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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케돈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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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칼케돈 기독교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채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기독론을 따르는 기독교를 의미한다. 칼케돈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며, 두 본성이 혼합, 변화, 분리, 분할되지 않고 한 위격 안에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이 신조는 삼위일체와 위격 연합을 받아들였으며, 아리우스주의, 양태론, 에비온주의를 이단으로 배척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는 칼케돈 기독교에 찬성하는 펜타르키에서 유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로 나뉜다. 반면, 아르메니아 교회,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는 칼케돈 신조를 거부한다. 칼케돈 기독교는 동서 교회의 분열, 종교 개혁 등 기독교 교파의 분열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개신교 신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역사

칼케돈 공의회에서 제정한 교회법 (451년)


칼케돈 공의회동로마 제국 황제 마르키아누스의 주도로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제기된 교조적인 논쟁은 칼케돈 분열로 이어져, 오리엔트 정교회로 알려진 교회들의 비칼케돈 조직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다.[10]

칼케돈 교회들은 로마의 성좌, 콘스탄티노폴리스(새 로마)의 세계 총대주교청,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중동의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결속을 유지했다. 이 다섯 총대주교는 정통 가톨릭 기독교와 칼케돈 신앙고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치세에 다섯 총대주교좌는 제국 기독교 교회의 공식적인 교회 권한을 가진 펜타르키로 인정되었다.

칼케돈의 기독론적 정의를 거부한 집단은 아르메니아 교회 다수,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였으며, 인도 교회 일부와 시리아 기독교회(이들 중 후자는 자코비테인으로 확인됨)를 포함한다. 오늘날 이들 단체는 비칼케돈 교회, 합성론파, 또는 오리엔탈 정교회로 통칭된다.

동로마 제국 내부 카파도키아트레비존드 지역의 일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칼케돈 공의회 결정을 받아들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반대하는 논쟁을 벌였다.[10]

572–591년 동로마-사산 전쟁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가 아르메니아 서부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마우리키우스 황제(582년–602년)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친칼케돈파를 지원하여 지역 전체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593년 서부 아르메니아 주교들의 지역 회의가 테오도시폴리스에서 소집되어 칼케돈 정의에 대한 충성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바가란의 요한(요한네스 또는 호반네스)을 칼케돈 아르메니아 교회의 새로운 가톨리코스로 선출했다.

2. 1. 칼케돈 공의회 이전의 상황

초기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아리우스주의, 양태론(군주신론), 에비온주의가 배척되었고, 에페소스 공의회(431년)에서는 네스토리우스주의가 배척되었다. 그 외에도 에우티케스로 대표되는 단성론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었다.[2][3][4][5]

2. 2. 칼케돈 공의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제기된 교조적 논쟁은 칼케돈 분열로 이어져, 오리엔트 정교회로 알려진 교회들의 비칼케돈 조직이 형성되었다.[10] 칼케돈 교회들은 로마의 성좌, 콘스탄티노폴리스(새 로마)의 세계 총대주교청,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중동의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결속을 유지했다. 이 다섯 총대주교는 정통 가톨릭 기독교와 칼케돈 신앙고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치세에 다섯 총대주교좌는 제국 기독교 교회의 공식적인 교회 권한을 가진 펜타르키로 인정되었다.

칼케돈의 기독론적 정의를 거부한 집단은 아르메니아 교회 다수,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였으며, 인도 교회 일부와 시리아 기독교회(이들 중 후자는 자코비테인으로 확인됨)를 포함한다. 오늘날 이들 단체는 비칼케돈 교회, 합성론파, 또는 오리엔탈 정교회로 통칭된다.

동로마 제국 내부 카파도키아트레비존드 지역의 일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칼케돈 공의회 결정을 받아들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반대하는 논쟁을 벌였다.[10]

572–591년 동로마-사산 전쟁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가 아르메니아 서부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마우리키우스 황제(582–602년)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친칼케돈파를 지원하여 지역 전체에 대한 정치적 지배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593년 서부 아르메니아 주교들의 지역 회의가 테오도시폴리스에서 소집되어 칼케돈 정의에 대한 충성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바가란의 요한(요한네스 또는 호반네스)을 칼케돈 아르메니아 교회의 새로운 가톨리코스로 선출했다.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이전 공의회에서 채택된 삼위일체위격적 연합 교리를 재확인하고,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배척된 아리우스파, 군주신론, 에비온파와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배척된 네스토리우스파, 유티케스파로 대표되는 단성론 교리를 이단으로 배제했다.

양성론으로 불리는 칼케돈파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거기에 흡수되지 않고, 앞으로도 분리되지 않고 존재하는 인성, 두 가지 성질을 유일한 위격 안에 가진다고 주장한다. 비(非)칼케돈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합일하여 하나의 본성(퓌시스)이 되며, 두 본성은 분리되지 않고, 섞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합일한다고 주장하는 합성론을 취한다.[8] 이는 단성론과는 다르지만, 칼케돈파는 의도적으로 비칼케돈파를 "단성론파"라고 부르며 멸시해 왔다. 칼케돈파는 비칼케돈파를 유티케스파적이라고 비난하고, 비칼케돈파는 칼케돈파를 네스토리우스파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9]

2. 3. 칼케돈 공의회 이후

칼케돈 공의회에서 제기된 교리 논쟁은 칼케돈 분열을 일으켰고, 오리엔트 정교회로 알려진 비칼케돈 교회들이 형성되었다.[10] 칼케돈 교회들은 로마의 성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세계 총대주교,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결속을 유지했다. 이 다섯 총대주교는 정통 가톨릭 기독교와 칼케돈 신앙고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치세 동안, 이들은 제국 기독교 교회의 공식적인 교회 권위를 가진 펜타르키로 인정받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는 칼케돈 기독교에 찬성한 펜타르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크게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의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의 동방 정교회, 종교 개혁으로 만들어진 개신교로 나뉜다.

칼케돈의 기독론적 정의를 거부한 집단은 아르메니아 교회 다수,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였으며, 인도 교회 일부와 시리아 기독교회(자코비테인)를 포함한다. 이들은 비칼케돈 교회, 합성론파, 또는 오리엔트 정교회라고 불린다.

동로마 제국카파도키아트레비존드 지역의 일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반대하는 논쟁을 벌였다.[10]

572–591년 동로마-사산 전쟁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가 아르메니아 서부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마우리키우스 황제(582년–602년)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친칼케돈파를 지원하여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593년 서부 아르메니아 주교들의 지역 회의가 테오도시폴리스에서 소집되어 칼케돈 정의에 대한 충성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바가란의 요한(요한네스 또는 호반네스)을 칼케돈 아르메니아 교회의 새로운 가톨리코스로 선출했다.

3. 칼케돈 기독론

칼케돈 공의회삼위일체위격적 연합 개념을 받아들여, 아리우스주의, 양태론, 에비온주의를 이단으로 배척했다. 이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도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또한 네스토리우스주의, 에우티케스주의, 단성론 역시 에페소스 공의회(431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2][3][4][5]

칼케돈 기독론의 핵심은 위격적 연합 교리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가지며, 이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서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격 연합은 이 시기 소수의 로마 가톨릭에서 하나의 본성으로 여겨지기도 했다.[6]

기독교의 주요 교파


칼케돈 공의회 이후, 680년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단의론과 단일 의지론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3. 1. 칼케돈 신조의 주요 내용

칼케돈 공의회 참석자들은 삼위일체와 위격 연합 개념을 받아들였고,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이단으로 배척된 아리우스주의, 양태론, 에비온주의를 다시 한번 이단으로 확인했다. 또한 에페소스 공의회(431년)에서 이단으로 배척된 네스토리우스주의, 에우티케스주의, 단성론 역시 이단으로 규정했다.[2][3][4][5]

위격적 연합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며, 완전한 인성을 가지면서도 단일한 신적 위격으로 남는다고 주장한다. 이 교리는 신성과 인성이 섞이지 않고 혼합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에 아무런 변화 없이 성육신 때 취해졌다고 단언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인성, 즉 몸과 영혼을 취했고, 이 인성은 영원토록 그분의 신성과 위격적으로 연합되지만, 인간적인 위격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위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 번째 창조된 위격이 존재함을 암시하며, 이는 신-인(God-man)의 연합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칼케돈파 교리는 양성론이라고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두 가지 본성을 유일한 위격 안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非)칼케돈파는 합성론을 주장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합일하여 하나의 본성이 되며, 두 본성은 분리되지 않고, 섞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합일한다고 보는 것이다.[8] 칼케돈파는 비칼케돈파를 "단성론파"라고 부르며 멸시했고, 비칼케돈파를 유티케스파적이라고 비난했다. 반대로 비칼케돈파는 칼케돈파를 네스토리우스파적이라고 비난했다.[9]

3. 2. 칼케돈 신조에 대한 비판

일부 신학자들은 칼케돈 신조가 철학적 개념에 의존하며, 성경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8] 비칼케돈 교회들은 칼케돈 신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9]

칼케돈파는 위격 연합 교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며, 완전한 인성을 가지면서도 단일한 신적 위격으로 남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성과 인성이 섞이지 않고 혼합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에 아무런 변화 없이 성육신 때 취해졌다고 설명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인성, 즉 몸과 영혼을 취하셨고, 이 인성은 영원토록 그분의 신성과 위격적으로 연합되지만, 인간적인 위격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2][3][4][5]

반면 비(非)칼케돈파는 합성론을 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합일하여 하나의 본성(퓌시스)이 되며, 두 본성은 분리되지 않고, 섞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합일한다고 주장한다.[8] 칼케돈파는 비칼케돈파를 "단성론파"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유티케스파적이라고 비난했으며, 비칼케돈파는 칼케돈파를 네스토리우스파적이라고 비난했다.[9]

4. 칼케돈 신조의 현대적 의의

칼케돈 신조는 오늘날에도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루터교, 개혁교회 등)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 교파에서 중요한 신학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3][4][5]

그러나 오리엔트 정교회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동방교회 역시 1552년 분열 이후 칼케돈 신조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칼케돈 신조를 둘러싼 논쟁은 기독교 신학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4. 1. 한국 기독교와 칼케돈 신조

한국의 개신교는 대부분 칼케돈 신조를 따르고 있지만, 일부 교단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종교적 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칼케돈 신조는 기독교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신학자들은 칼케돈 신조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신학자들은 칼케돈 신조의 전통적인 해석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기독교 교파의 분열

칼케돈 공의회에서 제기된 교리 논쟁은 칼케돈 분열로 이어졌고, 이는 오리엔트 정교회라는 비칼케돈 교회 조직의 형성을 낳았다. 칼케돈 교회들은 로마의 성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결속을 유지했다. 이 다섯 총대주교좌는 정통 가톨릭 기독교와 칼케돈 신앙고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5. 1. 주요 분열

칼케돈 공의회에서의 교리 대립은 기독교회의 분열(시스마)을 초래했다. 칼케돈 신조를 거부한 여러 교회는 비 칼케돈파 정교회라고 불렸으며, 네스토리우스파(비 에페소스파)의 아시리아 동방 교회를 더하여 동방 교회로 통칭된다. 로마교황이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과 같은 5개의 주요 교회는 칼케돈파로서 연대를 유지하며 정통 교리를 칭했다.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오대 총대주교 제(펜타르키)를 정하여 동로마 제국 황제의 기독교적 권위의 기둥이 되었다.

5. 1. 1. 그 외의 분열

칼케돈 공의회의 교리 논쟁은 칼케돈 분열을 야기했고, 오리엔트 정교회를 형성했다. 칼케돈 교회들은 로마의 성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의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청과 결속을 유지했다. 이 다섯 총대주교는 정통 가톨릭 기독교와 칼케돈 신앙고백의 기둥으로 여겨졌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치세 동안, 이들은 제국 기독교 교회의 공식적인 교회 권한을 가진 펜타르키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는 칼케돈 기독교에 찬성한 펜타르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크게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동방 정교회, 종교 개혁으로 만들어진 개신교로 나뉜다.

칼케돈의 기독론적 정의를 거부한 집단은 아르메니아 교회 다수,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 인도 교회 일부와 시리아 기독교회(자코비테인)를 포함한다. 이들은 비칼케돈 교회, 합성론파, 또는 오리엔탈 정교회라고 불린다.

동로마 제국 내부 카파도키아트레비존드 지역 일부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칼케돈 공의회 결정을 받아들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반대하는 논쟁을 벌였다.[10]

572–591년 동로마-사산 전쟁 이후, 동로마 제국은 아르메니아 서부 지역을 직접 통치하게 되었고, 마우리키우스 황제(582–602년)는 아르메니아 교회의 친칼케돈파를 지원하여 지배를 강화하려 했다. 593년 서부 아르메니아 주교들의 지역 회의가 테오도시폴리스에서 소집되어 칼케돈 정의에 대한 충성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바가란의 요한(요한네스 또는 호반네스)을 칼케돈 아르메니아 교회의 새로운 가톨리코스로 선출하였다.

칼케돈 공의회에서의 교리 대립은 기독교회의 분열(시스마)을 초래했다. 칼케돈 신조를 거부한 여러 교회는 비 칼케돈파 정교회라고 불렸으며, 네스토리우스파(비 에페소스파)의 아시리아 동방 교회를 더하여 동방 교회로 통칭된다.

칼케돈파와 결별한 곳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이다. 이들은 비 칼케돈파 정교회, 단성론파, 비 멜키트 교회 등의 호칭으로도 불린다. 카파도키아나 트라페준타 등 동로마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 중에는 칼케돈 공의회를 지지하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비판한 사람도 있다.[7] 591년에 사산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서아르메니아 전토를 직접 통치하에 둔 후, 마우리키우스 황제는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현지의 칼케돈파를 지원했다. 593년, 아르메니아의 성직자 평의회는 테오도시오폴리스에서 칼케돈 신조를 받아들였고, 칼케돈파 아르메니아인 요하네스 바가라누스를 가톨리코스로 선출했다.

5. 2. 현대 기독교 교파



오늘날 기독교는 다양한 교파로 나뉘어 있다. 각 교파는 칼케돈 공의회의 신조를 포함한 다양한 신학적, 전례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2][3][4][5]

참조

[1] 웹사이트 Global Christianity: A Report on the Size and Distribution of the World's Christian Population https://www.pewresea[...] 2011-12-19
[2] 웹사이트 Is Jesus a Human Person? https://www.ncregist[...] 2023-02-05
[3] 웹사이트 Jesus Is Not a Human Person https://www.catholic[...] 2023-02-05
[4] 웹사이트 Was Christ a Divine-Human Person? {{!}} Reasonable Faith https://www.reasonab[...] 2023-02-05
[5] 웹사이트 Person (in theology) {{!}} Encyclopedia.com https://www.encyclop[...] 2023-02-05
[6] 서적 African Religions: A Very Short Introduction https://www.worldcat[...] Oxford University Press
[7] 간행물 The Heritage of Armenian Literature: From the Sixth to the Eighteenth Century
[8] 서적 The Blackwell Companion to Eastern Christianity https://books.google[...]
[9] 웹사이트 The Oriental Orthodox Rejection of Chalcedon http://britishorthod[...] The British Orthodox Church 2006-02-06
[10] 간행물 The Heritage of Armenian Literature: From the Sixth to the Eigh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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