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키물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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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치키물라주는 과테말라 남동부에 위치한 주로, 1871년에 행정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 초르티 마야인들이 거주했으며, 스페인 정복 이후 구세계 질병, 전쟁,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원주민 인구가 감소했다. 치키물라라는 이름은 "많은 참새의 장소"를 의미하는 나우아틀어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11개의 지방 자치 단체로 나뉘어 있으며, 주요 생산품은 소, 옥수수, 콩, 커피 등이다. 에스키풀라스는 중앙 아메리카의 중요한 종교 순례지이며, 2021년에는 온두라스 이민자 행렬이 이 지역을 통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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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키물라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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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치키물라 데파르타멘토 |
| 위치 | 과테말라 |
| 수도 | 치키물라 |
| 설립 | 1871년 |
| 면적 | 2376km² |
| 인구 통계 | |
| 총 인구 (2018년) | 415063명 |
| 도시 인구 | 155171명 |
| 민족 | 초르티, 라디노 |
| 언어 | 초르티, 스페인어 |
| 행정 구역 | |
| 자치체 | 11개 |
| 기타 정보 | |
| ISO 코드 | GT-CQ |
| 고도 | 424m |
2. 역사
스페인의 침략 이전, 현재의 치키물라주 지역은 코판(현재 온두라스)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 왕국 치키물하(또는 파야키)의 일부였다.[4] '치키물라'라는 지명은 나우아틀어로 "많은 참새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 chiquimoltlān|치키몰틀란nah에서 유래했다.[5]
16세기 초,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이 시작되었고,[7] 원주민들의 저항이 있었으나 1530년대 초반까지 정복 활동이 이어졌다.[8][7] 이 과정에서 초르티 마야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이 지역은 스페인 식민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6] 스페인 정복은 유럽에서 온 질병의 확산, 전쟁, 광산에서의 강제 노동 및 ''엔코미엔다'' 제도를 통한 착취를 동반했으며, 이는 원주민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여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9]
과테말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871년 11월 10일 행정 칙령을 통해 치키물라주의 행정 구역이 조정되었다. 이 칙령으로 기존 치키물라에서 현재의 사카파 주와 이살발 주에 해당하는 지역이 분리되어 나가면서 오늘날의 행정 구역 경계가 형성되었다.[3]
2. 1. 고대 마야 문명
스페인과의 접촉 당시, 치키물라 지역은 코판 (현재 온두라스)을 수도로 하는 치키물하 또는 파야키라는 원주민 왕국의 일부였다. 이 왕국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일부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었다.[4] '치키물라'라는 이름은 나우아틀어 chiquimoltlānnah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많은 참새"를 뜻하는 chiquimolinnah과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tlānnah이 합쳐져 "많은 참새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5]현재의 치키물라주 지역인 시에라 데 치키물라("고원의 치키물라")에는 정복 당시 초르티 마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6]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의 첫 정찰은 1524년에 이루어졌으며, 에르난도 데 차베스, 후안 두란, 바르톨로메 베세라, 크리스토발 살바티에라 등이 탐험대에 포함되어 있었다.[7] 1526년, 후안 페레즈 다르돈, 산초 데 바라오나, 바르톨로메 베세라 세 명의 스페인 대위는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명령을 받아 치키물라를 침략했다.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과도한 요구에 반발하여 곧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 반란은 1530년 4월 스페인 군대에 의해 신속하게 진압되었다.[8] 그러나 이 지역은 1531년부터 1532년까지 이어진 호르헤 데 보카네그라의 원정을 통해 할라파 일부 지역까지 포함하게 된 후에야 완전히 정복된 것으로 간주되었다.[7]
스페인 정복자들이 가져온 구세계의 질병, 계속된 전쟁,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과 엔코미엔다 제도는 과테말라 동부 원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 결과, 원주민 인구는 정복 이전 수준으로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9]
2. 2. 스페인 식민 시대
스페인과의 접촉 당시, 치키물라는 코판티(현재 온두라스의 코판)를 수도로 하는 치키물하 또는 파야키라는 원주민 왕국의 일부였다. 이 왕국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일부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었다.[4] 치키물라라는 이름은 나우아틀어 chiquimoltlān|치키몰틀란nah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많은 참새"를 의미하는 chiquimolin|치키몰린nah과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tlān|-틀란nah이 결합하여 "많은 참새의 장소"라는 뜻이다.[5]현재의 주 지역을 포함하는 시에라 데 치키물라("고원의 치키물라")에는 정복 당시 초르티 마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6] 이 지역에 대한 최초의 스페인 정찰은 1524년에 이루어졌으며, 에르난도 데 차베스, 후안 두란, 바르톨로메 베세라, 크리스토발 살바티에라 등이 탐험대에 포함되어 있었다.[7] 1526년, 페드로 데 알바라도의 명령을 받은 스페인 대위 후안 페레즈 다르돈, 산초 데 바라오나, 바르톨로메 베세라가 치키물라를 침략했다.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과도한 요구에 맞서 곧 반란을 일으켰으나, 1530년 4월에 진압되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1531년부터 1532년까지 호르헤 데 보카네그라가 이끄는 원정을 통해 할라파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게 될 때까지 완전히 정복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7]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구세계에서 온 질병, 전쟁,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과 ''엔코미엔다'' 제도를 통한 착취는 과테말라 동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 결과 원주민 인구는 스페인 정복 이전 수준으로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9]
2. 3. 독립 이후
현대 행정 구역은 1871년 11월 10일 행정 칙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칙령은 치키물라 행정 구역의 면적을 줄여 현재 사카파 주와 이살발 주의 일부를 형성하는 부분을 분리했다.[3]3. 지리
치키물라주는 과테말라 남동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사카파 주, 서쪽으로는 할라파 주와 사카파 주, 남쪽으로는 후티아파 주와 엘살바도르, 동쪽으로는 온두라스와 국경을 접한다.[10] 주도는 치키물라 시이며, 수도인 과테말라 시에서는 동쪽으로 약 170km 거리에 있다.[11]
주요 지형적 특징으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주를 가로지르는 산맥이 있다. 또한, 주는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두 개의 주요 유역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 강이 흐른다.[12] 이 지역은 다양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은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채굴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12]
3. 1. 지형
치키물라는 과테말라의 남동부에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는 사카파 주, 서쪽으로는 할라파 주와 사카파 주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후티아파 주와 엘살바도르, 동쪽으로는 온두라스와 접해 있다.[10]주도는 치키물라 시이며, 과테말라 시에서 170km 떨어져 있다.[11]
산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주를 가로지른다. 이 산맥은 할라파 주와의 경계에서 시작하여 메렌돈 산맥으로 이어지며, 이 산맥은 인접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까지 뻗어 있다. 치키물라 주는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유역과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유역, 두 개의 유역을 가지고 있다. 주의 주요 강은 리오 그란데 또는 카모탄 강으로, 온두라스에서 발원하여 호코탄 강이 되었다가 모타구아 강으로 합류하여 최종적으로 카리브해로 흘러든다. 주의 남쪽 지역에서는 앙기아투 강과 오스투아 강이 중요한 강이다.[12]
이 주는 많은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은이 채굴되어 왔다.[12]
3. 2. 수계
치키물라주는 두 개의 주요 유역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대서양으로, 다른 하나는 태평양으로 흘러간다. 주의 주요 강은 리오 그란데(Rio Grande) 또는 카모탄 강(Río Camotán)으로, 온두라스에서 발원하여 호코탄 강(Río Jocotán)을 거쳐 모타구아 강(Río Motagua)으로 합류하며 최종적으로 카리브해로 흘러 들어간다. 주 남부 지역에서는 앙기아투 강(Río Anguiatú)과 오스투아 강(Río Ostúa)이 중요한 하천이다.[12]4. 기후
치키물라는 두 개의 기후 구역으로 나뉜다. 콘셉시온 라스 미나스(Concepción Las Minas), 에스키풀라스(Esquipulas), 이팔라(Ipala), 올로파(Olopa), 케찰테페케(Quetzaltepeque) 시는 온대 기후이고, 카모탄(Camotán), 치키물라(치키물라), 호코탄(Jocotán), 산 호아킨토(산 호아킨토), 산 호세 라 아라다(San José La Arada), 산 후안 에르미타(San Juan Ermita) 시는 열대 기후이다.[13] 온대 지역의 평균 기온은 27°C~28°C이며, 열대 지역은 36°C~38°C에 이른다. 기후 변화는 치키물라주에 큰 영향을 미쳐 최고 기온이 42°C에 달하고 강수량 감소로 인해 식량 부족에 기여하고 있다.[15] 2009년에서 2013년 사이 최저 기온은 2010년에 7.6°C였고, 같은 기간 상대 습도는 74.5%에서 76.6% 사이였다.[14] 연평균 강수량은 1036mm이다.[15]
5. 인문 환경
치키물라주의 인문 환경은 다양한 인구 통계적 특징을 보인다. 2018년 기준 인구는 415,063명이며[1], 2002년 조사에서는 인구의 약 83%가 비원주민이었고, 약 17%가 원주민이었다.[18] 원주민의 대다수는 초르티 마야족이다.[16][17] 스페인어가 주요 사용 언어이다.[17]
사회적으로는 높은 빈곤율과 문맹률이 과제로 남아있다. 2006년 기준으로 주민의 약 6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며, 이 중 27.7%는 극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18] 이러한 빈곤 문제는 주 내에서도 지역적 차이를 보여, 북부 지역에서 더 심각한 경향이 나타난다.[19] 문맹률은 2013년 기준 25.5%로, 이전보다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22] 자세한 인구 통계, 언어 분포, 사망률 등은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인구
2018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치키물라주의 인구는 415,063명이다.[1] 과거 인구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2002년 기준으로 인구의 83.33%는 비원주민이었고, 16.67%는 원주민이었다.[18] 원주민의 대다수는 초르티 마야족이며,[16] 소수의 신카족과 가리푸나족도 거주한다.[17] 같은 해(2002년) 치키물라주 인구는 과테말라 전체 인구의 2.7%를 차지했으며,[20] 인구 밀도는 km2당 127명으로, 22개 주 가운데 10번째로 높았다.[21]
2002년 인구 분포를 보면, 26%가 도시 지역에, 74%가 농촌 지역에 거주했다.[24] 가구당 평균 인구는 5.1명이었으며, 도시 지역은 4.5명, 농촌 지역은 5.3명으로 나타났다.[25] 2002년 연령별 인구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총 인구 (2002년) | 0–6세 | 7–14세 | 15–17세 | 18–59세 | 60–64세 | 65세 이상[23] |
|---|---|---|---|---|---|---|
| 302,485 | 63,814 | 65,297 | 21,020 | 130,841 | 6,558 | 14,995 |
| 100% | 21.1% | 21.6% | 6.9% | 43.3% | 2.2% | 4.9% |
사회 지표를 보면, 2006년 기준으로 주민의 59.5%가 빈곤 상태에 있었고, 이 중 27.7%는 극빈곤 상태였다.[18] 빈곤 수준은 주 북부 지역에서 더 높고 남부 지역에서 더 낮은 경향을 보인다.[19] 2013년에는 인구의 25.5%가 문맹으로 조사되었으나, 이는 이전 5년간 문맹률이 감소한 결과이다.[22]
5. 2. 언어
200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치키물라주의 민족 구성과 3세 이상 인구의 모국어 분포는 다음과 같다.[17]| 분류 | 그룹 | 인구 (2002년) | 라디노(스페인어) | 마야 | 싱카 | 가리푸나 | 기타 |
|---|---|---|---|---|---|---|---|
| 민족 | 전체 인구 | 302,485 | 255,921 | 45,558 | 76 | 20 | 910 |
| 민족 | % | 100% | 84.6% | 15.1% | 0.0% | 0.0% | 0.3% |
| 모국어 | 3세 이상 | 275,222 | 263,486 | 11,548 | 31 | 39 | 118 |
| 모국어 | % | 인구의 91% | 95.7% | 4.2% | 0.0% | 0.0% | 0.0% |
5. 3. 사망률
2013년 치키물라주에서는 2,095명의 사망자가 등록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 감소한 수치이다. 또한, 이는 과테말라 전국 사망자 수의 2.9%에 해당한다.[26]2013년 주요 사망 원인은 다음과 같다.[27]
6. 행정 구역

과테말라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지방 정부는 과테말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주지사가 이끈다.[28] 치키물라 주는 19세기 후반에 부서로 설립된 이후 11개의 지방 자치 단체로 나뉘었다.[3]
| 지방 자치 단체 | 2002년 인구[18] | 원주민 비율 %[18] | 비원주민 비율 %[18] | 면적[11] |
|---|---|---|---|---|
| 카모탄 | 48,440 | 83.16% | 16.84% | 231km2 |
| 치키물라 | 91,951 | 2.63% | 97.37% | 353km2 |
| 콘셉시온 라스 미나스 | 12,853 | 1.53% | 98.47% | 215km2 |
| 에스키풀라스 | 53,201 | 1.65% | 98.35% | 502km2 |
| 이팔라 | 19,851 | 0.85% | 99.15% | 231km2 |
| 호코탄 | 53,960 | 81.25% | 18.75% | 252km2 |
| 올로파 | 22,993 | 34.08% | 65.92% | 112km2 |
| 케찰테페케 | 26,382 | 1.57% | 98.43% | 245km2 |
| 산 하신토 | 12,005 | 2.20% | 97.80% | 71km2 |
| 산 호세 라 아라다 | 8,081 | 2.70% | 97.30% | 116km2 |
| 산 후안 에르미타 | 13,108 | 8.92% | 91.08% | 90km2 |
7. 경제
치키물라 주의 경제는 주로 농업과 광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 외에도 수공예와 상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다양한 농산물과 소 외에도 도자기, 밧줄, 가죽, 야자 제품 등이 있다.[3]
수공예 부문에서는 풍부한 야자나무를 재료로 하여 모자, 빗자루, 직물류 등이 생산되며, 특히 다양한 용도의 바구니 제작이 활발하다.[29] 또한 점토를 이용하여 도자기, 기와, 벽돌 등을 만들고, 악기나 가구 등도 제조된다.
상업 부문에서는 주도인 치키물라가 과테말라 동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7. 1. 농업
치키물라 주의 경제는 농업 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주요 생산품은 옥수수, 콩, 강낭콩, 쌀, 감자,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 바나나와 같은 열대 과일, 담배, 땅콩 등이다.[3] 또한, 소 사육도 활발하며, 과테말라 내 다른 주에 비해 대규모 농장이 많은 편이다.7. 2. 광업
최근 생산량이 감소하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광업은 치키물라 주의 중요한 산업 분야 중 하나이다. 산호세 라 아라다 지역에서는 석고가 산출되며, 주 내에는 벤토나이트와 펄라이트 등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콘셉시온 라스 미나스의 카냐다 지구에서는 납, 아연, 은 광맥을 탐사하고 채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치키물라 주의 토양에는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특히 은, 납, 철, 구리, 안티몬, 석영, 역청탄, 사금 등은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8. 관광
(내용 없음)
8. 1. 에스키풀라스

에스키풀라스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순례지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에스키풀라스 대성당에 모셔진 에스키풀라스의 검은 그리스도 상으로 유명하다.[30] 이 조각상은 기적적인 현상과 관련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31]
9. 사회 문제
(내용 없음)
9. 1. 이민 행렬
2021년 1월, 산 페드로 술라에서 출발한 7,000명에서 9,000명 규모의 온두라스 이민자 행렬이 미국으로 향하던 중 치키물라시 인근 마을인 바도 혼도에서 경찰선을 돌파했다.[32]참조
[1]
웹사이트
Population of departments in Guatemala
https://www.citypopu[...]
[2]
간행물
INE 2002, p. 12
[3]
간행물
Hernández and González 2004
[4]
간행물
SEGEPLAN 2001, p. 12
[5]
간행물
Carpio Rezzio 1999, p. 4
[6]
간행물
Castro Ramos 2003, p. 40
[7]
간행물
Dary Fuentes 2008, p. 59
[8]
간행물
Putzeys and Flores 2007, p. 1475
[9]
간행물
Dary Fuentes 2008, p. 60
[10]
간행물
SEGEPLAN 2001, p. 10
[11]
간행물
SEGEPLAN 2001, p. 11
[12]
간행물
Carpio Rezzio 1999, p. 5
[13]
간행물
SEGEPLAN 2001, pp. 18–19
[14]
간행물
INE 2014,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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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SEGEPLAN 2001, p. 19
[16]
간행물
SEGEPLAN 2001, p. 13
[17]
간행물
INE 2002, p. 75
[18]
간행물
SEGEPLAN 2001, p. 14
[19]
간행물
INE 2014, p. 25
[20]
간행물
INE 2002, p. 15
[21]
간행물
INE 2002, p. 16
[22]
간행물
Ine 2014, p. 23
[23]
간행물
INE 2002, p.14
[24]
간행물
INE 2002, p. 18
[25]
간행물
INE 2002,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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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INE 2014,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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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INE 2014,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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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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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간행물
SEGEPLAN 2001, p. 18
[31]
간행물
Franco Sandoval 2003, p. 73
[32]
뉴스
Guatemala cracks down on US-bound migrant caravan {{!}} DW {{!}} 17.01.2021
https://www.dw.com/n[...]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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