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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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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런스 서머스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공무원이다. 1954년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역사상 최연소 종신 교수가 되었다.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미국 재무부 장관,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국가 경제 회의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주요 경력 외에도, 'Dirty industries' 메모 논란, 여성의 과학 분야 진출 관련 발언, 금융 규제 완화 옹호,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논란, 하마스-이스라엘 공격 관련 논란 등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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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서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2년의 로렌스 서머스
출생 이름Lawrence Henry Summers
출생일1954년 11월 30일 ()
출생지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정당민주당
배우자Victoria Perry (1984년 결혼, 2003년 이혼)
엘리사 뉴 (2005년 12월 11일 결혼)
자녀3명
학력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BS)
하버드 대학교 (MA, PhD)
경력
제8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위원장: Diana Farrell, Jason Furman
임기 시작: 2009년 1월 20일
임기 종료: 2011년 1월 20일
전임: Keith Hennessey
후임: Gene Sperling
제27대 하버드 대학교 총장임기 시작: 2001년 7월 1일
임기 종료: 2006년 6월 30일
전임: Neil Rudenstine
후임: 데릭 복
제71대 재무장관대통령: 빌 클린턴
부장관: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임기 시작: 1999년 7월 2일
임기 종료: 2001년 1월 20일
전임: 로버트 루빈
후임: 폴 오닐
제7대 재무부 부장관대통령: 빌 클린턴
임기 시작: 1995년 8월 11일
임기 종료: 1999년 7월 2일
전임: Frank N. Newman
후임: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국제 문제 담당 재무부 차관대통령: 빌 클린턴
임기 시작: 1993년 4월 5일
임기 종료: 1995년 8월 11일
전임: David Mulford
후임: Michael Bruno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총재: Barber Conable, Lewis Thompson Preston
임기 시작: 1991년 1월 14일
임기 종료: 1993년 1월 14일
전임: Stanley Fischer
후임: Michael Bruno
학문 분야
분야거시경제학
학파새 케인스 경제학
박사 지도 교수마틴 펠드스타인
박사 제자앨런 크루거
Kiminori Matsuyama
James R. Hines Jr.
이창용
소속 기관하버드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수상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1993년)
RePEc 식별자접두사: e
ID: psu137
학위 논문 제목An asset price approach to the analysis of capital income taxation
학위 논문 URL학위 논문
학위 논문 년도1982년
서명

2. 출생 및 성장

로런스 서머스는 1954년 11월 30일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11] 그의 부모님인 로버트 서머스와 애니타 서머스는 모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다. 아버지 로버트 서머스의 원래 성은 새뮤얼슨이었으나 서머스로 변경했다. 또한, 그의 삼촌인 폴 새뮤얼슨(아버지의 형제)과 외삼촌인 케네스 애로우(어머니의 형제)는 모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서머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필라델피아 교외인 펜실베이니아주 펜 밸리에서 보냈으며, 해리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12]

16세 때인 1970년 MIT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곧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1975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140][10] 그는 MIT 재학 시절 토론팀의 활발한 멤버이기도 했다. MIT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마틴 펠드스타인의 지도를 받았고, 1982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1][111]

1983년, 28세의 나이로 하버드 대학교 역사상 최연소 종신 교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시기에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를 통해 완치되었다.[112] 1987년에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방문 학자로 활동했다.[12]

3. 가족 관계

1954년 11월 30일,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11] 그의 부모는 모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교수였던 경제학자 로버트 서머스와 아니타 서머스이다. 아버지 로버트 서머스는 원래 성이 새뮤얼슨이었으나 변경하였고, 어머니 아니타 서머스는 루마니아계 유대인 혈통이다.

서머스는 유명 경제학자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의 형제인 삼촌 폴 새뮤얼슨 (MIT 교수)과 어머니의 형제인 외삼촌 케네스 애로우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는 모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111][112]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학창 시절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서머스는 첫 번째 아내인 빅토리아 조앤 (페리) 사이에서 세 자녀(쌍둥이 딸 루스, 패멀라, 아들 해리)를 두었다.[106][107] 2005년 12월에는 영문학 교수인 엘리사 뉴와 재혼했다. 엘리사 뉴는 이전 결혼에서 세 딸(야엘, 올리, 마야)을 두었다.[108]

아래는 로런스 서머스의 주요 가족 관계이다.

로런스 서머스의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아버지로버트 서머스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제학 교수 (원래 성: 새뮤얼슨)
어머니아니타 서머스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교수 (루마니아계 유대인 혈통)
삼촌 (부계)폴 새뮤얼슨MIT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외삼촌 (모계)케네스 애로우스탠포드 대학교 교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첫 번째 배우자빅토리아 조앤 (페리)자녀 3명 (쌍둥이 딸 루스, 패멀라, 아들 해리)[106][107]
두 번째 배우자엘리사 뉴영문학 교수 (2005년 결혼), 의붓딸 3명 (야엘, 올리, 마야)[108]


4. 주요 경력

4. 1. 학계 경력

197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198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11] 1983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 대학교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로 임용되었다.[112]

1990년 서머스


연구자로서 서머스는 주로 재정학, 노동 경제학, 금융 경제학, 거시 경제학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한 국제 경제학, 경제 인구통계학, 경제사, 개발 경제학 분야에서도 활동했다.[13][112] 그의 연구는 경험적 경제 데이터 분석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이며, 예를 들어 저축이 세후 이자율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와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112]

이러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1987년에는 전미 과학 재단(NSF)으로부터 사회과학자 최초로 앨런 T. 워터만 상을 수상했으며,[111] 1993년에는 미국 경제 학회로부터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14][111] 그는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하다.[111]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잠시 학계를 떠나 세계은행에서 개발 경제 부총재 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5][6][7] 이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 지원 전략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의 여성 교육 투자가 높은 수익률을 가져온다는 그의 연구는 큰 주목을 받았다.[5]

현재는 다시 하버드 대학교로 돌아와 찰스 W. 엘리엇 대학교수(Charles W. Eliot University Professor)로 재직하며 미국 경제 정책과 세계화의 정치 경제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15]

4. 2. 공직 경력

1982년부터 1983년까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스태프로 일하며 공직 경력을 시작했다.[13] 이후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 캠프에서 경제 고문으로 활동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교 교수직을 떠나 세계은행의 수석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취임했다. 그는 개발도상국 지원 전략 수립, 은행의 융자 위원회 운영, 조사 및 통계 업무 지도, 외부 연수 프로그램 운영 등을 담당했다.[113]

그러나 재직 중이던 1991년 12월, 개발도상국에 환경 오염 산업을 이전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부 메모("서머스 메모")가 유출되어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114]

1993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재무부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국제 담당 차관보로 임명되었고,[13] 1995년에는 그의 정치적 멘토였던 로버트 루빈 장관 아래에서 재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했다. 이 시기 서머스는 국제 경제 문제에 집중했으며, 멕시코와 러시아의 통화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구제 금융 지원 노력을 주도했다.[20] 또한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재무관과 함께 엔화 강세를 막기 위한 외환시장 공동 개입을 추진한 것으로 일본에 알려지기도 했다.[112]

그러나 서머스가 관여한 하버드 국제개발연구소의 러시아 정부 자문 프로젝트(1992-1997)는 일부 관계자들이 러시아에 직접 투자하며 부적절한 조언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스캔들로 번졌다.[21] 서머스는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클린턴 행정부가 선호했던 '사유화, 안정화,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도록 권고했다.[22]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서머스는 대한민국 정부에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과 재정 균형을 강하게 압박했는데, 이는 폴 크루그먼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같은 경제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23] 또한 폴 블루스타인의 저서 The Chastening|징계eng에 따르면, 서머스는 이 위기 동안 폴 울포위츠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기도 했다.[24]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 내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과 교토 의정서 참여에 반대하는 주요 인물이었던 것으로 2009년에 공개된 내부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25][116]

1999년 7월, 로버트 루빈의 뒤를 이어 제71대 미국 재무부 장관에 취임했다.[115] 장관으로서 그는 국내 경제 및 재정 정책, 대외 경제 관계, 국제 금융 위기 대응 등을 총괄했다.[115] 그는 1999년 공화당 의회가 제안한 감세안에 반대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입장을 주도했다.[26] 2000년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 당시에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 엔론의 케네스 레이 회장과 함께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환경 기준 완화를 압박하기도 했다.[27][28]

미국 재무부 장관 시절의 서머스


서머스는 1999년 그램-리치-브라일리 법 제정을 환영했다. 이 법은 대공황 이후 약 60년간 상업은행의 보험 및 투자 서비스 겸업을 금지했던 글래스-스티걸 법의 핵심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머스는 이 법안이 "미국 기업이 새로운 경제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29] 그러나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많은 비평가들은 이 법이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30] 실제로 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의 금융시장실무그룹 일원으로서, 아서 레빗 SEC 위원장, 그린스펀 연준 의장, 루빈 재무장관과 함께 파생 상품 규제 노력을 무산시키는 데 기여했는데, 규제되지 않은 파생 상품은 이후 금융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31]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서머스는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다시 공직에 복귀했다.[73] 그는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 결정자로 활동하며 긍정적인 평가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초기 업무 수행에 만족감을 표했고, 당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이었던 피터 오스작은 서머스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라고 칭찬했다.[75] 반면,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와는 마찰을 빚었는데, 볼커는 서머스가 외부 경제 자문단 구성을 지연시키고 자신을 백악관 회의에서 배제했다고 비판했다.[74]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 마련 과정에서도 서머스의 역할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진보 성향의 피터 드파지오 하원의원(민주당-OR)은 서머스가 인프라 투자를 경시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조언을 따르는 것을 비판했다.[77] 폴 크루그먼 등 진보 경제학자들은 더 많은 예산을 인프라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78] 서머스는 감세를 선호했다.[79] 또한, 당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크리스티나 로머가 제안했던 1.8조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서머스가 의회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이후 로머가 수정한 1.2조달러 안마저 최종 보고서에서 제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81] 결국 통과된 부양책 규모는 약 8000억달러 수준이었다.

서머스는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민주당-CT)에게 전화하여 씨티그룹 등 구제 금융을 받은 기업 임원들의 보너스 상한선을 없애도록 요청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82] 또한 2009년 4월에는 그가 공직에 임명되기 직전 해에 헤지펀드 D. E. 쇼 & Co.로부터 500만달러, 구제 금융을 받은 월가 기업들로부터 강연료로 270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해 상충 논란에 휩싸였다.[83]

이러한 찬반 논란 속에서 서머스는 2010년 말 NEC 위원장직에서 사임하고[121] 하버드 케네디 스쿨 교수로 복귀했다. 2013년 벤 버냉키의 후임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자 2013년 9월 스스로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122][123]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조 바이든 캠프에 정책 조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민주당 내 반발을 의식해 바이든 당선 시 행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124]

4. 3. 하버드 대학교 총장 시절 (2001-2006)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 서머스는 재무부를 떠나 하버드 대학교의 제27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2001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재임했다.[14] 그는 하버드 대학교 최초의 유대인 총장으로 알려졌으나,[38][39][40] 전임 총장인 닐 루덴스틴의 아버지 역시 유대인이었다.[41] 서머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중도 좌파로 규정했지만, 그의 강압적인 일 처리 방식은 총장 취임 초기부터 인문·사회과학 분야 교수 및 학생들과의 갈등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17]

하버드 총장 재임 기간 중 서머스의 여러 결정들은 논란을 일으켰다. 2001년 10월, 그는 코넬 웨스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 학과장이 빌 브래들리의 대통령 선거 운동 지원을 위해 3주간 수업을 빠진 것을 비판했으며, 웨스트 교수가 학점 인플레이션에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머스는 웨스트 교수의 랩 앨범이 대학의 "수치"라고 언급했다. 웨스트 교수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42] "나는 자유롭고 자존심 있는 흑인이다. 저런 태도는 참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하버드를 떠나 이전에 몸담았던 프린스턴 대학교로 돌아갔다.[118] 웨스트는 이후 자신의 저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2004)에서 서머스를 "무지하고 원칙 없는 권력자"라고 비판했다.

=== 여성의 과학 분야 진출 관련 발언 논란 ===

2005년 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주최한 과학 및 공학 분야 인력 다양화 컨퍼런스에서 서머스는 여성이 과학 및 공학 분야 고위직에 적은 이유에 대한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컨퍼런스는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비공개를 전제로 진행되었다.[43]

서머스는 발언에 앞서 자신의 접근 방식이 전적으로 실증주의에 기반하며, 발언 목적은 "도발적인 시도"임을 명확히 했다.[44] 그는 고위 과학 및 공학 직위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이유로 세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 고위직 업무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헌신 (고위직 가설)

# 수학 및 과학 분야에서의 선천적 적성 차이 (높은 수준의 적성 상이성 가설)

# 사회화 과정 및 차별 패턴의 차이[44]

이 중 두 번째 가설,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인지 능력 검사에서 점수 분포의 변동성이 더 크다는 주장[45][46][47]이 가장 큰 논란을 낳았다. 서머스는 "표준 편차의 작은 차이라도 평균에서 상당히 벗어난 집단에서는 매우 큰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하며,[44] 특정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이러한 적성 차이가 MIT의 항공우주 공학자나 버클리의 화학자와 같은 직업군에서 성별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44]

그는 세 가설을 종합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래서 제 추측은, 여러분을 도발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가장 큰 현상은 사람들의 정당한 가족적 욕구와 고용주의 현재 높은 권력과 강렬함에 대한 욕구 사이의 일반적인 충돌이며, 과학과 공학의 특수한 경우, 본질적인 적성의 문제, 특히 적성의 변동성이 있으며, 그러한 고려 사항은 사회화와 지속적인 차별과 관련된 실제 작은 요인에 의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들이 단순히 모든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44]


이 발언은 즉각적으로 성차별적이며 학문적으로 부주의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하버드 내외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48] 서머스는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49] 이 논란은 결국 그의 총장직 사임과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직 임명 실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50][110]

반면, 서머스의 제자였던 셰릴 샌드버그는 "래리(서머스)는 세계은행재무부 시절부터 여성의 진정한 옹호자였다"고 그를 변호했다. 샌드버그는 논란이 된 강연에 대해 "그가 여성의 경력과 수학 및 과학 분야에서의 경로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가졌기에 문제점을 분석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야기하려 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51]

2016년, 서머스는 고등 교육 기관의 정치적 올바름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터무니없는 정치적 올바름이 만연해 있다. 다양성을 강력히 지지하고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미국 사회의 부당함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학 캠퍼스에서 어떤 종류의 아이디어가 용납되고 논쟁 가능한지에 관해 일종의 만연하는 전체주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52]

=== 교수진의 불신임과 사임 ===

서머스의 발언과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불만은 교수 사회에서 증폭되었다. 2005년 3월 15일, 하버드 문리과대학 교수진은 서머스 총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을 찬성 218표, 반대 185표, 기권 18표로 가결했다. 다만 총장의 입지를 다소 완화하는 두 번째 안건은 찬성 253표, 반대 137표, 기권 18표로 통과되었다. 대학 운영의 최고 의결 기구인 하버드 법인은 서머스를 강력히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진 내에서도 의견은 갈렸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서머스의 발언이 학문적 담론의 범주에 속한다고 옹호하며 "엄밀함을 가지고 제시된다면 모든 가설은 정당한 학술 담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교와 마드라사의 차이점"이라고 주장했다.[53]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머스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다. 하버드 크림슨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 학생의 57%가 그의 사임에 반대했고, 찬성은 19%에 그쳤다.[54] 그러나 2005년 7월, 하버드 법인의 이사였던 콘래드 K. 하퍼는 서머스의 여성 관련 발언과 급여 인상에 항의하며 사임했다.[55][56]

=== 안드레이 슐라이퍼 사건 ===

서머스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은 안드레이 슐라이퍼 교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더욱 커졌다. 슐라이퍼는 러시아민영화 프로그램 자문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해 상충 규정을 위반하고 개인적인 투자를 한 혐의로 미국 정부로부터 허위 청구법 위반 소송을 당했다. 2004년 연방 법원은 하버드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으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은 슐라이퍼와 그의 동료에게만 있다고 판결했다.

2005년 8월, 하버드 대학, 슐라이퍼, 미국 법무부는 5년간 이어진 소송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하버드는 2650만달러를, 슐라이퍼는 200만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하버드가 배상금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슐라이퍼의 교수직을 유지시킨 결정은 서머스가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인 슐라이퍼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서머스가 슐라이퍼 사건 처리 과정에서 공식적으로는 회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전 총장 데릭 복이 이끄는 독립 위원회에서 처리됨), 이 사건은 교수들 사이에서 서머스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켰다.[57] ''기관 투자자'' 매거진은 슐라이퍼가 러시아 정부 자문 과정에서 얻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개인 투자를 했으며, 서머스가 1996년에 이미 슐라이퍼에게 이해 상충 문제에 대해 경고했었다고 보도하며 서머스가 슐라이퍼를 징계로부터 보호하려 했다고 시사했다.[57][58] 기계 공학과의 프레데릭 H. 아버네시 교수는 교수 회의에서 "저는 45년 이상 이 학부의 일원이었고... 더 이상 쉽게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운을 뗀 뒤, "슐라이퍼 사건에서 이 대학의 행동에 깊은 충격과 실망을 느꼈습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당시 교수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했다.[57]

=== 사임 ===

일련의 논란 끝에 2006년 2월 21일, 서머스는 2006년 6월 30일부로 총장직에서 사임할 의사를 밝혔다. 하버드 대학은 그의 사임 조건으로 1년간의 유급 안식년, 개인 주택 구입을 위한 대학 대출금 100만달러 상당의 지원 등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65] 전임 총장이었던 데릭 복이 임시 총장을 맡았으며, 이후 드루 길핀 파우스트가 후임 총장으로 지명되었다.

4. 4. 기타 경력

하버드 대학교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간의 안식년을 보낸 서머스는 하버드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찰스 W. 엘리엇 대학교 교수직을 맡았다. 이는 하버드 내 20개뿐인 특별한 대학교수직 중 하나로, 케네디 행정대학원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66]

총장 퇴임 후 서머스는 금융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2006년에는 유엔 무역 개발 회의(UNCTAD)의 활동을 검토하는 저명인사 패널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또한 국제 경제 및 금융 분야의 저명인사 모임인 30인 그룹의 회원이며,[67] 베르그루엔 연구소의 21세기 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2015년에는 베르그루엔 연구소가 주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의에도 참여했다.[67][68] 그는 빌더버그 그룹 운영 위원회의 전 멤버이기도 하다.[71]

2006년 10월, 서머스는 뉴욕 기반의 헤지펀드 D. E. 쇼 & Co.의 파트타임 매니징 디렉터로 고용되어 16개월 동안 급여 및 기타 보수로 500만달러를 받았다.[69] 이 시기 그는 골드만삭스, JP모건 체이스, 씨티그룹, 메릴린치,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주요 금융 기관에서 강연하며 270만달러의 강연료를 벌었다.[70] 그의 자산은 1999년 재무부 장관 지명 당시 약 90만달러의 자산과 50만달러의 부채(모기지 포함)를 신고했던 것과 비교해,[84] 2009년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할 때는 1700만달러에서 3900만달러 사이의 순자산을 보고할 정도로 증가했다.[84]

버락 오바마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래리 서머스(카메라를 등진 오른쪽 끝)를 포함한 그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0년 12월 국가경제회의(NEC) 위원장직을 떠난 후, 서머스는 하버드 대학교 종신 교수직에 복귀하는 동시에 여러 기업에서 고문 및 이사로 활동했다.[84]

연도기업/기관직책비고
D. E. 쇼 & Co.고문[84]
씨티그룹고문[84]
나스닥 OMX 그룹고문[84]
스퀘어이사[85]
안드레센 호로위츠특별 고문[86]
렌딩클럽이사[87]
줌카엔젤 투자자인도의 렌터카 회사[72]
프레미스 데이터이사데이터 및 분석 기술 회사[88][89]



볼로디미르 흐로이스만과 함께 있는 서머스 in 우크라이나


서머스는 국제 현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왔다. 2016년 4월에는 다른 전직 미국 재무부 장관 7명과 함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유럽 연합에 잔류할 것을 촉구했다.[90]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자, 그는 이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 국가가 저지른 최악의 자해 정책 상처"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이 결과가 "모든 곳의 엘리트들을 위한 경종"이라며 "책임감 있는 민족주의"를 통해 대중의 정서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1] 같은 해 6월,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 "[브렉시트 통과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이라며, "그가 당선된다면 18개월 이내에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92]

5. 논란 및 비판

재무 장관 시절, 서머스는 "서머스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것은 마돈나에게 정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언행이 고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18] 예를 들어, 재무 차관 및 차관보 시절 1994년 멕시코 통화 위기나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 당시 국제 통화 기금(IMF)과 긴밀히 협력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 의회에 출석하여 여러 차례 답변했지만, 많은 의원으로부터 "의회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샀다.[117]

5. 1. "Dirty industries" 메모 논란 (1991)

1991년 세계 은행 수석 부총재 겸 세계 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던 시기, 로런스 서머스는 내부용으로 작성된 메모 때문에 큰 논란에 휩싸였다.[113][114] 1991년 12월, 그가 서명한 "서머스 메모"라는 문서가 언론에 유출된 것이다.[17][112][127]

이 메모는 세계 은행이 공해 유발 산업을 개발도상국으로 더 많이 이전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128] 메모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 논점을 제시했다.[128]

  • 환경 오염으로 인한 비용은 주로 건강 피해로 인한 소득 손실로 계산되므로, 임금이 낮은 최빈국에서 오염이 발생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
  • 오염 비용은 오염이 심화될수록 증가하므로, 이미 오염된 국가에서 아직 오염되지 않은 국가로 오염 산업을 이전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규제가 강화되어 오염 처리 비용이 증가하므로, 오염 산업을 선진 지역에서 빈곤 지역으로 이전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서머스는 메모에서 "가장 낮은 임금 국가에 유독성 폐기물을 투기하는 것의 경제적 논리는 흠잡을 데 없으며, 우리는 이를 직시해야 한다"고 적었다.[17][128] 또한 "나는 아프리카의 인구 밀도가 낮은 국가들이 과도하게 오염되지 않았다고 항상 생각했다"고 덧붙였다.[18]

이 메모의 내용은 경제적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건강에 대한 인권이나 환경 정의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즉각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129]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 단체들은 서머스의 사임을 요구했고, 당시 브라질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호세 루첸베르거(Jose Lutzenberger)는 이를 "경제학자의 횡포한 무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111] 나아가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세계 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개발도상국에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11]

메모 내용이 알려지자 국내외에서 큰 파장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서머스와 함께 메모 작업에 참여했던 랜트 프리체트는 자신이 실제 작성자이며, 메모의 본래 의도는 풍자였다고 해명했다.[17][127] 프리체트는 유출된 메모가 문맥과 의도된 아이러니를 제거하기 위해 조작되었으며, 이는 "래리(서머스)와 세계 은행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한 고의적인 사기 및 위조"라고 주장했다.[19][17]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메모가 드러낸 문제적 시각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었다.

5. 2. 여성의 과학 분야 진출 관련 발언 (2005)

2005년 1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후원한 과학 및 공학 인력 다양화 컨퍼런스에서 서머스는 여성이 과학 및 공학 분야의 고위직, 특히 최고의 대학 및 연구 기관에서 종신직을 얻는 비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컨퍼런스는 원래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비공개를 전제로 기획되었다.[43] 서머스는 발언 시작 전, 자신의 접근 방식이 전적으로 실증주의적이며 발언 내용은 "도발적인 시도"가 될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44]

서머스는 고위 과학 및 공학 직위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이유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44][130]

# 고위직 가설: 남성이 여성보다 어려운 업무가 요구하는 시간적 제약이나 유연성 부족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고위직 여성은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을 확률이 높다.

# 본질적 적성 차이 가설: 높은 수준의 적성 분포에서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과학과 공학 능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여, 능력 분포의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모두에서 남성의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45][46][47] 서머스는 이 가설이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고 시사하며, 표준 편차의 작은 차이라도 분포의 양 극단에서는 매우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44] 그는 12학년 상위 5% 학생들의 표준 편차 차이를 보여주는 연구를 인용하며, 이것이 특정 분야의 적성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44]

# 사회화 및 차별 가설: 양육 방식과 같은 사회화 과정이나 지속적인 차별이 영향을 미친다.

서머스는 이 세 가설 중 본질적 적성 차이 가설의 중요성이 가장 크다고 보았으며, 사회화나 차별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는 개인적인 추측을 덧붙였다.[44][130] 그는 "이 문제들이 단순히 모든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44]

이 발언은 즉시 성차별적이며 학문적으로 부주의하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하버드 대학교 안팎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48][119][120] MIT의 생물학자 낸시 호프킨스는 발언 도중 불쾌감을 표현하며 퇴장했으며[131], 이후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서머스가 특정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생득적인 능력"이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131] 서머스는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49], 논란은 계속되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2005년 3월 15일 하버드 문리과대학 교수회는 서머스 총장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찬성 218표, 반대 185표, 기권 18표로 가결했다. 이는 하버드 약 370년 역사상 최초의 총장 불신임 가결이었다.[132][133] 하지만 대학의 최고 의결 기구인 하버드 법인은 서머스를 계속 지지했다. 교수들과 달리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머스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다. 대학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학생 응답자의 57%가 서머스의 사임에 반대했고, 19%만이 찬성했다.[54][134] 2005년 7월, 하버드 법인의 이사였던 콘래드 K. 하퍼는 서머스의 발언과 급여 인상에 항의하며 이사직을 사임했다.[55][56][136]

한편 서머스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머스의 제자였던 셰릴 샌드버그는 서머스가 경력 전반에 걸쳐 여성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발언한 것이라고 옹호했다.[51]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는 서머스의 발언이 "정당한 학술 담론의 범위 안에 있다"고 옹호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 간 능력의 통계적 분포, 특히 변동성에서 차이가 있다는 증거가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핑커는 통계적 차이가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서머스 역시 평균 능력의 차이가 아닌 분포의 차이를 언급했다고 설명했다.[53][137][138] 경제학자 이언 에어즈는 서머스가 제시한 통계적 논의, 즉 표준 편차의 차이로 인해 능력 분포 최상위권에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 방법론적으로는 타당하며, 서머스 스스로도 이를 "대략적이고 거친 계산"이라고 언급했음에도 언론이 그의 논점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139]

결국 이 논란은 서머스가 2006년 하버드 대학교 총장직에서 사임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110],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던 재무부 장관직 임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50]

5. 3. 금융 규제 완화 옹호



서머스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금융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특히 1999년 제정된 그램-리치-블라일리 법을 환영하며, 이 법이 60년 이상 은행의 상업 은행, 보험, 투자 은행 업무 겸업을 제한했던 글래스-스티걸 법(1933년 제정)의 핵심 조항을 폐지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9] 그는 "오늘 의회는 대공황 이후 금융 서비스를 규제해 온 규칙을 업데이트하고 이를 21세기를 위한 시스템으로 대체하기로 투표했습니다."라며, "이 역사적인 법안은 미국 기업이 새로운 경제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29][34] 또한 이 법안으로 "미국 금융 시스템은 21세기를 향해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34] 그러나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많은 비평가들은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2007-2008년 금융 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30][125]

서머스는 파생 상품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금융 시장 실무 그룹 일원으로서, 그는 당시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SEC) 의장 아서 레빗,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과 함께 파생 상품 규제 노력을 무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규제 부재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심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31][125] 1998년 7월, 당시 재무부 차관이었던 서머스는 의회 증언에서 장외(OTC) 파생 상품 거래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 정교한 금융 기관"이며, "지금까지 기관 OTC 파생 상품 시장에 대한 추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를 주장하는 측이 그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33] 그는 또한 서브프라임론의 증권화 상품 투기에 대한 정부 감독을 약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받는다.[125]

2000년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기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서머스는 앨런 그린스펀, 엔론의 케네스 레이와 함께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정부 규제에 있다고 주장하며, 시장 안정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환경 기준을 완화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27][28]

금융 위기 이후 서머스의 입장에 대한 주목도 있었다. 2009년 3월 ABC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A.I.G. 사태를 언급하며 "규제받지 않은 방식, 아무도 감시하지 않은 방식...은 터무니없다"고 말해 과거 규제 완화 입장에서 변화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35] 같은 해 2월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며 "상황이 변하면, 나는 내 의견을 바꾼다"고 말하기도 했다.[36] 2010년 4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ABC 인터뷰에서 서머스가 파생 상품을 규제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언급했다.[37]

5. 4.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서머스가 조 바이든의 2020년 대선 캠페인에서 경제 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러 진보 단체들은 바이든 캠프 측에 서머스를 더 이상 고문으로 기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93] 선라이즈 무브먼트와 정의 민주당 같은 단체들은 서머스가 과거 추진했던 정책들이 오늘날의 심각한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며 그의 배제를 요구했다.[94] 이러한 비판 여론에 직면하자 서머스는, 바이든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음 행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95]

5. 5. 하마스-이스라엘 공격 관련 논란

2023년 10월,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 공격 이후, 몇몇 하버드 학부생 단체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이스라엘 정권이 모든 전개되는 폭력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서한에 서명했다.[101][102] 이 서한은 일부 저명한 동문들과 로런스 서머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서머스는 이를 "역겹다"고 표현했다.[103] 서머스는 직원 채용 시 정치적 견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빌 애크먼의 주장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서한에 서명한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애크먼의 요구는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하며 선을 그었다.[104] 그는 하마스 공격 이후 대학 내 반유대주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하는 하버드 행정부를 여러 차례 비판했다.[105]

6. 저서


  •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관계 추정'' (1984),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국립 경제 연구소.
  • ''실업 이해'' (1990),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MIT 출판사.
  • ''모든 사람에게 투자하기: 개발도상국의 여성 교육'' (1994), 워싱턴 D.C.: 세계 은행.
  • ''자유롭고 개방된 아시아 자본 시장에 대한 미국-일본의 지분'' (1998), 뉴욕: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일본 경제 및 비즈니스 센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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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문서 원래는 물리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곧 경제학으로 전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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