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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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화민국 해군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 해군을 모체로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군벌 간 내전과 중일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국민당 정부의 북벌 이후 전력을 강화했다.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하면서 해군은 난민 수송, 섬 순찰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미국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아 전력을 유지했다. 현재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대만 봉쇄 및 상륙 침공에 대비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며, 잠수함, 미사일, 항공 전력을 포함한 현대적인 장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화민국 해군은 해군사령부의 지휘를 받으며, 주요 함대, 해군 육전대, 교육 훈련 기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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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해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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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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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 (중화민국 해군) |
약칭 | ROCN |
창설일 | 1924년 |
국가 | 중화민국 |
소속 | 해군 |
역할 | 해상 전투 |
규모 | 40,000명 (2023년) |
예비군 | 67,000명 (2023년) |
함정 | 167척 (2023년) |
항공기 | 24기 (2023년) |
지휘 체계 | 중화민국 국군 |
표어 | 충의 |
색상 | 흰색 파란색 빨간색 |
군가 | (신해군) |
함대 장비 | 4척 구축함 22척 프리깃함 31척 미사일 고속정 5척 잠수함 12척 초계함 |
전투 | 북벌 중일 전쟁 국공 내전 |
기념일 | 해당 없음 |
훈장 | 해당 없음 |
전투 훈장 | 해당 없음 |
해체 | 해당 없음 |
웹사이트 | 중화민국 해군 공식 웹사이트 |
지휘부 | |
해군 사령관 | 탕화 해군 대장 |
해군 부사령관 | 아오 이즈 해군 중장 마 췬차오 해병대 중장 |
주임원사 | 최선임 부사관 웡린쥔 |
참모장 | 치우 쥔롱 해군 중장 |
부참모장 | 장 셴루이 해군 소장 마 췬차오 해병대 소장 |
상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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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 해군이 창설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척의 청나라 군함이 혁명군을 지지하기 위해 전향했다. 황중영은 중화민국 최초의 해군부 장관이 되었다. 공화국 초창기 10년 동안 여러 해군 확장 계획이 제안되었지만, 자금 부족,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그리고 중국의 군벌 시대의 혼란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했다. 1870년대부터 1900년대 사이에 청나라가 획득한 순양함들은 1930년대까지 중국 함대의 주력 함선으로 남아 있었다. 이 시기 중화민국 해군은 중앙, 동북, 광둥 함대 등 3개 함대로 구성되었으며, 국내 군벌주의로 인해 지휘 체계가 분열되었다. 쑨원이 1917년 광저우에 정부를 수립했을 때, 해군 제독 정벽광과 린바오이가 그를 지지했고,[13] 장제스가 1926년 북벌을 시작했을 때 양수장이 베이양 함대의 일부를 이끌고 그의 부대에 투항했다.
북벌 성공 이후 장제스는 해군 확장을 원했지만, 이 계획들 역시 실행되지 못했다. 당시 중화민국 해군의 주요 목적은 해안 및 강 방어였으며, 함대의 주요 초점은 양쯔강이었다. 1930년대 후반까지 중화민국 해군은 일본 제국 해군과 비교할 수 없었으며, 순양함들은 1937년 제2차 중일 전쟁 초기에 일본 항공기에 의해 격침되거나 양쯔강에서 차단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승무원에 의해 자침되었다. 1940년 장제스에 의해 해군부가 해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수의 일본 구축함과 퇴역한 미국 함선이 중화민국 해군으로 이관되었다. 중국 내전 동안, 중화민국 해군은 1949년 보급 호송대 보호와 중화민국 정부 및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의 대만으로의 철수에 참여했다. 1895년, 대만은 일본 제국 해군이 대만과 펑후의 해역을 방어하면서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10월 25일, 대만과 펑후의 관할권은 중화민국으로 이관되었고, 중화민국 해군(ROCN)은 해당 지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대만의 역사 (1945년~현재)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이전한 후, 중화민국 해군은 여러 차례의 특공대 호송, 피난 및 수송 작전에 참여했으며, 이후 금문도와 마쭈 열도에 대한 순찰 및 보급 작전을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 해안 섬에서 제공했다.
1990년대 이후, 중화민국의 군사 교리가 중화인민공화국 (PRC) 봉쇄에 대응하는 것과 해상 교전에 중점을 두면서 해군의 중요성이 커졌다. 2004년 기준으로 중화민국 해군은 전자전 및 대잠수함전 능력을 확장하고, 노후화된 군함 및 지원 선박을 교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11] 최근 몇 년 동안 국립 중산 과학 기술 연구원에서 제작한 자체 제작 플랫폼, 센서 및 무기의 수를 늘리고 있다.[14]
2018년, 룽더 조선소는 대만 해군을 위해 11척의 퉈장급 블록 II 초계함과 4척의 기뢰 부설함을 건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15]
2020년 4월, COVID-19 팬데믹에 대응하여 중화민국 해군은 중남미에 대한 반기 친선 임무를 조기에 종료했다. 두 척의 호위함과 보급선으로 구성된 함대는 대만으로 귀환 후 30일간 격리되었다.[16] 같은 해 4월, 대만 조선업체 카르민 인터내셔널은 중화민국 해군에 18척의 특수 작전 수상정 및 8척의 RIB 텐더(청궁급 호위함용)를 공급하는 계약을 1490만달러에 체결했다. 납품은 2022년 6월로 예정되어 있다.[17]
2. 1. 국민정부 시절 (1911년 ~ 1949년)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청나라 해군을 모체로 중화민국 해군이 창설되었다. 현대 중화민국 해군의 선구자는 전 청나라 제독이었던 류관웅(Liu Guanxiong)으로, 중화민국 최초의 해군사령이 되었다.[13] 중화민국 초창기 10년 동안 여러 해군 확장 계획이 제안되었지만, 자금 부족,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그리고 중국 군벌 시대의 혼란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했다.[76]1920년대부터 1930년대 군벌주의 기간 동안 중화민국 해군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 충실했다. 쑨원이 1917년 광저우에 정부를 수립했을 때, 해군 제독 정벽광과 린바오이가 그를 지지했고,[13] 장제스가 1926년 북벌을 시작했을 때 또 다른 제독 양수장이 베이양 함대의 일부를 이끌고 그의 부대에 투항했다.[76] 1928년 북벌 승리 후 국민 정부는 해군서를 해군부로 승격시켰다. 군무, 함정, 군기, 해정, 군학, 경리의 6개 부서가 설치되었고, “10년 건설” 기간 동안 해군은 비교적 대규모의 건함 계획을 세웠다.[76]
1937년 중일전쟁 직전 중화민국 해군은 5개 함대 120척, 배수량 6만여 톤으로 성장했지만, 대부분 구형 소형함이었다. 일본 제국 해군은 정규 항공모함 카가와 아카기를 보유하여 중화민국 해군보다 우세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두 함대 간의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1930년대 후반까지 중화민국 해군은 일본 제국 해군과 비교할 수 없었으며, 순양함들은 1937년 제2차 중일 전쟁 초기에 손실되었다. 일본 항공기에 의해 격침되거나 양쯔강에서 차단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승무원에 의해 자침되었다. 중국 해군의 대부분은 초기에 파괴되었고, 1940년 장제스에 의해 해군부가 해산되었다.[76]
1940년에는 왕징웨이가 난징에 친일적인 정권을 수립하고, 충칭의 장제스 정권의 해군과는 별도로 “중화민국 해군(평화 건국군 해군)”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 해군은 소규모였으며, 왕징웨이가 자신의 군대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계속 피했기 때문에, 당사자의 사망과 일본의 패전으로 소멸했다. 이후 중화민국 해군은 장제스의 지휘하에 통합되었다.[76]
국민당 정권 하에서 중화민국 해군은 주로 네 개의 해군으로 구성되었다. 중일 전쟁 직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76]
해군 | 함대 | 주요 함선 |
---|---|---|
중앙 해군(마웨이계) | 제1함대 | |
중앙 해군 | 제2함대 | |
중앙 해군 | 연습함대 | |
중앙 해군 | 순방함대, 측량대 | |
둥베이 해군(칭다오계) | 제3함대 | |
광둥 해군(황푸계) | 광둥 강방 함대 | |
군정부전뢰학교 (전뢰계) | (군사위원회 직속) 전뢰학교 쾌정대대 |
자국산 군함은 이셴이나 포함 등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영국, 독일, 일본제가 혼재되어 있었다.
- : 호법 운동의 혼란 속에서 쑨원을 숨겨주고, 장제스에 의한 공산당 탄압 (중산함 사건)의 무대가 되었으며, 중일 전쟁에서 전몰했다. 20세기 말에 인양되어 보존되었다.
- : 일본의 기술 협력으로 설계·건조되었다. 그러나 취역 직후에 중일 관계가 악화되어 2척 모두 일본군에게 격침되었으며, 인양 후에는 일본 해군에서 사용되다 전몰했다.
- : 최초의 순수 국산 군함. 일본군에 의한 접수와 전후 반환을 거쳐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이전한 후에도 사용되었다.
- 영속: 청나라 해군, 중화민국 해군, 평화건국군 해군,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으로 소속을 전전하며 반세기 이상 사용된 포함
2. 2. 제2차 국공내전과 국부천대 (1945년 ~ 194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 25일 대만과 펑후 제도의 관할권이 중화민국으로 돌아왔다. 중화민국 해군은 중국의 여러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 제국 해군의 지나파견함대 소속 군함들을 노획하고, 전쟁 배상으로 유키카제 등 수십 척의 군함을 넘겨받아 전력을 증강했다.[11]1946년부터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면서,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국군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밀려 1949년 12월 7일 국부천대했다. 이 과정에서 중화민국 해군은 1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을 수송하고 국민당 정부의 철수를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1]
2. 3. 대만으로의 철수 이후 (1950년 ~ 현재)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대만을 반공 세력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중화민국 해군은 미국으로부터 퇴역 군함을 제공받고 제7함대의 지원을 받으며 전력을 강화했다.[11] 1958년 8월 진먼 포격전 당시에는 대만 본토에서 진먼섬까지 미국 해군 제7함대의 지원을 받아 피난민 호송 및 물자 보급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냉전 종식 이후, 중화민국 해군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해상 봉쇄와 교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군사 교리를 전환하면서 중요성이 커졌다. 2004년 현재 중화민국 해군은 전자전 및 대잠전 능력을 확장하고, 기어링급 구축함을 포함한 구식 전함 및 지원 선박을 교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11]
최근 몇 년 동안 국립 중산 과학 기술 연구원에서 자체 제작한 플랫폼, 센서 및 무기의 수를 늘리고 있다.[14] 2018년, 룽더 조선소는 대만 해군을 위해 11척의 퉈장급 블록 II 초계함과 4척의 기뢰 부설함을 건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15]
2020년 4월, COVID-19 팬데믹에 대응하여 중화민국 해군은 중남미에 대한 반기 친선 임무를 조기에 종료하고, 두 척의 호위함과 보급선으로 구성된 함대를 대만으로 귀환 후 30일간 격리했다.[16] 같은 해 4월, 대만 조선업체 카르민 인터내셔널은 중화민국 해군에 18척의 특수 작전 수상정 및 8척의 RIB 텐더(청궁급 호위함용)를 공급하는 계약을 1490만달러에 체결했다. 납품은 2022년 6월로 예정되어 있었다.[17]
21세기 초 중화민국 해군의 주요 임무는 타이완 본토 및 실효 지배하에 있는 도서로 이루어진 영토와 해상 수송로를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공격, 침투 및 해상 봉쇄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다.[74] 해군은 해상 경찰 업무를 겸하거나 해상 경찰 조직을 산하에 두는 국가가 많지만, 타이완에서는 해상 경찰 업무는 해군이 아닌 일본의 해상보안청에 해당하는 해순서가 독립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작전 활동은 타이완 해협 및 주변 해역의 초계가 있으며, 이는 전시의 반격 및 대항 작전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중국에 의한 타이완 고립을 위한 국제 사회에 대한 압력과 원양 군사 진출에 대응하여 군함의 자체 개발·건조 및 타이완 동부 해역에서의 작전 능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74] 보유한 함정의 접두어는 '''ROCS''' (''Republic of China Ship'')가 된다. 이전에는 '''CNS''' (''Chinese Navy Ship'')가 사용되었다.
타국의 해병대에 상당하는 중화민국 해군 육전대를 보유하고 있다.
3. 조직
해군사령부()를 중심으로 함대지휘부(함대 사령부), 해군육전대지휘부(해병대 사령부), 정비지휘부(병참 사령부), 교육훈련기준칙발전지휘부(교육, 훈련 및 교리 사령부) 등이 있다.
3. 1. 해군사령부
해군사령부()는 총참모장, 국방부 장관 및 총통의 지휘를 받는다. 내부 부서로는 인사, 전투 준비 및 훈련, 병참, 기획, 전투 시스템, 일반 업무, 주계, 감찰, 정치 작전 부서가 있다.[11][12]3. 2. 주요 부대
해군 함대 사령부()는 해상 작전을 담당하는 주력 부대로, 예하에 여러 함대와 전대를 두고 있다.- 제124함대: 가오슝 시 쭤잉 구
- 제131함대: 타이완 지룽 시
- 제146함대: 펑후 현 마궁 시
- 상륙함대(제151함대): 가오슝 시 쭤잉 구
- 제168함대: 이란 현 수아오
- 제192함대(해군 기뢰 제거 함대): 가오슝 시 쭤잉 구
- 제256잠수함 전대: 가오슝 시 쭤잉 구
- 제261전대
- 하이차오(Sea Dragon) PGMG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그룹 ()
- 수아오 해군 기지에 배치된 10척의 로 구성된 제1하이차오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전대
- 10척의 ''광화 VI''급 미사일 보트로 구성된 제2하이차오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전대
- 10척의 ''하이오우''급 미사일 보트 (드보라급)로 구성된 제3하이차오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전대
- 10척의 ''하이오우''급 미사일 보트 (드보라급)로 구성된 제4하이차오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전대
- 11척의 ''광화 VI''급 미사일 보트로 구성된 제5하이차오 유도 미사일 보트/공작 전대[6] [7]
- 하이펑 육상 기반 대함 미사일 그룹(): 고정/이동형 HF-2 대함 미사일 6개 포대 운용.
- 제7하이펑 육상 기반 대함 미사일 전대(): 타이완 동부 화롄.[8] [9] [10]
- 항공대 (핑둥, 쭤잉, 화롄 비행장에서 작전 수행)
- 해군 항공대, 핑둥에 2013/2014년에 P-3C 12대 배치 예정.
- 제1ASW 항공 그룹
- 제133전대: S-2T, 핑둥.
- 제134전대: S-2T, 핑둥.
- 제2ASW 항공 그룹
- 제701헬기 전대 (경), S-70C(M)-1, 화롄.
- 제702헬기 전대 (경), S-70C(M)-2, 쭤잉.
- 제501헬기 전대 (경), 500MD ASW, 쭤잉.
- 정비 그룹
- 제1정비 전대 (핑둥)
- 제2정비 전대 (쭤잉)
- 제3정비 전대 (화롄)
- 해병대 사령부 ()
- '''교육, 훈련 및 교리 사령부''' ()
- '''병참 사령부''' ()
4. 계급
중화민국 해군의 계급은 장성(장군), 영관, 위관, 부사관, 병으로 나뉜다. 사관후보생은 정식 계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