 ~ 1768년 박타푸르 왕국 1482년 ~ 1769년 칸티푸르 왕국 1484년 ~ 1826년 찬드 왕조 바이세 라지야 차우바시 라지야 고르카 왕국 1559년 ~ 1768년 |
근현대 | 1768년 ~ 2008년 네팔 연방민주공화국 2008년 ~ 현재 |
2. 어원
"네팔"이라는 국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3]
- 티베트어, 네와르족, 렙차족 어원설: 네팔 북부 주민들이 티베트에서 왔으며, 네와르족은 카트만두 계곡을 "네파"라고 불렀고, 렙차족은 "신성한 동굴"과 연관시켰다는 설이 있다.
- 힌두 신화 및 불교 전설: 힌두 신화에서는 고대 현자 '네(Ne)'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불교 전설에서는 신 만주스리가 호수의 물을 빼내고 "네"라는 현자가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3][4]
2. 1. 티베트어 어원설
네팔 북부 주민들은 티베트에서 유래했으며, 그들은 양을 키우고 양모를 생산했다. 티베트어로 'ne'는 "양모"를, 'pal'은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네팔은 "양모의 집"을 의미한다.[3]2. 2. 네와르족 어원설
네와르족은 카트만두 계곡에서 그들의 고향을 네팔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중간 지대의 나라"를 뜻하는 "네파"에서 유래되었으며, 히말라야 산맥 중심부에 위치한 네팔의 지리적 특징을 반영한다.[3]2. 3. 렙차족 어원설
렙차족이 네팔을 "신성하거나 거룩한 동굴"과 연관시켰다는 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다.[3]2. 4. 힌두 신화 어원설
힌두 신화에 따르면, 네팔은 네 무니 또는 네미라고 불리는 고대 힌두 현자 '네(Ne)'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3]2. 5. 불교 전설 어원설
불교 전설에 따르면, 신 만주스리가 나가다하(카트만두 계곡을 채웠다고 여겨지는 신화 속 호수)에서 물을 빼냈다. 계곡은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고, 목동 묵타만(Bhuktaman)이 "네"라는 현자의 조언을 받아 통치했다.[3][4] 팔라(Pāla)는 "보호자" 또는 "돌봄"을 의미하므로, 네팔은 그곳을 돌본 현자의 이름을 반영했다.[3][4]3. 고대사
네팔의 고대사는 당 지역의 시왈릭 언덕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5] 초기 거주민은 마이틸인과 타루족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마데시주의 미틸라(지역)와 코시주 및 룸비니주의 테라이 지역에서 기원했다. 드라비다족은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기원전 3300년경)에 자나카 왕이 통치하는 지역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티베토-버마족과 인도-아리아인이 도착하기 전의 일이다.[6]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전설과 기록은 기원전 3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15] 발미키 아쉬람과 같은 유적은 당시 네팔 일부 지역에 ''사나타나''(고대) 힌두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전설에 따르면, 네팔의 초기 통치자는 ''고팔라밤시'' (''고팔 반사'') 또는 "목동 왕조"였으며, 약 5세기 동안 통치했다고 추정된다. 그들은 야다브족 출신인 불 싱(Bhul Singh)이 세운 ''마히샤팔라밤사'' 또는 "물소 치기 왕조"에 의해 계승되었다.[16]
샤카 씨족은 후기 베다 시대(기원전 1000년경 – 기원전 500년경) 및 2차 도시화 시대 (기원전 600년경 – 기원전 200년경)에 ''샤카 가나라쟈''로 알려진 독립적인 과두 공화국을 형성했다.[17] 고타마 붓다(기원전 6세기~4세기)는 불교의 기초가 된 가르침을 펼친 가장 유명한 샤카족이었다.
키라트 왕국은 리차비 왕조 이전과 마히스팔(아히르) 왕조 이후 네팔을 통치했던 왕조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키라트 왕조는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 약 1,225년 동안 통치하여 네팔 역사상 가장 오래 통치한 왕조였다.[21][22][23] 마히사팔라 왕조는 아비라가 세운 왕조로, 고팔 왕조를 대체하고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했다.[24] 이들은 키라트 왕조에 의해 전복되기 전까지 계곡을 통치했다.[25][26]
굽타 제국 시대, 인도의 황제 사무드라굽타는 네팔을 연례 공물을 바치는 "변방 왕국"으로 기록했다.[29]
키라트 왕국 이후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한 것은 리차비 왕조였다.
3. 1. 선사 시대
네팔의 선사 시대 유적은 당 지역의 시왈릭 언덕에서 발견되었으며,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5] 현대 네팔과 인접 지역의 초기 거주민은 마이틸인과 타루족으로 여겨지며, 마데시주의 미틸라(지역)와 코시주 및 룸비니주의 테라이 지역에서 기원했다. 드라비다족은 인도 아대륙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기원전 3300년경)에 국왕 자나카가 통치하는 지역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티베토-버마족과 국경 너머의 인도-아리아인과 같은 다른 민족 집단이 도착하기 전의 일이다.[6] 마이틸, 인도-아리아인, 그리고 남부 지역에서 인도인과 많이 혼합된 타루족, 티베토-버만족은 네팔 중부의 마데시주와 테라이 지역의 원주민이다.[7] 네팔에서 최초로 기록된 부족은 기원전 800년부터 키라타 왕국의 키라트 왕들의 기록인 키라트족으로, 키라트족은 네팔에서 마지막 2000년에서 2500년 동안 기록되었으며, 한때 갠지스강 삼각주까지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는 광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8]3. 2. 고대 왕조와 전설
네팔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전설과 기록된 언급은 기원전 3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15] 또한, 발미키 아쉬람과 같은 유적의 존재는 당시 네팔 일부 지역에 ''사나타나''(고대) 힌두 문화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전설에 따르면, 네팔의 초기 통치자는 약 5세기 동안 통치했다고 추정되는 ''고팔라밤시'' (''고팔 반사'') 또는 "목동 왕조"였다. 그들은 야다브족 출신인 불 싱(Bhul Singh)이 세운 ''마히샤팔라밤사'' 또는 "물소 치기 왕조"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한다.[16]
샤카 씨족은 후기 베다 시대(기원전 1000년경 – 기원전 500년경) 및 이후 소위 2차 도시화 시대 (기원전 600년경 – 기원전 200년경)에 ''샤카 가나라쟈''로 알려진 독립적인 과두 공화국을 형성했다.[17] 그 수도는 현재 틸라우라코트, 네팔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있는 카필라바스투였다.[18][19][20] 고타마 붓다(기원전 6세기~4세기)는 그의 가르침이 불교의 기초가 된 가장 유명한 샤카족이었다. 그는 생전에 "싯다르타 고타마"와 "샤카무니"(샤카의 현자)로 알려졌다. 그는 샤카 가나라쟈의 선출된 지도자였던 수도다나의 아들이었다.
3. 3. 키라트 왕조
키라트 왕조는 리차비 왕조 이전과 마히스팔(아히르) 왕조 이후 네팔을 통치했던 왕조이다. 여러 필사본에 따르면, 키라트 왕조는 네팔 역사상 가장 오래 통치한 왕조로,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 약 1,225년 동안 통치했다.[21][22][23] 키라트 족은 순 코시와 타마 코시 사이의 지역을 고향으로 삼기 전에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했다. 키라트 왕들의 목록은 고팔 계보에도 나와 있다.마히사팔라 왕조는 아비라가 세운 왕조로, 고팔 왕조를 대체하고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했다.[24] 마히사팔라 왕조의 세 왕은 키라트 왕조에 의해 전복되기 전에 계곡을 통치했다.[25][26] 이들은 마히스팔반시로도 알려졌다.[27] 아비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부와싱을 전투에서 물리친 키라트 왕 얄룽 또는 얄람베르가 카트만두 계곡의 정권을 장악했다. 힌두 신화적 관점에서 이 사건은 드바파라 유가의 마지막 단계 또는 칼리 유가의 초기 단계, 즉 기원전 6세기경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고팔 계보, 언어 계보 및 라이트 계보에 따르면 각각 32명, 28명 및 29명의 키라트 왕에 대한 설명이 발견된다.[28] 동서 고전에 포함된 통지에 따르면 키란티족은 지난 2000년에서 2500년 동안 현재 거주지에서 광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살았으며, 한때 갠지스강 삼각주까지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8]
3. 4. 굽타 제국 시대
굽타 제국 시대, 인도의 황제 사무드라굽타는 네팔을 연례 공물을 바치는 "변방 왕국"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사무드라굽타의 알라하바드 기둥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29]
3. 5. 리차비 왕조
키라트 왕국 이후 현대 네팔의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한 것은 리차비 왕조의 왕들(원래는 현대 인도의 바이샬리 출신)이었다. 일부 족보와 푸라나에 따르면 "수르야반시 크셰트리야는 키라트를 격파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웠다"고 한다. 『파슈파티 푸라나』에는 "바이샬리의 지배자들이 키라티스에게 감언이설로 속여 전쟁에서 그들을 격파하고 그들만의 정권을 세웠다"고 언급되어 있다. 『힘바트칸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며 "바이샬리의 지배자들이 키라트를 격파하고 네팔을 통치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다. 족보에 따라 마지막 키라트 왕의 이름이 다르게 언급된다. 고팔 족보에 따르면 리차비족은 마지막 키라트 왕 '키구'를 격파하고 네팔에 통치를 시작했으며, 언어-족보에 따르면 '갈리즈', 라이트 족보에 따르면 '가스티'라고 한다.[28]4. 중세사
879년, 리차비 왕조의 통치가 끝난 후 라가바 데바가 왕조를 세웠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네팔 시대'를 시작했다.
구나카마 데바(949년~994년 통치)는 하나의 나무로 만든 '카스타만다파'를 건설했고, 수도 '카트만두'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는 칸티푸르(오늘날의 카트만두)를 세웠고, 인드라 자트라 전통이 시작되었다. 락쉬미카마 데바는 쿠마리 숭배 전통을 도입했다.
1080년, 암슈바르마의 후손 바마 데바가 샹카르 데바를 물리치고 태양 왕조 통치를 복원했다. 하르샤 데바 이후 시바데바 3세(1099년~1126년 통치)는 키르티푸르를 세우고 파슈파티나트 사원 지붕을 금으로 덮었다.
12세기 아리 말라 치세에 시작된 초기 말라 왕조는 인도 아대륙과 서부 티베트까지 확장되었으나, 이후 소규모 공국으로 분열되었다.[1] 14세기 말, 자야스티티 말라는 카트만두 계곡에서 후기 말라 왕조를 시작하여 사회, 경제적 개혁과 새로운 예술, 건축을 도입했다.[1] 아라니코는 중국에 파견되어 파고다 양식 건축을 아시아에 전파했다.[1] 야크샤 말라 사후, 카트만두 계곡은 1484년에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바네파 4개 왕국으로 분할되어 내전을 벌였다.[1]
1097년, 심라웅가르를 수도로 카르나트 왕조가 건국되었다.[30] 역대 왕은 다음과 같다.
왕 | 통치 기간 |
---|---|
난야 데브 | 1097년 ~ 1147년 |
갱가 데브 | 1147년 ~ 1187년 |
나르싱 데브 | 1187년 ~ 1227년 |
람싱 데브 | 1227년 ~ 1285년 |
샤크티싱 데브 | 1285년 ~ 1295년 |
하리싱 데브 | 1295년 ~ 1324년 |
1324년, 기야스 알딘 투글라크가 심라웅가르를 공격했다.[31]
카사 말라 왕국은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네팔 서부를 통치했으며, 카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했다.[32] 1303년 치토르가르 포위전 이후, 라지푸트족이 네팔로 이주하여 카사 공동체에 흡수되었다.
4. 1. 타쿠리 왕조
암슈바르마 이후 타쿠리족은 권력을 잃었다가 869년에야 권력을 되찾았다. 879년, 리차비 왕조의 통치가 끝난 후 라가바 데바가 통치 왕조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라가바 데바는 879년 10월 20일에 시작된 '네팔 시대'를 시작했다.949년부터 994년까지 통치한 구나카마 데바는 하나의 나무로 만든 큰 나무 쉼터인 '카스타만다파'를 짓도록 했다. 수도 '카트만두'는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구나카마 데바는 칸티푸르(오늘날의 카트만두) 마을을 세웠고,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인드라 자트라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볼라 데바는 구나카마 데바의 뒤를 이었다. 다음 통치자는 1024년부터 1040년까지 통치한 락쉬미카마 데바였다. 그는 락쉬미 비하라를 건설하고 신성한 여성 에너지(데비)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어린 소녀인 쿠마리를 숭배하는 전통을 도입했다. 그의 아들 비자야카마 데바가 그의 뒤를 이어 '나가'와 '바수키'를 숭배하는 것을 도입했다. 비자야카마 데바는 이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비자야카마 데바의 죽음 이후 누와코트의 타쿠리 씨족이 네팔 왕위를 차지했다. 누와코트 출신의 바스카라 데바가 비자야카마의 뒤를 이었다. 그는 나바바할과 헤마바르나 비하라를 건설했다고 한다. 바스카라 데바 이후 이 계통의 네 명의 왕(발라 데바, 파드마 데바, 나가르주나 데바, 샹카라 데바)이 나라를 통치했다. 샹카라 데바(1067–1080 CE)는 '샨테스바라 마하데바'와 '마노하라 바가바티'의 이미지를 세웠다. 나가판차미 날에 나가와 바수키의 그림을 집 문에 붙이는 관습은 그에 의해 도입되었다.
1080년, 암슈바르마의 후손인 바마 데바는 샹카르 데바를 물리치고 네팔에서 두 번째로 옛 태양 왕조의 통치를 복원했다. 바마 데바의 후계자인 하르샤 데바는 무능한 통치자였다. 이 시기 카르나트 왕조의 왕인 난야 데바가 심라우가르에서 누와코트를 공격했으나, 군대는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르샤 데바 이후 시바데바 3세는 1099년부터 1126년까지 통치했다. 그는 키르티푸르 마을을 세웠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금으로 지붕을 덮었다. 그는 25파이샤 동전을 도입했다. 시바데바 3세 이후, 마헨드라 데바, 마나 데바, 나렌드라 데바 2세, 아난다 데바, 루드라 데바, 아므리타 데바, 라트나 데바 2세, 소메스바라 데바, 구나카마 데바 2세, 락쉬미카마 데바 3세, 비자야카마 데바 2세가 잇따라 네팔을 통치했다. 역사가들은 여러 왕들의 통치와 그들의 시기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타쿠리 왕조가 몰락한 후, 아리데바 또는 아리 말라에 의해 '말라 왕조'가 세워졌다.
4. 2. 말라 왕조
초기 말라 왕조는 12세기 아리 말라 치세에 시작되었다. 이후 2세기 동안 그의 왕국은 인도 아대륙과 서부 티베트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되었으나, 이후 소규모 공국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나중에 Baise Rajya로 알려지게 되었다.[1]자야스티티 말라는 14세기 말에 카트만두 계곡에서 후기 말라 왕조를 시작했다. 이 시대는 계곡 사람들의 '산스크리트화', 새로운 토지 측정 및 할당 방법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개혁으로 유명하다. 이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건축이 도입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카트만두 계곡의 기념물들은 말라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다.[1] 14세기에 카트만두가 3개의 공국으로 분할되기 전, 아라니코는 아바야 말라의 요청으로 예술과 건축 기술을 대표하기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었으며, 중국과 그 이후 아시아 전역에 파고다 양식의 건축을 도입했다.[1] 야크샤 말라(자야스티티 말라의 손자)는 15세기 말까지 카트만두 계곡을 통치했다. 그가 사망한 후, 계곡은 약 1484년에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바네파의 4개의 독립 왕국으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바네파는 곧 박타푸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말라 통치자들을 영토 및 상업적 이익을 위한 내전과 전쟁으로 이끌었다. 상호 소모적인 전쟁은 점차 그들을 약화시켰고, 이는 고르카 왕국의 프리트비 나라얀 샤가 계곡을 정복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마지막 말라 통치자는 각각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의 자야 프라카시 말라, 테자 나라싱가 말라 및 라니지트 말라였다.[1]
4. 3. 카르나트 왕조
카르나트 왕조는 1097년 인도-네팔 국경에 있는 심라웅가르를 수도로 건국되었다.[30] 카르나트 왕조의 역대 왕은 다음과 같다.왕 | 통치 기간 |
---|---|
난야 데브 | 1097년 ~ 1147년 |
갱가 데브 | 1147년 ~ 1187년 |
나르싱 데브 | 1187년 ~ 1227년 |
람싱 데브 | 1227년 ~ 1285년 |
샤크티싱 데브 | 1285년 ~ 1295년 |
하리싱 데브 | 1295년 ~ 1324년 |
1324년, 기야스 알딘 투글라크가 심라웅가르를 공격하여 요새를 파괴했다. 그 유적은 여전히 심라웅가르 지역에 흩어져 있다. 하리싱 데브 왕은 북쪽으로 도망갔고, 그의 아들 자갓싱 데브는 박타푸르의 과부 공주 나야크 데비와 결혼했다.[31]
4. 4. 카사 말라 왕국
카사 말라 왕국은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네팔 서부를 통치했습니다.[32] 카사 왕국의 언어는 카사어와 산스크리트어였습니다.1303년 치토르가르 포위전 이후, 많은 라지푸트족이 네팔로 이주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소수의 라지푸트 집단이 인도의 이슬람 침략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이주민들은 더 큰 유사성으로 인해 빠르게 카사 공동체에 흡수되었습니다.
5. 근세사
16세기, 비하르와 국경을 접한 네팔 남부 지역에는 벵골의 세나 가문 후손임을 주장하며 세나 성씨를 사용하는 왕조가 등장했다. 이 왕조의 분파 중 하나는 마크완푸르 가디 요새에서 통치한 마크완푸르 세나 왕조였다.[34] 이들은 지역 언어인 마이틸리어를 국어로 채택했다.[35]
5. 1. 샤 왕조와 네팔 통일
프르트비 나라얀 샤 (c. 1768–1775)는 고르카를 통치하는 가문의 창시자인 드라비야 샤 (1559–1570)의 9대손이었다. 1743년 아버지 나라 부팔 샤의 뒤를 이어 고르카의 왕위에 오른 프르트비 나라얀 샤는 계곡 왕국과 바이세 및 차우비세 공국의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래 생존을 위해 작은 공국들을 통일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예견하고 그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언덕 공국 상황에 대한 평가는 정확했고, 공국들은 비교적 쉽게 정복되었다. 프르트비 나라얀 샤의 정복 활동은 1744년 카트만두와 고르카 사이에 위치한 누와코트 정복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카트만두 계곡을 둘러싼 언덕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여 계곡의 외부 세계와의 통신을 차단했다. 1756년경 쿠티 패스를 점령하면서 계곡의 티베트와의 교역이 중단되었다. 키르티푸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카트만두의 자야 프라카시 말라 왕은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동인도 회사는 1767년 킨록 대위 휘하의 병력을 파견했으나 신둘리에서 고르칼리 군대에 패했다. 1768년 9월 25일, 카트만두 사람들이 인드라 자트라 축제를 축하하는 동안 고르칼리 군대가 도시에 진군하여 프르트비 나라얀 샤는 자신을 왕이라고 선포했다. 자야 프라카시 말라는 파탄으로 망명했고, 몇 주 후 파탄이 함락되자 박타푸르로 피신했다. 1769년 11월 25일, 박타푸르 함락으로 카트만두 계곡은 프르트비 나라얀 샤 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는 카트만두를 네팔 왕국의 왕실 수도로 선포했다.[33]
프르트비 나라얀 샤 왕은 다양한 종교-민족 집단을 하나의 통치하에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진정한 민족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에 대한 쇄국 정책을 옹호했다. 그의 사회적, 경제적 견해는 오랫동안 국가의 사회 경제적 과정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네팔의 지정학적 맥락에서 "두 바위 사이의 얌"이라는 그의 이미지는 앞으로 수세기 동안 국가 외교 정책의 주요 지침이 되었다.
5. 2. 마크완푸르 세나 왕조
16세기, 비하르와 국경을 접한 네팔 남부 지역에 벵골의 세나 가문 후손임을 주장하며 세나 성씨를 사용하는 왕조가 등장했다. 이 왕조의 분파 중 하나는 마크완푸르 가디 요새에서 통치한 마크완푸르 세나 왕조를 형성했다.[34] 마크완푸르 세나 왕조는 지역 언어인 마이틸리어를 채택하여 국어로 삼았다.[35]6. 현대사
프리트비 나라얀 샤는 18세기 후반 여러 소왕국들을 통합하여 현대 네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사후 샤 왕조는 영토를 확장했으나, 19세기 초 영-네팔 전쟁에서 패배하여 수가울리 조약을 통해 영토 일부를 영국에 할양해야 했다.[36]
6. 1. 네팔 왕국
프리트비 나라얀 샤가 여러 독립적인 고지 국가들을 통합하여 18세기 후반에 현대적인 네팔을 통일했다. 프리트비 나라얀 샤 사후, 샤 왕조는 왕국을 인도 아대륙의 상당 부분으로 확장했다. 1788년에서 1791년 사이, 중-네팔 전쟁 동안 네팔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시가체에 있는 타실룬포 사원을 약탈했다. 이에 청나라의 건륭제는 푸캉안을 티베트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푸캉안은 자신의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조약을 체결하여 무승부를 기록했다.[36]
1800년 이후, 프리트비 나라얀 샤의 후손들은 네팔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통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 후 내분기가 이어졌다. 네팔과 동인도 회사 사이의 경쟁은 결국 영-네팔 전쟁(1814–1816)으로 이어졌고, 네팔은 선진 무기를 가진 영국-인도군에 맞서 총과 탄약 부족으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1816년 수가울리 조약이 체결되어 네팔이 통제하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1860년에는 ''나야 물루크''(새로운 국가)로 알려진 테라이 서부의 일부가 네팔에 반환되었다.[36]
6. 1. 1. 라나 왕조
정 바하두르 라나는 라나 왕조를 세우고 총리직을 세습하며 독재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라나 통치자들은 "''쉬리 틴''"과 "''마하라자''"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샤 왕들은 "''쉬리 판치''"와 "''마하라자디라자''"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정 바하두르는 법을 성문화하고 국가 관료 기구를 현대화했다. 1846년 쿠데타에서 정 바하두르의 조카들과 라노딥 싱은 라노딥 싱과 정 바하두르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정 바하두르의 이름을 채택하여 네팔을 장악했다. 이후 9명의 라나 통치자들이 총리직을 세습했다. 그들은 모두 람중과 카스키의 마하라자로 불렸다.라나 정권은 중앙 집권화된 독재 정치를 펼치며 네팔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책을 추구했다. 이 정책은 네팔이 영국 식민 시대에 독립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국가의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저해했다. 라나들은 친영국 정책을 펼쳐 1857년 인도 반란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영국을 지원했다. 영국은 중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네팔의 독립을 지지했다.[37] 1923년 12월, 영국과 네팔은 1816년의 수골리 조약을 대체하고 카트만두 주재 영국 대표를 특사로 승격시키는 영구 평화와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찬드라 삼셰르 장 바하두르 라나 총리 재임 기간인 1924년에 네팔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다.[38]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네팔 왕국은 1939년 9월 4일에 독일에 선전 포고했다. 일본이 참전하자, 네팔 육군의 16개 대대가 버마 전역에서 활약했다. 네팔은 군사적 지원 외에도 무기, 장비, 수십만 파운드의 차, 설탕, 목재 등 원자재를 연합국에 제공했다.
6. 1. 2. 1951년 혁명과 민주화 운동
1951년 혁명은 남아시아의 여러 학교와 대학에서 공부한 소수의 교육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통치하는 라나 계층 내에서 소외된 라나족 내부에서 라나 가문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망명한 네팔인들 중 다수는 인도 독립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네팔 또한 독재적인 라나의 점령에서 해방시키기를 원했다. 네팔 프라자 파리샤드, 네팔 회의와 같은 정당들은 비.피. 코이랄라, 가네쉬 만 싱, 수바르나 삼셰르 라나, 크리슈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등과 같은 지도자들과, 네팔의 군사 및 대중 정치 운동이 독재적인 라나 정권을 전복하도록 촉구한 많은 다른 애국심 넘치는 네팔인들에 의해 이미 망명지에서 결성되었다. 네팔 회의는 또한 군사 조직인 네팔 회의 해방군을 결성했다. 라나족의 손에 처형되어 이 대의를 위해 죽은 저명한 순교자들 중에는 다르마 박타 마테마, 슈크라라지 샤스트리, 간갈랄 슈레스타, 다샤라트 찬드가 있었는데, 이들은 프라자 파리샤드의 구성원이었다.이러한 혼란은 프리트비 나라얀 샤의 직계 후손인 트리부반 국왕이 1950년 "궁궐 감옥"에서 탈출하여 인도로 도망치면서 절정에 달했고, 이는 라나 행정에 대한 1951년 네팔 혁명을 촉발했다. 이는 결국 샤 왕가의 권력 복귀와 '델리 협약'이라고 불리는 삼자 협약 서명 후 라나족이 아닌 총리의 임명으로 끝났다. 그 후 준헌법적 통치 기간이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군주는 신생 정당의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통치했다. 1950년대에 영국 모델을 기반으로 대표적인 정부 형태를 확립하는 네팔의 헌법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라나 가문 출신 5명과 네팔 회의 출신 5명으로 구성된 모한 삼셰르 장 바하두르 라나 총리 휘하의 10명으로 구성된 내각이 구성되었다. 이 정부는 네팔의 첫 번째 헌법인 '임시 정부법'이라는 헌법을 초안했다. 그러나 라나족과 국회의원들은 결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부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1951년 11월 16일, 국왕은 마트리카 프라사드 코이랄라 휘하의 14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으며, 이는 나중에 해산되었다.[1]
6. 1. 3. 판차야트 제도
1959년 최초의 민주적 선거가 치러져 비. 피. 코이랄라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마헨드라 국왕은 18개월 후인 1960년에 왕실 쿠데타를 일으켜 코이랄라 정부를 해산하고, 1960년 12월 16일에 새로운 헌법을 공포했다.[1]새로운 헌법은 판차야트 제도를 수립했는데, 마헨드라 국왕은 이를 네팔의 전통에 더 가까운 민주주의 형태의 정부로 여겼다. 판차야트 제도는 마을 회의에서 라스트리야 판차야트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로서 군주의 절대적인 권력을 헌법화했으며, 내각과 의회를 포함한 모든 정부 기관에 대한 유일한 권한을 가진 국가 원수로서 국왕을 유지했다. 다양한 민족 및 지역 집단을 단일 네팔 민족주의 유대로 통합하기 위해 일국일어(one-state-one-language)가 국가 정책이 되었다. 1967년에 시작된 마을로 돌아가는 국가 캠페인은 판차야트 제도의 주요 농촌 개발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1]
마헨드라 국왕은 1972년 그의 27세 아들인 비렌드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1979년 학생 시위와 반정부 활동이 벌어지자 비렌드라 국왕은 네팔 정부의 성격을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소집했다. 즉, 민주적 개혁과 함께 판차야트 제도를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당제 체제를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1980년 5월에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판차야트 제도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국왕은 라스트리야 판차야트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것을 포함하여 약속된 개혁을 실행했다.[1]
6. 1. 4. 다당제 민주주의
1990년 의회 민주주의 채택 이후, 농촌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더 잘 대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네팔 회의는 연합 좌파 전선의 지원을 받아 결정적인 투쟁 운동인 자나 안돌란을 시작했고, 이는 군주국이 헌법 개혁을 수용하고 다당제 의회를 설립하도록 강요했다.[39] 1991년 5월, 네팔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선거를 치렀다. 네팔 회의는 205석 중 110석을 차지하여 32년 만에 최초의 선출된 정부를 구성했다.1992년, 새로운 회의 정부의 정책 변화 시행으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 위기와 혼란이 발생하자 급진 좌파는 정치 투쟁을 강화했다. 여러 단체들이 연합 인민 투쟁 위원회를 설립했다.[39] 4월 6일 총파업이 선포되었다. 파업 전날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연합 인민 투쟁 위원회는 수도에서 30분간 '소등'을 요구했고, 활동가들이 '소등'을 강요하려 하자 비르 병원 밖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4월 6일 새벽, 라릿푸르 풀촉의 경찰서 밖에서 파업 활동가들과 경찰 간의 충돌로 활동가 2명이 사망했다. 그날 늦게, 수도 카트만두의 툰디켈에서 열린 투쟁 위원회의 대규모 집회에 경찰이 공격을 가했다. 그 결과 폭동이 발생했고 네팔 통신 건물이 불탔다. 경찰은 군중에게 발포하여 여러 명이 사망했다. 네팔 인권 기구는 경찰 발포로 여러 구경꾼을 포함하여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40]
약속된 토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자,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자체 토지 개혁을 시행하고 고리대금업자 앞에서 자신들의 삶에 대한 권한을 얻기 위해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네팔 정부에 의해 "로미오 작전"과 "킬로 세라 II 작전"으로 진압되었고, 이로 인해 투쟁의 주요 활동가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결과, 이 진압의 많은 증인들이 급진화되었다.
6. 1. 5. 네팔 내전
1997년 3월, 네팔 공산당(마오이스트)는 의원 내각제 군주국을 인민 전쟁으로 알려진 마오이스트 혁명 전략을 통해 새로운 인민 민주 공화국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시작했고, 이는 네팔 내전으로 이어졌다.[1] 바부람 바타라이 박사와 푸슈파 카말 다할 ("프라찬다"로도 알려짐)이 이끄는 반군은 네팔의 롤파, 루쿰, 자자르코트, 고르카, 신둘리 5개 지역에서 시작하여, 여러 지역에서 지방 수준의 임시 "인민 정부"를 수립했다.[1]2001년 6월 1일, 디펜드라 왕세자는 네팔 왕실 학살을 벌여 비렌드라 국왕, 아이슈와리야 왕비를 포함한 왕족 9명을 암살한 후 스스로에게 총을 쐈다.[2] 그는 부상으로 사망하기 전 임시적으로 왕이 되었고, 그 후 갸넨드라 왕자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가 왕위를 물려받았다.[2] 한편, 반란은 확대되었고 2002년 10월에 국왕은 임시로 정부를 해임하고 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2] 일주일 후 그는 또 다른 정부를 재임명했지만 국가는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다.[2]
네팔의 상당 부분이 반군에 의해 점령되었다.[3] 마오이스트는 정부와 가까운 정당의 대표들을 몰아내고, 지역 "자본가"를 몰수하고, 자체 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했으며, 자체 감옥과 법원을 운영했다.[3] 강압적인 조치 외에도, 게릴라군은 네팔 사회의 광범위한 부문, 특히 여성, 불가촉천민, 소수 민족과의 인기로 인해 기반을 다졌다.[3] 카스트 차별은 폐지되었고, 여성은 동등한 상속권을 받았으며 강제 결혼은 금지되었다.[3] 또한, 마오이스트는 무료 의료 서비스와 문맹 퇴치 수업을 제공했다.[3]

2004년 8월, 불안정한 정부와 카트만두 계곡에 대한 포위 공격에 직면하여 군주제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4] 2005년 2월 1일, 갸넨드라 국왕은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정부 전체를 해임하고 완전한 행정 권한을 장악했다.[4] 정치인들은 가택 연금되었고, 전화 및 인터넷 회선이 끊어졌으며,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었다.[4]
국왕의 새로운 정권은 반군을 진압하려는 명시된 목표에서 거의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5] 2006년 2월의 지방 선거는 주요 정당이 선거 보이콧을 하고 일부 후보가 군대에 의해 강제로 출마하게 되어 유럽 연합에 의해 "민주주의의 퇴보"로 묘사되었다.[5] 2006년 4월 카트만두에서의 파업과 거리 시위로 국왕은 의회를 복귀하게 되었다.[5] 7당 연합이 정부의 통제권을 되찾았고 국왕의 권한을 대부분 박탈했다.[5] 2007년 12월 24일, 전 마오이스트 반군과 집권당을 포함한 7개 정당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네팔을 연방 공화국으로 선언하는 데 합의했다.[6] 2008년 4월 10일에 실시된 선거에서 마오이스트는 과반수를 확보하여 제안된 '네팔 공화국'을 통치할 정부를 구성할 전망을 얻었다.[6]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전쟁으로 약 13,000명이 사망했다.[7] NGO인 비공식 부문 서비스 센터에 따르면, 민간인 살해의 85%가 정부의 행위로 인한 것이다.[7]
6. 2.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
2008년 5월 28일, 제헌 의회는 240년 된 군주제를 폐지하고 네팔을 연방 민주 공화국으로 선포했다. 이 안건은 의원 564명 중 560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46] 2008년 6월 11일, 기아넨드라 국왕은 궁을 떠났다.[47] 람 바란 야다브가 2008년 7월 23일 네팔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48] 푸슈파 카말 다할(프라찬다)이 2008년 8월 15일 초대 총리로 선출되었다.[48]2012년 5월 28일, 제헌 의회가 헌법 초안 작성에 실패하자 해산되었고, 킬 라지 레그미 대법원장을 총리로 하는 과도 정부가 구성되었다. 2013년 11월 제헌 의회 선거에서 네팔 회의가 최다 득표를 얻었으나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후 CPN (UML)과 네팔 회의의 합의로 수실 코이랄라가 총리로 선출되었다.[49] 2015년 9월 20일, 네팔 헌법이 채택되었다.
2015년 4월 25일, 규모 7.8Mw의 지진으로 약 9,000명이 사망하고 22,000명이 부상을 입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51] 5월 12일에는 규모 7.3Mw의 여진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5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51]
마데시족, 타루족 등 소수 민족은 새 헌법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로 인해 최소 56명의 민간인과 11명의 경찰이 사망했다.[53] 인도는 국경 지역의 불안정을 이유로 네팔에 대한 물품 공급을 중단했다.[54] 당시 네팔 총리였던 KP 샤르마 올리는 인도를 비난했고,[55] 인도는 봉쇄를 부인했다.[56] 당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인권 침해를 언급하며 인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58]
2017년 6월,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가 총리로 선출되었다.[59] 2017년 11월, 총선에서 공산주의 연합이 승리하여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가 2018년 2월 총리로 취임했다.[61] 2018년 3월, 비디아 데비 반다리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62]
2021년 7월, 헌법 위기 이후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가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63] 2022년 12월, 푸슈파 카말 다할(프라찬다)이 총선 이후 다시 총리가 되었다.[64] 2023년 3월, 람 찬드라 포우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65] 2024년 7월 15일,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가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
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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