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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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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로, 도쿄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통해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비리를 폭로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과학, 뇌사, 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 활동을 펼쳤다. 주요 저서로는 《일본공산당의 연구》, 《뇌사》, 《임사 체험》 등이 있다. 그는 뇌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방대한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고양이 빌딩'을 지었으며, 말년에는 암 투병 과정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으로 202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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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기본 정보
이름立花 隆(다치바나 다카시)
로마자 표기Tachibana Takashi
본명橘 隆志 (기쓰 다카시)
출생일1940년 5월 28일
출생지일본나가사키현나가사키시
사망일2021년 4월 30일
국적일본
직업저널리스트, 논픽션 작가, 평론가
언어일본어
학력도쿄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 졸업
활동 시기1968년 - 2021년
장르논픽션, 평론, 수필
주제생물학
환경 문제
의료
우주
정치
경제
생명
철학
임사 체험
주요 작품『중핵 VS 혁마르』 (1975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전 기록』 (1976년)
『일본 공산당 연구』 (1978년)
『미국 성혁명 보고』 (1979년)
『농협』 (1980년)
『우주로부터의 귀환』 (1983년)
『뇌사』 (1986년)
『뇌사 재론』 (1988년)
『정신과 물질』 (1990년)
『원숭이학의 현재』 (1991년)
『전뇌 진화론』 (1993년)
데뷔 작품『맨손으로 일어선 남자들』 (1969년)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수상
문예춘추 독자상1974년
일본 저널리스트 회의상1975년
고단샤 논픽션상1979년
기쿠치 간상1983년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1987년, 2014년
신초 학예상1991년
오카와 출판상1993년
일본 문화 디자인 대상1997년
시바 료타로상1998년
오메가상1998년
NHK 방송 문화상1998년
요시다 히데카즈상2016년

2. 생애

도쿄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문예춘추에서 잠시 일했다. 프로야구 관련 기사를 맡다가 2년 만에 퇴사하고, 도쿄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잡지 『식객』(Shokun!)에 과학혁명, 우주여행, 원유 등 다양한 주제의 논픽션 기사를 기고했다.[1]

1974년분게이슌주》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발표하여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의 비리를 폭로, 자민당 최고 권력자의 비리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총리 사퇴의 계기가 되었다.[21]

1975년분게이슌주》에 《일본공산당 연구》를 연재하여 일본공산당의 과거 행적을 비판했고, 일본공산당은 기관지 《아카하타》를 통해 반박하며 당 차원에서 반(反) 다치바나 캠페인을 전개했다.[4]

이후 사회 문제 외에도 우주, 뇌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저술 범위를 넓혔으며,[1]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서를 읽고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48]

2007년 방광암이 발견된 후에는 암 관련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고, 2021년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으로 사망했다.[3]

2. 1. 유년 시절과 교육

1940년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살았던 적도 있고, 주로 이바라키현에서 자랐다. 이바라키 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과를 지망했지만 색약이어서 포기하고 1959년 도쿄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갔다. 1967년 다시 도쿄 대학 철학과에 재입학했다. 철학과 재학 중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대학을 중퇴했다.[1]

1942년 아버지가 문부성 직원으로 베이징(당시 중화민국)의 사범학교 부교장이 되면서,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했다.[10] 1946년 귀국하여 이바라키현 나카니시(那珂西)에 있는 외가에서 잠시 살았고,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미토시로 이주했다. 미토에서는 이웃에 살던 이케베 신이치로(池辺晋一郎)의 집과 가족끼리 교류가 있었다.[10]

1956년 미토 제일 고등학교(水戸一高)에 입학했고, 이후 지바현으로 이주하여 도쿄도립 우에노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독서에 열중했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 경기에도 열중했다. 배우인 우메키야 타츠오(梅宮辰夫)와 모터 저널리스트인 토쿠다이지 아리츠네(徳大寺有恒)는 중학교 선배였으며, 세 사람 모두 육상 선수였다.[11]

1959년 도쿄대학 문과 2류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소설과 시를 쓰고, 1960년 영국에서 열린 원폭반대세계회의에 참가했다. 졸업 논문 주제는 프랑스 철학자 메누 드 비랑(メーヌ・ド・ビラン)이었다.

1964년 도쿄대학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한 후, 문예춘추에 입사했다.[7] 이와나미 쇼텐과 NHK의 시험도 응시했지만 불합격했다.[12] 입사 후에는 희망대로 주간문춘에 배속되었다. 상사는 제이 타카시였다. 선배 기자의 지도로 문학 청년 시절과는 달리 논픽션을 탐독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하고 싶지 않다고 공언했던 프로야구 취재를 강요받은 결과 3년도 채 안 되어 문예춘추를 퇴사했다.[13]

1967년 도쿄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학사 편입했다. 이듬해인 1968년 동대 분쟁이 발발하여 휴교되었다.

2. 2. 기자 생활과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1964년 도쿄 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분게이슌주에 입사하여, 1966년까지 슈칸 분게이슌주 기자로 활동했다. 프로야구 취재를 맡다가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1]

1974년분게이슌주1974년 11월호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발표하여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의 수뢰 사실을 폭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여 명의 취재진을 동원하여 작성된 이 기사는 자민당 최고 권력자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내용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다나카 몰락의 계기가 되었다.[21]

다나카 가쿠에이는 변변한 학연도 없었지만, 막강한 동원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 기사에서 이러한 힘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그 결과, 다나카의 성공 뒤에는 정치, 관료, 재계의 밀착과 니가타현 출신 인맥들의 유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자금이 오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같은 호에 고다마 타카야(児玉隆也)의 〈외로운 코에야마카이(越山会)의 여왕〉도 함께 연재되었는데, 이 기사는 다나카 총리의 불륜과 사생아, 그리고 다나카의 비밀 자금을 관리하던 코에야마카이(越山会)의 존재를 폭로하였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이 특집 기사의 존재를 알고 분게이슌주에 압력을 넣어 기사를 내리도록 요구했지만, 분게이슌주는 이를 무시했다. 고다마 타카야는 기사가 나간 후 3개월 만에 지병으로 사망했지만, 당시 무명 프리랜서 작가였던 다치바나는 이 기사의 성공으로 저널리스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1]

1974년 10월 9일 발매된 『문예춘추』 11월 특별호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과 고다마 타카야의 "쓸쓸한 코에야마카이의 여왕"이 게재되었다. 다나카 금맥문제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 사퇴의 계기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21] 다치바나는 자신의 리포트에 대해 "다나카 사퇴의 필요조건 하나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특집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로 고다마 타카야와 함께 제36회 문예춘추 독자상을 수상했다.

문예춘추는 가쿠에이 비판에서 손을 떼지만, 그 후에도 발표 장소를 바꾸어 때때로 다나카의 문제를 다루었다. 록히드 사건에서 다나카가 체포된 후에는 도쿄 지방법원에서의 동 사건 공판을 빠짐없이 방청하고, 1심 판결까지 『아사히 저널』지에 방청기를 연재했다. 또한 같은 잡지에서 "록히드 재판 비판을 끊다"를 연재하며, 타와라 코타로, 와타나베 쇼이치 등 다나카 가쿠에이 옹호론자들을 "속임수 논법이자 무지"라고 비난했다.

또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에서는 록히드 사건의 "마루베니 루트" 및 "전일본공수 루트(다치바나는 이를 록히드 사건과는 별개의 "전일본공수 의혹”이라고 논하고 있다)"에 대해서도 상세한 취재, 기록을 하고 있다. 『아사히 저널』 담당자는 츠쿠시 테츠야였다. 록히드 사건의 단초가 된 처치 위원회의 오리지널 자료 전 사본을 입수하여 다치바나에게 건넨 것은 츠쿠시였다. 당시 츠쿠시는 외보부에도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다치바나는 회고하고 있다.[22] 이후 츠쿠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공사적으로 친분을 쌓았다. 1984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와 나의 9년간"으로 제45회 문예춘추 독자상을 수상했다.

2. 3. 일본공산당 연구와 논쟁

1975년 12월 《분게이슌주》에 《일본공산당 연구》 연재를 시작했다. 2년에 걸쳐 《분게이슌주》에 연재된 이 기사는 일본공산당이 성립하고 나서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를 다루는, 일본공산당의 통사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책은 코민테른이 실질적으로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일본공산당을 지배하고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1933년 일어난 공산당원 동료들 간의 프락치 살인 《스파이 M 사건》, 지하 투쟁 간부들의 현지처 문제 같은 사실까지 드러내는 등, 일본공산당이 자랑하던 일제 말기 반파쇼 투쟁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공산당 측은 《일본공산당 연구》를 "사상범을 잡던 일제 특별고등검사들의 기록을 다수 인용한 '특고사관'이다"라고 비난하였다.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 《아카하타》에서는 《고루한 반공 이론과 반동 재판소 자료를 문제 삼는다》라는 기사를 4회, 《개는 짖어도 역사는 진보한다 - 문예춘추 다치바나 논문에 대한 총비판》을 2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일본공산당 연구》를 반박함과 동시에 당 차원에서 반(反) 다치바나 캠페인을 전개하였으며, 지금도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4]

1976년 1월 27일, 일본의 우익 정당인 민사당 위원장 가스가 잇코가 중의원 본회의에서 이 책을 인용하여 《스파이 M 사건》을 화두에 올리기도 했다.

2. 4.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

이후 사회적 문제 외에 우주, 뇌를 포함한 과학 분야로 저술 분야를 넓혔다.[1] 도쿄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지만, 한때 문예춘추에서 프로야구 관련 기사 작성 업무를 맡은 후 2년 만에 사직했다. 다시 도쿄대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잡지 『식객』(Shokun!)에 과학혁명, 우주여행, 원유 등 다양한 주제의 논픽션 기사를 기고했다. 다수의 작품과 수필 덕분에 그는 일본에서 "지적인 거장"으로 불렸다.[1]

문과와 이과 등 학문의 경계를 넘어, 학문의 종합·융합·전체적인 측면에서 당시 최첨단 과학 현장을 취재하고 일반 시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출판·인터넷 발신 활동을 해왔다.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에서의 귀환」을 읽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다.[48] 2005년(헤이세이 17년) 12월, 노구치와 다치바나의 대담이 성사되었다.[49]

2007년(헤이세이 19년)에 방광암이 발견된 이후, 암을 주제로 한 저술·강연 활동이 증가했다. 거의 매년 열리는 자연과학연구기구 심포지엄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참가하고 있다.

회차제목
제1회드디어 보였다! 우주의 수수께끼. 생명의 수수께끼. 뇌의 수수께끼.
제2회폭발하는 광과학의 세계 양자에서 생명체까지
제3회생물의 생존 전략 우리 지구 가족은 어떻게 여기에 존재하는가
제4회우주의 핵융합·지구의 핵융합
제5회밝혀지는 뇌의 신비 뇌과학의 미래
제6회우주 최대의 수수께끼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암흑 시대
제7회과학적 발견이란 무엇인가-『진창』에서 갑자기『전망대』로
제8회뇌가 여러 학문을 만들고, 여러 학문이 뇌를 통합한다
제9회놀라운 4D로 보는 과학의 혁신
제10회다채로운 지구의 생명-우주에 동료는 있는가
제11회우주와 생명-우주에 동료는 있는가 II
제12회지적 생명체의 가능성-우주에 동료는 있는가 III


2. 5. 말년

다치바나 다카시는 2021년 4월 30일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으로 사망했다.[3] 그의 가족은 2021년 6월 23일에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2]

2004년경 방광암에 걸렸다. 혈뇨가 나와 진찰을 받은 결과 암으로 판명되었다. 이때 다치바나는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의사에게 "이것이 양성 종양이 아니라 이라고 어떻게 아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다. 상황제(상황 폐하) 시절 방광암 수술도 담당했던 기타무라 유이치 교수는 "그것은 경험입니다. 얼굴만 봐도 압니다."라고 답했다. NHK의 디렉터 오카다 토모토시는 "수술 전 설명에서도 걱정하는 기색 없이, 마치 암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취재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전신 마취를 할 것인지 부분 마취를 할 것인지 질문받고 주저 없이 부분 마취를 선택했고, 수술 과정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는 "그 영상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라고 말했다.[38]

이후 다치바나는 NHK 스페셜 "다치바나 타카시 사색 다큐멘터리 암 생과 죽음의 수수께끼에 도전"(2009년 방송)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오카다의 기획서를 본 다치바나는 "다치바나 씨의 암 투병", "암의 메커니즘", "최신 치료법"을 전달하려는 내용에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오카다에게 "당신, 암이 치료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해요?"라고 말하고, 암 치료의 한계를 설명하는 타나카 슈이치(요미우리 신문사)의 저서 『암 치료의 상식, 비상식』을 보여주며 이 책을 읽고 다시 오라고 지시했다. 오카다가 책을 읽은 후 "암이 왜 극복될 수 없는지를 철저히 취재하겠습니다."라고 전하자, 다치바나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38]

항암제 전문의들이 모인 "암 치료 학회"에서 요청받은 강연에서, 다치바나는 항암제의 연명 효과를 전달하는 강연들과 달리 "저는 전혀 노력할 생각이 없는 암 환자입니다. QOL을 낮추면서까지 수개월의 수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방송 전에는 절망적인 내용을 방송해도 좋은지 NHK 내부에서 논의되었다. 방송 마지막에 다치바나는 "사람에게는 죽는 힘이 있고, 죽을 때까지 사는 힘이 있다. 그것이 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용기를 얻었다, 결의를 세웠다"는 것이었다.[38]

3. 저술 활동 및 주요 주제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학교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관련 기사 작성 업무에 회의를 느껴 2년 만에 사직하고 다시 도쿄대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갔다.[1]

다치바나는 대학원 재학 중 잡지 『식객』(Shokun!)에 과학혁명, 우주여행, 원유 등 다양한 주제의 논픽션 기사를 기고하며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다수의 작품과 수필을 통해 일본에서 "지적인 거장"으로 불리게 되었다.[1]

1976년 『일본공산당 연구』를 발표하여 일본공산당과 조직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치바나는 이 논쟁을 통해 자신의 학습 및 논쟁 능력이 향상되었고, 이후 록히드 사건에서 다나카 옹호론자들과의 논쟁에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3. 1. 주요 저서

출판 연도제목출판사비고
1969년《소손으로 일어선 남자들》번町서방
1971년《사고의 기술》닛케이 신쇼, 중공문고, 중공신서 라쿠레
1973년《일본경제·자멸의 구조》일본실업출판사기쿠이리 류우스케(菊入龍介) 명의
1975년《중핵 VS 혁마르》고단샤, 고단샤 문고전2권
1976년《다나카 각에이 연구 전기록》고단샤이후 신판+문고 전2권
1976년《문명의 역설 위기의 시대의 인간 연구》고단샤이후 문고
1978년《일본공산당 연구》고단샤전2권 (이후 문고 전3권), 제1회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
1978년ジャーナリズムを考える旅일본어분게이슌주이후 『미국 저널리즘 보고』로 문고화
1979년アメリカ性革命報告일본어분게이슌주이후 문고
1980년農協일본어아사히신문사이후 아사히 문고
1981년 ~ 1985년《록히드 재판 방청기》아사히신문사전4권 (이후 「록히드 재판과 그 시대」문고)
1982년《다나카 각에이 아직도 해명하지 않다》아사히신문사이후 「다나카 각에이 신금맥 연구」문고
1983년우주로부터의 귀환》중앙공론사이후 문고 (1985, 신판 2020)
1984년『「지」의 소프트웨어』고단샤 현대신서
1985년《청춘 표류》고단샤스콜라키요에 토미오(사진), 이후 문고
1985년 ~ 1986년《논박 록히드 재판 비판을 벤다》아사히신문사전3권 (이후 문고)
1986년뇌사중앙공론사이후 문고
1988년《뇌사 재론》중앙공론사이후 문고
1988년 ~ 1990년《동시대를 쏘다 정보 워칭》고단샤전3권 (이후 문고)
1991년《사이언스 나우》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1991년원숭이학의 현재》평범사이후 분춘문고 전2권
1992년《뇌사 임조 비판》중앙공론사이후 문고
1993년《전뇌 진화론 기가테라페타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1993년《거악 VS 언론》분게이슌주이후 문고 전2권
1994년임사 체험분게이슌주전2권 (이후 문고)
1995년《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분게이슌주이후 문고
1996년《인터넷 탐험》고단샤
1996년《뇌를 탐구하다》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1997년《타치바나 타카시의 동시대 노트》고단샤
1997년《인터넷은 글로벌 브레인》고단샤
1998년《타치바나 타카시·100억 년의 여행》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1999년《100억 년의 여행 2 우주·지구·생명·뇌 그 원리를 구하며》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2000년《100억 년의 여행 3 뇌와 빅뱅》아사히신문사이후 문고
2000년《인체 재생》중앙공론신사이후 문고
2000년21세기 지의 도전》분게이슌주이후 문고
2001년《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나쁜 책》분게이슌주이후 문고
2001년《동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지적 망국론+현대교양론》분게이슌주이후 문고
2002년《해독 「지옥의 묵시록」》분게이슌주이후 문고
2002년『「다나카 마키코」연구』분게이슌주이후 『정치와 정념』으로 문고
2004년『「언론의 자유」VS. 「●●●」』분게이슌주
2004년이라크 전쟁·일본의 운명·고이즈미의 운명』고단샤
2004년『시베리아 진혼가 카즈키 야스오의 세계』[50]분게이슌주분춘학예라이브러리 문고, 2023년
2004년『사색 기행 나는 이런 여행을 해왔다』서적정보사, 치쿠마 문고전2권, 2020년
2005년『아이게 영원 회귀의 바다』서적정보사, 치쿠마 문고2020년, 스다 신타로(사진)
2005년『천황과 동대 대일본제국의 삶과 죽음분게이슌주전2권, 분춘문고(전4권) 2012-13년
2006년『멸망해 가는 국가 일본은 어디를 향하는가』닛케이 BP
2007년『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된 500권 그리고 피에도 살에도 되지 않은 100권』분게이슌주
2009년『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의 증명 그림자의 주역B팩토리의 완력』아사히신문출판
2013년『타치바나 타카시의 서가』중앙공론신사아이다 준이치(사진)
2013년『자서전의 쓰는 법』고단샤, 고단샤 학술문고2020년
2013년『독서 뇌 나의 심독 300권의 기록』분게이슌주분춘문고 2016년, 이시다 히데히로와 머리말 대담
2014년『4차원 시계는 어긋나지 않는다 21세기 문명의 역설분춘신서
2015년『죽음은 무섭지 않다』분게이슌주문고 2018년
2016년『타케미쓰 토루 음악 창조로의 여행』분게이슌주
2016년『「전쟁」을 말하다』분게이슌주
2018년『지적인 힌트의 찾는 법』분춘신서
2020년『지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3만 권을 읽고 100권을 쓰고 생각해 온 것분춘신서구술 회상
2021년『사피엔스의 미래 전설의 동대 강의』고단샤 현대신서
유고
2021년『타치바나 타카시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것』중앙공론신사제1부 강연, 제2부는 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 해설 호사카 마사야스
2021년『타치바나 타카시 나가사키를 말하다』나가사키 문헌사호리 노리아키 편, 강연록+추도기
2021년『타치바나 타카시의 최종 강의 동대생과 이야기 다한 6시간』분춘신서
2022년『인디오의 성상』분게이슌주사진 사사키 요시로
2022년『언젠가 반드시 죽을 텐데 왜 너는 사는가』SB신서해설 이케가미 아키라, 아동·청소년 대상
번역서
1984년『미국인의 잡학 재미있는 소백과』고단샤배리 타시스(Barry Tarsis) 지음
1993년『바바라 해리스의 임사체험』고단샤, 고단샤+α문고라이오넬 바스콤(Lionel Bascom) 공저
1994년『아폴로 13호(アポロ13号) 기적의 생환』신초샤, 신초문고헨리 쿠퍼 주니어(Henry Cooper. Jr) 지음


3. 2. 주요 주제

다치바나 다카시는 과학혁명, 우주여행, 원유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일본에서 "지적인 거장"으로 불렸다.[1]

그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 田中角栄研究|다나카 가쿠에이 연구일본어: 1974년 출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금맥과 인맥을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21]
  • ロッキード裁判とその時代|록히드 재판과 그 시대일본어: 1981년 ~ 1985년 연재. 록히드 사건 공판을 방청하며 재판 과정과 다나카 가쿠에이 옹호론자들을 비판했다.
  • 日本共産党の研究|일본공산당 연구일본어: 1978년 출간. 일본공산당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脳を究める|뇌를 탐구하다일본어: 1996년 출간.
  • 天皇と東大 大日本帝国の生と死|천황과 도쿄대, 대일본제국의 삶과 죽음일본어


2007년 방광암 발견 이후에는 암을 주제로 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했다.

4. '고양이 빌딩'

도쿄 시내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난 수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며 화제가 되었다. 도쿄 고이시가와의 10평 정도 되는 자투리땅에 철근으로 세운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이며, 내부 서가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700m에 이른다고 한다. 빌딩의 설계는 소설 《소년 H》의 작가로 알려진 무대미술가 세노오 갓파가 맡았으며, 신문에 이 빌딩의 사서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건물 지하에는 와인 셀러가 있으며, 지상 1~3층은 침대와 탁자를 제외하면 모두 책을 꽂아두는 서고로 쓰인다. 장서는 적게 잡아도 5만 권을 넘으며, 서고가 꽉 차서 몇 년 전부터 다른 건물을 빌려 제2 서고로 쓰고 있다고 한다.

다치바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여 도쿄도 분쿄구 고이시카와에 위치한 이 건물을 소유했으며, “고양이 빌딩”, “네코 빌딩”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건물 벽에는 시마쿠라 니센로쿠가 센바가와 코타로의 의뢰로 거대한 고양이 얼굴을 그려 넣었다.[29] 고양이 빌딩은 센바가와 코타로가 『나는 이런 책들을 읽어 왔다』에서 그림으로 소개했고, NHK 『탐험 바쿠몬』에서도 소개되었다.[30] 그는 엄청난 와인 애호가였으며, 지하에는 와인 셀러를 설치해 두었다.

2024년 현재, 건물은 유족으로부터 부동산업자에게 양도되어 매각 중이지만, 고양이 벽화가 더럽고 칙칙하여 무섭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31] 이에 대해 고양이 빌딩을 소유한 KIK·토탈홈즈는 "매입 당시에는 고양이 그림을 지우고 다시 칠하는 것을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빌딩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친숙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매각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밝혔다.[32]

다치바나는 생전에 비서였던 여동생 기쿠이리 나오요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서고의 문고화나 기념관 설립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을 전했으며, 네코 빌딩 등에 있던 서고 자료의 대부분은 헌책방에 양도되었다. 단행본만 해도 5만 권이 넘는다. 시인 다치하라 미치조 관련 자료는 가루이자와 고원 문고에 기증되는 등, 문학관이나 연구자에게 기증된 장서도 있다.[33]

5. 평가 및 영향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에서 "지적인 거장" 또는 “'''지식의 거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36] 그는 앎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가 성욕이나 식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중요한 본능이며, 이 강한 욕구가 인류의 문화과학을 발전시킨 동인이라고 생각했다.

1976년 『문예춘추』에 『일본공산당 연구』를 연재하며 일본공산당 측과 큰 논쟁을 벌였다. 다치바나는 이때의 논쟁을 통해 학습·논쟁 능력이 단련되어 록히드 사건에서 다나카 옹호론자와의 논쟁에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뇌 연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관련 저서를 많이 냈는데, 더 나은 두뇌 사용법을 통해 지적 생산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실용적인 관심 때문이었다.[7] 그러나 임사 체험, 뇌사, 이상 성격자, 초능력 등을 과학적으로 다뤄 오컬트주의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다치바나의 저술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문명의 역설』에서 여성에 대한 그의 기술은 히가키 타카시에게서 "남근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43] 호리에 타카후미는 다치바나의 기사가 자신을 폭력단과 관계있는 것처럼 묘사했다며 소송을 제기, 법원은 다치바나에게 200만 엔 지급을 명령했다.[44][45] 아베 신조 총리의 건강 문제를 다룬 기사는 2채널 등에서 비판받았고,[46] 우에스기 타카시는 다치바나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 자금 문제에 대해 추측으로 기사를 쓴다고 비판했다. 일본 공산당은 『일본 공산당의 연구』에 대해 "특고 경찰검찰이 탄압에 사용한 자료를 이용한 날조"라고 비난했다.[47]

5. 1. 수상 경력

참조

[1] 웹사이트 Journalist Tachibana, who shed light on ex-PM Tanaka scandal, dies at 80 https://english.kyod[...] 2023-07-11
[2] 웹사이트 Takashi Tachibana, Journalist & Voice of Whisper of the Heart's Father, Passes Away at 80 https://www.animenew[...] 2021-06-23
[3] 웹사이트 ジャーナリスト・作家 立花隆さん死去 幅広いテーマ取材 https://www3.nhk.or.[...] 2021-06-23
[4] 웹사이트 立花隆とは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2022-10-30
[5] 웹사이트 大川出版賞受賞図書 http://www.okawa-fou[...] 大川情報通信基金 2022-10-30
[6] 뉴스 上り坂への郷愁、今なお 立花隆「田中角栄研究」 https://book.asahi.c[...] 2018-05-30
[7] 서적 脳を究める 朝日文庫 2001-03-01
[8] 웹사이트 がんサポート - がん闘病中の「知の巨人」VS「がん検診の伝道師」 がん徹底対論、立花 隆(評論家)× 中川恵一(東京大学病院放射線科准教授) https://gansupport.j[...] 2020-09-18
[9] 웹사이트 NHKスペシャル 立花隆 思索ドキュメント がん 生と死の謎に挑む https://www2.nhk.or.[...] 2020-09-18
[10] 뉴스 私の履歴書 池邉 晋一郎 日本経済新聞社 2023-05-04
[11] 서적 ぼくはこんな本を読んできた 2012-07
[12] 뉴스 (人生の贈りもの)わたしの半生 2016-04-06
[13] 뉴스 分野も時間も軽々越えた「知の巨人」 立花隆さんが残したもの https://mainichi.jp/[...] 2021-06-23
[14] 서적 立花隆のすべて (下) 文春文庫 2012-07
[15] 웹사이트 自然は「数量化できない要素」に満ち満ちている https://president.jp[...] PRESIDENT Online 2020-09-03
[16] 웹사이트 「ムダ」を「ムダ」としか見ない人間の恥ずかしさ https://president.jp[...] PRESIDENT Online 2020-09-03
[17] 웹사이트 人間は、現実を恐れることを忘れてしまった https://president.jp[...] PRESIDENT Online 2020-09-03
[18] 웹사이트 進歩が「善」になるのは、方向と速度が正しい時 https://president.jp[...] PRESIDENT Online 2020-09-03
[19] 간행물 フランス・ユマニスムの精神 文藝春秋 2016-06-01
[20] 간행물 フランス・ユマニスムの精神 文藝春秋 2016-06-01
[21] 서적 ロッキード 文藝春秋 2021-01
[22] 서적 筑紫哲也「NEWS23」とその時代
[23] 웹사이트 耳をすませば https://web.archive.[...] 日本テレビ 2017-01-12
[24] 문서 リアルスポーツ 2009-11-28
[25] 웹사이트 宇宙飛行士と立花隆の大激論!有人宇宙開発の意味とは? https://www.youtube.[...] 室山哲也公式YouTube(元NHKプロデューサー・解説委員、日本科学技術ジャーナリスト会議(JASTJ)副会長) 2021-07-01
[26] 웹사이트 ふらっと'92 20周年記念シンポジウム「日本の宇宙飛行士が語る20年の歩みと今後の展望」 https://stage.tksc.j[...] 宇宙航空研究開発機構(JAXA) 2021-07-01
[27] 뉴스 「角栄」より断然「共産党」 京都府立大学文学部教授・岡本隆司 https://www.sankei.c[...] 産経デジタル|産経ニュース 2021-09-12
[28] 뉴스 ノンフィクション作家 立花隆さん死去 https://www3.nhk.or.[...] 2021-06-23
[29] 웹사이트 「猫ビル」に黒猫を描いた日「これは名所になるね」(追悼特集 立花隆「知の巨人」の素顔) https://bunshun.jp/b[...] 文藝春秋 2021-07-10
[30] 웹사이트 NHKクロニクル『探検バクモン 「潜入!巨人の脳みそ」』 https://www.nhk.or.j[...] 日本放送協会
[31] 웹사이트 “知の巨人”立花隆さん 死去から3年、放置で傷んだ“猫ビル”が買い叩かれた!「貴重な取材資料」の行方は https://smart-flash.[...] 光文社FLASH編集部 2024-08-04
[32] 웹사이트 立花隆さんの元仕事場「猫ビル」が売りに出されていた! 気になる“価格”と内部の様子は https://www.dailyshi[...] 新潮社 2024-08-31
[33] 뉴스 「立花隆さん蔵書5万冊 古書店へ/生前に要望、文庫設立は拒否」 https://www.sankei.c[...] 2022-04-12
[34] 뉴스 知の巨人 故立花隆さん 取材資料の行き先は?田中元首相・共産党の研究 自筆原稿 取材ノート/寄託先決定後も難航「秘匿情報でトラブルリスク」/研究者ら価値訴え「廃棄を懸念」「後世に残して」 https://www.tokyo-np[...] 2022-12-26
[35] 서적 生、死、神秘体験
[36] 서적 脳を究める 朝日文庫 2001-03-01
[37] 서적 小林・益川理論の証明
[38] 웹사이트 立花隆さんと17年間一緒に番組を作ってきた私が、大量の段ボール箱を前に考えていること https://www.nhk.or.j[...] NHK取材ノート、広げます 2023-05-17
[39] 서적 赤塚不二夫の「これでいいのだ!!」人生相談 集英社 1995
[40] 웹사이트 [クロ現+] 立花隆さんのメッセージ “知ることに終わりはない” https://www.youtube.[...] NHK 2023-05-17
[41] 웹사이트 【追悼】「立花隆最後の恋人」――編集者が明かす知の巨人の素顔 https://gendai.media[...] 阿佐川嗣人(講談社) 2023-05-18
[42] 서적 立花隆先生、かなりヘンですよ - 「教養のない東大生」からの挑戦状 洋泉社 2001-11
[43] 서적 通販な生活 一生を1ギガで終えないための買い物学 講談社 2008-04
[44] 뉴스 堀江氏が立花隆さんを提訴 http://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07-08-24
[45] 뉴스 「立花のコラムについて堀江被告、立花氏に勝訴=コラムの名誉棄損認定-東京地裁」 http://www.jiji.com/[...] 時事通信 2008-10-03
[46] 뉴스 首相は「紙オムツ常用」状態!? 立花隆の超過激コラム https://www.j-cast.c[...] 株式会社ジェイ・キャスト 2007-02-26
[47] 뉴스 闇から出てきた亡霊 立花隆氏の新版“日共”批判をきる https://www.jcp.or.j[...] 2007-08-23
[48] 웹사이트 野口聡一 宇宙飛行士 https://iss.jaxa.jp/[...] JAXA|宇宙航空研究開発機構 2020-11-16
[49] 서적 宇宙を語るI 宇宙飛行士との対話
[50] 서적 私のシベリヤ
[51] 기타 2009年度前期立教大学21世紀社会デザイン研究科立花ゼミのゼミ長
[52] 기타 武満徹・音楽創造の旅
[53] 기타 2008年度後期立教大学21世紀社会デザイン研究科立花ゼミのゼミ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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