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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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성우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외화 더빙 등 다양한 매체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직업이다. 1925년 라디오 방송 시작과 함께 등장했으며, 1940년대 '성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애니메이션 붐과 함께 활동이 활발해졌고, 1990년대에는 아이돌화, 탤런트화가 진행되며 성우 붐이 일어났다. 성우는 라디오 드라마, 게임, 내레이션, 무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성우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관리받는다. 출연료는 랭크제에 따라 결정되며, 최근에는 '아이돌 성우', '성우 아티스트' 등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는 성우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성우
일본 성우 산업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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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녹음 부스
개요
정의음성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
역할애니메이션 캐릭터 음성 연기
외화 더빙
라디오 드라마 출연
게임 캐릭터 음성 연기
내레이션
특징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과 함께 성장
아이돌, 가수 활동 병행하는 경우 증가
전문적인 연기 기술 및 다양한 음색 필요
역사
초기라디오 드라마 시대부터 존재
1960년대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더빙 시작
1970년대성우 팬덤 형성
1980년대아이돌 성우 등장
1990년대 이후성우 활동 영역 확장 (게임, 드라마 CD 등)
성우 인기 상승 및 전문 직업으로 자리매김
주요 활동 분야
애니메이션가장 대표적인 활동 분야
외화 더빙영화, 드라마 등
게임비디오 게임, 모바일 게임 등
라디오 드라마음성 연기 중심 드라마
내레이션다큐멘터리, 광고 등
드라마 CD음성 연기 중심 드라마
보컬캐릭터 송, 음반 발매
무대성우 콘서트, 낭독극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성우 관련 프로그램 출연
성우 양성
교육 기관전문 성우 양성 기관
대학, 전문학교 관련 학과
오디션방송사, 제작사 주최 오디션
성우 관련 용어
아테루(あてる)더빙 작업
가와루(かわる)배역 변경
나마아니메(生アニメ)공개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더빙 이벤트
외화 드라마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드라마
후부키(후부키)외국 영화의 일본어 더빙
성우 관련 단체
일본 배우 연맹일본 배우 연맹 웹사이트
81 프로듀스81 프로듀스 웹사이트
기타
관련 정보일본 애니메이션
일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라디오 드라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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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성우 - 우츠미 아키코
    우츠미 아키코는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 모모》의 밍키 모모, 《세일러문 시리즈》의 오사카 나루, 《드래곤볼 Z》의 어린 손오반, 《슬램덩크》의 채소연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린 일본의 성우이자 배우이다.

2. 역사

1925년 NHK의 전신인 도쿄 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전문 배우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일본 최초의 성우로 여겨지며, 당시 신문에서는 '라디오 연기자'라고 불렸다. 1941년 NHK는 라디오 드라마 전문 배우 양성을 위한 '도쿄 중앙 방송국 전속 극단 배우 양성소' 연구생을 모집했고, 1942년에 도쿄 방송 극단 1기생이 데뷔하면서 '성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성우'라는 명칭은 요미우리 신문의 예능기자였던 코바야시 토쿠자부로나, NHK의 예능방송 담당 프로듀서 오오카 카츠오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1951년 민간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도쿄(지금의 도쿄 방송)가 개국하고 전속 방송극단(라디오 도쿄 방송극단, 나중의 TBS방송극단)을 설립하였다. 1957년에 방송한 연속 라디오 드라마 《아카도 스즈노스케》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에는 성우 소개 기사가 신문의 라디오 란에 실리고, 팬레터가 쏟아지는 등 성우 지망생도 급증하였다. 1953년 NHK 도쿄 방송극단의 제5기생 모집에는 600: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성우인 카츠타 히사시는 제1기 성우 황금시대라고 평가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1933년 일본 최초의 발성영화인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힘과 여자의 세상》이 공개되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목소리를 담당한 것은 희극 연기자 후루카와 롯파를 시작으로 당시의 영화배우들이었다. 1942년에는 중국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서유기·칠선공주 이야기(칠선공주)》가 일본에서 공개되어, 활동변사 출신인 도쿠가와 무세이, 야마노 이치로가 목소리를 담당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발족한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의해 일본에서도 일정 수익을 얻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제작되어 영화배우나 코미디언, 방송극단원이 기용되었다. 또한 외화의 더빙은 텔레비전 시대가 되면서 맡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여러 차례 성우 붐이 일어났다. 1961년 5사 협정으로 인해 TV 방송국에 일본 영화 공급이 중단되면서 해외 드라마나 외국 영화 등의 더빙이 많이 이루어졌고, 이를 배경으로 성우 인기가 높아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애니메이션 붐과 함께 성우들이 음악 활동도 병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히트는 "성우(seiyu)"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성우의 아이돌화, 탤런트화가 진행되어 라디오, 음반,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팬을 확보하였다.

1980년대 말에는 TV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트루퍼》에 출연한 남성 성우 5명으로 1989년에 결성된 유닛 "NG5"가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성우가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늘고, 인터넷 성우가 출현하는 등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2.1. 라디오 드라마 시대

1925년 NHK의 전신인 도쿄 방송국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면서, 목소리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일본 최초의 성우로 여겨지며, 당시에는 '라디오 연기자'로 불렸다. 1941년 NHK는 라디오 드라마 전문 배우 양성을 위한 '도쿄 중앙 방송국 전속 극단 배우 양성소'를 설립하였고, 1942년 도쿄 방송 극단 1기생이 데뷔하면서 '성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성우'라는 명칭은 요미우리 신문의 예능기자였던 코바야시 토쿠자부로, 또는 NHK의 예능방송 담당 프로듀서 오오카 카츠오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1951년 민간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도쿄(지금의 도쿄 방송)가 개국하고, 전속 방송극단을 설립하였다. 1957년에 방송한 연속 라디오 드라마 《아카도 스즈노스케》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에는 성우 소개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팬레터가 쏟아지는 등 성우 지망생도 급증하였다. 1953년 NHK 도쿄 방송극단 제5기생 모집에는 600: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시기를 성우인 카츠타 히사시는 제1기 성우 황금시대라고 평가했다.

2.2. 성우 붐

일본에서는 크게 세 번의 성우 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 제1차 성우 붐 (1960년대): TV 방송 초창기, 오사협정으로 인해 일본 영화 공급이 줄어들자 외국 드라마와 영화 더빙이 많아지면서 성우의 인기가 높아졌다.
* 제2차 성우 붐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전반): 애니메이션 붐과 함께 성우들이 음악 활동도 병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히트는 "성우(seiyu)"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 제3차 성우 붐 (1990년대 중반): 성우의 아이돌화, 탤런트화가 진행되어 라디오, 음반,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팬을 확보하였다.

1980년대 말에는 TV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트루퍼》에 출연한 남성 성우 5명으로 1989년에 결성된 유닛 "NG5"가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라디오의 증가, 인터넷 성우의 출현 등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2.1. 제1차 성우 붐 (1960년대)

1961년 5사 협정으로 인해 TV 방송국에 일본 영화 공급이 중단되면서, 해외 드라마나 외국 영화 등의 더빙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를 배경으로 성우 인기가 높아졌다. 당시 NHK는 자막 방송을 주로 하였고, 일본어 더빙판은 민영 방송사가 중심이었다. 이후 해외 작품은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성우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았고, 더빙을 주로 하므로 더빙 탤런트, 목소리를 맞추는 것에서 유래한 아테시라고 불렸다. 더빙 전성기에 도쿄 배우 생활 협동 조합(배협)이 탄생하였고, 이후 배협에서 나뉘어 많은 성우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

알랭 들롱을 주로 연기한 노자와 나치가 붐을 일으킨 중심 인물이었다. 영화배우는 5사 협정과 캐릭터 문제로 더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TV 더빙은 라디오 시대 방송극단 출신이나 신극 무대 연기자가 주로 맡았다. 해외 애니메이션에서는 라쿠고카아사쿠사 출신 코미디언도 캐릭터 목소리를 담당하였다.

2.2.2. 제2차 성우 붐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전반)

1970년대 중반부터 애니메이션 붐과 함께 일어난 붐이다. 그 붐으로 인해 성우 일과 병행한 음악활동이 성행하게 되었다. 카미야 아키라, 후루야 토오루, 후루카와 토시오 등 주로 애니메이션의 미남 캐릭터를 연기하는 인기 성우를 주축으로 한 《슬램 스틱》이 결성, 라이브 활동을 펼쳤다. 그 외에도 많은 성우들이 음반을 내었으며, 당시 만 단위 이상의 음반 판매실적을 올린 성우로는 한 케이코, 토다 케이코, 카미야 아키라, 미즈시마 유, 슬램스틱이 있다. 1979년에 방송개시한 《애니토피아》등 애니메이션 성우가 진행을 맡는 라디오 방송 등도 탄생. 라디오 드라마로는 성우의 인기를 배경으로 한 《밤의 도라마 하우스》가 있으며 아마추어 성우 컨테스트도 개최되었다.

이 시기에 애니메이션 잡지가 창간되기 시작하였는데, 《아니메주》의 창간 편집장인 오가타 히데오는 성우의 아이돌화를 편집 방침의 하나로 털어놓았다. 《아니메주》 이외에도 다른 애니메이션 잡지에서도 성우 코너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성우 정보를 발신하였으며, 애니메이션 팬이 성우를 동경하는 직업으로 삼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인재의 공급·육성 면에서는 성우 전문 프로덕션이 분열하면서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나, 각 프로덕션이 성우 양성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방송극단 출신자나 무대 연기자들이 배우활동의 일환이나 여가 활동으로서 성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성우를 목표로 한 성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아사가미 요코가 그 1호로 불리고 있다.) 이 붐은 대략 1980년대 전반까지로 여겨진다.

이 무렵이 되어 성우라는 말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성우〉라는 단어는 정착되어 있지 않았으며 "성우를 하고 있다"고 하면 같은 발음이여서 수퍼마켓〈세이유우〉(미국 월마트의 일본 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몇 명의 성우가 언급하였다.
성우 직업은 일본에서 라디오가 등장한 이후부터 존재해 왔다.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덕분에 "성우(seiyu)"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한 성우 매니저와의 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야마토 붐 이후로 '성우'라는 단어가 즉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성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들은 종종 '세이유(Seiyu) 슈퍼마켓에서 일하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2.2.3. 제3차 성우 붐 (1990년대 중반)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난 성우 붐은 1993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의 제1차, 2차 성우 붐에 비해 성우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일이 증가하여 아이돌화, 탈랜트화가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예능사무소가 성우 매니지먼트를 기업화하는 형태가 된 것도 이 붐이 일어난 시기부터이다.

이 붐으로 인기를 얻은 성우 대부분은 라디오에서의 활동을 통해 팬을 확보하여 CD를 발매하거나 큰 홀에서 콘서트를 열기 시작하였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시이나 헤키루, 코다 마리코 등이 선구적인 성공 사례이다. 1980년대 제2차 붐이 일어났을 때에도 성우가 라디오 방송에서 DJ를 맡는 일도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레코드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성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계약한 레코드 회사가 방송 스폰서가 되어 현저하게 상업화되었다. 또한 성우사무소나 레코드 회사가 신인 성우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그런 방식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부터 음성을 곁들인 비디오 게임이 증가하여 성우의 본업 중 하나가 되었다.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의 비디오 게임 이벤트가 수없이 개최되었으며, 성우가 진행을 맡은 비디오 게임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PC 게임에도 음성이 들어간 게임이 늘어나, 이쪽에서는 어덜트 게임을 전문으로 활약하는 성우 외에도 어덜트 게임에 비중을 두는 프로덕션도 등장하였다. 한편 성인 애니메이션이나 어덜트 게임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는 프로덕션도 존재한다.

이 붐에 영향을 받아 1994년 첫 성우전문잡지 《성우 그랑프리》와 〈보이스 아니메주〉가 창간되었으며, 1995년에는 성우 전문 TV 방송 《성우 클럽》이 탄생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으로 인해 〈아이돌 성우〉(후술)로 일컬어지는 성우가 급격히 증가하여 일반 아이돌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 거대 민영방송의 특별 방송에서는 이 3차 성우 붐이 발생한 배경으로서 연예인 아이돌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는 마츠다 세이코, 오냥코클럽 등 아이돌이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1990년대 중반기에는 아이돌, 특히 이성에 대한 동경의 대상이 없고, 그 잠재요소로 애니메이션이나 미소녀 게임의 상승효과도 겹쳐, 성우 붐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보였다.

2.2.4. 제3차 성우 붐 이후 (200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성우가 진행을 맡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성우 사무소에 소속되지 않고 스스로 인터넷 라디오나 라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자주 제작하여 레코딩을 하는 인터넷 성우도 출현하였다. 이는 인터넷 아이돌의 성우판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인 성우가 정식 데뷔에 앞서 인터넷 라디오나 이벤트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늘었다.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성우를 둘러싼 양상이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에 활약하던 성우들이 계속해서 안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2000년대에 데뷔한 신인 성우들이 애니메이션, 게임, 외화 등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를 제4차 성우 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혹은 제3차와 제4차의 간격은 거의 없거나 완전히 없다는 의견도 있다.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3. 성우가 되는 법

성우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크게 방송 가극단 출신, 아역 출신, 무대 연기자 출신, 양성소 출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방송 가극단 출신은 NHK와 민영 방송에서 조직한 극단에서 활동한 사람들로, 이들을 가리켜 '성우'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방송 가극단 출신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아역 출신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부터 아동 극단에서 활동하며 연기력을 쌓은 경우이다. #아역 출신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박로미와 같이 무대 연기자 출신은 극단에서 활동하다 애니메이션 관계자의 눈에 띄어 성우로 데뷔한 경우이다. #무대 연기자 출신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비롯한 양성소 출신은 전문학교나 성우 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고 오디션을 거쳐 성우가 된 경우이다. #양성소 출신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이 외에도, 아이돌, 가수, 리포터, 코미디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우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야마모토 유리코, 토다 케이코, 사쿠마 레이 등이 아이돌에서 전향한 대표적인 예이다. 호리에 미츠코는 애니메이션 가수 활동과 성우 활동을 병행했다. 오오노 마리나, 유즈키 료카그라비아 아이돌 출신이며, 카카즈 유미는 리포터 출신, 고다 호즈미는 코미디언 출신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성우들이 일본 아이돌 산업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히라노 아야, 쿠스미 코하루, 미즈키 나나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모두 성우가 되기 전에 이미 주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배우나 가수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3.1. 방송 가극단 출신

1941년 NHK는 라디오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배우를 양성하기 위해 '도쿄 중앙 방송국 전속 극단 배우 양성소' 연구생을 모집했다. 다음 해인 1942년에 도쿄 방송 극단 1기생이 데뷔했으며, 이들이 성우 제2호로 여겨진다. 한편 '성우'라는 말은 이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성우'라는 명칭은 요미우리 신문의 예능 기자였던 고바야시 도쿠자부로가 만들었다는 설과, NHK의 예능 방송 담당 프로듀서였던 오카 가쓰오가 명명했다는 설이 있다.

1951년 민간 라디오 방송국인 라디오 도쿄(지금의 도쿄 방송)가 개국하고 전속 방송 극단(라디오 도쿄 방송 극단, 후의 TBS 방송 극단)을 설립했다. 1957년에 방송된 연속 라디오 드라마 《아카도 스즈노스케》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활약하는 성우들의 경력을 보면, NHK와 민영 방송에서 조직한 극단 출신이 많다. 이들은 방송국 아나운서와는 별도로 예능을 담당하기 위해 양성되었으며, 주로 라디오 드라마에서 활동한 방송 탤런트였다. 이들을 가리키는 '성우'라는 단어가 탄생했으며, 이들 극단은 연예 기획사의 시초가 되었으나 지금은 모두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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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명주요 인물
NHK 도쿄 방송 극단이와오 긴시로, 가토 미치코, 나카무라 기네코, 구로사와 료, 야마노우치 마사토, 가쓰타 히사시, 나고야 아키라, 다카하시 가즈에, 사토미 교코, 가와쿠보 기요시
NHK 삿포로 방송 극단와카야마 겐조
NHK 규슈 방송 극단우쓰미 겐지 등 다수
라디오 도쿄 방송 극단 (현 TBS)오히라 도루, 나카무라 다다시, 다키구치 준페이, 다나카 노부오, 아사도 데쓰야, 무카이 마리코
지방 방송국


지방 방송국 극단 출신 성우들은 라디오 드라마 시대에만 활동했으며, TV 시대가 되면서 해외 작품 더빙 등 성우 업무는 도쿄로 집중되었다.

3.2. 아역 출신

나미카와 다이스케, 사카모토 마아야, 시미즈 카오리, 사와시로 미유키, 이리노 미유, 사이토 아야카, 히라노 아야, 키무라 스바루 등은 초·중등학교 시절부터 성우로 활약하기 시작한 아역 출신 성우이다.

후루야 토오루, 시오야 요쿠, 호리카와 료, 츠루 히토미, 토미나가 미나, 이이즈마 마유미, 호소나 요코, 센다이 에리, 와타나베 아케노, 노시미즈 아미, 키타무라 에리 등은 초등학교·중학교 시절부터 아동극단에 소속되어 연기력을 쌓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혹은 그 전후로 제1선에서 활약한 경우이다.

3.3. 무대 연기자 출신

박로미, 야지마 아키코, 코바야시 사나에, 코야마 리키, 시라토리 테츠, 오오바 고우, 무라타 아키노, 타카하시 리에코 등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후 극단에 입단하여 무대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애니메이션 관계자의 눈에 띄어 성우로 활동하게 된 경우이다. 이들은 메이저 신예 계열의 영화방송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3.4. 양성소 출신

현재 제1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성우들을 보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후 전문학교(성우과), 성우 관련 학교, 성우 사무소에서 직접 운영하는 성우 양성소 등에서 1년에서 수년간 교육을 받은 뒤 오디션을 거쳐 성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는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을 했다가 양성소를 통해 성우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전문학교(성우과)나 무허가 학교(성우과) 등을 졸업한 후, 성우 사무소 소속 오디션을 치러 해당 사무소 직영 양성소에 편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양성소 졸업 후 다른 양성소로 들어가는 사례도 많다.

양성소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망생 절반은 좌절하기도 한다. 매년 양성소 졸업생은 2천 명이 넘지만, 성우 양성소에 소속되는 사람은 그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좁은 문이다.

1980년대 이후 데뷔한 성우 대부분이 양성소 출신이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야마데라 코이치, 이노우에 키쿠코, 이시다 아키라, 히사카와 아야, 미츠이시 코토노, 모리카와 토시유키, 스즈무라 켄이치, 타무라 유카리, 나카하라 마이, 시미즈 아이, 노토 마미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작품이나 잡지 기획에 따라 일반 오디션에서 기회를 얻은 사람도 있지만, 그 후 양성소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성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사노 마스미, 호리에 유이, 사와시로 미유키, 노가와 사쿠라, 이노우에 마리나 등이 콘테스트를 거친 후 성우 양성소를 통해 성우가 되었다.

4. 성우의 이모저모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연기자이며, 그 출연 형태는 매체의 발전에 따라 레코드, 라디오, 텔레비전 등으로 확대되었다. 1910년(메이지 43년) 일본 최초의 레코드 회사가 설립되어 가부키 음악 등 연예 녹음이 보급되었고, 1925년(다이쇼 14년)에는 일본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어 무대극, 영화극, 방송극 등이 전달되었다.

성우(声優)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요미우리 신문』의 연예 기자 고바야시 도쿠사부로와 일본방송협회(NHK)의 연예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 오오카 류오, 두 가지 설이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926년(다이쇼 15년)에는 『요미우리 신문』이 성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1941년(쇼와 16년), NHK는 라디오 드라마 전문 도쿄 방송 극단을 설립한다. 1956년(쇼와 31년)에는 TBS가 해외 드라마의 더빙 방송을 실시한다. 1958년(쇼와 33년)에는 『백사전』이 극장 공개되었고, 1963년(쇼와 38년)에는 『철완 아톰』의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다.

성우는 당초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나 방송국 극단원을 가리켰고, 텔레비전 시대가 되면서 더빙, 애니메이션 연기를 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69년(쇼와 44년) 『광명사전』 제2판부터 "더빙"을, 2008년(헤이세이 20년) 제6판부터 "애니메이션"을 해설문에 추가했다. 방송 극단원은 성우라는 명칭을 싫어하여 자신을 배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으며, 야마다 야스오나 우츠미 켄지 등도 '성우'라는 명칭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청의 『연극 연감』에서는 연극 관계자를 "배우", "배우, 성우", "성우, 배우", "성우"로 병렬하고 있다. 2022년 일본예술원 회원 선정 시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배우'로 소개되었다.

일본에서 성우 전업화가 진행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라디오 드라마 전성기에 NHK와 민방이 자체 방송 극단을 조직하여 전문직 라디오 배우를 육성했다.
* 텔레비전 초기 미국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이 대량 수입되어 일본어 더빙 수요가 증대되었다.
*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인기 고조로 처음부터 성우 전문 연기자를 지망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일본 성우 대부분이 가입하는 일본배우연합에는 외화·영상 부회도 설치되어 "배우·성우·기타 연기자"를 가입 대상으로 한다. 아테레코 논쟁 등을 거쳐 뉴스 앵커나 아나운서 등 방송·보도 분야 종사자와도 구별된다.

일본 국외에서는 배우 업무의 일부라는 측면이 크며, 더빙에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의 목소리 대역을 앤서니 홉킨스가 담당한 에피소드 등이 있다. 미국에서는 성우 전업 배우가 늘어나고, 연기 학교에서 성우 코스를 설치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캐릭터 보이스(character voice, CV)라는 일본식 영어가 사용된다. 1980년대 후반 이노우에 신이치로가 제창한 용어로, 『월간 뉴타입』에서도 사용되었다. 쇼와 시대 작품에서는 주로 엔딩 크레딧에 "목소리 출연"으로 표기되었다.

헤이세이부터 레이와에 이르는 현재에는 "캐스트", "CAST", "CV"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국외의 CV 사용 예로는 디즈니 캐릭터 보이스 인터내셔널 등이 있다.

초기에는 얼굴 공개를 하지 않는 성우도 적지 않았지만, 가수 활동, 사진집 발간 등 타렌토적인 활동도 늘어나 얼굴 공개를 하는 성우가 증가했다. #버추얼 유튜버 활동처럼 다른 캐릭터로 익명 활동하는 성우도 있다. 현대에는 애니메이션, 특촬 드라마, 비디오 게임·온라인 게임 등 특정 캐릭터의 목소리를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 "담당 성우"라고 호칭되기도 한다.

현재 활약하는 성우들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아이돌 출신: 야마모토 유리코, 토다 케이코, 사쿠마 레이, 히다카 노리코, 사쿠라이 토모, 이와오 준코, 시시도 루미
* 애니메이션 가수 겸 성우: 호리에 미츠코
*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 오오노 마리나, 유즈키 료카, 치바 치에미
* 리포터 출신: 카카즈 유미
* 코미디언 출신: 고다 호즈미
* 버라이어티 아이돌 출신: 사이토 유코
* 배우 겸 성우: 나카타 죠지
* 여대생 시절 누드 촬영: 마츠이 나오코

최근에는 코미디언이 성우로 전향, 겸업하는 경우도 있다. 시미즈 히로시, 카와모토 나루, 사이토 야스오·타케우치 코스케, 야나기하라 테츠야·히라이 요시유키 등이 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아이돌 겨울의 시대〉 이후, 아이돌 탤런트가 성우 오디션에 도전하는 경우가 늘었다. 사쿠라이 토모, 이와오 준코, 시시도 루미 등이 있지만, 성우로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4.1. 아이돌 성우

1990년대 중반부터 성우의 활동 영역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CD 발매, 사진집 출판, 휴대전화 착신음성 제공 등 여러 분야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폭넓은 활동을 하는 성우를 아이돌 성우라고 부르는데, 이는 속칭일 뿐 명확한 정의는 없으며, 성우 스스로 "나는 아이돌 성우이다"라고 밝히는 경우도 없다. 아이돌적인 활동 범위도 가수 활동, 애니메이션·게임 애프터 레코딩이나 라디오 진행, 성우 전문 잡지 화보 등장 등 다양하여 아이돌 성우와 비아이돌 성우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터치》나 《란마 1/2》의 히로인 역을 맡은 히다카 노리코와 《란마 1/2》에 출연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아이돌 성우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코다 마리코, 시이나 헤키루 등도 1990년대 중반부터 붐을 일으켰다. 여자 성우, 특히 애니메이션·게임 관련 성우가 아이돌 성우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 성우는 극히 드물다.

현대 성우에게는 목소리 연기력 외에도 외모, 가창력, 독특한 캐릭터 확립 등 다양한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애니메이션·게임 관련 활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돌 성우는 연기력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최근 일부 소속사 양성소에서는 '성우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명목으로 애니메이션 관련 매체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기도 한다. 노가와 사쿠라 등이 소속된 람즈의 사장은 "아이돌 성우에게 중요한 것은 외모와 뛰어난 화술이지 연기만으로는 잘해 나갈 수 없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최근 미디어 믹스의 일환으로 애니메이션 방송과 연계된 인터넷 라디오가 많이 제작되면서, 청취자를 쉽게 끌어모을 수 있는 아이돌 성우의 출연이 잦아졌다. 이들 음성 매체에서의 화술은 아이돌 성우로서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다만, 인터넷 라디오에서의 일이 계기가 되어 아이돌 성우 캐릭터가 바뀌어 개성파 성우로 통하는 탤런트 요소가 생긴 경우도 있다.

아이돌 성우가 애니메이션 이벤트 메인 게스트로 등장하는 경우, 관객 대부분이 성우를 보기 위해 오기 때문에 관객 동원을 위해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아이돌 성우는 무도관 콘서트를 성공시키거나, 음악 활동으로 전국 투어를 기획하여 발매한 CD를 오리콘 상위에 올리기도 한다. 이는 CD 판매량 감소 추세인 음악 업계에서 주목받는 시장 확대 요인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성우 이벤트나 라이브 콘서트에 자주 다니는 팬층은 '성우 이벤터'라고 불린다.

아이돌 성우는 '꿈나라의 주인', '영원의 XX세' 등으로 자칭하며 일반 성우와 마찬가지로 생년·연령을 공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 아이돌이 20대 후반에 '고참',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에 비해, 아이돌 성우는 인기, 담당 캐릭터의 인기, 연기력, 가창력 등에 따라 30세 전후에도 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성우 양성소 출신은 대부분 20대를 넘겨 데뷔하므로 무조건 길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돌 성우는 신진대사가 격심한 업계 특성상 한때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가도 짧은 기간 활동 후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일이 격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제까지나 아이돌 성우로 활동할 수는 없으므로, 나이가 들면 아이돌 성우 노선에서 벗어나 높은 연기력·표현력을 갖춘 '실력파 성우'로의 이미지 변신이 요구된다. 이는 성우 본인이나 소속사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이미지 변신 성공 여부에 따라 이후 성우 활동의 성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실패 시 아이돌 성우 경력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 '상품 가치'가 급락하고 일이 줄어들 수 있다.

베테랑 성우나 성우 팬 중에는 아이돌 성우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이돌 성우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1990년대 중반 아이돌 성우 붐의 절정기는 지났지만, 아이돌 성우는 여전히 존재하며, 새로운 아이돌 성우를 노리는 사람도 매년 등장하고 있다. 2008년에는 어플런트 그룹, 카도카와 쇼텐, 카도카와 더 텔레비전의 합동 기획으로 'KADOKAWAxUP-FRONT STYLE 아이들☆성우 오디션 2008'이 실시되어 당시 16세였던 미사와 사치카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4.2. 성우의 일본 무도관 콘서트

1997년, 시이나 헤키루는 성우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무도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시이나 헤키루는 성우가 단순히 영상 속 캐릭터의 목소리를 대행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스타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후, 미즈키 나나,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등 여러 성우들이 무도관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우치다 아야, 히가시야마 나오, 우치다 마아야 등은 가수로서 일본 무도관 단독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우들의 무도관 콘서트 성공은 성우계와 연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성우의 가수 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4.3. 성우 유닛

여러 명의 성우가 모여 음악 유닛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경우를 '성우 유닛'이라고 한다. 1980년대 말, TV 애니메이션 《갑철성 사무라이 트루퍼》에 출연한 남성 성우 5명이 1989년에 결성한 유닛 NG5는 큰 인기를 얻었으며, 성우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선구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4.4. 성우 아티스트

성우 활동과 가수 활동을 병행하는 성우를 '성우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미야노 마모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하는 성우 아티스트도 등장하고 있다.

5. 성우의 역할 및 활동 분야

성우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라디오 드라마, 실사 스턴트 및 인형극, 광고 등 다양한 미디어의 캐릭터 음성 더빙과 내레이션을 담당한다. 또한 일본어가 아닌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의 더빙 작업도 한다. 일본에서 성우를 처음 지칭하던 용어는 "koe no haiyū"(声の俳優)였으나, 나중에 "seiyū"(声優)라는 합성어로 줄어들었다. 여러 성우들은 이 용어가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을 저평가한다고 생각하여 반대했지만, 성우 직업이 더욱 주목받게 된 이후에야 이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성우와 배우를 구분하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은 다음과 같다.

* NHK와 다른 민영 방송사가 라디오 전성기에 설립한 東京放送劇団일본어에 의한 전문적인 육성 과정.
* 일본 영화 및 드라마 부족으로 인해 TV 방송사가 외국 프로그램을 방영해야 했고, 이로 인해 성우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 애니메이션 세계 시장의 붐으로 배우가 아닌 성우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 인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우 직업은 일본에서 라디오가 등장한 이후부터 존재해 왔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덕분에 "성우(seiyu)"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 성우 매니저와의 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야마토 붐 이후로 '성우'라는 단어가 즉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성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들은 종종 '세이유(Seiyu) 슈퍼마켓에서 일하시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라고 한다.

1977년(쇼와 52년) 극장판 『우주전함 야마토』의 히트로 인한 애니메이션 붐과 함께 제2차 성우 붐이 일어났다. 이 시기는 애니메이션 잡지가 창간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며, 『애니메쥬』의 창간 편집장인 오가타 히데오는 성우의 아이돌화를 편집 방침의 하나로 내세웠다. 『애니메쥬』 이외의 애니메이션 잡지들도 마찬가지로 지면에 성우 코너를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성우 정보를 발신했다.

애니메이션 붐에 힘입어 카미야 아키라, 후루야 토오루, 후루카와 토시오 등 애니메이션의 미소년 캐릭터를 주요 배역으로 하는 인기 성우들이 밴드 "슬랩스틱"을 결성하여 라이브 활동을 펼치는 등, 성우업과 병행한 음악 활동도 활발해졌다. 당시 만 단위의 레코드를 판매한 성우로는 칸다 카즈코, 토다 에이코, 카미야 아키라, 미즈시마 유, 슬랩스틱 등이 언급되고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모리 유키를 맡았던 아사가미 요코(현: 코단샤・이치류사이 하루미)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성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우 양성소가 배출한 최초의 성우이자 아이돌 성우의 시조로 여겨진다. 그 계보는 코야마 마미, 칸다 카즈코로 이어진다. 자신의 앨범을 4장 발매한 칸다 카즈코는 원조 아이돌이라고 불렸다. 1981년에는 제3회 애니메이션 그랑프리가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고, 이후 시상식에서는 성우들의 콘서트도 공개되었다.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 붐 후기에는 새로운 인재 채용 경향이 강해져, 레코드 회사와 가수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 아이돌이 애니메이션 성우로 기용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2년(쇼와 57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는 이이지마 마리가, 1983년 『마법의 천사 크리미 마미』에서는 오오타 타카코가 캐릭터송도 담당했다. 성우 양성소가 잇따라 설립된 것도 이 시기이며, 이 붐은 대략 1980년대 전반까지로 여겨진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성우의 아이돌화" 또는 애니메이션·이벤트(쇼) 출연에 의한 "얼굴 공개"가 일반화되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TV 애니메이션 『갑철성 사무라이 트루퍼』에 출연한 남성 성우 5명으로 구성된 유닛 NG5가 인기를 얻어 뉴스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정도였다. 이들은 성우가 멀티 활동을 하게 된 선구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1993년(헤이세이 5년) OVA 시리즈 『아이돌 방위대 허밍버드』 이후 애니메이션 작품 속 캐릭터와 실제 성우를 다양한 형태로 상호 연상시키는 듯한 미디어적 연출이 나타나면서, 성우는 무대에 서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아이돌적 이미지 구축은 아이돌 팬을 애니메이션 팬으로 흡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등 여성 성우들이 레코드 회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 활동을 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성우의 활동 분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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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설명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 OVA, ONA)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오디오 드라마 (라디오 드라마, 드라마 CD)음성만으로 구성된 드라마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게임게임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무대 연극 (인형극 · 탈인형극)무대에서 연기를 하거나, 인형극에서 인형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실사(국내 텔레비전 드라마, 텔레비전 인형극, 실사 영화, 외화 및 해외 드라마, 해외 다큐멘터리)의 일본어 더빙외국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 등장하는 인물의 목소리를 한국어로 연기한다.
오디오북, 낭독극의 낭독텍스트를 읽어 오디오 콘텐츠를 만든다.
내레이션(텔레비전·라디오 방송, 무대 연극, 광고), 안내 방송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홍보 영상, 시설 안내 방송 등에서 정보를 전달한다.
미디어 믹스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 노벨, 라디오 프로그램 DJ, 드라마 CD, 완구 등 미디어믹스가 이루어지는 작품의 성우 더빙 작업.


성우는 목소리 연기 외에도 출연작 관련 이벤트나 홍보 등 부수적인 활동을 하며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는 사전 계약 없이 매번 협의하여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배우와 출연료 시스템이 다르다. 일의 방식은 오디션을 통한 선발, 제작 측의 지명, 투자를 통한 캐스팅 권 확보 등이 있지만,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5.1. 애니메이션

화면을 보면서 대사를 녹음하는 애프터 레코딩(애프레코) 방식과, 미리 녹음된 대사에 맞춰 영상을 제작하는 프레스코 방식이 있다. 일본에서는 애프레코가 주류이다. 최근 애니메이션 제작의 디지털화에 따라 애프레코 후 그림을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목소리를 맡는다는 의미에서 아테레코라고도 한다.

출연료는 랭크제가 적용된다.

역할은 원작자나 제작 측에서 이미지에 맞는 목소리(음색)와 연기력을 가진 사람이 지명되는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회사에 의해 출연 자리를 확보하는 방법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선발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얻는 시스템이 주류이다.

오디션은 예정하고 있는 캐릭터의 역할에 맞을 것 같은 성우를 지명하여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그 결과 다른 캐릭터의 배역이 되는 경우도 있음), 일반적으로 제작 회사 등에서 성우 사무소에 오디션 공지를 통지하고, 사무소는 역할에 맞다고 판단한 소속 성우를 몇 명 선택하여 오디션을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성우를 보유한 대형 사무소에서는 사무소 내 경쟁을 이겨내지 않으면 오디션을 받을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오디션에 참가하더라도 경쟁률은 60대 1 정도이다.

후루카와 토시오는 『팝팀에픽』에 출연했을 때, “대선배이니 일을 고를 수 있다”는 일부 시청자의 의견에 대해 “농담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목소리는 본업이다. 일을 고를 만큼 높은 지위에 있지 않다. 하나의 일을 따내기 위해 매니저가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는지 아는가!”라고 반론하기도 했다.

몇 명이 함께 부스에 들어가 실제로 연기를 하고, 그 균형을 보고 배역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오디션에서 떨어진 역할 대신 다른 역할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오디션에서 다른 캐릭터의 대사를 읽고 그 역할로 결정되거나, 나중에 추가되는 캐릭터의 역할을 얻는 경우도 있다.

공모 형식으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2005년(헤이세이 17년) 『스피드 그래퍼』에서는 히로인 역을 공모 오디션으로 진행, 1차·2차 심사 후 웹의 일반 투표도 반영하여 신인 진도 케이가 선발되었다. 2013년(헤이세이 25년) TV 애니메이션 『두 사람은 밀키 홈즈』의 주인공 역을 결정하는 공모 오디션에서는 신인 이토 아야사가 선발되었다. 2018년(헤이세이 30년) 방송된 『꼭두각시 서커스』에서는 주역 중 한 명을 프로·아마추어 불문 공모 오디션으로 결정한다고 발표, 2,500명이 넘는 응모자 중 신인 우에다 치히로가 선발되었다. 2021년(레이와 3년) 『왓챠 프리마지!』에서는 공모 오디션 심사를 각 단계에서 공개했다.

#일반공모 참조.

CM이나 PV, 파칭코의 리치 액션 등 애니메이션 영상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도 성우가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다.

5.2. 게임

1990년대에 텔레비전 게임에 성우가 도입되면서, 같은 성우들이 텔레비전 게임 세계와 관련된 일련의 행사에 출연하고, 텔레비전 게임을 기반으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팬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있었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위성 라디오 방송국인 세인트 기가(St.GIGA)는 별도의 지속적으로 스트리밍되는 보컬 트랙(사운드링크(SoundLink)라고 하는 기술)으로 성우 더빙이 된 에피소딕 비디오 게임을 전송했는데, 일본에서는 닌텐도(Nintendo)의 슈퍼패미컴(Super Famicom) 비디오 게임 콘솔과 새틀라뷰(Satellaview) 주변 기기를 통해 재생되었다. 닌텐도는 BS 젤다의 전설을 세계 최초의 통합 라디오 게임으로 지정했다.

현대에는 비디오 게임,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의 목소리를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는 점에서 "담당 성우"라고 호칭되는 경우가 있다.

5.3. 외화 더빙

외국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 등장하는 인물의 목소리를 한국어로 연기한다. 1961년, 상업 텔레비전 방송 초기 5사 협정(고샤 협정)으로 인해 일본 방송국에서 방영할 수 있는 일본 영화가 줄어들었다. 그 결과, 1960년대에는 많은 외국 드라마와 프로그램이 수입되어 일본어로 더빙되어 방송되었다. 처음에는 NHK가 대부분의 외국 프로그램에 자막을 넣었지만, 곧 일본어 더빙이 표준이 되었다.

최초의 성우 붐은 나츠키 노자와처럼 같은 외국 배우(노자와의 경우 알랭 들롱, 로버트 레드포드, 줄리아노 젬마)의 더빙을 맡았던 배우들이 중심이었다. 고샤 협정으로 인한 급여 보장 문제로 영화 배우들은 텔레비전용 외국 영화 더빙을 할 수 없었고, 비슷한 협정으로 텔레비전 배우들도 더빙을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스튜디오는 라디오 시대 배우들과 신극 스타일 배우들에게 눈을 돌렸다. 당시 외국 애니메이션 더빙은 낙어 이야기꾼, 아사쿠사 코미디언 등이 맡았고, 더빙 전문 성우는 "더빙 배우", 캐릭터 목소리를 연기하는 사람은 "아테시(アテシ)"라고 불렸다. 더빙의 황금기였던 이 시기에 도쿄 배우 소비자 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이후, 해이쿄 성우 매니저들이 독립하여 자신의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했다.

5.4. 라디오 드라마/오디오 드라마

음성만으로 구성된 드라마 작품에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소리만으로 연기를 하는 연기자이며, 그 출연 형태는 매체의 발전과 함께 레코드, 라디오, 더 나아가 텔레비전 등으로 확대되었다.

1910년(메이지 43년), 일본 최초의 레코드 회사가 설립되어 가부키 음악 등 연예의 녹음이 보급되었다. 1925년(다이쇼 14년)에는 일본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개시되어 무대극, 영화극, 방송극 등이 전달되었다.

1941년(쇼와 16년), NHK가 라디오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도쿄방송극단을 설립하였다. 1956년(쇼와 31년)에는 라디오·텔레비전 겸영 방송국인 라디오 도쿄(현: TBS)가 해외 텔레비전 드라마의 더빙 방송을 실시한다.

성우는 당초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하는 무대 배우나 영화 배우, 그 다음으로 방송국의 극단원인 라디오 배우를 가리켰고, 텔레비전 시대가 되면서 더빙을 하는 아테레코 배우, 그리고 애니메이션 연기를 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25년(다이쇼 14년) 3월, NHK의 전신인 사단법인 도쿄방송국이 일본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개시한다. 7월에는 무대 중계를 스튜디오에서 재현한 『키리이치요』(출연: 나카무라 우타에몬(5대) 등)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라디오 드라마 『대위의 딸』(출연: 이노우에 마사오, 미즈타니 야에코(초대))이 방송되었다. 8월에 오야마나이 카오루의 연출, 와다 세이의 음향 효과로 방송된 『탄광 속』이라는 설도 있다.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야마모토 야스히데는 후에 도쿄방송극단의 지도자를 역임했다.

9월, 도쿄방송국은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전문 배우로서 라디오 드라마 연구생을 공모했다. 1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12명의 여성이 선발되어, 11월 라디오 드라마 『뚱보』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성우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에서 그들이 "일본 성우 1호"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신문에서는 "라디오 배우"라고 호칭했다.

1931년(쇼와 6년), 쿠보타 만타로가 일본방송협회 문예과장에 취임한다. 쿠보타는 문예 노선을 내걸고, 나쓰메 소세키나 이즈미 쿄카, 르나르위고 등 국내외 문학의 라디오 드라마화를 추진했다. 또한 쿠보타의 연극계 인맥을 활용하여 이노우에 마사오, 키타무라 료로(초대), 무라세 사치코, 다무라 아키코, 토모다 쿄스케 등 신파와 신극에서 일선 배우들을 기용하고 있다. 1938년(쇼와 13년) 8월, 퇴임.

1941년(쇼와 16년) 4월, 국민학교령이 시행된다. 음성 언어 교육에 대해서는 "말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아동의 자유로운 발표로부터 시작하여 차차 이를 순정하게 하면서 아울러 듣는 방법의 연습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1953년(쇼와 28년)의 NHK 도쿄 방송 극단 5기생 모집에는 합격자가 10명 정도인 곳에 6,000명의 지원이 쇄도했다고 한다. 도쿄 방송 극단 출신인 카츠타 히사시는 이 시대를 제1기 성우 황금 시대로 하고 있다.

5.5. 내레이션/안내 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홍보 영상, 시설 안내 방송 등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의 내레이션 작업도 한다.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랭크 제도의 대상이 된다.

5.6. 무대

연극, 뮤지컬, 낭독극 등 무대에서 연기를 하거나, 인형극에서 인형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인형극은 캐릭터의 연기와 타이밍을 맞춰 대사를 말하거나, 미리 녹음한 영상을 보면서 애프터 레코딩(더빙)을 한다. NHK의 인형극은 주로 프레스코 방식(선녹음)이 많다. 또한 1명이 여러 역할을 겸임하는 스타일이 많으며, 『신 3총사(連続人形活劇 新・三銃士)』에서는 30명 가까운 역할을 7명이 연기했고, 『인형극 삼국지(人形劇 三国志)』에서는 주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5명 이상의 역할을 겸임하고 있다.

착ぐるみ(着ぐるみ)쇼에서는 생방송으로 목소리를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리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에 맞춰 착ぐるみ 연기자(스튜디오 액터)가 연기한다.

극단 비행선(劇団飛行船)의 공연은 "마스크 플레이"라는, 착구루미를 입은 배우가 성우가 녹음한 목소리에 맞춰 연기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5.7. 기타 활동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성우 야마모토 마리아(Maria Yamamoto) (2005년)

성우는 목소리 연기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1990년대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OVA, 텔레비전 퀴즈, 공개 행사, 인터넷 등에서 활동하는 성우들이 늘어났고, 성우 전문 잡지인 《성우 그랑프리》와 《보이스 애니매지》가 발간되었다. 성우들은 라디오를 통해 많은 팬을 확보했고, CD 판매량도 증가했다. 대형 홀에서 콘서트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레코딩 회사들이 성우 라디오 프로그램을 후원하면서 많은 자금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시이나 헤키루, 코우다 마리코가 이러한 경향의 초기 사례이다.

199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붐으로 도쿄 지역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이 증가했다. 인터넷을 통해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성우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성우들은 인터넷 기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성우의 아이돌화' 또는 애니메이션·이벤트(쇼) 출연에 의한 '얼굴 공개'가 일반화되었다. 1980년대 말 TV 애니메이션 갑철성 사무라이 트루퍼에 출연한 남성 성우 5명으로 구성된 유닛 NG5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성우가 멀티 활동을 하게 된 선구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1994년에는 최초로 성우 전문 잡지인 《성우 그랑프리》와 《보이스 애니매주》가 창간되었다. 1995년에는 최초의 성우 전문 텔레비전 프로그램 《성♥유 클럽》이 방송되었다.

1997년에는 시이나 헤키루가 성우 최초로 일본 무도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시이나는 성우가 단순히 캐릭터의 목소리를 대행하는 역할을 넘어, 스타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부터는 버추얼 유튜버처럼 다른 캐릭터를 통해 익명으로 활동하는 성우도 등장하고 있다.

6. 성우 프로덕션

일본에서는 성우의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전문 기획사인 성우 프로덕션이 존재한다. 성우 프로덕션은 성우의 섭외, 스케줄 관리, 영업 활동, 신인 육성 등을 담당한다. 대부분 도쿄에 위치하고 있다.

성우 프로덕션은 각자 특화 분야를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더빙, 나레이션, NHK 프로그램,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 특화된 프로덕션들이 존재한다. 소속 성우들은 주로 해당 프로덕션의 특기 분야에 따라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주요 성우 프로덕션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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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프로덕션
애니메이션아트비전, 아임 엔터프라이즈
더빙 및 보이스 오버마우스 프로모션
나레이션아오니 프로덕션, 시그마 세븐
NHK 프로그램81 프로듀스
광고스튜디오 오사와
전철 안내방송도쿄 배우 생활 협동 조합

7. 경제 환경

일본에서 성우는 개인 사업자로서 활동하며, 소속 사무소와 계약을 맺는다. 출연료는 일본배우연합(일배연) 소속 성우의 경우 '랭크제'에 따라 결정된다. 이 랭크는 경력과 인지도에 따라 상승하며, 신인 성우는 '주니어 랭크'로 시작하여 3년 또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일반 랭크로 승급한다. 성우는 출연료에서 사무 수수료와 세금 등을 공제한 금액을 받는다.

성우의 수입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성우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며, 랭크 제도 대상이 아닌 업무(나레이션, 아나운스 등)는 애니메이션, 일본어 더빙, 게임보다 보수가 높지만, 일회성이며 불규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