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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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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조(国造)는 야마토 시대에 일본의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관을 지칭한다. 국조는 야마토 조정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군사권과 재판권 등 광범위한 자치권을 가졌다. 국조는 '키미' 또는 '아타에' 등의 카바네 칭호를 받았으며, 각 지역의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고 부민과 미야케를 관리했다. 다이카 개신 이후에는 '구니노미야쓰코' 직책이 폐지되고 율령제에 따른 고쿠시(国司)가 파견되었지만, 국조는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는 신코쿠조(新国造)로 존속하거나, 율령국조로 명맥을 유지했다. 선대구사본기에는 135개 국조의 기록이 있으며, 일부 국조는 다이카 개신 이후에도 사가(社家)로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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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일본)
국조
국가일본
시대야마토 시대
역할지방관
상세 정보
일본어 명칭국조 (国造)
로마자 표기Kuni no miyatsuko
시대적 배경야마토 시대의 지방 통치 제도 하에서 임명된 지방관
임무해당 지역의 통치 및 야마토 조정에 대한 공납 의무 수행
특징세습적인 지위를 가짐
강력한 지역 기반을 보유
야마토 조정의 지방 통제 강화에 기여
관련 용어야마토 시대
지방관
공납
역사적 맥락
기원고대 일본의 호족 세력에서 유래
발전야마토 조정의 율령제 도입과 함께 지방 통치 체계에 편입
변화시대 변화에 따라 역할과 지위가 변동

2. 야마토 시대

야마토 정권 시대의 지방 행정 단위인 국(國)의 장을 국조(國造, 쿠니노미야츠코)라고 불렀다. 이 '국'은 후대의 율령국과는 다른 개념으로, 그 정확한 범위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역의 유력 호족들이 지배하던 영역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력한 호족들은 야마토 조정에 의해 파견되거나 귀순하여 국조로 임명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습직이 되었다.[1][2] 국조는 야마토 조정으로부터 카바네 칭호를 받았는데, 주로 키미(君)나 아타이(直)였으며, 더 권위 있는 국조는 오미(臣) 칭호를 받기도 했다.[2] 이들은 야마토 정권의 직접 통제를 받는 현주(縣主)와는 달리 군사권, 재판권 등 넓은 범위의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국조의 설치는 진무 천황 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야마토 정권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스진 천황 때 사도장군의 원정 경로를 따라 본격적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게이코 천황의 서쪽 정벌과 야마토타케루의 동쪽 정벌에 맞춰 각지에 국조가 배치되었고, 세이무 천황 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국조 설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은 《선대구사본기》의 〈국조본기〉나 《기키》(고사기, 일본서기)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오진 천황이나 닌토쿠 천황 때 기존의 국이 분할되거나 재배치되면서 새로 국조가 임명되기도 했다.

국조는 다양한 성(姓)을 가졌으며, 이는 지역과 가문의 배경에 따라 달랐다. (상세 내용은 하위 섹션 참조)

국조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 각 국조 가문의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했다.
  • 부민(部民)과 둔창(屯倉, 미야케)을 관리했다.
  • 자녀를 사인(舎人)이나 우네메(釆女)로 조정에 보내 섬기게 했다.
  • 기이국조나 카미츠케메국조처럼 외교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든 국조가 중앙 정권에 순응했던 것은 아니어서, 쓰쿠시국조처럼 북큐슈 지역을 기반으로 야마토 정권에 반기를 든 사례도 있었으며, 쓰게국조처럼 해체된 경우도 존재했다.

일부에서는 국조 아래에 현(縣, 아가타)이 설치되는 등 비교적 정비된 국현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율령제 이전의 지방 지배 구조, 특히 국조제의 실태나 중소 호족과의 관계 등은 여전히 불명확한 점이 많다.

고훈 시대 전반에 걸쳐 존속했던 국조 제도는 6세기 말(스이코 천황 시기)부터 7세기 중기(고토쿠 천황 시기)에 걸쳐 점차 변화하여, 각지의 국조가 평독(評督)으로 바뀌었다. 이후 다이카 개신다이호 율령 시행으로 지방 제도가 군(郡)으로 재편되면서, 일부 국조는 군사(郡司) 직을 겸임하기도 했다.

9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선대구사본기》의 〈국조본기〉에는 전국 135개 국조의 설치 시기와 임명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2. 1. 국조의 성(姓)

야마토 정권의 유력한 호족들은 조정으로 파견되거나 귀순하여 국조에 임명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인교 천황대에 (臣)·(連)·기미(君/公)·(直/凡直) 등의 카바네(姓)를 하사받았다.

치천하대왕이 국조에게 부여한 성(카바네)은 지역과 가문에 따라 다양했으며, 주요 유형은 다음과 같다.

# 기나이 및 주변 여러 나라의 직성() 국조

# 기비국이즈모국의 신성() 국조

# 산요도의 일부와 난카이도의 범직성(凡直) 국조

# 도카이도, 도산도의 명대(名代)의 반조성(伴造姓) 국조

# 동쪽의 케노(毛野), 서쪽의 지쿠시, 토요, 의 군성(君) 국조

이처럼 국조는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한 성(카바네)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다이카 개신 이후

고훈 시대 동안 유지되었던 국조 제도는 6세기 말(스이코 천황)부터 7세기 중기(고토쿠 천황)에 걸쳐 점차 변화하여, 각지의 국조가 평독(評督)으로 바뀌어 갔다.

본격적인 변화는 645년 다이카 개신으로 시작되었다. 다이카 개신 이후 기존 국조가 다스리던 국(國)은 정리·통합되거나 분할되어 율령국으로 재편되었으며, 각 지방은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고쿠시(国守)라는 새로운 관리가 통치하게 되었다.[2] 이 개혁으로 기존의 국조 직책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국조라는 명칭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다이호 율령의 시행으로 지방 행정 단위인 평(評)이 군(郡)으로 대체되면서, 옛 국조 가문 출신들은 군사(郡司|군지일본어)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1] 이들은 율령 체제 하에서 주로 제사를 담당하는 명예직 성격의 율령국조(律令國造)로 이어지게 된다.[2] 일부 강력한 국조 가문은 개혁 이후에도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도 했다.

3. 1. 율령국조

645년 다이카 개신 이후, 기존 국조(国造)가 다스리던 국(國)은 정리·통합되거나 분할되어 율령국으로 대체되었다.[2] 기존 국조의 직책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각 지방(율령국)은 새로 임명된 고쿠시(国守)가 통치하게 되었다.[2]

그러나 율령제 하에서도 국조라는 명칭은 존속했는데, 이를 율령국조(律令國造)라고 부른다. 율령국조는 주로 해당 지역의 신토 의례 등 제사를 주관하는 세습적인 명예직 성격이 강했다.[2] 과거 국조 가문 출신들은 다이카 개신 이후에도 군사(郡司|군지일본어)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1] 군사는 강력한 지방 호족이었던 옛 국조 가문 출신이 종신직으로 임명되었고 세습되었다.[3] 율령국조는 종종 군사를 겸임했으며, 이들은 때때로 중앙에서 파견된 지배 계급인 고쿠시에 대항하여 농민 편에 서기도 했다.[3] 이 종교 관리는 新国造|신코쿠조일본어, 즉 "새로운" 국조로 알려지기도 했다.[2]

율령국조에게는 직무 수행의 대가로 국조전(国造田) 등이 지급되었다. 군사직은 헤이안 시대 초기에 장원인 쇼엔 제도가 확립되면서 점차 폐지되었다.[3] 율령국조 자체도 8세기 후반 이후 점차 사라졌다.

현대 학계에서는 씨성제 하의 국조와 율령국조를 구별한다. 예를 들어, 전자를 상총국조(上総国造)로 표기한다면, 후자는 상총'''국'''국조(上総'''国'''国造)와 같이 '국(国)' 자를 넣어 구분하기도 한다.

일부 강력한 국조 씨족은 다이카 개신 이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했는데, 대표적으로 현재 시마네현 동부에 위치했던 이즈모국의 이즈모노쿠니노미야쓰코(出雲国造일본어) 가문이 있다.[4]

4. 주요 국조 목록

9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선대구사본기》〈국조본기〉에는 전국 135개 국조의 설치 시기와 임명된 자들의 기록이 있다.[8] 국조가 존재했던 것은 율령제 이전이지만, 편의상 9세기 이후의 율령제 국가 영역으로 분류한다.[8]

4. 1. 기나이

(내용 없음)

4. 1. 1. 야마토국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야마토국' 섹션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4. 1. 2. 야마시로국

(내용 없음)

4. 1. 3. 가와치국

(내용 없음)

4. 1. 4. 이즈미국

'''이즈미국조'''(泉国造|いずみのくにのみやつこ일본어)는 이즈미국을 다스렸다고 여겨지는 국조이다. 초대 국조의 임명 시기는 영구(永久) 원년으로 추정되나, 해당 국조를 계승한 씨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즈미국조는 원래 가와치국의 일부였던 가야노 군(茅渟郡)이 분리되어 이즈미국으로 개칭되면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4. 1. 5. 셋쓰국

국조명초대 국조(임명 시기)씨족(카바네)지배 영역
셋쓰국조간무조?범하내씨(이손)셋쓰국


4. 2. 도카이도

4. 3. 도산도

국조(國造|고쿠소일본어)는 구니(国|구니일본어, 지방)라고 불리는 지방을 다스렸는데, 그 위치, 이름, 그리고 경계는 불분명하다. 국조는 야마토 조정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그 관할 아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습직이 되었다.[1][2] 국조는 야마토 조정으로부터 수여받은 카바네 칭호를 지녔으며, 흔히 기미(君|기미일본어) 또는 아타에(直|아타에일본어)였다. 권위 있는 국조는 오미(臣|오미일본어)의 칭호를 가졌다.[2]

4. 4. 호쿠리쿠도

이 외에도 와카사국, 에치젠국, 가가국, 노토국, 엣추국, 에치고국, 사도국 등이 있다.

4. 5. 산인도

4. 6. 산요도

4. 7. 난카이도

난카이도에는 기이국, 아와지국, 아와국, 사누키국, 이요국, 도사국이 포함되었다.

4. 8. 사이카이도

사이카이도에는 다음과 같은 구니(国)들이 있었다.

이러한 구니(国)들은 일반적으로 구니노미야쓰코(国造)라 불리는 지방관이 다스렸다. 구니노미야쓰코는 처음에는 야마토 조정에 의해 임명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세습직으로 변모하였다.[1][2] 이들은 야마토 조정으로부터 카바네 칭호를 부여받았는데, 주로 기미(君)나 아타에 (直)였으며, 권위 있는 구니노미야쓰코는 오미(臣) 칭호를 받기도 했다.[2] 각 구니의 위치, 이름, 경계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1][2]

5. 다이카 개신 이후 설치된 국조

다이카 개신(645년) 이후, 기존에 국조(国造)가 다스리던 지역인 국(國)은 정리되거나 통합, 분할되어 율령국으로 재편되었다.[2] 이 과정에서 국조라는 직책 자체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율령 체제 아래에서도 '국조'라는 명칭은 사라지지 않고 존속했는데, 이를 "율령국조"라고 부른다.

율령국조는 주로 해당 지역의 신토 제사를 주관하는 세습 명예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2] 과거 국조의 후예였던 지역 유력 가문 출신들이 군사( 郡司|군지일본어 ) 직책을 맡으면서 율령국조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았다.[1][3] 군사직은 종신직이었으며 세습되었다.[3] 율령국조에게는 직무 수행의 대가로 국조전(国造田)과 같은 토지가 지급되기도 했다. 제사 등 종교적 업무를 담당하는 국조는 新国造|신코쿠조일본어, 즉 '새로운 국조'라고 불리기도 했다.[2]

군사직을 겸하게 된 국조는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지방관인 고쿠시(国守)에 맞서 지역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3] 그러나 율령국조 제도는 점차 약화되어 8세기 후반 이후에는 대부분 사라졌다. 군사 직책 역시 헤이안 시대 초기에 쇼엔(荘園, 장원) 제도가 확립되면서 폐지되었다.[3]

하지만 모든 국조 가문이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시마네현 동부에 해당하는 이즈모국의 이즈모노쿠니노미야쓰코|出雲国造|이즈모노쿠니노미야쓰코일본어와 같은 일부 유력 국조 씨족은 다이카 개신 이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했다.[4]

현대 학계에서는 씨족성 제도 하의 다이카 개신 이전 국조와 율령 체제 하의 국조를 구분하기 위해 표기법을 달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전자를 '상총국조'(上総国造)라고 쓴다면, 후자는 '상총'''국'''국조'(上総'''国'''国造)와 같이 '국(国)' 자를 추가하여 구분한다.

6. 다이카 개신 이후에도 존속한 국조

고분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국조 제도는 6세기스이코조부터 7세기 중기 고토쿠조 시기에 변화를 맞이했다. 이 시기 여러 지역의 국조는 평독(評督)으로 명칭과 역할이 바뀌었다.[1][2] 이후 다이카 개신을 거쳐 다이호 율령이 시행되면서 지방 행정 단위인 평(評)이 군(郡)으로 대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옛 국조 가문 출신 인물들은 새롭게 설치된 군령(郡領, 군의 지방관)을 겸임하며 지역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일부 유지하기도 했다.[2] 일부 국조 가문은 이후 신사의 제사장 등으로 그 명맥을 잇기도 했다.

6. 1. 주요 신국조

국조 제도가 폐지된 후 일부 유력 가문은 신사의 제사장 가문(社家)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이즈모 국조: 이즈모 대사의 최고 신직을 담당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센가(千家)와 기타지마(北島) 두 가문으로 나뉘었다.[5]
  • 기이 국조: 히노쿠마 신사·구니카카스 신사의 제사를 담당했다. 헤이안 시대 전기와 에도 시대 중기에 후계자가 없었으나, 여계 상속을 통해 가문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선대구사본기》〈국조본기〉에는 전국 135개 국조의 설치 시기와 임명된 자들의 기록이 있다.[1][2] 주요 국조로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 수 있다.

  • 아와 국조
  • 스루가 국조
  • 무사시 국조
  • 이즈 국조
  • 오와리 국조
  • 구마노 국조
  • 시나노 국조
  • 히다 국조
  • 쓰누가 국조
  • 호 국조
  • 다지마 국조
  • 단바 국조
  • 오키 국조
  • 가야 국조
  • 미노 국조
  • 오키 국조
  • 우사 국조
  • 아소 국조
  • 휴가 국조
  • 이나바 국조

6. 1. 1. 사가(社家)로서 계보를 이은 국조 가문

국조 제도가 폐지된 후, 일부 전직 국조 가문은 해당 지역의 유력한 신사의 제사장 가문(사가, 社家)이 되어 그 계보를 이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즈모 씨족의 이즈모 대사, 아소 씨족의 아소 신사, 오와리 씨족의 아쓰타 신궁, 무나카타 씨족의 무나카타 대사,[5] 아마베 씨족의 고노 신사[6], 그리고 야마토 씨족의 오야마토 신사 등이 있다.

아래는 주요 사가(社家)로서 계보를 이은 국조 가문과 관련 신사를 정리한 표이다.

국가씨족신사
이즈모국이즈모 씨족[5]이즈모 대사
야마토국야마토 씨족오야마토 신사
히고국?아소 씨족[5]아소 신사
오와리국오와리 씨족[5]아쓰타 신궁
단바국아마베 씨족[6]고노 신사
기이국우카이 가문가마야마 신사
기이 국조(紀伊国造일본어)히노쿠마 신사


7. 계보

쿠니노미야츠코는 '쿠니'(国)라 불리는 지방을 다스렸으나, 그 정확한 위치나 경계 등은 명확하지 않다. 쿠니노미야츠코는 본래 야마토 조정에 의해 임명되어 그 통제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지위가 세습되었다.[1][2] 이들은 야마토 조정으로부터 카바네 칭호를 받았는데, 주로 키미(君)나 아타에(直)였다. 특히 세력이 강한 쿠니노미야츠코는 오미(臣) 칭호를 받기도 했다.[2]

8. 참고 문헌


  • 『國史大辭典』(吉川弘文館)国造項
  • 오카와라 류이치(大川原竜一), 「大化以前の国造制の構造とその本質 -記紀の「国造」表記と『隋書』「軍尼」の考察を通して-」(『歴史学研究』829号、2007年)
  • 시노카와 켄(篠川賢)・오카와라 류이치・스즈키 마사노부, 『国造制の研究―史料編・論考編―』(八木書店、2013年)
  • 시노카와 켄, 『国造―大和政権と地方豪族』(中央公論新社、2021年)
  • 마에다 료타로(間枝遼太郎) 「大祝本『神氏系図』・『阿蘇家略系譜』再考―再構成される諏訪の伝承―」(『国語国文研究』161号、2023年8月)
  • 스즈키 마사노부(鈴木正信) 『日本古代の国造と地域支配』(八木書店、2023年)

참조

[1] encyclopedia 国造 (Kuni no miyatsuko) http://rekishi.jkn21[...] Shogakukan 2012-04-12
[2] encyclopedia Kuni no miyatsuko http://rekishi.jkn21[...] Shogakukan 2012-04-12
[3] encyclopedia 郡司 (Gunji) http://rekishi.jkn21[...] Shogakukan 2012-04-12
[4] encyclopedia Izumo Kuni no miyatsuko (出雲国造) http://rekishi.jkn21[...] Shogakukan 2012-04-12
[5] 웹사이트 Kuni no miyatsuko https://d-museum.kok[...] 2023-10-25
[6] 웹사이트 海部氏系図 https://kunishitei.b[...] Agency for Cultural Affairs 2020-08-20
[7] 문서 ヤマト王権の命により外征にも動員された。
[8] 문서 『国史大辞典』国造項 氏姓国造一覧表を参考にして記載。
[9] 간행물 『国史大系 第7巻』 https://dl.ndl.go.jp[...] 経済雑誌社
[10] 문서 『古事記』では神八井耳命を長狭国造の祖とする。
[11] 문서 後世の系図では応神朝の武多乃直とする説がある。
[12] 간행물 『国史大系 第7巻』 https://dl.ndl.go.jp[...] 経済雑誌社
[13] 문서 名取市以北の古墳築造事情から「思太」の「太」の脱字として志田郡にあてる説もあるが一国だけ遠く北に離れて孤立していることになり不自然であることから有力説にはなってない。
[14] 논문 大祝本『神氏系図』・『阿蘇家略系譜』再考―再構成される諏訪の伝承― 2023-08
[15] 논문 大祝本『神氏系図』・『阿蘇家略系譜』再考―再構成される諏訪の伝承― 2023-08
[16] 문서 야마토 정권의 명령에 따라 외부 원정에도 동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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