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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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웅은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언어학자이자 국어학자, 국어 운동가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와 한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918년에 태어나 2004년 사망했으며, 15세기 국어 연구를 시작으로 국어 문법사 연구,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 언어학 여러 분야에 걸쳐 저서를 남겼다. 특히, 《국어 음운론》, 《언어학 개론》, 《우리 옛말본》 등은 한국어 연구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30년 이상 재임하며 장기 집권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국어 연구를 언어학으로 발전시키고, 한국어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통해 한국 언어학 분야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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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 (언어학자)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허웅 |
한자 표기 | 許雄 |
로마자 표기 | Heo Ung |
아호 | 눈뫼 |
기본 정보 |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일 | 1918년 10월 30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
사망일 | 2004년 1월 26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언어학자, 교수 |
학력 | |
최종 학력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 졸업 (1971년) |
중퇴 | 경성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1940년) |
경력 | |
주요 경력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역임, 한글학회 회장 겸 이사장 역임 |
가족 | |
형제 | 허발(아우) |
친척 | 허솔뫼(손자) |
주요 저서 | |
주요 저서 | Korean Phonology (국어음운론, 1958) Introduction to Linguistics (언어학개론, 1963) Grammar of Old Korean (우리 옛말본, 1975) Korean Linguistics (국어학, 1983) |
수상 | |
수상 내역 | Oesol Award (1973) Order of Civil Merit, Moran Medal (1984) Sejong Cultural Award (1990) Order of Civil Merit, Mugungwha Medal (2004) |
2. 생애
허웅은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언어학자이자 국어학자였으며, 한편으로는 국어 운동가였다. 생전에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와 한글학회 회장을 오랫동안 지냈다. 1918년 10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9월부터 약 56년간 교직 및 강단에 있었으며, 2001년 7월 26일 첫 투병 이후 학술 분야에서는 사실상 은퇴하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04년 1월 26일, 향년 87세로 사망했다.
허웅의 국어 연구는 민족 문화를 잇고 가꾸는 데에서부터 시작했다. 청년 시절 허웅은 전문학교 시절 지도교수 최현배의 ≪우리말본≫을 처음 접하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결정했다. 그래서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정신이며, 그 겨레의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다’라는 생각을 일찍이 마음에 간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일평생 허웅의 학문 바탕이 되었으며, 평생을 일관되게 지닌 학문적 태도였다.
따라서 허웅 학문의 성격은 ‘연구’와 ‘실천’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학문은 국어 연구를 언어과학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어를 지키고 가꾸는 실천 운동을 전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2. 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허웅은 1918년 허수와 윤영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 김해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졸업했다.[5] 같은 해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질병으로 인해 1년간 휴학했다. 3학년으로 복학하기 전, 그는 최현배의 《우리말본》에 강한 영향을 받아 국어 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최현배에게 직접 배우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939년 3월, 최현배가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교직에서 해임되면서 허웅은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그는 고향 김해에서 독학으로 학업을 이어갔다.[1]
2. 2. 광복 이후 활동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창원의 사설 훈련소에서 근무하며 일본 제국 육군의 징집을 피했다.[1]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고향인 김해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1]이후 여러 대학에서 교직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공동 창립자로 참여하여 조교수로 재직했으며,[6]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조교수를 지냈다.[6] 이후 연세대학교(1954–1958), 서울대학교(1960–1984)에서 교수로 활동했으며,[6] 동아대학교에서는 두 차례(1968–1975, 1984–1989)에 걸쳐 석좌교수로 초빙되었다.[6] 또한, 한글학회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며 국어 운동에도 기여했다.
2. 3. 은퇴 이후 및 사망
2001년 7월 26일 첫 투병 이후 학술 분야에서는 사실상 은퇴하고 투병 및 와병 생활을 시작했다. 은퇴 후에는 서울대학교 및 상하이국제연구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임명되었다.[1]은퇴 후에도 1971년부터 맡아온 한국어학회 회장 및 이사장직을 2004년까지 유지하며, 초등학교에서의 한자어 교육 반대, 일부 한국어 어휘 내 한자어와 영어 차용어 혼용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 제외 반대, 한자 교육 진흥법 반대 등 한국어 순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이어갔다.[1]
오랜 투병 끝에 2004년 1월 26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3. 학력
3. 1. 명예 박사 학위
4. 약력
허웅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폐 침윤으로 고통받았으며, 이 기간 동안 15세기 한국어 문법 연구를 시작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는 창원의 사설 훈련소에서 근무하며 일본 제국 육군의 징집을 피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고향인 김해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1]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기간 | 소속 | 직위 |
---|---|---|
1945년 ~ 1946년 | 광신상업고등학교 | 교사 |
1946년 ~ 1947년 | 한성고등학교 | 교사 |
1947년 ~ 1954년[6] |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조교수 (공동 창립자) |
1953년 ~ 1955년[6]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조교수 |
1954년 ~ 1955년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객원교수 |
1954년 ~ 1958년[6]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교수 |
1960년 ~ 1984년[6]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 교수 |
1968년 ~ 1975년, 1984년 ~ 1989년[6] | 동아대학교 | 석좌교수 |
1983년 ~ 2004년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 명예교수[1] |
1984년 ~ 2004년 | 세종대학교 국어교육학과 | 석좌교수 |
1971년 ~ 2004년[1] | 한글학회 | 회장 및 이사장 |
허웅은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한국어 순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의 한자어 교육 반대, 일부 한국어 어휘 내 한자어와 영어 차용어 혼용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 제외 반대, 한자 교육 진흥법 반대 등의 활동을 펼쳤다.[1]
은퇴 후에는 상하이국제연구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임명되었다.[1]
5. 인간 관계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崔鉉培)의 애제자(愛弟子)이기도 하다.
6. 학문적 업적
중세 한국어에서 현대 한국어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등 언어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또한 한글학회 이사장을 34년 동안 맡으며 국어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1]
허웅의 연구는 언어가 민족의 정신이자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라는 신념에 기반했으며, 이를 통해 민족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다.[7] 그는 이러한 신념을 연구와 실천을 통해 조화롭게 이루려 노력했다. 특히 1971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어학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하며 초등학교에서의 한자어 교육 반대, 차용어 남용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 지위 유지, 한자 교육 진흥법 반대 등 한국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1]
주요 저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국어 음운론》: 대한민국 최초로 한국어 음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저서이다.[8] 초판은 음성학, 음운론, 발성 기관, 현대 한국어 음운 체계, 음운 변동 등을 다루며, 특히 현대 한국어와 중세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상세히 비교하고 그 변화를 분석했다. 1985년 개정판에서는 기존의 한자어 용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등 한국어 순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 《언어학 개론》: 한국어 연구를 언어학이라는 학문적 틀과 연결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이 책은 유럽과 미국의 언어학 이론을 소개하며 한국 언어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9] 허웅은 서문에서 한국어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일반 언어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10]
>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언어학과 국어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잘못 여겨져 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언어학을 서양 언어 연구와 연관시키고, 모든 주제와 용어가 서양 언어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학은 서양에서 고도로 발달했고 우리는 그것을 서양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수이다. 언어학은 그렇게 먼 학문 분야가 아니다. 언어학은 언어, 즉 말을 연구하는 것이며, 국어학 역시 언어학이다. 우리에게는 국어 연구의 견고한 토대 위에 일반 언어학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한국 언어학의 강력한 발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 옛말본》: 15세기 한국어의 형태론을 상세하게 다룬 연구서이다.[11] 허웅은 이를 시작으로 한국어 문법의 역사를 연구하여 시대별 문법 규칙과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이는 이후 《16세기 우리 옛말본》(1989)과 《15-16세기 우리 옛말본의 역사》(1991)와 같은 저서로 이어졌다.
허웅의 연구는 한국어 연구를 단순한 어문 규범 연구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언어학의 한 분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전통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국어 음운론과 문법의 역사적 변화를 체계적으로 기록했으며,[1] 한국어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한국 언어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계에서는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한국어 연구의 기초를 닦았고, 외솔 최현배 선생이 그 위에 집을 지었으며, 눈뫼 허웅 선생이 그 집을 완성했다"고 평가하며 그의 학문적 위상을 인정한다.[5]
또한 허웅은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김해시는 허웅의 업적이 한국보다 해외 언어학자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12] 그는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에도 힘써, 대한민국 언어학 연구자 중 상당수가 그의 제자이거나 제자의 제자일 정도로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12] 부산광역시사 편찬위원회 역시 허웅이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 한국어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고 기록했다.[6] 은퇴 후에는 서울대학교와 상하이국제연구대학교의 명예 교수로 추대되었다.[1]
6. 1. 비판
허웅은 한국 언어학 분야의 전반적인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사후에 30년 이상 한국어학회 회장과 이사장을 겸임하면서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고 장기 집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13] 한글과 한글학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동대표 송현은 "허웅이 30년 넘게 권력을 잡은 것은 잘못된 것을 넘어 심각한 문제"라며 "만약 그가 10년 만에 자리를 후임자에게 넘겼다면 후임자들이 얼마나 성장했을까?"라고 비판했다.[13]7. 주요 저서
발행 연도 | 저서명 | 출판사 | 비고 |
---|---|---|---|
1955 | 주해 용비어천가 | 정음사 | |
1958 | 국어 음운론 | 정음사 | |
1962 | 주해 월인천강지곡 | 신구 문화사 | 이강로와 공저 |
1963 | 언어학 개론 | 정음사 | |
1975 | 우리 옛말본 -15세기 국어 형태론- | 샘 문화사 | |
1979 | 우리말과 글에 쏟아진 사랑 -국어 정책론- | 문성 출판사 | |
1981 | 언어학 -그 대상과 방법- | 샘 문화사 | |
1983 | 고친판 언어학 개론 | 샘 문화사 | |
1983 | 국어학 -우리말의 오늘 어제- | 샘 문화사 | |
1985 | 국어 음운학 -우리말 소리의 오늘 어제- | 샘 문화사 | |
1987 | 고친판 우리말과 글에 쏟아진 사랑 | 샘 문화사 | |
1987 |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 샘 문화사 | |
1987 | 국어 때매김법의 변천사 | 샘 문화사 | |
1989 | 16세기 우리 옛말본 | 샘 문화사 | |
1991 | 15-16세기 우리 옛말본의 역사 | 탑 출판사 | 연세대학교 국학 연구원 다산 기념 강좌 3 |
1993 | 최현배 -우리말 우리 얼에 바친 한평생- | 동아 일보사 | 근대 인물 한국사 408 |
1995 |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 샘 문화사 | |
1999 | 20세기 우리말의 통사론 | 샘 문화사 |
'''국어 음운론'''(1958)은 대한민국에서 한국어의 음운론을 설명한 최초의 공개 저서이다.[8] 초판은 음성학, 음운론, 발성 기관 및 발음 방식, 현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 음운 변동, 음성 기호, 음운 변동의 역사 등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운론, 음성학, 조음 음성학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현대 한국어와 중세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두 시대 간의 음운 변화를 음소별 또는 변화 유형별로 정리했다. 1985년에 출판된 제2판에서는 기존의 한자어 어휘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등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언어학 개론'''(1963)은 한국어 연구를 언어학과 연결하려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받으며, 학자들이 한국어 연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유럽의 기능 구조주의 언어 이론과 미국의 기술 구조주의 언어 이론을 소개하며 한국 언어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9] 비록 언어학의 이론적 체계는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지만, 허웅의 저서는 이를 한국어를 대상으로 처음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허웅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어 연구와 언어학의 통합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10]
: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언어학과 국어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잘못 여겨져 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언어학을 서양 언어 연구와 연관시키고, 모든 주제와 용어가 서양 언어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학은 서양에서 고도로 발달했고 우리는 그것을 서양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수이다. 언어학은 그렇게 먼 학문 분야가 아니다. 언어학은 언어, 즉 말을 연구하는 것이며, 국어학 역시 언어학이다. 우리에게는 국어 연구의 견고한 토대 위에 일반 언어학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한국 언어학의 강력한 발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옛말본'''(1975)은 한국어의 형태론을 상세하게 다룬 저서이다.[11] 허웅은 15세기 한국어 문법 연구를 시작으로 한국어 문법의 역사를 연구했으며, 시대별로 문법 규칙을 정리하고 그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연구는 이후 ''16세기 우리 옛말본''(1989)과 ''15-16세기 우리 옛말본의 역사''(1991)와 같은 저서들로 이어졌다.
8. 상훈
연도 | 상훈 |
---|---|
1973년 | 외솔상 |
1984년 | 국민훈장 모란장 |
1986년 | 성곡 학술문화상 |
1990년 | 세종문화상 |
1993년 | 주시경 학술상 |
1998년 | 세종성왕 대상 |
2000년 |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
2004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참조
[1]
간행물
Hur Woong [허웅(許雄)]
https://encykorea.ak[...]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3-12-27
[2]
간행물
Hur Woong - 2000 - Distinguished SNU Member - SNU Awards [허웅(許雄) 선생 - 2000년도 -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 SNU Awards]
https://www.snu.ac.k[...]
Seoul National University [서울대학교]
2023-12-27
[3]
뉴스
'[Life and Memories] Former President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Hur Woong 삶과 추억] 故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
JoongAngIlbo [중앙일보]
2004-01-26
[4]
간행물
Nunmoe Hur Woong [눈뫼 허웅]
https://hangeul.or.k[...]
Korean Language Society [한글학회]
2023-12-27
[5]
간행물
Hur Woong (1918-2004) [허웅 (許雄 191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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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YA Culture Festival [가야문화축제]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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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ur Woong [허웅(許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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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san Grand History and Culture [부산역사문화대전]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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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Korean Linguistics Conference Presentation Book in Commemoration of the 621st Anniversary of the Creation of 621th Anniversary of King Sejong's Birth [621돌 세종날 기념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 발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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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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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al Language Is the Spirit and Driving Force of Our People's Culture.' [\"나랏말은 정신이며 겨레문화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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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hae News [김해뉴스]
2011-12-06
[13]
뉴스
Korean Language Society in Agony over New Director [허웅 선생 떠난 한글학회, 새 수장 선출 놓고 진통]
https://www.ohmynews[...]
OhMyNews [오마이뉴스]
200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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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67)김해 하양 양천 태인 허씨
https://www.joongang[...]
198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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