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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미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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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네코 미스즈는 1903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동요 시인으로, 1930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1920년대에 여러 잡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계에서 활동했으며, 1926년에는 동요 시인회에 입회하여 사이조 야소 등 저명한 시인들과 교류했다. 결혼 후 불행한 결혼 생활과 남편과의 갈등, 건강 악화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고, 결국 딸의 양육권을 잃게 되자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잊혀졌으나, 1966년 시인 야자키 세쓰오에 의해 재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으며,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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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미스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가네코 데루 (金子 テル)
출생일1903년 4월 11일
출생지일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센자키 (仙崎)
사망일1930년 3월 10일 (향년 26세)
사망 장소센자키, 야마구치현, 일본
직업시인, 서점 직원
활동 기간1923년-1930년
학력
모교군립 후카가와 고등여학교
작품
장르동요
대표 작품나와 꼬마새와 방울
풍어

2. 생애

야마구치현 오쓰군 센자키 마을(현 나가토시 센자키) 출신으로,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서점을 운영하는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당시 여성들과 달리 오쓰 고등여학교까지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4] 그녀는 학창 시절 뛰어난 학생이자 왕성한 독서가였다.[2]

1923년 시모노세키의 삼촌 서점에서 일하며 어린이 문학 잡지를 통해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가네코 미스즈"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들은 여러 잡지에 실리며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5]

1926년, 가족의 주선으로 결혼하여 딸 후사에를 낳았으나[5],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남편의 간통, 성병 감염, 창작 활동 금지 등으로 고통받았다.[5] 결국 1930년 이혼을 결심했지만, 당시 일본 법에 따라 딸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4]

1930년 3월 9일, 남편이 딸을 데려가기로 한 날, 미스즈는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살을 선택했다.[1] 딸을 자신의 어머니가 키워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9], 다음 날인 3월 10일, 27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향년 26세(만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1][8] 그녀의 딸 후사에는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다.[1]

대표작으로는 "나와 작은 새와 종", "큰 낚시" 등이 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야마구치현 오쓰군 센자키 마을(현 나가토시 센자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모노세키서점 겸 문구점 "가미야마 분에이도"의 청나라 잉커우 지점장이었으나, 미스즈가 세 살 때인 1906년 2월 10일 청나라에서 사망했다. (과거에는 중국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급성 뇌출혈 설이 유력하다[7]。) 아버지의 사망 후, 어머니, 할머니, 오빠와 함께 센자키의 유일한 서점인 "가네코 분에이도"를 운영하며 자랐다. 친동생 가미야마 마사스케(본명: 가미야마 쇼스케)는 어릴 때 이모부 집안인 가미야마 가문으로 양자로 보내졌으며, 훗날 문예춘추사의 편집자, 후루카와 롯파의 각본가, 극단 와카쿠사의 창시자로 활동했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 소녀들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만 교육을 받았던 것과 달리, 미스즈는 17세까지 학교를 다니며 오쓰 고등여학교(현 야마구치현립 오쓰료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4] 그녀는 성적이 우수하여 학교를 총대로 졸업했으며, 교사가 나라 여자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하여 교사가 되라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8]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고 쾌활하며 훌륭한 학생으로 묘사되었고, 자연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진 왕성한 독서가였다.[2]

2. 2. 문학 활동

1923년, 가네코는 혼슈 남쪽 끝 시모노세키에 있는 삼촌의 서점에서 매니저 겸 유일한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4] 이곳에서 그녀는 당시 독자로부터 이야기와 시를 공모하며 인기를 끌던 ''붉은 새''와 같은 어린이 문학 잡지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가네코 미스즈'라는 필명으로 동요 창작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물고기" 등 다섯 편의 시를 『동화』, 『부인구락부』, 『부인화보』, 『금성』 네 잡지에 투고했고, 1923년 9월호에 모든 작품이 게재되었다.[5]

이후 가네코의 시는 전국 각지의 잡지에 연이어 실리면서 문학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후 5년 동안 그녀는 51편의 시를 더 발표했다. 잡지 『동화』에만 추천 16편, 입선 24편, 가작 2편 등 총 42편이 게재되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투고하여 게재된 작품은 1929년 『애송』 5월호에 실린 "저녁 해 질 녘"이었다.

1924년에는 『부인화보』 9월호에 게재되었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가 사이조 야소가 엮은 『현대 서정 소곡 선집』에 수록되었다. 1926년에는 "동요 시인회" 입회를 인정받았고, 같은 해 동요 시인회가 엮은 『일본 동요집』 1926년판에 그녀의 시 "물고기"와 "대어"가 실렸다. 당시 동요 시인회에는 사이조 야소, 이즈미 교카, 기타하라 하쿠슈, 시마자키 도손, 노구치 우조, 미키 로후, 와카야마 보쿠스이 등 저명한 문인들이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여성 회원은 요사노 아키코와 가네코 미스즈 두 명뿐이었다.

1927년에는 사이조 야소가 엮은 『일본 동요집 (상급용) 초등학생 전집 제48권』에, 1928년에는 광풍관 편집소가 엮은 『작문 신편 권 1』에 "물고기"가 수록되었다. 1929년에는 동아 학예 협회가 엮은 『전일본 시집』에 "고치와 묘"가 실렸다. 같은 해, 미스즈는 "아름다운 마을", "하늘의 엄마", "쓸쓸한 공주"라는 제목의 동요집 세 권을 두 세트 만들어 각각 사이조 야소와 동생 가미야마 마사스케에게 보냈다.

그러나 1928년 남편은 그녀에게 시 투고와 시인 동료들과의 편지 교환을 금지하며 창작 활동을 제약했다.[5] 그녀의 작품은 사후 사이조 야소 등에 의해 재조명되며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 3. 결혼과 이혼

1926년 (다이쇼 15년), 가네코 미스즈는 의붓아버지(숙부)가 운영하던 서점 가미야마 분에이도의 점원 미야모토 게이키와 결혼했다.[5] 이 결혼은 의붓아버지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해 11월, 딸 후사에가 태어났다.[5]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남편 미야모토는 간통을 저질렀고, 성병에 걸려 이를 미스즈에게 옮겼다. 이로 인해 미스즈는 1927년 임질 진단을 받았고 평생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5] 또한 남편은 미스즈의 친동생인 쇼스케와의 불화로 가게에서 쫓겨났고, 이후 미스즈는 남편을 따라 아이를 데리고 시모노세키를 전전해야 했다. 남편의 방탕은 계속되었고, 1928년부터는 미스즈에게 시 창작과 시인 동료들과의 편지 교환을 금지했다.[5] 실패한 사업을 추구하며 2년 동안 네 번이나 이사하는 등 가족에게 경제적 어려움까지 안겨주었다.[5]

1929년경 미스즈의 병세는 악화되어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1930년 (쇼와 5년), 미스즈는 남편과 별거하여 세 살 된 딸을 데리고 친정인 가미야마 분에이도로 돌아갔다. 그 해 2월, 정식으로 이혼이 결정되었으나, 서류상의 절차는 마무리되지 않았다.[4]

당시 일본 법은 아버지에게 자녀에 대한 절대적인 양육권을 자동으로 부여했기 때문에, 이혼은 딸 후사에의 양육권을 잃는 것을 의미했다.[4] 미스즈는 딸을 곁에서 키우기를 간절히 원했고, 남편도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곧 마음을 바꿔 딸의 친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2. 4. 죽음

1926년 결혼한 남편은 간통을 저질렀고, 성병에 걸려 이를 미스즈에게 옮겼으며, 이로 인해 미스즈는 평생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 남편은 또한 미스즈에게 글쓰기를 중단하도록 강요했으며, 실패한 사업 때문에 2년 동안 네 번이나 이사하는 어려움을 겪게 했다.[5] 1927년 남편에게서 옮은 임질을 앓게 되었고, 1928년에는 창작과 편지 교환마저 금지당했다.[8] 1929년경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병상에 눕는 날이 많아졌다.[8]

결국 1930년 남편과 별거하여 세 살 된 딸 후사에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고, 그해 2월 정식 이혼이 결정되었다 (서류상으로는 성립되지 않음). 미스즈는 딸을 곁에서 키우고 싶다고 요구했고 남편도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곧 마음을 바꿔 딸의 친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 일본 법은 아버지에게 자녀에 대한 절대적인 양육권을 자동으로 부여했기 때문에[4], 미스즈는 딸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8]

1930년 3월 9일, 남편이 딸의 양육권을 가져가기로 한 날[1], 미스즈는 항의의 표시로 자살을 선택했다. 그녀는 근처 사진관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고[8], 딸 후사에를 목욕시킨 후 사쿠라모치를 함께 먹었다.[1]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밤중에 약물 자살을 시도했다. 야자키 세쓰오의 저서에 따르면 칼모틴을 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8] 그녀는 다음 날인 3월 10일, 27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향년 26세(만 나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8]

미스즈는 유서를 3통 남겼는데, 그중 전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신이 후짱(후사에)을 꼭 데려가고 싶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후짱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지, 마음의 양식은 아닙니다. 저는 후짱을 마음이 풍요로운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미치에게 맡겨 주세요"라고 적어 딸의 양육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길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9] 그녀의 친동생 가미야마 마사스케는 회고록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자살이 누나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적었다.[8] 미스즈의 법명은 석묘춘신니(釋妙春信尼)이다.[10] 그녀의 바람대로 딸 후사에는 외할머니 미치 슬하에서 자랐다.[1][8]

3. 작품의 재발견

생전에 발표한 시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네코 미스즈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중에게 잊혔다.[2] 1966년, 시인 지망생 야자키 세쓰오가 이와나미 문고의 『일본 동요집』에 실린 그녀의 시 "대어(大漁)"를 발견하고 감명을 받아 작가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다.[6] 16년간의 노력 끝에 1982년, 야자키는 가네코의 남동생 가미야마 마사스케를 만나 그녀가 남긴 512편의 미발표 시가 담긴 유고집 세 권을 발견했다.[1][6] 이 유고집을 바탕으로 1984년 『가네코 미스즈 전집』이 JULA 출판국에서 간행되면서, 잊혔던 그녀의 작품 세계가 다시 세상에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6] 야자키 세쓰오는 이후 가네코 미스즈 연구와 소개에 힘썼으며, 2003년 개관한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4][6]

3. 1. 망각

생전에 발표한 시로 호평을 받았지만, 가네코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를 거치며 대중에게 잊혀졌다.[2] 1966년, 당시 19세였던 일본의 시인 지망생 야자키 세츠오가 낡은 책에서 우연히 그녀의 시 "큰 수확"을 발견했다.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그는 16년 동안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1982년, 마침내 가네코의 남동생(당시 77세)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는 가네코가 직접 자신의 시를 옮겨 적어 놓았던 일기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녀의 시 대부분이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1]

야자키의 노력 덕분에 잊혔던 가네코 미스즈의 시 512편 전체가 JULA 출판국에 의해 6권의 선집으로 출판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독립 출판사인 친 뮤직 프레스에서 그녀의 시집 영문판인 ''Are You an Echo? The Lost Poetry of Misuzu Kaneko''가 발간되었고, 이 시집은 프리먼 문학상 2016년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야자키 세츠오는 2003년 가네코의 어린 시절 집터에 세워진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4]

3. 2. 재발견과 출판

생전에 발표한 시로 호평을 받았지만, 가네코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를 거치며 잊혀졌다.[2] 그러던 중 1966년, 당시 19세의 일본 시인 지망생이었던 야자키 세쓰오가 낡은 책에서 가네코의 시 "대어(大漁)"를 발견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6]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그는 16년 동안 가네코 미스즈의 흔적을 찾아다녔다.[6]

1982년, 야자키는 마침내 가네코의 남동생인 가미야마 마사스케(당시 77세)와 연락이 닿았고, 그가 누나의 시 512편이 담긴 일기장 세 권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들은 대부분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1] 야자키의 노력 덕분에 1984년, 이 512편의 시 전체가 JULA 출판국을 통해 『가네코 미스즈 전집』(전 6권)으로 출간되었다.[6] 야자키 세쓰오는 2003년 가네코의 생가 터에 개관한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4][6]

생가 터에 세워진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사후에도 간헐적으로 소개되었다. 사이조 야소는 자신이 주재하던 잡지 『밀랍 인형』과 『소녀 구락부』 등에 추도문과 함께 그녀의 시를 여러 차례 게재했다. 또한 다츠미 세이카, 요다 준이치 등이 엮은 여러 동요 선집에도 그녀의 작품("대어", "이슬비", "물고기" 등)이 포함되었다. 1957년 이와나미 문고 『일본 동요집』에 "대어"가 수록된 것이 야자키 세쓰오가 처음 미스즈의 시를 접하게 된 계기였다.[6] 1970년에는 동시대 투고 시인이었던 단조 하루키요가 초기 잡지 게재작 29편과 "고치와 묘"를 묶어 『가네코 미스즈 동요집 고치와 묘』를 자비 출판하기도 했다.

전집 출간 이후 가네코 미스즈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85년에는 도쿄 대학 입시 국어 문제에 "눈 쌓인", "대어"가 출제되었고, 현재 대표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다.

이후 지역 나가토시에서도 미스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1983년 "나가토 미스즈 모임"이 발족했으며, 1986년에는 "가네코 미스즈 현창회"가 설립되어 1992년 초대 기념관을 열었다. 2003년 가네코 탄생 100주년에는 생가 터에 현재의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이 개관했다.[6] 한편, 야자키보다 훨씬 앞선 1937년에 후쿠다 마사요시가 지역 잡지 『이야기의 관문』에서 가네코 미스즈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 바 있으나,[11] 야자키의 소개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시모노세키시 가라토 지구를 비롯한 관련 장소에는 미스즈의 시비가 설치되었으며, 가네코 미스즈가 사망한 가미야마 문영당 본점 터에는 "가네코 미스즈 시의 산책길" 비석이 세워져 이들을 둘러보는 산책 코스가 조성되었다.[12][13] 시모노세키시나가토시의 초등학교들은 정기적으로 '가네코 미스즈 교류회'를 열고 있다.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많은 작곡가와 가수에 의해 동요, 가곡, 합창곡 등으로 만들어졌다. 나카다 요시나오, 이케베 신이치로, 치히로, 스기모토 류이치, 하마 케이스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고향 출신 싱어송라이터 치히로는 50편 가까운 시에 곡을 붙여 여러 앨범을 발표했으며, 그녀가 작곡한 곡은 나가토시의 정오 알림 방송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스기모토 류이치 작곡, 아라가키 츠토무 노래의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는 2006년 NHK "모두의 노래"에서 방송되었다.[14] NHK E 텔레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 『일본어로 놀자』에서는 교겐 배우 노무라 만사이가 재해석한 "대어"나, 프로그램 내 노래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가 사용되었으며, 미스즈의 시 구절을 소재로 한 코너도 여러 편 제작되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발생 후, 공익광고기구 AC 재팬이 가네코의 시 "메아리일까요"(원제: 메아리일까)를 가수 UA가 낭독하는 공익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면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전집 판매량이 급증하고 『가네코 미스즈 동요집 "메아리일까요"』라는 제목으로 전자 서적이 긴급 출간되었으며, 시를 패러디한 글들이 인터넷에 퍼지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15]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방문객 수도 급증하여 2015년 11월 17일에는 150만 명을 넘어섰다.[16]

2016년에는 독립 출판사 친 뮤직 프레스에서 영문 시집 ''Are You an Echo? The Lost Poetry of Misuzu Kaneko''가 발간되어 프리먼 문학상 2016년 특별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뢰벨관에서는 "가네코 미스즈 어린이 노래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의 시에 현대적인 멜로디를 붙인 곡들을 유튜브에 공개하고, TV 도쿄 킨다 텔레비의 엔딩 테마로 방송하기도 했다.[17]

3. 3.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

가네코 미스즈의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잊혔으나,[2] 1966년 당시 19세였던 시인 지망생 야자키 세쓰오가 낡은 책에서 그녀의 시 "큰 수확"을 발견하면서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야자키는 작가에 대해 더 알기 위해 16년간 그녀의 흔적을 찾았고, 1982년 가네코의 남동생을 만나 그녀가 직접 시를 기록해 둔 일기들을 발견했다.[1]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3년 가네코 미스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 센자키의 집터에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야자키 세쓰오가 현재 이 기념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4]

4. 작품의 특징 및 영향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 그리고 평범한 사물에 대한 독창적인 감수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으로는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대어」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고향 센자키의 자연환경과 포경 문화 등 지역적 배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스즈는 1930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오랫동안 잊혔으나, 동요 시인 야자키 세쓰오의 노력으로 재발견되었다. 야자키는 1966년 대학 시절 이와나미 문고 『일본 동요집』에 실린 미스즈의 시 「대어」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이후 16년간 그녀의 작품과 행적을 추적했다.[6] 그는 미스즈의 친동생 가미야마 마사스케를 만나 미발표 시가 담긴 유고 시집 3권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1984년 『가네코 미스즈 전집』(JULA 출판국)을 간행하면서 미스즈의 작품 세계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6]

재발견 이후 미스즈의 시는 일본 사회와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5년 도쿄 대학 입시 문제에 시가 출제되었고,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리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그녀의 고향 나가토시를 중심으로 재평가 움직임이 일어나 1986년 "가네코 미스즈 현창회"가 설립되었고, 탄생 100주년인 2003년에는 생가 터에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이 개관했다.[6]

미스즈의 시는 여러 작곡가에 의해 동요, 가곡, 합창곡 등으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으며, NHK E 텔레의 어린이 프로그램 『일본어로 놀자』 등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되고 있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미스즈의 시 「메아리일까요」를 활용한 AC 재팬의 공익 광고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미스즈의 작품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15][16]

한편, 야자키 세쓰오의 재발견 이전에 1937년 지역 언론인 후쿠다 마사요시가 잡지를 통해 미스즈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 바 있으나,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11]

4. 1. 작품의 특징



하늘은 조금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을 빨리 달릴 수는 없지.





내가 몸을 흔들어도,


예쁜 소리는 나지 않지만,


저 울리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는 몰라요.





방울과, 작은 새와, 그리고 나,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4. 2.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메아리일까요?"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및 쓰나미 이후, 일본의 여러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네코 미스즈의 시 "메아리세요?"를 공익 광고로 방송했다.[1]

4. 3. 음악화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본래 곡을 붙이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시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면서 동요, 가곡, 합창곡 등 다양한 형태로 작곡되었다. 나카타 요시나오, 이케베 신이치로, 요시오카 시게미, 리정미, 사와 토모에, 노다 준코, 이시와카 마사야, 유게타 켄스케, 치히로, 니시무라 나오키, 오니시 스스무, 스기모토 류이치, 오하라 타카시, 하마 케이스케 등 많은 작곡가와 가수가 미스즈의 시에 곡을 붙였다. 특히 니시무라 나오키와 오니시 스스무는 미스즈의 모든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미스즈의 고향인 나가토시에서는 그녀의 시를 기리는 음악 활동이 활발하다. 나가토 시에는 미스즈의 시를 노래하고 알리는 어린이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지역 어린이들로 구성되어 매년 정기 공연과 지역 행사 무대에 오르며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7] 또한 나가토시 시내 5개 구역에서는 저녁 종소리로 나카타 요시나오가 1989년 "후루사토 창조 기금" 지원을 받아 미스즈의 시에 곡을 붙인 "나가토 후루사토 멜로디"(부제: "착한 아이는 날 수 있어")가 매일 울려 퍼져, 시민들에게 미스즈는 매우 친숙한 존재이다.[8]

개별 작곡가들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2006년 12월에는 작곡가 스기모토 류이치가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에 곡을 쓰고 테너 가수 아라가키 츠토무가 불러 앨범 『일본을 노래하다』에 수록했으며, 이 곡은 그 해 NHK "모두의 노래"에서도 방송되었다.[14] 같은 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오하라 타카시는 제17회 주악당 일본 가곡 콩쿠르에서 "고부토리~이야기의 노래 1"에 작곡하여 나카다 요시나오 상을 수상했다.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는 미스즈의 시 8편에 곡을 붙여, 핫토리 타카유키 편곡, 사도 유타카 지휘, 신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 연주, 사노 나리히로(테너), 사토 시노부(소프라노)의 참여로 CD 『미스즈의 노래 - 가네코 미스즈 meets 하마 케이스케』(avex CLASSICS)를 발매했다.

초·중학생 대상 클래스 합창곡 작곡가인 유게타 켄스케는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메아리일까요", "대어", "별과 민들레", "밝은 쪽으로", "불가사의" 등에 곡을 붙였다. 그의 곡들은 전문 성악가가 아닌 교실의 아이들이 즐겁게 부를 수 있도록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미스즈와 같은 고향 출신인 싱어송라이터 치히로는 미스즈의 시 약 50편에 곡을 붙여 노래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별과 민들레』, 『대어』, 『꽃의 영혼』 등 4장의 정규 앨범과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으며, 2016년에는 셀프 커버 앨범 『RE*BORN -리본 가네코 미스즈-』를 발표했다. 그녀가 작곡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별과 민들레"는 야마구치현 노래집에도 실렸고, 『고래 법회』는 제국서원의 지도책에 소개되었다. 치히로는 FM 야마구치 특별 프로그램 『메아리일까요~지금, 가네코 미스즈의 마음을 듣고 싶다~』(2011년, 제7회 일본 방송 문화 대상 라디오 부문 준 그랑프리 수상)와 KRY 야마구치 방송 특별 프로그램 "치히로 DE 브레이크 특별 프로그램 - 가네코 미스즈가 맺는 사람과 사람 -"(2022년, 일본 민간 방송 연맹상 지역 우수상)의 퍼스널리티를 맡았다. 나가토시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방재 무선 음악으로 치히로가 작곡한 "일촌법사"가 사용되고 있으며, 2022년에는 미스즈의 모교인 나가토 시립 센자키 초등학교 창립 1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2023년에는 NHK 야마구치 방송과 전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미스즈의 시와 음악을 알렸다.

미스즈의 시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NHK E 텔레의 어린이 프로그램 『일본어로 놀자』에서는 노무라 만사이교겐으로 각색한 "대어"나 프로그램 내 노래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등이 사용되고 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이후에는 AC 재팬의 공익 광고 캠페인이 큰 주목을 받았다. 가수 UA가 낭독한 미스즈의 시 "메아리일까요"(원제: "메아리일까")가 담긴 이 광고는 지진 관련 보도로 인해 일반 광고가 중단되면서 자주 방송되었고, 이로 인해 『가네코 미스즈 전집』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관련 시집이 전자 서적으로 출간되는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시의 구절을 패러디하는 현상도 나타났으며,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의 방문객 수도 크게 늘어 2015년 11월에는 150만 명을 돌파했다.[15][16]

프뢰벨관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네코 미스즈 어린이 노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복숭아", "아이의 시계" 등의 시에 현대적인 팝 멜로디를 붙인 곡을 공개하고, 프뢰벨관이 제공하는 TV 도쿄 계열 유아 프로그램 킨다 텔레비의 엔딩 테마로 사용하기도 했다.[17]

5. 관련 작품

미스즈의 삶은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다루어졌으며,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그녀의 시가 소개되는 경우도 많다.

; 전기 소설

:* 미스즈와 야스스케(마츠모토 유코 저), 신초샤, 2017년.

; 일러스트

:* 나의 가네코 미스즈(치바 테츠야 그림), 미디어 팩토리, 2002년 / 치쿠마 문고, 2022년

; 영화

:* 미스즈(키노쿠니야 서점 제작, 감독: 이가라시 타쿠미, 주연: 타나카 미사토), 2001년[18]

; 드라마

:* NHK 스페셜 "No.853 마음의 왕국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세계"(NHK 제작, 연출: 곤노 츠토무, 주연: 고바야시 아야코), 1995년.

:* 밝은 쪽으로 밝은 쪽으로 (TBS 제작, 프로듀서: 이시이 후쿠코, 주연: 마츠 타카코), 2001년.

:* 가네코 미스즈 이야기~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TBS 제작, 프로듀서: 이시이 후쿠코, 주연: 우에토 아야), 2012년.

; 연극

:* 하늘의 엄마(작: 오오야부 이쿠코, 연출: 이시이 후쿠코, 주연: 사이토 유키), 2001년.

:* 나의 가네코 미스즈(연극 집단 엔), 연출: 코모리 미미, 주연: 타카하시 리에코), 2002년, 2004년.

:* 하늘의 엄마(작: 오오야부 이쿠코, 연출: 이시이 후쿠코, 주연: 후지타 토모코), 2003년.

:* 가네코 미스즈 마지막 사진관(작·연출: 하야사카 아키라, 주연: 오노야마 치즈루), 2005년

:* 미스즈와 테루와 어머니와(각본·종합 연출: 스즈키 리오, 연출: 오가사와라 히비키, 주연: 쥰나 리사), 2007년.

:* 가네코 미스즈 생명에의 시선~시와 노래와 이야기~(주연: 호야 카나코)

:* 하늘의 하모니카 -내가 미스즈였던 시절의 일-(테가미좌, 작: 나가타 이쿠에, 연출: 오기타 타쿠야, 주연: 이시무라 미카), 2011년, 2013년.

; 만화

:* 제로 THE MAN OF THE CREATION 제263화(단행본 제41권 수록) "박행의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에서 상세한 심정과 상황이 다루어졌다.

:* 꽃으로 말하라 제21화(단행본 제5권 수록) "보릿짚 엮는 아이의 노래"의 낭독을 통해 두 가지 해석이 소개되었다.

:* 바람을 안는 사람 환상의 동요 시인 가네코 미스즈 세기의 여자들 제2회(슈에이샤 YOU, 1999년 수록) 원작/타카다 이쿠, 작화/타카세 리에

; 강담

:* 가네코 미스즈의 전(작: 이치류사이 슌스이, 구연: 이치류사이 슌스이), 2007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 텔레비전 프로그램

:* 알고 싶어?! 1994년.

:* 일본어로 놀자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작곡: 바나나 아이스, 편곡: 스와 요시카즈), "귀뚜라미의 산 오르기"(곡: 오오타카 시즈루), "안녕"(곡: 스와 요시카즈), "별과 민들레"(곡: 오오타카 시즈루), "벌과 하나님"(곡: 스와 요시카즈), "대어"(광대극: 노무라 만사이)

:* 알 수 있는 국어 너무 좋아하는 20권 "대어"(낭독: 오오타케 시노부, 선생님 역: 코우카미 쇼지), 2003년.

:* 모두의 노래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노래: 아라가키 츠요시, 작곡: 스기모토 류이치, 편곡: 미노 하루키, 애니메이션: 미나미케 코지), 2006-2007년.

:* 역사 비화 히스토리아 제87회 "사랑과 슬픔의 '메아리일까요'~다이쇼 시대의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비밀~"(주연: 미야지마 마이), 2011년.

:* 시점·논점 "가네코 미스즈와 나"(출연: 야자키 세츠오), 2013년.

:* 100분 de 명저 "가네코 미스즈 시집"(해설: 마츠모토 유코), 2022년.

; 라디오 프로그램

:* 미스즈 씨와 밝은 쪽으로(퍼스널리티: 싱어송라이터 치히로) 커뮤니티 FM 전국 9개 방송국에서 방송, 2021년 4월-

; TVCM

:* AC 재팬 "벌과 하나님"(낭독: 다베 미카코, 2011년도 주고쿠·시코쿠 지역 캠페인), "메아리일까요"(낭독: UA, 2010년도 도쿄 지역 캠페인, 2011년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 톱 10에 선정되었다.)

:* 비파괴 검사 "참새의 어머니" "별과 민들레"(TV CM, 가네코 미스즈 편)

참조

[1] 웹사이트 Are You An Echo: The Remarkable Story of the Forgotten Young Woman Who Became Japan's Most Beloved Children's Poet https://www.brainpic[...] 2017-03-20
[2] 간행물 Misuzu Kaneko http://www.pref.yama[...] 2017-03-20
[3] 뉴스 Chin Music Press Translates Japanese Children's Poet for US Market http://www.publisher[...] Publishers Weekly
[4] 웹사이트 Kaneko Misuzu: Rediscovering the Life and Work of Japan's Poet for Children https://www.nippon.c[...] 2021-04-11
[5] 웹사이트 Forgotten Woman: the Life of Misuzu Kaneko https://electriclite[...]
[6] 뉴스 【ようこそ!偉人館へ】金子みすゞ記念館 やさしさあふれる詩/青年の情熱で再び光 2022-05-28
[7] 뉴스 薄幸の詩人・金子みすゞ 父の他殺説覆す記事 2006-04-20
[8] 웹사이트 朝ドラの梅子は新民法のおかげでサバイブしたが…旧民法下で最愛の娘を取り上げられ命絶った女性詩人の悲劇 26歳で死去した金子みすゞは女性に親権がないことに絶望 (4ページ目) https://president.jp[...] 株式会社 プレジデント社 2024-08-30
[9] 서적 童謡詩人 金子みすゞの生涯 JULA出版局
[10] 서적 文学者掃苔録図書館 原書房
[11] 웹사이트 金子みすゞ 『話の関門』を探し出そう 昭和12年、本紙・福田正義主幹が評論 全部の遺稿読み、詩と人生を紹介 https://www.chosyu-j[...] 長周新聞 2022-04-05
[12] 웹사이트 金子みすゞ顕彰碑 下関観光ガイドブック「海峡出会い旅」WEB版 https://shimonoseki-[...] 一般社団法人下関観光コンベンション協会 2024-08-30
[13] 웹사이트 上山文英堂本店跡|観光スポット|【公式】山口県観光/旅行サイト おいでませ山口へ https://yamaguchi-to[...] 一般社団法人山口県観光連盟 2024-08-30
[14] 웹사이트 私と小鳥と鈴と https://www.nhk.or.j[...] 2024-06-30
[15] 뉴스 こだまでしょうか、いいえ… http://sankei.jp.msn[...] 2011-04-04
[16] 뉴스 金子みすゞ記念館の入館者数が150万人を突破! https://nanavi.jp/ne[...] 山口県長門市観光サイト ななび 2015-11-17
[17] 웹사이트 【YouTube】金子みすゞ子どもうたプロジェクト『子供の時計』『桃』のショートver.を公開中! https://www.froebel-[...] 2021-05-12
[18] 웹사이트 劇映画「みすゞ」公式サイト https://web.archive.[...]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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