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골든가이
1. 개요
신주쿠 골든가이는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좁은 골목길에 밀집된 작은 술집 구역이다. 1958년 매춘이 금지된 후 술집 지역으로 발전했으며, 1980년대 야쿠자의 방화 시도와 부동산 개발 위협을 겪었지만 주민들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 작가, 저널리스트, 예술가 등 다양한 문화인들이 모여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독특한 건축 양식과 다양한 테마의 술집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촬영 규칙이 존재하며,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서 일하거나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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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초 -
가부키초 빌딩 화재
가부키초 빌딩 화재는 2001년 9월 1일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한 건물에서 발생하여 4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한 대형 화재 사고이며, 유독 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고, 일본 소방법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
가부키초 -
세이부신주쿠역
세이부신주쿠역은 1952년 개업한 도쿄도 신주쿠구 소재 세이부 철도 신주쿠선의 역으로, 신주쿠역 동쪽 인근에 위치하며 세이부 철도 내 세 번째로 이용객이 많고, 3면 3선의 두단식 고가 승강장과 세이부 신주쿠 PePe, 신주쿠 프린스 호텔과 연결되어 있다. -
일본의 환락가 -
롯폰기
롯폰기는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으로, 에도 시대 작은 마을에서 외국인 거주 지역과 유흥가를 거쳐 현재는 고급 주택가, 국제 기업, 문화 시설, 유흥가가 공존하는 국제적인 지역으로 발전했지만, 사회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
일본의 환락가 -
시부야구
시부야구는 일본 도쿄도에 위치한 특별구로,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하며,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하치코 동상 등이 대표적인 명소이고, 2015년에는 동성 파트너십 증명서를 발급하는 일본 최초의 지자체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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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골든가이는 신주쿠 골든가이 상점가 진흥 조합과 신주쿠 산코 상점가 진흥 조합의 두 조합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약 2000m2 정도의 좁은 구획에 저층의 목구조 연립주택이 늘어서 있으며, 200개 이상의 작은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1976년 나카가미 겐지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을, 사키 류조가 나오키 상을 수상하면서 신주쿠 골든가이는 전국적으로 문화인들이 모이는 거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만화가 아카츠카 후지오, 토미나가 이치로, 타키타 유우, 하라 타이라, 화가 오카모토 타로, 일러스트레이터 구로다 세이타로, 디자이너 나가토모 케이스케, 공예가 유미즈 토키오, 화도 아다치 토시코, 작곡가 타케미츠 토루, 시인 시미즈 아키라, 소설가 이로카와 타케히로, 카이코 켄, 타나카 코미마사, 하세가와 시로, 단 키리쿠, 시모다 케이쥬, 기타가와 겐조, 고키 히로유키, 오사와 아리마사, 야노 토오루, 요시유키 준노스케, 야스오카 쇼타로, 엔도 슈사쿠, 세토우치 자쿠초, 노사카 아키유키,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 와카마츠 코지, 진다이 타츠미, 촬영 감독 히메다 마사히사, 연출가 카라 주로, 배우 스가와라 분타, 하라다 요시오, 이시바시 렌지, 마츠다 유사쿠, 미도리 마코, 타카다 쥰지, 미쿠니 렌타로, 에토 준, 낙어 초대 린야 삼페이, 가수 나기라 켄이치, 프로듀서 사토 고, 평론가 오야 소이치, 메구로 코지, 씨름 선수 와시우야마 요시카즈 등이 이곳을 찾았다.
저널리스트 오카도메 야스노리, 타치바나 타카시, 성우 시바타 히데카츠, 극단 츠바키구미 소토바야마 후미아키, 전위 예술가 나가스 히로오, 코미디언 나이토 첸 등이 경영하는 바도 있었다.
실업가 타나베 시게이치, 노동 운동가 야마기시 아키라 등 정계와 재계 관계자도 많이 다녔으며, 정치 활동가 토고 켄이 경영하는 바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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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형성 과정
신주쿠 골든가이는 태평양 전쟁 종전 후 혼란기에 생겨난 암시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도쿄도 요도바시구・요츠야구(현재의 신주쿠구) 주변에는 암시장이 많았고, 신주쿠역 동쪽에는 간토 오츠조가 운영하는 '신주쿠 마켓'이 있었다. 이후 신주쿠 마켓은 포장마차 중심의 유흥가로 바뀌어 '류구 마트'로 불렸다.
1949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암시장 철폐를 지시하자, 도쿄도청과 경시청은 각 점포에 이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암시장의 각 점포는 신주쿠구 산코초(현재의 가부키초 1초메와 신주쿠 5초메 일부) 일대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곳이 나중에 신주쿠 골든가이로 불리게 된다.
골든 가이는 1958년 매춘이 불법화되기 전까지 매춘으로 유명했다. 그 후 술집 지역으로 발전했으며, 일부 술집은 196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야쿠자가 도쿄의 많은 건물에 불을 질러 개발업자들이 토지를 매입하려 했지만, 골든 가이는 지지자들이 밤에 교대로 구역을 지켜 살아남았다.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 시기에는 토지 매입이 심했지만, 음식점 점주 등이 '신주쿠 하나조노 골든가이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토지 매입 업자와 도시 재개발에 반대했다. 1990년대 거품 붕괴로 토지 매입은 종식되었지만, 토지 매입에 굴복하여 폐점한 빈 점포가 방치되면서 한때 고스트 타운처럼 되기도 했다.
이후 음식점 조합을 중심으로 거리 활성화 및 인프라 정비를 추진했다. 2000년대 들어 신규 출점이 이어지고 손님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
2.2. 매춘 금지와 술집 거리로의 변화
골든 가이는 1958년 매춘방지법 시행으로 매춘이 불법화되기 전까지 매춘으로 유명했다. 그 이후 술집 지역으로 발전했으며, 적어도 일부 술집은 1960년대부터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에는 야쿠자에 의해 도쿄의 많은 건물에 방화가 발생하여 개발업자들이 토지를 매입하려 했지만, 골든 가이는 지지자들이 밤에 교대로 구역을 지켜 살아남았다.
신주쿠 골든 가이의 기원은 태평양 전쟁 종전 후 혼란기에 생겨난 암시장을 시초로 한다. 당시 도쿄도 요도바시구·요츠야구(모두 현재의 신주쿠구) 주변에는 암시장이 즐비했으며, 신주쿠역 동쪽에는 간토 오츠조에 의한 "신주쿠 마켓"이 펼쳐져 있었다. 이후 신주쿠 마켓은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한 유흥가로 변모하여 "류구 마트"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949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암시장 철폐를 지시하면서, 도쿄도청과 경시청은 각 점포에 대해 다음 해까지 이전을 명령했다. 그에 따라 암시장의 각 점포는 대체지로서 신주쿠구 산코초(현재의 가부키초 1초메와 신주쿠 5초메의 일부) 일대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이 일대가 후에 신주쿠 골든 가이라고 불리게 된다.
당시의 산코초는 유흥가에서 떨어진 곳이었으며, "요로메키 골목"이라고 불리던 일대의 대부분의 가게가 음식점 명목으로 적선과 다름없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풍속영업법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영업 때문에 속칭 청선으로 불렸다. 가부키초 부근에는 이 외에도 청선이 모여 있어, 도내에서도 유수의 매춘가였다. 그러나 1958년 매춘방지법 시행으로 청선 영업을 하던 가게는 모두 폐업했다.
2.3. 문화 예술의 중심지
신주쿠 골든가이는 예술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며, 음악가, 예술가, 감독, 작가, 학자,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바는 단골 손님 위주로 운영되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영어 표지판을 설치하거나 외국인 바텐더를 고용하기도 한다.
각 바는 재즈, R&B, 가라오케, 펑크 록, 플라멩코 등 특정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벽에는 영화, 콘서트 포스터 등이 붙어 있다. 바둑,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 경마 등 특정 관심사를 가진 손님들을 위한 바도 있다.
과거에는 문단 바 등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많았고, 작가, 편집자, 영화 감독, 배우 등 문화인들이 자주 모여 도쿄에서 서브컬처와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발신지 중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버블 경제 시기에는 도시 재개발 압력이 있었지만, "신주쿠 하나조노 골든가이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반대했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활기를 되찾고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1976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을 수상한 소설가 나카가미 겐지와 나오키 상을 수상한 논픽션 작가 사키 류조는 모두 신주쿠 골든가이의 단골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문화인이 되려면 골든가이에 단골 가게를 갖는 것이 필수"라고 할 정도로 문화인들이 모이는 거리로 유명해졌다.
만화가 아카츠카 후지오, 오카모토 타로, 시바 료타로,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 배우 마츠다 유사쿠, 빔 벤더스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저널리스트 오카도메 야스노리, 타치바나 타카시, 성우 시바타 히데카츠 등이 운영하는 바도 있었고, 가인 다와라 마치, 소설가 하세 세이슈 등은 골든가이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유명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인들이 모이면서 신주쿠 골든가이는 자연스럽게 서브컬처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치계, 재계 인사들도 자주 찾았으며, 정치 활동가 토고 켄이 운영하는 바도 있었다.
2.4. 부동산 개발 위협과 주민들의 저항
1980년대 버블 경제로 인해 일본의 지가(토지 가격)가 급등하면서, 신주쿠 골든가이에도 재개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땅 투기꾼(지아게야)들이 토지 매수를 노리고 나타나, 신주쿠 골든가이 일대는 격렬한 지아게에 시달렸다. 기존 점포 주인들은 지아게에 반대했고, 양측의 대립은 심각해졌다. 1986년 의문의 화재가 발생하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점포 주인들은 "신주쿠 화원 골든가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 지아게와 재개발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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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골든가이는 토지와 건물 권리 관계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지키는 모임'은 법무국을 통해 토지 및 가옥 권리자를 한 명씩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들은 꾸준히 반대 활동을 이어갔으며, 연말에는 산책로에서 떡 만들기 대회를 열고 술을 대접하며 "신주쿠 골든가이는 건강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한편, '지키는 모임' 대표가 운영하는 가게는 이후 여러 차례 의문의 화재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불탄 자리에서 의자를 놓고 노점을 열어, 타지 않은 냉장고 속 맥주와 안주만으로 영업을 재개하자, 다른 가게에서 음식과 술을 잇따라 제공했고, 화재 위문을 온 단골손님과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모여 주인을 격려하는 연회가 열렸다고 한다.
2.5. 재생과 새로운 번영
1980년대 버블 경제로 인해 일본의 지価(지가, 토지가격)가 급등하면서 신주쿠 골든가이에도 재개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토지 매수를 노리는 지あげ屋(지아게야, 땅 투기꾼)가 나타나 격렬한 지아게에 시달렸다. 기존 점포 주인들은 지아게에 반대했고, 1986년에는 의문의 화재 소동이 발생했다. 위기감을 느낀 점포 주인들은 "신주쿠 화원 골든가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지아게와 재개발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법무국을 통해 토지 및 가옥 권리자를 확인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연말에는 "떡 만들기 대회"를 개최하고 술을 대접하며 "신주쿠 골든가이는 건강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지키는 모임 대표의 가게는 여러 번 의문의 화재 피해를 입었지만, 노점을 열어 영업을 재개하자 다른 가게에서 음식과 술을 헌사했고, 단골 손님과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오너를 격려하는 연회가 열렸다.
이 거리에는 1950년대의 분위기를 남기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버블 붕괴로 지아게는 끝났지만, 문을 닫은 가게들이 방치되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손님이 줄어 고스트 타운이 되었다. 그러나 가게 주인들이 신주쿠구에 도로, 하수도, 가스 등 인프라 정비를 신청하여 구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이 새로운 가게를 내면서 빈 점포가 줄어들었다. 2010년대에는 "벚꽃 축제", "신주쿠 골든가이 납량 감사제"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여 번화함을 되찾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 무렵 신주쿠 골든가이를 찾은 주요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 | 인물 | |
|---|---|
| 만화가 | 이노우에 카즈로, 아베 야로우 |
| 작곡가 | 사와다 칸 |
| 가인(시인) | 토리이 |
| 소설가 | 히구치 타케히로, 야즈키 슈사쿠, 히라야마 유메아키, 야나기 미네리, 양석일, 이와이 시마코 |
| 번역가 | 야나기시타 키이치로 |
| 평론가 | 마치야마 토모히로 |
| 편집자 | 나카세 유카리 |
| 영화 감독 | 카네코 슈스케, 소노 시온, 이마오카 신지, 야마시타 노부히로, 카를로스 베르무트 |
| 애니메이션 연출가 | 키시 세이지 |
| 각본가 | 무카이 코스케, 우에스 마코토 |
| 배우 | 사노 시로, 오스기 렌, 사이토 타쿠미, 마치다 케이타 |
| 아티스트 | 비비안 사토 |
| 아트 디렉터 | 타카하시 요시키 |
| 게임 크리에이터 | 시바오 히데요리, 토키타 타카시 |
| 프로그래머 | 후지카와 신이치 |
| 음악가 | 나카하라 마사야 |
| 개그맨 | 스이도바시 박사 |
| 성우 | 후루카와 토시오, 오가타 메구미, 오키아유 료타로, 야마다 신이치, 카미야 히로시 |
| 가수 | 코무아이, 오키테 포르셰 |
| 아이돌 | 모가미 모가 |
| 프로듀서 | 오오츠키 토시미치 |
| 신문 배달원 | 신주쿠 타이거 |
영화 감독 히로사키 테츠야는 영화 상영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문화인에 의한 이벤트도 열렸다.
신주쿠 골든가이의 바에서 일했던 이 료지(소설가), 노미 타카아키(배우), 미즈노 시즈(아이돌), 코하루(아코디언 연주자) 등도 알려져 있다. 경찰청 관료 사카모토 마사루, 문부성 관료 테라와키 켄, 마에카와 키헤이 등도 단골로 알려져 있다.
2016년 4월 12일, 신주쿠 골든가이 내 목조 2층 건물이 불타는 화재가 발생하여 점포 겸 주택 등 3채, 약 300m2가 탔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지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나 노후화되어 있었다. 화재 당일 밤, 일부 가게는 평소처럼 영업했지만, "탄 냄새"의 영향으로 영업을 중단하는 가게도 있었다. 4월 13일, 경시청은 방범 카메라 영상을 통해 노숙자 남성을 건조물 침입 혐의로 체포했다. 화재 경보기는 개조 공사로 인해 철거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2017년 5월 9일, 도쿄 지방 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현주거물 등 방화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된 남성은 방화를 부인하고 건물 침입은 인정했다. 7월 20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 판결을 받았다. 코마다 히데카즈 재판장은 "건물에 침입한 시점에는 이상이 없었고, 다른 인물에 의한 방화 가능성은 없다"라며 방화 무죄 주장을 기각하고, 290개 이상의 음식점이 늘어선 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가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3. 특징
신주쿠 골든가이는 신주쿠역 동쪽 출구 인근, 신주쿠구청과 하나조노 신사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200개 이상의 작은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좁은 구획에 저층 목구조 연립주택이 늘어서 있으며, 과거에는 문단 바 등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많아 작가, 편집자, 영화 감독, 배우 등 문화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도쿄에서 서브컬처와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발신지 중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 시기에는 토지 매입이 성행했지만, 지역 주민들이 "신주쿠 하나조노 골든가이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토지 매입 업자와 도시 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토지 매입은 종식되었으나, 빈 점포가 방치되고 손님이 끊기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음식점 조합을 중심으로 거리 활성화 및 인프라 정비가 추진되었고, 신규 출점이 이어지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구획 내 골목길에는 "G1 거리", "G2 거리", "밝은 하나조노 1번가", "밝은 하나조노 3번가", "밝은 하나조노 5번가", "밝은 하나조노 8번가", "마네키 거리"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원래 G1 거리와 G2 거리만이 신주쿠 골든가이로 불렸으나, 현재는 구획 일대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된다.
밝은 하나조노 1번가 북쪽 점포는 신주쿠 산코 상점가 진흥 조합, 남쪽 점포는 신주쿠 골든가이 상점가 진흥 조합을 조직하고 있다. 신주쿠 골든가이 구획 전체는 하나조노 신사의 씨족 지역으로, 하나조노 신사의 신찰이나 쿠마데를 모시는 점포가 많다.
3.1. 독특한 건축 양식
골든가이는 신주쿠역 동쪽 출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신주쿠구청과 하나조노 신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골든가이가 건축학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도시의 많은 부분이 현재의 골든가이와 비슷했던, 특히 좁은 골목과 작은 2층 건물 형태를 가졌던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도쿄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변 지역은 대부분 재개발되었다. 도로 계획은 훨씬 넓은 도로와 더 큰 부지를 만들기 위해 바뀌었고, 건물 자체도 이제 훨씬 더 크고 높은, 또는 중간 높이의 개발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일본의 "경제 기적" 이전의 도쿄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로 골든가이를 남겨두었다.
일반적으로 건물들은 폭이 몇 피트에 불과하며, 옆집과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게 지어졌다. 대부분 2층 건물로, 1층에는 작은 바가 있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2층에는 또 다른 바나 작은 플랫이 있다. 바는 어느 곳도 크지 않다. 어떤 곳은 너무 작아서 한 번에 5명 정도의 손님만 수용할 수 있다. 건물은 대체로 허름하고, 골목길은 희미하게 빛나서 낡고 초라한 외관을 보인다. 그러나 골든가이는 술을 마시기에 저렴한 곳이 아니며,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대개 부유한 편이다.
신주쿠 골든 스트리트 극장은 골든가이 한쪽에 있는 작은 극장으로, 주로 코미디 쇼를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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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조노 신사 서쪽 맞은편에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어진 목조 연립 주택 형태의 점포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다.
3.2. 다양한 테마의 술집들
신주쿠 골든가이의 술집들은 특히 손님들의 예술적 성향으로 유명하다. 골든가이는 음악가, 예술가, 감독, 작가, 학자, 배우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만나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술집들은 기존 단골의 소개를 받아야만 하는 단골 손님만 받지만, 다른 많은 곳은 일반 손님도 환영하며, 일부는 영어로 된 표지판과 가격표를 게시하여 해외 관광객 유치에 힘쓰기도 한다. 일부 바텐더는 외국인이다.
많은 술집들은 재즈, R&B, 가라오케, 펑크 록, 플라멩코 등 특정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낡은 벽에는 영화, 필름, 콘서트 포스터가 자유롭게 붙어있다. 다른 곳은 바둑,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 경마 등 특정 관심사를 가진 손님을 위한 곳이다. 대부분의 술집들은 오후 9시 또는 10시까지 문을 열지 않으므로, 낮과 초저녁에는 매우 조용하다.
3.3. 촬영 규칙
하나조노 신사 서쪽 맞은편에 위치한 신주쿠 골든가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어진 목조 연립 주택 형태의 점포들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는 곳이다. 신주쿠 골든가이 내 골목길은 모두 사도(私道)이기 때문에, 노상에서 무단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신주쿠 골든가이 상점가 진흥 조합과 신주쿠 산코 상점가 진흥 조합 구역 내에서는 촬영 시 사전 신청 후 완장 착용 등 소정의 절차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사유지인 노상에서 무허가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조합 가맹 점포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스냅 사진이나 기념 사진 등을 직접 촬영받는 경우에는 신청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신청이 필요하다. 또한, 노상이 아닌 점포 내에서의 촬영은 점포 측의 허가를 얻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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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화적 영향
신주쿠 골든가이는 과거 문단 바 등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많았고, 작가, 편집자, 영화 감독, 배우 등 문화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도쿄에서 서브컬처와 언더그라운드 예술의 발신지 중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 시기에는 토지 매입에 시달렸지만, 음식점 점주 등이 "신주쿠 하나조노 골든가이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여 토지 매입 업자와 도시 재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1990년대 거품 붕괴로 토지 매입은 종식되었지만, 빈 점포가 방치되면서 한때 고스트 타운처럼 되기도 했다.
이후 음식점 조합을 중심으로 거리 활성화 및 인프라 정비가 추진되었고, 2000년대 들어 신규 출점이 이어지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신주쿠 골든가이는 다양한 문학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는데,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등장인물이 골든가이의 바를 경영하는 등의 내용으로 나타난다.
* 辻真先일본어 저 『명견 루팡의 명추리』 - '돌풍'을 모델로 한 바가 등장한다.
* 半村良일본어 외 저 『신주쿠 미스터리 걸작선』
* 斎藤澪일본어 저 『울면, 신부 인형』
* 村松友視일본어 저 『스님 돌려보기』
* 加門新也일본어 저 『도쿄 요괴』
* 山崎洋子일본어 저 『장미의 사랑 노래』
* 西村賢일본어 저 『빙고』
* 무라마츠 토모미 저 『격렬한 꿈』
* 森村誠一일본어 저 『사막의 역』
* 山崎マキコ일본어 저 『도쿄 패배견 광시곡』
* 石井慎二일본어 저 『도쿄 야화』
* 니시무라 겐 저 『겁화 1』
* 明川哲也일본어 저 『세상의 끝에서 태어나는 빛』
* 小関直樹일본어 저 『신인 마케터 소녀 사무라이 분투기』
* 今野敏일본어 저 『용의 우는 거리』
* 쓰지 마사키 저 『잔조』
* 相場英雄일본어 저 『복수의 피』
* 馳星周일본어 저 『골든가이 콜링』
5. 골든가이에서 일했던 인물
다음은 신주쿠 골든가이에서 일했던 인물 목록입니다. 가나다 순으로 정렬되어 있으며, 괄호 안에는 대표적인 직업을, 하이픈 뒤에는 신주쿠 골든가이에서의 주요 직책을 기재했습니다. 현직, 전직, 겸직 등 다양한 경우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현재 시점에서는 일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직업 | 골든가이에서의 직책 |
|---|---|---|
| 아소 케이타로 | 배우 | 「베르쥬락」 경영 |
| 이 리앙지 | 소설가 | 「나베산」 근무 |
| 이시구로 겐고 | 저술가·편집자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이토 키요미 | 배우 | 「은하계」 경영 |
| 이노우에 카즈로 | 만화가 | 「AZITO」 근무 |
| 이하라 케이스케 | 배우 | 「베르쥬락」 경영 |
| 우치우미 켄지 | 성우 | 「돌풍」 근무 |
| 나가스 히로오 | 전위 예술가 | 「발광의 밤」 경영 |
| 오카도메 야스노리 | 저널리스트 | 「매거진 하우스」 경영 |
| 오카모토 "MOBY" 타쿠야 | 드러머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오쿠야마 아키히코 | 디자이너 | 「오쿠테이」 경영 |
| 카이 | 코미디언 | 「요시다 상점」 근무 |
| 카시와바라 신페이 | 화가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카네코 슈스케 | 영화 감독 | 「칸비아레」 임시 근무 |
| 키타무라 아라타 | 연출가 | 「은하계」 경영 |
| 갤런티크 카즈에 | 가수 | 「야간 비행」 경영 |
| 키리토 리사쿠 | 평론가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구룡 조 | 문필가 | 「해피」 임시 근무 |
| 쿠사노 나츠카 | 영화 감독 | 「진돈」 근무 |
| KOO | 트럼펫 연주자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코하루 | 아코디언 연주자 | 「소와레」 근무 |
| 사카모토 쨩 | 코미디언 | 「소와레」 근무 |
| 사치 | 가수 | 「스미레의 창문」 경영 |
| 시바타 히데카츠 | 성우 | 「돌풍」 경영 |
| 스다 신타로 | 사진가 | 「오쿠테이」 근무 |
| 스다 야스나리 | 방송 작가 | 「마츄카 바」 프로듀스 |
| 소가베 케이이치 | 싱어송라이터 | 「무명 찻집」 임시 근무 |
| 타카이치 토모코 | 아이돌 | 「무명 찻집」 근무 |
| 타코 하치로 | 코미디언 | 「크라크라」 도움 |
| 타치바나 타카시 | 저널리스트 | 「가르간츄아」 경영 |
| 다나카 유키 | 배우 | 「GHETTO」 경영 |
| 다와라 마치 | 가인 | 「크라크라」 근무 |
| 츠쿠바 류이치 | 배우 | 「오렌지 왕자」 근무 |
| 토고 켄 | 정치 활동가 | 「토고 켄」 경영 |
| 토고 카타오카 | 만화가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토노야마 타이시 | 배우 | 「토노야마」 경영 |
| 소토바야마 후미아키 | 배우 | 「크라크라」 경영 |
| 토요다 마사요시 | 저널리스트 | 「진돈」 임시 근무 |
| 나이토 친 | 코미디언 | 「심야 플러스 원」 경영 |
| 나카노 료타 | 영화 감독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나카하라 마사야 | 뮤지션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나기사 요코 | 가수 | 「미기시」 경영 |
| 노마치 미네코 | 일러스트레이터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
| 노미 타카아키 | 배우 | 「류민」 근무 |
| 하세 호시슈 | 작가 | 「심야 플러스 원」 근무 |
| 하세 유리코 | 정치인 | 「히쇼」 경영 |
| 후지타 히로시 | 의사 | 「크레마스터」 경영 |
| 호시나 에미 | 각본가·연출가 | 「아르파카」 경영 |
| 미사키 마미 | 성우 | 「바바스타」 경영 |
| 미즈노 시즈 | 아이돌 | 「섀도우」 근무 |
| 미하시 준코 | 사회학자 | 「쥬네」 근무 |
| 야기시타 키이치로 | 번역가 | 「칸비아레」 임시 근무 |
| 유카 | 가수 | 「스미레의 창문」 경영 |
| 라지카루 스즈키 | 일러스트레이터 | 「마츄카 바」 임시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