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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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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우어 1은 1907년 독일 마우어 카운티의 한 모래 광산에서 발견된 사람의 아래턱뼈 화석으로, 하이델베르크인의 표본이다. 발견 당시에는 두 조각으로 부러졌으며, 턱뼈의 크기가 크고 턱 끝이 돌출되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 2010년, 화석에 붙은 모래 알갱이의 연대 측정 결과, 약 60만 9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고인류학자들은 마우어 1을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으로 보거나,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의 공동 조상에서 분기된 별도의 종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하이델베르크인이 살았던 지역은 숲이 울창하고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환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발견

1907년 독일 마우어의 모래 채석장에서 하이델베르크인의 아래턱뼈 화석(마우어 1)이 발견되었다. 이 화석은 오토 쇠텐작에 의해 연구되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명명되었다.

1924년 마우어 모래 광산에서는 하이델베르크인이 사용한 도구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고, 1933년에는 이마뼈 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2. 1. 발견 경위

1907년 10월 21일, 독일 마우어 인근 그라펜라인의 모래 광산에서 노동자 다니엘 하트만이 지하 24.63m 지점에서 사람의 아래턱뼈 화석을 발견했다.[28]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오토 쇠텐작은 이전부터 인부들에게 화석 발견 가능성을 알리고 주의를 당부해 왔다. 쇠텐작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자주 광산에 들러 노동자들에게 사람 뼈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화석은 발굴될 당시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두 조각으로 부러졌고, 왼쪽 부분은 유실되어 찾지 못했다. 오른쪽 턱뼈에는 송곳니어금니 위, 그리고 주위에 거친 모래가 달라붙어 있었다. 모래의 주성분은 석회암이었고, 길이 6cm, 넓이 4cm 정도의 크기로 화석의 앞어금니 위와 뒷어금니의 왼쪽 측면을 덮고 있었다.[29]

모래 광산 측은 쇠텐작과 계약을 맺고 있었기에 화석을 발견하자마자 연락을 취했다. 쇠텐작은 이 화석을 인수받아 다음 해 가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아래턱뼈〉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1907년 11월 19일, 모래 광산의 대표 요제프 뢰쉬는 화석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기증했다.[30] 마우어 1로 불리게 된 아래턱뼈는 오늘날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자연사 소장품 가운데 가장 귀중한 대상"으로 대학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 남아 있다.[31]

3. 화석에 대한 설명

1908년 오토 쇠텐삭은 발견된 아래턱뼈 화석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여 화석 인류을 분류하고 기재하였다. 쇠텐삭은 자신의 지도 교수였던 헤르만 클라치의 승인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음을 논문에 명시하였다.[32]

쇠텐삭은 첫 논문에서 화석의 치아가 턱뼈에 비해 너무 작아 불균형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특징이 현생 인류와 대비되며, 진화 과정에 있었던 과거 인류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결론지었다.[33]

1907년 10월 21일, 마우어 지역의 분산 농지인 그라펜라인 모래 광산에서 노동자 다니엘 하트만이 24.63m 깊이에서 하악골(아래턱뼈)을 발견했다.[4] 쇠텐삭은 20년 전 같은 장소에서 보존 상태가 좋은 털매머드 두개골을 발견한 후, 광산 노동자들에게 화석을 찾도록 독려해왔다. 그는 정기적으로 모래 광산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에게 인간 뼈의 특징을 가르쳤다.[4]

하악골은 발굴 과정에서 부서져 왼쪽 부분 조각이 유실되었다. 송곳니어금니 주변에는 굵은 모래가 시멘트처럼 굳어 있었는데, 이는 마우어 화석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석회암 덩어리가 하악골 왼쪽의 소구치와 두 개의 앞쪽 어금니 위 모래 껍질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5]

모래 광산 계약자는 즉시 쇠텐삭에게 발견 사실을 알렸고, 쇠텐작은 현장과 화석을 조사하고 기록했다. 이듬해 가을, 쇠텐삭은 "하이델베르크 근처 마우어 모래에서 발견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하악골"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07년 11월 19일, 쇠텐삭은 광산 계약자 요제프 뢰쉬가 이 표본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기증했다고 밝혔다.[6] 이 하악골은 현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대학의 자연사 컬렉션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7]

마우어 모래 광산에서는 호른슈타인 유물(1924년)과 전두골 조각(1933년)이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를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도구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쇠텐삭은 타웅 아이와 같은 초기 호미니드 화석과는 달리, 마우어 하악골이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보다는 현생 인류에 더 가깝다고 보았다. 그는 하악골을 ''호모'' 속에 포함시키고, 턱이 없는 특징을 근거로 ''하이델베르겐시스''라는 새로운 종을 정의했다. 쇠텐삭은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인류의 진화를 옹호했으며, 마우어 하악골을 네안데르탈인 이전 시기의 선-네안데르탈인으로 분류했다.

3. 1. 해부학적 특징

쇠텐삭은 화석의 치아가 턱뼈에 비해 작아 불균형을 이루지만, 송곳니가 다른 치아와 비교했을 때 더 강하게 튀어나오지 않아 현생 인류와 유사한 치열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9] 턱뼈는 크고 튼튼하며, 현생인류와 달리 턱 끝이 돌출되지 않았다.[9] 사랑니 뒤에 네 번째 어금니가 발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턱뼈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10] 사망 당시 연령은 20 - 30세 사이로 추정된다.[10]

4. 연대 측정

2007년에 촬영한 광산 가장자리의 퇴적층


마우어 1 화석이 발견된 독일 마우어의 모래 광산은 1930년에 고갈되었고, 이후 경작지로 쓰이다가 1982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34] 이 때문에 실제 발견 장소를 특정하기 어려워졌고, 발견 지층을 대상으로 한 절대 연도 측정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층서학적 방법을 통해 화석층의 연대를 추정하고자 여러 번 시도하였다.

4. 1. 초기 연대 측정

오토 쇠텐삭은 논문에서 화석이 발견된 층을 "칼슘의 탄산화로 인해 약간 굳어진 자갈층이 무너져 드러난 곳으로, 염산과 약하게 반응하는 매우 얇은 점토층"이라고만 서술하였다.[35] 쇠텐삭은 지층에 포함된 포유류와 고동 화석을 참조하여 지질 시대를 플리오세라고 추정하였으나,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 최대 수백만 년에서 최소 78만 년 전 사이를 오가는 매우 불분명한 것이었다.

2007년 마우어 1 발견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간행물에는 정확한 연대 측정을 할 만한 자료가 없다는 불평이 담겨 있었다.[36] 모래 광산 제4 퇴적층의 지질 연대가 47만 4천 년에서 62만 1천 년 전 사이라는 점을 토대로 60만 년[37] 또는 50만 년[38]과 같은 엇갈리는 추정이 이어졌다.

2010년 11월, 화석에 들러붙은 모래 알갱이에 적외선을 조사하는 기법으로 전자 스핀과 우라늄-납 비율을 정밀히 측정하여 화석의 연대를 609,000 ± 40,000년 전으로 추정한 결과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되었다.[39]

4. 2. 최근 연대 측정

2010년 11월, 화석에 붙은 모래 알갱이에 적외선을 조사하는 기법으로 전자 스핀과 우라늄 - 납 비율을 정밀히 측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화석의 연대를 609,000 ± 40,000년 전으로 추정한 결과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되었다.[39][2]

5. 현생 인류와의 관계

마우어 1은 현생 인류와 직접적인 조상 관계는 아니다. 모든 고인류학자들은 이 점에 동의한다. 마우어 1이 살았던 시기에는 유럽에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약 4만 년에서 3만 년 전에 유럽에 진입했으며, 이는 하이델베르크인 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보다도 늦은 시기였다.[43]

5. 1. 분류학적 논쟁

마우어 1의 측면 (복제품)


마우어 1 아래턱뼈 화석은 하이델베르크인의 표본 모형이다. "해부학적으로 보아 네안데르탈인보다 분명히 더 원시적이지만, 조화롭게 둥근 치열궁과 완전히 열지어 있는 이빨은 ... 이미 일반적인 기준에서 인간이다."[40]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하이델베르크인을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별도의 종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여긴다. 진화 순서를 보면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의 공동 조상 사이 어느 지점에서 분기되었을 것이다.[41]

다른 연구자들은 하이델베르크인이 호모 에렉투스와 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하이델베르크인을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으로 보며, 마우어 1을 호모 에렉투스 후기 유럽형 개체로 분류한다.[42]

분류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고인류학자 모두 하이델베르크인이 인류의 직계 조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에 유럽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의 유럽 진입은 약 4만 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 인류는 하이델베르크인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보다도 유럽 진입이 늦었다.[43]

5. 2. 진화 계통

마우어 1 아래턱뼈 화석은 하이델베르크인의 표본 모형이다. "해부학적으로 보아 네안데르탈인보다 분명히 더 원시적이지만, 조화롭게 둥근 치열궁과 완전히 열지어 있는 이빨은 ... 이미 일반적인 기준에서 인간이다."[40] 고인류학자 가운데 일부는 하이델베르크인을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별도의 종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여긴다. 진화 순서를 보면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현생 인류의 공동 조상 사이 어느 지점에서 분기되었을 것이다.[41]

한편 다른 연구자들은 하이델베르크인이 호모 에렉투스와 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하이델베르크인은 호모 에렉투스의 아종이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아예 마우어 1을 호모 에렉투스 후기 유럽형 개체로 분류한다.[42]

분류에 대한 견해가 다르긴 하지만, 고인류학자 모두 하이델베르크인이 인류의 직계 조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에 유럽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유럽 진입은 약 4만 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생 인류는 하이델베르크인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보다도 유럽 진입이 늦었다.[43]

6. 거주지

마우어 1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정확한 연대 측정이 어려워, 당시 환경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44] 1991년 그라펜라인의 퇴역한 모래 광산에서 코어 드릴링이 진행되었고,[44] 1995년부터 다른 화석을 찾기 위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발견된 생쥐의 치아는 연대 측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45]

6. 1. 당시 환경 추정

크로머 간빙기에 대한 식생 조사에 따르면, 하이델베르크인이 살았던 시기는 강 계곡을 따라 숲이 울창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지역에는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등이 자랐다.[45][46]

같은 간빙기에 속하는 다른 층에서 발견된 동물 화석들을 통해 당시 생태계를 추측할 수 있다. 2007년 디 차이트는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인이 살던 당시의 디오라마를 구성하였다. 날다람쥐, 노루, 엘크, 멧돼지가 뛰어다니고, 두더지뒤쥐가 땅을 파고 다녔으며, 비버가 옛 네카어강의 물줄기에 댐을 만들었다. 산토끼가 지나가고, 들이 탁 트인 들판을 달렸다. 당시 이 지역에 살았던 코끼리, 털코뿔소, 하마도 하이델베르크인에게 고기를 제공했을 수 있다. 그들이 이런 거대 동물을 사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늑대, 표범, 검치호랑이, 하이에나 따위에게 쫓겨 다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46]

참조

[1] 서적 Der Unterkiefer des Homo Heidelbergensis aus den Sanden von Mauer bei Heidelberg. Ein Beitrag zur Paläontologie des Menschen. Verlag von Wilhelm Engelmann 1908
[2] 논문 Radiometric dating of the type-site for Homo heidelbergensis at Mauer, Germany. 2010
[3]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Konrad Theiss Verlag 2007
[4] 문서 Schoetensack, p. 23.
[5] 인용 Schoetensack, p. 23. 'Die Entfernung der Kalkkrusten führte später zu weiteren Beschädigungen, u.a. platzten bei einigen Zähnen winzige Splitter des Zahnschmelzes ab. Als Folge einer unsachgemäßen Auslagerung gingen im Zweiten Weltkrieg zudem die zwei linken Prämolaren verloren' (Subsequent removal of the encrusted limestone caused further damage: among other things, tiny pieces of enamel split off from some of the teeth. Also, the two left premolars were lost as a result of inexpert storage in the Second World War) (per Dietrich Wegner: Der Fund. In: Günther A. Wagner et al., p. 42).
[6] 문서 Schoetensack, S. 24.
[7] 서적 Der Fund.
[8] 인용 Dietrich Wegner: Der Fund. In: Günther A. Wagner u. a., p. 38. – Worauf Hermann Klaatsch in einem Nachruf auf Schoetensack hinweist: "Wie in Fachkreisen fast allgemein bekannt, ist die anatomische Bearbeitung des Heidelberger Unterkiefers sachlich und textlich in der Hauptsache mein Werk. (…) Die einzige kleine Trübung unseres sonst idealen Freundschaftsbundes war es, daß Schoetensack sich nicht dazu verstehen wollte, auf dem Titel seiner Monographie die Mitarbeiterschaft bekannt zu geben." Klaatsch erwähnt an gleicher Stelle, dass die genaue Beschreibung der Zähne ebenfalls nicht von Schoetensack, sondern von Gottlieb Port erarbeitet worden sei.
[9] 문서 Schoetensack, p. 25–26.
[10] 인용 Johanna Kontny u. a.: Reisetagebuch eines Fossils. In: Günther A. Wagner u. a., p. 48. – Durch intensives Kauen wird der Zahnschmelz allmählich abgetragen und das Dentin freigelegt; daher kann das Ausmaß dieses Abriebs als Anhaltspunkt für die Abschätzung des Lebensalters genutzt werden.
[11] 서적 100 Jahre Homo heidelbergensis aus Mauer.
[12] 문서 Schoetensack, S. 34.
[13] 문서 Schoetensack, p. 44.
[14] 문서 Schoetensack, S. 4.
[15]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16] 웹사이트 gemeinde-mauer.de http://www.gemeinde-[...] 2012-11-26
[17] 설명 Diese Zeitspanne bezieht sich auf die Schicht Sauerstoff-Isotopenstufe 13 der Cromer-Warmzeit, die auf ein Alter von 528.000 bis 474.000 Jahren datiert wird.
[18] 서적 Reisetagebuch eines Fossils.
[19] 논문 Comment: What makes a modern human. 2012
[20] 웹사이트 Sammlung des Instituts für Geowissenschaften http://www.geow.uni-[...]
[21] 설명 In Asien haben möglicherweise noch bis vor 12.000 Jahren einige Nachfahren dieser frühen Siedelung gelebt; die genaue Zuordnung der Funde von Homo floresiensis ist allerdings derzeit noch umstritten.
[22] 서적 100 Jahre Homo heidelbergensis aus Mauer.
[23]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24] 뉴스 Der multiple Adam. http://www.zeit.de/2[...] 2007-10-18
[25] 서적 Der Unterkiefer des Homo Heidelbergensis aus den Sanden von Mauer bei Heidelberg. Ein Beitrag zur Paläontologie des Menschen. Verlag von Wilhelm Engelmann 1908
[26]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Konrad Theiss Verlag 2007
[27] 논문 Radiometric dating of the type-site for Homo heidelbergensis at Mauer, Germany. 2010
[28] 문서 Schoetensack, p. 23.
[29] 인용 Schoetensack, p. 23. 'Die Entfernung der Kalkkrusten führte später zu weiteren Beschädigungen, u.a. platzten bei einigen Zähnen winzige Splitter des Zahnschmelzes ab. Als Folge einer unsachgemäßen Auslagerung gingen im Zweiten Weltkrieg zudem die zwei linken Prämolaren verloren' (Subsequent removal of the encrusted limestone caused further damage: among other things, tiny pieces of enamel split off from some of the teeth. Also, the two left premolars were lost as a result of inexpert storage in the Second World War) (per Dietrich Wegner: Der Fund. In: Günther A. Wagner et al., p. 42).
[30] 문서 Schoetensack, S. 24.
[31] 서적 Der Fund.
[32] 인용 Dietrich Wegner: Der Fund. In: Günther A. Wagner u. a., p. 38. – Worauf Hermann Klaatsch in einem Nachruf auf Schoetensack hinweist: „Wie in Fachkreisen fast allgemein bekannt, ist die anatomische Bearbeitung des Heidelberger Unterkiefers sachlich und textlich in der Hauptsache mein Werk. (…) Die einzige kleine Trübung unseres sonst idealen Freundschaftsbundes war es, daß Schoetensack sich nicht dazu verstehen wollte, auf dem Titel seiner Monographie die Mitarbeiterschaft bekannt zu geben.“ Klaatsch erwähnt an gleicher Stelle, dass die genaue Beschreibung der Zähne ebenfalls nicht von Schoetensack, sondern von Gottlieb Port erarbeitet worden sei.
[33] 문서 Schoetensack, p. 25–26.
[34] 문서 Schoetensack, S. 4.
[35] 문서 Schoetensack, S. 4.
[36]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37] 웹사이트 http://www.gemeinde-[...] 2020-01-18
[38] 문서
[39] 논문 Radiometric dating of the type-site for Homo heidelbergensis at Mauer, Germany
[40] 서적 Reisetagebuch eines Fossils
[41] 논문 Comment: What makes a modern human
[42] 웹사이트 Sammlung des Instituts für Geowissenschaften http://www.geow.uni-[...]
[43] 문서
[44] 서적 100 Jahre Homo heidelbergensis aus Mauer
[45] 서적 Die Tierwelt der Mauerer Waldzeit
[46] 뉴스 Der multiple Adam http://www.zeit.de/2[...] 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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