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쓰지는 사누키국(현재의 젠쓰지시) 출신인 고보 대사(홍법대사)가 아버지의 토지를 기증받아 807년에 창건을 시작하여 813년에 완공한 사찰이다. 금당, 오층탑 등 다양한 건물과 국보,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육상자위대 젠쓰지 주둔지가 인접해 있다. 젠쓰지는 동원과 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보 대사의 탄생지인 서원에는 미에이도, 인왕문 등이 있다. 젠쓰지 경내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JR 젠쓰지역이 근처에 위치해 있다.
와카야마현의 고야산, 교토부의 도지와 함께 고보 대사 3대 영장으로 꼽히는 젠쓰지는 헤이안 시대 초기인 807년에 구카이(고보 대사)의 아버지인 사에키노타무라(佐伯田公)를 개기(開基)로 하여 창건되었다. 광대한 경내는 창건지인 동원(가람)과 구카이 탄생지로 여겨지는 서원(탄생원)으로 나뉘어 있다.
금당(중요 문화재)
고보 대사는 사누키국, 현재의 젠쓰지시 출신으로, 젠쓰지는 그의 아버지이자 지역 호족이었던 사에키 타기미(휘: 젠쓰)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807년(다이도 2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813년(코닌 4년)에 낙성되었다.[4] 고보 대사가 당나라 유학 중 스승이었던 혜과가 살았던 장안의 청룡사를 본떠 건립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금당, 대탑, 강당 등 15개의 당우였다고 한다. 절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인 사에키 젠쓰에서 따왔고, 오가쿠산이라는 산호는 향색산, 필산, 아배사산, 중산, 화상산[4]의 5개 산기슭에 위치하여 명명되었다.
1018년(칸닌 2년) "사누키국 젠쓰지사 해"라는 문서가 도지 백합 문서(토지 효고 몬죠)에 처음 등장한다. 이 문서에서 젠쓰지는 도지의 말사로 "고보 대사 어어 건립", "대사 어령소"로 칭해졌고, 고보 대사의 선조에 의한 창건이라는 전승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내에서는 백봉에서 나라 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는 고와(기와)가 출토되었으며, 젠쓰지는 실제로는 사에키 일족의 씨사로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젠쓰지는 천황이나 상황으로부터 보호와 장원 기증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흥륭하기 시작했다. 이는 헤이안 후기에 퍼진 홍법대사 신앙과 젠쓰지에 전해지는 고보 대사의 친필 "순목 (메히키) 대사상"에 대한 숭경이 배경이었다. 1249년 도범 때 탄생원이 건립되어 동쪽의 가람, 서쪽의 탄생원이라는 현재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가마쿠라 시대 젠쓰지의 본사는 도지, 스이신인, 다이가쿠지, 다시 스이신인으로 변천했지만, 무로마치 시대 이후 아시카가 씨의 보호를 받으며 자율적인 경영을 목표로 했다.
1558년(에이로쿠 원년) 미요시 지큐의 병화로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588년(덴쇼 16년) 이코마 지카마사로부터 28석, 이코마 가즈마사로부터 35석을 기증받는 등 재건되었다. 근세에는 다카마쓰 마쓰다이라 가문과 마루가메 교고쿠 가문의 보호를 받아 크게 번성했다. 남겨진 그림 등을 통해 금당과 오중탑 등의 재건에 분주하는 한편, 서원의 어영당을 중심으로 참배 공간을 충실하게 하여 19세기 전반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5]
메이지 시대에 인근에 육군 기지가 설치되어 군도로 발전했으며, 현재도 육상자위대젠쓰지 주둔지가 있다. 에도 시대까지 현재의 동원과 서원은 다른 절이었지만, 메이지 초년에 단일 절이 되었다.
젠쓰지에는 수만 점에 달하는 문서·기록류가 소장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2000년부터 창건 1200년 기념 사업으로 가가와 현립 박물관에 의해 조사, 목록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조사 보고서 등이 간행되고 있다.
2. 1. 창건과 초기 역사 (807년 ~ 12세기)
와카야마현의 고야산, 교토부의 도지와 함께 홍법대사 3대 영장으로 꼽힌다. 헤이안 시대 초기인 807년에 진언종의 개조 구카이(고보 대사)의 아버지인 사에키노타무라(佐伯田公)를 개기(開基)로 하여 창건되었다. 광대한 경내는 창건지인 동원(가람)과 구카이 탄생지로 여겨지는 서원(탄생원)으로 나뉘어 있다.
고보 대사는 사누키국, 현재의 젠쓰지시 출신이다. 『다도군 병풍우라 젠쓰지의 기록』에 따르면 젠쓰지는 고보 대사의 아버지이자 지역 호족이었던 사에키 타기미(휘: 젠쓰)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다이도 2년(807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코닌 4년(813년)에 낙성되었다고 한다[4]. 고보 대사가 당나라 유학 중 스승이었던 혜과가 살았던 장안의 청룡사를 본떠 건립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금당, 대탑, 강당 등 15개의 당우였다고 한다. 절 이름인 젠쓰지는 아버지의 이름인 사에키 젠쓰에서 따왔고, 산호인 오가쿠산은 향색산, 필산, 아배사산, 중산, 화상산[4]의 5개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명명되었다.
젠쓰지에 대한 문헌상의 첫 등장은 『도지 백합 문서(토지 효고 몬죠)』에 수록된 칸닌 2년(1018년)의 "사누키국 젠쓰지사 해"라는 문서이다. 여기서 젠쓰지는 도지의 말사로 등장하며 "고보 대사 어어 건립", "대사 어령소"로 칭해졌고, 고보 대사의 선조에 의한 창건이라는 전승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내에서는 백봉에서 나라 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는 고와(기와)가 출토되었으며, 젠쓰지는 실제로는 사에키 일족의 씨사로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2. 가마쿠라 시대와 중흥 (13세기 ~ 14세기)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 젠쓰지는 천황이나 상황으로부터 보호와 장원 기증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흥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호의 배경에는 헤이안 후기에 퍼진 홍법대사 신앙과 더불어, 젠쓰지에 전해지는 고보 대사의 친필로 여겨지는 "순목 (메히키) 대사상"에 대한 숭경이 있었다. 1249년(겐초 원년) 도범 때 탄생원이 건립되어 동쪽의 가람, 서쪽의 탄생원이라는 현재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젠쓰지의 본사는 도지, 스이신인, 다이가쿠지, 다시 스이신인으로 변천했지만,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아시카가 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율적인 경영을 목표로 했다. 1331년(겐토쿠 3년)부터 중흥의 조라고 불린 유범이 거주하며 오중탑 등의 제당을 재건하고, 1341년(료오 4년)에는 초대 탄생원 주지가 되었다.
2. 3. 무로마치 시대 이후 (15세기 ~ 현재)
1331년(겐토쿠 3년) 중흥의 조라고 불린 유범이 젠쓰지에 거주하며 오중탑 등의 제당을 재건하고, 1341년(료오 4년)에는 초대 탄생원 주지가 되었다.
1558년(에이로쿠 원년) 미요시 지큐의 병화로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588년(덴쇼 16년)에 이코마 지카마사로부터 28석, 이코마 가즈마사로부터 35석을 기증받는 등 재건되었다. 근세에는 다카마쓰 마쓰다이라 가문과 마루가메 교고쿠 가문의 보호를 받아 크게 번성했다. 근세의 젠쓰지에 대한 사료는 적지만, 남겨진 그림 등을 통해 금당과 오중탑 등의 재건에 분주하는 한편, 서원의 어영당을 중심으로 참배 공간을 충실하게 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5]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근에 육군 기지가 설치되어 군도로 발전했으며, 현재도 육상자위대젠쓰지 주둔지가 있다. 에도 시대까지 현재의 동원인 젠쓰지와 현재의 서원인 탄생원은 다른 절이었지만, 메이지 초년에 단일 절이 되었다.
고보 대사(홍법대사)는 사누키국, 현재의 젠쓰지시 출신이다. 『다도군 병풍우라 젠쓰지의 기록』에 따르면 젠쓰지는 고보 대사의 아버지이자 지역 호족이었던 사에키 타기미(휘: 젠쓰)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다이도 2년(807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코닌 4년(813년)에 낙성되었다고 한다. 고보 대사가 입당 중에 스승이었던 혜과가 살았던 장안의 청룡사를 본떠 건립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금당, 대탑, 강당 등 15개의 당우였다고 한다. 절 이름인 젠쓰지는 아버지의 이름인 사에키 젠쓰에서 따왔고, 산호인 오가쿠산은 향색산, 필산, 아배사산, 중산, 화상산의 5개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명명되었다.
젠쓰지에 대한 문헌상의 첫 등장은 『도지 백합 문서(토지 효고 몬죠)』에 수록된 칸닌 2년(1018년)의 "사누키국 젠쓰지사 해"라는 문서이다. 여기서 젠쓰지는 도지의 말사로 등장하며 "고보 대사 어어 건립", "대사 어령소"로 칭해졌고, 고보 대사의 선조에 의한 창건이라는 전승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경내에서는 백봉에서 나라 시대에 거슬러 올라가는 고와가 출토되었으며, 젠쓰지는 실제로는 사에키 일족의 씨사로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흥륭을 맞이하는 것은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 천황이나 상황으로부터의 보호와 장원의 기증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이 보호의 배경에는 헤이안 후기에 퍼진 고보 대사 신앙이 있었고, 탄생지에 전해지는 고보 대사의 친필로 여겨지는 "순목 (메히키) 대사상"에 대한 숭경이 있다. 켄초 원년(1249년) 도범 때 탄생원이 건립되어 동쪽의 가람, 서쪽의 탄생원이라는 현재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젠쓰지의 본사는 도지, 스이신인, 다이가쿠지, 다시 스이신인으로 변천했지만,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아시카가 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율적인 경영을 목표로 했다. 겐토쿠 3년(1331년)부터 중흥의 조라고 불린 유범이 거주하며 오중탑 등의 제당을 재건하고, 료오 4년(1341년)에는 초대 탄생원 주지가 된다.
에이로쿠 원년(1558년) 미요시 지큐의 병화로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덴쇼 16년(1588년)에 이코마 지카마사로부터 28석, 이코마 가즈마사로부터 35석을 기증받는 등으로 재건했다. 근세에는 다카마쓰 마쓰다이라 가문과 마루가메 교고쿠 가문의 보호를 받아 크게 번성했다. 근세의 젠쓰지에 대한 사료는 적지만, 남겨진 그림 등을 통해 금당과 오중탑 등의 재건에 분주하는 한편, 서원의 어영당을 중심으로 참배 공간을 충실하게 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5]。또한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근에 육군 기지가 설치되어 군도로 발전했다. 현재도 육상자위대젠쓰지 주둔지가 있다. 에도 시대까지 현재의 동원인 젠쓰지와 현재의 서원인 탄생원은 다른 절이었지만, 메이지 초년에 단일 절이 되었다. 쇼와 6년(1931년) 대본산으로 승격하여 관장사가 되었고, 진언종 오노파를 진언종 젠쓰지파로 개칭, 쇼와 16년(1941년)에는 진언종 젠쓰지파 총본산으로 승격했다.
다이쇼 14년(1925년) 12월 9일, 기타시라카와노미야 후지코가 방문했다. 쇼와 10년(1935년) 8월 15일, 스미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방문했다. 쇼와 12년(1937년) 4월 6일,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슈코 비가 방문했다.
젠쓰지에는 수만 점에 달하는 문서·기록류가 소장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헤이세이 12년(2000년)부터 창건 1200년 기념 사업으로 현지 가가와 현립 박물관에 의해 조사, 목록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조사 보고서 등이 간행되고 있다.
금당(본당) - 겐로쿠 12년(1699년) 재건. 당 안에 들어가 본존 주변을 뒤까지 돌며 가까이서 배관할 수 있었지만, 바닥의 손상이 심해 오백나한을 이동시킨 것을 계기로 뒤로는 돌 수 없게 되었지만 앞과 옆에서 올려다보며 참배할 수 있다. 이 당의 뒤에는 과거에 강당이 있었다.
* 본존 약사여래좌상(불사·기타가와 운초 제작, 녹나무 寄木造, 옻칠, 옥안, 상고 약 3m의 장육불, 겐로쿠 13년 작[6])
남대문 - 러일 전쟁 승전을 기념하여 1908년경 재건된 정문. 지붕의 네 모퉁이에 사천왕상, 위쪽 왼쪽부터 용, 가릉빈가 2체, 봉황이 있다.
오중탑 - 1902년 완성. 4대. 높이 43m(초석 위~상륜 꼭대기). 오지여래 중 4여래가 1층에, 중존 대일여래는 5층에 모셔져 있다. 매년 5월 연휴 기간 중 2층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4여래와 심주를 배관할 수 있고, 2층에서 경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석가당(칙원상행당) - 호에이 연간(1673년 – 1681년) 재건. 에도 시대 제작의 석가여래좌상을 배관할 수 있다. 원래는 어영당으로 덴포 2년(1831년) 어영당이 신축되었을 때 이축되었다.
종루 - 에도 시대 말기 재건. 하카마고시 형식. 범종은 쇼와 33년(1958년) 작. 칠 수 없다.
적문(赤門) - 본래는 동문의 명칭이지만 주홍색이어서 적문이라고 불린다.
천신사(天神社) - 1914년 건립.
용왕사(龍王社) - 1808년 건립, 1861년 개수. 연못의 작은 섬에 있으며, 기우 기원을 위한 사찰로 선여룡왕을 모신다.
보물관 - (8〜17시) 500엔, 계단 순례와 산탕정 참관과 공통으로 참관할 수 있다. 쇼와 48년 건축.
미영지(미카게노이케) - 대사 입상・미륵보살 석상・양친의 석상을 중앙에, 오른쪽에는 부동명왕 이동자・문수보살 석상, 왼쪽에는 칠개소 순례의 포대 석상을 배치하였다. 사찰 전승에 따르면, 구카이가 당나라로 건너갈 때 어머니를 위해 자화상(순목대사상)을 그릴 때 자기 몸을 비추었다는 연못[11]이다.
성령전 - 쇼와 15년(1940년) 건축.
오백나한 - 금당에서 옮겨졌다.
호야케 지장당 - 쇼와 15년(1940년) 건축. 사마귀나 병의 치유에 공덕이 있다고 믿어진다.
변조각 - 쇼와 59년(1984년) 건립. 1층 현관에 석가여래 좌상과 십대제자 입상, 안쪽에 팔십팔 곳 본존과 등신대 대사 입상.[12] 2층은 대사 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대강당에서 강연회 등에 이용된다. 무료로 참관 가능.
십이지 수호본존 석불・칠복신 석불・화합 개구리
파고다 - 쇼와 45년(1970년) 8월 15일 건립. 금색의 석가상이 안치되어 있다.
주차장 측에서
정각문 - 쇼와 53년(1978년) 건설.
제세교 - 쇼와 53년(1978년) 건설. 중국 톈진교를 본떠 돌 아치교로 만들었으며,[13] 난간의 좌우 모두 진언전지의 팔조의 명호를 나타내는 종자가 있다.
구카이 기념비 - 쇼와 58년(1983년) 건설. 중국 시안시의 청룡사 터에 세워진 것을 축소 복원한 것.
교통 안전 기원전 마오테라스 - 레이와 5년(2023년) 정월 준공.
구비가비 - 다카하마 쿄시(高浜虚子) "피어나 넘쳐 흐르는 꽃도 없네", 다카하마 토시오(高浜年尾) "순례길 아름다우니 애처롭네", 이나하타 테이코(稲畑汀子) "바람 조금 있어 매화 향기 운반하는 정도"가 미영지 옆에 있다. 요사노 텟칸(与謝野鉄幹) "젠쓰지 가을 저녁에 문득 솟아나는 대사님 젊게 밟으셨던 흙"이 변조각 안에 있다. 또한, 호넨 상인 역수지탑의 안내 석판 측면에 "달 그림자 미치지 않는 마을은 없지만 바라는 사람의 마음에 깃든다" "추워도 소매에 넣으렴 서쪽 바람을 아미타의 나라에서 불어온다고 생각하며"라고 새겨져 있다.
목조, 본 기와 지붕, 높이 9.7m, 간구 7.6m, 좌우 소수塀付. 고려문 형식의 평당문[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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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목조 2층 건물, 입모양 지붕, 본 기와 지붕[32]
서원의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 (2010년 4월 28일 등록[33])
명칭
구조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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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안전(誕生院奥殿)
목조 평옥, 기와 지붕[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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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어영당(誕生院御影堂)
목조 평옥, 기와 지붕[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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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어영당 앞 회랑(誕生院御影堂前廻廊)
목조 평옥, 기와 지붕[36]
聖霊殿
탄생원 성령전(誕生院聖霊殿)
목조 평옥, 동판 지붕 및 히바리 지붕[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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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호마당(誕生院護摩堂)
목조 평옥, 동판 지붕[38]
탄생원 호마당 회랑(誕生院護摩堂廻廊)
목조 평옥, 동판 지붕[39]
地蔵堂
탄생원 지장당(誕生院地蔵堂)
목조 평옥, 동판 지붕[40]
염마당 및 건너 복도
탄생원 염마당 및 건너 복도(誕生院閻魔堂及び渡廊下)
목조 평옥, 기와 지붕[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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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인왕문(誕生院仁王門)
목조, 기와 지붕, 간구 3.2m[42]
탄생원 20일 다리(誕生院廿日橋)
석조 桁橋, 다리 길이 6.8m. 폭 5.4m, 각주付[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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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원 칙사문(誕生院勅使門)
목조, 동판 지붕[44]
탄생원 칙사교(誕生院勅使橋)
석조 桁橋, 다리 길이 6.5m, 폭 3.6m, 각주付[45]
弁天社
탄생원 변재천(誕生院弁天社)
목조 평옥, 기와 지붕, 1칸사류 조[46]
진전
탄생원 진전(誕生院宸殿)
목조 평옥, 입모양 지붕 桟瓦 지붕[47]
대현관 및 소현관
탄생원 대현관 및 소현관(誕生院大玄関及び小玄関)
목조 평옥, 입모양 지붕 桟瓦 지붕, 및 입모양 지붕[48]
남토장
탄생원 남토장(誕生院南土蔵)
토장 2층 건물, 寄棟造 桟瓦 지붕[49]
번소
탄생원 번소(誕生院番所)
목조 평옥, 기와 지붕, 입모양 지붕[50]
태고병과 극락호 석축
탄생원 태고병(誕生院太鼓塀)
목조, 기와 지붕[51]
탄생원 극락호 석축(誕生院極楽堀石積)
석조, 연장 193m, 울타리付[52]
'''현 지정 유형 문화재'''
목조 비사문천 입상
불설 관불 삼매경 권 6
'''현 지정 천연 기념물'''
남대문 들어가서 왼쪽의 큰 녹나무 경내의 큰 녹나무
'''젠쓰지시 지정 유형 문화재'''
삼제어묘 젠쓰지 석조물군
향색산 1호 경총 출토 유물
'''(참고) 현 지정 무형 민속 문화재'''
시카시카 춤(シカシカ踊り)
4. 1. 국보 (일본)
금동 석장두(金銅錫杖頭) - 고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 55cm이다.[14] 쇼와 56년(1981년) 6월 9일에 지정되었다.[15]
일자일불 법화경 서품(一字一仏法華経序品) - 11세기 작품으로, 세로 29.4cm, 가로 2124.2cm이다. 세로와 가로로 선을 그어 격자를 만들고 각 칸마다 경문 1자 또는 불상 1구를 배치하여, 경문과 불좌상의 행을 번갈아 배치한 희귀한 장식 경전이다.[16] 글씨는 격조 높고 그림은 소박하고 자유분방하다. 쇼와 28년(1953년) 11월 14일에 지정되었다.[17]
4. 2. 중요문화재 (일본)
地蔵菩薩일본어 입상 - 목조, 소지, 상고 115.5cm, 헤이안 시대 후기, 1901년 3월 27일 지정[21]
吉祥天일본어 입상 - 노송나무, 고색, 상고 135.0cm, 헤이안 시대 후기, 1901년 3월 27일 지정[22]
금당(金堂)(부: 棟札일본어 1매) - 입모양 지붕, 본 기와 지붕. 외관은 2층으로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1중 裳階일본어(모코시)가 붙어있고, 정방 3칸의 몸체 주위에 1칸의 모코시를 둘렀다("칸"은 길이 단위가 아닌, 기둥 사이의 수를 나타냄). 짚(치마키)이 달린 원주를 사용하고, 관통을 많이 사용하며, 조립을 詰組일본어로 하고, 桟唐戸일본어, 꽃머리 창, 파도 연자의 欄間일본어(난간), 새우 무지개 등을 사용하여 선종 양식의 구조와 의장을 많이 사용하지만, 천장을 거울 천장이 아닌 소조 격자 천장으로 한 것은 일본식 요소이다. 기둥에는 짚을 설치하지만 초반은 생략했다. 처마는 몸체를 선종 양식의 부채 처마, 모코시는 평행 처마로 한다[18]。내부는 敷瓦일본어(식와)를 4분의 1로 깔았다. 2012년 12월 28일 지정[19]
오층탑(五重塔)(부: 棟札일본어 2매) - 총 삼나무 조, 3칸 5층 탑, 본 기와 지붕. 1840년 선대는 재건 후 불과 36년 만에 소실. 2년 후 厳暁일본어가 재건 발원했지만 1854년에 착공하여 3대의 棟梁일본어이 참여하여 1902년에 준공되었다. 2층~5층 내부에도 마루를 깔아 사람이 오를 수 있다[18]。또한, 심주는 쇠사슬로 매달려 있지만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다. 2012년 12월 28일 지정[20]
4. 3.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
다음은 젠쓰지(善通寺)의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다.
석가당(釈迦堂): 桁行(건물의 앞면 길이) 5칸, 梁間(건물의 옆면 길이) 6칸, 입모양 지붕(入母屋造), 본 기와 지붕(本瓦葺), 처마唐破風付き向拝(처마에 당파풍이 붙은 向拝, 앞으로 돌출된 지붕) 구조이다.[27]
종루(鐘楼): 桁行 3칸, 梁間 2칸, 입모양 지붕, 본 기와 지붕, 초층 하코고시(袴腰, 허리부분이 넓은 형태), 상층은 의보주 고란付縁(擬宝珠高欄付縁, 난간에 의보주 장식이 있는 형태) 구조이다.[30]
남대문(南大門): 목조, 본 기와 지붕, 높이 9.7m, 간구(間口, 정면 너비) 7.6m, 좌우 소수塀付(小袖塀付, 짧은 담장이 붙어 있음). 고려문(高麗門) 형식의 평당문(平唐門)이다.[31]러일 전쟁 승전을 기념하여 1908년경 재건된 정문으로, 지붕의 네 모퉁이에 사천왕상이 있고, 위쪽 왼쪽부터 용, 가릉빈가 2체, 봉황이 있다.
일반 도로: 가가와현도 48호 젠쓰지 타쿠마 선 시코쿠 어린이와 어른의 의료센터 (0.5km)
자동차도: 다카마쓰 자동차도 젠쓰지IC (4.2km)
6. 주변 정보
와카야마현의 고야산, 교토부의 도지와 함께 홍법대사 3대 영장으로 꼽힌다. 807년에 구카이의 아버지인 사에키노타무라를 개기(開基)로 하여 창건되었다. 광대한 경내는 창건지인 동원(가람)과 구카이 탄생지로 여겨지는 서원(탄생원)으로 나뉘어 있다.[4]
19세기 전반에는 서원의 어영당을 중심으로 참배 공간을 충실하게 하여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5]메이지 시대에는 인근에 육군 기지가 설치되어 군도로 발전했다. 현재도 육상자위대젠쓰지 주둔지가 있다.
젠쓰지에는 수만 점에 달하는 문서·기록류가 소장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창건 1200년 기념 사업으로 현지 가가와 현립 박물관에 의해 조사, 목록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조사 보고서 등이 간행되고 있다.
이누즈카(犬塚) - 젠쓰지의 한 블록 동쪽 골목의 주택가 중간에 있다. 응회암 쇄설암으로 만들어진 삿갓 탑파로 높이 2.5m이며 범자(梵字) '반(バン)'이 새겨져 있다. 추정되는 가마쿠라 시대 작품으로 작자는 불명이다. 의견 전설의 개를 모시고 있다. 젠쓰지시의 사적으로 1987년 7월 21일 지정되었다.[53]
아카몬 시치부쓰야쿠시(赤門七仏薬師) - 젠쓰지의 아카몬(赤門)을 나와서 100m 직진한 상점가 한쪽에 있다. 젠쓰지에서 3km 떨어진 요시하라 오이케(吉原大池) 호숫가에 있는 시치부쓰야쿠시도(七仏薬師堂)에서 권청(勧請)되어 건립되었다.
고시키산(香色山) - 젠쓰지의 뒷산에 있는 해발 153.2m의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산으로, 산 정상에는 사에키 나오토오조(佐伯直遠祖)의 신이라고 새겨진 석묘와 부동명왕 및 애염명왕의 석상이 있다. 또한, 야요이 시대의 석관묘와 헤이안 시대의 경총(経塚)이 발굴되었다.
7. 기타
와카야마현의 고야산, 교토부의 도지와 함께 홍법대사 3대 영장에 꼽힌다. 헤이안 시대 초기인 807년에 진언종의 개조 구카이의 아버지인 사에키노타무라(佐伯田公)를 개기(開基)로 하여 창건되었다. 광대한 경내는 창건지인 동원(가람)과 구카이 탄생지로 여겨지는 서원(탄생원)으로 나뉘어 있다.[4]
고보 대사(홍법대사)는 사누키국, 현재의 젠쓰지시 출신이다. 『다도군 병풍우라 젠쓰지의 기록』에 따르면 젠쓰지는 고보 대사의 아버지이자 지역 호족이었던 사에키 타기미(휘: 젠쓰)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다이도 2년(807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코닌 4년(813년)에 낙성되었다. 고보 대사가 입당 중에 스승이었던 혜과가 살았던 장안의 청룡사를 본떠 건립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금당, 대탑, 강당 등 15개의 당우였다. 절 이름인 젠쓰지는 아버지의 이름인 사에키 젠쓰에서 따왔고, 산호인 오가쿠산은 향색산, 필산, 아배사산, 중산, 화상산의 5개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명명되었다.[4]
쇼와 6년(1931년) 대본산으로 승격하여 관장사가 되었고, 진언종 오노파를 진언종 젠쓰지파로 개칭, 쇼와 16년(1941년)에는 진언종 젠쓰지파 총본산으로 승격했다.
다이쇼 14년(1925년) 12월 9일, 기타시라카와노미야 후지코가 방문하였다. 쇼와 10년(1935년) 8월 15일, 스미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방문하였다. 쇼와 12년(1937년) 4월 6일,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슈코 비가 방문하였다.
젠쓰지에는 수만 점에 달하는 문서·기록류가 소장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헤이세이 12년(2000년)부터 창건 1200년 기념 사업으로 현지 가가와 현립 박물관에 의해 조사, 목록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조사 보고서 등이 간행되고 있다.
숙방 : 있음 (70실, 200명). 숙방 이름은 "이로하 회관"이며, 온천이 솟아나는 대욕장 "대사의 마을 탕 온천"이 있다. 저녁 식사, 아침 식사가 제공되며, 숙박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 1명부터 숙박할 수 있고 순례자 외의 손님도 접수하며 전화로만 예약할 수 있다. 12월 25일 ~ 1월 5일 및 사찰 행사로 휴업한다.
주차장: 숙박자용은 무료이며, 서원의 정각문 앞에 대규모 주차장이 있다. 일반 차량은 300JPY이다.
; 관동 별원: 1층에는 젠쓰지 금당 본존 약사여래를 축소 재현한 분신이 안치된 본당이 있고, 2층은 홍법대사(弘法大師)의 초상이 걸린 다목적 홀이다.
: 별격 본산. 다이도 2년, 고보 대사의 창건으로 당시에는 '''십선방'''이라고 불렸으며, 한 산의 사찰 사무를 장악하고 통행 수첩 등도 발행했다. 관지원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중세에 들어서부터이다. 다이쇼 14년에 현재의 건물이 재건되었으며, 당 사찰의 본존인 십일면관음보살은 자안관음이라고 불리며, 다카마쓰번 주였던 마쓰다이라 공의 딸이 암자를 지어 머물렀던 절의 본존을 옮겨온 것이라고 전해지며, 순산과 육아의 수호불로 신앙되고 있다.[56] 사누키 33 관음 영장 25번.
; 화장원
: 과거에는 '''화장방'''이라고 불렸으며 승방의 뒤 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메이지 33년, 현재(2017년)의 암주의 조부가 은거한 절로서, 젠쓰지에 맡겨졌던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진 비사문천을 본존으로 복원했다.
; 오치원
: 향색산의 등산 입구에 있으며, 정1위 이나리 신사의 붉은 도리가 젠쓰지 대주차장 너머로 보이며, 붉은 사당이 있다. 향색산 중턱에는 그 안쪽 궁이 있다. 본당에는 다섯 개의 큰 오지여래 석상이 나란히 있으며, 석가여래 석상, 고보 대사 석상이 양 옆을 굳건히 지킨다. 아라미타마 신사나 미니 시코쿠가 있다.
; 옥천원
: 고보 대사가 샘을 파서 아미타여래에게 어수(아카)를 공양하고, 비밀리에 개안했다고 전해지는 옥의 샘이 있다. 사이교 법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머물렀을 때 "바위에 솟아나는 아카이의 물의 불가사의함은 마음이 맑아져도 머무는 달빛인가"라고 읊었다고 전해진다.
; 선유사
: 고보 대사가 어린 시절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놀았다고 전해지는 곳. 납경은 젠쓰지 대사당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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