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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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테케라는 스페인 말라가 주에 위치한 도시로, 말라가 주 내륙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면적은 749.34km2이며, 말라가에서 45km, 코르도바에서 115km 거리에 있다. 고속철도 AVE 남부 회랑선과 고규격 도로 A-45호선, A-92호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말라가 공항, 그라나다 공항, 세비야 공항 등과도 가깝다. 안테케라 분지는 비옥한 농업 지역으로 곡물, 올리브 오일용 올리브, 채소를 생산하며, 푸엔테 데 피에드라 호는 유럽에서 몇 안 되는 홍학 번식지이다. 역사적으로는 선사 시대부터 로마 시대를 거쳐 이슬람 지배를 받았으며, 1410년 카스티야 왕국에 정복되었다. 주요 문화 유산으로는 멩가 돌멘과 비에라 돌멘, 알카사바, 레알 콜레히아타 데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교회 등이 있으며, 자매 도시로 프랑스의 아그드와 멕시코의 오아하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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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케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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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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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안테케라 |
일반 정보 | |
별칭 | 그녀의 사랑을 위하여 |
위치 |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 주 |
면적 | 749.34 km² |
고도 | 575 m |
인구 (2015년 기준) | 41,141명 |
주민 | 안테케라노, 안테케라나 |
정치 | |
시장 | 마누엘 헤수스 바론 리오스 (PP) |
추가 정보 | |
웹사이트 | 안테케라 공식 웹사이트 |
좌표 | 37°01′06″N 4°33′35″W |
2. 지리
안테케라는 말라가에서 북쪽으로 47km 떨어진 A45 고속도로변에 위치하며, 엘 토르칼 산맥과 시에라 데 라 치메네아 산맥 기슭, 해발 575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토르칼 산맥, 북쪽으로는 과달호르세 강으로 둘러싸여 비옥한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교외 북서부에는 염수호인 푸엔테 데 피에드라 호가 있는데, 이곳은 유럽에서 몇 안 되는 홍학의 번식지 중 하나이다. 교외 남부에 있는 토르칼은 석회암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클라이밍 명소이자 자연 보호 구역이다. 교외 북동부에는 연인들의 바위라고 불리는 산이 있는데, 이는 적대하는 부족 출신의 젊은 무어인 커플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이 전설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로버트 사우디의 작품 ''라일라와 마누엘''로 각색되었으며, 이슬람교도 소녀와 기독교도 노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안테케라는 다음과 같은 자치단체와 접경하고 있다.
북쪽 | 북동쪽 | 동쪽 | 남동쪽 | 남쪽 | 남서쪽 |
---|---|---|---|---|---|
우미야데로, 모이니아, 알라메다 | 베네마히(코르도바 주) | 케바스 바하스, 시에라 데 예구아스 | 푸엔테 데 피에드라, 캄피요스, 비야누에바 데 알가이다스, 아르치도나 | 비야누에바 델 로사리오, 아르달레스, 콜메나르, 카사베르메하, 비야누에바 데 라 콘셉시온 | 알모히아, 바예 데 압달라히스, 알로라 |
2. 1. 개요
안테케라는 말라가 시에서 북쪽으로 47km 떨어진 A45 고속도로에 위치하며, 해발 575m 지점에 있는 ''엘 토르칼'' 산맥과 ''시에라 데 라 치메네아'' 산맥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안테케라는 남쪽으로는 토르칼 산맥, 북쪽으로는 과달호르세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면적이 817km²로, 말라가 지방에서 가장 크고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자치구 중 하나이다. 인구는 41,197명(2002년 인구 조사)이다.
유럽에서 홍학의 몇 안 되는 번식지 중 하나인 소금물 푸엔테 데 피에드라 석호와 등반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자 자연 보호 구역인 석회암 암석 지형인 토르칼이 근처에 있다. 과달호르세 강 건너편에는 ''페냐 데 로스 에나모라도스''(“연인의 바위”)가 있는데, 이는 라이벌 부족 출신의 두 젊은 무어인 연인이 소녀의 아버지와 그의 부하들에게 쫓기다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이 낭만적인 전설은 영국의 시인 로버트 사우디에 의해 그의 작품 ''라일라와 마누엘''로 각색되었는데, 여기서는 연인들이 무슬림 소녀와 그녀 아버지의 기독교 노예로 묘사되었다.
면적은 749.34km2이며, 시가지의 해발 고도는 575m이다. 2011년의 인구는 41,854명이며, 인구 밀도는 55.85명/km2이다. 말라가 주는 코스타 델 솔이라고 불리는 관광지의 연안부에 인구가 편중되어 있으며, 안테케라는 말라가 주 내륙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체이다. 말라가 주에서 가장 면적이 큰 자치체이며, 스페인 전역에서는 23번째로 면적이 큰 자치체이다.[26] 말라가에서 45km, 코르도바에서 115km 거리에 있으며, 두 도시와는 고속철도 AVE의 남부 회랑선이나 고규격 도로 A-45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비야에서 160km, 그라나다에서 102km 거리에 있으며, 철도 노선이나 고규격 도로 A-92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말라가-코스타 델 솔 공항, 그라나다 공항, 세비야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스페인의 중요 항만인 알헤시라스 항에서도 철도로 1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안테케라 근교에는 몇몇 공업 단지나 안달루시아 물류 센터가 건설되어 있다.[27] 과달로르세 강이 형성한 퇴적 분지인 안테케라 분지는 비옥한 농업 지역이기도 하며, 곡물, 올리브 오일용 올리브, 채소 등을 생산하고 있다.[28]
2. 2. 자연 환경
안테케라는 말라가 시에서 북쪽으로 47km 떨어진 A45 고속도로에 위치하며, 해발 575m 지점에 있는 엘 토르칼 산맥과 시에라 데 라 치메네아 산맥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토르칼 산맥, 북쪽으로는 과달호르세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면적은 817km²로, 말라가 지방에서 가장 크고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자치구 중 하나이다.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인구는 41,197명이다.유럽에서 홍학의 몇 안 되는 번식지 중 하나인 소금물 푸엔테 데 피에드라 호와 등반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자 자연 보호 구역인 석회암 암석 지형인 토르칼이 근처에 있다. 과달호르세 강 건너편에는 연인들의 바위가 있는데, 이는 라이벌 부족 출신의 두 젊은 무어인 연인이 소녀의 아버지와 그의 부하들에게 쫓기다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이 낭만적인 전설은 영국의 시인 로버트 사우디에 의해 그의 작품 ''라일라와 마누엘''로 각색되었는데, 여기서는 연인들이 무슬림 소녀와 그녀 아버지의 기독교 노예로 묘사되었다.
면적은 749.34km2이며, 시가지의 해발 고도는 575m이다. 2011년 기준 인구는 41,854명이며, 인구 밀도는 55.85명/km2이다.
2. 3. 인접 자치단체
우미야데로, 모이니아, 알라메다, 베네마히(코르도바 주), 케바스 바하스, 시에라 데 예구아스, 푸엔테 데 피에드라, 캄피요스, 비야누에바 데 알가이다스, 아르치도나, 비야누에바 델 로사리오, 아르달레스, 콜메나르, 카사베르메하, 비야누에바 데 라 콘셉시온, 알모히아, 바예 데 압달라히스, 알로라와 접경하고 있다.2. 4. 구성 마을
안테케라는 말라가 시에서 북쪽으로 47km 떨어진 A45 고속도로에 위치하며, 해발 575m 지점에 있는 엘 토르칼 산맥과 시에라 데 라 치메네아 산맥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토르칼 산맥, 북쪽으로는 과달호르세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적은 749.34km2이며, 시가지의 해발 고도는 575m이다. 2011년의 인구는 41,854명이며, 인구 밀도는 55.85명/km2이다. 말라가 주에서 가장 면적이 큰 자치체이며, 스페인 전역에서는 23번째로 면적이 큰 자치체이다[26]。코스타 델 솔이라고 불리는 관광지의 연안부에 인구가 편중되어 있으며, 안테케라는 말라가주 내륙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체이다.
말라가에서 45km, 코르도바에서 115km 거리에 있으며, 두 도시와는 고속철도 AVE의 남부 회랑선이나 고규격 도로 A-45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비야에서 160km, 그라나다에서 102km 거리에 있으며, 철도 노선이나 고규격 도로 A-92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말라가-코스타 델 솔 공항, 그라나다 공항, 세비야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스페인의 중요 항만인 알헤시라스 항에서도 철도로 1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안테케라 근교에는 몇몇 공업 단지나 안달루시아 물류 센터가 건설되어 있다[27]。과달로르세 강(Guadalhorce영어)이 형성한 퇴적 분지인 안테케라 분지는 비옥한 농업 지역이기도 하며, 곡물, 올리브 오일용 올리브, 채소 등을 생산하고 있다[28]。
3. 역사
안테케라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베리아인, 로마 제국, 서고트 왕국, 우마이야 왕조, 나스르 왕조, 카스티야 왕국 등 다양한 문화와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온 유서 깊은 도시이다. 특히 안테케라 돌멘 유적은 2016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13]
기원전 7세기부터 이베리아인들이 정착했으며, 기원전 1천년기 중반에는 켈트족 및 타르테소스 문명과 혼합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안티카리아''' 또는 '''안티쿠아리아'''로 불렸으며, 히스파니아 바이티카 속주에 속했다. 로마 제국 멸망 후에는 반달족과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716년경 우마이야 칼리파조에 정복되어 '''메디나 안타키라'''로 불렸으며,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나스르 왕조 그라나다 토후국의 중요한 변경 도시가 되었다. 1410년 페르난도 1세가 이끄는 카스티야 군대에 항복했고,[14] 이후 세비야 왕국, 카스티야 왕관의 영역이 되었다.
16세기에는 과달호르세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곡물 생산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말라가,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를 잇는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대학이 설립되고, 시와 조각 학교가 발전하는 등 문화적으로도 번성했다.
18세기에는 스페인 바로크 건축 양식의 교회와 궁전이 건설되었으나, 이후 스페인의 쇠퇴와 함께 경제 위기를 겪었다. 19세기 중반부터 경제 회복을 이루었으며, 20세기에는 코스타델솔의 관광 산업 발전과 함께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19세기 말에는 안달루시아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1978년 안테케라 자치 협정을 통해 안달루시아 주 성립에 기여했다.
3. 1. 선사 시대
도시 북쪽 외곽에는 기원전 3천년기에 건설된 두 개의 청동기 시대 고분(무덤 또는 돌멘)인 멩가 돌멘[11]과 비에라 돌멘이 있다.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구조물이다.더 큰 구조물인 ''멩가 돌멘''은 지름 25m, 높이 4m이며, 32개의 거석으로 지어졌으며, 가장 큰 돌은 약 180톤이다. 묘실(지배 가문의 무덤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음)과 중앙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완성된 후, 석조 구조물은 흙으로 덮여 오늘날 존재하는 언덕으로 만들어졌다. 19세기에 무덤을 열어 조사했을 때, 고고학자들은 그 안에 수백 명의 유골을 발견했다.
약 기원전 1800년경에 지어진 ''로메랄 돌멘''은 도시 외곽에 있다. 이 구조물은 소형 돌들을 다수 사용해 건설되었다.
안테케라에서 북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중요한 청동기 시대의 선사 시대 마을인 로스 실리오스가 발견되었다.[12]
기원전 7세기부터 이 지역에는 이베리아인들이 정착했으며, 페니키아인 및 그리스인과의 문화적, 경제적 접촉은 많은 고고학적 발견으로 입증되었다. 기원전 1천년기 중반에 이베리아인들은 방랑하는 켈트인(''켈트이베리아인'' 참조)과 남부 스페인의 타르테소스 문명과 혼합되었다.
멩가, 비에라, 로메랄의 돌멘 단지는 2016년 "안테케라 돌멘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의 등재 명세서에는 페냐 데 로스 에나모라도스(연인의 바위)와 엘 토르칼도 포함되어 있다.[13]
3. 2. 고대 시대
타르테소스와 그 후계자인 투르데타니는 선사 시대 이베리아인들 중 가장 문명화된 사람들이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카르타고 이베리아가 해안을 따라 발전했으며, 카르타고인들은 카르타고가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시칠리아를 잃은 후 기원전 230년대에 하밀카르 바르카의 지휘 아래 내륙으로 확장했다. 로마 공화국은 히스파니아 동부를 제2차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천천히 정복했으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기원전 206년 일리파 전투의 승리로 지배력을 굳혔다. 기원전 201년에 카르타고는 이 영토를 양도했고, 기원전 197년에 안티카리아 지역은 히스파니아 울테리어로 조직되었다. 그 해, 투르데타니는 반란을 일으켰고, 몇 년 후 카토가 이끄는 군단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 후 이 지역은 로마화되었으며, 많은 로마 식민지가 근처에 세워졌다.[34] 현재의 거리 계획은 로마 시대의 도시 계획을 거의 따르고 있다. 아그리파가 스페인 북부에서 칸타브리족을 진압하는 데 성공한 후, 히스파니아는 다시 재편성되었고, 안티카리아는 히스파니아 바이티카의 일부가 되었다. 로마 시대에 안티카리아는 특히 양질의 올리브 오일로 유명했다. 2세기 이후 스페인은 점차 기독교화되었다.로마 제국 멸망 동안, 안티카리아 지역은 410년대에 이교도 실링기 반달족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서고트족의 공격을 받은 후, 419년에 하스딩기 반달족의 군데릭과 서부 알란족에게 자발적으로 항복했다. 그의 이복 형제인 겐세릭이 그 뒤를 이어 결국 그의 백성을 아프리카로 이주했다. 그 후 스페인은 아리우스주의로 개종한 서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3. 3. 중세 시대

711년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아랍 군대의 이베리아 반도 침공이 시작되었다. 안티카리아는 716년경 정복되어 '''메디나 안타키라'''(아랍어로 "안타키라 도시")라는 이름으로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일부가 되었다. 우마이야 에스파냐는 형식적으로는 무슬림 국가였지만, 대체로 다른 종교에 관대했다.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기독교 왕국 연합군은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무슬림 세력을 중앙 스페인에서 몰아냈다. 이후 몇 년 동안 알모아드 왕조가 패배하면서 알-안달루스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당시 인구가 약 2,600명이었던 메디나 안타키라는 남은 나스르 그라나다 토후국의 북부 도시 중 하나이자 중요한 변경 도시가 되었다. 북쪽의 가톨릭 스페인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 도시를 내려다보는 무어 성이 건설되었고, 약 200년 동안 메디나 안타키라는 반복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1410년 9월 16일, 거의 4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메디나 안타키라는 "인판테" 트라스타마라의 페르난도가 이끄는 카스티야 군대에 항복했다.[14] 페르난도는 자신의 칭호에 "안테케라의 영주" (''Don Fernando de Antequera'')라는 칭호를 추가했으며, 도시의 주요 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Calle Infante Don Fernando''로 명명되었다. 무슬림 주민들은 아르치도나와 그라나다로 떠나야 했다.[14] 타협에 따라, 그들은 도시 밖으로 물건을 운반할 짐승을 제공받는 대가로 성과 기독교 노예를 넘겨주었다.[14] 이틀 동안 재산을 팔 수 있었으며,[14] 895명의 남성, 770명의 여성, 863명의 아이들이 도시를 떠났다.[14] 새로운 기독교 인구를 정착시키는 일은 로드리고 데 나르바에스에게 맡겨졌다.[14] 정복 이후 1487년까지 안테케라는 교회적으로 세비야에 부속되었다.[14]
이 도시는 세비야 왕국의 일부,[15] 즉 카스티야 왕관의 영역이 되었다. 1448년 2월 20일,[16] 카스티야의 후안 2세는 안테케라에 ''호미시아노스'' 특권을 부여하여[16] 구원을 추구하는 범죄자들의 정착 조건을 완화했다. 그러나 그라나다의 무하마드 10세가 이 지역에서 수행한 군사 작전으로 인해 안테케라의 인구 증가는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16] 1477년에는 상황이 심각하여 나스리드는 도시를 정복하려 시도하며 작물을 황폐화하고 주택에 불을 질렀다.[16]
안테케라는 그라나다 전쟁 동안 주요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17]
1487년 가톨릭 군주가 말라가를 정복하고, 1492년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군사적 불안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자 인구가 급증했다.[17]
3. 4. 근세 시대
16세기 내내 안테케라는 과달호르세 강에 의해 관개되는 비옥한 인근 ''베가''를 누리며 곡물 생산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고, 말라가의 식량 공급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1] 도시의 경제 구조는 16세기 초 국경 지대의 군사 중심 경제에서 농업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1]안테케라는 남쪽의 말라가, 동쪽의 그라나다, 북쪽의 코르도바, 서쪽의 세비야를 잇는 교차로에서 중요한 상업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의 지리적 위치, 번성하는 농업, 장인들의 작업은 모두 도시의 문화적 성장에 기여했고, 16세기 초 안테케라는 "안달루시아의 심장"으로 불렸다. 이 시기 동안 도시의 풍경도 바뀌었다. 모스크와 집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교회와 집들이 세워졌다. 안테케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고딕 건축 양식의 ''산 프란시스코 교회''는 1500년경에 지어졌다.
1504년, 르네상스 인문주의 대학인 ''레알 콜레히아타 데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가 설립되었으며,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작가와 학자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16세기에는 페드로 에스피노사, 루이스 마르틴 데 라 플라자, 크리스토발리나 페르난데스 데 알라르콘 등이 포함된 시인 학교가 등장했다. 조각 학교는 주로 여러 교회에 고용되어 세비야, 말라가, 코르도바 및 주변 지역에서 수요가 많았던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새로 지어진 교회에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산 세바스티안''과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레알 콜레히아타 데 산타 마리아''가 있었으며, 이 교회는 화려하게 장식된 매너리즘 양식의 정면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까지 더 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졌고 (오늘날 도시에는 총 32개가 있다), 스페인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을 위한 궁전도 지어졌다.
안테케라의 번영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서서히 종말을 맞이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손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유럽에서 여러 중요한 군사적 충돌에서 패배했다. 이는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물물교환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창조적인 예술의 고객이자 후원자였던 교회, 귀족, 상류층—대지주—은 대부분의 재산을 잃었고 더 이상 교회나 궁전을 지을 여력이 없었다.
3. 5. 근현대 시대
18세기 중반부터 스페인은 토지 개혁, 교회의 권력 감소(1767년 예수회 추방) 등 일련의 개혁을 통해 완만한 경제 회복을 이루었다. 안테케라에서는 섬유 생산이 주요 산업이 되었다. 1804년에는 황열병이 발병하여 침체를 겪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나폴레옹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는 인근 코스타델솔이 국제적인 관광 핫플레이스로 발전하면서 안테케라도 또 한 번의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오늘날 이 도시는 전국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중요한 관광 및 문화 중심지이다.
19세기 말 안테케라는 안달루시아 민족주의(en:Andalusian nationalism) 대두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883년에는 이 지역에서 안테케라 연방 헌법 초안이 작성되었다. 민주화 이후 1978년에는 안테케라 자치 협정이 체결되어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안테케라에 안달루시아 주 정부가 설치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국 주 정부는 세비야에 설치되었다.
4. 경제
과거 이 지역의 경제는 농산물(올리브, 곡물, 양모) 생산과 가공, 그리고 가구 제조를 기반으로 했다. 19세기 중반에는 플란넬, 종이, 가죽, 실크, 비누를 생산했으며, 곡물, 과일, 올리브 오일 및 지역에서 채취한 대리석을 대규모로 거래했다.[34] 1890년에는 대규모 설탕 산업이 설립되었다.[35]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안테케라는 보바디야-그라나다 철도에 위치해 있었으며, 양모 섬유가 제조되었다.[35] 20세기 초의 주산업도 농업이었으며, 곡물, 과일, 올리브 오일, 스페인 와인을 생산했다.[35]
오늘날 관광이 주요 산업이며, 국제 방문객 수가 증가하고 있다.
5. 교통
안테케라는 세비야와 알메리아를 잇는 중간 거리 열차가 정차하는 안테케라-시우다드역과, 안테케라-그라나다 고속철도 및 마드리드-말라가 고속철도 노선이 지나는 안테케라-산타 아나역, 이렇게 두 개의 기차역을 가지고 있다.
안테케라는 안달루시아 주의 4대 도시인 세비야, 말라가,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잇는 마름모꼴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말라가와 코르도바를 잇는 A-45번 국도와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잇는 A-92번 국도는 안테케라 근교에서 교차한다.
안테케라 자치 지역에는 안테케라 역, 보바디야 역, 안테케라-산타 아나 역의 3개 철도역이 있다. 안테케라 역은 중심 취락에 있으며, 보바디야 역은 중심 취락에서 16km 서쪽에 있는 보바디야에, 안테케라-산타 아나 역은 중심 취락에서 20km 서쪽에 있는 콜로니아 데 산타 아나 취락에 있다. 안테케라-산타 아나 역은 고속 철도 AVE의 남 회랑선 역이기도 하다.[36][37]。AVE의 남 회랑선은 코르도바와 말라가를 잇고 있으며, 중간역은 푸엔테 헤닐에 있는 역과 안테케라-산타 아나 역 두 곳이다.[38]。보바디야 역은 장거리 노선인 알코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바르셀로나와 말라가를 잇는 노선, 빌바오의 빌바오-아반도 역과 말라가를 잇는 노선 등이 보바디야 역에 발착한다.
말라가-코스타 델 솔 공항, 그라나다 공항, 세비야 공항, 코르도바 공항 등 4개 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으며, 스페인의 중요 항만인 알헤시라스 항에서도 철도로 1시간 거리에 있다. 따라서 안테케라 근교에는 몇몇 공업 단지나 안달루시아 물류 센터가 건설되어 있다.[27]
6. 문화 유산
안테케라에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문화 유산이 남아있다.
도시 북쪽 외곽에는 기원전 3000년기에 건설된 청동기 시대 고분인 멩가 돌멘[11]과 비에라 돌멘이 있다.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거석 구조물 중 하나이다. 멩가 돌멘은 지름 25m, 높이 4m이며, 가장 큰 돌은 약 180톤에 달한다. 19세기에 이 무덤을 조사했을 때, 고고학자들은 그 안에서 수백 명의 유골을 발견했다.
기원전 1800년경에 지어진 로메랄 돌멘은 도시 외곽에 있으며, 작은 돌들을 사용하여 건설되었다. 안테케라에서 북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중요한 청동기 시대 마을인 로스 실리오스가 발견되었다.[12]
기원전 7세기부터 이 지역에는 이베리아인들이 정착했으며, 페니키아인 및 그리스인과의 문화적, 경제적 접촉은 많은 고고학적 발견으로 입증되었다. 기원전 1000년기 중반에 이베리아인들은 켈트인과 남부 스페인의 타르테소스 문명과 혼합되었다.
멩가, 비에라, 로메랄의 돌멘 단지는 2016년 안테케라 돌멘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의 등재 명세서에는 페냐 데 로스 에나모라도스(연인의 바위)와 엘 토르칼도 포함되어 있다.[13]
6. 1. 종교 건축물
-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la Mayores (1514–1550)는 늦은 고딕 건축과 르네상스 건축 사이의 과도기적 양식으로 지어진 국립 기념물이다. 정면은 안테케라 북쪽에 위치한 버려진 로마 도시 싱길리아 바르바(Singilia Barba)의 석재를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 Real Colegiata de San Sebastiánes는 1548년부터 건설되었으며, 원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바로크 건축 양식의 종탑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내부를 갖추고 있다.
- Convent of ''Madre de Dios de Monteagudo''es (1747–1761)는 주목할 만한 바로크 양식의 종탑을 가지고 있다.
- Convento de la Encarnaciónes (1580)는 매너리스트-무데하르 양식이다.
- 벨렌 수도원 (16세기 초)
- Church of ''San Pedro''es (16세기)는 이전 고딕 양식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 Real Monasterio de San Zoiloes는 1500년에 설립되었으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국립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세례자 요한 교회 (1584년 완공)는 돋보이는 바로크 양식의 내부와 더불어 소박한 정면을 가지고 있다.
- Church of Santiagoes (1522)
- Church of the Carmenes (1583–1633)는 매너리스트-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8세기에 제작된 세 개의 제단화를 주 예배당에 가지고 있다.
- Chapel of the ''Virgen del Socorro''es은 항구 지역에 있는 고립된 작은 교회로, 1715년에 지어졌다.
6. 2. 기타 건축물
- 알카사바는 14세기에 로마 유적 위에 세워진 무어인 요새이다.
- 18세기에 지어진 나헤라 궁전은 현재 안테케라 시립 박물관(Municipal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18]
- 1848년에 지어진 투우장은 1984년부터 재건되었으며, 도시의 다양한 건축적 영향을 반영하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 아르코 데 로스 히간테스("거인의 개선문")는 스페인 펠리페 2세 국왕을 기리기 위해 1595년에 세워졌으며, 일부는 로마 시대의 비문이 새겨진 석조물로 건축되었다.
- 발굴된 로마 목욕탕은 도시 남동부에서 볼 수 있다.
- 로마 빌라 ''에스타시온:'' (기원전 1세기~서기 4세기)
이 도시의 박물관에는 말라가 주의 모든 예술 보물의 약 80%가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안달루시아의 문화 중심지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도시 동쪽 교외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되어 지하 20m 깊이로 굴착된 챔버를 갖춘 스페인에서 가장 큰 매장 언덕 중 하나가 있다. 멩가 돌멘을 참조하라.


- 레알 콜레히아타 데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교회 : 중요 문화재. 후기 고딕 양식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이행기에 세워졌다.
- 레알 콜레히아타 데 산 세바스티안 교회 : 르네상스 양식으로 1548년 이후에 건립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종탑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는 신고전주의이다.
- 안테케라 알카사바 : 기독교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 14세기에 무어인이 건설한 요새.
- 나헤라 궁전 : 18세기 건축물. 현재는 안테케라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39]。
- 안테케라 투우장 : 1848년에 완공되었고, 1984년 이후에 재건된 투우장.
- 거인의 문 : 펠리페 2세를 칭송하여 1595년에 완공.
7. 자매 도시
안테케라는 다음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를 정복한 후, 그들은 현재의 오아하카주 지역을 누에바 안테케라라고 불렀다.[41]
8.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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