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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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리스의 심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 중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하는 내용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를 두고 세 여신이 다투자, 제우스는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긴다. 각 여신은 파리스에게 뇌물을 제안했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에게 사과를 주었다. 이 선택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중세 시대 말부터 예술 작품의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회화, 조각, 모자이크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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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의 심판 | |
---|---|
파리스의 심판 | |
![]() | |
신화적 배경 | |
사건 | 파리스의 심판 |
관련 인물 | 파리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
미술 | |
주제 | 파리스의 심판 |
관련 미술 작품 | |
화가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엔리케 시모네 산드로 보티첼리 루카스 크라나흐 (엘더) 라파엘로 산치오 프랑수아 부셰 카를 반 로 한스 폰 아헨 마르크안토니오 라이몬디 프란스 플로리스 앙투안 바토 세자르 반 에버딩겐 |
소장처 | |
루벤스 작품 | 프라도 미술관 국립 회화관 |
시모네 작품 | 치니 궁전 미술관 |
2. 내용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영웅 펠레우스와 바다의 님프 테티스(아킬레우스의 부모)의 결혼을 기념하여 올림포스 산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5] 하지만 불화를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불화와 다툼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했다.[18][19] 이에 분노한 에리스는 연회장에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καλλίστῃ|kallistēigrc)[7]라고 쓰인 황금 사과 하나를 던져 넣었다.[6][18][19] (일부 설에서는 인구가 너무 많아진 것을 걱정한 제우스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에리스를 초대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이 황금 사과를 두고 신들의 여왕 헤라, 지혜의 여신 아테나,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벌어졌다.[18][19]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판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우스는 어느 누구의 편도 들기를 원치 않아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인 파리스(알렉산드로스)에게 심판을 맡기기로 했다.[18][19] 당시 파리스는 이다 산에서 양치기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전에 소로 변신한 아레스와의 경쟁에서 보여준 공정함 때문에 심판자로 선택되었다.[8]
헤르메스의 인도로 이다 산에서 파리스를 만난 세 여신은 각자 보상을 제안했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여 황금 사과를 주었다.[19][20] 이 결정은 이후 트로이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며, 선택받지 못한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와 트로이에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19]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는 고대부터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24.25–30)에서도 간략하게 언급될 정도로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였으며, 현재는 소실된 서사시 ''키프리아''에 더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2] 이후 오비디우스, 루키아노스, 가짜 아폴로도로스, 히기누스 등 후대의 작가들도 이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다루었다. 기원전 7세기 킵셀루스의 상자 유물에도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으며,[3] 기원전 6세기 초부터 고대 그리스의 도기 화가들이 즐겨 그린 소재였다.[4]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 여신의 누드를 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시 큰 인기를 얻었다.
2. 1. 세 여신의 제안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은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이다 산의 샘에서 목욕한 후 산에서 파리스를 만났다. 파리스가 그들을 살펴보는 동안, 각 여신은 자신들의 권능을 이용해 파리스를 매수하려 했다.[18][19]
- 헤라: 유럽과 아시아의 왕이 되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19][20]
- 아테나: 지혜와 전쟁에서의 승리 및 기술을 약속했다.[19][20]
- 아프로디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즉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주겠다고 제안했다.[19][20] (아테나고라스가 인용한 ''키프리아'' 단편에 따르면, 카리테스와 호라이가 꽃과 노래로 아프로디테의 매력을 더했다고 한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에게 황금 사과를 건넸다.[19][20] 이 결정으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헤라와 아테나의 강력한 적의를 사게 되었다.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간 사건은 그리스인들의 원정을 촉발했고, 이는 트로이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20] 트로이 전쟁 동안 파리스를 미워하게 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편에 서서 싸웠다.[19]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는 예술가들에게 세 명의 아름다운 여신 누드를 묘사할 기회를 제공했지만[9], 신화적으로는 각 여신이 제시한 가치(권력, 지혜, 아름다움/사랑)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헤라는 혼인 질서와 정절을 중시하는 여신으로 묘사되는 반면, 아프로디테는 성적인 매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여신으로 그려진다. 아테나의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녀를 남성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지혜와 전쟁에 능한, 비성적인 존재로 간주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프랑스의 비교 신화학자 조르주 뒤메질은 삼기능 가설에 입각하여 이 신화를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헤라가 '주권', 아테나가 '전투', 아프로디테가 '생산(풍요와 다산)'의 기능을 상징한다고 보았다.[21] 이 관점에서 파리스는 '생산'에 해당하는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 2. 파리스의 선택과 그 결과
제우스는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 누구의 편도 들기 어려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이데 산에서 양치기로 지내던 파리스(알렉산드로스)에게 심판을 맡겼다.[8][18][19] 파리스는 이전에 황소로 변신한 아레스와의 경쟁에서 자신의 상을 받은 황소를 아레스가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아레스에게 상을 수여하며 공정함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8] 헤르메스의 안내를 받은 세 여신은 이데 산의 샘에서 목욕한 후 파리스 앞에 섰다.파리스가 심사숙고하는 동안, 여신들은 각자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그를 설득하려 했다.
- 헤라(로마 신화의 유노)는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를 약속했다.[19][20]
- 아테나(로마 신화의 미네르바)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지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19][20]
-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베누스)는 카리테스와 호라이의 도움으로 매력을 한껏 뽐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19][20] 이 여인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였다.[19]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에게 황금 사과를 건넸다.[19][20]
이 선택은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얻게 된다. 일부 이야기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했다고 전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반해 자발적으로 따라나섰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그리스인들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 원정길에 올랐고, 이는 트로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20] 또한, 파리스에게 선택받지 못한 헤라와 아테나는 깊은 원한을 품고 트로이 전쟁 내내 그리스 편에 서서 트로이를 공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19]

한편, 후대의 이야기 중에는 제우스의 딸인 헬레네가 반신으로 여겨지면서, 파리스가 트로이로 데려간 것은 헬레네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을 본떠 구름으로 만든 환영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신성한 존재인 헬레네가 인간에게 납치당했다는 불경함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해석된다.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는 예술가들에게 세 명의 아름다운 여신을 누드로 묘사할 기회를 제공했으며,[9] 에우리피데스 이후에는 단순히 미모 경쟁을 넘어 각 여신이 제안한 뇌물(권력, 지혜, 사랑)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주제가 되었다.[9] 알프레드 J. 반 빈데켄스는 본래 헤라가 가장 아름다웠으나, 혼인 질서를 중시하고 질투심 많은 성격 탓에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 반면, 아프로디테는 성적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선택받았다고 주장했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 능력을 상징하는 비성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그녀의 분노는 트로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10] 프랑스의 비교 신화학자 조르주 뒤메질은 삼기능 가설에 입각하여 헤라를 주권, 아테나를 전투(지혜), 아프로디테를 생산(풍요, 사랑) 기능과 연결했다. 파리스가 '생산'에 해당하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것은 결국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한 결정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21]
3. 해석
많은 신화적 이야기가 그렇듯이, 파리스의 심판에 대한 세부 내용은 출처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24.25–30)에서는 이 심판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는데, 이는 이미 당시의 청중들에게 이 사건이 잘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더 완전한 이야기는 서사시 사이클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소실된 서사시 ''키프리아''에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일부 단편과 요약본만이 남아 있다.[2] 후대의 작가들인 오비디우스 (''헤로이데스'' 16.71ff, 149–152 및 5.35f), 루키아노스 (''신들의 대화'' 20), 가짜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카'', E.3.2), 그리고 히기누스 (''파불라에'' 92) 등은 각자의 관점이나 목적에 따라 이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전달했다.
이 이야기는 문헌 기록 이전에도 예술 작품을 통해 묘사되었다.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의 참주였던 킵셀루스가 봉헌한 상아와 금으로 만든 상자에도 이 장면이 새겨져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 헤르메스는 프리아모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즉, 파리스]에게 세 여신, 즉 아름다움을 판단해야 할 여신들을 데려왔으며, 그들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여기 헤르메스가 있는데, 그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헤라, 아테나 및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중재하도록 보여주고 있다.[3]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주제는 기원전 6세기 초부터 고대 그리스의 도기 화가들이 즐겨 다루었으며,[4] 이후 그리스와 로마 미술 전반에 걸쳐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는 세 명의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져 다시금 큰 주목을 받았다.
한편, 프랑스의 비교 신화학자 조르주 뒤메질은 자신이 제시한 삼기능 가설에 입각하여 이 신화를 해석하기도 했다. 뒤메질은 인간 사회가 세 가지 기능, 즉 '주권'(헤라), '전투'(아테나), '생산'(아프로디테)[21]을 담당하는 계급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리스가 '생산'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것은 생산 기능만을 중시한 결정이며, 이 선택이 결국 트로이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변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 전승에서는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직접 데려간 것으로 묘사되지만, 후대로 가면서 제우스의 딸인 헬레네가 반신으로 신격화되자 불경함을 피하기 위해 다른 해석이 등장했다. 즉, 파리스가 실제로 데려간 것은 헬레네 본인이 아니라, 헤라나 제우스가 헬레네의 모습을 본떠 구름으로 만든 환영이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4. 예술 작품 속 파리스의 심판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이야기인 '파리스의 심판'은 미의 여신을 가리는 극적인 장면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20] 다양한 시대와 장르에 걸쳐 회화, 조각, 공예 등 여러 형태로 재해석되었으며,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나 특징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 아테나: 올빼미를 동반하거나 투구, 갑옷 등 무구를 착용 또는 옆에 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아프로디테: 아들인 에로스(큐피드)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 헤라: 신성한 동물인 공작을 데리고 있거나 여왕으로서 왕관을 쓰고 있다.
- 헤르메스: 신들의 전령으로, 날개 달린 모자나 신발을 착용하거나 카두케우스(케뤼케이온) 지팡이를 들고 있다. 파리스에게 여신들을 데려오는 역할로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 파리스: 트로이의 왕자이지만 목동으로 자랐기 때문에 목동 복장을 하고 있거나, 심판의 매개체인 황금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4. 1. 회화

이 주제는 중세 시대 말기부터 미술에서 인기를 얻었다. 세 여신 모두 일반적으로 누드로 묘사되었지만, 고대 미술에서는 아프로디테만이 옷을 벗었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11] 세 명의 여성 누드가 등장한다는 점이 이 주제의 매력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이 주제는 채색 필사본에 등장했으며, 15세기 이탈리아 잉크 스탠드 및 마이올리카로 제작된 다른 작품, 그리고 ''카소네''를 포함한 장식 미술에서 인기가 있었다.[12] 이젤 그림의 주제로서, 이는 북유럽에서 더 흔하게 나타났지만,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1515년경의 판화는 라파엘로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고 로마 석관에서 파생된 구성을 사용하여 매우 영향력 있는 처리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 판화의 영향으로 파리스가 프리기아 모자를 쓴 모습은 이후 대부분의 버전에서 특징이 되었다.[13]
이 주제는 루카스 크라나흐에 의해 여러 번(23번으로 추정) 그려졌으며, 특히 북유럽 매너리즘 화가들에게 매력적인 소재였다. 루벤스는 그의 경력의 여러 시점에서 이 주제의 여러 구도를 그렸다. 와토와 앙겔리카 카우프만은 18세기에 이 주제를 그린 예술가 중 하나였다. 파리스의 심판은 19세기 아카데미즘 화가들에 의해 자주 그려졌으며, 르누아르와 폴 세잔과 같은 그들의 더 진보적인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서도 (덜 자주지만) 그려졌다. 이 주제를 그린 후기 예술가로는 앙드레 로트, 엔리케 시모네 (''엘 후이시오 데 파리스'' 1904),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등이 있다.
이보 잘리거 (1939), 아돌프 치글러 (1939), 요제프 토라크 (1941)도 나치 시대 동안 독일의 부흥을 선전하기 위해 이 고전적인 신화를 사용했다.[14]
'''주요 작품 목록'''
4. 2. 조각
이보 잘리거 (1939), 아돌프 치글러 (1939), 요제프 토라크 (1941)도 나치 시대 동안 독일의 부흥을 선전하기 위해 이 고전적인 신화를 조각으로 사용했다.[14]
4. 3. 모자이크

4. 4. 기타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는 중세 시대 말기부터 미술 분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주제가 매력적이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을 나체로 묘사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고대 미술에서는 주로 아프로디테만 옷을 벗은 모습으로 그려졌고, 그마저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11] 세 명의 여성 누드가 등장한다는 점은 예술가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주제는 채색 필사본에 등장했으며,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잉크 스탠드, 마이올리카(주석 유약 도기), ''카소네''(혼수함) 등 다양한 장식 미술품의 소재로 인기가 있었다.[12] 이젤 그림의 주제로는 북유럽에서 더 흔하게 다루어졌지만, 이탈리아에서도 중요한 작품이 나왔다. 특히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1515년경 제작한 판화는 라파엘로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로마 시대 석관에서 영감을 받은 구도를 사용하여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판화 이후로 파리스가 프리기아 모자를 쓴 모습은 이 주제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에서 특징적인 요소가 되었다.[13]

루카스 크라나흐 (아버지)는 이 주제를 여러 차례(약 23번으로 추정) 그렸으며, 특히 북유럽 매너리즘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소재였다. 루벤스 역시 그의 활동 기간 동안 다양한 구도의 파리스의 심판 그림을 남겼다. 18세기에는 와토와 안젤리카 카우프만 등이 이 주제를 다루었다. 19세기에는 아카데미즘 화가들이 이 주제를 자주 그렸으나, 르누아르나 폴 세잔과 같이 당시 기준으로 더 진보적인 화가들은 상대적으로 덜 다루었다. 후대에 이 주제를 그린 예술가로는 앙드레 로트, 엔리케 시모네(1904년 작 ''엘 후이시오 데 파리스''),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등이 있다.
한편, 나치 독일 시대에는 이보 살리거(1939), 아돌프 치글러(1939), 요제프 토라크(19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고전 신화를 독일 민족의 부흥을 선전하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14] 이는 고전적인 주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되어 사용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음악 분야에서도 '파리스의 심판'은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 1700년에서 1701년 사이 런던에서는 윌리엄 콩그리브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4명의 작곡가가 참여한 오페라 ''파리스의 심판''이 만들어졌다. 토마스 아른은 1742년에 같은 대본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음악을 작곡했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1754년 오페라 ''레 치네시''는 '파리스의 심판'을 주제로 한 발레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이 장면은 성악 4중창으로 불린다. 프란체스코 치레아의 1902년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에도 '파리스의 심판' 발레 시퀀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체스티의 초기 오페라 ''일 포모 도로''(황금 사과) 역시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프란체스코 스바라가 대본을 썼다.

그 외에도 그리스 코르푸 섬에 있는 아킬리온 궁전에는 아프로디테가 황금 사과를 들고 헤라와 아테나를 조롱하는 모습이 묘사된 부조가 남아 있다.
5. 현대적 의의
''칼리스티''(καλλίστῃgrc)는 에리스가 던진 불화의 사과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어 단어이다. 이는 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칼로스(καλοςgrc)의 최상급 여성형 단수 여격 형태로,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칼리스테''(Καλλίστηgrc, 현대 그리스어: ''칼리스티'')는 산토리니 섬의 고대 이름이기도 하다.
황금 사과에 쓰인 단어 ''칼리스티''는 포스트모더니즘 종교인 디스코디언주의에서 주요 상징으로 사용된다. 디스코디언 관련 텍스트에서는 보통 ''καλλιστιgrc''로 표기되는데, 이는 비어원학적인 표기이다. ''프린키피아 디스코르디아''의 여러 판본에서는 ''καλλιχτιgrc''로 잘못 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작가 그레고리 힐은 1979년 룸패닉스판 ''프린키피아'' 후기에서 자신이 사용했던 IBM 타자기의 그리스 문자와 라틴 문자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았고, 당시 문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우스가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에리스를 초대하지 않은 사건은 디스코디언 신화에서 '최초의 무시'(The Original Snub영어)라고 불린다.[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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ペンブック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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