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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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샤카족은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살았던 고대 부족으로, 현재의 네팔 지역에 위치한 카필라바스투를 수도로 삼았다. 샤카족은 산스크리트어 '사크'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가능한' 또는 '실행 가능한'을 의미하며, 티크 또는 사카 나무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 샤카족은 인도아리아인과 문다족의 혼혈로, 콜리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으며, 붓다의 출생과 관련하여 불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원전 6세기에는 코살라 왕국과 대립했으며, 샤카족의 자존심은 비두다바 왕에 의해 멸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샤카족은 가나상가 형태로 조직되었으며, 의회를 통해 공화국을 운영했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등 독자적인 종교적 관습을 가졌다. 붓다를 '샤카족의 현자'로 칭하며, 불교 우주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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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카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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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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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샤카 공화국 |
일반 명칭 | 샤카 |
시대 | 철기 시대 |
지위 | 코살라의 봉신국 |
정치 체제 | 귀족 공화국 |
수도 | 카필라바스투 |
공용어 | 프라크리트어 |
종교 | 슈라마나 종교, 태양 숭배, 나무 숭배, 뱀 숭배 |
역사 | |
시작 연도 | 기원전 7세기경 |
종료 연도 | 기원전 5세기경 |
종료 사건 | 비두다바의 코살라에 의해 정복됨 |
선행 국가 | 코살라 |
후행 국가 | 코살라 |
정치 | |
입법부 | 사바 |
지도자 칭호 | 마하라자 |
주요 지도자 | 기원전 6세기경: 슈도다나 기원전 5세기경: 마하나마 |
현재 위치 | |
위치 | 인도 네팔 |
2. 위치
샤카족은 히말라야 산맥 기슭을 따라 살았는데, 서쪽과 남쪽으로는 코살라 왕국, 동쪽으로는 로히니 강 건너 콜리야족, 북동쪽으로는 쿠시나가르의 말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삼림이 우거져 북쪽 경계를 형성할 때까지 샤카족의 영토가 히말라야산맥까지 뻗어 있었다.[25] 샤카족의 수도는 카필라바스투였다.[1]
샤카족의 이름은 주로 팔리어로 사키야와 샄카, 산스크리트어로 샤키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6]
샤카족의 가계는 경전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국역대장경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샤카족의 시조는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대지주로 기술되어 있다.[19] 『불본행집경』에서는 샤카족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3. 어원
샤카족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어근 śak|샤크sa(शक्)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가능하다", "가치 있는", "가능한" 또는 "실행 가능한"을 뜻한다.[26][27]
샤카족의 이름은 또한 티크 또는 사카 나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2] 브라이언 레프먼은 이 나무가 '가지'를 의미하는 단어 śākhā|샤카sa(शाखा)와 관련이 있으며,[3] 샤카족이 사카 또는 사카 나무를 숭배하는 관습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3]
4. 역사
『불본행집경』 현겁왕종품・제삼[19]에 따른 샤카족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순서 이름 비고 1 대중평장(찰리왕, 전주) 2 진실 3 의희 4 지자(수계) 5 정생 6 대해 7 구족 8 양육 9 복차 10 해탈 11 선해탈 12 소요 13 대소요 14 조요 15 대조요 16 의희 17 선희 18 만족 19 양육 20 복차 21 인수령 22 화질 23 광염 24 선비관 25 공관 26 선견 27 대선견 28 수륵 29 대수륵 포다나성 30 사자승 파라내성, 101세대 후 31 여승 아유사성, 61세대 후 32 엄치생 가비리야성, 56세대 후 33 범덕 아사제나부라성, 1000세대 후 34 상장 덕차시라성, 25세대 후 35 호 사야나성, 25세대 후 36 능복복 가나구타성, 1200세대 후 37 승장 첨파성, 90세대 후 38 용천 왕사성, 2500세대 후 39 제작 구시나가라성, 25세대 후 40 대자재천 암바라겁파성, 25세대 후 41 대자재천 단다부라성, 25세대 후 42 선의 다마파파리다성, 25세대 후 43 무우만 미제라성, 25세대 후 44 비뉴천 비보타나성, 8만천세대 후 45 대자재천 미제라성, 101세대 후 46 어왕 , 8만4천세대 후 47 진생 48 평등행 49 암화 50 염치 51 선비 52 허공 53 계행 54 무우 55 리우 56 제우 57 승장 58 대장 59 태생 60 명성 61 방주 62 진 63 선의 64 선주 65 환희 66 대력 67 대광 68 대칭 69 십차 70 이십차 71 묘차 72 보차 73 십궁 74 백궁 75 이십궁 76 묘색궁 77 죄궁 78 해장 79 난승 80 모초 포다나성 81 대모초 82 감서 83 별성(니구라) 가비라성 84 구로 85 구구로 86 사자협 87 정반왕 88 성리(석가)
석가의 조부 Sīṃhahanusa(시시쿄오)에게는 정반왕(Śuddhodana), 백반(Śuklodana), 곡반(Droṇodana), 감로반(Amṛtārasa), 감로미(Amṛtā)의 네 아들과 한 딸이 있었다.[19]
『기생경』에서는 감서종왕(불선장) - 족구 - 천성 - 우성 - 광차 - 별차 - 견차 - 주차 - 십차 - 백차 - 구(십)차 - 잡(색)차 - 지차 - 광궁 - 다궁 - 겸궁 - 주궁 - 십궁 - 백궁 - 구(십)궁 - 잡(색)궁 - 지궁 - 사자협 - 정반 순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정반왕을 아버지로 하여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났다.
4. 1. 기원
샤카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대마가다 문화권의 동쪽 갠지스 평원 주변부, 히말라야 산맥 동부에 거주하던 집단이었다.[28] 이들은 인도아리아인과 문다족의 혼혈이었으며, 인도아리아인이 소수였다.[28] 샤카족은 동쪽 이웃인 콜리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서로 혼인하기도 하였다.
샤카족은 최소한 이중 언어를 구사했으며, 많은 마을이 문다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샤카족 씨족 창시자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형태로는 Ikṣvākusa, 팔리어 형태로는 Okkākapi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문다어의 언어적 영향을 보여준다. 샤카족의 기원은 문다족이다.[4]
전설에 따르면, 샤카족은 아리아인의 크샤트리아 왕통에 속한다고 한다. 일종(日種, sūryavaṃśasa, ādiccagottapi)에 속하며, 감서왕(간쇼오, 오카카) 계통이라고도 한다.[16][17]
『한서』 장건전의 "새왕"에 대해 안사고는 "곧 불경에서 석종이라고 하는 자. 새(塞)・석(釈)은 소리(발음)가 가깝고, 본래 같은 성씨일 뿐이다."라고 주석을 달아, 새(소쿠)라고 불리는 종족(사카)과 석가족이 원래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문법상 śākyasa(샤카)를 śakasa(샤카(=사카의 범어))의 파생어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18] 사카족이 인도에 도달한 것은 기원전 2세기로, 부처의 시대보다 훨씬 후라는 문제가 있다.
일부 역사가는 샤카족을 티베트-미얀마계로 보기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시아계가 유력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샤카족의 가계는 경전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국역대장경 『불본행집경』에 따르면, 샤카족의 시조는 이 땅에 벼농사를 시작한 대지주로 기술되어 있다. 『불본행집경』 현겁왕종품・제삼[19]에서는 샤카족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대중평장(찰리왕, 전주), (2) 진실, (3) 의희, (4) 지자(수계), (5) 정생, (6) 대해, (7) 구족, (8) 양육, (9) 복차, (10) 해탈, (11) 선해탈, (12) 소요, (13) 대소요, (14) 조요(조요), (15) 대조요, (16) 의희, (17) 선희, (18) 만족, (19) 양육, (20) 복차, (21) 인수령, (22) 화질, (23) 광염, (24) 선비관, (25) 공관, (26) 선견, (27) 대선견, (28) 수륵, (29) 대수륵[포다나성], 101세대 후, (30) 사자승[파라내성], 61세대 후, (31) 여승[아유사성], 56세대 후, (32) 엄치생[가비리야성], 1000세대 후, (33) 범덕[아사제나부라성], 25세대 후, (34) 상장[덕차시라성], 25세대 후, (35) 호[사야나성], 1200세대 후, (36) 능복복[가나구타성], 90세대 후, (37) 승장[첨파성], 2500세대 후, (38) 용천[왕사성], 25세대 후, (39) 제작[구시나가라성], 25세대 후, (40) 대자재천[암바라겁파성], 25세대 후, (41) 대자재천[단다부라성], 25세대 후, (42) 선의[다마파파리다성], 25세대 후, (43) 무우만[미제라성], 8만천세대 후, (44) 비뉴천[비보타나성], 101세대 후, (45) 대자재천[미제라성], 8만4천세대 후, (46) 어왕, (47) 진생, (48) 평등행, (49) 암화, (50) 염치, (51) 선비, (52) 허공, (53) 계행, (54) 무우, (55) 리우, (56) 제우, (57) 승장, (58) 대장, (59) 태생, (60) 명성, (61) 방주, (62) 진, (63) 선의, (64) 선주, (65) 환희, (66) 대력, (67) 대광, (68) 대칭, (69) 십차, (70) 이십차, (71) 묘차, (72) 보차, (73) 십궁, (74) 백궁, (75) 이십궁, (76) 묘색궁, (77) 죄궁, (78) 해장, (79) 난승, (80) 모초[포다나성], (81) 대모초, (82) 감서, (83) 별성(니구라)[가비라성], (84) 구로, (85) 구구로, (86) 사자협, (87) 정반, (88) 성리(석가)
석가의 조부 Sīṃhahanusa(시시쿄오)에게는 정반왕(Śuddhodana), 백반(Śuklodana), 곡반(Droṇodana), 감로반(Amṛtārasa), 감로미(Amṛtā)의 네 아들과 한 딸이 있었다고 한다.
『기생경』에서는 감서종왕(불선장) - 족구 - 천성 - 우성 - 광차 - 별차 - 견차 - 주차 - 십차 - 백차 - 구(십)차 - 잡(색)차 - 지차 - 광궁 - 다궁 - 겸궁 - 주궁 - 십궁 - 백궁 - 구(십)궁 - 잡(색)궁 - 지궁 - 사자협 - 정반 순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정반왕을 아버지로 하여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났다고 한다.
4. 1. 1. 대체 기원 가설
마이클 위첼과 크리스토퍼 벡위드 같은 학자들은 샤카족을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인들은 사카, 인도 아리안들은 샤카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 유목민과 동일시했다. 이 학자들은 부처의 사람들이 다리우스 1세가 인더스 계곡 정복을 했을 때 군대를 이끌고 남아시아에 도착한 사카족 병사들이었으며, 스키타이-사카 유목민에서 부처의 방랑 고행의 기원을 보았다고 주장한다.[29][30] 학자들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키타이 가설을 비판하고 있으며, 브라이언 레프만은 샤카족이 북동쪽 강게틱 평야가 원산지이며 이란 사카족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31]
4. 2. 국가
기원전 6세기 경, 샤카족은 서쪽의 코살라 왕국, 동쪽의 리차비족과 비데하 사이에 거주하며 밧지 연맹과 코살라 왕국을 분리했다. 샤카 공화국은 코살라 왕국의 봉신국이었다.[32]
슈도다나는 샤카족의 귀족 과두정치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콜리야 귀족의 딸 마야데비와 결혼하여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 가우타마를 낳았다.
싯다르타 생애 동안, 샤카족과 콜리야족은 로히니강 물을 두고 무력 분쟁을 벌였으나, 싯다르타의 개입으로 종식되었다.
싯다르타 사후, 샤카족은 그가 샤카인이라는 이유로 쿠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유물 일부를 요구했다.
4. 3. 코살라의 정복
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아버지 파세나디를 축출한 코살라의 왕 비두다바는 한때 코살라의 일부였던 샤캬와 콜리야 공화국을 침공하여 그들의 영토를 정복하려 했다. 비두다바는 양쪽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은 긴 전쟁 끝에 마침내 샤키야와 콜리야를 상대로 승리하고 그들의 국가를 합병했다. 이 전쟁의 세부 사항은 후대의 불교 기록에 의해 과장되었는데, 비두다바의 침공은 비두다바의 어머니가 된 노예 소녀를 아버지에게 시집보낸 것에 대한 보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비두다바의 샤카 침공이 마가다 국왕 아자타샤트루가 밧지 공주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어머니의 고향 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밧지 동맹을 정복한 것과 비슷한 동기를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 코살라의 침공 결과 샤카족과 콜리야족은 비두다바의 왕국에 합병된 후 정치적 중요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카족은 합병 후 곧 코살라의 인구로 흡수되어 소수의 실향민 가족만이 샤카 정체성을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콜리야족도 합병 후 곧 정체성을 상실했다.
샤카족을 정복하는 동안 코살라가 입은 막대한 인명 손실로 인해 코살라는 곧 동쪽 이웃인 마가다에 합병되었고 비두다바는 아자타샤트루에게 패배하며 살해당했다.
5. 사회
샤카족은 브라만, 카티야, 베샤, 수다로 구성된 카투르바나 사회 조직에 속하지 않았다. 대신 귀족 계급인 카티야와 노예 또는 하인 계급인 수다로 구성된 계층화된 사회였다.[4]
토지 소유자들은 "(토지 소유권의) 향유자"라는 의미의 보자카(bohjakás)라는 칭호를 가졌으며, 이는 "지주"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샤카 사회의 하층 계급은 농장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kammakarapi (노동자한국어)와 sevakasa (농노한국어)라고 불리는 하인으로 구성되었다.[4]
인도아리아인이 아닌 샤카족의 문화적 관습 중 하나는 지배 씨족들 사이의 근친혼 관행이었다. 이는 아리아바르타 사람들 사이에서는 금지되었지만, 샤카 씨족의 더 작은 상류층 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관습이었기 때문에 샤카 씨족의 하위 계층 사이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4]
6. 정치
샤카족은 리차비족과 유사한 가나상가 (귀족적인 과두정 공화국)로 조직되었다.[8]
6. 1. 의회
고타마의 사캬 카티야 씨족의 수장들은 의회를 구성해야 했고, 그들은 라자라는 칭호를 가졌다. 라자의 지위는 세습되었고, 라자가 죽은 후에는 그의 장남에게 물려주었으며, 장남은 살아 있는 동안 우파라자("부왕")라는 칭호를 가졌다.[8]샤카족의 정치체제는 콜리야족과 같았고, 콜리야족을 포함한 다른 가나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의회는 산타가라에서 열렸는데, 그 중심은 카필라바스투에 있었지만, 적어도 다른 샤카 산티가라 역시 카투마에 있었다. 샤카 의회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기능을 분리하지 않았고, 전쟁, 평화, 동맹 등 공적 업무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샤카 의회는 중요한 문제를 심의했고, 손을 들거나 나무 칩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간단한 투표제를 실시했다.[8]
의회의 회기가 열리면 라자들은 산타가라에 모였고, 연설을 명확하고 쉽게 들을 수 있도록 네 개의 아마카가 홀의 네 구석이나 측면에 배치되었으며, 집정관인 마하라자는 지정된 자리에 앉아 의회가 준비되면 논의할 사항을 제시했다.[8]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의원들은 각자의 견해를 밝혔고, 네 명의 아마카가 이를 기록했다. 그 후 의회는 휴회되었고, 그 후 기록자들이 각자의 메모를 비교한 후 모든 아마카가 돌아와 기록자들의 결정을 기다렸다.[8]
6. 2. 평의회
다른 가나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샤카 의회는 거의 열리지 않았고, 대신 의회의 이름으로 공화국을 관리하기 위해 더 자주 만나는 내적이고 작은 평의회가 있었다. amaccā|아마카pi라는 칭호를 지닌 평의원들은 공화국의 공공 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부서를 형성했다.[1]6. 3. 마하라자 (집정관)
샤카 공화국의 수장은 선출된 수장으로, 고대 로마의 콘술이나 고대 그리스의 아르콘과 비슷한 지위에 있었으며, 마하라자라는 칭호를 지녔다. 마하라자는 평의회의 도움을 받아 공화국을 관리했다.7. 종교
샤카족은 대 마가다 문화권에 거주했기 때문에 브라만교 전통과는 크게 다른 비베다적 종교적 관습을 따랐으며, 고타마 붓다 시대에도 브라만교는 샤키야가 속한 대마가다 지역에서 종교적, 문화적 우위를 얻지 못했다.[39]
이러한 비베다적 문화 환경 속에서 사문 운동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인 불교는 고타마 붓다에 의해 설립되었다.
7. 1. 태양 숭배
샤카의 카티야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겼던 태양신을 숭배했고,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아디카(산스크리트어로 아디트야) 고타이자 수리야밤사(태양 왕조)라고 주장했다.[40]7. 2. 기원 신화
샤카족의 카티야들은 태양신의 후손을 통해 자신들이 태양신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후손의 이름은 이크슈바쿠이며, 서로 결혼한 8쌍둥이 아들과 딸이 샤카족의 수도를 건설하고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샤카족 카티야 가문의 지배 지위에 대한 기원 신화로, 이들은 산타가라에서 대표권을 가졌고, 종종 서로 친척 관계였으며, 인접한 땅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족 관계를 형성하여 토지 소유권과 정치적 권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1]이 신화는 정치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던 도시가 씨족 지배자들의 거주지로서 그 씨족의 자나파다(영토)와 연관되어 전체 자나파다와 동일시되는 도시의 기반 신화이기도 했다.[1]
샤카 가문의 조상이 결혼한 쌍둥이 형제자매 네 쌍이라는 신화는 지배하는 샤카 가문의 기원을 공통의 조상으로 추적한 신화였고, 인간이 부부로 태어난 초기 인류 유토피아의 신화이기도 했다.[1]
7. 3. 나무 숭배
불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생애에서 살 나무의 중요한 역할과 보리수로서의 부처님의 모습,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모습은 석가모니가 나무 숭배를 실천했으며, 이는 신성한 숲을 숭배하는 문다 종교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새해와 꽃 축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살나무의 개화가 그들의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산탈족은 살나무를 숭배하고 살 나무 아래 모여 공동의 결정을 내렸다.초기 불교 문헌에서 팔리어로 약카와 약키(산스크리트어로 야크샤와 야크시)라고 불리는 나무 정령의 중요성은 약카 세티야에서 이러한 존재에 대한 숭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도아리아 이전의 자생적 기원인 약카와 야키에 대한 숭배는 대마가다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7. 4. 뱀 숭배
불교 신화에서 무찰린다 나무 밑에서 폭풍이 불 때 석가모니를 보호했던 나가라자 무찰린다는 뱀신이면서 동시에 나무신이었으며, 이는 인도아리아 이전에 남아시아 북부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샤카족이 뱀 숭배를 행했음을 암시한다.[16]7. 5. 장례 풍습
불교 문헌에 묘사된 대로 석가모니의 장례를 위해 행해진 샤카족의 화장 의식은 그의 몸을 500겹의 천으로 감싸고, 존경의 표시로 기름이 가득 찬 철통에 넣은 다음, 화장하기 전에 또 다른 철 냄비로 덮는 것을 포함했다. 이 의식들은 노래, 춤, 음악으로 부처의 몸을 기리고, 그의 뼈를 금으로 된 유골함에 넣는 것, 이 유골들을 숭배하고, 중앙 스투파, 깃발, 펜티, 파라솔을 가진 공공의 교차로에 묻는 것과 같이, 인도아리아인의 이주 이전 갠지스 평원에 살았던 사람들이 더 많은 통치자들을 위해 행했던 의식들이었다.8. 유산
그의 추종자들은 싯다르타에게 석가모니(샤카족의 현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33] 불교 우주론에서 제석천의 천국의 절차가 수행하는 역할은 샤카족의 산타가라의 절차를 모델로 한다.[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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