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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앤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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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호텔앤리조트는 1914년 일제강점기에 개업한 조선호텔을 모체로 하는 호텔 및 리조트 운영 기업이다.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조선호텔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1970년 재건축을 거쳐 현재는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인수하여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제휴,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며, 독자적인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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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앤리조트 - [회사]에 관한 문서
웨스틴 조선 호텔 서울
현재 웨스틴 조선 호텔 서울
호텔 정보
한국어 명칭웨스틴 조선 호텔
한자 명칭웨스틴朝鮮호텔
로마자 표기Weseutin Joseon Hotel
Wesŭt'in Chosŏn Hot'el
영어 명칭The Westin Josun Hotel
주식회사 조선호텔앤리조트
형태주식회사
조선호텔앤리조트 로고
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6 (소공동)
대표전상진 (대표이사 겸 레저사업본부장)
국가대한민국
자본금168,526,330,000원 (2020.12)
매출액148,989,504,453원 (2020.12)
영업이익-70,644,409,164원 (2020)
순이익-144,235,984,062원 (2020)
자산 총액1,519,967,246,693원 (2020.12)
주주주식회사 이마트: 99.95%
기타개인주주: 0.05%
종업원2,013명 (2021.03)
모기업주식회사 이마트
영어 명칭Josun Hotel & Resort

2. 역사

1910년 한국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서울에 귀빈용 숙박 시설 건설을 추진했다. 조선총독부 철도서울역 인근, 대한제국 황제가 제례를 올리던 환구단 터에 1914년 10월 10일 한반도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이 문을 열었다.[1][2] 총 공사비는 842800JPY이었다.[1] 프로이센 출신 유대인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가 설계하고, 시미즈구미가 시공했다.[3]

조선호텔에는 한반도 최초로 오티스 엘리베이터 컴퍼니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제공하기도 했다. 도쿄의 제국 호텔처럼 한반도의 영빈관 역할도 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가 해체되고 미국 육군이 호텔에 군정청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독립 지도자 이승만의 집무실도 이곳에 마련되었다.

2. 1. 일제강점기 (설립)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게 된 일본 조선총독부는 수도 경성부(현재의 서울)에 일본이나 다른 나라 귀빈을 맞을 수 있는 숙박시설을 만들고자 했다. 조선총독부 철도의 부속기관으로 조선 국왕이 제례를 행하던 환구단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에 한반도에서 세 번째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4]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 중간 지점으로, 맞은 편에는 경성부청사가 있었으며, 조선은행과도 가까워 편리한 위치였다.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하고, 일본의 건축회사 시미즈구미가 건축을 하였다. 대지 6750평, 건평 583평이며 방 수는 69개, 수용인원 108명의 호텔이었다. 호텔에는 일본에 의해 많은 서양 문물이 들어왔고, 도쿄데이코쿠 호텔 등과 같이 한반도의 영빈관 기능도 겸비했다.

1937년 중일 전쟁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호텔은 정상 영업을 지속했으며, 서울을 방문한 일본을 비롯한 각국 요인들이 이용했다.

2. 2. 광복과 한국전쟁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호텔의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조선총독부가 해체되고, 호텔 운영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넘어왔다.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 남부를 맡은 미군은 이 호텔에 군정청 사령부를 두었고, 귀국한 이승만 등의 집무실도 두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로 자리잡았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탈일본화 정책에 의해 호텔의 명칭이 일본어식인 “조센호테루”에서 한국어식인 “조선호텔”로 변경되었지만, 대부분의 명사가 '조선'에서 '대한(한국)'으로 개칭되는 중에도 이 호텔은 조선일보와 같이 '조선호텔'이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서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호텔도 접수되었으나,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한국전쟁 때 장병의 휴양소와 미8군 장교숙소로 쓰이다 1961년 한국정부에 반환된다.

2. 3. 현대 (발전과 확장)

1970년 호텔은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건물을 헐고 20층 규모의 현대식 호텔로 재건축되었으며, 개업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여했다.[5] 1978년 부산 해운대에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을 개업했다. 1981년에는 미국의 웨스틴 호텔즈(현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의 일원)와 제휴하여 '웨스틴 조선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5년 신세계그룹이 웨스틴 호텔즈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하여 현재는 웨스틴이라는 이름만 사용하고 있다. 현재 웨스틴은 쉐라톤 등과 함께 세계적인 호텔 체인 그룹인 메리어트 그룹 산하의 브랜드이다.[6]

3. 운영 현황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브랜드와 신세계조선호텔 독자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1981년 조선호텔은 미국의 웨스틴 호텔즈(현재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일원)와 제휴하여,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로 명칭을 변경했다.[1]

호텔명위치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역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 명동서울특별시 중구 저동2가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레스케이프 호텔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그랜드 조선 부산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그래비티 서울 판교 오토그래프 컬렉션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그랜드 조선 제주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


3. 1.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브랜드

호텔명위치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역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조선 서울 명동서울특별시 중구 저동2가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1981년 조선호텔은 미국의 웨스틴 호텔즈(현재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일원)와 제휴하여,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로 명칭을 변경했다.[1]

3. 2. 신세계조선호텔 독자 브랜드

호텔명위치
레스케이프 호텔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그랜드 조선 부산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그래비티 서울 판교 오토그래프 컬렉션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그랜드 조선 제주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


4. 건축 및 시설

1914년 10월 10일 조선호텔은 일본 조선총독부경성부(현재의 서울)에 귀빈용 숙박시설을 정비하기 위해 건설한 한국에서 세 번째 서양식 호텔이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총독부철도의 부속기관으로 조선 국왕이 제례를 행하던 환구단의 일부를 헐고 호텔을 지었다.[4]

호텔은 유겐트슈틸 양식에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지상 4층, 지하 1층의 벽돌 건물로, 객실 수는 69개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총 공사비 842800JPY을 들여 건설했으며[1], 설계는 게오르그 데 라란데가, 시공은 시미즈구미가 맡았다.[3] 내부에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지는 6750평, 건평은 583평, 수용인원은 108명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나 일본식을 떠나 변화있는 공간 구성과 재료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

이후 조선호텔은 도쿄데이코쿠 호텔 등과 같이 한반도의 영빈관 기능도 겸비하게 되었다.

4. 1. 초기 건축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게 된 일본조선총독부경성부(현재의 서울)에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오는 귀빈을 맞을 숙박시설을 정비할 계획을 세웠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총독부철도의 부속기관으로 조선 국왕이 제례를 행하던 환구단의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에 인천의 대불(1888), 손탁호텔(1902) 다음으로 한반도에서 세 번째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의 중간 지점이었고, 맞은 편에는 경성부청사가 있었으며, 조선은행과도 300m 거리로 가까워 편리한 위치였다.[4]

1910년부터 진행된 한국 병합으로 조선반도를 직접 통치한 일본 제국조선총독부는 수도인 경성부 (현재의 서울)에 일본 및 여러 외국에서 온 귀빈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계획은 본격화되어, 조선총독부 철도서울역 (경성역)에서 가까운 중심부 언덕 위에 위치하며, 과거 대한제국황제가 제례를 거행했던 환구단이며, 임진왜란 당시 우키타 히데이에의 진지이기도 했던 지역에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환구단의 일부를 철거하여 건설을 진행했다.[1][2]

유겐트슈틸 양식에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지상 4층, 지하 1층의 벽돌 건물 호텔로 객실 수는 72개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총 공사비 842800JPY을 들여 건설했으며[1], 설계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프로이센 출신 유대인 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가 맡았고, 시공은 시미즈구미가 맡았다.[3]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한 호텔로, 내부에 오티스가 제작한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시미즈구미가 건축을 시행하였다. 대지 6750평, 건평 583평이며 방 수는 69개, 수용인원은 108명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나 일본식을 떠나 변화있는 공간 구성과 재료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

호텔에는 일본에 의해 많은 서양 문물이 들어왔고, 그 후에 도쿄데이코쿠 호텔 등과 같이 한반도의 영빈관 기능도 겸비한 호텔이 되었다.

5. 사회문화적 의의

조선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소이자, 한국 관광산업의 선구자로서 사회문화적 의의를 지닌다.

1914년 10월 10일 개업한 조선호텔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주요 시설로 활용되었으며,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미군 군정청 사령부와 이승만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장병 휴양소와 미8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970년 재건축된 조선호텔은 1981년 미국 웨스틴 호텔즈(현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의 일원)와 제휴하여 '웨스틴 조선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5년 신세계그룹이 웨스틴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하면서 현재는 웨스틴이라는 이름만 사용하고 있으며, 메리어트 그룹 산하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5. 1.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장소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일본조선총독부를 통해 한반도를 통치하면서, 경성부(현재의 서울)에 귀빈용 숙박시설로 환구단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4]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 중간에 위치했고, 맞은편에는 경성부청사가, 조선은행과는 300m 거리에 있었다.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하고, 일본 시미즈구미가 시공했으며,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가 해체되고 호텔 운영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넘어왔다. 미군은 이 호텔에 군정청 사령부를 설치했고, 귀국한 이승만의 집무실도 마련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선호텔은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탈일본화 정책에 따라 호텔 명칭은 “조센호테루”에서 “조선호텔”로 변경되었지만, 조선일보와 함께 '조선호텔'이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장병 휴양소와 미8군 장교숙소로 쓰이다가 1961년 한국정부에 반환되었다.

1970년에는 일제 강점기 건물을 헐고 20층 규모의 호텔로 재건축되었으며, 개업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다.

5. 2. 한국 관광산업의 선구자

왼쪽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게 된 일본조선총독부경성부(현재의 서울)에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오는 귀빈을 맞을 수 있는 숙박시설을 정비할 계획을 세웠다. 조선총독부철도의 부속기관으로 조선 국왕이 제례를 행하던 환구단의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에 인천의 대불(1888), 손탁호텔(1902) 다음으로 한반도에서 세 번째 서양식 호텔인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4]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의 중간 지점이었고, 맞은 편에는 경성부청사가 있었으며, 조선은행과도 300m 거리로 가까워 편리한 위치였다. 일본에 거주하던 독일 건축가 게오르크 데 랄란데가 설계하였고, 내부에 오티스가 제작한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4] 일본의 건축회사 시미즈구미가 건축을 시행하였다. 대지 6750평, 건평 583평이며 방 수는 69개, 수용인원은 108명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일본식을 벗어나 변화있는 공간 구성과 재료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 호텔에는 일본에 의해 많은 서양 문물이 들어왔고, 그 후 도쿄데이코쿠 호텔 등과 같이 한반도의 영빈관 기능도 겸비한 호텔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호텔의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조선총독부가 해체되고, 호텔의 운영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넘어왔다.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 남부를 맡은 미군은 이 호텔에 군정청 사령부를 뒀고, 귀국한 이승만 등의 집무실도 두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로 자리잡았다. 이후 이승만 정권의 탈일본화 정책에 의해 호텔의 명칭이 일본어식인 “조센호테루”에서 한국어식인 “조선호텔”로 변경됐지만, 대부분의 명사가 '조선'에서 '대한(한국)'으로 바뀐 것과 달리 이 호텔은 조선일보와 같이 '조선호텔'이라는 명칭으로 남았다. 한국전쟁 때 장병의 휴양소와 미8군 장교숙소로 쓰이다 1961년 한국정부에 반환된다.

조선호텔은 1962년 이전부터 민영화가 거론되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5] 1982년 가을에 삼성그룹에서 인수하였다.[6]

1970년에 호텔은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건물을 헐고 20층 규모의 호텔로 다시 지었고, 개업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여했다. 1981년미국의 웨스틴 호텔즈(현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의 일원)와 제휴하여 '웨스틴 조선호텔' 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8년에 부산 해운대에 개업한 고급 호텔과 병합하여, 부산의 호텔은 '웨스틴 조선호텔 부산', 서울에 있던 호텔을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로 개칭해서 영업했다. 1995년 신세계그룹이 웨스틴의 지분을 완전히 인수하여 현재는 웨스틴이라는 이름만 사용하고 있다. 현재 웨스틴은 쉐라톤 등과 함께 세계적인 호텔 체인 그룹인 메리어트 그룹 산하의 브랜드이다.

6. 논란 및 비판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조선총독부는 경성부(현재의 서울특별시)에 귀빈용 숙박시설을 정비하고자 환구단 부지에 1914년 10월 10일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4]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서울특별시청, 조선은행과도 가까웠다.

6. 1. 일제 잔재 논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로 한반도를 직접 통치하게 된 일본 조선총독부경성부(현재의 서울)에 귀빈용 숙박시설을 정비하고자 했다. 이에 조선총독부 철도의 부속기관으로 환구단 일부를 헐고 1914년 10월 10일 '''조선호텔'''(朝鮮ホテル|조센호테루일본어)을 개업했다.[4] 조선호텔은 조선총독부경성역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경성부청사, 조선은행과도 가까워 편리했다.

이러한 조선호텔의 설립 배경과 초기 운영 주체가 조선총독부였던 점, 그리고 환구단 부지에 건립된 점 등은 민족 정체성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참조

[1] 서적 朝鮮の都市: 京城と仁川 https://books.google[...] 大陸情報社 1931
[2] 서적 ポケット図解韓国鉄道の今と昔をとことん楽しむ本 https://books.google[...] 秀和システム 2012
[3] 서적 ホテルと日本近代 https://books.google[...] 青弓社 2003
[4] 서적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효형출판 2009
[5] 뉴스 朝鮮」「半島」「호텔」年內로 民營 경향신문 1962-04-29
[6] 뉴스 "不況을 모르는 安全투자" 高層빌딩 新築붐 동아일보 198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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