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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베트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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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19세기 말 러시아 해군이 건조한 전함으로, 장갑순양함과 순양전함의 중간 성격을 띠었다. 영국 해군의 바플러급 전함을 참고하여 설계되었으며, 254mm 주포 4문을 장착하고, 18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1번함 페레스베트와 2번함 오슬랴뱌는 1895년에 기공되었고, 3번함 포베다는 개량을 거쳐 1899년에 기공되었다. 이들은 러일 전쟁에 참전했으나, 페레스베트와 포베다는 침몰, 오슬랴뱌는 쓰시마 해전에서 격침되었다. 이후, 페레스베트와 포베다는 일본 해군에 의해 인양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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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러시아 제국 해군이 흑해 및 발트 함대 운용을 위해 센추리온급 전함에 영감을 받아 설계한 전함으로, 305mm 주포와 152mm 부포 등으로 무장하고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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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베트급 전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개요
함급 이름페레스베트급 전함
함종전드레드노트급 전함
건조발트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드미랄티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
운용러시아 제국 해군
일본 제국 해군
이전 함급로스티슬라프
다음 함급포템킨
하위 함급포베다
건조 기간1898년–1903년
취역 기간1901년–1922년
총 건조 척수3척
총 손실 척수2척
총 폐기 척수1척
이미지
1901년 정박 중인 페레스베트
1901년 정박 중인 페레스베트
특징
함 종류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배수량13,534–14,639 톤
전장132.4 미터
선폭21.8 미터
흘수8.0 미터
추진 동력10,813 kW (14,500 ihp)
보일러30 x 벨레빌 보일러
추진 방식3축, 3 x 수직 3단 팽창 증기 엔진
속력33 km/h (18 노트)
항속 거리10 노트로 11,500 km
승무원27명 장교, 744명
무장
주포2 x 254mm (10인치) 45 구경장 1891년형 포
부포11 x 152mm (6인치) 45 구경장 1892년형 포
기타 포20 x 75mm (3인치) 50 구경장 1892년형 포
20 x 47mm (1.9인치) 포
8 x 37mm (1.5인치) 포
어뢰 발사관5 x 381mm (15인치) 어뢰 발사관
기뢰45개 기뢰
장갑
측면 장갑대178–229 mm (7–9인치)
갑판37–76 mm (1.46–3인치)
포탑229 mm (9인치)
함선 목록
함선페레스베트
포베다

2. 설계 및 특징

페레스베트급 전함의 기본 설계는 장갑순양함 로시야를 확장한 형태였다. 함체의 앞 갑판 절반을 연장하고, 강화된 장갑을 가진 연장식 주포탑 1기를 추가했다. 주포는 40구경 254mm 를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페레스베트급은 함대 장갑함으로 불렸다.

부포로는 러시아 군함의 표준포였던 카네식 45구경 152mm 단장 속사포 11문, 대어뢰정용 50구경 75mm 단장포 20문, 43구경 47mm 단장포 20문, 37mm 단장포 8문, 바라노프스키 속사포(Скорострельная пушка Барановского|바라노프스키 속사포ru) 파생형인 63.5mm 상륙포 2문(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후원으로 채용)을 탑재했다. 381mm 어뢰 발사관은 수상 발사형 3문, 수중 발사형 2문이었다.

장갑은 얇았지만 크루프 강을 사용했다. 현측 수선부 중앙 229mm, 선수 178mm, 제2판 102mm, 캐세이드(장갑 포좌) 64mm, 갑판 51~127mm, 주포탑 229~51mm, 바벳 203mm, 사령탑 229mm였다.

동력 기관은 발트 공장제 수직 3단 팽창 왕복 기관 3기, 보일러는 프랑스제 벨빌식 수관 보일러 30기를 탑재했다. 추진축은 3개로, 18kn 속력을 낼 수 있었으나 항속 거리는 함선마다 달랐다.

페레스베트급의 무장 및 장갑 배치도

2. 1. 배경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장갑순양함보다는 훗날의 순양전함 개념에 가까웠다. 동시대 전노급 전함보다 빠르고, 항속력과 항양성이 뛰어났지만, 무장과 장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설계 당시 전열함대의 구성 요소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가장순양함처럼 단독으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는 능력도 요구되었다.

당시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되었던 영국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영국 해군이 1893년부터 극동용으로 건조한 254mm포 4문을 탑재한 바플러급 전함(센추리온급 전함)이 페레스베트급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페레스베트급은 해안이나 강에서의 운용을 상정한 바플러급과는 달리, 처음부터 대규모 항양 작전을 위해 설계되었다. 원양 항해에 필요한 성능, 장거리 항해와 고속을 위한 연료를 대량으로 탑재하기 위해 석탄 창고 공간을 기존 함선보다 크게 확보했다. 반면, 무장과 장갑은 동시대 전함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은 전함보다는 오히려 러시아가 1900년까지 건조했던 장갑순양함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기본 설계는 장갑순양함 "러시아"를 확장한 형태였다. 함체는 앞 갑판 절반이 연장되었고, 그곳에 더 강화된 장갑을 가진 연장식 주포탑 1기를 탑재했다. 주포는 40구경 254mm 였으며, 이로 인해 페레스베트급은 함대 장갑함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포 외에 부포로는 당시 러시아 군함의 표준이었던 카네식 45구경 152mm 단장 속사포 11문, 대어뢰정용 50구경 75mm 단장포 20문, 43구경 47mm 단장포 20문, 37mm 단장포 8문, 바라노프스키 속사포(Скорострельная пушка Барановского|바라노프스키 속사포ru)의 파생형으로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대공의 지원으로 채용된 63.5mm 상륙포 2문이 탑재되었다. 또한, 수상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3문, 수중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2문도 탑재되었다.

장갑은 얇았지만, 크루프 강으로 만들어진 장갑판을 사용했다. 현측 수선부 중앙부는 229mm, 선수부는 178mm, 제2판은 102mm, 캐세이드(장갑포좌)는 64mm, 갑판은 51mm에서 127mm, 주포탑 장갑은 229mm에서 51mm, 바벳은 203mm, 사령탑은 229mm였다.

동력 기관은 국산 발트 공장에서 제작한 수직형 3배 확장 왕복 기관 3기를 탑재했다. 보일러는 프랑스제 벨빌식 수관 보일러 30기를 사용했다. 추진축은 3개였고, 속력은 18kn였지만, 항속 거리는 함선마다 차이가 있었다.

1번함 페레스베트와 2번함 오슬랴뱌는 1895년 건함 계획에 따라 발주되어, 1895년 11월 22일[31]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트 공장과 신해군 공창에서 건조를 시작했다. 3번함 포베다는 약간 개량된 함선으로, 극동 함대 전력 보충을 위해 발주되었다. 1898년 5월 18일 건조가 시작되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율리우스력 1899년 2월 9일 기공되었다. 페레스베트와 오슬랴뱌는 1901년, 포베다는 1902년에 완성되었다. 건조 비용은 포베다가 10.05억러시아 루블, 오슬랴뱌가 11.34억러시아 루블였다.

크림 전쟁(1854~55년)에서 러시아는 패배하였고, 대제독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함대 전략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는 대영 제국이나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통상 파괴'' 전략을 구상하고, 장갑 순양함을 건조했다.[1] 영국은 이에 대응하여 센추리온급 2급 전함을 건조했고, 러시아는 ''페레스베트''급 전함 3척으로 맞섰다. 이 함선들은 빠른 속도와 장거리 항해 능력을 중시했다.[2]

함선 건조 중 부무장이 변경되었다. 원래 두 척만 계획되었으나, 발트 공장 유지를 위해 세 번째 함선이 발주되었다. 세 번째 함선은 3년 늦게 기공되었지만, 두 번째 함선보다 먼저 완성되었다.[3]

''페레스베트''급 함선은 전체 길이 약 132.28m, 선폭 약 21.64m, 흘수선 약 7.92m였다. 배수량은 설계보다 초과되어 였다. 처음 두 척은 나무와 구리로 선체를 덮었지만, ''포베다''에서는 제거되었다. 부분적인 이중 바닥과 10개의 방수 횡 벌크헤드, 중앙선 벌크헤드로 구성되었다. 승무원은 장교 27명, 사병 744명이었다.[4]

30개의 벨빌 보일러와 3개의 수직 3단 팽창 증기 기관으로 추진되었다. 엔진은 의 강제 통풍으로 최고 속도 를 낼 수 있었다. 해상 시운전 중 에서 를 기록했다. 최대 의 석탄을 적재하여 속도로 를 항해할 수 있었다. 전기 장비는 총 용량 의 증기 구동 발전기 4대로 구성되었다.[5]

2. 2. 기본 설계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장갑순양함보다는 훗날의 순양전함 개념에 가까웠다. 동시대 전노급 전함보다 속도가 빠르고 항속거리와 항해 능력이 뛰어났지만, 무장과 장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설계 당시 전열함대의 구성 요소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가장순양함처럼 단독으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는 능력도 요구되었다.

당시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되었던 영국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으며, 영국 해군이 1893년부터 극동 지역에 배치한 254mm 포 4문을 탑재한 바플러급 전함(센추리온급 전함)이 페레스베트급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페레스베트급은 해안이나 강에서의 운용을 상정한 바플러급과는 달리, 처음부터 대규모 원양 작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장거리 항해와 높은 속력을 위해 연료를 대량으로 탑재할 수 있도록 석탄 창고의 공간을 기존 함선보다 크게 확보했지만, 무장과 장갑은 동시대 전함에 비해 약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은 전함보다는 오히려 러시아가 1900년까지 건조했던 장갑순양함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기본 설계는 장갑순양함 "로시야"를 확장한 형태였다. 함체는 앞 갑판 절반이 연장되었고, 그곳에 더 강화된 장갑을 가진 연장식 주포탑 1기를 탑재했다. 주포는 40구경 254mm 였으며, 이로 인해 페레스베트급은 함대 장갑함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포 외에 부포로는 당시 러시아 군함의 표준포였던 카네식 45구경 152mm 단장 속사포 11문, 대어뢰정용 50구경 75mm 단장포 20문, 43구경 47mm 단장포 20문, 37mm 단장포 8문, 바라노프스키 속사포(Скорострельная пушка Барановского|바라노프스키 속사포ru)의 파생형으로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후원으로 채용된 63.5mm 상륙포 2문이 장착되었다. 또한, 수상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3문과 수중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2문이 탑재되었다.

장갑은 얇았지만, 크루프 강으로 제작된 장갑판을 사용했다. 현측 수선부 중앙부는 229mm, 선수 부분은 178mm, 제2판은 102mm, 캐세이드(장갑 포좌)는 64mm, 갑판은 51mm에서 127mm, 주포탑 장갑은 229mm에서 51mm, 바벳은 203mm, 사령탑은 229mm였다.

동력 기관은 러시아산 발트 공장에서 제작한 수직 3단 팽창 왕복 기관 3기를 탑재했다. 보일러는 프랑스제 벨빌식 수관 보일러 30기를 탑재했다. 추진축은 3개였으며, 18kn의 속력을 낼 수 있었지만, 항속 거리는 함선마다 차이가 있었다.

1번함 페레스베트와 2번함 오슬랴뱌는 1895년 건함 계획에 따라 발주되어, 1895년 11월 22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발트 공장과 신해군 공창에서 기공되었다.[31] 3번함 포베다는 약간의 개량을 거친 함선으로, 극동 방면 함대 전력 보충을 위해 발주되었다. 1898년 5월 18일에 건조가 시작되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율리우스력 1899년 2월 9일에 기공되었다. 페레스베트와 오슬랴뱌는 1901년, 포베다는 1902년에 완공되었다. 건조 비용은 포베다가 1005.0000000000001만러시아 루블, 오슬랴뱌가 1134만러시아 루블였다.

2. 3. 무장

페레스베트급 전함의 주포는 40구경 254mm 함포로, 앞뒤에 각각 1기씩 연장식 포탑에 장착되었다. 이 주포를 통해 페레스베트급은 함대 장갑함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포 외에 부포로는 당시 러시아 군함의 표준포였던 카네식 45구경 152mm 단장 속사포 11문이 있었다. 대(對) 어뢰정용으로 50구경 75mm 단장포 20문, 43구경 47mm 단장포 20문, 37mm 단장포 8문이 장착되었다.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후원으로 채용된 63.5mm 상륙포 2문도 있었다. 또한, 수상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3문과 수중 발사형 381mm 어뢰 발사관 2문이 탑재되었다.[31]

2. 4. 장갑

페레스베트급 전함의 장갑은 얇았지만, 크루프 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장갑판은 현측 수선부 중앙부가 229mm, 선단부가 178mm, 제2판이 102mm였다. 캐세이드(장갑 포좌)는 64mm, 갑판은 51mm에서 127mm, 주포탑 장갑은 229mm에서 51mm, 바벳은 203mm, 사령탑은 229mm였다.

최초 두 척의 선박은 포탑과 지지 튜브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갑 수직면에 하비 강철을 사용했고, 포탑과 지지 튜브는 크루프 강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포베다''는 모든 중장갑 수직면에 크루프 강철을 사용했다. 기계실 위에서 수선 벨트 장갑의 최대 두께는 였으며, 탄약고 맞은편에서는 로 줄어들었다. 벨트는 기계실 위에서 의 두께로, 탄약고 위에서는 의 두께로 얇아졌다. 벨트는 선박 길이의 을 덮었고, 높이는 였으며, 이 중 상부 이 수선 위에 위치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선박들은 상당히 과중량이어서 벨트의 상당 부분이 잠겼다.

''페레스베트''는 정상 하중에서 단지 의 장갑만 노출되었고, 만재 배수량에서는 벨트가 완전히 잠겼다. ''오슬랴뱌''는 더욱 과중량이었으며, 정상 하중에서 벨트 장갑의 만 노출되었다. 두 선박의 벨트는 7인치 횡격벽으로 끝났고, 선박의 양쪽 끝은 보호받지 못했다. ''포베다''의 수선 벨트의 횡격벽은 제거되었고, 벨트가 4인치 장갑판으로 선박의 양쪽 끝까지 연장되었다. 세 척의 선박 모두 수선 벨트 위에는 선박의 중앙을 보호하는 더 짧은 스트레이크 장갑이 있었는데, 길이였고, 두께는 4인치였다. 상부 벨트의 끝은 4인치 각도의 횡격벽으로 닫혔다.[15]

포탑의 측면은 9인치 두께였고, 의 장갑이 포탑의 지붕을 보호했다. 포탑 지지 튜브는 두께였다. 6인치 포의 포방의 전면은 5인치 두께였고, 후면은 장갑판으로 보호받았다. 선박 각 끝의 포방은 5인치 횡격벽으로 보호받았다. 두께의 격벽은 75mm 포 위치를 분리했다. ''페레스베트''는 6인치 측면을 가진 두 개의 함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선박은 9인치 측면을 가진 전방 함교만 가지고 있었다. 3인치 두께의 통신 튜브는 세 척의 선박 모두에서 각 함교를 장갑 갑판에 연결했다. 중앙 장갑 시타델의 갑판 평평한 부분은 정상적인 0.75인치 구조 강철 갑판 판 위에 판으로 구성되었다. 수선 벨트의 하단 가장자리에 연결된 경사진 부분은 2.5인치 두께였다. 시타델 외부의 장갑 갑판은 갑판 위에 판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두 척의 선박에서는 갑판 장갑이 연강으로 구성되었고, ''포베다''에서는 크롬-니켈강 합금이었습니다.[15]

2. 5. 기관

페레스베트급 전함의 동력 기관은 발트 공장제 수직 3단 팽창 왕복 기관 3기로 구성되었다. 프랑스제 벨빌식 수관 보일러 30기가 증기를 공급했다. 추진축은 3개였고, 설계상 최고 속력은 18kn였다. 그러나 해상 시험 운항에서 세 척 모두 설계 속도를 약간 초과하여 18.3~18.5kn를 기록했다.

최대 약 2093056.82kg의 석탄을 적재할 수 있었으며, 10kn의 속도로 6200nmi를 항해할 수 있었다. 전기 장비는 총 용량 555kW의 증기 구동 발전기 4대로 구성되었다. 건조 비용은 포베다가 1005.0000000000001만러시아 루블, 오슬랴뱌가 1134만러시아 루블이었다.

3. 함선 목록

페레스베트급 전함 목록
함명건조기공[16]진수[16]취역[16]비용[17]
페레스베트 (Пересветru)발트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1895년 11월 21일[18]1898년 5월 19일1901년10540000RUB
오슬랴뱌 (Ослябяru)신 해군성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1895년 11월 21일1898년 12월 8일1903년11340000RUB
포베다 (Победаru)발트 조선소, 상트페테르부르크1899년 2월 21일1900년 5월 10일1902년10050000RUB


4. 운용 역사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러일 전쟁제1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함이다. 3척의 페레스베트급 전함은 각각 쿨리코보 전투의 영웅인 알렉산드르 페레스베트, 로지온 오슬랴뱌와 러시아어로 '승리'를 뜻하는 포베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페레스베트포베다1901년1902년에 취역한 직후 극동으로 배치되어 여순항 해전에 참전했다. 1904년 황해 해전에서 페레스베트는 39번, 포베다는 11번의 피격을 당했다. 이후 일본군의 공성포 공격으로 두 함선 모두 큰 피해를 입고 침몰했다.[21]

오슬랴뱌는 건조 지연으로 러일 전쟁 발발 당시 극동으로 이동 중이었다. 본국으로 귀환한 오슬랴뱌는 발틱 함대에 편입되어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으나, 일본 함대의 집중 포격을 받고 침몰했다. 이는 순전히 포격으로 침몰한 최초의 현대식 전함이었다.[22]

포트 아서에서 자침된 ''페레스베트''


일본은 침몰한 페레스베트포베다를 인양, 수리하여 각각 사가미와 스오로 명명하고 자국 해군에 편입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사가미는 러시아에 반환되어 다시 페레스베트라는 이름으로 복귀했으나, 1917년 포트사이드 앞바다에서 독일 잠수함의 기뢰에 의해 침몰했다. 스오는 칭다오 공방전에서 일본 함대의 기함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훈련함으로 사용되다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해체되었다.

4. 1. 러시아 해군


:** 함명은 쿨리코보 전투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드르 페레스베트의 이름을 딴 것으로, 1874년에 제적된 같은 이름의 프리깃에서 유래했다. 러일 전쟁 당시 제1태평양 함대에 소속되어 황해 해전에 참전했으나, 1904년 12월 7일 뤼순 항에서 일본 육군의 포격으로 크게 파손되어 좌초되었다.[21] 1905년 6월 29일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 후 1909년 일본 제국 해군에 편입, 전함 사가미로 운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16년 초 러시아 정부에 다시 매각되어 4월 3일 구레 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회항, 4월 6일 장갑순양함 페레스베트로 러시아 해군에 복귀했다. 그러나 발트해로 향하던 중 1917년 1월 4일 포트사이드 앞바다에서 독일 제국 잠수함 U 73이 설치한 기뢰에 접촉,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 오슬랴뱌 (Ослябяru, 1901년 - 1905년)

:** 함명은 쿨리코보 전투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영웅 로지온 오슬랴뱌의 이름을 딴 것으로, 1874년에 제적된 같은 이름의 프리깃에서 유래했다. 러일 전쟁 발발 당시 뤼순으로 향하던 중이었으나 본국으로 귀환, 이후 제2태평양 함대 (일명 발트 함대)에 편입되어 동해 해전에서 쓰시마 해협을 통과하다 전몰했다.[22]

  • 포베다 (Победаru, 1901년 - 1922년)

:** 함명은 러시아어로 "승리"를 뜻한다. 러일 전쟁 당시 뤼순 함대에 소속되어 1904년 3월 31일 기뢰에 의해 손상되었다. 수리 후 참가한 황해 해전에서는 254mm 포 1문과 75mm 포 3문이 파손되고 4명이 전사, 29명이 부상당했다. 11월 24일에는 280mm 포탄 30발과 152-120mm 포탄 17발을 맞고 뤼순 항에서 크게 파손되어 좌초되었다.[21] 1905년 10월 17일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 후 1908년 일본 해군에 편입, 1922년까지 전함 스오로 운용되었다. 같은 해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해체 중 전복, 부양 후 구레시 앞바다 미쓰코지마에 방파제 용도로 자침되어 매립되었다.

4. 2. 일본 해군

페레스베트(구 사가미)는 1905년 6월 29일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되었다.[25] 1909년 일본 해군에 편입되어 전함 사가미로 운용되었다.[19]

포베다(구 스오)는 1905년 10월 17일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수리되었다.[25] 1908년 일본 해군에 편입되어 1922년까지 전함 스오로 운용되었다.[28]

1908년 10월 10일, 요코스카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스오''


''사가미''와 ''스오''는 각각 페레스베트포베다를 개조한 것으로, 일본 제국 해군에 편입되어 1등 연안 방어함으로 재분류되었다.[25]

제1차 세계 대전 중 ''스오''는 1914년 8월 27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된 칭다오 공방전에서 일본 함대의 기함으로 활동했다.[27]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제2함대의 제2전대 기함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술 훈련함으로 사용되었다.[28] 1922년 4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 따라 ''스오''는 구레 해군 공창에서 무장 해제되었다.[25] 장갑 제거 과정에서 7월 13일 전복되었다.[19] 1922년~1923년에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 자료에 따르면 재부양되어 헐크로 사용되었으며, 1946년 구레에서 해체되었다고 한다.[25][29][30]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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