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케보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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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잭 케보키언은 1928년 아르메니아 이민자 출신으로, 병리학 의사로 활동하며 안락사 연구를 진행했다. 1980년대부터 '사망 상담'을 시작, 자살 장치를 개발하여 130명 이상의 환자를 존엄사시켜 '죽음의 의사'로 불렸다. 1998년 자살 방조 장면이 CBS 방송을 통해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고, 살인죄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가석방 후 안락사 옹호 활동을 했으며, 2011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활동은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으며, 윤리적, 법적 평가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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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케보키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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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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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Murad Jacob Kevorkian |
출생일 | 1928년 5월 26일 |
출생지 | 미국 미시간주 폰티액 |
사망일 | 2011년 6월 3일 |
사망지 | 미국 미시간주 로열오크 |
활동 기간 | 1952년–2011년 |
종교 | 무종교(불가지론) |
교육 | |
학력 | 미시간 대학교 |
직업 | |
직업 | 병리학자, 교육자, 사상가 |
전문 분야 | 안락사 의학 |
근무 기관 | 헨리 포드 병원 미시간 의과대학 |
정치 활동 | |
정당 | 자연법당 |
정치 활동 | 미국 하원 선거 (2008년 출마) |
법적 문제 |
2. 생애
잭 케보키언은 1928년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하고 디트로이트 등지의 병원에서 병리학 의사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부터 안락사를 연구했다. 1987년 '사망 상담'을 위한 '의학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자작 자살 장치를 개발하여 말기 환자의 자살 방조를 시작하여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130명에 달하는 환자를 자살 장치로 존엄사시켜 '살인 의사', '죽음의 의사' 등으로 불렸다.
1998년 9월 17일 ALS 환자를 자살 장치로 사망시킨 비디오테이프가 11월 22일 CBS의 프로그램 『60 Minutes』에서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다. 환자가 스스로 장치를 작동시킬 수 없어 케보키언이 직접 작동했기 때문에, 방송 직후 1급 살인죄 (이후 2급 살인죄로 변경)로 기소되었다.
1999년 4월 13일, 케보키언에게 10~25년 부정기형이 선고되었고, 2007년 6월 1일 건강 악화로 가석방될 때까지 수감되었다. 석방 후에는 자살 방조를 하지 않고 안락사 계몽 활동을 했다.
2008년 하원 선거에 미시간주 제9선거구에서 자연법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케보키언은 신장 문제와[61] C형 간염으로 인한 간암을 앓고 있었다.[62] 2011년 5월 18일 신장 문제와 폐렴으로 입원했고,[4] 상태가 악화되어 83세 생일 8일 후인 2011년 6월 3일, 미시간주 로열오크에 있는 윌리엄 보몬트 병원에서 혈전증으로 사망했다.[4][5]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시도는 없었으며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다.[62] 케보키언은 미시간주 트로이에 있는 화이트 채플 기념 묘지에 묻혔다.[63]
케보키언은 재즈 음악가이자 작곡가, 유화 화가로도 활동했다. 1997년에는 CD ''The Kevorkian Suite: A Very Still Life''를 발매했고,[30] 1996년에는 그의 클래식 오르간 작품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 연주되었다.[32] 그의 그림은 괴기하고 초현실적인 경향을 보였으며,[18] 슬러지 메탈 밴드 애시드 배스는 그의 그림을 앨범 커버 아트로 사용하기도 했다.[35]
2. 1. 생애 초반
잭 케보키언은 1928년 5월 26일 미국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오스만 제국(현재 터키)에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4][5] 그의 아버지 레본은 에르주룸 근처 파센 마을 출신이었고, 어머니 사테니그는 시바스 근처 고브둔 마을 출신이었다.[6][7] 그의 부모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케보키언은 어렸을 때부터 독일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를 독학한 신동이었으며,[11] 1945년 폰티액 센트럴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52년 미시간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13][14][39] 이후 해부 병리학 및 임상 병리학 레지던트 훈련을 마치고 수혈에 대한 연구를 잠시 수행했다.[15]
2. 1. 1. 유년 시절
잭 케보키언은 1928년 5월 26일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아르메니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4][5] 그의 아버지 레본과 어머니 사테니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8] 레본은 에르주룸 근처 파신러르 출신이었고, 사테니그는 시바스 근처 고브둔 마을 출신이었다.[6][7]케보키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케보키언은 어린 시절부터 니체, 맑스, 다윈 등의 사상에 심취하며 종교적 회의를 품었고, 이는 가족과의 갈등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12살 무렵부터 교회에 나가는 것을 멈췄다.[10]
케보키언은 여러 언어(독일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일본어 포함)를 독학한 신동이었다.[11] 그는 1945년 폰티액 센트럴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39] 1952년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13][14]
2. 1. 2. 학창 시절
케보키언은 1945년에 폰티악 중앙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토론 능력이 좋고 학업 성취가 뛰어났던 그는 고등학교 내내 상위권 성적이었고, 훌륭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쳤다.[78]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공과대학(University of Michigan College of Engineering)에 입학한 케보키언은 원래 엔지니어가 되고자 했지만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전공에 흥미를 잃고 식물학과 생물학에 매진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을 하며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1952년에 앤 아버에 위치한 미시간 대학교 의과대학(University of Michigan Medical School in Ann Arbor)을 졸업했다.[78]
2. 2. 의학 활동
잭 케보키언은 1928년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시간 대학교를 졸업한 후 디트로이트의 병원 등에서 병리 담당 의사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부터 안락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987년부터 '사망 상담'을 위한 '의학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자작 자살 장치를 개발하여 말기 환자의 자살 방조 활동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총 130명에 달하는 환자를 자살 장치로 존엄사시켜 '살인 의사', '죽음의 의사' 등으로 불렸다.1998년 9월 17일 ALS 환자를 자살 장치로 사망시킨 것을 기록한 비디오테이프가 11월 22일 CBS의 프로그램 『60 Minutes』에서 공개되어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환자가 자력으로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케보키언이 장치를 작동시켰고, 이 때문에 방송 직후 1급 살인죄 (이후 2급 살인죄로 변경)로 기소되었다.
1999년 4월 13일, 케보키언에게 10~25년 부정기형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으며, 2007년 6월 1일 건강 상태 악화로 가석방될 때까지 수감되었다.
2. 2. 1. 레지던트 및 인턴 시절
케보키언은 1950년대에 미시간 주립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그는 한국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1년 반 동안 전쟁터에서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79] 이를 계기로 케보키언은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1956년부터 케보키언은 말기 환자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환자들의 임종 시 눈을 촬영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통해 각막의 혈관이 심장 박동 정지 시 수축되어 보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와 미시간의 여러 병원에서 경력을 쌓은 후 미시간에 정착한 케보키언은 유럽의 의학 잡지에 안락사 관련 논문을 게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58년 논문에서 케보키언은 사형수들의 안락사와 그들의 장기 추출을 주장했다. 또한, 교도소 피수감자들을 의학 실험에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수들이 의학 실험에 이용되면 연구비 절감, 범죄자의 신체 연구에 유용할 것이며, 의식이 있는 동안 인류를 위해 "고통 없는" 실험 대상으로서 봉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과학 발전을 위한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 제시했다.
이러한 기이한 연구와 도발적인 의견으로 인해 케보키언은 동료들로부터 '죽음의 의사(Dr. Death)'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시간 주립대학 의학센터에서 퇴출되었으나 폰티악 종합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계속했다. 당시 케보키언은 러시아 의료팀이 시체의 피를 살아있는 환자에게 수혈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학 기술자 닐 니콜(Neal Nicol)의 도움을 받아 같은 실험을 진행하여 성공했다. 케보키언은 이 결과가 전쟁터 군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피 저장분이 부족할 경우 시체의 피를 수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미 국방부에 제안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학계의 반대로 연구는 중단되었고, 케보키언은 C형 간염에 감염되었다.[80]
2. 2. 2. 전문의 시절
1960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케보키언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병원에서 근무하였으며, 죽음에 관한 그의 철학이 담긴 전문적인 저널 기사를 30편 이상 출판했다.[16] 후에 케보키언은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자신의 클리닉을 세웠으나 사업은 잘 되지 않았다. 이후 케보키언은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겨 롱 비치(Long Beach)의 두 곳에서 시간제 의사로 일했으나, 그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들에 반대하던 선배 의사와의 마찰로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17] 케보키언은 의사 활동을 접고 헨델의 메시아를 주제로 한 영상 프로젝트와 사형수 캠페인에 몰두했다. 1970년까지 케보키언은 실직 상태였고 약혼녀와의 관계도 끝이 났으며, 1982년까지 독신으로 지냈다.2. 2. 3. 의사 은퇴 후
1985년, 케보키언은 미시간으로 돌아와 사형 집행된 신체에 행해진 의학실험의 역사를 쓰는 데 매진하였다. 권위 있는 의학 잡지들로부터 거절당했지만 국립 의학협회 저널(Journal of National Medical Association)에서 그의 글을 실었다. 1986년 네덜란드에서 의사가 말기 환자에게 합법적으로 약물을 주사하여 죽음을 돕는다는 정보를 들은 케보키언은 그의 캠페인에 이 항목을 추가하여 의사의 조력에 의한 자살 혹은 안락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으며 "타나트론(Θάνατρον|타나트론grc)"이라 불리는 자살기계를 발명하였다. 그는 이 기계를 45달러 어치의 재료들로 구성하였는데 3개의 병에 담긴 액체를 순서대로 연속적으로 사람에게 주입하는 구조였다. 가장 먼저 생리식염수, 그 후에는 진통제, 마지막으로는 치사량의 염화칼륨이 담긴 액체를 주입하는 것이다. 케보키언의 설계를 이용하면 환자들은 스스로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할 수 있었다. 의학 잡지와 의학계가 이 발상에 찬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케보키언은 해당 기계의 설계와, 의사가 환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시설인 "오비토리움(obitoriums)"을 프랜차이즈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해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 3. 안락사 활동
케보키언은 수십 년에 걸쳐 죽음과 관련된 논란이 많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1959년 논문에서 그는 사형수들이 의료 실험에 참여하도록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16] 그러나 미시간 대학교는 그의 제안에 반대했고, 케보키언은 대학을 떠났다. 그는 사형수들의 장기를 이식하는 아이디어를 주장했지만, 교도소 관계자들의 협조를 얻지 못했다.[17]폰티액 종합 병원의 병리학 전문의였던 케보키언은 최근 사망한 사람의 혈액을 생존 환자에게 수혈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시체에서 혈액을 채취하여 병원 직원들에게 성공적으로 수혈했다. 케보키언은 미군이 이 기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국방부는 관심이 없었다.[17]
1980년대에 케보키언은 안락사 윤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발표했다.[39][18] 1987년, 그는 "죽음 상담"을 위한 의사 컨설턴트로 디트로이트 신문에 광고를 시작했다. 1990년, 알츠하이머병 환자 재닛 애드킨스에 대한 첫 번째 공개 자살 방조를 시행했다. 당시 미시간 주에는 자살 방조에 관한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살인 혐의는 기각되었다.[19] 그러나 1991년, 미시간 주는 케보키언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다.[20]
케보키언은 1990년에서 1998년 사이에 130명의 불치병 환자의 죽음을 도왔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안락사 장치인 "타나트론(Thanatron)"과 "머시트론(Mercitron)"을 사용했다.[22][23] 그는 환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마지막 행동을 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케보키언은 장치에 개인을 연결하는 것만 도왔고, 그러면 그 개인은 자신의 생명을 끝낼 약물이나 화학 물질을 방출하는 버튼을 눌렀다.
디트로이트 자유 신문(Detroit Free Press)의 보고서에 따르면, 케보키언의 도움을 받아 사망한 환자의 60%는 말기 환자가 아니었고, 최소 13명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또한 케보키언의 상담이 너무 짧았고, 정신과 검사가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25]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케보키언을 찾아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질병이 악화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말기 질환은 아니었고, 부검 결과 일부는 아무런 질병도 없었다고 보도했다.[26]
이에 대해 케보키언의 변호사 제프리 피거(Geoffrey Fieger)는 케보키언이 엄격한 지침을 따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피거는 케보키언이 "박해와 기소" 때문에 지침을 따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25]
산제이 굽타(Sanjay Gupta)와의 2010년 인터뷰에서 케보키언은 오리건 존엄사법(Oregon Death with Dignity Act) 등에 반대하며, 환자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자살을 돕기 위해 말기 환자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력 자살 요청 5건 중 4건을 거절했다고 밝혔다.[27][28]
2011년, 장애인 권리 단체인 Not Dead Yet은 케보키언을 비판했다.[29]
2. 3. 1. 안락사와 죽을 권리 주장
케보키언은 1980년대 중반부터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주목받았다. 1987년부터는 디트로이트 지역 신문에 '죽음 상담(death counseling)'이라는 광고를 내기 시작했다.[19] 1990년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54세 여성 자넷 앳킨스를 대상으로 첫 조력자살을 시행했다.[19] 앳킨스는 케보키언이 만든 자살 기계가 설치된 폭스바겐 차 안에서 약물 주입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81]1990년 12월, 케보키언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당시 미시간 주법에는 자살 방조를 금지하는 법이 없어 기각되었다.[81] 그러나 1991년, 미시간 주는 그의 의사 면허를 박탈했다.[82]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보키언은 안락사 시술을 계속하였다.
2. 3. 2. 안락사 장면 공개 논란
케보키언은 1990년부터 말기 환자들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130여 명의 환자에게 안락사를 도왔다.[83] 그는 루게릭병 환자의 안락사 전 과정을 비디오로 녹화하여 C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 '60분'을 통해 방영했다. 안락사 장면이 공개되자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었다.[83]케보키언은 '타나트론' 외에도 환자가 일산화탄소를 흡입하게 하는 자살 장치 '머시트론(Mercitron, Mercy Machine)'을 발명했다.[84] 1992년 미시간주에서 의사의 조력 자살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후, 케보키언은 그해 두 번 수감되었다.
2. 4. 재판과 논란
케보키언은 죽음과 관련된 여러 논란이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1959년 논문에서 그는 사형수가 의료 실험에 참여하도록 허용할 것을 제안했지만,[16] 미시간 대학교는 반대했고, 케보키언은 대학을 떠났다. 그는 사형수 장기 이식을 주장했지만, 교도소 관계자들의 협조를 얻지 못했다.[17]1980년대 케보키언은 안락사 윤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발표했다.[39][18] 1987년 "죽음 상담" 의사 컨설턴트로 광고를 냈고, 1990년 알츠하이머병 환자 재닛 애드킨스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는 기각되었지만,[19] 1991년 미시간 주에서 의사 면허가 취소되었다.[20] 1993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의사 면허도 정지되었다.[21]
케보키언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130명의 환자 죽음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타나트론(Thanatron)"("죽음 기계")[22] 또는 "머시트론(Mercitron)"("자비 기계")[23]라는 안락사 장치를 사용했고, 환자 스스로 마지막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1998년 9월 17일, 케보키언은 ALS 환자를 자신이 직접 작동시킨 자살 장치로 사망시킨 비디오를 공개하여 1급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이후 2급 살인죄로 변경되었다.
1999년 4월 13일, 케보키언은 10~25년 부정기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2007년 6월 1일 건강 악화로 가석방되었다.
2. 4. 1.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재판
케보키언은 1995년 시카고에 있는 미국 의학협회와 그 간부가 자신을 '살인자'로 부르고 "무모한 죽음의 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이며 공중에 커다란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이듬해 1천만 10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였다.[85] 그의 변호사는 상고심에서 케보키언 박사가 공인이므로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라는 항소심의 판결 논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5] 미주리 고등법원은 박사의 전국적 또는 지역적 명성에 비춰 그를 살인자로 부르건 성자로 부르건 큰 의미가 없으므로 문제의 표현은 명예 훼손에 해당되지 않으며, 공인에 대한 공중의 우려를 표명하는 권리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며 케보키언 박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85] 미 연방 대법원은 이를 지지하여 소송에서 패소하였다.[85]2. 4. 2. 자살 조력 건에 관한 재판
케보키언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자살 조력 건으로 총 4번 기소되었으나, 3번은 무죄, 1번은 무효 심리 선고를 받았다.[86] 케보키언은 자신의 행위가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며, 위선과 사회 부패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사 제프리 파이거는 케보키언이 1990년에서 1998년 사이에 130명의 환자들의 죽음을 도왔으며, 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마지막 행동을 취했고, 케보키언은 단지 그가 만든 안락사 기계에 환자들을 연결하는 것을 도왔다고 주장했다.[86]1998년, 미시간주는 의사의 자살 조력에 관하여 최대 5년의 징역형 또는 10000USD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중죄로 입법화하였다. 이는 케보키언의 무죄 선고를 가능하게 했던 정당화 사유들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법안이었다.
2. 4. 3. 적극적 안락사 건에 관한 재판
1998년 11월 22일, 잭 케보키언은 1998년 11월 17일에 만 52세의 토마스 육(Thomas Youk)에 대한 적극적 안락사 시행 영상을 《60분》(60 Minutes)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 공개했다. 토마스 육은 자신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았고,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안락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전 환자들과는 달리 케보키언은 환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독극물을 주사했다.[87] 이 방송을 통해 검찰은 케보키언을 살인죄로 기소하고, 그가 일방적으로 육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1999년 3월 26일, 케보키언은 1990년부터 130여 명의 환자 안락사를 도운 혐의(살인)와 취급 불가 물질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케보키언의 의사 면허는 8년 전에 정지되었기 때문에 위험 물질을 다룰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없었다.[87]살인에 관한 형법은 상대적으로 고정적이고 확정적이어서 조력 자살과 같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주제와는 재판 과정에서 다른 양상을 보였다. 케보키언은 이전 변호사를 해고하고 법정에서 직접 자신을 변호했다. 법적 지식이 부족하고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 몰랐던 케보키언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도와줄 증인을 법정에 세우고 싶어 했으나 판사가 '관련성 없음'을 이유로 거부하였다.
2. 5. 생애 후반
케보키언은 수년간 신장 문제로 고생했으며, 닐 니콜에 따르면 "C형 간염으로 인해 발생했을 수 있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62] 2011년 5월 18일 신장 문제와 폐렴으로 입원했고,[4]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83번째 생일 8일 후인 2011년 6월 3일, 미시간주 로열오크에 있는 윌리엄 보몬트 병원에서 혈전증으로 사망했다.[4][5] 그의 변호사 마이어 모건로스에 따르면, 그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시도는 없었으며 그의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았다.[62] 케보키언은 미시간주 트로이에 있는 화이트 채플 기념 묘지에 묻혔다.[63]1998년 9월 17일 ALS 환자를 자살 장치로 사망시킨 사건은 11월 22일 CBS의 프로그램 『60 Minutes』에서 비디오테이프로 공개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환자가 스스로 장치를 작동시킬 수 없어 케보키언이 직접 작동시켰기 때문에, 방송 직후 1급 살인죄 (이후 2급 살인죄로 변경)로 기소되었다.
1999년 4월 13일 10~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며, 2007년 6월 1일 건강 악화로 가석방된 후에는 안락사 계몽 활동에 힘썼다. 2008년 하원 선거에 자연법당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 5. 1. 패소와 투옥
1999년 4월 13일, 오클랜드 카운티 배심원단은 잭 케보키언에게 2급 살인죄로 10-25년형을 선고하였다.[88][89] 그는 토머스 육을 직접 살해한 것으로 증명되었는데, 이는 육이 신체적으로 스스로 자살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케보키언은 육이 자신을 죽이는 데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마지막 행동을 하지 못하는 육을 대신해 자살 장치를 작동시켰다. 판사는 케보키언에게 25년형을 선고하고 가석방 가능성은 열어 두었다. 이후 케보키언은 미시간주 콜드워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1999년 4월 13일 유죄 판결을 받은 케보키언은 2007년 6월 1일 건강 악화로 가석방될 때까지 수감 생활을 하였다.
2. 5. 2. 수감 생활
케보키언은 가석방되면 사람들의 자살을 돕는 것이 아니라 법 개정을 위한 캠페인에만 주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가석방 신청은 반복적으로 기각되었다.[90] 2005년 12월 22일 가석방 신청은 위원회 위원 중 찬성 2, 반대 7로 기각되었다. 수혈 연구 중 감염된 C형 간염으로 고생하던 케보키언은 2006년 5월 시한부 1년을 선고받았다. 계속 가석방을 신청한 끝에 2007년 6월 1일, 교도소 내 모범적인 행동을 이유로 가석방되면서 8년 2개월 반가량의 수감 생활은 마무리되었다.[90]2. 5. 3. 최후
2007년 가석방 이후 잭 케보키언은 방송 출연과 강연 활동을 통해 안락사의 필요성과 '죽을 권리'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 보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그를 악마와 같다는 등의 인신공격과 비판을 받았다.[83]가석방 후에도 그의 안락사 시술을 놓고 미국 내에서는 찬반 논쟁이 계속되었다. 종교계와 보수 기독교계는 살인이라고 주장한 반면, 리버럴 계열과 사회운동 단체에서는 죽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2011년 5월 케보키언은 심장과 신장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83] 2011년 6월 3일 미시간주 로열오크의 윌리엄 보몬트 병원에서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83] 그는 수년간 신장 문제로 고생했으며,[61] C형 간염으로 인해 발생했을 수 있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62] 2011년 5월 18일 신장 문제와 폐렴으로 입원했고,[4] 83번째 생일 8일 후인 2011년 6월 3일 혈전증으로 사망했다.[4][5]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를 살리기 위한 인위적인 시도는 없었으며 그의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다.[62] 케보키언은 미시간주 트로이에 있는 화이트 채플 기념 묘지에 묻혔다.[63]
3. 평가와 비판 및 수상 내역
케보키언은 출소 후 플로리다 대학교,[50] 노바 사우스이스턴 대학교,[51]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52] 등에서 여러 차례 강연했다. 강연은 안락사뿐만 아니라 폭정, 형사 사법 시스템, 정치, 미국 헌법 수정 제9조, 아르메니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2009년 폭스 뉴스 채널의 ''닐 카부토의 세상''[52]과 2010년 CNN의 ''앤더슨 쿠퍼 360°''[53]에 출연하여 의료 개혁과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논의했다.
2010년 HBO에서 방영된 케보키언의 삶을 다룬 영화 ''유 돈 노 잭''에서 케보키언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다.[57]
1994년 케보키언의 첫 살인 재판을 주재했던 토마스 잭슨 판사는 케보키언을 겨냥한 "잘못 쓰여진 법"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최선을 다한 재판"을 하려 했다고 회고했다.[69]
2001년 4월 10일, 비영리 단체 글라이츠만 재단으로부터 Humanitarian Citizen Award영어을 수상했다.[85]
케보키언의 저서로는 ''Prescription: Medicide, the Goodness of Planned Death영어''(1991), ''Amendment IX: Our Cornucopia of Rights영어''(2005), ''glimmerIQs영어''(2009), ''When the People Bubble POPs영어''(2010) 등이 있다.
3. 1. 평가
케보키언의 활동은 미국 사회에서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법적 평가는 현재까지도 엇갈리고 있다.[69] 더불어민주당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케보키언의 활동이 이러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케보키언의 방식에 대해서는 생명 윤리와 의료 윤리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2007년 AP-입소스가 미국의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보키언이 징역형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53%였던 반면, 감옥에 갈 만한 행동을 했다는 의견은 40%였다.[89]
1990년대 케보키언의 변호를 맡았던 제프리 피거는 기자 회견에서 "잭 케보키언 박사는 역사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69] 그는 케보키언이 사람들이 스스로 고통을 끝낼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자살의 개념을 혁신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책임이 있으며, 환자가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덧붙였다.[69]
케보키언은 안락사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장로교 및 성공회 교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64][65] 그러나 가톨릭[66] 세인트 존스 병원의 완화 치료 의료 책임자인 존 핀은 케보키언의 방법이 정통적이지 않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케보키언의 환자들 중 상당수가 고립되고 외로운 상태였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69] 자살 안내서인 ''최후의 탈출''의 저자 데릭 험프리는 케보키언이 "죽음과 자살에 너무 집착하고 광신적"이어서 국가를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67]
2015년 케보키언의 유산과 존엄사 운동에 관한 레트로 리포트 기사에서 저널리스트 잭 레센베리는 케보키언이 "전국적인 논쟁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터무니없는 행동으로 이를 억압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68] 미시간 대학교의 의학 역사가인 하워드 마켈은 케보키언이 "현대 의학의 주요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69]
출구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이자 이사인 필립 니치케는 케보키언이 "우리 나머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쟁을 진전시켰다. 그는 거의 논의되지 않던 시기에 시작하여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고, 그것은 진정한 영웅주의의 특징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71]
3. 2. 비판
디트로이트 자유 언론(Detroit Free Press)의 조사에 따르면, 케보키언이 자살을 조력한 환자들 중 60%가 치료 불가능한 말기 상태가 아니었다.[92]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케보키언의 자살 조력 행위를 비판했다.[92]문제점 |
---|
케보키언의 상담은 전화 상담이나 가족, 친구 동반의 간략한 회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
최소 19건의 사례에서 의학 검진이 없었고, 중요한 질문에 환자가 직접 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측근의 대답만으로 안락사 여부가 결정되었다. |
만성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 대해 케보키언이 전문가의 의견을 참조하지 않았다. |
케보키언이 환자의 의학 진료 기록을 살피는 데 고정된 방식이 없었고, 참관 의사의 간단한 진단만으로 안락사가 결정된 경우도 있었다. |
케보키언의 자살 조력 사례 부검 결과, 최소 3건에서 해부학적 질병의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
최소 19명의 환자가 케보키언과 처음 만난 후 24시간 이내에 사망하였다. |
디트로이트 자유 신문(Detroit Free Press)은 케보키언의 도움을 받아 사망한 환자의 60%는 말기 환자가 아니었고, 최소 13명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또한, 케보키언의 상담이 너무 짧았고(최소 19명의 환자가 케보키언과 처음 만난 지 24시간 이내에 사망) 최소 19건에서 정신과 검사가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그중 5건은 우울증 병력이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경우였지만, 케보키언은 때때로 환자가 의학적 상태 외의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을 알렸다. 1992년 케보키언은 조력 자살 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항상 필요하다고 썼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25]
이 보고서는 케보키언이 만성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17명 이상을 통증 전문의에게 의뢰하지 않았고, 때로는 환자에 대한 완전한 의료 기록을 얻는 데 실패했으며, 케보키언이 도운 자살 사건의 최소 3건의 부검 결과 자살한 사람이 질병의 신체적 징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케보키언의 환자이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약물 남용자인 레베카 배저(Rebecca Badger)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오진받았다. 케보키언의 첫 번째 안락사 환자인 재닛 애드킨스(Janet Adkins)는 케보키언이 그녀와 대화한 적 없이 그녀의 남편과만 대화한 후 선택되었으며, 케보키언이 조력 자살 이틀 전에 처음 애드킨스를 만났을 때 "애드킨스 씨가 삶을 끝내고 싶어하는지 실제로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미시간 항소 법원은 1995년 판결에서 밝혔다.[25]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케보키언 박사를 찾아간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질병이 악화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말기 질환은 아니었다. 부검 결과 5명은 아무런 질병도 없었다... 3분의 1 미만이 통증을 겪고 있었다. 일부는 아마도 건강 염려증이나 우울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26]
케보키언의 사형수 장기 추출 및 의학 실험 대상화 주장은 나치의 생명 경시 사상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1년, 장애인 권리 및 조력 자살과 안락사 합법화 반대 단체인 Not Dead Yet은 케보키언의 출판물에 나타난 우려스러운 표현들을 비판했다.[29] 케보키언은 ''처방전: 의약 살인, 계획된 죽음의 좋은 점''(Prescription: Medicide, the Goodness of Planned Death)에서 "고통받거나 운명적인 사람[이] 스스로를 죽도록 돕는 것"은 "단지 첫 번째 단계"이며, "귀중한 실험이나 기타 유익한 의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마지막 무서운 금기: 계획된 죽음의 의학적 측면"(The Last Fearsome Taboo: Medical Aspects of Planned Death)이라는 기사에서는 "대담하고 매우 상상력이 풍부한 연구"를 위해 장애가 있는 신생아의 장기를 마취하고 실험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가톨릭 세인트 존스 병원의 완화 치료 의료 책임자인 존 핀은 케보키언의 방법이 정통적이지 않고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케보키언의 환자들 중 많은 수가 고립되고 외로우며 잠재적으로 우울한 상태였으며, 따라서 삶과 죽음을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69] 자살 안내서인 ''최후의 탈출''의 저자 데릭 험프리는 케보키언이 "국가를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죽음과 자살에 너무 집착하고 광신적이었다"고 말했다.[67]
미시간 대학교의 의학 역사가 하워드 마켈은 케보키언이 "현대 의학의 주요 역사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69] 반면, 디트로이트의 가톨릭 교회는 케보키언이 수많은 사람들의 "존엄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거부하는 "치명적인 유산"을 남겼다고 비판했다.[70] 존엄사 단체 출구 인터내셔널의 설립자 필립 니치케는 케보키언이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고, 그것은 진정한 영웅주의의 특징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71]
3. 3. 수상
2001년 4월 10일, 비영리 단체 글라이츠만 재단으로부터 Humanitarian Citizen Award영어을 수상했다.[85]3. 4. 영화
2010년 HBO에서 방영된 배리 레빈슨 감독, 알 파치노 주연의 텔레비전 영화 유 돈 노우 잭은 잭 케보키언의 삶을 다룬 영화이다.[73] 이 영화는 에미상 1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일본에서는 같은 해 10월 WOWOW에서 방송되었다.3. 5. 도서
- Prescription: Medicide영어』의 일본어 번역판인 《죽음을 처방하다》(세이도샤, 1999년)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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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uewidemark.n[...]
[88]
뉴스
<오늘의 소사>(13일)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4-04-12
[89]
뉴스
美, 케보키안박사 출옥앞두고 안락사 쟁점화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7-05-30
[90]
뉴스
After 8 years, Kevorkian to go free
http://detnews.com/a[...]
Detroit News
2006-12-14
[91]
웹사이트
"'Dr. Death' speaks out from jail"
http://www.msnbc.msn[...]
2005-09-29
[92]
뉴스
Suicide Machine, Part 2: Kevorkian rushes to fulfill his client's desire to die
Detroit Free Press
1997-03-03
[93]
뉴스
MBC 다큐스페셜 `논픽션 11'로 새단장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199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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