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오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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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오 지진은 1498년 9월 11일 도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기나이 지역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피해를 입혔다. 특히 이세, 미카와, 스루가, 이즈 지역에 큰 해일이 발생하여 해안가 가옥들이 휩쓸려가고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규모는 M8.3~8.6으로 추정되며, 쓰나미는 기이반도에서 보소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 지진으로 하마나 호가 바다와 연결되었고, 가마쿠라 대불전이 파괴되는 등 지형 변화와 건축물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메이오 4년(1495년)에도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메이오 지진
지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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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오 지진의 진도 분포
지진 정보
이름메이오 지진
현지 날짜1498년 9월 20일 (율리우스력 1498년 9월 11일, 메이오 7년 음력 8월 25일)
현지 시간오전 8시경
규모8.6 일본 기상청 규모
규모 기타표면파 규모 Ms8.6
진도6
진도 지점도카이 지방
진앙일본 도카이 해역
종류해구형 지진
쓰나미 정보
쓰나미 발생 여부발생
쓰나미 높이 (추정)최대 10m
쓰나미 피해 지역스루가 만 연안 에리
오가와: 8m
이세
시마: 6~10m
피해 정보
사망자5,000–41,000명 (추정)
피해 지역일본 혼슈 지방
지질학적 정보
단층난카이 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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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헌상의 도카이도 해역 지진 기록

메이오 7년 8월 25일(율리우스력 1498년 9월 11일) 오전 8시경, 도카이도 해역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하였다.

오유도노 위의 일기, 사네타카 공기, 고호코인키, 도키쿠니쿄키, 다이조우인지샤조우지키 등에는 교토와 나라 등 기나이 인근 지역의 피해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고호코인키와 오유도노 위의 일기에는 윤10월까지, 사네타카 공기에는 11월 7일까지 여진으로 추정되는 지진 기록이 남아 있다. 다이조우인지샤조우지키에는 고후쿠지로 보이는 불당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등 기나이의 여러 피해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남아 있다.

고호코인키에서는 도카이도 해안 지역의 피해를 "대지진이 일어난 날, 이세, 미카와, 스루가, 이즈에 큰 물결이 찾아와 덮쳐와 해안이 2-30 안쪽의 민가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쓸려갔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우마가 부지기수로 운명해 전대미문의 사태가 일어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이국에서 보소국에 걸쳐 태평양과 인접한 지역에서 강한 진동이 있었다.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의 오이마타쿠보하치만 신사의 제가수석이자 후겐지의 "왕대기"에서는 메이오 7년(1498년)경에 "(전략) 24일(sic.) 진각 경 천지가 진동하여 국토 곳곳에 피해가 일어나 산사태가 일어나고 금광이 무너지며 나카야마는 붕괴되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가이국에도 강한 흔들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대기"에 나오는 '나카야마'는 니시야쓰시로군 지역(현 미노부정)에 있었던 나카야마 금광으로 추정되며, '금광'이라고 적힌 곳은 위치 관계를 따졌을 때 고슈시에 있는 고슈 금광으로 추정된다.

각지의 흔들림은 에도 시대 일어났던 안세이 도카이 지진호에이 지진이랑 거의 비슷한 지진으로 보이지만 지진 피해 기록은 앞의 두 지진보다 훨씬 적다. 지진 피해가 별로 없었다는 문헌 기록도 있으며, 엔쓰쇼도신사어록에 따르면 도노에 지역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땅이 갈라진 곳이 있으며 책에 기록된 아사바 저지대 지역의 흔들림 정도를 추정하였을 때 현대의 진도로 환산하면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진도7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마노넨다이키의 기록에서는 구마노 본궁의 신전이 붕괴되고 나치의 보샤가 무너졌다고 기록되었으며 기이의 유노미네 온천은 온천수가 10월 8일까지 약 42일간 나오지 않았다고 기록되었다.

가와스미 히로시는 메이오 지진의 규모를 MK7.5 값을 기반으로 총 규모를 M8.6 정도라고 환산하였다. 그 외에도 규모 M8.3 정도라는 추정도 있으며 도카이 해역에서 이즈반도 남쪽 해역까지를 단층으로 하는 단층 모델을 기반으로 지진 모멘트를 M0= 7 × 1021N・m(모멘트 규모 Mw8.5)로 추정하기도 한다. 진원지 동쪽 끝이 스루가만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니스 해령에 있는 활단층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3. 쓰나미

1498년 메이오 지진 당시, 도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강한 지진으로 인해 기이반도에서 보소반도에 이르는 지역에 쓰나미 피해가 발생했다. 스루가만 연안에서 최대 8m, 이세, 시마에서는 6m에서 10m의 쓰나미가 발생했는데, 이는 안세이 도카이 지진 당시의 쓰나미 높이를 넘는 것이다. 이즈반도 서안과 시마반도에서는 국지적으로 매우 큰 쓰나미가 덮쳤다.

난카이 해곡 동쪽 지역에 쓰나미 파원 지역이 더 크다는 점을 근거로, 진원지를 제니스 단층 지역으로 가정하면 시마반도에서 오마에곶, 이즈반도, 보소반도에 이르는 지역의 쓰나미 높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원래 담수호였던 하마나호는 쓰나미로 인해 태평양과 연결되어 이마기레(今切)라고 불리는 만구가 만들어져 호수가 커졌다. 가마쿠라고토쿠인 대불전도 쓰나미로 붕괴되어 가마쿠라 대불상이 무로마치 시대 말부터 야외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는 가설도 있다.

이즈국에서는 호조 소운이 쓰나미로 인한 혼란을 틈타 이즈의 후카네성에 있던 아시카가 자차마루를 급습하여 멸망시켰다. 린소인 기록에는 스루가만 연안의 시다군에서만 익사자가 26,000명에 달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메이지 시대 시다군의 총인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로, 260명의 오기라는 주장도 있다. 항구마을 아노쓰(현 쓰시)는 메이오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보고 황폐해졌다가 호에이 지진 이후 복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노가와강은 쓰나미 피해로 인해 현재의 하구 위치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3.1. 쓰나미 피해 상황

메이오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기이반도에서 보소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걸쳐 피해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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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피해 상황
지역고문서 기록추정 파고
아와 고미나토(현 지바현 가모가와시)단조지 기록: "큰바다가 울리고 토사가 함몰되어 절도 함께 가라앉았다."5m
사가미 가마쿠라(현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물이 들어차 대불상과 사당이 파괴되었다." (가마쿠라 대일기)8-10m
이즈 하치조섬(현 도쿄도 하치조정)"쓰나미가 솟구쳐 배와 화물도 같이 밀려들어왔다." (하치조섬 고미자 아오가시 연대기)4m
니시나(현 시즈오카현 니시이즈정)"니시나 마을에 바다가 육지로 넘쳐흘러 18-9정 정도 절 아래 논밭이 전부 물에 잠겼다." (사와신사 연혁)5m
야기사와(현 이즈시)"쓰나미가 대문 앞까지 왔다." (묘조지의 호에이 쓰나미?의 전승)22m
도이(현 이즈시)"순식간에 마을 내 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재산이 날아갔다." (사카에겐지 유래)18m
헤다(현 누마즈시)"넙치들이 마을에 흘러들어왔다." (마을 전승)20m
(히라메타이라 36.4m)
에리(현 누마즈시)"미각(약 오후 2시)경 에리촌에 쓰나미가 덮쳐 많은 사람들이 쓸려가 실종되었다." (에리 고호인 시조 스즈키씨 역세법명록)16m
시미즈(현 시즈오카시 시미즈구)"바닷가의 절 불각과 인가들이 모조리 물에 잠겨 죽었다." (일해기)5-6m
야이즈(현 야이즈시)"익사자가 대략 26,000명에 달했고, 린소에서 옛적부터 땅이었던 곳이 홀연히 바다가 되었다."(린소인 기록)6-8m
하마오카(현 오마에자키시)"매우 큰 파도가 하늘까지 닿더니 일순간에 땅을 전부 쓸고 가버렸다." (엔도리마쓰당 신사 어록)8m
도토미 아라이(현 고사이시)"1리 남짓해 이웃했던 나루터가 이제는 끊어지고야 말았다." (도에이칸)6-8m
미카와 아쓰미(현 아이치현 다하라시)"진시에 대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고 동시에 바다가 큰 소리를 내며 몰려왔다." (아쓰미군사)5-6m
이세 오미나토(현 미에현 이세시)"이번 지진으로 다카시오와 오미나토의 집 천여 채가 쓸려가고 500여명이 사망하였다." (우치미야코로 기록)6-8m
구자키(현 도바시)"지난 8월 25일 대지진으로 가노시마의 인가들이 유실되었다." (우치미야코로 기록)8-15m
초시오야(현 시마시)"대지진으로 높은 파도가 덮쳐 그 가미미야가와의 우에야마까지 파도가 덮쳐와 초시오야에서 180가구가, 고시오에서는 100여가구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바다로 휩쓸려가 시오하마, 다바타까지 황폐화되었다." (모토다유라이)8-15m
기이 구마노(현 구마노시, 와카야마현 신구시)"해변에서 파도가 몰아쳐 신사의 종루당을 무너뜨렸다." (구마노 연대기)4-5m


* [[하마나호]]: 쓰나미로 인해 태평양과 연결되어 만구가 만들어지고 호수가 커졌다.
* [[가마쿠라]] [[고토쿠인]] 대불전: 쓰나미로 붕괴되어 대불상이 야외에 노출되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 [[이즈국]]: 호조 소운이 쓰나미로 인한 혼란을 틈타 이즈의 후카네성을 급습, 자차마루 세력을 멸망시켰다.
* [[시다군 (시즈오카현)|시다군]]: 익사자 26,000명 기록은 오기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 [[아노쓰]]: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초까지 황폐화되었으며, 메이오 지진 피해 후 호에이 지진 이후 복구된 것으로 추정된다.
* [[기노가와강]]: 쓰나미 피해로 현재 위치로 하구 변경 추정.

3.2.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이주

미에현 도바시 구자키정 오쓰 촌락은 메이오 지진으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최대 높이 15m의 쓰나미 피해를 입었다. 지진 이후 주민들은 전부 고지대로 이전하여 약 500년간 현재까지 저지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부들도 고지대에서 생활하며 바닷가로 이동하는 형식으로 어업에 종사한다. 이 때문에 1707년 호에이 지진과 1854년 안세이 도카이 지진 당시에는 익사자가 거의 없었다. 특히 안세이 도카이 지진 당시에도 구자키 지역이 쓰나미가 매우 높았던 지역으로 '구사지 쓰나미유실탑' 비문에서는 쓰나미 높이가 7장 5척(약 22.7m)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 메이오 4년 8월 15일 지진

가마쿠라 대일기일본어에 따르면 메이오 4년 8월 15일(1495년 9월 3일) 유이가하마에서 참배길로 쓰나미가 밀려와 고토쿠인의 대불전이 파괴되고 익사자가 200여 명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일본지진사료 증정》에서는 이 기록이 메이오 7년 8월 25일 지진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우사미(2003)도 이 기사는 의심스러우며 메이오 7년 8월 25일 지진과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날 《오유도노노우에노닛키》에 "지진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고호쿄인키》에도 "15일 을축 맑음, 유시 지진"이라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교토에서 이날 지진을 느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고대~중세 시기 기록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지진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1495년 지진을 사가미 해곡 거대지진의 검토 후보로 꼽기도 한다. 《구마노넨다이키》에도 같은 날 "가마쿠라 대지진"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여러 사료에서 이날 지진의 존재가 뒷받침되고 있다. 단, 《구마노넨다이키》는 근대 시기 쓰여졌으며 《가마쿠라 대일기일본어》를 바탕으로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가마쿠라의 지진해일을 기술하는 확실한 사료는 《가마쿠라 대일기일본어》뿐이다.

시즈오카현 이토시 교육위원회의 가네코 히로유키를 주임으로 한 우사미 유적 발굴 조사에서 발견된 모래층이 15세기 말경 쓰나미 퇴적물로 밝혀졌다. 이 퇴적물은 해발 약 7.8m 부근에 존재하며, 난카이 해곡 지진 쓰나미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메이오 간토 지진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878년 사가미-무사시 지진887년 닌나 지진, 1703년 겐로쿠 지진1707년 호에이 지진처럼 사가미 해곡난카이 해곡이 진원으로 추정되는 거대 지진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1495년 지진과 1498년 지진도 연동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호조 소운오다와라성을 탈취한 시기는 여러 설이 있지만, 메이오 4년 9월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메이오 4년 8월에 발생한 지진 쓰나미로 인해 오다와라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그 혼란을 틈타 오다와라성을 탈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 소운은 메이오 7년 도카이 지진 이후 이즈반도 서안도 점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다.

5. 메이오 7년 6월 11일 지진

오유도노 위의 일기, 고호코인키, 조쿠시구초 등 몇몇 사료에서는 1498년 6월 30일 15시경 기나이 부근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피해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남은 기록 수는 메이오 7년 8월 25일의 지진의 기록보다 훨씬 적다. 고호코인키에서는 8월 25일의 지진에 대해 "진시에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6월 11일에 일어났던 지진보다 갑절은 더 강했다"라고 기록하여 6월 11일의 지진 규모는 8월 25일에 있었던 지진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854년의 안세이 지진 당시 도카이 지진난카이 지진의 교토 부근 진동 기록을 토대로 추정할 때 교토에 있었던 진동의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4-5 사이로 추정된다.

같은 날 10시 경 휴가나다를 진원으로 하는 지진이 발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사미(2003)는 이를 보고 또 다른 지진이 일어났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규슈군기에서는 규슈 지역 해역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6. 난카이 지진과의 연동 가능성

메이오 지진에 관한 역사 기록은 도카이도 지역에만 남아 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연동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난카이 지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는 15세기 당시 일본이 오닌의 난 이후 전란이 계속되던 시기여서 상세한 사료가 부족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1988년 고치현 나카무라시(현 시만토시) 시만토강 지류 나카스지가와강 강변의 아조노 유적에서 15세기경 땅에서 모래가 분출된 흔적이 발견되었고, 1993년에는 아조노 유적과 인접한 후나토 유적에서 땅이 갈라지고 돌들이 늘어선 흔적이 발견되었다. 아조노 유적에서는 모래 분출 흔적 이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도쿠시마현 이타노정 요시노강 충적 평야 저지대에서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있었던 마을 터를 조사한 결과, 액상화현상으로 땅에서 모래가 분출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에히메현 니이하마시 구로시마 신사 문서에는 "메이오 7년 지진 재해로 땅이 크게 무너지고 섬이 6-7보는 유실되었으며 2-3개 섬은 아예 유실되는 등 메이오 7년 재해로 본전과 배전이 모두 파괴되어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시코쿠 지방에서 15세기 말경 대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과 고고학적 자료가 발견되고 있다.

메이오 7년 6월 11일 미~신시경(1498년 6월 30일 15시경) 규슈에서 가옥 붕괴 피해, 이요 지방에서 함몰 등의 지각 변동 현상이 있었다는 기록 등 휴가나다 지진으로 추정되는 지진 기록이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교토기나이에서도 지진을 느꼈다는 기록이 있어, 두 기록이 동일한 지진이라면 진원지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노가와강 하구 와다우라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난카이 지진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역사자료휘편"에는 6월 11일 쑤저우에서 "각 읍의 하천들이 진동하여 크게 흔들렸고, 불어나 다들 급히 도망쳤다"라는 기록이 있고, 중국 장쑤성, 저장성에서 장강 등 여러 강이 진동하고 연못과 우물 수면 높이가 변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호에이 지진안세이 난카이 지진 당시에도 나타났던 현상이므로, 휴가나다 지진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사실은 난카이 지진이라는 학설도 있다. 이 지진이 난카이 지진이라면, 난카이 해역 지진이 도카이 해역 지진보다 73일 먼저 발생한 것이 된다.

그러나 6월 11일 지진을 난카이 지진으로 확정하려면 쓰나미 시뮬레이션 등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기노가와 하구 쓰나미를 도카이 지진과 8월 25일 지진의 합으로 보고, 메이오 지진은 호에이 지진처럼 도카이 지진과 난카이 지진이 연동한 연동형지진이라는 설도 있다. 규슈군기 기록을 재해석하면 규슈 인근 슬래브 내 지진으로 추정할 수도 있고, 6월 11일 지진은 필리핀해판 내부 지진이며, 이 지진이 교토에 강한 진동을 전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규슈군기는 100년 후 저술된 서적으로, 메이오 7년 지진과 게이초 분고 지진 등이 창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고려해 6월 11일 지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7. 도카이 지진의 영향

이 지진으로 해저가 최대 4미터까지 융기한 것으로 추정되며, 해안 근처에서는 훨씬 작은 침강이 있었다. 하마나 호는 쓰나미가 호수와 태평양(엔슈나다) 사이의 낮은 지형을 뚫고 지나가면서 염수호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바다로 통하는 수로를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