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기노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미야기노구는 센다이시 북동부에 위치하며, 태평양 센다이만에 접해 있는 구이다. 북서부에는 구릉지가 있으며, 센다이항과 센다이 우미노모리 수족관 등이 있다. 이 지역은 고대부터 정착이 이루어졌으며, 에도 시대에는 센다이의 일부였다. 1989년 센다이시가 정령지정도시가 되면서 미야기노구로 설치되었으며, 센다이역 동쪽 지역의 개발과 센다이항 건설 등 역사적 변화를 겪었다. 현재는 프로야구팀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인 미야기 구장, 센다이 시립 육상경기장 등이 있으며, 교통 시설로는 JR, 센다이 시영 지하철, 센다이 림카이 철도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센다이시의 구 - 와카바야시구
와카바야시구는 센다이시를 구성하는 5개 구 중 하나로, 히로세 강과 나토리 강 사이의 평지에 위치하며 고대 유적과 와카바야시 성터가 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 농업과 상업이 공존하며 센다이시 중앙도매시장 등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고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건되었다. - 센다이시의 구 - 아오바구 (센다이시)
아오바구는 센다이시에 위치하며 아오바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히로세 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고, 중심부와 도호쿠 대학 캠퍼스를 포함하며, 다양한 자연 및 수자원과 역사적 유적을 갖춘 주요 시설 집약 지역이다. - 미야기노구 - 이와키리역
이와키리역은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위치한 JR 동일본의 철도역으로, 도호쿠 본선과 리후선의 분기점이며 화물 취급도 재개되었고, 역사 교량화 및 자유 통로가 완공되었으며 하루 평균 승차 인원은 4,348명이다. - 미야기노구 - 센다이역 (미야기현)
센다이역은 1887년 도호쿠 본선 역으로 개업하여 도호쿠 신칸센 등 여러 노선이 운행되는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중요한 교통 허브이며, 지상 4층, 지하 4층 규모로 JR 동일본, 센다이 공항 철도, 센다이 시영 지하철 노선이 운행되고 역 주변은 상업 지구를 형성한다. - 미야기현 - 구로카와군
구로카와군은 미야기현에 위치한 군으로, 센다이 도시권에 속하며 요시다 강 유역의 평야와 구릉 지대를 포함하고, 농업에서 기계 공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했으며, 현재 오사토정, 다이와정, 오히라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 미야기현 - 와카바야시구
와카바야시구는 센다이시를 구성하는 5개 구 중 하나로, 히로세 강과 나토리 강 사이의 평지에 위치하며 고대 유적과 와카바야시 성터가 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 농업과 상업이 공존하며 센다이시 중앙도매시장 등 주요 시설이 위치해 있고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건되었다.
미야기노구 | |
---|---|
지도 정보 | |
![]()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미야기노구 |
원어 명칭 | 宮城野区 |
로마자 표기 | Miyagino-ku |
국가 | 일본 |
지방 | 도호쿠 지방 |
광역 자치 단체 | 미야기현 |
기초 자치 단체 | 센다이시 |
설치 유형 | 일본의 구 |
면적 | 58.19 km² |
인구 | 196,086 명 (2017년 8월 1일 기준) |
인구 밀도 | 3370 명/km² |
우편 번호 | 983-8601 |
전화 번호 | 022-291-2111 |
주소 | 미야기현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고린 2-12-35 |
상징 | |
행정 정보 | |
구청 주소 | 미야기현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고린 2-12-35 |
추가 정보 | |
웹사이트 | 미야기노구 공식 웹사이트 |
![]() | |
![]() |
2. 지리
미야기노구는 대체로 평지이지만 북부는 구릉지대이다.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나나키타 강과 우메다 강이 흐른다. 동쪽은 센다이만에 접한다.
미야기노구는 1989년 4월 1일 센다이시가 정령지정도시로 승격되면서 설치되었다. 이 지역은 그 이전에는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통합된 적이 없었다. 북부의 이와키리는 중세 시대에 번성했던 마을로, 10세기 이후 무쓰국의 수도로 추정되기도 한다. 서쪽 끝 지역은 에도 시대부터 센다이 성시의 일부였으며, 그 외 지역은 농촌이었다.[8]
미야기노구는 센다이시 북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태평양의 센다이만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다가조시와 인접해 있다. 센다이시의 아오바구, 와카바야시구, 이즈미구, 다가조시, 나나가하마정, 리후정, 토미야시와 인접해 있다.
미야기노구의 대부분은 평야이며, 서쪽은 홍적대지이고 동쪽은 충적평야이다. 북서부의 구릉지는 다이하라·오다와라 구릉이라 불리며, 해발고도가 높다. 이 구릉에는 요헤이누마 등 몇몇 저수지가 산재해 있다[2]. 구의 북쪽 이와키리 지역에는 마쓰시마 구릉의 남쪽 끝이 다가와 있으며, 이와키리성터와 오래된 사찰 등의 역사적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이 구릉의 일부는 현민의 숲으로 정비되어 있다[3].
구의 남서부는 옛 센다이성 성하마을의 범위이며, 현재는 센다이역 동쪽 출구에 해당한다. 성하마을 범위에서 벗어나지만, 센다이역 동쪽으로는 미야기노하라 공원 종합운동장이 있다. 이 부근은 옛부터 노래에 읊어지며, 구 명칭의 유래가 된 미야기노로 비정되는 곳이다. 이곳에 프로야구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본거지인 미야기 구장(라쿠텐 모바일 파크 미야기)이 있다[4]. 센다이를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가로지르는 나가마치-리후 선 단층대는 류오카 공원과 미야기노하라 사이의 지형에서 볼 수 있다[2]. 미야기노하라 북쪽의 하라마치 지역은 에도 시대에 역참으로 발전한 곳이며[2], 미야기노 구청은 이곳에 있다[5].
구의 동쪽은 태평양의 센다이만에 접해 있으며, 센다이항이 있다. 센다이항 배후지에는 센다이 우미노모리 수족관 등이 있다. 구내의 주요 하천으로는 나나키타가와와 그 지류인 우메다가와가 있다. 나나키타가와 하구에는 남쪽에서 정산운하가 연결되며, 하구 북쪽의 가모생 간척지는 조류와 식물 군락이 모이는 장소이다[6][7]. 나나키타가와 주변에는 자연제방이 형성되어 있으며, 옛 시대부터 마을이 존재했다[3]. 해안 근처에 발달한 사구에도 옛부터 사람들이 살았다[6].
국도 4호선 센다이 우회도로와 국도 45호선 연변에는 유통단지, 공업단지가 있다[2]. 이곳은 고도 경제 성장 시대에 농경지에서 개발되었지만, 지하수의 양수와 성토의 무게가 지반침하를 일으켰고,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 시에는 액상화 현상이 발생했다.
3. 역사
오늘날 미야기노구 지역은 고대 무쓰국의 일부였으며, 일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 에미시족이 거주하던 이 지역은 천황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나라 시대 후기에는 다가조를 거점으로 통치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이와키리 역(岩切駅) 부근에 무쓰국의 국청이 있었다. 이후 히라이즈미의 북부 후지와라 씨가 이 지역을 다스렸다. 센고쿠 시대에는 여러 사무라이 가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다가 에도 시대에 다테 가문(伊達氏)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도쿠가와 막부 아래 센다이 번(仙台藩)의 일부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89년 4월 1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미야기현 미야기군(宮城郡)에 속하게 되었고, 1987년 11월 1일 센다이시에 편입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미야기노구 해안 지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가무생 간척지가 파괴되고,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인정받았던 히와야마가 소멸되었으며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44] 히와야마는 2014년에 다시 산으로 인정되어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 되었다.
3. 1. 행정 구역 변천
미야기노구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이 하나로 통합된 적은 없었다. 북부의 이와키리는 중세에 번창한 마을로 10세기 이후의 무쓰국 수도로도 추정된다. 서단은 에도 시대부터 센다이의 일부였고 그 외에는 농촌 지대였다.[8]
1989년 4월 1일에 센다이 시가 정령지정도시가 되면서 북동부를 분할해 미야기노구가 설치되었다. 구명은 이 일대의 옛 지명인 미야기노에서 유래했다. 구명 선정 공모에서는 항구구(港区), 동구(東区), 하기구(萩区)가 상위권이었으나, 다른 도시에 있는 구명이나 방위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센다이시의 방침에 따라 미야기노가 선택되었다.[8]
에도 시대에 현재의 미야기노구 지역 서쪽 끝은 센다이 성하 마을이었고, 외곽에는 미나미메무라(南目村), 니가타케무라(苦竹村), 오다와라무라(小田原村), 고즈루무라(小鶴村), 쓰바쿠사와무라(燕沢村), 쓰루가야무라(鶴ケ谷村), 이와키리무라(岩切村), 가모무라(蒲生村), 나카노무라(中野村), 후쿠무라무라(福室村), 타고무라(田子村), 오카다무라(岡田村)가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정촌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다.[2][3][6]
합병 전 | 합병 후 |
---|---|
미나미메무라(南目村), 니가타케무라(苦竹村), 오다와라무라(小田原村) | 하라노마치(原町) |
고즈루무라(小鶴村), 쓰바쿠사와무라(燕沢村), 쓰루가야무라(鶴ケ谷村), 이와키리무라(岩切村) | 이와키리무라(岩切村) |
가모무라(蒲生村), 나카노무라(中野村), 후쿠무라무라(福室村), 타고무라(田子村), 오카다무라(岡田村) | 타카사고무라(高砂村) |
하라노마치(原町)는 1928년에, 이와키리무라(岩切村)와 타카사고무라(高砂村)는 1941년에 센다이시에 합병되었다. 이들 지역이 미야기노구가 되었지만, 구 하라노마치(原町) 지역의 일부는 아오바구, 와카바야시구가 되었다.[2][3][6]
3. 2. 선사 시대부터 중세까지
미야기노구 지역은 고대 일본 구석기 시대부터 에미시족이 거주했던 곳으로, 천황가의 지배를 거쳐 나라 시대 후기에는 다가조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무쓰국의 국청이 이와키리 역(岩切駅) 부근에 위치했으며, 이후 히라이즈미의 북부 후지와라 씨가 이 지역을 다스렸다.현재 미야기노구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조몬 시대의 것으로, 츠루가야(鶴ケ谷)의 쇼부자와(菖蒲沢) 유적, 츠바메자와(燕沢)의 츠바메자와 유적, 이와키리(岩切)의 야마자키가코리(山崎囲) 유적, 센다이항(仙台港) 근처의 누무카이(沼向) 유적 등이 있다. 조몬 해진이라 불리는 해수면 상승 시기에는 해안선이 현재보다 내륙에 있었으며, 츠바메자와 유적과 누무카이 유적에서는 야요이 시대 사람들의 흔적도 발견된다. 고분 시대에는 츠바메자와의 젠노지(善応寺) 횡혈묘군, 이와키리의 토코지(東光寺) 횡혈묘군 등 많은 횡혈묘가 만들어졌다.[9] 히가시센다이(東仙台) 부근 구릉지대에서는 스에키를 생산하던 다이하라(台原)·오다와라(小田原) 가마터군이 발견되었는데, 이 중 다이렌지(大連寺) 가마터는 초기부터 스에키를 생산했던 곳으로 주목받으며,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걸쳐 이용되었다.[10]
869년(죠간 11년) 죠간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연안 지역이 침수되면서 누무카이 유적의 사람들은 활동을 일시 중단했다.[11] 『와명류주초』에는 미야기군(宮城郡) 요토고(余戸郷), 미야기고(宮城郷)가 기록되어 있는데, 요토고는 현재 이와키리(岩切) 요토메(余目)로 추정된다. 미야기고는 후대 가마쿠라 시대 기록에 쿠타케(苦竹)를 미야기혼고(宮城本郷)로 했다는 내용이 있어, 쿠타케가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12] 현재의 가무(蒲生), 나카노(中野)에서 다가조 하치만(八幡)에 이르는 지역에는 하치만쇼(八幡荘)라는 쇼엔이 있었다.[13]
타가조는 고대 루우슈우(陸奥) 국부였으나, 10세기 이후 행정부는 타가 국부(多賀国府)로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타가조에서 이와키리에 걸친 지역이 타가 국부로 불렸지만, 중심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타가 국부는 후츄(府中)라고 불리는 도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치키타가와와 오쿠오오미치(奥大道)가 교차하는 이와키리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이와키리오오하시(岩切大橋) 부근에 카와라슈쿠 시장(河原宿市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키리에서는 중세 전기 유물과 유구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루우슈우(陸奥) 국 유슈쇼쿠(留守職)에 임명된 이자와 케카게와 그 자손 류슈시는 이와키리 일대에 영지를 가졌다.[14]
남북조 시대인 1351년(관응 2년·쇼헤이 6년), 관응의 난의 영향으로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아시카가 나오요시 각각을 지지하는 두 오슈 간료인 하타케야마 쿠니우지와 키라 사다이에가 이와키리성 전투(岩切城合戦)에서 맞붙었다. 키라(吉良) 측에 밀린 하타케야마(畠山) 측은 이와키리성 등에 갇혔으나, 결국 함락되었다.[15] 이후, 시바시가 오슈 탄다이에 임명되고 카미군(加美郡)과 시다군(志田郡)에 본거지를 두면서 타가 국부는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잃었다.[16]
류슈시(留守氏)는 이와키리성 전투에서 패배 후에도 존속하여 이와키리성을 거점으로 삼았지만,[17] 류슈 마사카게 때 리후조로 옮겼다. 미야기노구 지역에는 토코지성(東光寺城), 케쇼자카성(化粧坂城), 코츠루성(小鶴城), 미나메성(南目城), 사사모리조 등 중세 성곽이 있었는데, 토코지성, 케쇼자카성, 코츠루성은 류슈시, 미나메성과 사사모리성은 코쿠분시의 성곽이었다.[18] 류슈시와 코쿠분시는 모두 다테시의 영향을 받았으며, 류슈시는 다테시의 가신으로 영지를 옮겨 다니며 존속했지만, 코쿠분 모리시게와 가신 간 내분으로 코쿠분 영지는 다테시의 직할령이 되고 코쿠분시는 멸망했다.[19]
3. 3. 근세부터 현대까지
미야기노 구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이 하나로 묶인 적이 없었다. 북부의 이와키리는 중세에 번창한 마을로, 10세기 이후 무쓰국의 수도로 추정되기도 한다. 서쪽 끝은 에도 시대부터 센다이 성시의 일부였고, 그 외 지역은 농촌이었다.1989년 4월 1일, 센다이 시가 정령지정도시가 되면서 북동부를 분할하여 미야기노 구가 설치되었다. 오늘날 미야기노 구 지역은 고대 무쓰국의 일부였으며, 적어도 일본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에미시족이 거주했던 이 지역은 천황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나라 시대 후기에는 다가조를 거점으로 통치되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이와키리 역(岩切駅) 부근에 무쓰 국의 국청이 있었다. 이후 이 지역은 히라이즈미의 북부 후지와라 씨의 지배를 받았다. 센고쿠 시대에는 여러 사무라이 가문이 이 지역을 다스리다가 에도 시대에 다테 가문(伊達氏)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도쿠가와 막부 아래 센다이 번(仙台藩)의 일부가 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89년 4월 1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미야기 현 미야기군(宮城郡)에 속하게 되었고, 1987년 11월 1일 센다이 시에 편입되었다.
센고쿠 시대까지는 동산도(오쿠오미치, 히가시카이도)가 이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했다. 그러나 에도 시대에 센다이성(仙台城)과 그 성하 마을이 건설되면서 오슈 가도(奥州街道)는 센다이 성하를 지나게 되었다. 한편, 센다이 성하에서 시오가마(塩竈)나 이시마키(石巻) 방면으로 가는 길이 만들어졌고, 이 길에 역참(宿場)인 하라마치 숙(原町宿)이 설치되었다.[20] 하라마치 숙은 쿠타케무라(苦竹村)와 미나미메무라(南目村)에 걸쳐 있었다.[21] 1661년~1673년 무렵에는 시오가마만(塩竈湾)의 우시우(牛生)와 시치키타가와(七北田川) 하구의 가모우(蒲生)를 잇는 후나이리보리(舟入堀)와, 쓰루마키(鶴巻)와 쿠타케를 잇는 후나히키보리(舟曳堀)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후나이리보리, 시치키타가와, 후나히키보리를 통해 화물이 쿠타케까지 운반되었고, 쌀과 목재가 이 경로로 성하까지 운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0][22] 이 무렵, 시치키타가와는 현재의 하천과 같은 수로로 바뀌었다고 여겨진다.[23][24]
이와키리무라(岩切村)와 타고무라(田子村)에는 아시가루마치(足軽町)가 형성되었다. 이와키리의 아시가루마치는 이마이치(今市)이고, 타고무라의 아시가루마치는 후쿠다마치(福田町)이다. 후쿠다마치는 원래 황무지를 개간하기 위해 이주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번에서 이들을 아시가루(足軽)로 임명하여 만들어졌다. 후쿠다마치는 후쿠무로무라(福室村)와 타고무라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어졌다. 이마이치와 후쿠다마치의 아시가루는 센다이 성하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 활동을 했다고 한다.[25] 화물 유통 경로가 된 가모우에도 마을이 형성되었다.[26] 신전 개발(新田開発)은 평야부의 마을에서 주로 이루어졌다.[27] 시치키타가와에서는 강어업이, 해안 지역에서는 연안 어업이 행해졌다.[28]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1889년 읍면제에 따라 하라마치(原町), 이와키리무라(岩切村), 타카사고무라(高砂村)가 성립했다. 이때 미야기군(宮城郡) 내에서 정으로 성립한 것은 시오가마정(塩竈町)과 하라마치뿐이었다. 정청뿐만 아니라 미야기 군의 군청과 우체국, 초등학교 등 공공 시설이 설치된 하라마치는 행정 중심지였다.[29] 이와키리무라의 촌청은 이마이치에,[30] 타카사고무라의 촌청은 후쿠다마치에 설치되었다.[31] 센다이 성 성하 마을은 센다이구(仙台区)를 거쳐 1889년에 센다이 시(仙台市)가 되었다.
현재의 도호쿠 본선(東北本線)의 전신인 일본 철도(日本鉄道)는 1887년에 시오가마까지 개통되었고, 이듬해 이와키리역(岩切駅)이 개업했다. 현재의 센다이 시 시역 내에서는 센다이역(仙台駅)에 이어 두 번째 철도역이었다.[32] 도호쿠 본선의 히가시센다이역(東仙台駅)은 신호장에서 승격하여 1933년에 개업했다.[33] 히가시센다이역 개설에 맞춰 역 주변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도시계획법에 따른 센다이 시 최초의 사례였다.[34] 센세키선(仙石線)의 전신인 미야기 전기 철도(宮城電気鉄道)는 1925년에 센다이 역에서 니시시오가마역(西塩釜駅)까지 개통했다. 이후 설치된 역을 포함하여, 히가시시치방딘 역(東七番丁駅), 류케오카역(榴ケ岡駅), 미야기노하라역(宮城野原駅), 리쿠젠하라노마치역(陸前原ノ町駅), 신다 역(新田駅), 후쿠다마치역(福田町駅), 리쿠젠타카사고역(陸前高砂駅)이 있었다.[35]
중일전쟁 중이던 1941년, 하라마치 쿠타케에 도쿄 제1육군조병창 센다이 제조소가 설치되었다.[36] 하라마치 오다와라에는 그 분공장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강제적인 토지구획정리가 이루어졌고, 센다이 시는 「센다이 시 도시계획 하라마치 공업도시 건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책정했다. 현재의 미야기노 구 히가시센다이 5정목이나 헤이세이 1, 2정목은 이 무렵 안내 주택이나 하라마치 주택으로 만들어진 구획이다.[37] 츠바메자와 주택도 도쿄 제1육군조병창 공장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졌다.[38] 조병창 공장 노동자 수송을 위해 미야기 전기 철도에서 신다 역을 폐지하고 쿠타케 역을 신설했다.[36]
전후, 도쿄 제1육군병기창 센다이 제조소 터는 미군에 접수되어 미군 제11공수사단과 제1기병사단이 주둔했다.[39] 이 캠프는 1957년에 일본에 반환된 후, 육상자위대 센다이 주둔지가 되었다.[39] 오다와라에 있던 병기창 분공장 터는 공업용지가 되어, 대장성 전매국(전매공사를 거쳐 후에 일본타바코산업) 공장과 센다이시 가스국, 기타 기업 공장들이 입주했다.[40]
1964년에 센다이 만 지역이 신산업도시로 지정되면서, 나카노 지역에 센다이 항 건설이 결정되었다. 센다이 항은 1967년에 착공되어 1971년에 개항했다. 센다이 항 건설로 아카마쓰, 기타신덴, 누무카이, 오이분의 각 마을은 하라마치 오다와라의 안요지, 다가시시 가사가미, 리후정 가미야자와 등으로 이전했다. 센다이 항 주변에는 도호쿠석유정유소와 신센다이 화력발전소, 키린맥주 센다이 공장 등 여러 기업 공장들이 들어서 공업지대가 되었다.[41] 센다이 만 지역의 신산업도시 지정에 맞춰 센다이 시는 시 동부의 쿠타케, 미나미메에 유통단지와 내륙공업지대를 정비하기로 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착수했다. 1969년에 자동차단지가 완성되었고, 이후 도매상단지, 트럭단지, 창고단지 등이 생겨났다.[40] 다고와 오카다에 걸쳐 있는 지역에는 동부공업단지가 정비되었다.[41]
주택지 개발도 여러 건 이루어졌다. 츠루가야 단지는 1964년에 센다이 시가 사업 기본계획을 결정하고, 1967년에 조성을 시작하여 1968년부터 분양을 시작했다. 당시 츠루가야 단지는 대규모 개발 단지였다.[38] 타카사고 지역에서는 토지정리조합과 민간 부동산업체에 의해 단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후쿠다마치, 나카노, 다고, 데바나, 후쿠무로, 시라토리에서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42]
센다이역 동쪽은 센다이 공습의 피해를 입지 않아 전쟁 피해 복구 대상 지역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어 "역 뒤"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도호쿠 신칸센 건설에 맞춰 센다이 역 동쪽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센다이 시에 의한 센다이 역 동부 제1토지정리구획정리사업이 1973년에 시작되었다. 36~50미터 너비의 도시계획도로인 센다이 역 미야기노하라 선이 1982년에 거의 완성되어 미야기노도리로 명명되었다. 1985년부터는 테포마치와 니쥬닌마치를 중심으로 센다이 역 동부 제2토지정리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사업으로 센다이 역 동쪽에는 고층 빌딩이 건설되고, 센세키선의 지하화도 이루어져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43]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미야기노 구 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가무생 간척지가 파괴되고,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인정받았던 히와야마가 소멸되었으며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44] 히와야마는 2014년에 다시 산으로 인정되어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 되었다.
4. 경제
미야기노 구에는 센다이 항( 센다이시오가마항 센다이항구), 미야기노 화물역, 국도 4호선, 국도 45호선과 인접한 와카바야시구의 중앙 도매시장 등이 있어 물류 여건이 우수하며, 오기 정 일대는 와카바야시 구 오로시 정과 함께 유통업이 집적되어 있다.[45] 2005년 미야기노하라 공원 종합 운동장 내에 있는 미야기 구장을 본거지로 하는 프로야구 구단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어 프로 야구 흥행과 관련된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국도 4호선 서쪽 지구는 예전에는 공장 부지와 동일본 여객철도의 사택들이 있었고, 이 부지를 이용한 교외형 대형마트와 공공 시설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도호쿠 본선과 센세키 선이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고즈루신덴역 앞이나 이와키리역 앞은 역세권이 발전하여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5. 교통
미야기노구에는 JR 동일본의 도호쿠 본선과 센세키 선, 센다이 시영 지하철 난보쿠 선이 지난다. 구내에는 국도 4호선 (센다이 우회도로)과 국도 45호선이 통과한다.[2] 센다이항이 있어 도마코마이 및 나고야 방면 장거리 페리가 발착한다.
5. 1. 철도
- JR 동일본
- * 도호쿠 본선
:; ( - 히가시센다이역 - 이와키리역 - )
- * 센세키 선
:; ( - 센다이역 - (쓰루가오카역) - 미야기노하라역 - 리쿠젠하라노마치역 - 니가타케역 - 고즈루신덴역 - 후쿠다마치역 - 리쿠젠타카사고역 - 나카노사카에역 - )
:* 그 외, 도호쿠 신칸센이 센다이역~후루카와역 구간에서, 센잔선이 센다이역~토쇼구역 구간에서 각각 미야기노구를 통과한다.
- 센다이 시영 지하철 (센다이시 교통국)
- * 도자이선
:; ( - 미야기노도오리역 - )
:; ( - 센다이 화물 터미널역 - 히가시센다이역)
- 센다이 림카이 철도
- * 림카이 본선
:; ( - 센다이코역 - 센다이 북항역 - )
- * 센다이 부토선
:; (센다이코역 - 센다이 부토역)
- * 센다이 니시코선
:; (센다이코역 - 센다이 니시코역)
5. 2. 도로
- 고속도로
- * 센다이 동부 도로 (E6)[51]: 센다이항IC - 센다이항 북IC
- * 산리쿠 자동차도 (E45)[51]:센다이항 북IC -
- 일반 국도
- * 국도 제4호선 (센다이 바이패스)
- * 국도 제45호선
- 현도
- * 미야기 현도 제8호 센다이 마쓰시마 선
- * 미야기 현도 제10호 시오가마 와타리 선
- * 미야기 현도 제23호 센다이 시오가마 선
- * 미야기 현도 제35호 이즈미 시오가마 선
- * 미야기 현도 제138호 하라마치 역전 선
- * 미야기 현도 제270호 리후 이와키리 역전 선
5. 3. 항만
미야기노구 동쪽은 태평양의 센다이만에 접해 있으며, 이곳에 센다이항이 있다. 센다이항(센다이시오가마항 센다이항구역)에서는 토마코마이 항로 및 나고야 항로의 장거리 페리가 발착한다.
6. 교육
미야기노구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초등학교 20개교와 공립 중학교 10개교, 사립 중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1] 시는 특수학교 1개교도 운영하고 있다.[1]
6. 1. 대학교
- 도호쿠 의과약과대학 미야기 캠퍼스
- 도호쿠 복지대학 센다이역 동쪽 출구 캠퍼스
6. 2. 고등학교
미야기노구에는 미야기현 교육위원회가 운영하는 공립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1]6. 3. 중학교
미야기노구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중학교 10개교와 사립 중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도호쿠가쿠인 중학교(중고 병설)
6. 4. 특수학교
미야기노구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7. 명소 및 시설
- 센다이 선 플라자[4]
- 미야기노하라 공원 종합운동장
- * 미야기 구장(라쿠텐 모바일 파크 미야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본거지)[4]
- * 센다이 시립 육상경기장(코진고무 아슬리트파크 센다이)
- 센다이 시립 운동장
- 류오카 공원
- * 센다이시 역사민속자료관[48]
- 센다이 우미노모리 수족관
- 쿠루타케 은행나무 (천연기념물)[46][47]
- 엔자와비
- 이와키리성(다카모리성) 터
- 현민의 숲
- 센다이시 신타히가시 종합운동장 (겐키필드 센다이)
- * 센다이 시민구장
참조
[1]
웹사이트
Miyagino-ku
http://www.city.send[...]
2017-08-01
[2]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4]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5]
문서
区役所の所在地は五輪
[6]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7]
웹사이트
蒲生干潟の自然
https://www.pref.miy[...]
2020-04-12
[8]
간행물
政令指定都市仙台の区名選定に関する資料
2005-09
[9]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0]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1]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2]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3]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4]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5]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6]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7]
문서
洞ノ口遺跡も留守氏の居館だったと考えられている
[18]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19]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0]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1]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2]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3]
문서
それまでの七北田川は、岩切付近で東に折れて、現在の砂押川に当たる河道で流れていた
[24]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5]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6]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7]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8]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29]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0]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1]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2]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3]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4]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5]
서적
仙台市史 特別編9(地域史)
[36]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37]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38]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39]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40]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41]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42]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43]
서적
仙台市史
(Unspecified)
[44]
뉴스
野鳥の楽園、見る影なく 一帯に砂、復元不能か 蒲生干潟
http://jyoho.kahoku.[...]
河北新報
2011-04-01
[45]
웹사이트
楽天イーグルスはいかにして誕生したのか
https://toyokeizai.n[...]
東洋経済
2018-12-08
[46]
웹사이트
苦竹のイチョウ
http://www.city.send[...]
仙台市
2020-04-12
[47]
웹사이트
苦竹のイチョウ
http://www.sendai-c.[...]
仙台市教育委員会文化財課
2020-04-12
[48]
웹사이트
仙台市歴史民俗資料館
http://www.sendai-c.[...]
仙台市
2020-04-12
[49]
문서
(Unspecified)
[50]
웹사이트
市内を走るバス
https://www.city.tag[...]
多賀城市
[51]
문서
仙台都市圏環状自動車専用道路(「ぐるっ都・仙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