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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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1776년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프랑스-인디언 전쟁의 영웅 벤자민 마틴이 영국과의 전쟁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벤자민은 영국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유령"이라는 별명을 얻고,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 독립을 위한 싸움에 다시 참여한다. 멜 깁슨, 히스 레저 등이 출연했으며, 미국 독립 전쟁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지만, 역사적 사실 왜곡과 잔혹 행위 묘사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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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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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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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
제작자 | 딘 데블린 마크 고든 게리 레빈슨 |
각본가 | 로버트 로다트 |
출연 | 멜 깁슨 히스 레저 조엘리 리처드슨 제이슨 아이작스 크리스 쿠퍼 체키 카료 르네 오베르주누아 톰 윌킨슨 |
음악 | 존 윌리엄스 |
촬영 감독 | 케일럽 데샤넬 |
편집 | 데이비드 브레너 줄리 먼로 |
제작사 | 컬럼비아 픽처스 센트로폴리스 엔터테인먼트 뮤추얼 필름 컴퍼니 |
배급사 | 소니 픽처스 릴리징 |
개봉일 | 2000년 6월 27일 (센추리 시티) / 2000년 6월 30일 (미국) / 2000년 9월 23일 (일본) |
상영 시간 | 165분 |
제작 국가 | 미국 |
언어 | 영어 |
제작비 | 1억 1천만 달러 |
흥행 수익 | 2억 1530만 달러 |
2. 줄거리
1776년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랑스-인디언 전쟁의 영웅 벤자민 마틴은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후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영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지자, 장남 가브리엘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륙군에 입대한다. 4년 후, 부상당한 가브리엘이 집으로 돌아오고, 영국군 윌리엄 타빙턴 대령은 가브리엘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둘째 아들 토마스를 살해한다. 분노한 벤자민은 게릴라 전술을 통해 영국군에 맞서 싸우며 "유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wikitext
벤자민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영국군 보급로를 차단하고, 찰스 콘월리스 1세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프랑스 장교 장 빌뇌브 소령은 민병대 훈련을 돕고 더 많은 프랑스 원조를 약속한다. 가브리엘은 약혼녀 앤과 결혼하지만, 타빙턴은 마을을 습격하여 앤과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태워 죽인다. 복수심에 불타는 가브리엘은 타빙턴을 추격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살해당한다.
아들의 죽음에 절망한 벤자민은, 결국 다시 전투에 참여하여 미국 독립을 위한 싸움을 이어간다. 코우펜스 전투에서 벤자민은 타빙턴과 결투를 벌여 그를 죽이고, 대륙군은 승리한다. 콘월리스는 요크타운 포위전에서 항복하고, 미국은 독립을 쟁취한다. 벤자민은 가족에게 돌아가고, 그의 옛 민병대가 가브리엘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기리기 위해 그의 농가를 재건한 것을 발견한다.
3. 등장인물
멜 깁슨은 프랑스-인디언 전쟁 참전 용사이자 포트 와일더니스의 영웅인 벤자민 마틴 대위/대령 역을 맡았다. 벤자민 마틴은 토머스 섬터, 다니엘 모건, 너새니얼 그린, 앤드루 픽켄스, 프랜시스 매리언 등 역사적 인물들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인물이다.[9] 벤자민은 아내가 죽고 일곱 아이를 둔 홀아비로,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누구보다 전쟁을 싫어하지만, 전투 능력은 뛰어나다. 차남을 잃은 후 냉혹함과 상냥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대륙군에서 민병대를 이끈다.
히스 레저는 벤자민의 장남 가브리엘 에드워드 마틴 하사 역을 연기했다. 가브리엘은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대륙군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애국심이 강하며 18세의 나이로 대륙군에 소속되어 하사 계급을 받았다. 전령문을 전달하다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왔지만 영국군에게 스파이 혐의로 붙잡히나, 아버지와 두 아들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돌아가 민병대에 전속되었으며, 앤과 결혼하지만 그녀가 죽자 복수심에 불타 타빙턴에게 맞서다 아버지 벤자민 앞에서 숨을 거둔다.
조엘리 리처드슨은 벤자민의 처제이자 훗날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샬롯 셀턴 역을 맡았다. 샬롯은 영국군에 의해 불타버리는 농장의 소유주로, 벤자민이 싸우는 동안 그의 아이들을 돌보고, 결국 벤자민과 함께 아이를 갖게 된다.
제이슨 아이삭스는 윌리엄 태빙턴 대령 역을 맡았다. 극도로 허구화된 이 캐릭터는 영국 군단 사령관 바나스트 타일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9] 타빙턴은 적이라고 판단되면 아군이었던 인물에게도 용서가 없는 비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최종 결전에서 벤자민과 호각으로 겨루지만, 결국 총검에 목을 찔려 전사한다.
크리스 쿠퍼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벤자민의 지휘관 중 한 명이자 대륙군 대령인 해리 버웰/준장 역을 맡았다. 그는 1775년 벙커 힐 전투에 참전했으며, 중령 헨리 "라이트 호스 해리" 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버웰은 벤자민의 오랜 친구로, 최종 결전에서 영국군에게 승리하고 전쟁 종결 3주 전에 아들을 얻어 그의 아들과 같은 이름을 지었다.
체키 카료는 마틴의 민병대를 훈련시키는 프랑스 장교 장 빌뇌브 소령 역을 연기했다. 빌뇌브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마틴이 한 역할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는 마틴의 부관으로 복무하며, 아내와 두 딸을 영국군에게 잃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 벤자민의 실력을 인정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다.
톰 윌킨슨은 영국 육군 장군 찰스 콘월리스 중장 역을 맡았다. 콘월리스는 타빙턴의 상관이다.
리사 브레너는 가브리엘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이이자 나중의 아내가 되는 앤 패트리샤 하워드 역을 맡았다. 앤은 가브리엘과 결혼하지만 마을로 귀향한 곳에서 타빙턴이 이끄는 기병대에 의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갇혀 불에 타 죽었다.
르네 오베르조누아는 펨브로크의 목사 올리버 역을 맡았다. 올리버는 목사로서 야만적인 행위를 꺼리지만, 벤자민의 설득에 의해 민병대에 참가하여 총을 잡았다. 하지만 아들 가브리엘과 함께 타빙턴에게 맞서다가 총에 맞아 전사했다.
그 외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3. 1. 주요 등장인물
멜 깁슨은 프랑스-인디언 전쟁 참전 용사이자 포트 와일더니스의 영웅인 벤자민 마틴 대위/대령 역을 맡았다. 벤자민 마틴은 토머스 섬터, 다니엘 모건, 너새니얼 그린, 앤드루 픽켄스, 프랜시스 매리언 등 역사적 인물들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인물이다.[9] 벤자민은 아내가 죽고 일곱 아이를 둔 홀아비로,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누구보다 전쟁을 싫어하지만, 전투 능력은 뛰어나다. 차남을 잃은 후 냉혹함과 상냥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대륙군에서 민병대를 이끈다.
히스 레저는 벤자민의 장남 가브리엘 에드워드 마틴 하사 역을 연기했다. 가브리엘은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대륙군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애국심이 강하며 18세의 나이로 대륙군에 소속되어 하사 계급을 받았다. 전령문을 전달하다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왔지만 영국군에게 스파이 혐의로 붙잡히나, 아버지와 두 아들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돌아가 민병대에 전속되었으며, 앤과 결혼하지만 그녀가 죽자 복수심에 불타 타빙턴에게 맞서다 아버지 벤자민 앞에서 숨을 거둔다.
조엘리 리처드슨은 벤자민의 처제이자 훗날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샬롯 셀턴 역을 맡았다. 샬롯은 영국군에 의해 불타버리는 농장의 소유주로, 벤자민이 싸우는 동안 그의 아이들을 돌보고, 결국 벤자민과 함께 아이를 갖게 된다.
제이슨 아이삭스는 윌리엄 태빙턴 대령 역을 맡았다. 극도로 허구화된 이 캐릭터는 영국 군단 사령관 바나스트 타일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9] 타빙턴은 적이라고 판단되면 아군이었던 인물에게도 용서가 없는 비정한 성격의 소유자다. 최종 결전에서 벤자민과 호각으로 겨루지만, 결국 총검에 목을 찔려 전사한다.
크리스 쿠퍼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벤자민의 지휘관 중 한 명이자 대륙군 대령인 해리 버웰/준장 역을 맡았다. 그는 1775년 벙커 힐 전투에 참전했으며, 중령 헨리 "라이트 호스 해리" 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버웰은 벤자민의 오랜 친구로, 최종 결전에서 영국군에게 승리하고 전쟁 종결 3주 전에 아들을 얻어 그의 아들과 같은 이름을 지었다.
체키 카료는 마틴의 민병대를 훈련시키는 프랑스 장교 장 빌뇌브 소령 역을 연기했다. 빌뇌브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마틴이 한 역할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는 마틴의 부관으로 복무하며, 아내와 두 딸을 영국군에게 잃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 벤자민의 실력을 인정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싸웠다.
톰 윌킨슨은 영국 육군 장군 찰스 콘월리스 중장 역을 맡았다. 콘월리스는 타빙턴의 상관이다.
리사 브레너는 가브리엘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이이자 나중의 아내가 되는 앤 패트리샤 하워드 역을 맡았다. 앤은 가브리엘과 결혼하지만 마을로 귀향한 곳에서 타빙턴이 이끄는 기병대에 의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갇혀 불에 타 죽었다.
르네 오베르조누아는 펨브로크의 목사 올리버 역을 맡았다. 올리버는 목사로서 야만적인 행위를 꺼리지만, 벤자민의 설득에 의해 민병대에 참가하여 총을 잡았다. 하지만 아들 가브리엘과 함께 타빙턴에게 맞서다가 총에 맞아 전사했다.
그 외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3. 2. 기타 등장인물
앤 하워드(리사 브레너)는 가브리엘 마틴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이이며, 후에 그의 아내가 된다.[9] 토마스 마틴(그레고리 스미스)은 벤자민 마틴의 둘째 아들로, 가브리엘처럼 전쟁에 나가 싸우고 싶어 하지만, 벤자민은 그의 나이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9] 마가렛 "메그" 마틴(미카 부렘)은 벤자민의 큰딸로, 종종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인다.[9] 윌리엄 마틴(로건 레먼)은 벤자민의 다섯째이자 막내 아들이다.[9]
올리버 목사(르네 오베르조누아)는 펨브로크의 목사로, 민병대와 함께 싸우기 위해 자원한다.[9] 피터 하워드(조이 D. 비에이라)는 앤 하워드의 아버지이다.[9] 존 빌링스(레온 리피)는 벤자민의 이웃이자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한 명으로 민병대에 합류한다. 그는 포트 캐롤라이나로 잡혀갔다가 벤자민에 의해 풀려난 18명의 남자 중 한 명이다.[9] 제임스 윌킨스(아담 볼드윈)는 왕당파 식민지 민병대 장교이다.[9]
4. 제작 과정
각본가 로버트 로댓은 17개의 초고를 거쳐 각본을 완성했다.[5] 초기 버전에서 앤은 불타는 교회에서 죽을 때 가브리엘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로댓은 멜 깁슨을 벤자민 마틴 역으로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으며, 깁슨의 일곱 번째 아이가 태어난 후, 마틴이 일곱 명의 아이를 갖도록 각본이 변경되었다. 깁슨이 5년 전에 ''브레이브 하트''에서 연기했던 윌리엄 월리스와 마찬가지로, 마틴은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무고한 가족 구성원의 목숨을 앗아간 후 복수를 위해 국가의 적에 맞서 싸우도록 이끌리는 인물이다.
해리슨 포드는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고[2] "미국 독립 혁명을 한 남자의 복수심으로 축소했다"고 생각하여 벤자민 마틴 역을 거절했다.[3] 깁슨은 2,5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출연료를 받았다.[4] 가브리엘 마틴 역에는 조슈아 잭슨, 일라이저 우드, 제이크 질렌할, 브래드 렌프로가 고려되었다. 제작자와 감독은 가브리엘 역의 후보를 라이언 필립과 히스 레저로 압축했고, 에머리히 감독은 히스 레저가 "넘치는 젊음"을 가졌다고 판단하여 그를 선택했다.
영화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전부 현지 촬영되었으며, 찰스턴, 록힐, 로우리, 포트론 등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5][6][7] 다른 장면들은 조지타운에 있는 맨스필드 플랜테이션, 미들턴 플레이스, 찰스턴 대학교 캠퍼스의 시스터 야드, 브래턴스빌의 브래턴스빌 역사 지구에 있는 하이타워 홀과 호메스테드 하우스, 맥코넬스의 브래턴스빌 플랜테이션 부지에서 촬영되었다.[8] 제작자 마크 고든은 제작진이 "배경이 진지한 역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진정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며, 시대 의상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다.[9] 제작자 딘 데블린과 이 영화의 의상 디자이너들은 촬영 전에 스미소니언 협회에서 실제 독립 전쟁 당시의 제복을 조사했다.[9]
존 윌리엄스가 영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의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으며,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10]
5. 평가
영화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137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62%의 지지율과 6.10/10점의 평균 점수를 기록했다.[54] 메타크리틱에서는 35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가중 평균 점수 63/100점을 기록했다.[55]
5. 1. 비평적 반응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리뷰 애그리게이터 로튼 토마토에서 137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62%의 지지율과 6.10/10점의 평균 점수를 기록했다.[11][54] 이 사이트의 평론가 의견은 "《패트리어트》는 보는 재미는 있지만, 너무 많은 공식과 멜로 드라마에 의존한다"는 것이다.[11] 메타크리틱에서는 35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100점 만점에 63점을 기록하여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12][55] 시네마스코어에서 조사한 관객들은 이 영화에 A+에서 F까지의 척도로 평균 "A" 등급을 부여했다.[13]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엘비스 미첼은 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멜 깁슨을 "놀라운 배우"라고 칭하며 캐스팅을 칭찬했다.[14] 그는 이 영화를 "잔인한 혼합물, 감상주의와 잔혹함의 조합"이라고 말했다.[14]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제이미 말라노스키는 《패트리어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여름 저녁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 방법임을 증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15]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영화 리뷰에서 "나는 깁슨의 강인함과 신념이 담긴 연기, 전투 장면의 웅장함...을 즐겼다"고 썼다.[16]
5. 2. 흥행 성적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개봉 첫 주말 3,061개 상영관에서 2,241만 3,710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2위로 시작했다.[20][21] 이는 약 2,500만 달러로 1위 개봉을 예상했던 기대치에는 약간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같은 주에 개봉한 워너 브라더스의 《퍼펙트 스톰》이 4,132만 5,042 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를 차지했다.[20][21] 2000년 10월 16일에 상영을 종료했으며, 국내 총 수익은 1억 1,333만 342 달러를 기록했다. 해외 수익은 1억 196만 4,000 달러, 총 2억 1,529만 4,342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제작비 1억 1,000만 달러를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22]6. 역사적 사실성 논란
개발 과정에서 에머리히와 그의 팀은 스미소니언 협회의 전문가들과 세트, 소품, 의상에 대해 상의했으며, 고문인 렉스 엘리스는 마틴 가족이 숨기에 적합한 장소로 굴라 마을을 추천하기도 했다.[26] 또한, 각본가 로버트 로댓은 각본 작성 준비의 일환으로 식민지 개척자들의 많은 일지와 편지를 읽었다.[27]
프로듀서 마크 고든은 영화 제작에 대해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배경은 진지한 역사였다"고 말했다.[9] 따라서 일부 등장인물과 사건은 역사적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허구의 이야기를 제공하기 위해 실제 인물과 사건을 조합한 것이었다. 로댓은 깁슨이 연기한 인물에 대해 "벤자민 마틴은 토마스 섬터, 다니엘 모건, 앤드루 픽켄스, 프랜시스 매리언을 조합한 인물이며, 다른 여러 인물들의 몇 가지 요소들을 가져왔다"고 말했다.[9] 로댓은 또한 허구의 윌리엄 태빙턴 대령은 "특히 잔혹한 행위로 유명했던 바나스트 타르턴 대령을 느슨하게 기반으로 했다"고 언급했다.[9]
타르턴이 프랜시스 매리언과 그의 동료 비정규군을 추격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늪으로 사라진 사건과 같은 일부 사건은 역사에 느슨하게 기반을 두었고,[28] 다른 사건들은 각색되었는데, 예를 들어 영화의 마지막 전투는 카우펜스 전투와 길퍼드 코트하우스 전투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지만, 영화의 대부분의 줄거리 사건은 순수한 허구이다.
=== 벤자민 마틴의 모델이 된 프랜시스 매리언에 대한 비판 ===
영국 언론은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가 프랜시스 매리언을 모델로 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가디언은 매리언을 "재미로 강간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사냥하는 연쇄 강간범"이라고 묘사했다.[29] 크리스토퍼 히버트는 데일리 익스프레스에서 매리언과 같은 사람들이 대영 제국에 의해 저질러진 것보다 더 나쁜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30]
마이클 그래함은 내셔널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프랜시스 매리언은 노예 소유주였고, 18세기 전쟁에서 끔찍하다고 여겨질 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옹호했다.[31] 월터 에드가는 그의 저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역사》에서 매리언의 추종자들이 "흑인과 백인 자원봉사자들의 초라한 무리"였다고 주장했다.[31] 스미소니언 잡지에서 에이미 크로포드는 윌리엄 길모어 심스와 휴 랭킨과 같은 현대 역사가들이 매리언의 정확한 전기를 저술했다고 언급했다.[32] 숀 부식은 심스의 2007년판 서문에서 "매리언은 독립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프랜시스 매리언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노예를 소유했고 체로키족과의 잔혹한 전쟁에서 싸웠다...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의 매리언의 경험은 그를 더 칭찬할 만한 봉사에 준비시켰다."라고 썼다.[32]
제작 전, 제작자들은 마틴을 노예 소유주로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파이크 리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보낸 편지에서 이 영화의 노예제 묘사가 "역사의 완전한 미화"라고 비판했다.[33] 깁슨 자신은 "그를 노예 소유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일종의 회피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34]
=== 태빙턴 대령의 모델이 된 바나스트르 타를턴에 대한 비판 ===
영국 언론은 타빙턴의 묘사가 바나스트르 타를턴의 역사적 인물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벤 펜턴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타를턴이 전쟁법을 어겼다는 증거는 없으며, 어린이를 냉혈하게 사살한 적도 결코 없었다고 평했다. 리버풀 시 의회는 영화가 타를턴에 대한 "인격 살인"을 했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왁스호 전투에서 일어난 일은 논쟁의 대상인데, 당시 사건을 목격한 미국 야전 외과 의사인 로버트 브라운필드에 따르면, 대륙군 버포드 대령은 "문명화된 전쟁에서 용인되는 통상적인 대우를 기대하며" 백기를 들고 항복했지만, 타를턴의 말이 머스킷 총알에 맞아 쓰러지면서 왕당파 기병들은 대륙군이 자비를 구하는 동안 지휘관에게 총을 쐈다고 생각하여 분노한 왕당파 병사들이 버지니아군에게 돌격했다고 한다. 브라운필드는 왕당파의 공격을 "가장 야만적인 야만족의 무자비한 잔학 행위도 능가하는 무차별적인 학살"이라고 묘사했다. 타를턴은 자신의 기록에서 초반 돌격 중에 말이 총에 맞아 수 분 동안 의식을 잃었고, 부하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억제하기 어려운 복수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벤 루빈은 캐롤라이나에서 있었던 타를턴의 혁명 전쟁에서의 역할을 분석하며, 왁스호 전투의 실제 사건은 양측의 설명에 따라 다르게 제시되었지만, 왁스호 및 기타 사건에서 타를턴의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킹스 마운틴 전투에서 사기를 북돋는 외침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를턴의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였으며, 워싱턴 어빙과 크리스토퍼 워드는 1952년 저서인 《혁명 전쟁》에서 타를턴을 "냉혹하고, 복수심에 불타며, 무자비했다. 그는 남부 전쟁의 역사에 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라고 묘사했다. 안토니 스코티의 2002년 저서 《잔혹한 미덕: 바나스트르 타를턴의 신화와 현실》이 나오기 전까지 타를턴의 행동은 제대로 재조명되지 않았다. 스코티는 잔학 행위에 대한 사실적 기록에 이의를 제기하고 "전쟁 중과 전쟁 후에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가 가진 선전 가치"를 강조했다.
타빙턴이 귀족적이지만 가난한 사람으로 묘사된 반면, 타를턴은 부유한 리버풀 상인 집안 출신이었다. 타를턴은 영화 속 타빙턴처럼 전투에서 죽거나 꼬챙이에 꿰여 죽지 않았다. 타를턴은 전쟁이 끝난 지 거의 50년이 지난 1833년 1월 16일, 영국 레인트워딘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프랜시스 매리언 대령보다 38년 더 오래 살았으며, 죽기 전에 장군에 올랐고, 준남작이 되었으며, 의회 의원이 되었다.
=== 잔혹 행위 묘사에 대한 비판 ===
영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잔혹 행위, 특히 포로와 부상병 살해, 민간인이 가득 찬 교회를 불태운 사건 등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42] 역사학자들은 이 분쟁에서 양측 모두 잔혹 행위를 저질렀지만, "반군이 영국군보다 전쟁 규칙을 더 자주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지적했다.[42]
뉴욕 포스트의 영화 평론가 조나단 포먼은 영화가 영국군을 독일군, 특히 SS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저지른 독일 전쟁 범죄와 매우 유사하게 묘사했다고 비판했다.[47] 그는 제작자들이 영국인들을 역사상 최악의 괴물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영국 언론이 이 영화를 피의 모독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언급했다.[47]
《Salon.com》에 따르면, 영화 속 교회 방화 장면은 1944년 독일군에 의해 저질러진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 혁명 중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다".[42] 역사학자 빌 세가스는 영국군이 독립 전쟁 중에 민간인으로 가득 찬 교회를 불태운 기록은 없다고 언급했다.[43] 하지만 영국군과 왕당파는 브런스윅 타운의 세인트 필립 교회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인디안타운 장로교회와 같은 여러 개의 빈 교회를 불태웠다.[43][44][45][46] 《워싱턴 포스트》의 영화 평론가 스티븐 헌터는 "영국인을 나치로, 우리를 온순한 사람들로 묘사하는 미국 혁명에 대한 모든 이미지는 거의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48] 잡지 《아메리칸 헤리티지》 편집자이자 역사학자인 리처드 F. 스노우는 교회 방화 장면에 대해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국인들이 잊었을까?"라고 언급했다.[49][50]
6. 1. 벤자민 마틴의 모델이 된 프랜시스 매리언에 대한 비판
영국 언론은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가 프랜시스 매리언을 모델로 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가디언은 매리언을 "재미로 강간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사냥하는 연쇄 강간범"이라고 묘사했다.[29] 크리스토퍼 히버트는 데일리 익스프레스에서 매리언과 같은 사람들이 대영 제국에 의해 저질러진 것보다 더 나쁜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30]마이클 그래함은 내셔널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프랜시스 매리언은 노예 소유주였고, 18세기 전쟁에서 끔찍하다고 여겨질 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옹호했다.[31] 월터 에드가는 그의 저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역사''에서 매리언의 추종자들이 "흑인과 백인 자원봉사자들의 초라한 무리"였다고 주장했다.[31] 스미소니언 잡지에서 에이미 크로포드는 윌리엄 길모어 심스와 휴 랭킨과 같은 현대 역사가들이 매리언의 정확한 전기를 저술했다고 언급했다.[32] 숀 부식은 심스의 2007년판 서문에서 "매리언은 독립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프랜시스 매리언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노예를 소유했고 체로키족과의 잔혹한 전쟁에서 싸웠다...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의 매리언의 경험은 그를 더 칭찬할 만한 봉사에 준비시켰다."라고 썼다.[32]
제작 전, 제작자들은 마틴을 노예 소유주로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파이크 리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보낸 편지에서 이 영화의 노예제 묘사가 "역사의 완전한 미화"라고 비판했다.[33] 깁슨 자신은 "그를 노예 소유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일종의 회피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34]
6. 2. 태빙턴 대령의 모델이 된 바나스트르 타를턴에 대한 비판
영국 언론은 타빙턴의 묘사가 바나스트르 타를턴의 역사적 인물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벤 펜턴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타를턴이 전쟁법을 어겼다는 증거는 없으며, 어린이를 냉혈하게 사살한 적도 결코 없었다고 평했다. 리버풀 시 의회는 영화가 타를턴에 대한 "인격 살인"을 했다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왁스호 전투에서 일어난 일은 논쟁의 대상인데, 당시 사건을 목격한 미국 야전 외과 의사인 로버트 브라운필드에 따르면, 대륙군 버포드 대령은 "문명화된 전쟁에서 용인되는 통상적인 대우를 기대하며" 백기를 들고 항복했지만, 타를턴의 말이 머스킷 총알에 맞아 쓰러지면서 왕당파 기병들은 대륙군이 자비를 구하는 동안 지휘관에게 총을 쐈다고 생각하여 분노한 왕당파 병사들이 버지니아군에게 돌격했다고 한다. 브라운필드는 왕당파의 공격을 "가장 야만적인 야만족의 무자비한 잔학 행위도 능가하는 무차별적인 학살"이라고 묘사했다. 타를턴은 자신의 기록에서 초반 돌격 중에 말이 총에 맞아 수 분 동안 의식을 잃었고, 부하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억제하기 어려운 복수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벤 루빈은 캐롤라이나에서 있었던 타를턴의 혁명 전쟁에서의 역할을 분석하며, 왁스호 전투의 실제 사건은 양측의 설명에 따라 다르게 제시되었지만, 왁스호 및 기타 사건에서 타를턴의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킹스 마운틴 전투에서 사기를 북돋는 외침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타를턴의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의 전쟁 관련 기록의 일부였으며, 워싱턴 어빙과 크리스토퍼 워드는 1952년 저서인 ''혁명 전쟁''에서 타를턴을 "냉혹하고, 복수심에 불타며, 무자비했다. 그는 남부 전쟁의 역사에 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라고 묘사했다. 안토니 스코티의 2002년 저서 ''잔혹한 미덕: 바나스트르 타를턴의 신화와 현실''이 나오기 전까지 타를턴의 행동은 제대로 재조명되지 않았다. 스코티는 잔학 행위에 대한 사실적 기록에 이의를 제기하고 "전쟁 중과 전쟁 후에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가 가진 선전 가치"를 강조했다.
타빙턴이 귀족적이지만 가난한 사람으로 묘사된 반면, 타를턴은 부유한 리버풀 상인 집안 출신이었다. 타를턴은 영화 속 타빙턴처럼 전투에서 죽거나 꼬챙이에 꿰여 죽지 않았다. 타를턴은 전쟁이 끝난 지 거의 50년이 지난 1833년 1월 16일, 영국 레인트워딘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프랜시스 매리언 대령보다 38년 더 오래 살았으며, 죽기 전에 장군에 올랐고, 준남작이 되었으며, 의회 의원이 되었다.
6. 3. 잔혹 행위 묘사에 대한 비판
영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잔혹 행위, 특히 포로와 부상병 살해, 민간인이 가득 찬 교회를 불태운 사건 등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42] 역사학자들은 이 분쟁에서 양측 모두 잔혹 행위를 저질렀지만, "반군이 영국군보다 전쟁 규칙을 더 자주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지적했다.[42]뉴욕 포스트의 영화 평론가 조나단 포먼은 영화가 영국군을 독일군, 특히 SS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저지른 독일 전쟁 범죄와 매우 유사하게 묘사했다고 비판했다.[47] 그는 제작자들이 영국인들을 역사상 최악의 괴물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영국 언론이 이 영화를 피의 모독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언급했다.[47]
''Salon.com''에 따르면, 영화 속 교회 방화 장면은 1944년 독일군에 의해 저질러진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 혁명 중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다".[42] 역사학자 빌 세가스는 영국군이 독립 전쟁 중에 민간인으로 가득 찬 교회를 불태운 기록은 없다고 언급했다.[43] 하지만 영국군과 왕당파는 브런스윅 타운의 세인트 필립 교회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인디안타운 장로교회와 같은 여러 개의 빈 교회를 불태웠다.[43][44][45][46] ''워싱턴 포스트''의 영화 평론가 스티븐 헌터는 "영국인을 나치로, 우리를 온순한 사람들로 묘사하는 미국 혁명에 대한 모든 이미지는 거의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48] 잡지 ''아메리칸 헤리티지'' 편집자이자 역사학자인 리처드 F. 스노우는 교회 방화 장면에 대해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국인들이 잊었을까?"라고 언급했다.[49][50]
7. 수상 내역
영화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는 제73회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음향상(케빈 오'코넬, 그렉 P. 러셀, 리 올로프)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23] 미국 촬영 감독 협회에서 칼렙 데샹넬에게 수여하는 촬영 부문 공로상[24]과 할리우드 분장 및 헤어 스타일리스트 길드에서 수여하는 시대 분장 및 시대 헤어 스타일링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25]
8. 한국어 더빙
대한민국에서는 MBC와 SBS에서 각각 다른 성우진으로 더빙되었다. MBC에서는 양지운이, SBS에서는 신성호가 멜 깁슨이 연기한 마틴 역을 맡았다. 황윤걸, 표영재, 김태훈, 윤성혜 등은 MBC 더빙에 참여했고, 성완경, 강구한, 윤소라, 이근욱 등은 SBS 더빙에 참여했다.
일본어 더빙 버전도 존재하며, 소프트 버전과 TV 도쿄 버전이 있다. 소프트 버전에서는 스고 타카유키가, TV 도쿄 버전에서는 이소베 츠토무가 벤자민 마틴 역을 더빙했다. 가브리엘 마틴 역은 소프트 버전에서 카와시마 토쿠요시, TV 도쿄 버전에서 우치다 유야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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