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사키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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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와사키 조선소는 일본의 근대 조선 산업 발달에 기여한 기업으로, 1869년 효고 조선소와 가와사키 쇼조에 의해 설립되었다. 1886년 관영 효고 조선소를 인수하여 가와사키 조선소로 개칭되었으며,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소로 전환되어 함정, 상선, 교량 및 철골 구조물, 항공기, 철도 차량, 자동차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특히, 일본 해군 함정 건조에 크게 기여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건조하기도 했다. 전후 가와사키 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2년 선박 부문을 분리하여 가와사키 조선으로 운영되다 2010년 다시 합병되어 현재는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디비전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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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조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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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효고 조선소와 가와사키 조선소의 설립 (1869년 ~ 1896년)
1869년 고베에는 〈효고 제철소〉(이후 ‘관영 효고 조선소’)가 설립되는 등 근대 조선 산업이 발달하였다. 이 조선소는 가가번에 속하는 무사들 3명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나나오 조선소가 설비를 넘겨받아 효고 가와사키의 바닷가(히가시 쵸)에 설립되었다.
1869년 8월, 가가번의 관계자가 〈효고 제철소〉(통칭 카슈 제철소)를 설립하였다. 1871년 2월 26일, 〈벌컨 조선소〉를 인수하여 공부성 제작 기숙사 〈효고제작소〉를 설치하였다. 1872년 공부성은 〈효고제철소〉를 인수하여 효고제작소와 합병하였다. 1873년 4월 14일 동 가와사키초로 이전하였고, 1877년 1월 11일 효고제작소는 〈효고공작분국〉으로 개칭되었다. 1883년 9월 22일 효고공작분국은 〈효고조선국〉으로, 1885년 12월 22일 에는 농상무부 공무국 〈효고조선소〉'로 다시 개칭되었다.
1869년 4월, 닛시 무역 상회가 효고진의 히가시카와사키정에 발칸 철공소를, 같은 해 8월에 가가번과 다이쇼지번이 공동으로 효고진의 히가시데정에 효고 제철소 (통칭: 가슈 제철소)를 설립하였다. 1870년 12월에 공부성이 히가시카와사키정에 효고 제작소를 각각 설립했다.
공부성은 1872년 1월에 효고 제철소, 1873년 4월에 발칸 철공소를 각각 매수하여, 효고 제철소와 발칸 철공소를 효고 제작소에 합병하여, 효고 제작소를 발칸 철공소 터로 이전시켰다. 효고 제작소는 1877년 1월에 효고 공작 분국, 1883년 9월에 효고 조선국, 1885년 12월에 농상무성으로 이관되어 효고 조선소로 개칭되었다. 또한, 효고진은 1879년에 고베 마을·사카모토 촌과 합병하여 고베구 (고베시의 전신)가 되었다.
가와사키 쇼조는 현대적 조선소의 필요성을 느껴 1878년 도쿄 쓰키지에 가와사키 쓰키지 조선소를, 1881년에는 고베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화선의 제한이 풀리지 않아 경영이 어려웠고, 가와사키 쇼조는 관에 공급하는 설탕에서 얻은 이익을 쏟아부었다.
메이지 정부는 1880년에 관영 공장을 민간에 불하할 방침을 세웠고, 1886년 관영 효고 조선소가 가와사키에 불하되었다. 시설과 부지 모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의 기능은 이곳으로 이전되었고, 관영 효고 조선소는 '''가와사키 조선소'''로 개칭되었다. 가와사키 츠키지 조선소는 부지 확장 여지가 없고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쇄되어 고베에 집중되었다.
가와사키 조선소는 현재의 고베 공장 위치에 선대 3개, 선가 2개의 시설을 갖추고 철제 선박 건조 능력이 있었다. 관영 시대에 수주하여 건조 중이던 철제 선박도 그대로 이어받아 경영에 도움이 되었다. 1894년 청일 전쟁 발발로 신조 및 수리 수요가 증가하여 사업이 확대되었다.
2. 1. 효고 조선소
1869년 가와사키 조선소가 있는 고베에는 〈효고 제철소〉(이후 ‘관영 효고 조선소’)가 설립되는 등 근대 조선 산업이 발달하였다. 이 조선소는 가가번에 속하는 무사들 3명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나나오 조선소가 설비를 넘겨받아 효고 가와사키의 바닷가(히가시 쵸)에 설립되었다.1869년 8월, 가가번의 관계자가 〈효고 제철소〉(통칭 카슈 제철소)를 설립하였다. 1871년 2월 26일, 〈벌컨 조선소〉를 인수하여 공부성 제작 기숙사 〈효고제작소〉를 설치하였다. 1872년 공부성은 〈효고제철소〉를 인수하여 효고제작소와 합병하였다. 1873년 4월 14일 동 가와사키초로 이전하였고, 1877년 1월 11일 효고제작소는 〈효고공작분국〉으로 개칭되었다. 1883년 9월 22일 효고공작분국은 〈효고조선국〉으로, 1885년 12월 22일 에는 농상무부 공무국 〈효고조선소〉'로 다시 개칭되었다.
1869년 4월, 닛시 무역 상회가 효고진의 히가시카와사키정에 발칸 철공소를, 같은 해 8월에 가가번과 다이쇼지번이 공동으로 효고진의 히가시데정에 효고 제철소 (통칭: 가슈 제철소)를 설립하였다. 1870년 12월에 공부성이 히가시카와사키정에 효고 제작소를 각각 설립했다.
공부성은 1872년 1월에 효고 제철소, 1873년 4월에 발칸 철공소를 각각 매수하여, 효고 제철소와 발칸 철공소를 효고 제작소에 합병하여, 효고 제작소를 발칸 철공소 터로 이전시켰다. 효고 제작소는 1877년 1월에 효고 공작 분국, 1883년 9월에 효고 조선국, 1885년 12월에 농상무성으로 이관되어 효고 조선소로 개칭되었다. 또한, 효고진은 1879년에 고베 마을·사카모토 촌과 합병하여 고베구 (고베시의 전신)가 되었다.
2. 2. 가와사키 조선소
가와사키 쇼조는 현대적 조선소의 필요성을 느껴 1878년 도쿄 쓰키지에 가와사키 쓰키지 조선소를, 1881년에는 고베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화선의 제한이 풀리지 않아 경영이 어려웠고, 가와사키 쇼조는 관에 공급하는 설탕에서 얻은 이익을 쏟아부었다.메이지 정부는 1880년에 관영 공장을 민간에 불하할 방침을 세웠고, 1886년 관영 효고 조선소가 가와사키에 불하되었다. 시설과 부지 모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가와사키 효고 조선소의 기능은 이곳으로 이전되었고, 관영 효고 조선소는 '''가와사키 조선소'''로 개칭되었다. 가와사키 츠키지 조선소는 부지 확장 여지가 없고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폐쇄되어 고베에 집중되었다.
가와사키 조선소는 현재의 고베 공장 위치에 선대 3개, 선가 2개의 시설을 갖추고 철제 선박 건조 능력이 있었다. 관영 시대에 수주하여 건조 중이던 철제 선박도 그대로 이어받아 경영에 도움이 되었다. 1894년 청일 전쟁 발발로 신조 및 수리 수요가 증가하여 사업이 확대되었다.
1896년 10월 15일,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소가 설립되었다. 1902년 11월에는 제1 드라이 도크가 완성되었고, 1906년 4월 5일에는 최초의 일본산 잠수함인 제6, 제7 잠수정이 준공되었다. 1907년 11월 19일에는 통보함 요도가 준공되었는데, 이는 국내 민간 조선소에서 건조한 최초의 10,000톤 이상 군함이다. 1912년 11월에는 갠트리 크레인이 완성되었다.
1915년 4월 19일, 전함 하루나가 준공되었는데, 이는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전함 키리시마와 함께 민간 조선소 최초로 건조한 전함이다. 1918년 7월에는 후키아이 공장이 설치되었고, 효고 공장에는 자동차과와 비행기과가 설치되었다. 같은 해 10월 7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다이후쿠마루형 화물선 라이후쿠마루를 30일 만에 건조하여 세계 최단 기록을 세웠다.
1919년 4월 10일, 가와사키 기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922년 9월 7일에는 비행기과가 효고 공장에서 분리되어 본사 직속의 비행기부 및 비행기부 가카미가하라 분공장이 설치되었다. 1927년 2월 2일, 비행기부는 비행기 공장으로 개칭되었다. 같은 해 4월 21일에는 15은행이 임시 휴업하면서 경영 위기를 겪었다.
1928년 5월 18일, 철도 차량과 주조품을 생산하는 효고 공장이 가와사키 차량 주식회사로 분리되었다. 같은 해 6월 27일에는 본사 공장과 후키아이 공장이 각각 함선 공장, 제판 공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31년 7월 20일 화의를 신청했고, 1932년 8월 13일 고베구 재판소에서 화의 개시 결정, 11월 22일에는 화의 인가 결정이 내려졌다. 1937년 11월 18일, 비행기 공장이 분리되어 가와사키 항공기 공업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3.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소 시대 (1896년 ~ 1939년)
1896년 (메이지 29년) 10월 15일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소'''가 설립되었다. 가와사키 쇼조의 아들 3명은 이미 사망했고, 양자인 4남은 아직 10세였기에,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3남 마쓰카타 고지로가 초대 사장이 되었다. 사장이 된 마쓰카타는 적극적으로 설비 투자를 하여, 염원하던 건식 도크가 1902년 (메이지 35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부터 새로운 선대 건설에도 착수하여 1905년 (메이지 38년)에 제1 선대가 완성되었다. 그 후에도 새로운 선대 건설을 계속하여 설비를 확장했다. 제4 선대 위의 갠트리 크레인은 1912년 (메이지 45년)에 준공되었다. 1937년 (쇼와 12년)까지 8개의 선대를 설치했으며, 그 중 제6 선대는 1941년 (쇼와 16년)에 철거되어 1945년 (쇼와 20년) 종전 시에는 7대의 선대가 있었다.
마쓰카타는 해외 기술 도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실용화가 시작된 선박용 터빈에서는 1907년 (메이지 40년) 인터내셔널 커티스 마린 터빈사(International Curtis Marine Turbine Co.)와 특허에 대한 계약을 맺고, 커티스식 터빈의 제조를 시작했다. 또한 1911년 (메이지 44년)에는 영국의 존 브라운사(John Brown Co.)와 기술 제휴하여 브라운-커티스식 터빈을 제조했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MAN사와 특허 계약을 맺고 디젤 엔진을 제조했다. 그 외 다이쇼 시대 초까지 합쳐 17건의 해외 특허와 계약을 맺었다.
개인 경영 시대에는 일본 해군을 위해 목조 부설정 6척을 건조했을 뿐이었다. 주식회사 설립 이후 함정 건조는 본격화되어, 1899년 (메이지 32년)의 어뢰정 건조를 시작으로 구축함 등을 건조했다. 잠수함 건조도 일찍부터 시작하여, 1906년 (메이지 39년)에 일본 최초의 국산 잠수함 (제6잠수정)을 건조했다. 그 후에도 함정 건조에 주력하여 1945년(쇼와 20년)의 패전으로 제국 해군이 소멸되기까지 가와사키 조선소가 완성한 함정은 전함 3척,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5척, 경순양함 3척 등 다수에 달한다. (→#일본 해군 함정)
종전까지 전함·항공모함을 건조한 국내의 민간 조선소는 이곳과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두 곳뿐이었다(항공모함 선체만 건조한 곳은 그 외 2곳이 있었다). 또한 잠수함을 건조한 국내의 민간 조선소도 이곳과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조선소, 태평양 전쟁 중에 건조를 시작한 미쓰이 조선 타마노 조선소 3곳뿐이었다.
상선 건조도 순조롭게 수주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다이후쿠마루형 화물선을 스톡 보트로 75척이나 건조하여, 큰 이익을 올렸다.
3. 1. 주식회사 설립 및 초기 성장
1896년 (메이지 29년) 10월 15일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소'''가 설립되었다. 가와사키 쇼조의 아들 3명은 이미 사망했고, 양자인 4남은 아직 10세였기에,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3남 마쓰카타 고지로가 초대 사장이 되었다. 사장이 된 마쓰카타는 적극적으로 설비 투자를 하여, 염원하던 건식 도크가 1902년 (메이지 35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부터 새로운 선대 건설에도 착수하여 1905년 (메이지 38년)에 제1 선대가 완성되었다. 그 후에도 새로운 선대 건설을 계속하여 설비를 확장했다. 제4 선대 위의 갠트리 크레인은 1912년 (메이지 45년)에 준공되었다. 1937년 (쇼와 12년)까지 8개의 선대를 설치했으며, 그 중 제6 선대는 1941년 (쇼와 16년)에 철거되어 1945년 (쇼와 20년) 종전 시에는 7대의 선대가 있었다.마쓰카타는 해외 기술 도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실용화가 시작된 선박용 터빈에서는 1907년 (메이지 40년) 인터내셔널 커티스 마린 터빈사(International Curtis Marine Turbine Co.)와 특허에 대한 계약을 맺고, 커티스식 터빈의 제조를 시작했다. 또한 1911년 (메이지 44년)에는 영국의 존 브라운사(John Brown Co.)와 기술 제휴하여 브라운-커티스식 터빈을 제조했다. 또한 같은 해, 독일의 MAN사와 특허 계약을 맺고 디젤 엔진을 제조했다. 그 외 다이쇼 시대 초까지 합쳐 17건의 해외 특허와 계약을 맺었다.
개인 경영 시대에는 일본 해군을 위해 목조 부설정 6척을 건조했을 뿐이었다. 주식회사 설립 이후 함정 건조는 본격화되어, 1899년 (메이지 32년)의 어뢰정 건조를 시작으로 구축함 등을 건조했다. 잠수함 건조도 일찍부터 시작하여, 1906년 (메이지 39년)에 일본 최초의 국산 잠수함 (제6잠수정)을 건조했다. 그 후에도 함정 건조에 주력하여 1945년(쇼와 20년)의 패전으로 제국 해군이 소멸되기까지 가와사키 조선소가 완성한 함정은 전함 3척,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5척, 경순양함 3척 등 다수에 달한다. (→#일본 해군 함정)
종전까지 전함·항공모함을 건조한 국내의 민간 조선소는 이곳과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두 곳뿐이었다(항공모함 선체만 건조한 곳은 그 외 2곳이 있었다). 또한 잠수함을 건조한 국내의 민간 조선소도 이곳과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조선소, 태평양 전쟁 중에 건조를 시작한 미쓰이 조선 타마노 조선소 3곳뿐이었다.
상선 건조도 순조롭게 수주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다이후쿠마루형 화물선을 스톡 보트로 75척이나 건조하여, 큰 이익을 올렸다.
3. 2. 경영 위기와 극복
러일 전쟁 이후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경영난으로 직원 수가 반감되었으나, 정부의 조선업 보호 정책과 국제 정세 호전으로 수주가 증가하며 실적이 회복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19년의 노동쟁의, 1922년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다시 경영 위기를 맞았다. 1927년 쇼와 금융 공황으로 주거래 은행인 15은행이 임시 휴업하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되었다.정부와 고베시의 원조, 직원 해고, 임원 보수 삭감, 마쓰카타 및 가와사키 가문의 사재 출연 등으로 경영 재건을 시도했다. 효고 공장을 가와사키 차량으로 분리하고, 본사 공장과 후키아이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일본 제국 해군도 함정 건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31년 대공황으로 화의를 신청하고, 1933년 화의 절차를 완료했다. 3,260명의 인원 정리와 경비 절감, 정부의 신규 발주, 만주사변 이후 경기 회복으로 회사 재건이 궤도에 올랐다.
3. 3. 사업 다각화
가와사키 조선소는 조선업 외에도 다양한 사업 분야로 진출했다. 1887년부터 교량 제조를 시작했으며, 1900년 금융 위기 이후 경기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업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1906년 철도 차량 제조업에 진출했다.[1] 1907년 고베시 효고구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여 철도 차량, 강철 주조 부품, 교량 등을 생산했다. 이 공장은 현재 가와사키 중공업 효고 공장이며, 1928년 가와사키 차량 주식회사로 분사되었다가 1969년 다시 합병되었다.[1]1918년에는 자동차 생산을 시작하여 오사카 포병공창의 권유로 군용 화물차 2대를 제작했다. 1921년 효고에 공장을 설립하고 자동차부를 설치, 패커드를 모델로 1톤 트럭을 만들기 시작했다. 1929년에는 버스 생산도 계획했으며, 1931년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솔린 엔진을 완성했다. 1932년부터는 이 엔진을 탑재한 트럭, 섀시, 버스 차체 등을 생산했고, 1933년에는 철도성과 육해군 지휘관용 승용차도 납품했다. 이 차량들은 '롯코 호'라고 불렸으며, 1942년까지 총 4,190대가 생산되었다.
1919년에는 가와사키 기선을 설립하여 해운업에 진출했고, 같은 해 국제 기선 설립에도 참여했다. 1918년부터 항공기 분야에도 진출하여 1923년 기후현 가카미가하라시에 기체 조립 공장을 완공하고, 1924년에는 독일 돌니에사의 비행정을 생산하며 기술을 도입했다. 1937년에는 가와사키 항공기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항공기 부문을 독립시켰다.
제강 분야는 1906년 운하 분공장에 제강부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1916년 효고 공장에 제조 공장을 신설하여 봉강 등을 생산했고, 1917년에는 고베 주오구에 후키아이 공장을 완공하여 강판 생산을 시작했다. 1937년에는 이와테현 구지시에 구지 제철소를 개설하여 사철 선재 생산을 시작했다.
이러한 사업 다각화에 따라 1939년 12월 1일, 회사명을 '''가와사키 중공업'''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4. 가와사키 중공업 시대 (1939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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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12월 1일 - '''가와사키 중공업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 1940년 3월 5일 - 함선 공장이 해군 관리 공장으로 지정.
- 1941년 9월 25일 - 항공모함 "즈이카쿠" 준공 (민간 조선소 최초의 항공모함 준공).
- 1942년 4월 17일 - 함선 공장 · 제강 공장이 중요 사업장 지정 공장이 됨.
- 1942년 5월 1일 - 제102해군작업부 자카르타 분공장 개설, 해군에서 위탁받음.
- 1942년 10월 28일 - 센슈 공장 개설.
- 1943년 3월 10일 - 이호 공장 개설.
- 1943년 12월 28일 - 지타 공장 개설.
- 1944년 1월 17일 - 군수 공장으로 지정.
- 1944년 6월 15일 - 자바 제2선박 공장 개설, 육군에서 위탁받음.
- 1945년 3월 17일 - 고베 대공습.
- 1945년 6월 5일 - 고베 대공습 (2차).
- 1945년 7월 25일 - 센슈 공장이 공습을 받음.
- 1945년 8월 22일 - 병기 제조를 중지.
- 1950년 8월 7일 - 철강 부문을 가와사키 제철 주식회사(현 JFE 스틸)로 분리.
- 1962년 11월 - 갠트리 크레인 해체.
- 1969년 4월 1일 - 가와사키 중공업 · 가와사키 항공기 공업 · 가와사키 차량이 합병.
- 2002년 -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선박 부문이 분리되어, 주식회사 가와사키조선이 발족. 구 가와사키조선소는 동사의 고베 공장이 됨.
- 2010년 - 가와사키조선은 가와사키 중공업에 흡수되어,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컴퍼니가 됨.
- 2021년 - 가와사키중공업의 에너지 솔루션 & 해양 컴퍼니 내의 조직으로 재편성되어,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디비전이 됨.
=== 제2차 세계대전 시기 ===
국제 정세가 긴장되면서 함정 수주가 크게 증가했고, 가와사키 조선소는 급성장했다. 1940년 공장이 해군 관리 공장으로 지정되었고, 1942년에는 핵심 사업장, 1944년에는 육군 관리 공장으로 지정되며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함선 건조가 활발해졌고, 잠수함 전용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오사카부 미사키정 해안을 매립하여 센슈 공장을 건설했다. 이 공장은 1939년 부지 확보를 시작하여 1942년 10월 28일에 완공되었으나, 전후 민수로 전환하기 어려워 1949년 6월 30일에 폐쇄되었다.
1941년 9월 25일, 민간 조선소 최초로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준공하였다. 일본 해군의 요청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점령지에서 네덜란드군이 파괴한 공장 설비를 수리하여 1943년 자카르타 조선소를 개설, 선박 수리에 집중했다. 1944년에는 육군 의뢰로 자바 제2선박 공장을 가동하여 목조 선박을 수리했다.
1941년, 니시노미야시에 특수강 공장(JFE스틸 니시노미야 공장의 전신)을 설치했다. 그 외, 이와테현 구지정에 광산부를 설치하고,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 광산을 매수하여 제2광산부를 설치했다. 1943년, 효고현 다카사고시에 대형 단조품 제조를 위한 이호 공장을 설립했으나, 종전 당시 미완성 상태였고 1948년에 폐쇄되었다. 같은 해 아이치현 한다시에 지타 공장 (현・JFE스틸 지타 제조소)을 건설했다.
1944년 말부터 일본 각지에 공습 피해가 커졌고, 1945년 3월 17일 고베 대공습으로 함선 공장이 피해를 입었으며, 6월 5일 공습으로 피해가 확대되었다. 다른 공장들도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고 종전을 맞았다.
=== 전후 재건과 성장 ===
전후에도 가와사키 조선소는 함선 건조를 계속하여 해상자위대의 잠수함 건조를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조선소와 양분하고 있다. 1950년에는 철강 부문을 가와사키 제철 주식회사(현 JFE 스틸)로 분리하고, 중공업 부문만 남았다. 1969년, 가와사키 중공업, 가와사키 항공기 공업, 가와사키 차량 3사가 합병하여 신생 '''가와사키 중공업'''이 되었다.
1941년 9월 25일에는 민간 조선소 최초로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준공하였다. 1945년에는 고베 대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종전 후 병기 제조를 중지하고 재건에 힘썼다.
2002년에는 선박 부문이 분리되어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이 되었으나, 2010년 다시 가와사키 중공업에 흡수 합병되어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컴퍼니가 되었다. 2021년에는 가와사키중공업의 에너지 솔루션 & 해양 컴퍼니 내의 조직으로 재편성되어,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디비전이 되었다.
4. 1.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국제 정세가 긴장되면서 함정 수주가 크게 증가했고, 가와사키 조선소는 급성장했다. 1940년 공장이 해군 관리 공장으로 지정되었고, 1942년에는 핵심 사업장, 1944년에는 육군 관리 공장으로 지정되며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함선 건조가 활발해졌고, 잠수함 전용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오사카부 미사키정 해안을 매립하여 센슈 공장을 건설했다. 이 공장은 1939년 부지 확보를 시작하여 1942년 10월 28일에 완공되었으나, 전후 민수로 전환하기 어려워 1949년 6월 30일에 폐쇄되었다.1941년 9월 25일, 민간 조선소 최초로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준공하였다. 일본 해군의 요청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점령지에서 네덜란드군이 파괴한 공장 설비를 수리하여 1943년 자카르타 조선소를 개설, 선박 수리에 집중했다. 1944년에는 육군 의뢰로 자와 제2선박 공장을 가동하여 목조 선박을 수리했다.
1941년, 니시노미야시에 특수강 공장(JFE스틸 니시노미야 공장의 전신)을 설치했다. 그 외, 이와테현 구지정에 광산부를 설치하고,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 광산을 매수하여 제2광산부를 설치했다. 1943년, 효고현 다카사고시에 대형 단조품 제조를 위한 이호 공장을 설립했으나, 종전 당시 미완성 상태였고 1948년에 폐쇄되었다. 같은 해 아이치현 한다시에 지타 공장 (현・JFE스틸 지타 제조소)을 건설했다.
1944년 말부터 일본 각지에 공습 피해가 커졌고, 1945년 3월 17일 고베 대공습으로 함선 공장이 피해를 입었으며, 6월 5일 공습으로 피해가 확대되었다. 다른 공장들도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고 종전을 맞았다.
4. 2. 전후 재건과 성장
전후에도 가와사키 조선소는 함선 건조를 계속하여 해상자위대의 잠수함 건조를 미쓰비시 중공업 고베 조선소와 양분하고 있다. 1950년에는 철강 부문을 가와사키 제철 주식회사(현 JFE 스틸)로 분리하고, 중공업 부문만 남았다. 1969년, 가와사키 중공업, 가와사키 항공기 공업, 가와사키 차량 3사가 합병하여 신생 '''가와사키 중공업'''이 되었다.1941년 9월 25일에는 민간 조선소 최초로 항공모함 즈이카쿠를 준공하였다. 1945년에는 고베 대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종전 후 병기 제조를 중지하고 재건에 힘썼다.
2002년에는 선박 부문이 분리되어 주식회사 '''가와사키 조선'''이 되었으나, 2010년 다시 가와사키 중공업에 흡수 합병되어 가와사키 중공업 선박 해양 컴퍼니가 되었다. 2021년에는 가와사키중공업의 에너지 솔루션 & 해양 컴퍼니 내의 조직으로 재편성되어, 가와사키중공업 선박 해양 디비전이 되었다.
5. 주요 건조 및 제작물
가와사키 조선소는 다양한 종류의 함선을 건조했다.
; 일본 해군 함정
- 목조 수뢰 부설정 6척 (1894년, 구레 해군 공창에서 수주)
- 전함: 하루나, 이세, 가가 (선체만)
- 중순양함: 가코, 기누가사, 아시가라, 마야, 구마노
- 경순양함: 오이, 기누, 진츠
- 항공모함: 즈이카쿠, 다이호, 히요(이즈모마루로 기공), ''이코마''(미완성)

- 수상기 모함: 미즈호, 아키츠시마
- 통보함: 요도
- 방호순양함: 히라토
- 연습함: 다테야마 (= 제1회 고마루, 가와사키 츠키지 조선소에서 건조)
- 구축함
- * 가미카제형: 아사카제, 하루카제, 시구레, 하츠하루, 우즈키
- * 가바형: 구스, 우메
- * 이소카제형: 토키쓰카제
- * 모미형: 나시, 타케, 기쿠, 아오이, 츠타, 아시
- * 와카타케형: 와카타케, 고타케
- * 하츠하루형: 아리아케
- * 아사시오형: 아라시오, 아사구모
- * 카게로형: 하츠카제
- * 마츠, 타치바나형: 와카바
- 잠수함 (괄호 안은 미완성)
- * 제6형: 제6, 제7
- * 파6
- * 로1형: 로1, 로2
- * 로3형: 로3, 로4, 로5
- * 로29형: 로29, 로30, 로31, 로32
- * 로100형: 로101, 로102, 로104, 로105, 로106, 로108, 로109, 로110, 로111, 로112, 로113, 로114, 로115, 로116, 로117
- * 이1형: 이1, 이2, 이3, 이4, 이5
- * 이6
- * 이7형: 이8
- * 이9형: 이10, 이11, 이12
- * 이13형: 이13, 이14, (이15), (이1)
- * 이15형: 이21, 이23
- * 이16형: 이22, 이24
- * 이168형: 이71, 이73
- * 이176형: 이177, 이179, 이183
- * 파101형: 파101, 파102, 파103, 파105, 파106, 파107, 파108, (파110), 파111
- 어뢰정
- * 22호형: 35호, 36호, 61호 (3척 모두 조립만)
- * 67호형: 74호, 75호 (2척 모두 조립만)
- * 하야부사형: 치도리 (조립만), 하타타, 코
- 정형 해방함: 38호, 46호, 56호, 60호, 68호, 78호, 82호, 112호, 118호, 124호, 126호, 130호 (78호 이후는 센슈 공장)
- 급유함: 노토로, 시레토코, 에리모, 가쿠토
- 급량함: 미야, 이라코
- 쇄빙함: 오토마리
- 하츠시마형 전선 부설정: 하츠시마, 츠리시마
; 기타
- 톤부리급 해방전함 - 태국 해군의 주력함
- 일본마루
- 해왕마루
- 대복마루형 화물선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대량 건조한 표준형 화물선. 래복마루 등 동형선 75척.
- 제2청관마루
- 닛신마루(국내 최초의 게잡이 어선)
- 가와사키형 유조선 - 일본 해군의 보급함으로의 징용을 상정한 고속 유조선. 1번선은 동아마루이며, 가와사키조선소 최초의 상업용 석유 탱커. 정규 급유함 건조 경험 있음.
- 닛신마루(초대)・제2닛신마루・극양마루 - 하야시겸상점(후의 태평양어업, 현·마루하 니치로) 및 극양포경(현·극양)의 포경선 (포경모선)
- 닛신마루(2대) - 태평양어업(현·마루하 니치로)의 포경모선
; 교량 및 기타 철골 구조물
가와사키 조선소는 철골 구조물 제작 사업도 영위했다. 간사이 본선의 키즈강 철교(1887년), 한카이 철도(현 난카이 전기 철도)의 야마토강 철교와 후루카와 철교(1888년)를 제작했다. 1909년에는 게이한 전기 철도의 키즈강 철교를 제작했다. 게이힌 급행 전철(현 게이힌 급행 전철)의 게이힌 로쿠고강 철교, 철도원(후의 일본국유철도)의 오이가와 철교, 덴류강 철교, 후지강 철교도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
관동 대지진 이후 복구 공사에서 도쿄시(현 도쿄도)의 에이타이 다리, 기요스 다리, 시라히게 다리, 가치도키 다리의 철골 제작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다바타 대교, 고베시 중앙 시장, 나라 전기 철도(현 킨키 일본 철도)의 요도가와 교량(1928년) 철골을 제작했다. 1931년에는 핫토리 시계점(도쿄 긴자, 현 와코 (상업 시설))의 철골을 제작했다.
; 항공기
가와사키 중공업 항공우주 시스템 컴퍼니 (가와사키) 항목을 참조.
; 철도 차량
가와사키 차량 문서를 참고하라.
; 자동차
1919년 육군을 위한 4톤 트럭 (시제차) 5대를 만들었다. 롯코호 (버스, 트럭, 승용차 가와사키 차량 제조)도 생산하였다.
5. 1. 함선
가와사키 조선소는 다양한 종류의 함선을 건조했다.; 일본 해군 함정
- 목조 수뢰 부설정 6척 (1894년, 구레 해군 공창에서 수주)
- 전함: 하루나, 이세, 가가 (선체만)
- 중순양함: 가코, 기누가사, 아시가라, 마야, 구마노
- 경순양함: 오이, 기누, 진츠
- 항공모함: 즈이카쿠, 다이호, 히요(이즈모마루로 기공), ''이코마''(미완성)
- 수상기 모함: 미즈호, 아키츠시마
- 통보함: 요도
- 방호순양함: 히라토
- 연습함: 다테야마 (= 제1회 고마루, 가와사키 츠키지 조선소에서 건조)
- 구축함
- * 가미카제형: 아사카제, 하루카제, 시구레, 하츠하루, 우즈키
- * 가바형: 구스, 우메
- * 이소카제형: 토키쓰카제
- * 모미형: 나시, 타케, 기쿠, 아오이, 츠타, 아시
- * 와카타케형: 와카타케, 고타케
- * 하츠하루형: 아리아케
- * 아사시오형: 아라시오, 아사구모
- * 카게로형: 하츠카제
- * 마츠, 타치바나형: 와카바
- 잠수함 (괄호 안은 미완성)
- * 제6형: 제6, 제7
- * 파6
- * 로1형: 로1, 로2
- * 로3형: 로3, 로4, 로5
- * 로29형: 로29, 로30, 로31, 로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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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1형: 이1, 이2, 이3, 이4, 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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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7형: 이8
- * 이9형: 이10, 이11, 이12
- * 이13형: 이13, 이14, (이15), (이1)
- * 이15형: 이21, 이23
- * 이16형: 이22, 이24
- * 이168형: 이71, 이73
- * 이176형: 이177, 이179, 이183
- * 파101형: 파101, 파102, 파103, 파105, 파106, 파107, 파108, (파110), 파111
- 어뢰정
- * 22호형: 35호, 36호, 61호 (3척 모두 조립만)
- * 67호형: 74호, 75호 (2척 모두 조립만)
- * 하야부사형: 치도리 (조립만), 하타타, 코
- 정형 해방함: 38호, 46호, 56호, 60호, 68호, 78호, 82호, 112호, 118호, 124호, 126호, 130호 (78호 이후는 센슈 공장)
- 급유함: 노토로, 시레토코, 에리모, 가쿠토
- 급량함: 미야, 이라코
- 쇄빙함: 오토마리
- 하츠시마형 전선 부설정: 하츠시마, 츠리시마
; 기타
- 톤부리급 해방전함 - 태국 해군의 주력함
- 일본마루
- 해왕마루
- 대복마루형 화물선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대량 건조한 표준형 화물선. 래복마루 등 동형선 75척.
- 제2청관마루
- 닛신마루(국내 최초의 게잡이 어선)
- 가와사키형 유조선 - 일본 해군의 보급함으로의 징용을 상정한 고속 유조선. 1번선은 동아마루이며, 가와사키조선소 최초의 상업용 석유 탱커. 정규 급유함 건조 경험 있음.
- 닛신마루(초대)・제2닛신마루・극양마루 - 하야시겸상점(후의 태평양어업, 현·마루하 니치로) 및 극양포경(현·극양)의 포경선 (포경모선)
- 닛신마루(2대) - 태평양어업(현·마루하 니치로)의 포경모선
5. 1. 1. 일본 해군 함정
- 목조 수뢰 부설정 6척 (1894년, 구레 해군 공창에서 수주)
- 전함: 하루나, 이세, 가가 (선체만)
- 중순양함: 가코, 기누가사, 아시가라, 마야, 구마노
- 경순양함: 오이, 기누, 진츠
- 항공모함: 즈이카쿠, 다이호, 히요(이즈모마루로 기공), ''이코마''(미완성)
- 수상기 모함: 미즈호, 아키츠시마
- 통보함: 요도
- 방호순양함: 히라토
- 연습함: 다테야마 (= 제1회 고마루, 가와사키 츠키지 조선소에서 건조)
- 구축함
- * 가미카제형: 아사카제, 하루카제, 시구레, 하츠하루, 우즈키
- * 가바형: 구스, 우메
- * 이소카제형: 토키쓰카제
- * 모미형: 나시, 타케, 기쿠, 아오이, 츠타, 아시
- * 와카타케형: 와카타케, 고타케
- * 하츠하루형: 아리아케
- * 아사시오형: 아라시오, 아사구모
- * 카게로형: 하츠카제
- * 마츠, 타치바나형: 와카바
- 잠수함 (괄호 안은 미완성)
- * 제6형: 제6, 제7
- * 파6
- * 로1형: 로1, 로2
- * 로3형: 로3, 로4, 로5
- * 로29형: 로29, 로30, 로31, 로32
- * 로100형: 로101, 로102, 로104, 로105, 로106, 로108, 로109, 로110, 로111, 로112, 로113, 로114, 로115, 로116, 로117
- * 이1형: 이1, 이2, 이3, 이4, 이5
- * 이6
- * 이7형: 이8
- * 이9형: 이10, 이11, 이12
- * 이13형: 이13, 이14, (이15), (이1)
- * 이15형: 이21, 이23
- * 이16형: 이22, 이24
- * 이168형: 이71, 이73
- * 이176형: 이177, 이179, 이183
- * 파101형: 파101, 파102, 파103, 파105, 파106, 파107, 파108, (파110), 파111
- 어뢰정
- * 22호형: 35호, 36호, 61호 (3척 모두 조립만)
- * 67호형: 74호, 75호 (2척 모두 조립만)
- * 하야부사형: 치도리 (조립만), 하타타, 코
- 정형 해방함: 38호, 46호, 56호, 60호, 68호, 78호, 82호, 112호, 118호, 124호, 126호, 130호 (78호 이후는 센슈 공장)
- 급유함: 노토로, 시레토코, 에리모, 가쿠토
- 급량함: 미야, 이라코
- 쇄빙함: 오토마리
- 하츠시마형 전선 부설정: 하츠시마, 츠리시마
5. 1. 2. 기타
- 톤부리급 해방전함 - 태국 해군의 주력함
- 일본마루
- 해왕마루
- 대복마루형 화물선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대량 건조한 표준형 화물선. 래복마루 등 동형선 75척.
- 제2청관마루
- 닛신마루(국내 최초의 게잡이 어선)
- 가와사키형 유조선 - 일본 해군의 보급함으로의 징용을 상정한 고속 유조선. 1번선은 동아마루이며, 가와사키조선소 최초의 상업용 석유 탱커. 정규 급유함 건조 경험 있음.
- 닛신마루(초대)・제2닛신마루・극양마루 - 하야시겸상점(후의 태평양어업, 현·마루하 니치로) 및 극양포경(현·극양)의 포경선 (포경모선)
- 닛신마루(2대) - 태평양어업(현·마루하 니치로)의 포경모선
5. 2. 교량 및 기타 철골 구조물
가와사키 조선소는 철골 구조물 제작 사업도 영위했다. 간사이 본선의 키즈강 철교(1887년), 한카이 철도(현 난카이 전기 철도)의 야마토강 철교와 후루카와 철교(1888년)를 제작했다. 1909년에는 게이한 전기 철도의 키즈강 철교를 제작했다. 게이힌 급행 전철(현 게이힌 급행 전철)의 게이힌 로쿠고강 철교, 철도원(후의 일본국유철도)의 오이가와 철교, 덴류강 철교, 후지강 철교도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관동 대지진 이후 복구 공사에서 도쿄시(현 도쿄도)의 에이타이 다리, 기요스 다리, 시라히게 다리, 가치도키 다리의 철골 제작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다바타 대교, 고베시 중앙 시장, 나라 전기 철도(현 킨키 일본 철도)의 요도가와 교량(1928년) 철골을 제작했다. 1931년에는 핫토리 시계점(도쿄 긴자, 현 와코 (상업 시설))의 철골을 제작했다.
5. 3. 항공기
가와사키 중공업 항공우주 시스템 컴퍼니 (가와사키) 항목을 참조.5. 4. 철도 차량
가와사키 차량 문서를 참고하라.5. 5. 자동차
1919년 육군을 위한 4톤 트럭 (시제차) 5대를 만들었다. 롯코호 (버스, 트럭, 승용차 가와사키 차량 제조)도 생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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