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제논의 역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논의 역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제시한 일련의 역설로, 주로 운동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을 옹호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 이분법, 화살의 역설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역설들은 운동이 무한히 작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논리를 통해 운동의 환상을 제시하며, 고전 물리학의 발전과 무한등비급수 등의 수학적 해결책으로 반박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논의는 계속되어 왔으며, 양자 제논 효과, 제논 동작 등 현대 과학과 기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철학의 역설 -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의 배는 모든 부품이 교체된 배가 원래의 배와 동일한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 실험으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동일성 문제, 물질 구성, 시간적 지속성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며 여러 학문 분야에서 논의된다.
  • 철학의 역설 - 백마비마
    백마비마는 중국 전국시대 명가의 논쟁으로, 흰 말과 말의 개념을 구별하여 언어와 실재의 관계를 탐구하고 개념의 명확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주장을 담고 있다.
  • 수학의 역설 - 바나흐-타르스키 역설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은 3차원 유클리드 공간에서 공을 유한 개의 조각으로 분할한 뒤 조각들을 회전 및 이동하여 원래 공과 똑같은 크기의 공 두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수학적 정리로, 선택 공리에 의존하며 비가측 집합의 존재와 부피 개념 정의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 수학의 역설 - 베리의 역설
    베리의 역설은 유한한 단어로 자연수를 정의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하는 자기모순적인 역설로, '정의할 수 있다'라는 개념의 모호성에서 비롯되며, 의미 계층화 도입으로 해결을 시도하지만, 불완전성 정리, 콜모고로프 복잡도 등과 연관되어 논의된다.
  • 철학 - 개념
    개념은 사물이나 사상의 추상적인 일반화 또는 표상으로,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되고 명사로 표현되며, 추상적 객체 또는 정신적 표상으로 여겨지는 존재론적 지위와 함께 철학, 심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된다.
  • 철학 - 플라토닉 러브
    플라토닉 러브는 성적 요소 없이 깊은 애정과 우정을 나누는 관계를 뜻하며,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에서 시작되었으나 르네상스 시대 이후 비성적 이성애적 사랑으로 재해석되어 현대에는 깊은 유대감, 특히 퀴어플라토닉 관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랑과 우정의 경계가 모호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다.
제논의 역설

2. 제논의 역설의 역사적 배경

제논이 제시한 역설들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일원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여겨진다.[22][21]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은 현실은 하나이며 변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감각하는 운동이나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22][21]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오히려 더 큰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역설들을 만들었다고 한다.[2] 이러한 제논의 논증 방식은 귀류법의 초기 사례로 평가받기도 한다.[3][4]

제논의 역설들은 발표된 이후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 의미와 해결 방식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제시되었으며, 특히 운동에 관한 역설들은 연속성, 무한, 시공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논의를 촉발하며 오늘날까지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2. 1. 파르메니데스와 일원론

제논의 역설은 그 기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일원론을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은 현실은 오직 하나이며, 모든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어떤 것도 위치가 변하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22][21]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파보리누스를 인용하며 제논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가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을 처음 제기했다고 전하지만,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이 역설의 창시자를 제논으로 지목하며 파보리누스의 의견과 다르다고 설명한다.[1] 현대 학자들은 대체로 이 역설들을 제논의 것으로 본다.[22][21]

이러한 역설의 상당수는 감각적인 증거와는 달리 운동이 실제로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22][21]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128a–d)에서는 제논이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비판하는 다른 철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러한 역설들을 고안했다고 묘사된다. 따라서 플라톤은 제논이 역설의 목적이 "존재들이 많다는 가설을 제대로 따라가면, 그것들이 하나라는 가설보다 더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게 한다.[2] 제논의 주장은 '귀류법' 또는 '모순에 의한 증명'이라는 증명 방식의 초기 사례로 평가받기도 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제논과 파르메니데스가 본질적으로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며[3], 이들이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변증법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보기도 한다.[4]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제논의 여러 논증을 다루었는데, 특히 운동에 관한 역설들이 후대에 가장 많이 논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제논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연속성과 관련하여 시공간이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로 제논의 논의를 제시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역설(예: 날아가는 화살의 역설)이 성립하는 이유는 불가분적인 길이와 시간이라는 잘못된 전제 때문이며, 이 전제를 부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만약 분할이 무한히 가능하다면, 무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논의도 유한한 시간에 무한한 것들〔점〕을 통과할 수 없거나, 무한한 것들과 하나하나 접촉할 수 없다는 잘못된 가정에 서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79], 무한히 분할되는 공간에는 무한히 분할되는 시간이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한한 거리(것)는 유한한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다고 논증하려 했다.[80] 더 나아가, "어떤 거리의 전 거리를 통과했다면 무한한 수를 헤아린 셈이 될 텐데,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바이다[81]"라는 주장에 대해, 선분을 분할된 점들의 집합으로 보는 것은 운동을 불연속적인 것으로 만들고 정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시간에 있어서든 길이〔거리〕에 있어서든 무한한 것들을 통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질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할 수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 즉, 무한한 것들이 완전 현실적으로 있다면 그것들을 통과할 수 없지만, 가능적으로 있다면 통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속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부수적인 의미에서 무한한 것들을 통과한 것이지, 무조건적인 의미에서 통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반으로 나뉜 것들이 무한히 있다는 것은 선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그 실체 즉 그 존재 방식은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8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논의가 제논에 대한 완전한 반박이라기보다는, 직선 운동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원운동만이 진정으로 연속적일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보았다.[83]

2. 2. 제논의 역할

제논의 역설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일원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여겨진다.[22][21]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은 현실은 오직 하나이며 모든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어떤 것도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2][21]

역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파보리누스를 인용하여 파르메니데스가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을 처음 제기했다고 전하면서도, 바로 뒤이어 이 역설의 기원을 제논에게 돌리며 파보리누스의 의견과 다르다고 덧붙였다.[1] 현대 학자들은 대체로 이 역설들을 제논의 것으로 보고 있다.[22][21]

제논의 역설들은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증거와는 반대로 운동이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사용되었다.[22][21]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128a–d)에서는 제논이 이러한 역설들을 만든 배경을 설명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비판하며 '세상에는 여러 존재가 있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다른 철학자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역설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제논의 입을 빌려 역설의 목적이 "존재들이 많다는 가설을 제대로 따라가면, 그것들이 하나라는 가설보다 더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게 한다.[2]

이러한 제논의 논증 방식은 '귀류법' 또는 '모순에 의한 증명'이라는 증명 방법의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제논과 파르메니데스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쟁점을 다루고 있었다고 주장하게 했다.[3] 또한, 제논과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변증법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로 여겨지기도 한다.[4]

2. 3. 초기 수용과 비판

제논의 역설은 그 기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일원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은 현실은 하나이며, 위치가 변하거나 다른 어떤 면에서도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22][21]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파보리누스를 인용하며, 제논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가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을 처음 제기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라에르티오스는 이후에 이 역설의 기원을 제논에게 돌리면서 파보리누스의 의견과 다르다고 설명한다.[1] 현대 학자들은 대체로 이 역설을 제논의 것으로 본다.[22][21]

이러한 역설의 상당수는 감각적 증거와는 반대로 운동이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친다.[22][21]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128a–d)에는 제논이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를 고려할 때 역설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철학자들 때문에 이러한 역설들을 만들어내는 과제를 맡은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점에서 제논의 주장은 '귀류법' 또는 '모순에 의한 증명'이라 불리는 증명 방식의 초기 사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플라톤은 제논이 역설의 목적이 "존재들이 많다는 가설을 제대로 따라가면, 그것들이 하나라는 가설보다 더 터무니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게 한다.[2]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제논과 파르메니데스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쟁점을 논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게 한다.[3] 그들은 또한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변증법의 원천으로 여겨진다.[4]

3. 주요 역설 (운동의 역설)

제논의 역설을 나타낸 그림.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가?


제논의 역설 중 운동과 관련된 것들은 특히 유명하며, 오랜 시간 동안 철학자와 수학자들에게 논쟁거리를 제공해 왔다. 이 역설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제시한 것으로,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물리학』[5][6]과 심플리키우스의 주석[5]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제논의 남아있는 아홉 가지 역설 중 일부는 서로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중 일부에 대해 반박을 시도했다.[5]

흔히 제논이 무한히 많은 항의 합은 반드시 무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지만,[7] 이는 제논의 주장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원전 어디에도 제논이 무한급수의 합에 대해 논의한 내용은 없다. 심플리키우스에 따르면, 제논은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히 많은 것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으며, 이는 단순히 합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한히 많은 단계를 가진 작업을 '완료'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36][34][35][8]

운동에 관한 대표적인 역설들은 다음과 같다.

  •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아무리 빠른 아킬레우스라도 자신보다 앞에서 출발한 느린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이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도달하면, 그 시간 동안 거북이는 이미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있기 때문이다.
  • 이분법: 어떤 물체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려면, 먼저 중간 지점 C를 통과해야 하고, C에서 B로 가려면 또 그 중간 지점 D를 통과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많은 중간 지점을 거쳐야 하므로, 물체는 영원히 B지점에 도달할 수 없으며, 심지어 움직이기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 화살의 역설: 날아가는 화살은 어떤 특정 순간에는 정확히 한 공간을 차지하며 정지해 있다. 시간은 무한히 많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순간마다 화살은 정지해 있으므로, 결국 화살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 움직이는 행렬: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의 상대적인 운동을 분석하여, 시간의 절반이 전체 시간과 같다는 모순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역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운동론을 전개하면서 제논의 이 네 가지 주요 운동 관련 논증[66]을 소개하고 반박했으며, 이 역설들은 후대에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거치며 철학과 수학, 물리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은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연상시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분법 역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역설이기도 하다.

3. 1. 이분법 (Dichotomy paradox)

이분법


> 운동하는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중간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5][6]

> —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VI:9, 239b10에서 인용

이분법 역설은 제논의 역설 중 하나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물리학』[5][6]과 심플리키우스의 주석[5]을 통해 전해진다.

예를 들어, 아탈란타가 길의 끝까지 가고자 한다고 가정해 보자.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 거리의 절반 지점(1/2)에 도달해야 한다. 또 그 절반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앞의 절반 지점(1/4)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아탈란타는 1/8, 1/16, 1/32 지점 등 무한히 많은 중간 지점을 거쳐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아탈란타가 통과해야 하는 지점들은 다음과 같은 무한 수열을 이룬다.

: \left\{ \cdots, \frac{1}{16}, \frac{1}{8}, \frac{1}{4}, \frac{1}{2}, 1 \right\}

제논은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히 많은 지점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9] 이는 단순히 무한히 많은 항의 합이 무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실제로 이 급수의 합은 유한하다), 무한히 많은 단계를 가진 과업을 '완료'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36][34][35][8] 만약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거쳐야 할 중간 지점이 무한히 많다면, 어떻게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역설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데, 바로 '가장 먼저 달려야 할 첫 번째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첫 번째 거리 구간을 설정하더라도, 그 구간 역시 절반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구간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동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 역설은 유한한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완료될 수도, 시작될 수도 없으므로 모든 운동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10]

이 논증은 거리를 계속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기 때문에 '이분법(Dichotomy)'이라고 불리며, '경주장(Race Course) 역설'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역설을 포함한 제논의 네 가지 운동 관련 논증을 소개하고 반박했는데,[66] 이분법 역설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이분법의 설명("운동하는 것은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그 중간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전진형 해석: 목표 지점의 절반에 도달해도, 남은 거리의 절반, 또 그 남은 거리의 절반을 계속 가야 하므로, 통과해야 할 지점이 무한히 이어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해석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67]
  • 후퇴형 해석: 목표 지점의 절반에 도달하려면, 그 이전의 절반(즉, 전체의 1/4) 지점에 먼저 도달해야 하고, 또 그 이전에 1/8 지점에 도달해야 하는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출발해야 할 최초의 지점이 무한히 앞에 존재하므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는 해석이다. 고대에는 이 해석이 더 우세했다.[67]


수학적으로 보면, 단순히 두 지점 사이에 중간 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운동의 속도와 시간 요소를 고려하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감속 운동의 경우: 만약 이동 거리가 절반이 될 때마다 속도도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각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해진다. 따라서 전체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한대가 되어 목표 지점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한한 거리를 무한한 시간에 걸쳐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76]
  • 등속 운동의 경우: 만약 일정한 속도로 이동한다면, 각 구간(1/2, 1/4, 1/8...)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합은 수렴하는 무한급수(코시 수열)가 된다. 이 경우 총 이동 시간은 유한하며, 따라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수학에서 무한급수의 합이 유한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3. 2.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Achilles and the tortoise)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은 제논의 역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68] 이 역설에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한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은 명백하므로, 거북이에게 핸디캡을 주어 특정 거리(예: 100m) 앞에서 출발하도록 한다.

경주가 시작되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출발점(A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아킬레우스가 그 거리를 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이미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지점(B지점)에 있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B지점에 도달하면, 그 시간 동안 거북이는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지점(C지점)에 있다.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으며,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었던 어떤 지점에 도달하더라도 거북이는 항상 그보다 조금이라도 앞에 있게 된다. 따라서 제논은 아킬레우스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물리학』에서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며 논했다.[5][6]

가장 느린 것이라도 가장 빠른 것에 결코 따라잡힐 수 없다. 왜냐하면 추격하는 자는 따라잡기 전에 도망치는 자가 출발했던 지점에 도달해야 하며, 따라서 더 느린 것은 항상 조금씩 앞서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논증이 이분법 역설과 유사하다고 지적했지만[11],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명백한 결론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인용한 파볼리누스에 따르면, 이 역설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파르메니데스라고도 한다.[69]

이 역설은 그 내용과 등장인물의 흥미로움 때문에 여러 문학 작품에서도 인용되었다. 예를 들어 루이스 캐롤의 『거북이가 아킬레스에게 한 말』이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설의 핵심 질문은 '주어진 조건(거북이가 앞서 출발하고, 아킬레우스보다 느리다) 하에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가'이다. 순수하게 제논의 논리 전개 방식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제논의 오류는 무한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 집중하여 따라잡을 수 없다고 단정한 데 있다.

수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따라잡지 못하는 사례''': 만약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속도 차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격히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따라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경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 '''따라잡는 사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각각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고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던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들을 모두 더하면 무한급수가 된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의 속도를 ''v'' m/s, 거북이의 속도를 ''rv'' m/s (단, 0 < ''r'' < 1, 즉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느림), 거북이가 처음 앞서 나간 거리를 ''L'' m라고 하자.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출발점(L m)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L/v'' 초이다. 그동안 거북이는 ''rL'' m를 더 나아간다.

아킬레우스가 이 ''rL'' m를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rL/v'' 초이다. 그동안 거북이는 ''r²L'' m를 더 나아간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 구간에 걸리는 시간의 합은 다음과 같은 등비수열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frac{L}{v} + r\frac{L}{v} + r^2\frac{L}{v} + r^3\frac{L}{v} + \cdots

이 무한 등비급수의 공비 ''r''은 0과 1 사이이므로, 급수는 수렴한다. 그 합(총 걸리는 시간)은 다음과 같다.

\frac{L/v}{1-r} = \frac{L}{v(1-r)}

이 값은 유한한 시간이므로, 아킬레우스는 결국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 이 결과는 "아킬레우스가 ''t'' 초 후에 따라잡는다"고 가정하고 세운 간단한 1차 방정식 ''vt = L + rvt''의 해 ''t = L / (v - rv)''와 일치한다.

3. 3. 화살의 역설 (Arrow paradox)

화살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고 가정할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살은 어느 점을 지날 것이다. 한 순간 동안이라면 화살은 어떤 한 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그 다음 순간에도 화살은 어느 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화살은 항상 머물러 있으므로 사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화살 역설에서 제논은 운동이 일어나려면 물체가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예로 든다. 그는 어떤 (지속 시간이 없는) 순간에도 화살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도, 자신이 없는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13] 화살은 자신이 없는 곳으로 움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곳으로 움직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움직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순간에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모든 것이 모든 순간에 정지해 있고, 시간이 완전히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운동은 불가능하다.

처음 두 역설이 공간을 나누는 반면, 이 역설은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여러 구간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점으로 나눈다.[14]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VI:9, 239b5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12]

: 만약 모든 것이 동일한 공간을 차지할 때 그 순간 정지해 있다면, 그리고 운동하는 것은 항상 어떤 순간에도 그러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날아가는 화살은 따라서 그 순간과 다음 순간에 정지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순간을 같은 순간 또는 연속적인 순간으로 본다면 그것은 운동하고 있습니다.[12]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기도 했다.

: 만약 어떤 것이든 자신과 같은 것에 항상 대응하고 있다면 정지해 있으며, 움직이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항상 자신과 같은 것에 대응하고 있다면, 움직이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70]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이 논의는 시간이 순간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에서 생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로부터 제논도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진다」를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순간에서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 어떤 순간에서도 그렇다. 즉 위치를 바꾸는 순간은 없으므로, 화살은 위치를 바꾸는 일이 없고, 거기에 정지한 채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 “불가분적인 ‘지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77]라고 하여 제논을 부정하는 한편, “지금이라는 순간에는 운동도 정지도 있을 수 없다”[78]라고 하여, 마치 논의를 궤변으로 보는 듯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수학적으로 보면, 순간에는 운동도 정지도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운동 방정식은 순간적인 속도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단지 용어의 정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전자의 부정(시간이 순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간이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운동은 부정될 수 없다. 시간이 연속체라면, 시간은 순간=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살이 순간=점에서는 정지해 있다고 해도 움직일 수 있다. 근대 해석학에서는 제논의 결론은 부정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도 부정된다.

3. 4. 움직이는 행렬 (또는 경기장, The moving rows (or stadium))

움직이는 행렬


이 역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물리학』[5][6]에서 제논의 네 가지 논증 중 네 번째로 소개한 것이다.[6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 역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두 행렬의 물체에 관하여, 각 행렬은 크기가 같은 물체로 구성되며, 반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진행하면서 경주로에서 서로 지나간다. 한 행렬은 원래 결승선과 경주로 중간 지점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행렬은 중간 지점과 출발선 사이의 공간을 차지한다. 이것은…주어진 시간의 절반이 그 시간의 두 배와 같다는 결론을 포함한다.[19]


키키아의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of Cilicia)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주석에서 제논의 주장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했다.[20][21][22]

셰필드 대학교의 앤지 홉스(Angie Hobbs)는 이 역설이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역설들이 무한히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시간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반면, 이 역설은 이산적인(discrete) 공간과 시간 개념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23]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네 번째 논증은 앞선 세 역설(이분법, 아킬레스와 거북이, 날아가는 화살)과 달리 제논의 논리가 명확하지 않아 해석이 분분하다.[71]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논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오류를 지적한다.

네 번째 논증은 경주장에서, 한 줄로 늘어선 같은 크기의 물체들 옆을, 반대 방향으로, 한쪽은 경주장의 끝점에서, 다른 한쪽은 경주장의 반환점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두 줄의 같은 크기의 물체들에 관한 것이다. 이 논증에서 제논은, 절반의 시간이 그 두 배의 시간과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증의 오류는, 같은 크기의 것이 자신과 같은 크기의 것의 옆을 같은 속도로 이동할 때, 후자가 운동하든 정지해 있든, 필요한 시간은 같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71]


아리스토텔레스는 "예를 들어"라고 덧붙이며 설명을 보충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72] 아리스토텔레스는 '열 ΑΑ'와 두 개의 물체(혹은 선분)로 설명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세 개의 블록으로 상황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73]

  • 그림 1 (초기 상태): 'Α'는 정지해 있는 경기장의 세 블록, 'Β'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블록 열 RQP, 'Γ'는 왼쪽으로 이동하는 블록 열 XYZ이다. 초기에는 'Β'의 선두 블록 P와 'Γ'의 선두 블록 X가 'Α'의 중간 블록에 나란히 있다.



Α: ▲▲▲

Β:RQP

Γ:  XYZ


  • 그림 2 (이동 후 상태): 'Β'와 'Γ'가 각각 같은 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여, 'Β'의 선두 P가 'Α'의 오른쪽 끝 블록에, 'Γ'의 선두 X가 'Α'의 왼쪽 끝 블록에 도달했다고 가정한다.



Α: ▲▲▲

Β: RQP

Γ: XYZ



이 상황에서 'Β'와 'Γ'는 각각 정지해 있는 'Α'에 대해서는 한 블록만큼 이동했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두 블록만큼 이동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제논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모순을 도출한다.

'Γ'는 움직이는 'Β'의 옆을 두 블록만큼 지나갔다. 반면 'Β'는 정지해 있는 'Α'의 옆을 한 블록만큼 지나갔다. 만약 한 블록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위 시간이라고 가정하면, 'Β'가 'Α'의 한 블록 옆을 지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위 시간이다. 그런데 'Γ'는 'Β'의 두 블록 옆을 지나갔으므로, 'Γ'가 'Β' 옆을 지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Β'가 'Α' 옆을 지나가는 데 걸린 시간의 절반, 즉 1/2 단위 시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Β'와 'Γ'는 동시에 'Α'의 양 끝에 도달했으므로, 두 물체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같아야 한다. 따라서 단위 시간의 절반(1/2)이 단위 시간(1)과 같다는 결론, 즉 절반의 시간이 그 두 배의 시간과 같다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논증의 오류가 움직이는 물체('Β') 옆을 지날 때와 정지한 물체('Α') 옆을 지날 때의 상대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두 경우에 걸리는 시간이 같다고 잘못 가정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71]

4. 다수(多數)의 역설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서 제논은 자신의 저술이 존재가 '다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이며, 그들의 가정이 오히려 더 큰 모순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밝힌다.[60]



그래서 제 저서는 그러한 존재의 다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같은 결점, 아니, 더 많은 결점이 있다는 것을 보답으로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사고방식의 전제가 되고 있는, 만약 존재가 다수라면 이라는 것은, 여기에 사람이 충분히 검토를 가한다면, 존재를 하나라고 하는 전제(가정)보다 더 이상한 일을 허용해야만 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이 저서의 목적입니다.[60]



아래는 다수성과 관련된 제논의 논변들을 단편 등에서 재구성하여 역설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4. 1. 닮았고, 닮지 않았다

존재가 다수라면, 그것은 닮았으면서 동시에 닮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61]

4. 2. 크고, 작다

만약 존재하는 사물이 여럿(다수)이라면, 그것들은 동시에 작으면서도 커야 한다모순에 빠진다. 즉, 각 사물은 크기가 없을 정도로 작아야 하는 동시에, 그 크기가 제한되지 않을 정도로 커야 한다는 것이다.[62] 이는 엘레아 학파제논이 사물의 다수성 개념을 비판하기 위해 제시한 논변 중 하나이다.

4. 3. 한정되고, 무한하다

만약 많은 사물이 있다면, 그것들은 딱 그만큼만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다. 즉, 한계가 있다. 그런데, 사물들 사이에는 다른 사물이 있어야만 한다. 모든 사물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한계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식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상대적으로는 배속(配屬, 할당됨)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논은 상대속도를 몰랐던 것일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린다.

  • (1)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그대로, 제논이 상대적인 속도를 알지 못하고, 하나의 사건에 두 개의 시간이 있다는 모순을 제기했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또는 이 견해는 시간을 같다고 한다면, B가 A의 옆을 통과하는 거리와 B가 Γ의 옆을 통과하는 거리가 같다는 것, 즉 거리 1 = 거리 2라는 모순이 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 (2)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하지 않았지만, 제논의 논의에 2분할과 유사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74]


이와는 달리, 원자론적 견해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석도 많이 이루어진다. 제논이 위의 설명도를 기반으로 논했다고 가정하면, 시간·공간이 불가분의 단위를 가진다는 견해는 다음과 같은 역설을 가져온다고 해석한다.

  • (3) 1블록 이동에 1최소 단위 시간이 필요하다면, B는 A에 대해 1단위 시간, Γ에 대해 2단위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어, 1단위 시간 = 2단위 시간이라는 모순이 된다. 또는 시간을 같다고 하면, A에 대한 거리(블록 수 1)와 Γ에 대한 거리(블록 수 2)가 같게 된다.


소스에 언급된 상도에 나타나지 않는 다음 제3도의 경우를 문제로 삼았다는 해석도 있다.[75] 아래 그림의 위치에 관해서는 논리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 (4) 시간이 불가분의 최소 단위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고, 제1도에서 제2도로의 이동이 1최소 단위 시간이라고 한다면, 제3도에서
  • * P와 Y 또는 Q와 X가 나란히 서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상대운동에서 시간의 불연속성을 용인).
  • * 또는, 존재한다고 한다면, 최소 단위 시간에 끼어드는 순간(▽)이 있어야 하며, 이는 불가분의 최소 단위 시간이라는 가정과 모순된다.
  • (5) 거리(연장)가 불가분의 최소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고, 제1도에서 제2도로의 이동이 1최소 단위 거리라고 한다면, 제3도에서
  • * P와 Y 또는 Q와 X가 나란히 서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상대운동에서 공간의 불연속성을 용인).
  • * 또는, 존재한다고 한다면, 분할점(▽)이 존재해야 하며, 이는 불가분의 최소 단위 거리라는 가정과 모순된다.


제3도 A의 3블록(▲) 사이(▽)에 B의 블록 Q와 Γ의 블록 X가 나란히 서거나, 또는 B의 블록 P와 Γ의 블록 Y가 나란히 선다.

:A: ▲▽▲▽▲

:B:R Q P

:Γ: X Y Z

5. 기타 역설

제논의 역설 중에는 잘 알려진 운동에 관한 역설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조(粟) 한 알: 작은 조 한 알이 떨어질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많은 조가 떨어질 때는 소리가 난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다룬다.[63]
  • 장소의 장소: 모든 것이 장소 안에 있다면, 장소 자체도 장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무한 후퇴 문제를 제기한다.[64]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해 반론하며 장소의 본질을 논했다.[65]

5. 1. 조(粟) 한 알

《루트리지 철학 사전》에 따르면 이 역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한 알의 기장이 떨어질 때 소리가 나지 않지만, 천 알은 소리가 난다. 따라서 수많은 무(無)가 유(有)가 된다는 모순된 결론에 이른다.[16]

다른 설명으로는, 조(黍이라고도 번역됨) 한 알이나 그 1만분의 1 크기의 알갱이가 떨어질 때는 소리가 나지 않지만, 1만 알의 조 덩어리가 떨어질 때는 소리가 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알갱이 1만 개가 모여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 1만 배인 조 한 알도 소리가 나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63]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 제논은 기장의 어떤 부분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어떤 부분도 충분한 시간 동안 전체 한 섬돌이 떨어질 때 움직이는 공기를 움직이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 부분 자체로는 그 부분이 혼자 있을 때 움직일 만한 양의 공기를 움직이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부분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7]

닉 허겟은 이 역설을 파르메니데스적 주장으로 해석하며, 청각과 같은 감각을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은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라도 여러 개 모이면 들리는 소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18]

5. 2. 장소의 장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장소에 있다. 그러므로 장소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장소 자체도 어떤 장소에 있어야 하고, 또 그 장소의 장소도 있어야 하는 식으로 무한히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장소의 존재를 가정하면 무한한 연쇄가 발생하므로, 결국 장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역설이다.[64]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물리학』에서 5장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루며 반론을 제시했다. 그는 "장소는 그 안에 있는 것의 질료도 아니고 형상도 아니며, 그 둘과도 다른 어떤 것"[65]이라고 주장하며 장소의 본질에 대해 논했다.

6. 제논의 역설에 대한 반론과 해결 시도

제논의 주장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바와 다른 결론을 내놓기 때문에 역설로 불린다. 이 역설들은 미분 개념과 운동 개념을 포함하는 근대 고전 물리학의 발달 과정에서 반박되었다.

제논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때 이동 거리만을 고려하고 이동에 걸린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 물체의 이동은 움직인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속도 개념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역설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수학적으로는 무한등비급수 등을 이용한 접근법이 있고, 철학적으로는 베르그송과 같이 운동 자체는 분할 불가능하며 제논은 운동의 궤적만을 분석했다는 반박 등이 제기되었다.[87] 제논은 운동을 주로 위치 관계로 파악했지만, 후대의 수학과 물리학은 이를 시간과 거리(또는 속도)의 관계로 재해석하여 다루었다.

제논의 논증은 플라톤이 전하는 바와 같이 고대부터 철학자들의 깊은 관심을 끌었으며,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논의되어 왔다. 특히 운동에 관한 역설들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논의를 다루면서 운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연속성과 무한 분할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았다.[79][80][81][82][83] 그는 무한히 분할되는 공간에는 무한히 분할되는 시간이 대응한다고 보았다.

이후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피노자, 헤겔[84] 등 많은 사상가들이 제논의 역설에 대해 언급하거나 자신들의 철학 체계 안에서 해석을 시도했다.

수학적으로 무한 개념이 엄밀하게 정립된 후, 러셀과 같은 철학자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역설을 분석했다. 러셀은 제논의 논증이 특정 가정(예: 공간과 시간이 유한한 수의 점과 순간으로 이루어짐) 하에서는 타당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현대 수학의 무한 집합 개념 등을 통해 역설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85][86]

그러나 수학적 해결이 제논의 역설이 제기하는 모든 철학적 문제를 해소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다. 맥스 블랙[93] 등이 제기한 슈퍼태스크(초과업무) 문제나 톰슨의 램프와 같은 사고 실험은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한 작업을 완료하는 개념의 논리적, 형이상학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폴 베나세라프, 야야 시게키[94], 윌리엄 제임스[96], 오모리 소조[89][90][91][92] 등 현대 철학자들에게 이어지며 운동, 시간, 공간, 연속성, 무한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초준해석과 같은 새로운 수학적 도구를 이용한 해석 시도[98][99][100]나, 역설을 물리적 실재 과정과 연결하려는 시도[101][102] 역시 계속되고 있다.

6. 1. 고전적 해결

제논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물체가 이동한 거리만을 고려하고, 그 이동에 걸린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물체의 이동은 움직인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누어 속도를 구하고 이를 통해 비교해야 한다. 즉, 물체의 이동은 속도 개념을 통해 더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키케론에 따르면, 키니코스 학파디오게네스는 제논의 주장을 듣고 직접 일어나 걸어 보임으로써 그 결론이 틀렸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20][21] 하지만 이는 역설이 제시하는 결론의 오류만을 보여줄 뿐, 논증 자체의 허점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제논의 역설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는데,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아르키메데스의 설명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거리가 줄어들면 그 거리를 이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 역시 함께 줄어든다고 지적했다.[24][25] 또한 그는 '분할 가능성에서 무한한 것'(예를 들어, 공간 단위처럼 정신적으로 계속 더 작은 단위로 나눌 수 있는 것)과 '크기 자체가 무한한 것'(예를 들어, 끝없이 이어지는 거리)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26]

특히 화살 역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순간(지금)'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27] 이는 마치 다른 양(예: 길이)들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점들로만 구성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이어받아, "순간은 시간의 일부가 아니며, 시간은 순간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시간 동안 물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 속의 어느 한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뒷받침했다.[28][29][30]

6. 2. 수학적 해결

미분운동 개념을 활용한 근대 고전 물리학의 발달은 제논의 역설을 반박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제논은 물체가 이동한 거리만을 고려하고 시간 요소를 배제했지만, 실제 운동은 속도(이동 거리 / 이동 시간) 개념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수학적으로는 무한등비급수를 이용하여 역설을 해결할 수 있다. 일부 수학자와 역사가, 예를 들어 칼 보이어는 제논의 역설이 본질적으로 수학적 문제이며 현대 미적분학이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31] 19세기 후반 바이어슈트라스코시는 엡실론-델타 정의를 이용하여 극한 개념을 엄밀하게 정립했고, 이는 무한 과정을 포함하는 수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반이 되었다.[32][33]

하지만 일부 철학자들은 제논의 역설과 그 변형들(예: 톰슨의 램프)이 여전히 관련성 있는 형이상학적 문제라고 말한다.[36][34][35] 수학은 움직이는 아킬레스가 제논의 역설에서 거북을 추월하는 시점과 위치를 계산할 수 있지만, 케빈 브라운[36]과 프랜시스 무어크로프트[34]와 같은 철학자들은 수학이 제논 논증의 핵심을 다루지 않으며,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역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브라운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최종 해결'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우리가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제논의 운동에 대한 논증은 그 단순성과 보편성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가장 근본적인 현상학적 관심사(만약 있다면)를 투영할 수 있는 일종의 '로르샤흐 이미지'로 기능할 것이다."라고 결론짓는다.[36]

제논은 운동을 위치 관계로 파악했지만, 후대의 수학은 이를 시간과 거리의 관계로 재해석한다. (이하 1차원 실수 공간 상의 운동으로 가정) 단순히 두 점 사이에 중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수학적으로 운동을 기술하기 위한 조건이 부족하다. 추가적인 가정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전진형 해석

:시간과 속도를 고려하면 다음과 같은 사례 분석이 가능하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예:''' 이동 거리가 절반이 될 때마다 속도도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가정하면(감속 운동), 각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해진다. 따라서 총 소요 시간은 무한대로 발산하여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한 거리를 무한 시간에 걸쳐 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나[76], 이러한 감속 운동 사례는 고려하지 못했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예:''' 등속 운동을 가정하면, 각 구간(절반, 남은 거리의 절반, ...)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합은 코시 수열을 이루며 특정 상한으로 수렴한다. 따라서 유한한 시간 안에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앞서 출발하고 아킬레우스보다 느리다는 조건만으로는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제논의 분석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특정 속도 조건을 가정하지 않고 따라잡지 못한다고 단정하는 것이 제논의 오류 중 하나이다.

  • '''따라잡지 못하는 사례:''' 거북이의 속도가 아킬레우스보다 느리지만, 그 속도 차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특정 수학적 모델을 설정하면, 따라잡는 데 필요한 시간의 합이 발산하는 경우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수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어려웠을 수 있다.
  • '''따라잡는 사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각각 등속 운동을 한다고 가정하면, 따라잡는 데 필요한 각 구간의 시간 합은 수렴하는 무한등비급수가 된다. 따라서 유한한 시간 안에 따라잡을 수 있다. 계산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아킬레우스의 속도를 v m/s, 거북이의 속도를 rv m/s로 하고, 거북이는 아킬레우스보다 L m 앞에 있다고 하자. 거북이의 속도는 아킬레우스의 속도보다 작으므로, 0 < r < 1이다. 두 존재가 동시에 출발하여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출발점에 도착하는 시간은 (L/v) s이다. 그때 거북이는 아킬레우스보다 rv × L/v = rL m 앞에 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가 그 위치에 도착하는 데는 다시 (rL/v) s가 걸리고, 그때 거북이는 다시 r²L m 앞에 있다. 이와 같이 반복하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의 위치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합계는

: \frac{L}{v}+r^1\frac{L}{v}+r^2\frac{L}{v}+r^3\frac{L}{v}+\cdots

: 이 된다. 즉, 항이 무한히 계속되고, "항상 약간씩 앞서 있다"고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

: 이는 초항 L/v, 공비 r인 등비수열이며, n + 1항까지의 부분합(=각 경과 시간의 합산)은

: \frac{L}{v}+r^1\frac{L}{v}+r^2\frac{L}{v}+r^3\frac{L}{v}+\dotsb+r^n\frac{L}{v}= \frac{1-r^{n+1}}{1-r}\frac{L}{v}

: 이 된다. 여기서 n → ∞로 하면, 0 < r < 1이므로, rn+1 → 0이 된다. 즉, 무한급수

: \frac{L}{v}+r^1\frac{L}{v}+r^2\frac{L}{v}+r^3\frac{L}{v}+\cdots

: 의 합은 \frac{1}{1-r}\frac{L}{v} (=각 경과 시간의 합산의 상한)이 된다. 이와 같이 급수의 수렴 문제로 귀착된다.

:

: 참고로, 마지막 계산 결과는, "아킬레우스가 t 초 후에 따라잡는다"고 하여 세운 1차 방정식

: vt=L+rvt

: 의 해와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 “불가분적인 ‘지금’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77], “지금이라는 순간에는 운동도 정지도 있을 수 없다”[78]고 주장하며 제논을 반박하려 했다. 그러나 현대 수학, 특히 해석학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연속적인 점(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도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순간 속도의 개념을 통해 특정 시점에서의 운동 상태를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해석학은 제논의 결론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박 논리 일부도 부정한다.

수학적 해결 이후에도 새로운 관점들이 제시되었다. 러셀은 제논의 논증이 공간과 시간이 유한한 개수의 점과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 하에서는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 역설을 벗어나는 길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 공간과 시간이 점과 순간으로 구성되지만, 유한한 구간 내에 무한한 수의 점/순간이 존재한다고 주장 (현대 수학/집합론적 관점)

# 공간과 시간이 점과 순간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부정 (베르그송 등 철학적 관점)

# 공간과 시간의 실재성 자체를 부정 (철학적 관점)

러셀은 (1)의 관점에서, 집합론의 무한 개념을 사용하여 역설을 재해석했다. 예를 들어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우, 아킬레스가 이동한 경로의 점들과 거북이가 이동한 경로의 점들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서로 다른 길이의 선분 위 점들이라도 무한 집합으로서는 같은 기수를 가질 수 있다는 개념에 기반한다.[85] 날아가는 화살의 역설에 대해서는, '다음' 순간이나 '다음' 위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이란 시간과 장소에 상관관계가 있어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것[86]"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미적분학에서의 운동 개념과 상통한다.

한편, 무한등비급수나 집합론에 기반한 수학적 해결이 역설의 모든 측면을 해소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계속되었다. 맥스 블랙[93] 등은 슈퍼태스크(Supertask, 초과업무), 즉 무한한 작업을 유한 시간 내에 완료하는 개념의 논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톰슨의 램프는 1분 동안 1/2분, 1/4분, 1/8분... 간격으로 램프를 켜고 끄는 작업을 반복하면, 1분 후 램프는 켜져 있는가 꺼져 있는가? 라는 문제를 통해 무한 작업 완료의 모순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 예가 슈퍼태스크의 자기모순을 증명하는지 여부는 견해가 엇갈린다.

  • 폴 베나세라프는 이에 대해 무한 수열의 각 항에 적용되는 규칙이 그 수열의 극한값(상한)에서도 반드시 성립한다고 볼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지적하며, 슈퍼태스크가 논리적 모순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 야야 시게키는 운동 자체와 운동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구별해야 하며, 제논이 제시한 방식(무한 분할)으로는 운동을 기술할 수 없을 뿐,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94] 그러나 아오야마 타쿠오는 이러한 주장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경우만을 상정하고 있어 논점 선취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95]

6. 3. 철학적 해결

일부 철학자들은 제논의 역설과 그 변형들(예: 톰슨의 램프)이 여전히 형이상학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36][34][35] 수학이 아킬레스가 거북을 추월하는 시점과 위치를 계산할 수 있음에도, 케빈 브라운[36]과 프랜시스 무어크로프트[34] 같은 이들은 수학이 제논 논증의 핵심, 즉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지 못하며, 수학적 해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브라운은 제논의 논증이 근본적인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투영할 수 있는 일종의 '로르샤흐 이미지'와 같다고 보았다.[36]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논의를 다루면서, 운동의 부정이라는 결론은 배척했지만, 연속성과 관련하여 시공간의 무한 분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보았다. 그는 유한한 시간에 무한한 지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제논의 가정이 잘못되었으며, 무한히 분할 가능한 공간에는 무한히 분할 가능한 시간이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을 '가능태(potentiality)'와 '현실태(actuality)'로 구분하여, 선분이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태로서의 무한이며, 실제로 무한한 분할점을 모두 통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즉, 운동하는 물체는 가능적으로 무한한 지점을 통과하지만, 현실적으로 무한한 수를 세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79][80][81][82][83]

베르그송은 1896년 저서 『물질과 기억』에서 제논의 오류는 운동 자체가 아니라 운동이 지나간 정지된 궤적(경로)을 분석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경로는 나눌 수 있지만, 운동이라는 흐름 자체는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37][38][87]

버트런드 러셀은 이른바 "순간순간 이론(at-at theory of motion)"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운동은 지속 시간이 없는 각 순간에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운동이란 단지 시간에 따른 위치의 변화일 뿐이다. 그는 화살이 특정 순간에 특정 위치에 있다는 제논의 지적은 맞지만,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다음' 순간이나 '다음'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86] 러셀은 제논의 논증이 공간과 시간이 점과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에 대한 타당한 반론이라고 보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경로로 (1) 유한 구간 내 점/순간의 수가 무한하다고 주장하기, (2) 공간/시간이 점/순간으로 구성됨을 부정하기, (3) 공간/시간의 실재성 자체를 부정하기를 제시했다. 그는 (1)의 관점에서 무한 집합의 개념(특히 기수)을 통해 역설이 해결된다고 보았다.[85]

또 다른 철학적 접근은 공간(또는 시간)의 두 점 사이에는 항상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제논의 기본 가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가정을 부정하면, 두 점 사이에는 유한한 수의 지점만 존재하게 되어 무한 분할 문제가 사라진다. 그러나 헤르만 바일은 이산 공간(discrete space) 개념이 소위 "타일 논증"이라는 기하학적 문제(이산 공간에서 직각삼각형 빗변 길이가 다른 변 길이와 같아지는 모순)에 부딪힌다고 지적했다.[45][46] 반면, 장 폴 반 벤데겜은 타일 논증이 해결 가능하며 이산화를 통해 역설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31][47]

다양한 철학자들이 제논의 역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 피터 린즈(Peter Lynds)는 시간의 순간이나 순간적 크기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운동을 무한히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며 역설을 해결하려 했다.[39][40][41]
  • 닉 휴겟(Nick Huggett)은 정지 상태와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체는 정지해 있어야 한다는 제논의 전제 자체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14]
  • 스피노자는 지성으로 파악되는 불가분적 무한량과 상상력으로 파악되는 가분적 유한량을 혼동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고 보았다.
  • 헤겔은 제논의 논증을 인정하되, 결론은 운동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운동 자체가 모순을 내포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84]
  •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은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이, 마치 케이크를 자를 때 항상 남는 조각에만 집중하여 전체 케이크를 잊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를 오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논이 아킬레스가 거북이와의 상대 속도나 남은 거리를 고려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88]
  • 오모리 소조는 점운동 개념 자체가 모순이며, 물리학은 정지된 그림을 다루기에 이 모순을 피해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론적 시간(수학/물리학의 시간)과 경험적 시간을 구분하며, 과학 이론 내에서는 날아가는 화살의 역리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고 보았다.[89][90][91][92]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연속적 과정을 가정할 때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을 인정하고, 현실의 변화를 불연속적인, 유한한 단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6]
  • 나카무라 슈키치(中村秀吉)는 제임스에 동의하며, 자연이 무한 분할을 허용하지 않으며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통해 역설을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무한히 진동하는 연속 함수는 실재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97]


급수에 의한 수학적 해결에도 불구하고, 맥스 블랙[93], 제임스 F. 톰슨 등은 슈퍼태스크(Supertask, 초과업무), 즉 무한한 작업을 완료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톰슨의 램프는 무한 번의 켜고 끄는 작업이 완료된 후 램프의 상태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없는 역설적 상황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 폴 베나세라프는 무한 수열의 각 항에 성립하는 속성이 반드시 그 극한값에서도 성립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슈퍼태스크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증명은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야야 시게키(矢谷茂樹)는 운동 자체와 운동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구별하며, 제논식 기술이 불가능할 뿐 운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94] 이는 따라잡는 경우만 고려한 논점 선취라는 비판도 있다.[95]

초준해석(Non-standard analysis)의 무한소(infinitesimal) 개념을 도입하여 운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윌리엄 맥클라우린(William I. McLaughlin)과 실비아 밀러(Sylvia L. Miller)는 관찰 불가능한 무한소적 변화를 허용함으로써 제논의 역설을 피할 수 있는 운동 모델을 제시했다.[98] 이들은 관찰할 수 없는 미소 세계에서의 운동에 대한 가설을 통해 운동 개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99] 그러나 야마카와 타다야(山川偉也)는 이러한 접근법이 제논을 반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100]

이 외에도 아돌프 그룬바움(Adolf Grünbaum)[101], 웨슬리 새먼(Wesley C. Salmon)[102] 등은 제논의 역설을 단순히 논리적·수학적 문제를 넘어 물리적 실재 과정과 관련된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다루었다.

6. 4. 현대적 해결

앙리 베르그송은 1896년 저서 『물질과 기억』에서 운동체가 그린 경로는 나눌 수 있지만, 운동 그 자체는 나눌 수 없다는 대안적인 결론을 제시했다.[37][38] 그는 제논의 오류가 운동체가 그린 궤적, 즉 선분과 그 위의 무한한 점의 성질(부동성)을 운동 자체의 성질로 착각한 데 있다고 보았다. 궤적은 이미 '끝난' 지속을 표현할 뿐, '진행 중인' 지속이나 운동의 본질을 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87]

2003년, 피터 린즈(Peter Lynds)는 시간의 특정 '순간'이나 순간적인 크기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통해 제논의 운동 역설이 해결된다고 주장했다.[39][40][41] 린즈는 상대 운동 상태에 있는 물체는 순간적이거나 확정된 상대 위치를 가질 수 없으며 (만약 그렇다면 운동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따라서 역설에서 가정하듯 운동을 무한히 분할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닉 휴겟(Nick Huggett)은 제논이 "정지 상태와 동일한 공간을 차지하는 물체는 정지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자기모순에 빠진다고 지적했다.[14]

게오르크 칸토어의 집합론 연구를 바탕으로, 버트런드 러셀은 이른바 "순간순간 이론(at-at theory of motion)"을 제시하며 역설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이 이론은 지속 시간이 없는 '순간'에는 운동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운동이란 화살이 한 시점에 한 지점에 있고, 다른 시점에 다른 지점에 있으며, 그 사이의 중간 시점들에도 적절한 지점에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즉, 운동은 시간에 따른 위치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85][86] 러셀은 제논의 논증이 공간과 시간이 점과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 특히 유한한 구간이 유한한 수의 점과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에 대한 타당한 반론이라고 평가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길을 제시했다. (1) 공간과 시간은 점과 순간으로 구성되지만, 유한한 구간 내 점과 순간의 수는 무한하다고 주장하거나, (2) 공간과 시간이 점과 순간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3) 공간과 시간의 실재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러셀 자신은 (1)의 관점에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우 각자의 경로 위 점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1대1로 대응될 수 있으며, 화살의 경우 '다음' 순간이나 '다음'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85][86]

제논의 역설(특히 이분법 역설)이 의존하는 또 다른 가정, 즉 공간이나 시간의 두 점 사이에는 항상 또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해결책도 있다. 이 가정을 부정하면 두 점 사이에는 유한한 개수의 지점만 존재하게 되어 무한 분할 문제가 사라지고 역설이 해결된다. 그러나 헤르만 바일은 공간이 유한하고 불연속적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은 소위 "타일 논증" 또는 "거리 함수 문제"라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고 지적했다.[45][46] 이산 공간에서는 직각삼각형 빗변의 길이가 두 변 중 하나의 길이와 같아지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장 폴 반 벤데겜은 타일 논증이 해결될 수 있으며, 따라서 공간의 이산화를 통해 역설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31][47]

길버트 라일은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과 관련하여, 제논의 논리가 어떻게 추월 불가능한 상황처럼 보이게 만드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케이크 자르기 비유를 들어, 항상 남은 조각을 자르라는 지시는 끝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은 조각들을 합하면 전체 케이크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제논의 논의는 아킬레스가 거북이와의 상대 속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항상 뒤처져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며,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는 말과 수학적 급수의 합이 ‘결코 수렴값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라고 지적했다.[88]

오모리 쇼조는 “운동의 시간적 연속성이 있는 한 제논의 논법을 피할 수 없다.[89]”라고 논하며, 이어서 “점운동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기하도형의 운동은 모순 개념이다.[90]”라고 한다. 따라서, 점운동에 기초한 제논의 논법은 이 모순으로써 해소된다. 물리학·공학이 이 모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운동이 아니라 정지된 그림을 다루고 있는 한에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점운동의 역리'''란, 점 X가 움직인다는 것은, 동일한 점 X가 처음에는 점 A와 동일하고, 끝에는 점 B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역리는 '''점시간 개념'''에 의해 초래된다.[91] 그것은 선형 시간의 눈금으로 생각된 것으로, 경험적 실용 시간의 “기준이 되도록 생각된 '''이론적 시간'''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이론적 시간은 기본적인 자연법칙이 성립하도록 '''사고된''' 시간이다. …그러므로 과학 이론 안에서는 날아가는 화살의 역리는 살아있어야 한다.” “과학에 날아가는 화살의 역리로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92]”라고 말한다.

급수에 의한 “해결” 또는 러셀이 말하는 무한수의 도입에 의한 수학적 해석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맥스 블랙[93] 등은 슈퍼태스크(초과업무)·무한 작업의 문제를 제기한다. 제임스 F. 톰슨의 톰슨의 램프 등, 무한한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하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분법에서 전진형으로 목표 지점에 도착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무한 수열 Z={0, 1/2, 3/4, 7/8, …}는 상한이 1이다. Z의 각 수에 순서대로 온오프를 대응시키면 상한 1에서 도착한다면 그때는 온인가 오프인가? 어느 쪽도 될 수 없다고 제임스 F. 톰슨은 말한다. 이 예가 슈퍼태스크의 자기모순을 증명하는지 여부는 견해가 엇갈린다.

  • 폴 베나세라프는 슈퍼태스크 자기모순론자를 현대의 엘레아 학파라고 부른다. “무한 작업의 완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무한 수열 Z의 각 항에 규정된 관계가 상한에서도 규정된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자기모순이라는 증명은 되어 있지 않다고 그는 슈퍼태스크론을 비판한다.
  • 야야 시게키는 “시간·공간은 그 자체가 말해지는 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점적인 말투로는 운동을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한편 이 무한 작업의 불가능성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제논이 요구하는 것은 운동의 기술로서 불가능한 것이며, 운동 그 자체는 다른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제논의 논의에 따르면, 즉 무한 분할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연수를 다 셀 수 있는가, 또는 따라잡을 수 없는가의 어느 한쪽으로 보이는 것은 그 말투의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조금도 운동의 불가능성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과 운동의 이야기를 구별하는 관점”에서 운동에 대한 제논식 기술의 불가능성이 제시된 것을 가지고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결론이 났다고,[94] 한다. 아오야마 타쿠오는 그러나 야야나 라일은 따라잡는 경우만 보고 있다. 이른바 논점 선취의 논의라고[95] 평가한다.
  • 윌리엄 제임스는 말한다. "제논과 칸트의 논리적 모순은, 정의에 의해, 무한한 항의 계열이 종점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세어져야만 하는 경우에는 항상 참이다." "러셀의 주장은 진정한 어려움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는 것 같다." 러셀은 경주가 끝난 지점에서 문제를 보고 있지만, 진정한 어려움은 "통과해야 하는 간격이 영원히 재생산되어 계속해서 진로를 막고 있는 경우에,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연속량이 지닌 무한이라는 문제를 피하는 간편한 방법은, 그러한 개념을 버리는 것이다. "현실의 변화 과정을 연속적 과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무한소가 아닌 단계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다루면 된다.[96]"
  • 나카무라 슈키치는 제임스에 동의하며, "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무한의 분할을 싫어한다." "우리는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운동에 구체화함으로써, 무한의 조작을 '''현실에''' 필요로 하는 듯한 상황을 경험 세계에서 추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제논의 분할과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무한 수열 Z의 각 항에 온오프를 대응시키는 무한히 진동하는 연속 함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한에서 연속이어도, 도함수는 상한에서 연속되지 않고, 실재의 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97]
  • 무한소량에 의해 운동을 파악할 수 있다고, 윌리엄 맥클라우린과 밀러는 말한다. 시공간을, 초준해석의 공식화의 일종인 내적 집합론(Internal Set theory) 안에서 모델화함으로써, 제논의 반박에서 벗어나는 운동론을 전개할 수 있다고 한다. 인식론적 원리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제시된다.[98]

1. 물체가 위치할 수 있는 시공간의 각 점은 실수값의 좌표에 의해 기술된다. 단, 우리는 내적 집합론 안에서 모델화하고 있으므로, 실수에는 무한소와 무한대와 같은 초준적인 실수도 포함되어 있다.

2. 물체가 초준적인 좌표를 가진 점에 위치할 때, 그 대상의 위치는 확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물체가 영(0)이 아닌 무한소의 공간 좌표를 가진 위치에 있을 때, 그 물체는 공간 좌표 0의 점에 위치한다고 우리는 오해할지도 모른다.

3. 물체의 운동은 구별 가능한 2점에 위치함으로써 확증된다. 예를 들어, 물체의 공간 좌표가 (다른 시점에서) 0에서 양의 무한소로 변화한다고 해도, 그 물체가 운동하고 있다는 것은 확증되지 않는다. 하지만, 0에서 1/2로 변화한다면, 그 물체가 운동하고 있다고 확증할 수 있다.

이 원칙에 근거하면,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할 책임이 없다", "체크포인트의 열(列)의 외부에 있는 미소 세계에서의 운동에 관한 가설이 성립할 여지가 있으며,...운동이라는 생각을 추방할 이유는 없다.[99]"고 주장한다. 야마카와 타다야는,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서는, "제논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100]"고 평가한다.

  • 제논의 논의가 제기하는 문제를, 논리적·수학적인 것으로 한정하지 않고, 물리적·실재적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또는 여러 역설과 관련지어 의미 있는 것으로 파악하려는 논고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제시되고 있다. 아돌프 그룬바움(Adolf Grünbaum)[101], 웨슬리 새먼(Wesley C. Salmon)[102] 등을 들 수 있다.

7. 현대적 의의와 응용

제논의 역설은 고대의 사고실험이지만, 현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그 개념이 응용되거나 유사한 현상이 발견되어 논의되고 있다.

양자역학 분야에서는 관측 행위가 양자계의 동역학적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제논의 역설과 연관되어 논의되는데, 이를 '양자 제논 효과'라고 부른다.[48][49][50] 또한, 컴퓨터 과학의 시간적 사건 시스템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 검증 및 설계 분야에서는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히 많은 이산적 단계를 포함하는 시스템 동작을 '제논 동작'이라고 지칭하며, 이는 시스템 분석 및 구현 가능성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51][52][53][54]

이처럼 제논의 역설은 현대의 물리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간, 공간, 운동, 관측과 같은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의의를 이어가고 있다.

7. 1. 양자 제논 효과

1958년에 처음 이론화되었으며,[50] 1977년 물리학자 E. C. 조지 수다르샨과 B. 미스라는 양자계의 동역학적 진화가 계에 대한 관측을 통해 방해받거나 심지어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48][49] 이 효과는 제논의 역설과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양자 제논 효과'라고 불린다.

양자역학에서, 어떤 확률로 방사성 붕괴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불안정한 원자핵이 연속적인 관측 하에서는 붕괴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양자 제논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는 제논의 원래 논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실제로 매우 짧은 시간 간격으로 관측을 하면 원자핵이 원래 예측되는 것보다 낮은 확률로 붕괴하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를 '양자 제논 효과'라고 한다.

7. 2. 제논 동작 (Zeno behaviour)

시간적 사건 시스템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검증 및 설계 분야에서, 유한한 시간 안에 무한히 많은 이산적 단계를 포함하는 시스템 동작을 제논 동작(Zeno behaviour)이라고 한다.[51] 일부 형식적 검증 기법에서는 제논 동작이 비제논 동작과 동등하지 않을 경우, 분석 과정에서 이러한 동작을 제외하기도 한다.[52][53] 또한, 시스템 설계에서는 제논 동작이 디지털 컨트롤러로 구현될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 모델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다.[54]

7. 3. 철학적 논의

플라톤이 전하는 바와 같이, 제논의 논증은 고대부터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그 가치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지만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에 의해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어떤 논증을 다루는지, 무엇을 논하고 있다고 보는지 등 해석과 관심의 방향은 다양했으나, 특히 운동의 역설에 대한 논의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모리 소우조는 "운동의 시간적 연속성이 있는 한 제논의 논법을 피할 수 없다[89]"고 주장하며, "점운동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기하도형의 운동은 모순 개념이다[90]"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점운동에 기초한 제논의 논법은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해소되며, 물리학이나 공학이 이 모순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지된 그림을 다루는 한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오모리가 말하는 '''점운동의 역리'''란, 점 X가 움직인다는 것이 동일한 점 X가 처음에는 점 A와 같고 나중에는 점 B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점시간 개념'''에 의해 발생한다.[91] 점시간 개념은 선형 시간의 눈금으로 고안된 것으로,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시간의 기준이 되도록 만들어진 '''이론적 시간'''이다. 오모리는 "이 이론적 시간은 기본적인 자연법칙이 성립하도록 '''사고된''' 시간"이며, "과학 이론 안에서는 날아가는 화살의 역리가 살아있어야 한다", "과학에 날아가는 화살의 역리로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92]"고 지적했다.

급수러셀이 제시한 무한수의 도입을 통한 수학적 해석에 대해서도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맥스 블랙[93] 등은 슈퍼태스크(초과업무)와 무한 작업의 문제를 제기했다. 톰슨의 램프와 같이 무한한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설명할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분법의 전진형에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무한 수열 Z={0, 1/2, 3/4, 7/8, …}의 상한은 1이다. 만약 Z의 각 항에 순서대로 램프를 켜고 끄는 작업을 대응시킨다면, 상한인 1에 도달했을 때 램프는 켜져 있는가, 아니면 꺼져 있는가? 제임스 F. 톰슨은 어느 쪽도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예시가 슈퍼태스크의 자기모순을 증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폴 베나세라프는 슈퍼태스크가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현대의 엘레아 학파라고 부르며, "무한 작업의 완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한 수열 Z의 각 항에 규정된 관계가 반드시 상한에서도 규정된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므로, 슈퍼태스크가 자기모순이라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야야 시게키는 "시간과 공간은 그 자체가 이야기되는 대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점적인 방식으로는 운동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한 작업의 불가능성으로부터 제논이 요구하는 것은 운동을 기술하는 방식으로서 불가능한 것이며, 운동 그 자체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무한 분할의 논리에 따르면 자연수를 모두 셀 수 있는지 또는 따라잡을 수 없는지의 문제로 보이는 것은 단지 그 표현 방식의 결함일 뿐이며, "그것은 조금도 운동의 불가능성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운동과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구별하는 관점"에서 운동에 대한 제논식 기술의 불가능성이 제시된 것으로 "아킬레스와 거북이" 문제는 결론이 났다고[94] 주장했다. 그러나 아오야마 타쿠오는 야야나 라일이 따라잡는 경우만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는 논점 선취의 오류에 해당한다고[95] 평가했다.
  • 윌리엄 제임스는 "정의에 의해 무한한 항의 계열이 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세어져야만 하는 경우, 제논과 이마누엘 칸트의 논리적 모순은 항상 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셀의 주장이 "진정한 어려움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어려움은 "통과해야 하는 간격이 영원히 재생산되어 계속해서 진로를 막고 있는 경우에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속량이 지닌 무한이라는 문제를 피하는 방법으로 그러한 개념 자체를 버릴 것을 제안하며, "현실의 변화 과정을 연속적 과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무한소가 아닌 단계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다루면 된다[96]"고 주장했다.
  • 나카무라 슈키치는 윌리엄 제임스의 견해에 동의하며, "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무한의 분할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운동에 구체화함으로써, 무한의 조작을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듯한 상황을 경험 세계에서 추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제논의 분할과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설은 성립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무한 수열 Z의 각 항에 온오프를 대응시키는 무한히 진동하는 연속 함수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상한에서 연속이더라도 그 도함수는 상한에서 연속되지 않으므로 실제 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97]
  • 윌리엄 맥클라우린과 실비아 L. 밀러는 무한소량(無限小量)을 통해 운동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시공간을 초준해석(超準解析)의 일종인 내적 집합론(Internal Set theory) 안에서 모델화함으로써 제논의 반박에서 벗어나는 운동론을 전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원리를 제시했다.[98]

1. 물체가 위치할 수 있는 시공간의 각 점은 실수값 좌표로 기술된다. (단, 내적 집합론 모델에서는 실수가 무한소나 무한대 같은 초준적인 실수를 포함한다.)

2. 물체가 초준적인 좌표를 가진 점에 위치할 때, 그 위치는 확증할 수 없다. (예: 물체가 0이 아닌 무한소 공간 좌표에 있을 때, 우리는 공간 좌표 0에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3. 물체의 운동은 구별 가능한 두 점에 위치함으로써 확증된다. (예: 물체의 공간 좌표가 0에서 양의 무한소로 변해도 운동은 확증되지 않지만, 0에서 1/2로 변하면 운동이 확증된다.)

이 원칙에 근거하여, 그들은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할 책임이 없다", "체크포인트 열(列) 외부에 있는 미소 세계에서의 운동에 관한 가설이 성립할 여지가 있으며, ...운동이라는 생각을 추방할 이유는 없다[99]"고 주장한다. 야마카와 타다야는,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서는, "제논을 반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100]"고 평가한다.

제논의 논의가 제기하는 문제를 단순히 논리적·수학적인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물리적·실재적 과정의 문제와 연관 짓거나 여러 역설과 관련지어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들도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아돌프 그룬바움[101], 웨슬리 새먼[102] 등이 있다.

참조

[1] 서적 Lives
[2] 서적 Parmenides
[3] 서적 Parmenides
[4] 웹사이트 IX http://classicpersua[...] 2010-12-12
[5]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11-01-06
[6] 웹사이트 Greek text of "Physics" by Aristotle http://remacle.org/b[...] 2008-05-16
[7] 서적 The Moment of Proof : Mathematical Epiphanies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8] 백과사전 Zeno's Paradoxes: 5. Zeno's Influence on Philosophy http://plato.stanfor[...] 2011-03-07
[9] 서적 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10] 백과사전 Zeno's Paradoxes: 3.1 The Dichotomy http://plato.stanfor[...] 2011-03-07
[11] 백과사전 Zeno's Paradoxes: 3.2 Achilles and the Tortoise http://plato.stanfor[...] 2011-03-07
[12]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12-08-21
[13] 웹사이트 Lives and Opinions of Eminent Philosophers http://en.wikisource[...] 2011-03-05
[14] 백과사전 Zeno's Paradoxes: 3.3 The Arrow http://plato.stanfor[...] 2011-03-07
[15]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08-05-09
[16] 서적 Routledge Dictionary of Philosophy Routledge 2009
[17]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08-05-11
[18] 웹사이트 Zeno's Paradoxes http://plato.stanfor[...] 2022-03-01
[19]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08-05-15
[20] 서적 Simplicius on Aristotle's Physics 6 Cornell Univ. Pr 1989
[21] 백과사전 Zeno's Paradoxes https://plato.stanfo[...]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24-03-25
[22] 웹사이트 Zeno's Paradoxes https://iep.utm.edu/[...] 2024-03-25
[23] 웹사이트 Zeno's Paradoxes: The Moving Rows https://digitalmedia[...] 2024-06-28
[24] 서적 Physics
[25] 문서 Aristotle's observation that the fractional times also get shorter does not guarantee, in every case, that the task can be completed.
[26] 서적 Physics
[27] 웹사이트 Physics http://classics.mit.[...] 2008-08-11
[28] 서적 Commentary on Aristotle's Physics
[29] 서적 A Critical Investigation into Precognitive Dreams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20-04-01
[30] 웹사이트 Commentary on Aristotle's Physics https://aquinas.cc/l[...] 2024-03-25
[31] 서적 The History of the Calculus and Its Conceptual Development https://archive.org/[...] Dover Publications 1959
[32] 저널 Are Zeno's Paradoxes Based on a Mistake? Oxford University Press 1965
[33] 서적 Mathematics and the metaphysicians 1956
[34] 웹사이트 Zeno's Paradox http://www.philosoph[...] 2010-04-18
[35] 저널 Why Mathematical Solutions of Zeno's Paradoxes Miss the Point: Zeno's One and Many Relation and Parmenides' Prohibition http://philsci-archi[...] 2012-03-06
[36] 웹사이트 Zeno and the Paradox of Motion http://www.mathpages[...] 2010-06-06
[37] 서적 Matière et Mémoire https://antilogicali[...] Translation 1911 by Nancy Margaret Paul & W. Scott Palmer. George Allen and Unwin 1896
[38] 서적 Parables for the Virtual: Movement, Affect, Sensation Duke University Press Books
[39] 웹사이트 Zeno's Paradoxes: A Timely Solution http://philsci-archi[...] 2003-01-00
[40] 간행물 Time and Classical and Quantum Mechanics: Indeterminacy vs. Discontinuity
[41] 뉴스 Time’s Up, Einstein https://www.wired.co[...] 2005-06-00
[42] 서적 Our Knowledge of the External World: As a Field for Scientific Method in Philosophy Routledge 2002
[43] 서적 Space From Zeno to Einstein MIT Press
[44] 서적 Causality and Explan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45] 백과사전 Finitism in Geometry http://plato.stanfor[...] 2010-03-17
[46] 웹사이트 ATOMISM https://www.aarweb.o[...] 2000-12-11
[47] 학술지 Discussion:Zeno's Paradoxes and the Tile Argument
[48] 학술지 The Zeno's paradox in quantum theory http://repository.ia[...]
[49] 학술지 Quantum Zeno effect http://www.boulder.n[...]
[50] 학술지 Contribution to the Decay Theory of a Quasi-Stationary State
[51] 서적 Handbook of dynamic system modeling CRC Press 2007-06-01
[52] 학술지 Specifying Systems http://research.micr[...] Addison-Wesley
[53] 학술지 Zeno hybrid systems http://aphrodite.s3.[...]
[54] 서적 A Comparison of Control Problems for Timed and Hybrid Systems http://mtc.epfl.ch/~[...]
[55] 서적 Sacred Books of the East Oxford University Press
[56] 웹사이트 School of Names > Miscellaneous Paradoxe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
[57] 학술지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 https://academic.oup[...] 1895-04-01
[58] 서적 Clarity and confusion in social theory: taking concepts seriously Routledge 2021
[59] 서적 ゼノン4つの逆理
[60] 서적 パルメニデス 岩波書店
[61] 서적 パルメニデス
[62] 백과사전 Zeno of Elea Macmillian
[63] 서적 自然学
[64] 서적 自然学
[65] 서적 自然学
[66] 서적 自然学
[67] 서적 ゼノン4つの逆理 講談社
[68] 문서 イリアスにおけるアキレスの枕詞
[69] 서적 ギリシア哲学者列伝(下) 岩波書店
[70] 서적 自然学
[71] 서적 自然学
[72] 서적 해설 自然学
[73] 웹사이트 Zeno's Paradoxes
[74] 서적 ゼノン4つの逆理
[75] 서적 外部世界はいかにして知られうるか
[76] 서적 自然学
[77] 서적 自然学
[78] 서적 自然学
[79] 서적 自然学
[80] 서적 自然学
[81] 서적 自然学
[82] 서적 自然学
[83] 서적 自然学
[84] 서적 大論理学
[85] 서적 神秘主義と論理
[86] 논문
[87] 서적 物質と記憶 講談社
[88] 서적 ジレンマ 日常言語の哲学 勁草書房
[89] 서적 時間と自我 青土社
[90] 서적 時間と存在 青土社
[91] 서적 時間と存在
[92] 서적
[93] 논문 Achilles and the Tortoise
[94] 서적 他者の声 実在の声 産業図書
[95] 논문 アキレスと亀:なぜ追いつく必要がないのか 日本科学哲学会
[96] 서적 哲学の根本問題 中央公論
[97] 서적 時間のパラドックス 中央公論
[98] 논문 An Epistemological Use of Nonstandard Analysis to Answer Zeno's Objections Against Motion
[99] 잡지 ゼノンのパラドックスを解く
[100] 잡지 始原としてのギリシャ 青土社
[101] 서적 Modern Science and Zeno's Paradoxes Allen & Unwin
[102] 서적 Zeno's Paradoxes Hackett Pub Co Inc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