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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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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타키아는 튀르키예 남부 오론테스 강 동안에 위치한 도시로,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근처에 있다.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농업이 발달하여 밀, 목화, 포도, 올리브 등을 생산한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고, 로마 시대에는 시리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으며,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잔티움 제국, 페르시아 제국,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거쳐 1098년 십자군에 의해 안티오키아 공국이 세워졌다. 1517년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위임 통치를 받다가 1939년 터키에 병합되었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 사도 베드로 교회 등 다양한 문화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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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키아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하타이 주에서 안타키아의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
하타이 주에서 안타키아의 위치
하타이 현에서 안타키아의 위치
하타이 현에서 안타키아의 위치
안타키아 전경
안타키아 전경
기본 정보
명칭안타키아
로마자 표기Antakya
그리스어 표기'Ἀντιόχεια' (Antiókheia)
아르메니아어 표기'Անտիոք' (Andiok)
라틴어 표기Antiochia
아랍어 표기'أنطاكية' (ʾAnṭākiya)
별칭고대 대주교의 도시
위치터키 지중해 지방 하타이 주
면적703 km²
해발 고도67 m
시간대극동 유럽 시간
협정 세계시와의 시차+3
행정
국가터키
하위 행정 구역하타이 주
시장이즈제틴 일마즈
시장 소속 정당정의개발당
인구
총인구399,045 (2022년)
2008년 인구202,216명
2014년 인구218,568명
기타 정보
우편 번호31
지역 번호0326
차량 번호판31
공식 웹사이트안타키아 시 공식 웹사이트
이미지
안타키아 전경
안타키아 전경
안타키아 울루 자미
안타키아 울루 자미
안타키아 전경
안타키아 전경
안타키아 성 베드로 교회
안타키아 성 베드로 교회
하비비 네차르 모스크
하비비 네차르 모스크
안타키아 시 정부 로고
안타키아 시 정부 로고
하타이 광역 시 로고
하타이 광역 시 로고

2. 지리

안타키아는 튀르키예 남부 오론테스강 동안에 위치한 도시로,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 근처에 있다. 지중해에서 약 22km 정도 내륙에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북서쪽에는 누르 산맥(고대 아마누스 산맥), 남쪽에는 켈다 산(Jebel Akra), 동쪽에는 실피우스 산(높이 440m)이 있다. 이 산들은 녹색 대리석의 산지이다. 죽은 바다 지구대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어 지진이 잦다.[34]

도시 북동쪽에 있는 아믹 평야는 오론테스 강, 카라수 강, 아프린 강의 물로 비옥한 토지를 이루고 있다. 1980년 프랑스 회사가 평야의 호수를 배수했으며, 동시에 오론테스 강을 넓히고 도시 중심부를 통과하는 수로를 건설했다. 오론테스 강은 도시 북동쪽 성 베드로 교회 근처의 하지 퀴뤼쉬 하천, 남서쪽 군대 병영 근처 메멕리 다리 아래를 지나는 함셴 하천과 합류한다. 월계수와 개무릇이 자란다.[34]

안타키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농업이 발달하여 밀, 목화, 포도, 올리브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안타키아 현에는 95개의 마을(mahalle)이 있다.[34]

마을 목록


2. 1. 기후

안타키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고 습하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 해안보다는 기온이 다소 낮다. 쾨펜의 기후 분류에 따르면 열대성 지중해 기후(Csa) 또는 트레워사 기후 분류에 따르면 건조한 여름의 습윤 아열대 기후(Cf 또는 습윤 Cs)에 속한다.[47]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후 관측 자료에 따르면, 연평균 기온은 18.6°C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154.2mm이다.[35] 월별 평균 기온, 강수량, 습도 등 자세한 기후 데이터는 아래 표와 같다.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연간
평균 최고 기온 (°C)12.5°C14.9°C19°C23°C27°C29.7°C31.6°C32.5°C31.4°C28.2°C20.3°C13.9°C23.7°C
평균 최저 기온 (°C)5°C5.9°C9.1°C12.6°C16.9°C21.3°C24.4°C25.2°C21.7°C16.2°C9.8°C6.2°C14.5°C
평균 강수량 (mm)198.4mm165.2mm142.9mm101.9mm80.9mm30.9mm16mm17.5mm41.6mm76.6mm99.6mm182mm1154.2mm
평균 상대 습도 (%)74.069.967.467.166.767.369.769.966.064.066.574.868.6
평균 강수일수15.1113.2113.178.985.542.150.60.643.357.28.9313.592.4
평균 일조 시간105.4130.0186.0219.0282.1321.0344.1319.3276.0217.0150.0102.3
평균 일조 시간(하루)3.44.66.07.39.110.711.110.39.27.05.03.37.3



역대 최고 기온은 2023년 8월 13일에 기록된 45.2°C이며, 역대 최저 기온은 1950년 1월 14일에 기록된 -11.8°C이다.[35]

3. 역사

안타키아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그의 후계자 중 한 명인 셀레우코스 1세가 셀레우코스 제국을 세우고 수도로 정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여 로마, 알렉산드레이아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기원전 64년 로마 공화정에 편입된 후 시리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사도 바울로가 이곳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기독교 5대 총대주교구 중 하나가 되었고,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와 같은 교부를 배출했다.

비잔티움 제국이 약해지면서 페르시아 제국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637년 이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쇠퇴했다. 969년 비잔티움 제국이 탈환했으나, 1084년 셀주크 투르크에 점령되었다. 1098년 제1차 십자군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웠지만, 1268년 맘루크 왕조에 멸망하고 다시 이슬람 세력에 편입되었다. 1517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위임통치령 시리아에 편입되었으나, 터키계 주민들의 요구로 1939년 터키에 귀속되었다. 1936년 프랑스가 시리아 독립을 승인하자 터키는 국제 연맹에 이 문제를 제소했고, 1938년 하타이 의회 선거에서 터키계가 과반수를 차지하며 독립 하타이를 선언, 1939년 터키 편입을 결의했다.

2012년 하타이 주 전체가 대도시 자치체로 지정되면서, 안타키아는 하타이 대도시 자치체 소속의 구가 되었다. 일부 지역은 데프네 구로 분할되었다.

2023년 대규모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안타키아 성 바울 교회를 포함한 많은 역사 유적지가 파괴되었다. 현재 재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생 피에르 성당에서 본 도시의 전경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기원전 2000년~1200년 중기 및 후기 청동기 시대 유물


6세기 전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안티오크 잔


지진 전후 안타키아의 위성 사진

3. 1. 고대

기원전 4세기에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에 의해 건설된 헬레니즘 도시인 안티오키아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그의 후계자 중 한 명인 셀레우코스 1세는 셀레우코스 제국을 세우고 안티오키아를 수도로 정했다. 이후 이 도시는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으며, 로마, 알렉산드레이아에 이어 당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기원전 64년 로마에 편입되어 시리아 속주의 주도가 되었고, 제정 시대에도 계속 발전하였다. 특히 초기 기독교 선교와 신학 교육의 중심지로, 사도 바울로는 이곳을 중심으로 기독교 전파에 힘썼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도 중요한 도시로 발전했으며 기독교의 중요한 5개 총대주교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안티오케이아의 기독교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레이아의 기독교 학파와는 달리 인성(人性)을 중요시 여겼다. 동방 교회의 교부인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도 이 도시 출신의 신학자이다.[1]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안티오케이아는 두 번에 걸쳐 페르시아 제국에게 넘어갔다가 637년 이후 아랍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이후부터는 예전의 번영을 잃고 작은 중소도시로 전락했다. 969년 비잔티움 제국 황제 니케포로스 2세가 이 도시를 다시 탈환하여 제국의 변경 요새로 삼았다.[1]

1084년에는 셀주크 투르크에 점령되었다가 1098년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십자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여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웠다. 안티오키아 공국은 두 세기에 걸쳐 라틴계 로마 가톨릭 독립국가로 존재했으나 1268년 맘루크 왕조의 침입으로 무너졌고 안티오크는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안티오키아를 차지한 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1]

3. 2. 중세

637년 비잔티움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 시대에 안티오크는 철교 전투에서 라시둔 칼리파에게 함락되었고, 아랍어로는 ʾAnṭākiya|안타키야ar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마이야 칼리파가 아나톨리아 고원을 침투하지 못하면서 안티오크는 이후 350년 동안 두 적대 제국 간 분쟁의 최전선에 위치하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시는 급격히 쇠퇴했다. 우마이야 지배 이후 안티오크는 압바스 왕조(툴루니드의 짧은 지배 기간을 제외하고)[12], 이크시디드 및 함다니드의 지배를 받았다.

969년, 안티오크는 미카엘 부르체스와 스트라토페다르케스 페트로스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의 니케포로스 2세 황제를 위해 탈환되었다. 곧 이곳은 두크스(dux)의 자리가 되었는데, 두크스는 현지 테마의 군대를 지휘했으며 제국의 동부 국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교였다. 1078년, 아르메니아 영웅 필라레토스 브라카미오스가 권력을 장악하여 1084년 셀주크 투르크에게 도시를 빼앗길 때까지 도시를 지배했다. 룸 술탄국은 십자군이 도착하기 14년 전까지 이 도시를 점령했다.

루이 갈라의 《안티오크 함락》


제1차 십자군 전쟁 중 1097년 10월부터 1098년 6월까지 이어진 안티오크 공성전으로 안티오크는 함락되었다. 십자군은 기독교인과 무슬림을 포함한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13]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함락시킨 지 나흘 만에 포위를 풀려고 온 셀주크 군대를 물리친 후 보에몽 1세가 안티오크의 지배자가 되었다.[13] 안티오크는 약 200년 동안 라틴계 안티오크 공국의 수도로 남았다.

1268년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가 다른 공성전을 통해 안티오크를 함락시켰다. 바이바르스는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14] 안티오크는 전쟁의 피해 외에도 13세기 몽골의 정복 이후 동아시아로 가는 무역로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상업적 중요성을 잃었고, 주요 도시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전의 역할은 대부분 이스켄데룬(알렉산드레타) 항구 도시로 넘어갔다.

3. 3. 오스만 제국 시대

1516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리고 시리아 지방을 정복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안타키아는 알레포 주의 한 지방 도시가 되었고, 북쪽 아나톨리아 지방의 터키인이 많은 지역과의 관계로 인해 터키계 주민들도 유입되었다.[4]

이 도시는 초기에는 다마스쿠스 에얄레트(Damascus Eyalet)의 일부인 안타키아 산자크(Sanjak of Antakya)의 중심지였다. 나중에는 알레포 에얄레트(Aleppo Eyalet)의 안타키아 산자크(Sanjak of Antakya)의 중심지가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알레포 빌라예트(Aleppo Vilayet)의 알레포 산자크(Sanjak of Aleppo)의 카자(kaza) 중심지가 되었다.[4]

1822년 (그리고 1872년에도) 안타키아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 1835년 이집트 장군 이브라힘 파샤가 이 도시에 본부를 설치했을 때, 이 도시에는 약 5,000명의 주민만이 있었다. 지지자들은 유프라테스 계곡 철도(Euphrates Valley Railway) 덕분에 이 도시가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했는데, 이 철도는 수에이다 항구(현재 사만다으(Samandağı))와 연결될 예정이었지만, 이 계획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 도시는 위생 시설이 부족하여 콜레라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4] 나중에 이 도시는 발전하여 오론테스 계곡 하류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과거의 중요성을 빠르게 회복했다.[4]

3. 4. 프랑스 위임통치와 터키 편입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영국군의 침공은 안타키아까지 미치지 못했고,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랍계 주민들의 독립 운동이 있었기에 터키 혁명에 따른 터키군의 탈환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앙카라의 터키 대국민의회는 1921년프랑스와 조약을 맺어 시리아와 함께 안타키아의 영유를 포기했다.[15]

1910년 안타키아


프랑스는 안타키아를 포함한 시리아 북서부 연안 지역을 위임 통치령 시리아에 편입하여 알렉산드레타 현을 설치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가 터키계 주민이었기에 터키에서는 이 지역의 터키 편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고, 프랑스와 터키 간의 외교 문제가 되었다.

터키와 알렉산드레타 현의 터키계 주민들은 알렉산드레타 현과 그 중심 도시인 안타키아를 당시 터키의 역사관에서 원 터키인의 국가로 여겨졌던 히타이트에 빗대어 하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터키계 주민에 의한 정치 조직인 하타이 인민당이 결성되어 터키 편입 운동을 전개했다. 하타이의 터키계 주민들은 터키 공화국의 근대화 개혁에 발맞춰 터키 민족 의식을 함양하고, 터키의 문자 개혁을 받아들여 터키어를 라틴 문자로 쓰게 되었다.

독립 하타이(하타이 공화국)의 국기


1936년, 프랑스는 시리아를 가까운 장래에 독립시키는 것을 승인했지만, 알렉산드레타 현은 터키 정부와 터키계 주민들의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리아 북부에 예정된 시리아 공화국에 편입될 것이 결정되었기에 터키는 국제 연맹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연맹은 하타이 자치주를 설립하고, 터키어를 공용어로 하여 자치 정치를 하는 대신 재정·외교를 시리아가 관리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1938년에 독립을 앞두고 첫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러한 상황 하에서 터키 편입을 계속 요구하는 추진파와 반대파 사이에 유혈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여 귀속 문제는 혼란에 빠졌다.

1938년 8월에 실시된 하타이 의회 선거 결과, 의회에서는 터키계 주민 의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터키계 의원들은 독립 하타이의 수립을 선언하고, 이듬해 1939년 7월, 터키 편입을 결의했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을 눈앞에 둔 프랑스는 터키가 독일·이탈리아의 추축국 진영에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여 양보하고, 하타이의 터키 귀속을 인정했다.

자키 알 아르수지(Zaki al-Arsuzi)가 운영하는 도시의 아랍 민족주의자 신문은 터키 당국에 의해 폐간되었다. 1938년 5월 30일, 터키 군중에 의한 폭동 중에 한 아랍인이 사망했다.[16] 1938년 7월 7일, 터키 군대가 안티오키아에 진입했다.[16] 1939년 터키가 하타이 주를 합병하여 하타이 주(Hatay Province)를 설립하면서 안티오키아의 기독교인과 알라위파 사람들이 프랑스 위임통치령 동쪽으로 대거 이주했다.

2012년에 하타이 주 전역이 대도시 자치체로 지정됨에 따라, 안타키아는 하타이 대도시 자치체 소속의 구가 되었고, 일부 지역은 신설된 데프네구(Defne)로 분할되었다.[45]

3. 5. 현대

하빕-이 네크카르 산과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도시 성벽은 안타키아를 상징하며,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언덕 위에 세워진 웅장한 요새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타키아는 원래 강의 동쪽 기슭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도시는 강 건너 남서쪽 평원에 새로운 주택가가 건설되면서 확장되었고, 4개의 다리가 옛 도시와 새로운 도시를 연결한다. 지난 20년 동안 지어진 많은 건물들은 콘크리트 블록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안타키아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다. 옛 도시의 좁은 거리는 교통 체증이 심할 수 있다.

안타키아는 광대한 지역의 중심지로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 주도이다. 아믹 호수의 배수 및 토지 개발로 인해 이 지역의 경제가 부유하고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 도시는 많은 레스토랑, 영화관 및 기타 편의 시설을 갖춘 활기찬 쇼핑 및 비즈니스 중심지이다. 이 지역은 주지사 건물 맞은편의 큰 공원과 쿠르툴루쉬 카데시(Kurtuluş Caddesı)라는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하르비예 지역의 차밭, 카페 및 레스토랑은 특히 다양한 메제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인기 있는 명소이다. 오론테스 강은 여름에 수위가 낮을 때 악취가 날 수 있다. 여름철 무더위 속에서 사람들은 공식적인 야간 유흥보다는 밤늦도록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다.

안타키아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사도 교회의 안뜰


시리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안타키아는 터키의 다른 많은 도시들보다 더 국제적인 도시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대규모 이민이 없었기 때문에 아다나메르신과 같은 지중해 연안 도시들처럼 인구가 급증하지 않았다. 터키어와 아랍어는 여전히 안타키아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아랍어 서면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양한 종교와 종파의 혼합된 공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한다. 거의 모든 주민이 무슬림이지만, 상당수가 알레비 및 알라위파 전통을 따르며, '하르비예'에는 성인 히즈르를 기리는 곳이 있다. 수니파알라위파 모두의 수많은 성인 무덤이 도시 전역에 있다. 기독교 공동체 몇몇이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큰 교회는 휘리예트 거리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이다.[23] 오랜 역사의 영적 및 종교 운동으로 안타키아는 기독교인들의 순례지이다. 2014년 안타키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14명으로 줄었다.[24][25] 2023년, 도시의 마지막 유대인이 파괴적인 지진 이후 도시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26]

터키에서는 주술, 점술, 기적, 영혼의 장소로 명성이 있다.

지역 공예품으로는 월계수 기름으로 향을 낸 비누가 있다.

2020년에 문을 연 안타키아 박물관 호텔. 9,000 평방피트 크기의 로마 모자이크가 호텔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2023년 2월 6일, 안타키아는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27] 도시의 많은 지역이 완전히 파괴되었다.[33] 2월 7일 기준으로 BBC는 안타키아 시내와 크르크한(Kırıkhan), 이스켄데룬(İskenderun) 지역에서 최소 1,200채의 건물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관계자들은 제브라일(Cebrail) 지역의 "거의 모든" 주택이 붕괴되었다고 말했다.[28] 성 바울 교회를 포함한[30] 교회와 모스크를 포함한 많은 역사 유적지가 파괴되었고,[29] 역사적인 안타키아 시나고그와 하타이 주 의회 건물도 파괴되었다.[31][32]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피해 지역의 즉각적인 재건을 약속했다. 2023년 9월 안타키아 방문 당시, ''뉴욕 타임스''는 여전히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있고 대규모 재건 공사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많은 피해 건물들이 남아 있지만 방치된 상태이며, 생존자들은 여전히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타이 시장 뤼프튀 사바스(Lutfu Savas)는 철거 예정인 약 38,000채의 건물 중 절반만이 철거되었다고 말했다. 굴데렌(Gülderen)에서는 122개 블록에 2,300개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33]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영국군의 침공은 안타키아까지 미치지 못했고,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랍계 주민들의 독립 운동이 있었기에 터키 혁명에 따른 터키군의 탈환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앙카라의 터키 대국민의회는 1921년프랑스와 조약을 맺어 시리아와 함께 안타키아의 영유를 포기했다.

프랑스는 안타키아를 포함한 시리아 북서부 연안 지역을 위임 통치령 시리아에 편입하여 알렉산드레타 현을 설치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가 터키계 주민이었기에 터키에서는 이 지역의 터키 편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고, 프랑스와 터키 간의 외교 문제가 되었다.

이윽고 터키와 알렉산드레타 현의 터키계 주민들은 알렉산드레타 현과 그 중심 도시인 안타키아를 당시 터키의 역사관에서 원 터키인의 국가로 여겨졌던 히타이트에 빗대어 하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터키계 주민에 의한 정치 조직인 하타이 인민당이 결성되어 터키 편입 운동을 전개했다. 하타이의 터키계 주민들은 터키 공화국의 근대화 개혁에 발맞춰 터키 민족 의식을 함양하고, 터키의 문자 개혁을 받아들여 터키어를 라틴 문자로 쓰게 되었다.

1936년, 프랑스는 시리아를 가까운 장래에 독립시키는 것을 승인했지만, 알렉산드레타 현은 터키 정부와 터키계 주민들의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리아 북부에 예정된 시리아 공화국에 편입될 것이 결정되었기에 터키는 국제 연맹에 이 문제를 제소했다. 연맹은 하타이 자치주를 설립하고, 터키어를 공용어로 하여 자치 정치를 하는 대신 재정·외교를 시리아가 관리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1938년에 독립을 앞두고 첫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이러한 상황 하에서 터키 편입을 계속 요구하는 추진파와 반대파 사이에 유혈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여 귀속 문제는 혼란에 빠졌다.

1938년 8월에 실시된 하타이 의회 선거 결과, 의회에서는 터키계 주민 의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터키계 의원들은 독립 하타이의 수립을 선언하고, 이듬해 1939년 7월, 터키 편입을 결의했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을 눈앞에 둔 프랑스는 터키가 독일·이탈리아의 추축국 진영에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여 양보하고, 하타이의 터키 귀속을 인정했다.

2012년에 하타이 주 전역이 대도시 자치체로 지정됨에 따라, 안타키아는 하타이 대도시 자치체 소속의 구가 되었고, 일부 지역은 신설된 데프네구(Defne)로 분할되었다.[45]

4. 인구

1935년 터키인과 아랍무슬림이 안타키아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했다.[20][21]

1935년 인구 조사
종교인구 (비율)
수니파 무슬림19,720 (58%)[21]
알라위파8,670 (25.5%)[21]
기독교4,930 (14.5%)[21]
기타680 (2%)
총계34,000 (100%)[21]



안타키아는 2,200년 이상 존속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 중 하나의 고향이었다.[22]

4. 1. 언어

1798년 안타키아를 방문한 영국 여행자는 터키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반대로 당시 알레포에서는 아랍어가 주로 사용되었다고 보고했다.[19] 대부분의 알라위파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어를 제2언어로 사용했다.[20]

4. 2. 종교

사도행전 11장 26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나바가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다가 함께 일 년 동안 교회에 모여 많은 사람을 가르쳤는데,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

1935년 당시, 터키인과 아랍무슬림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했다.[20][21]

1935년 인구 조사
종교인구 (비율)
수니파 무슬림19,720 (58%)[21]
알라위파8,670 (25.5%)[21]
기독교4,930 (14.5%)[21]
기타680 (2%)
총계34,000 (100%)[21]



안타키아는 2,200년 이상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체 중 하나의 고향이었다.[22]

5. 문화

안타키아 중심 시장


안타키아는 하빕-이 네크카르 산과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도시 성벽으로 상징되는 웅장한 요새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오론테스 강 동쪽 기슭에 중심을 두고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강 건너 남서쪽 평원에 새로운 주택가가 건설되면서 확장되었고, 4개의 다리가 옛 도시와 새로운 도시를 연결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지어진 많은 건물들은 콘크리트 블록 스타일로 지어져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으며, 옛 도시의 좁은 거리는 교통 체증이 심할 수 있다.

안타키아는 아믹 호수 배수 및 토지 개발로 경제가 부유하고 생산성이 높아진 광대한 지역의 중심지로서, 활기찬 쇼핑 및 비즈니스 중심지이다. 주지사 건물 맞은편의 큰 공원과 쿠르툴루쉬 카데시(Kurtuluş Caddesı)라는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하르비예 지역의 차밭, 카페 및 레스토랑, 특히 다양한 메제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은 인기 있는 명소이다. 오론테스 강은 여름에 수위가 낮을 때 악취가 날 수 있으며, 무더위 속에서 사람들은 밤늦도록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다.

시리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안타키아는 터키의 다른 도시들보다 국제적인 도시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온 사람들의 대규모 이민이 없어 아다나메르신과 같은 지중해 연안 도시들처럼 인구가 급증하지 않았다. 터키어와 아랍어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지만, 아랍어 서면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양한 종교와 종파의 혼합된 공동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수니파알라위파 모두의 수많은 성인 무덤이 도시 전역에 있다. 기독교 공동체 중 가장 큰 교회는 휘리예트 거리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이다.[23] 안타키아는 오랜 역사의 영적 및 종교 운동으로 기독교인들의 순례지이며, 2014년 안타키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14명으로 줄었다.[24][25] 2023년, 도시의 마지막 유대인이 파괴적인 지진 이후 도시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26]

지역 공예품으로는 월계수 기름으로 향을 낸 비누가 있다.

안타키아는 터키 요리보다는 레반트 요리로 여겨질 만큼 특색있는 요리를 가지고 있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주로 사용하며,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맵고 매운 음식과 터키 커피가 특징이다.

안타키아의 주요 요리
요리 종류설명
케밥얇게 구운 빵에 향신료와 양파를 넣은 고기를 싸서 먹는 터키식 케밥, 요구르트와 함께 먹는 알리 나직 케밥
오룩키베와 비슷하며, 다진 고기를 채운 불구르 밀로 만든 튀긴 경단 또는 원통형으로 구운 것
사치 오루구오룩과 재료는 같지만 원형
카이타즈 보레기밀가루, 소고기, 토마토, 양파로 만든 패티
카트크르 에크멕밀가루, 전통 고추 페이스트, 참깨 등의 향신료, 죄켈렉 또는 치즈로 만든 피자와 유사한 음식
석류 시럽 (데베스 라만)샐러드 드레싱으로 사용되는 전통적인 레반트 아랍식 드레싱
세미르섹매운 고추, 다진 고기 또는 시금치를 채운 얇은 빵
매운 치킨하르비예 지역 특산품
자타르 (자터)향신료가 들어간 타임, 오레가노, 참깨를 올리브 오일에 섞어 얇은 빵에 펴 바른 것
신선한 병아리콩간식으로 섭취
히리세삶아서 으깬 밀가루
아슈르다진 고기와 으깬 밀, 병아리콩, 커민, 양파, 고추, 호두를 섞은 요리


  • '''메제'''
  • 후무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소스
  • 으깬 잠두
  • 파틀르잔 살라타스 (바바가누시): 구운 가지를 썰어 고추, 토마토와 섞은 후 석류 시럽을 곁들임
  • 타라투르 (타라토르): 호두, 타히니, 요구르트, 마늘로 만든 소스
  • 쉬즈메 요구르트: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분을 제거한 요구르트
  • 에즈메 비베르: 고추와 호두로 만든 것
  • 쉬르케: 매운 올리브 오일에 담근 말린 치즈
  • 죄켈렉: 매운 햇볕에 말린 치즈
  • 장어: 오론테스 강에서 잡은 장어를 향신료를 넣고 올리브 오일에 튀긴 것

  • 디저트
  • 퀴네페: 뜨겁게 구운 치즈와 카다이프를 사용한 디저트로, 안타키아는 터키의 퀴네페 중심지
  • 뮤셰벡: 튀긴 페이스트리 고리
  • 페이닐리 으르믹 헬바스: 세몰리나, 설탕, 퀴네페용 전통 치즈로 만든 디저트

5. 1. 주요 명소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안타키아에는 많은 건축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 도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재개발되면서 많은 건물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방문객들이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로마 모자이크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에로스가 두 명의 프슈케의 날개 위에 서서 채찍질하는 모자이크
  • 하타이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 사도 베드로 교회: 바위 속에 새겨진 피난처와 터널 네트워크를 지닌 곳으로, 기독교 순례지입니다. 오론테스 계곡을 따라 여러 곳에 바위 절벽에 새겨진 무덤들도 있습니다.
  • 옛 시장 지역: 전통 상점들이 많이 있으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탐험할 수 있습니다. "우주 찰쉬 카데시(Uzun Çarşı Caddesi)" 표지판을 보면 바로 시내 중심부에 있습니다.
  • 시내 중심부의 허름한 "귄뒤즈 극장(Gündüz cinema)": 한때 하타이 공화국의 의회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 하르비예/다프네 산책로의 폭포
  • 오스만 제국 시대의 하빕 이 네자르 모스크: 안타키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자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 중 하나입니다.
  • --
  • --
  • 좁은 골목길과 안타키아의 옛집들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지역. 사실상 구시가지입니다.
  •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터널-사만다으(Samandagı): 안타키아 중심부에서 약 35km 떨어져 있습니다.
  • 베시클리 동굴과 무덤(셀레우케이아 피에리아 고대 도시)
  • 성 시몬 수도원
  • 바그라스(Bagras, Bakras) 성: 고대에 건설되어 후대에 여러 차례 복원된 (특히 십자군 시대에 템플 기사단의 요새였음) 성으로, 이스켄데룬(알렉산드레타)에서 안타키아(안티오크)까지 27km 산악 도로의 감시탑 역할을 했습니다.
  • 하빕 이 네자르 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시의 파노라마 전망
  • 성 바울 정교회
  • 성 바울 정교회
  • 안타키아 박물관 호텔


안타키아는 풍부한 건축 유산을 바탕으로 노리치(Norwich)에 본부를 둔 유럽 역사 도시 및 지역 협회(European Association of Historic Towns and Regions) 회원입니다.[38]

5. 2. 요리

안타키아의 요리는 터키 요리보다는 레반트 요리로 여겨질 만큼 특색이 있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주로 사용하며,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맵고 매운 음식과 터키 커피가 특징이다.

안타키아의 주요 요리
요리 종류설명
케밥얇게 구운 빵에 향신료와 양파를 넣은 고기를 싸서 먹는 터키식 케밥, 요구르트와 함께 먹는 알리 나직 케밥
오룩키베와 비슷하며, 다진 고기를 채운 불구르 밀로 만든 튀긴 경단 또는 원통형으로 구운 것
사치 오루구오룩과 재료는 같지만 원형
카이타즈 보레기밀가루, 소고기, 토마토, 양파로 만든 패티
카트크르 에크멕밀가루, 전통 고추 페이스트, 참깨 등의 향신료, 죄켈렉 또는 치즈로 만든 피자와 유사한 음식
석류 시럽 (데베스 라만)샐러드 드레싱으로 사용되는 전통적인 레반트 아랍식 드레싱
세미르섹매운 고추, 다진 고기 또는 시금치를 채운 얇은 빵
매운 치킨하르비예 지역 특산품
자타르 (자터)향신료가 들어간 타임, 오레가노, 참깨를 올리브 오일에 섞어 얇은 빵에 펴 바른 것
신선한 병아리콩간식으로 섭취
히리세삶아서 으깬 밀가루
아슈르다진 고기와 으깬 밀, 병아리콩, 커민, 양파, 고추, 호두를 섞은 요리


  • '''메제'''
  • 후무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소스
  • 으깬 잠두
  • 파틀르잔 살라타스 (바바가누시): 구운 가지를 썰어 고추, 토마토와 섞은 후 석류 시럽을 곁들임
  • 타라투르 (타라토르): 호두, 타히니, 요구르트, 마늘로 만든 소스
  • 쉬즈메 요구르트: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분을 제거한 요구르트
  • 에즈메 비베르: 고추와 호두로 만든 것
  • 쉬르케: 매운 올리브 오일에 담근 말린 치즈
  • 죄켈렉: 매운 햇볕에 말린 치즈
  • 장어: 오론테스 강에서 잡은 장어를 향신료를 넣고 올리브 오일에 튀긴 것

  • 디저트
  • 퀴네페: 뜨겁게 구운 치즈와 카다이프를 사용한 디저트로, 안타키아는 터키의 퀴네페 중심지
  • 뮤셰벡: 튀긴 페이스트리 고리
  • 페이닐리 으르믹 헬바스: 세몰리나, 설탕, 퀴네페용 전통 치즈로 만든 디저트

참조

[1] 서적 Antakya ağzı: dilbilgisi ve sözlük Hatay Folklor Araştırmaları Derneği 2004
[2] 웹사이트 Büyükşehir İlçe Belediyesi https://www.e-icisle[...] 2023-09-19
[3] 웹사이트 İl ve İlçe Yüz ölçümleri https://www.harita.g[...] General Directorate of Mapping 2023-09-19
[4] 웹사이트 Address-based population registration system (ADNKS) results dated 31 December 2022, Favorite Reports https://biruni.tuik.[...] TÜİK 2023-09-19
[5] 간행물 Antioch https://archive.org/[...]
[6] 웹사이트 Acts 11:26 - The Church at Antioch http://biblehub.com/[...]
[7] 서적 The Path to Salvation: Religious Violence from the Crusades to Jihad https://books.google[...] 2014-01-01
[8] 서적 The Eastern Christian Churches: A Brief Survey https://books.google[...]
[9] 서적 Invisible Weapons: Liturgy and the Making of Crusade Ideology https://books.google[...] 2017-01-17
[10] 웹사이트 'Antakya is finished': Thousands left homeless in ruined city https://www.euronews[...] 2023-02-10
[11] 뉴스 Lütfü Savaş: Hatay'da 20 bin kişi öldü, 24 bin yaralı var https://artigercek.c[...] 2023-02-18
[12] 웹사이트 Ahemed b. Tolun https://islamansiklo[...]
[13] 서적 Aleppo, A History Routledge
[14] 웹사이트 History of Armenia by Vahan Kurkjian – Chapter 30 https://penelope.uch[...]
[15] 서적 Fezzes in the River: Identity Politics and European Diplomacy in the Middle East on the Eve of World War II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1-03-16
[16] 서적 Antioch: A History Routledge
[17] 웹사이트 Law No. 6360 https://www.resmigaz[...] 2012-12-06
[18] 웹사이트 İl İdaresi ve Mülki Bölümler Şube Müdürlüğü İstatistikleri - İl ve İlçe Kuruluş Tarihleri https://www.icisleri[...]
[19] 서적 Travels in Africa, Egypt, and Syria, from the Year 1792 to 1798 https://books.google[...]
[20] 서적 Cities of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A Historical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ABC-CLIO 2007
[21] 서적 Decentering Social Theory https://books.google[...] Emerald Group Publishing 2013
[22] 웹사이트 Last Jew Of Antakya, A 2,300-Year-Old Jewish Community, Puts On Tefillin And Says 'I'm Leaving' https://vinnews.com/[...] Vos Iz Neias? 2023-02-20
[23] 웹사이트 Christian Arab Congregation In Antakya, Turkey https://edgeofhumani[...] Edge of Humanity Magazine 2017-02-07
[24] 웹사이트 Turkey's Jewish community longs for the past http://www.aljazeera[...] 2014-05-14
[25] 서적 Avotaynu: the international review of Jewish genealogy, Volume 14 https://books.google[...]
[26] 뉴스 The last Jew of Antakya https://www.israelna[...] 2023-02-20
[27] 뉴스 Turkey earthquake: BBC reports from Antakya, a city reduced to rubble https://www.bbc.com/[...]
[28] 뉴스 Hatay'da son durum: '2 bine yakın yıkılmış bina var, kayıplarımız çok fazla' https://www.bbc.com/[...] 2023-02-06
[29] 웹사이트 ASIA/TURKEY - Antioch, the earthquake destroys mosques and churches. Catholic parish welcomes displaced people http://www.fides.org[...]
[30] 웹사이트 The Historic Antakya Greek Orthodox Church In Hatay Damaged By The Earthquake https://greekcitytim[...] 2023-02-07
[31] 웹사이트 Turkey earthquake: 2500-year-old Jewish presence in Antakya may come to an end http://www.middleeas[...]
[32] 웹사이트 Hatay'daki yıkım SÖZCÜ muhabirinin objektifine böyle yansıdı https://www.sozcu.co[...] 2023-02-07
[33] 뉴스 An Ancient City, Now in Ruins, Struggles to Keep Its Soul https://www.nytimes.[...] 2023-10-01
[34] 웹사이트 Mahalle https://www.e-icisle[...] 2023-09-19
[35] 웹사이트 Resmi İstatistikler: İllerimize Ait Mevism Normalleri (1991–2020) https://www.mgm.gov.[...] Turkish State Meteorological Service 2021-06-28
[36] 웹사이트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Climate Normals for 1991-2020 — Antakya https://www.ncei.no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2024-07-17
[37] 웹사이트 About Mustafa Kemal University (MKU) http://www.mku.edu.t[...] MKU 2011-03-26
[38] 웹사이트 Association of Historic Towns of Turkey https://web.archive.[...]
[39] 서적 Antakya ağzı: dilbilgisi ve sözlük Hatay Folklor Araştırmaları Derneği 2004
[40] 텍스트
[41] 웹사이트 Acts of the Apostles 11:26 http://biblehub.com/[...]
[42] 서적 The Path to Salvation: Religious Violence from the Crusades to Jihad https://books.google[...] 2014-01-01
[43] 서적 The Eastern Christian Churches: A Brief Survey https://books.google[...]
[44] 서적 Invisible Weapons: Liturgy and the Making of Crusade Ideology https://books.google[...] 2017-01-17
[45] 웹사이트 Başbakanlık Mevzuatı Geliştirme ve Yayın Genel Müdürlüğü https://www.resmigaz[...] 2012-12-11
[46] 웹사이트 Weatherbase: Weather for Antakya, Turkey http://www.weatherba[...] Weatherbase 2011-11-22
[47] 웹인용 Weatherbase: Weather for Antakya, Turkey http://www.weatherba[...] Weatherbase 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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