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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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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논리주의는 수학을 기호 논리에서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등에 의해 제창되었다. 초기 논리주의는 수학적 개념을 논리적 개념으로 정의하고 수학적 정리를 논리적 상징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포함했다. 그러나 러셀의 역설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쇠퇴하였으며, 이후 신논리주의가 등장하여 흄의 원리 등을 통해 프레게 프로그램의 부활을 시도했다. 논리주의는 수학의 기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으나, 수학적 직관의 배제, 악순환 원리, 러셀의 무계급 이론 등 여러 비판에 직면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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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주의

2. 역사

데데킨트는 특정 유리수 집합을 사용하여 실수를 특징짓는 공리를 만족하는 모형을 구성함으로써 논리주의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는 산술, 대수, 해석학자연수와 집합의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1872년에는 자연수 자체가 집합과 사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산술의 기초''부터 시작된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은 당시 자연수에 대한 설명의 인식론존재론적 약속에 대한 불만, 그리고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에 대한 진리를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데데킨트와 프레게를 중심으로 논리주의가 확장되었으나, 집합론의 고전적인 역설(칸토어, 체르멜로, 러셀의 역설) 발견으로 위기를 맞았다. 프레게는 러셀이 그의 역설을 지적하자 자신의 시스템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하고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반면 러셀은 역설과 주세페 페아노 학파의 기하학 발전을 바탕으로 1903년 ''수학 원리''를 저술했다. 이 책은 기하학과 집합론의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어 논리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논리주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2]

쿠르트 괴델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자연수에 대한 페아노 공리를 도출할 수 있는 공식 시스템(예: PM의 러셀 시스템)이 해당 시스템 내의 모든 문장을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3] 이는 데이비드 힐베르트의 수학의 기초 프로그램을 약화시켰다. 괴델의 결과는 논리주의를 유지하면서 고전 수학을 최대한 보존하려면 일부 무한 공리를 논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했다.

타르스키의 무정의성 정리는 괴델 넘버링이 구문론적 구성은 증명할 수 있지만 의미론적 주장은 증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4] 따라서 논리주의가 유효한 프로그램으로 남으려면, 자연수의 존재와 속성에 기초한 증명 시스템이 특정 형식 시스템보다 덜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은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의 공리(또는 그 확장인 ZFC)와 같이 소수의 비논리적 공리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여겨지며, 아직까지 모순이 발견되지 않았다.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요소들은 실행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클래스, 집합, 사상에 대한 이론과 헨킨 의미론이 아닌 고차 논리는 비논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논리주의'''는 원래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후계자로 간주되는 다양한 견해를 포괄한다.[30] 좁게는, 신논리주의는 ''Grundgesetze''의 프레게 시스템을 수정하여 프레게 프로그램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원하려는 시도이다(이는 2차 논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31] 크리스핀 라이트, 밥 헤일 등이 신프레게주의를 옹호하며, 이는 '''스코틀랜드 학파''' 또는 '''추상주의적 플라톤주의'''라고도 불리고, 인식론적 기초주의의 한 형태를 지지한다.[33][34]

버나드 린스키와 에드워드 N. 잘타 등은 신논리주의의 또 다른 주요 옹호자들로, '''스탠퍼드-에드먼턴 학파''', 추상 구조주의 또는 '''양상 신논리주의'''라고 불리며, 공리적 형이상학의 한 형태를 옹호한다.[34][32] 양상 신논리주의는 페아노 공리를 2차 양상 객체 이론 내에서 도출한다.[35][36]

2. 1. 초기 논리주의

아이보 그라탄-기네스에 따르면, 'Logistique'라는 프랑스어 단어는 1904년 국제 철학 회의에서 루이 쿠투라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러셀 등이 이 단어를 다양한 언어에 맞게 사용했다.[6]

러셀은 1919년 저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프레게를 '수학을 '논리화'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6] 그러나 러셀은 이 단어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고, '논리주의'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6]

루돌프 카르납과 아브라함 프뢴켈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이 단어를 사용했다. 프뢴켈은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입장을 '논리주의'라고 칭했다.[6] 카르납은 'Logistik'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Logizismus'라는 단어를 제안받았지만 결국 'Logistik'을 고수했다.[6] 1930년대부터 카르납이 이 단어의 확산을 주도했다.[6]

논리주의는 모든 수학을 기호 논리로부터 유도하려는 명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수적 논리와는 달리, 기호 논리는 매우 적은 수의 기호(비산술 기호), "사고의 법칙"을 구현하는 몇 개의 "논리적" 공리, 그리고 기호를 조작하는 방법을 지시하는 추론 규칙(예: 대입 및 ''전건 긍정'')으로 시작한다. 논리주의는 또한 프레게의 기반에서 자연어 진술을 명제적 "원자" 또는 "일반화"의 "인수|함수"로 축소하는 것을 채택하여, "모든", "일부", "클래스"(집합, 총계) 및 "관계" 개념을 사용한다.

논리주의적으로 자연수와 그 속성을 유도할 때, 수에 대한 "직관"이 공리나 우연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목표는 선택된 "사고의 법칙"만으로, 즉 "이전"과 "이후" 등에 대한 암묵적인 가정 없이, 수의 카운트에서 시작하여 실수까지 모든 수학을 유도하는 것이다. 괴델은 러셀의 논리주의적 "구성"을 직관주의 및 형식주의("힐베르트 학파")와 비교하며, 이 두 학파가 회피하고자 하는 수학적 직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2. 2. 프레게와 러셀

고틀로프 프레게의 선구적인 논리주의 연구를 이어받아, 버트런드 러셀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논리주의를 주창했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3권에 달하는 대저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년 - 1913년)에서 어느 정도 실현해 보였다.[2]

1903년, 프레게의 《산술의 기본 법칙》 제2권 출간을 앞두고 러셀로부터 러셀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역설에 대한 지적이 들어왔다. 이에 프레게는 역설 해결을 목표로 했지만, 최종적으로 수학적인 방법의 철저함을 포기했다. 러셀은 프레게와는 별개로, 유형 이론(타입 이론)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역설을 피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무모순성과 완전성이 증명되지 않았다.

''산술의 기초''부터 시작된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은 당시 존재했던 자연수에 대한 설명의 인식론존재론적 약속에 대한 불만, 그리고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에 대한 진리를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반면에 러셀은 역설과 주세페 페아노 학파의 기하학 발전을 사용하여 1903년에 ''수학 원리''를 저술했다. 이 책은 기하학 및 집합론의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었기 때문에 논리주의 발전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프레게와 데데킨트의 논리주의는 러셀의 논리주의와 유사하지만,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있다.

2. 3. 러셀의 역설과 유형 이론

고틀로프 프레게의 선구적인 논리주의 연구를 이어받아, 버트런드 러셀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년 - 1913년)에서 논리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1903년, 러셀은 프레게의 《산술의 기본 법칙》에서 러셀의 역설을 발견했다.[26] 이는 프레게의 기본 법칙 V에서 유래한 "악순환"이었다.[26] 프레게는 함수가 객체뿐만 아니라 함수의 자체 출력에서도 입력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27] 이는 문제를 야기했다.

러셀은 이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타입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수학 원리》에서 프레게의 이론을 분석하고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낙관하지는 않았다.[26]

러셀은 클래스를 "허구"로 선언함으로써 무한 후퇴 문제를 피했다. 이는 클래스가 명제 함수를 만족하는 요소만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는 클래스의 "유형" 계층을 도입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앙리 푸앵카레는 "비예측적" 정의를 비판하며, 수학에서는 예측적 정의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3] 러셀은 이에 대응하여 "악순환 원리"를 옹호했다.[24]

:"어떤 전체도 이 전체의 용어로만 정의될 수 있는 구성원이나 이 전체를 포함하거나 전제하는 구성원을 포함할 수 없다"(악순환 원리)[24]

프레게와 러셀 모두 자연수를 구성하기 위해 등수적 클래스(집합)를 형성하고 각 묶음에 고유한 "숫자"를 할당했다. 그러나 러셀과 달리 프레게는 단위 클래스의 클래스를 그 자체로 단위로 식별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는 증가하는 유형과 내용의 무한 후퇴를 초래했다.

2. 4. 논리주의의 위기와 그 이후

집합론의 고전적인 역설(칸토어의 역설(1896), 체르멜로의 역설, 러셀의 역설(1900–1901)) 발견은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2] 프레게는 러셀이 그의 역설을 지적하자, ''Grundgesetze der Arithmetik''에 제시된 자신의 시스템에 모순이 있음을 인지하고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순진 집합론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반면 러셀은 역설과 주세페 페아노 학파의 기하학 발전을 바탕으로 1903년 ''수학 원리''를 저술했다. 이 책은 기하학과 집합론의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어 논리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논리주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2]

쿠르트 괴델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자연수에 대한 페아노 공리를 도출할 수 있는 공식 시스템(예: PM의 러셀 시스템)이 해당 시스템 내의 모든 문장을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3] 이는 데이비드 힐베르트의 수학의 기초 프로그램을 약화시켰다. 괴델의 결과는 논리주의를 유지하면서 고전 수학을 최대한 보존하려면 일부 무한 공리를 논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했다.

타르스키의 무정의성 정리는 괴델 넘버링이 구문론적 구성은 증명할 수 있지만 의미론적 주장은 증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논리주의가 유효한 프로그램으로 남으려면, 자연수의 존재와 속성에 기초한 증명 시스템이 특정 형식 시스템보다 덜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4]

힐베르트는 논리주의를 "잘못된 길"로 평가절하했다. 불완전성 정리는 힐베르트의 유한주의에도 유사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Mancosu에 따르면, 브라우어는 "고전 논리 법칙은 [기호 표현에서] 인식된 규칙성의 일부이며, 수학적 구성 이후에 파생된다... 이론적 논리는 경험 과학이자 수학의 응용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신논리주의'''는 옹호자들이 원래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후계자로 간주하는 다양한 견해를 포괄한다.[30] 좁게는, 신논리주의는 ''Grundgesetze''의 프레게 시스템을 수정하여 프레게 프로그램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원하려는 시도이다(이는 2차 논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초 법칙 V(순진 집합론의 무제한 이해의 공리 체계와 유사)를 역설을 방지하기 위해 '더 안전한' 공리로 대체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체 후보는 '''흄의 원리'''로, '#''F'' = #''G'' 만약 그리고 오직 만약 ''F''와 ''G'' 사이에 전단사가 있다면'과 같이 '#'을 문맥적으로 정의한다.[31] 이러한 신논리주의는 '''신프레게주의'''라고도 불린다.[32] 크리스핀 라이트, 밥 헤일 등이 신프레게주의를 옹호하며, 이는 '''스코틀랜드 학파''' 또는 '''추상주의적 플라톤주의'''라고도 불리고, 인식론적 기초주의의 한 형태를 지지한다.[33][34]

버나드 린스키와 에드워드 N. 잘타 등은 신논리주의의 또 다른 முக்கிய 옹호자들로, '''스탠퍼드-에드먼턴 학파''', 추상 구조주의 또는 '''양상 신논리주의'''라고 불리며, 공리적 형이상학의 한 형태를 옹호한다.[34][32] 양상 신논리주의는 페아노 공리를 2차 양상 객체 이론 내에서 도출한다.[35][36]

3. 주요 개념 및 철학적 입장

데데킨트와 프레게는 인식론존재론적 약속에 대한 불만과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에 대한 진리를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논리주의를 주장했다.

베르트랑 러셀은 저서 수학 원리(1903)에서 기하학집합론의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면서 논리주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데데킨트와 프레게의 인식론은 러셀보다 덜 명확하지만, 둘 다 명제적 진술(믿음)에 관한 "사고의 법칙"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개체 ''x'', ''y''의 관계(예: ''x'' R ''y'')와 개념 이론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데데킨트는 "사물"을 사고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기호를 통해 마음속 "사물"을 논한다고 했다. "시스템 ''S''"는 요소(''a'', ''b'', ''c'')의 집합체이며, "사고의 대상"이자 "사물"이라고 했다(45쪽). 그는 레오폴트 크로네커가 수학 개념 형성에 제한을 가하려는 시도에 반박했다(45쪽).

자연수 구성은 논리주의 프로그램에서 중요하다. 러셀은 "모든 전통적인 순수 수학은 자연수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의심되었지만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다" (1919:4)라고 주장했다.

자연수 구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16]

1. "명제 함수"에서 "클래스" 정의: 러셀에게 집합(클래스)은 고유명사로 지정된 "사물"의 집합체이며, 명제(사물에 대한 사실 주장)의 결과이다.

2. "유사한" 클래스 '묶음'으로 수집: 위 집합은 "동수성"으로 "이진 관계"(비교)에 넣을 수 있으며, 요소의 일대일 대응을 통해[18] 러셀식 클래스 또는 "묶음"을 만든다.

3. 널 클래스 정의: 요소가 없는 클래스, 즉 특정 클래스/집합을 정의하는 술어를 만족하는 요소가 없는 특별한 클래스이다.

4. 각 묶음에 "수" 할당: 각 묶음에 고유 기호(별칭 "수")를 임의로 할당한다.

5. "0" 정의: 프레게처럼 러셀은 구성원이 없는 클래스의 클래스인 빈 ''널'' 클래스를 "0"으로 정의했다.

6. "후속자" 개념 정의: 러셀은 특정 클래스가 다른 클래스에서 특성을 "상속" 가능한 "세습" 특성을 정의한다.

7. 널 클래스 후속자 구성8. 동수 클래스의 모든 클래스에 대해 그 후속자 생성9. 숫자 정렬: 후속자 생성에는 다양한 "수" 사이 관계 " . . . 의 후속자이다 . . ."(''S'' 표시)가 필요하다.

3. 1. 수학의 논리적 기초

데데킨트는 특정 유리수 집합을 사용하여 실수를 특징짓는 공리를 만족하는 모형을 구성했고, 이를 통해 논리주의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산술, 대수, 해석학자연수와 클래스에 대한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1872년까지 데데킨트는 자연수 자체가 집합과 사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프레게를 비롯한 다른 논리주의자들도 1872년에 출판된 실수에 대한 새로운 이론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2]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은 당시 존재했던 자연수에 대한 설명의 인식론존재론적 약속에 대한 불만, 그리고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에 대한 진리를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2]

이후 논리주의는 데데킨트와 프레게를 중심으로 확장되었으나, 집합론의 고전적인 역설(칸토어 1896, 체르멜로와 러셀 1900–1901)의 발견으로 위기를 맞았다. 프레게는 러셀이 그의 역설을 제기하고 그의 Grundgesetze der Arithmetik에 제시된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한 후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순진 집합론 역시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다.[2]

반면 러셀은 역설과 주세페 페아노 학파의 기하학 발전을 바탕으로 1903년에 ''수학 원리''를 저술했다. 이 책은 기하학 및 집합론의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어 논리주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논리주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2]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은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의 공리(또는 그 확장인 ZFC)와 같이 소수의 비논리적 공리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여겨지며, 아직까지 모순은 발견되지 않았다.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요소들은 실행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클래스, 집합, 사상에 대한 이론과 헨킨 의미론이 아닌 고차 논리는 콰인의 영향으로 비논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2]

쿠르트 괴델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자연수에 대한 페아노 공리를 도출할 수 있는 공식적 시스템(예: PM의 러셀 시스템)이 해당 시스템의 모든 잘 구성된 문장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3] 이 결과는 데이비드 힐베르트의 수학의 기초에 대한 프로그램을 손상시켰다. 괴델의 결과는 논리주의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고전 수학의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 무한의 공리를 논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4]

논리주의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은 불완전성 정리가 '다른 정리와 마찬가지로 논리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1차 논리의 정리와 고차 논리의 정리 사이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타르스키의 무정의성 정리는 괴델 넘버링이 구문론적 구성을 증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의미론적 주장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4]

논리주의는 프레게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 덤밋을 거치면서 20세기 분석 철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논리주의의 명시적인 의도는 모든 수학을 기호 논리로부터 유도하는 것이다(프레게, 데데킨트, 페아노, 러셀). 기호 논리는 축소된 기호, "사고의 법칙"을 구현하는 몇 개의 "논리적" 공리, 추론 규칙(예: 대입 및 ''전건 긍정'')으로 시작한다. 논리주의는 프레게의 기반에서 자연어 진술을 명제적 "원자" 또는 "일반화"의 "인수|함수"로 축소하는 것을 채택한다. 즉, "모든", "일부", "클래스"(집합, 총계) 및 "관계" 개념을 채택한다.

자연수와 그 속성을 논리주의적으로 유도할 때, 수에 대한 "직관"은 공리 또는 우연으로 "슬쩍 들어와서는" 안 된다. 목표는 선택된 "사고의 법칙"만으로, 즉 "이전"과 "이후" 또는 "덜"과 "더" 또는 "후계자"와 "선임자"에 대한 암묵적인 가정이 없이, 수의 카운트에서 시작하여 실수까지 모든 수학을 유도하는 것이다. 괴델 1944년은 직관주의와 형식주의 ("힐베르트 학파")의 기초 시스템에서의 "구성"과 비교하여, 러셀의 논리주의적 "구성"을 요약했다.

1944년 괴델은 라이프니츠의 ''Characteristica universalis''에서 프레게와 페아노를 거쳐 러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요약했다. 프레게는 사고의 분석에 관심이 있었고, 그의 미적분학을 순수 논리로부터 산술을 도출하는 데 사용했다. 페아노는 수학 내에서의 응용에 더 관심이 있었다. 클리니는 1952년에 논리주의를 다른 모든 과학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와 원리를 포함하는 과학으로 처음 생각한 것은 라이프니츠(1666)라고 언급했다. 데데킨트(1888)와 프레게(1884, 1893, 1903)는 수학적 개념을 논리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데 몰두했고, 페아노(1889, 1894–1908)는 수학적 정리를 논리적 상징으로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

프레게는 1879년 ''개념 표기'' 서문에서 산술이 "논리"에서 유래하는가, 아니면 "경험의 사실"에서 유래하는가를 확인하고자 했다. 데데킨트는 1887년 ''숫자의 본질과 의미'' 초판 서문에서 "가장 단순한 과학의 기초; 즉, 수론을 다루는 논리의 부분"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페아노는 1889년 ''산술 원리'' 서문에서 언어의 모호성이 수학의 기초에 관한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았다. 러셀은 1903년 ''수학 원리'' 서문에서 모든 순수 수학이 기본적인 논리적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만을 다루고, 모든 명제가 기본적인 논리적 원리에서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프레게와 데데킨트의 논리주의는 러셀의 논리주의와 유사하지만,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있다. 자연수의 논리주의적 유도는 집합론에 대한 체르멜로의 공리('Z')로부터의 유도와 다르다. Z로부터의 유도에서 "수"의 한 정의는 쌍 공리와 같이 시스템의 공리를 사용하는데, 이는 "순서쌍"의 정의로 이어진다. 논리주의적 공리 시스템에서 자연수의 유도를 허용하는 ''명시적인'' 수 공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의 정의를 유도하는 데 필요한 공리는 집합론의 공리 시스템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ZF와 ZFC에서 쌍 공리는 무한 공리와 대치 공리 체계로부터 파생될 수 있으며, 폰 노이만 순서수 정의에 필요하다. 반면에 NFU에서는 프레게 수를 《기본법》에서 유도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유도할 수 있다.

《프린키피아》는 "클래스", "명제 함수"와 같은 원초적 명제, 특히 "유사성" 관계("동수": 집합의 원소를 일대일 대응으로 배치) 및 "순서"("다음" 관계를 사용하여 동수 클래스의 집합을 정렬)로부터 수의 구성을 시작한다.[15] 논리주의적 유도는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된'' 기수를 자연수와 동일시하며, 이러한 수들은 모두 동일한 "유형"(클래스의 클래스)으로 끝나지만, 일부 집합론적 구성에서는 각 수는 이전 수를 부분 집합으로 갖는다. 클리니는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 "여기에서의 관점은 '신은 정수를 만들었다'는 [크로네커]의 격언과 페아노 공리 및 수학적 귀납법과는 매우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수 수열에 대한 직관적인 개념을 전제하고, 어떤 특정 자연수 속성 ''P''가 주어질 때, 주어진 모든 자연수는 속성 ''P''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를 도출했다." (Kleene 1952:44).

자연수의 구성이 논리주의 프로그램에 중요한 이유는 러셀의 주장, 즉 "모든 전통적인 순수 수학은 자연수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실수''의 한 유도는 유리수에 대한 데데킨트 컷의 이론에서 파생되며, 유리수는 다시 자연수에서 파생된다.

자연수를 구성하려는 한 시도는 Bernays 1930–1931에서 요약된다.[16] 러셀의 구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명제 함수"에서 "클래스" 정의: 러셀에게 집합(클래스)은 명제(사물에 대한 사실의 주장)의 결과로 발생한다. 러셀은 "용어"를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거나, 참 또는 거짓 명제에 나타날 수 있거나, 하나로 셀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용어"는 "사물"과 "개념"으로 나뉘며, "개념"은 다시 형용사로 표시되는 것과 동사로 표시되는 것으로 나뉜다. "클래스는 클래스 개념과 대조적으로 주어진 술어를 가진 모든 용어의 합 또는 결합이다"(1903 p. 55). 클래스는 확장(멤버 나열) 또는 내포, 즉 "'x'는 'u'이다" 또는 "'x'는 'v'이다"와 같은 "명제 함수"로 지정할 수 있다.

2. "유사한" 클래스를 '묶음'으로 수집: 위의 집합은 "동수성"(요소의 일대일 대응)[18]이라는 "이진 관계"(비교)를 통해 러셀식 클래스 또는 러셀이 "묶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 수 있다.

3. 널 클래스 정의: 요소가 없는, 즉 특정 클래스/집합을 정의하는 술어를 만족하는 요소가 없는 특별한 클래스가 있다.

4. 각 묶음에 "수" 할당: 각 묶음에 고유한 기호(별칭 "수")를 임의로 할당한다.

5. "0" 정의: 프레게에 이어 러셀은 구성원이 없는 클래스의 클래스인 빈 또는 ''널'' 클래스의 클래스를 선택하여 "0"으로 정의했다.

6. "후속자"의 개념 정의: 러셀은 특정 클래스가 다른 클래스(클래스의 클래스일 수 있음)에서 특성을 "상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특성 "세습"을 정의한다.

7. 널 클래스의 후속자 구성.8. 동수 클래스의 모든 클래스에 대해 그 후속자 생성.9. 숫자 정렬: 후속자를 생성하는 프로세스에는 다양한 "수" 사이의 관계가 필요하다.

3. 2. 인식론과 존재론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은 당시 자연수에 대한 설명이 가진 인식론존재론적 문제점, 그리고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를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2]

데데킨트와 프레게는 논리주의의 대표적인 옹호자였다. 그러나 집합론의 역설(1896년 칸토어, 1900–1901년 체르멜로와 러셀)로 인해 초기 논리주의 프로그램은 위기를 맞았다. 프레게는 러셀이 자신의 역설을 알린 후, Grundgesetze der Arithmetik에 제시된 시스템의 모순을 확인하고 프로젝트를 포기했다.[2]

반면 러셀은 역설과 주세페 페아노 학파의 기하학 발전을 바탕으로 1903년 ''수학 원리''를 저술, 원초적 개념과 관계 미적분을 다루며 논리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2]

데데킨트와 프레게의 인식론은 러셀보다 덜 명확하지만, 둘 다 명제적 진술(믿음)에 관한 "사고의 법칙"을 ''선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개체 ''x'', ''y''의 관계(예: ''x'' R ''y'')와 개념 이론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데데킨트는 "사물"을 사고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기호를 통해 마음속 "사물"을 논한다고 했다. "시스템 ''S''"는 요소(''a'', ''b'', ''c'')의 집합체이며, "사고의 대상"이자 "사물"이라고 했다(45쪽). 그는 레오폴트 크로네커가 수학 개념 형성에 제한을 가하려는 시도에 반박했다(45쪽).

러셀의 철학적 실재론은 영국 관념론에 대한 반론이자,[10] 유럽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의 혼합이었다.[11] 그는 보편자와 물질적 대상에 대해 실재론자였다(러셀 1912:xi). 테이블은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합리론은 ''선험적'' 지식을,[12] 경험론은 경험적 지식을 제공했다.[13] 칸트의 "선험적" 지식 개념을 인정했지만, "사실[세계]은 논리와 산술에 따라야 한다"며 비판했다(1912:87). 러셀은 ''선험적'' 지식이 "사물에 관한 것"이라 결론지으며(1912:89), "수는 인간 정신의 창조물"이라는 데데킨트와 달랐다(데데킨트 1887:31).[14]

러셀의 내재적 인식론(논리적 원리에 ''선험적'' 용어 선호, 1912:74)은 복잡하다. 플라톤주의적 "보편자"를 지지하고(1912:91-118), 진리와 허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마음은 ''믿음''을 만들고, 사실이 믿음을 참되게 하며, "이 사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포함하지 않는다"(1912:130).

3. 3. 자연수의 구성

Logicism영어에서 자연수를 구성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베르트랑 러셀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는 "클래스", "명제 함수"와 같은 원초적 명제, 특히 "유사성" 관계(동수: 집합의 원소를 일대일 대응으로 배치) 및 "순서"("다음" 관계를 사용하여 동수 클래스의 집합을 정렬)로부터 수의 구성을 시작한다.[15]

자연수의 구성은 논리주의 프로그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러셀은 "모든 전통적인 순수 수학은 자연수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1919:4) 실수유리수에 대한 데데킨트 절단 이론에서 파생되며, 유리수는 다시 자연수에서 파생된다. 따라서 자연수의 논리주의적 유도에서 철학적 어려움이 나타난다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프로그램은 중단될 수 밖에 없다.

자연수를 구성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16]

  • 1단계: 명제 함수에서 "클래스"(집합) 정의: 러셀에게 집합(클래스)은 고유명사로 지정된 "사물"의 집합체이며, 이는 명제(사물이나 사물에 대한 사실의 주장)의 결과로 발생한다.
  • : 예를 들어 "''자녀의 이름''은 F''n'' 가구의 자녀의 이름이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12개의 명제 각각은 "인수" ''자녀의 이름''이 특정 가구의 자녀에게 적용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자녀의 이름(''자녀의 이름'')은 명제 함수 ''f''(''x'')의 ''x''로 생각할 수 있으며, 여기서 함수는 "이름이 F''n''인 가족의 자녀의 이름"이다.

  • 2단계: "유사한" 클래스를 '묶음'으로 수집: 위의 집합은 "동수성"으로 "이진 관계"(비교)에 넣을 수 있으며, 즉 요소의 일대일 대응을 통해[18], 러셀식 클래스 또는 러셀이 "묶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 수 있다.
  • : "우리는 모든 커플을 하나의 묶음으로, 모든 삼중주를 다른 묶음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다양한 묶음의 집합을 얻는데, 각 묶음은 특정 수의 항을 가진 모든 집합으로 구성된다. 각 묶음은 구성원이 집합, 즉 클래스인 클래스이다. 따라서 각 묶음은 클래스의 클래스이다"(러셀 1919:14).

  • 3단계: 널 클래스 정의: 구성원이 없는 클래스를 "널 클래스" 또는 "빈 클래스"라고 하며, 러셀은 널/빈 클래스를 Λ로 표시했다.

  • 4단계: 각 묶음에 "수" 할당: 각 묶음에 고유한 기호(별칭 "수")를 할당한다.

  • 5단계: "0" 정의: 프레게에 이어 러셀은 구성원이 없는 클래스의 클래스를 "0"으로 정의했다.

  • 6단계: "후속자"의 개념 정의: 러셀은 특정 클래스가 다른 클래스에서 특성을 "상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특성 "세습"을 정의한다.
  • : "자연수 계열에서 '세습'이라고 하는 속성은 숫자가 ''n''일 때마다 ''n''+1, 즉 ''n''의 후속자에도 속한다." (1903:21).

  • 7단계: 널 클래스의 후속자 구성: 널 클래스에 새로운 "항"을 추가하여 후속자를 구성한다.

  • 8단계: 동수 클래스의 모든 클래스에 대해 그 후속자 생성: 각 클래스에 새로운 "항"을 추가하여 후속자를 생성한다.

  • 9단계: 숫자 정렬: 후속자를 생성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수" 사이의 관계인 " . . . 의 후속자이다 . . ."가 필요한데, 이는 ''S''로 표시될 수 있다. 러셀은 "순서 관계"의 개념에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 비대칭성: 두 개의 항 ''x''와 ''y'' 사이의 관계(''S''(" . . .의 후속자이다 . . . ")가 주어지면: ''x S y'' ≠ ''y S x''.
  • 추이성: 세 개의 숫자 ''x'', ''y'' 및 ''z''에 대해, ''x S y''이고 ''y S z''이면 ''x S z''이다.
  • 연결성: "순서를 정할 클래스의 두 항이 주어지면, 앞서는 항이 하나 있고, 뒤따르는 항이 다른 하나 있어야 한다." (1919:32).

4. 비판 및 한계

데데킨트와 프레게가 주도한 논리주의는 러셀의 역설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여러 비판을 받았다. 특히 프레게의 ''수학의 기본 법칙''에서 발견된 "악순환"은 1903년 러셀의 저서 ''수학 원리''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러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순환 원리"를 도입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다.[7]

클린은 러셀이 비예측적인 정의를 설정했고, 이를 해결해야 하거나 러셀의 역설과 같은 것을 도출할 위험이 있다고 언급했다.[17]

괴델은 러셀의 논리주의, 특히 그의 "무계급 이론"이 수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러셀은 계급(class)을 실재하는 객체가 아닌 "논리적 허구"로 보았는데, 이는 수학에서 사용되는 계급의 속성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괴델은 러셀이 집합의 외연적 관점에 반대한 이유로, 공집합의 존재와 단일 원소와 동일해야 하는 단일 집합의 존재를 지적했다. 그러나 괴델은 이러한 이유로 모든 집합을 허구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앙리 푸앵카레는 정의가 예측적이어야 하며, 정의되는 개념에 의존하는 모든 객체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3] 이는 러셀의 역설과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 러셀은 "악순환 원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 원리는 어떤 전체도 그 전체의 용어로만 정의될 수 있는 구성원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24] 그러나 이 원리는 수학의 많은 부분을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괴델은 러셀의 문제점이 논리와 수학의 대상(명제, 계급, 개념)에 대한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개념을 기호로만 간주하고 기호가 나타내는 별도의 대상을 허구로 보는 관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괴델은 러셀의 "무계급 이론"이 계급과 개념의 존재에 대한 가정을 제거하고, 이를 데이터 기반의 구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논리와 수학이 제거될 수 없는 실제 내용을 가진 공리 위에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클레인(Kleene)은 논리 자체가 수학적 아이디어를 전제한다고 지적하며, 특히 반복 개념에 내재된 수학적 핵심을 강조한다. 베르나이스(Bernays)는 '둘'이라는 개념이 이미 무언가를 전제한다고 보았고, 힐베르트(Hilbert)는 수학에 '초논리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21] 힐베르트와 베르나이스는 수열이나 후속자 개념이 기호 논리 밖의 선험적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힐베르트는 논리주의를 "잘못된 길"로 보았고,[22] 불완전성 정리가 힐베르트의 유한주의에 유사한 장애물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브라우어(Brouwer)는 고전 논리 법칙이 수학적 구성의 사후 기록에서 파생된 경험 과학이라고 결론지었다.

괴델(Gödel)은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Principia Mathematica)''의 형식적 정밀성 부족을 비판하며, 특히 대치 규칙과 정의된 기호의 대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28] 그는 러셀의 "무계급 이론"을 명목론적 구성주의 또는 허구주의로 간주했다.

관계 이론의 복잡성은 러셀의 설명에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집합론은 관계를 집합의 순서쌍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러셀은 제자인 노르베르트 비너(Norbert Wiener)의 성과를 무시했다.[21] 하우스도르프쿠라토프스키는 관계에 대한 동등한 정의를 제공했다.[22]

러셀은 집합의 외연적 관점에 반대하는 이유로 공집합의 존재와 단일 원소 집합 문제를 제시했다. 그는 모든 집합을 허구로 간주했지만, 이는 모든 집합이 유용한 허구라는 선언으로 이어져 "단일" 집합 문제는 해결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나타났다.

러셀은 "유형 이론"을 통해 ''x'' ε ''x''와 같은 비예측적 표현을 처리하려 했다. 그는 함수-"차수"와 인수-"유형" 개념을 도입하고, 환원 공리를 통해 모든 함수를 예측적 함수로 환원 가능하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1927년 ''PM'' 제2판에서 환원 공리를 포기하고, 모든 함수를 기본 명제로 강제하여 논리 연산자로 연결하려 했다. 이는 그의 이론 붕괴로 이어졌다. 러셀은 무리수와 실수를 적절히 다룰 수 없게 되었고, 환원 공리보다 덜 불쾌한 공리를 찾지 못했다. 괴델은 러셀의 논리주의 프로젝트가 좌절되었다는 데 동의하며, 정수조차 살아남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n''차 명제 함수가 기호의 유한한 조합으로 설명되어야 하므로, 분기 계층을 기반으로 정수 이론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는 미해결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논리주의는 특히 고틀로프 프레게버트런드 러셀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20세기 분석 철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5] 프레게의 영향은 이후 마이클 덤밋에게까지 이어졌다.

아이보 그라탄-기네스에 따르면, 'Logistique'라는 프랑스어 단어는 1904년 국제 철학 회의에서 루이 쿠튀라 등에 의해 도입되었고, 이후 러셀 등이 다양한 언어에 맞게 사용했다.

러셀은 1919년 저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이자 유일하게 사용했다. 그는 프레게를 '수학을 '논리화'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여러 번 언급했다. 그러나 러셀은 이 단어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고, '논리주의'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6]

루돌프 카르납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아브라함 프뢴켈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 카르납은 'Logistik'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베만이 이에 불만을 제기하자 'Logizismus'를 제안했지만, 결국 'Logistik'을 고수했다. 1930년대부터 카르납이 이 단어의 확산을 주도했다.

4. 1. 비예측성 문제와 악순환 원리

데데킨트와 프레게의 논리주의는 러셀의 역설로 인해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프레게의 ''수학의 기본 법칙''에서 발견된 "악순환"은 1903년 러셀의 저서 ''수학 원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러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다.[7]

괴델은 러셀의 이론이 수학의 만족스러운 기초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셀이 "실재론자"였지만, 분석 대상이 "논리적 허구"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8]

이러한 상황은 러셀이 비예측적인 정의를 사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앙리 푸앵카레는 정의가 예측적이어야 하며, 정의되는 개념에 의존하는 모든 객체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3] 이는 러셀의 역설과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

러셀은 "악순환 원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 원리는 어떤 전체도 그 전체의 용어로만 정의될 수 있는 구성원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24] 그러나 이 원리는 수학의 많은 부분을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클린은 러셀이 비예측적인 정의를 설정했고, 이를 해결해야 하거나 러셀의 역설과 같은 것을 도출할 위험이 있다고 언급했다.[17]

4. 2. 괴델의 비판

괴델은 러셀의 논리주의, 특히 그의 "무계급 이론"이 수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러셀은 계급(class)을 실재하는 객체가 아닌 "논리적 허구"로 보았는데, 이는 수학에서 사용되는 계급의 속성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괴델은 러셀이 집합의 외연적 관점에 반대한 두 가지 이유, 즉 (1) 공집합의 존재와 (2) 단일 원소와 동일해야 하는 단일 집합의 존재를 지적했다. 그러나 괴델은 이러한 이유로 모든 집합을 허구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러셀은 "악순환 원리"를 통해 비예측적 정의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는 수학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괴델은 수학이 본질적인 비규정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악순환 원리가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괴델은 러셀의 문제점이 논리와 수학의 대상(명제, 계급, 개념)에 대한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개념을 기호로만 간주하고 기호가 나타내는 별도의 대상을 허구로 보는 관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괴델은 러셀의 "무계급 이론"이 계급과 개념의 존재에 대한 가정을 제거하고, 이를 데이터 기반의 구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논리와 수학이 제거될 수 없는 실제 내용을 가진 공리 위에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괴델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제안을 제시했다.

  • 단순 유형 이론: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계급과 개념의 일관된 이론을 확립하는 것이다.
  • 공리적 집합론: 현대 수학의 도출을 허용하고 알려진 모든 역설을 피하는 접근 방식이다.


괴델은 수학적 논리가 주세페 페아노 등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유가 이러한 기초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4. 3. 기타 비판

클레인(Kleene)은 논리 자체가 수학적 아이디어를 전제한다고 지적하며, 특히 반복 개념에 내재된 수학적 핵심을 강조한다. 베르나이스(Bernays)는 '둘'이라는 개념이 이미 무언가를 전제한다고 보았고, 힐베르트(Hilbert)는 수학에 '초논리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21] 힐베르트와 베르나이스는 수열이나 후속자 개념이 기호 논리 밖의 선험적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힐베르트는 논리주의를 "잘못된 길"로 보았고,[22] 불완전성 정리가 힐베르트의 유한주의에 유사한 장애물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브라우어(Brouwer)는 고전 논리 법칙이 수학적 구성의 사후 기록에서 파생된 경험 과학이라고 결론지었다.

괴델(Gödel)은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Principia Mathematica)''의 형식적 정밀성 부족을 비판하며, 특히 대치 규칙과 정의된 기호의 대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28] 그는 러셀의 "무계급 이론"을 명목론적 구성주의 또는 허구주의로 간주했다.

관계 이론의 복잡성은 러셀의 설명에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집합론은 관계를 집합의 순서쌍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러셀은 제자인 노르베르트 비너(Norbert Wiener)의 성과를 무시했다.[21] 하우스도르프쿠라토프스키는 관계에 대한 동등한 정의를 제공했다.[22]

러셀은 집합의 외연적 관점에 반대하는 이유로 공집합의 존재와 단일 원소 집합 문제를 제시했다. 그는 모든 집합을 허구로 간주했지만, 이는 모든 집합이 유용한 허구라는 선언으로 이어져 "단일" 집합 문제는 해결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나타났다.

러셀은 "유형 이론"을 통해 ''x'' ε ''x''와 같은 비예측적 표현을 처리하려 했다. 그는 함수-"차수"와 인수-"유형" 개념을 도입하고, 환원 공리를 통해 모든 함수를 예측적 함수로 환원 가능하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1927년 ''PM'' 제2판에서 환원 공리를 포기하고, 모든 함수를 기본 명제로 강제하여 논리 연산자로 연결하려 했다.

이는 그의 이론 붕괴로 이어졌다. 러셀은 무리수와 실수를 적절히 다룰 수 없게 되었고, 환원 공리보다 덜 불쾌한 공리를 찾지 못했다. 괴델은 러셀의 논리주의 프로젝트가 좌절되었다는 데 동의하며, 정수조차 살아남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n''차 명제 함수가 기호의 유한한 조합으로 설명되어야 하므로, 분기 계층을 기반으로 정수 이론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는 미해결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4. 4. 철학적 영향

논리주의는 특히 고틀로프 프레게버트런드 러셀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20세기 분석 철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5] 프레게의 영향은 이후 마이클 덤밋에게까지 이어졌다.

아이보 그라탄-기네스에 따르면, 'Logistique'라는 프랑스어 단어는 1904년 국제 철학 회의에서 루이 쿠튀라 등에 의해 도입되었고, 이후 러셀 등이 다양한 언어에 맞게 사용했다.

러셀은 1919년 저서에서 이 단어를 처음이자 유일하게 사용했다. 그는 프레게를 '수학을 '논리화'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여러 번 언급했다. 그러나 러셀은 이 단어를 다시 사용하지 않았고, '논리주의'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6]

루돌프 카르납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아브라함 프뢴켈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 카르납은 'Logistik'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베만이 이에 불만을 제기하자 'Logizismus'를 제안했지만, 결국 'Logistik'을 고수했다. 1930년대부터 카르납이 이 단어의 확산을 주도했다.

5. 결론

데데킨트는 유리수 집합을 사용하여 실수를 특징짓는 공리를 만족하는 모형을 구성하면서 논리주의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산술, 대수, 해석학자연수와 클래스에 대한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고 확신했고, 1872년에는 자연수 자체가 집합과 사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프레게는 ''산술의 기초''에서 당시 자연수에 대한 설명의 인식론존재론적 약속에 대한 불만과 칸트가 종합 선험적 진리의 예로 자연수에 대한 진리를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논리주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논리주의는 데데킨트와 프레게를 중심으로 확장되었으나, 집합론의 고전적인 역설(칸토어는 1896년, 러셀은 1900–1901년에 발견)의 발견으로 위기를 맞았다. 프레게는 러셀이 그의 역설을 지적하자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반면 러셀은 1903년에 ''수학 원리''를 저술하여 논리주의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에서 논리주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2]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은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의 공리(또는 ZFC)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여겨지며, 아직 모순이 발견되지 않았다. 논리주의 프로그램의 요소들은 실행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클래스, 집합, 사상에 대한 이론과 헨킨 의미론이 아닌 고차 논리는 비논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쿠르트 괴델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자연수에 대한 페아노 공리를 도출할 수 있는 공식적 시스템이 해당 시스템의 모든 문장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3] 이는 데이비드 힐베르트의 수학의 기초에 대한 프로그램을 손상시켰다. 괴델의 결과는 논리주의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고전 수학의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 무한의 공리를 논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

논리주의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1차 논리고차 논리의 정리 사이의 구별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타르스키의 무정의성 정리는 구문론적 구성은 증명할 수 있지만 의미론적 주장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논리주의는 특히 프레게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5] 나중에 덤밋을 거치면서 20세기 동안 분석 철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Logicism http://www.philosoph[...] 2008-02-20
[2] 웹사이트 Principia Mathematica https://plato.stanfo[...]
[3] 논문 "On the philosophical relevance of 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 http://philpapers.or[...]
[4] 서적 Studies In Logic And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https://www.scienced[...] Elsevier, inc. 2019-09-01
[5] 간행물 "Frege's Influence on Wittgenstein: Reversing Metaphysics via the Context Principle" https://pdfs.semanti[...]
[6] 문서 The exact quote from Russell 1919 is the following: "It is time now to turn to the considerations which make it necessary to advance beyond the standpoint of Peano, who represents the last perfection of the "arithmetisation" of mathematics, to that of Frege, who first succeeded in "logicising" mathematics, i.e. in reducing to logic the arithmetical notions which his predecessors had shown to be sufficient for mathematics." (Russell 1919/2005:17).
[7] 문서 For example, von Neumann 1925 would cite Kronecker as follows: "The denumerable infinite . . . is nothing more the general notion of the positive integer, on which mathematics rests and of which even Kronecker and Brouwer admit that it was "created by God"" (von Neumann 1925 ''An axiomatization of set theory'' in van Heijenoort 1967:413).
[8] 문서 Hilbert 1904 ''On the foundations of logic and arithmetic'' in van Heijenoort 1967:130.
[9] 문서 Pages 474–5 in Hilbert 1927,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in: van Heijenoort 1967:475.
[10] 문서 Perry in his 1997 Introduction to Russell 1912:ix)
[11] 문서 Cf. Russell 1912:74.
[12] 문서 "It must be admitted . . . that logical principles are known to us, and cannot be themselves proved by experience, since all proof presupposes them. In this, therefore . . . the rationalists were in the right" (Russell 1912:74).
[13] 문서 "Nothing can be known to ''exist'' except by the help of experience" (Russell 1912:74).
[14] 문서 He drives the point home (pages 67-68) where he defines four conditions that determine what we call "the numbers" (cf. (71)). Definition, page 67: the successor set N' is a part of the collection N, there is a starting-point "1o" [base number of the number-series ''N''], this "1" is not contained in any successor, for any ''n'' in the collection there exists a transformation φ(''n'') to a ''unique'' (distinguishable) ''n'' (cf. (26). Definition)). He observes that by establishing these conditions "we entirely neglect the special character of the elements; simply retaining their distinguishability and taking into account only the relation to one another . . . by the order-setting transformation φ. . . . With reference to this freeing the elements from every other content (abstraction) we are justified in calling numbers a free creation of the human mind." (p. 68)
[15] 문서 In his 1903 and in ''PM'' Russell refers to such assumptions (there are others) as "primitive propositions" ("pp" as opposed to "axioms" (there are some of those, too). But the reader is never certain whether these pp are axioms/axiom-schemas or construction-devices (like substitution or ''modus ponens''), or what, exactly. Gödel 1944:120 comments on this absence of formal syntax and the absence of a clearly specified substitution process.
[16] 문서 Cf. ''The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Hilbert's Proof Theory'' 1930:1931 in Mancosu, p. 242.
[17] 문서 To be precise both ''childname'' = variable ''x'' and family name ''Fn'' are variables. ''Childname''#REDIRECT
[18] 문서 "If the predicates are partitioned into classes with respect to equinumerosity in such a way that all predicates of a class are equinumerous to one another and predicates of different classes are not equinumerous, then each such class represents the ''Number'', which applies to the predicates that belong to it" (Bernays 1930-1 in Mancosu 1998:240.
[19] 문서 Cf. sections 487ff (pages 513ff in the Appendix A).
[20] 문서 1909 Appendix A
[21] 문서 Russell deemed Wiener "the infant phenomenon . . . more infant than phenomenon"; see ''Russell's confrontation with Wiener'' in Grattan-Guinness 2000:419ff.
[22] 문서 See van Heijenoort's commentary and Norbert Wiener's 1914 ''A simplification of the logic of relations'' in van Heijenoort 1967:224ff.
[23] 문서 Zermelo 1908 in van Heijenoort 1967:190. See the discussion of this very quotation in Mancosu 1998:68.
[24] 문서 This same definition appears also in Kleene 1952:42.
[25] 문서 One source for more detail is Fairouz Kamareddine, Twan Laan and Rob Nderpelt, 2004, ''A Modern Perspective on Type Theory, From its Origins Until Today'', Kluwer Academic Publishers, Dordrecht, The Netherlands, ISBN. They give a demonstration of how to create the paradox (pages 1–2), as follows: Define an aggregate/class/set y this way: ∃y∀x[x ε y ↔ Φ(x)]. (This says: There exists a class y such that for ''ANY'' input x, x is an element of set y if and only if x satisfies the given function Φ.) Note that (i) input x is unrestricted as to the "type" of thing that it can be (it can be a thing, or a class), and (ii) function Φ is unrestricted as well. Pick the following tricky function Φ(x) = ¬(x ε x). (This says: Φ(x) is satisfied when x is NOT an element of x)). Because y (a class) is also "unrestricted" we can plug "y" in as input: ∃y[y ε y ↔ ¬(y ε y)]. This says that "there exists a class y that is an element of itself only if it is NOT and element of itself. That is the paradox.
[26] 문서 Russell's letter to Frege announcing the "discovery", and Frege's letter back to Russell in sad response, together with commentary, can be found in van Heijenoort 1967:124-128. Zermelo in his 1908 claimed priority to the discovery; cf. footnote 9 on page 191 in van Heijenoort.
[27] 문서 van Heijenoort 1967:3 and pages 124-128
[28] 문서 "The axiom of reducibility is the assumption that, given any function φẑ, there is a formally equivalent, ''predicative'' function, i.e. there is a predicative function which is true when φz is true and false when φz is false. In symbols, the axiom is: ⊦ :(∃ψ) : φz. ≡z .ψ!z." (''PM'' 1913/1962 edition:56, the original uses x with a circumflex). Here φẑ indicates the function with variable ẑ, i.e. φ(x) where x is argument "z"; φz indicates the value of the function given argument "z"; ≡z indicates "equivalence for all z"; ψ!z indicates a predicative function, i.e. one with no variables except individuals.
[29] 문서 Perry observes that Plato and Russell are "enthusiastic" about "universals", then in the next sentence writes: " 'Nominalists' think that all that particulars really have in common are the words we apply to them" (Perry in his 1997 Introduction to Russell 1912:xi). Perry adds that while your sweatshirt and mine are different objects generalized by the word "sweatshirt", you have a relation to yours and I have a relation to mine. And Russell "treated relations on par with other universals" (p. xii). But Gödel is saying that Russell's "no-class" theory denies the numbers the status of "universals".
[30] 논문 "What is Neologicism?" http://mally.stanfor[...]
[31] 웹사이트 PHIL 30067: Logicism and Neo-Logicism http://seis.bris.ac.[...] 2011-07-17
[32] 웹사이트 Logicism and Neologicism https://plato.stanfo[...]
[33] 간행물 "Benacerraf's dilemma revisited"
[34] 웹사이트 http://www.st-andrew[...] 2006-12-24
[35] 간행물 "Natural Numbers and Natural Cardinals as Abstract Objects: A Partial Reconstruction of Frege's ''Grundgesetze'' in Object Theory"
[36] 논문 "Neo-Logicism? An Ontological Reduction of Mathematics to Metaphysics" 2000
[37] 웹사이트 "Repairing Frege’s Logic" https://randall-holm[...] 201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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