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로, 서양 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중세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오페라는 금지된 사랑을 다루며, 관현악 색채, 화성, 다성음악의 혁신적인 사용으로 유명하다. 특히 '트리스탄 화음'과 '무한 선율' 기법은 서양 음악의 조성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영향을 받아 '의지'와 '사랑의 죽음'을 주제로 하며, 1막의 사랑의 묘약, 2막의 밤, 3막의 죽음의 장면을 통해 영적인 갈망을 표현한다. 초연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양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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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
기본 정보
루드비히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와 그의 아내 말비나가 초연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을 맡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1849년 드레스덴 5월 봉기 참여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스위스취리히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그는 후원자인 부유한 비단 상인 오토 베젠도르크와 그의 아내 마틸데 베젠도르크를 만났다. 마틸데와의 만남은 바그너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7]
바그너는 중세 게르만 문학, 특히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 버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1854년 접하게 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작품 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는 프란츠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진정한 사랑의 비극을 다루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트리스탄과 이졸데』 구상을 드러냈다.[56]
작품 구상은 1854년 말 시작되었고, 바그너는 진행 중이던 대작 『니벨룽의 반지』 작업을 중단하고 1857년부터 『트리스탄과 이졸데』 작곡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이 시기 마틸데 베젠도르크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으며, 이는 작품의 내용과 음악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 관계로 인해 아내 민나와의 갈등이 불거졌고, 바그너는 결국 취리히를 떠나 베네치아와 루체른 등지를 옮겨 다니며 망명 생활 속에서 작곡을 이어갔다. 1859년 8월, 마침내 전곡이 완성되었다.
2. 1. 작곡 배경
1860년 브뤼셀에서 촬영한 바그너의 사진
칼 페르디난트 존이 그린 마틸데 베젠도르크의 초상화 (1850년)
1849년 드레스덴 5월 봉기 참여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자, 리하르트 바그너는 드레스덴 오페라 지휘자직을 그만두고 스위스취리히로 망명했다. 취리히에서 그는 부유한 비단 상인 오토 베젠도르크를 만나 후원을 받게 되었고, 오토의 아내인 마틸데 베젠도르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7]
바그너는 중세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 특히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친구 카를 리터가 트리스탄 전설을 극화하려 시도했던 것과 1854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철학을 접한 것은 바그너가 이 이야기를 직접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쇼펜하우어 철학은 작품의 염세적이고 깊은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는 1854년 12월 프란츠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랑의 행복을 맛본 적이 없기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주제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싶었다"고 밝히며 『트리스탄과 이졸데』 구상을 드러냈다.[56]
1857년 8월,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지크프리트』 작곡을 중단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작곡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는 대작 상연의 불투명성 때문에 비교적 빨리 완성할 수 있는 작품을 먼저 쓰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57] 그는 같은 해 8월 20일 산문 초고를 시작하여 9월 18일 대본(리브레토)을 완성했다. 이 시기 바그너는 베젠도르크가 마련해준 취리히 근교의 집에 거주하며 마틸데 베젠도르크와 열정적인 관계를 발전시켰고, 이 관계는 작품에 깊이 반영되었다. 같은 해 가을, 바그너는 마틸데가 쓴 5개의 시에 곡을 붙여 『베젠도르크 가곡집』을 작곡했는데, 이 중 '온실에서'와 '꿈' 두 곡은 오페라의 주요 선율과 관련이 있어 '트리스탄을 위한 습작'으로 불린다.
1858년 4월, 바그너의 아내 민나가 마틸데에게 보낸 바그너의 편지를 발견하면서 마틸데와의 관계가 공공연한 문제로 불거졌다. 이 사건으로 바그너는 결국 8월에 취리히를 떠나 베네치아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62] 바그너는 베네치아에서 2막을 완성(1859년 3월)했고, 이후 루체른으로 이주하여 1859년 8월에 3막을 완성하며 전곡을 마무리 지었다.[58]
2. 2. 초연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오페라로 판명되었고, 바그너는 공연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모색했다. 빈 궁정 오페라에서 공연을 추진했을 때, 테너 알로이스 안더가 트리스탄 역을 소화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1862년부터 1864년까지 70회 이상의 리허설에도 불구하고 빈 공연은 결국 무산되었고, 이로 인해 오페라는 공연 불가능하다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상황은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의 후원자가 되면서 바뀌었다. 루트비히 2세는 작곡가에게 넉넉한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그의 예술 활동을 적극 후원했고, 덕분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뮌헨 국립극장에서 한스 폰 뷜로가 지휘를 맡아 초연이 준비되었는데, 이는 바그너가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 폰 뷜로와 불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사되었다.
원래 1865년 5월 15일로 예정되었던 초연은 이졸데 역의 말비나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가 쉰 목소리 문제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연기되었다. 마침내 1865년 6월 10일, 뮌헨의 바이에른 궁정 오페라 극장에서 말비나의 남편 루트비히가 트리스탄 역을 맡아 역사적인 초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연 이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루트비히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는 단 네 번의 공연을 마친 뒤인 1865년 7월 21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 사건은 트리스탄이라는 역할이 요구하는 극심한 부담감이 그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추측을 낳았다. (실제로 이후 지휘자 펠릭스 모틀(1911년)과 요제프 카일베르트(1968년)도 이 오페라의 2막을 지휘하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말비나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는 이후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38년을 더 살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이 역할을 맡은 유일한 배우는 또 다른 부부인 하인리히 포글과 테레제 포글이었다.[9]
: 탄호이저 이후 바그너 작품에서는 헤르덴테너(Heldentenor)라 불리는 영웅적인 역할이 등장했다. 이 역할은 강력하고 화려한 고음과 함께 바리톤에 버금가는 풍부한 저음역을 요구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트리스탄은 이러한 목소리의 힘에 더해, 고귀한 분위기와 섬세한 심리 표현 능력이 필요하다. 2막의 "사랑의 이중창"에서는 관능적인 감미로움을 보여주어야 하고, 3막에서는 이졸데가 쉬는 동안 트리스탄 혼자 무대에 서야 하므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지구력까지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배역이다.[101]
;이졸데
: 이졸데는 『니벨룽의 반지』의 브륀힐데와 함께 대표적인 호호-드라마티셔(hohe dramatischer) 소프라노 배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1막에서는 강한 성격을 보여주다가도, 사랑의 묘약을 마신 이후로는 서정적인 목소리와 표현이 어울리는 장면이 많아진다. 2막의 "사랑의 이중창"에서도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말을 되새기며 따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이졸데는 결코 "사나운 여인"이 아니며 시종일관 온순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이는 바그너의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이다.[102]
;마르케 왕
: 트리스탄의 "배신"에 괴로워하면서도 우정과 체념으로 그의 죄를 용서하려는 마르케 왕 역할은, 노래 자체의 매력만으로는 2막에서 계속되는 고뇌의 토로 등 귀에 즐겁게 들리는 부분이 적다. 왕이라는 역할 때문에 주로 중후하고 단단한 베이스 가수가 맡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니벨룽의 반지』의 보탄과 같은 베이스-바리톤 가수가 부르면 감정 표현의 폭이 넓어져 이 배역이 가진 본래의 설득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실제 공연에서도 주역 두 가수의 역량이 부족할 경우, 마르케 왕의 존재감이 감동의 중심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103]
안젤로 콰글리오(Angelo Quaglio)가 3막 초연 무대를 위해 제작한 모형 1막은 마르크 왕과 결혼하기 위해 콘월로 향하는 배 위에서 시작된다.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는 자신을 데려가는 기사 트리스탄에게 강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 과거 자신의 약혼자 모롤트를 죽인 트리스탄을 간호했던 기억과, 그가 자신을 삼촌인 마르크 왕에게 보내는 상황에 모멸감을 느낀 이졸데는 트리스탄과 함께 독약을 마시고 죽으려 한다. 하지만 시녀 브랑갱이 몰래 독약을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치기하고, 이를 마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로에게 격정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2막에서는 마르크 왕이 사냥을 떠난 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왕궁 정원에서 밀회를 가진다. 두 사람은 밤의 세계에서만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믿으며 열정적인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멜롯에게 발각되고, 마르크 왕은 조카와 아내의 배신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멜롯과의 결투에서 트리스탄은 일부러 칼을 피하지 않고 치명상을 입는다. 3막은 트리스탄의 고향인 브리타니의 성 카레올을 배경으로 한다. 부하 쿠르베날의 간호를 받으며 죽어가던 트리스탄은 오직 이졸데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녀를 애타게 기다린다. 마침내 이졸데가 도착하지만, 트리스탄은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뒤이어 도착한 마르크 왕은 브랑갱에게 모든 진실을 듣고 두 사람을 용서하려 했음을 밝힌다. 하지만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죽음 앞에서 환영을 보며 유명한 아리아인 '사랑의 죽음'(Mild und leise wie er lächeltde)을 부르고 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둔다.
4. 1. 1막
페르디난트 리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 시대, 아일랜드에서 콘월로 향하는 배 위. 마르크 왕과 결혼하기로 약속된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는 시녀 브랑갱과 함께 트리스탄의 배에 타고 있다. 오페라는 젊은 선원이 부르는 "야성적인 아일랜드 처녀"에 대한 노래(Westwärts schweift der Blickde)로 시작한다. 이졸데는 이 노래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기고 분노하며, 바다가 배를 삼켜 모두 죽기를 바란다(Erwache mir wieder, kühne Gewaltde). 그녀의 분노는 특히 자신을 마르크 왕에게 데려가는 기사 트리스탄을 향한다. 이졸데는 브랑갱에게 트리스탄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지만(Befehlen liess' dem Eigenholdede), 트리스탄은 배의 키를 잡고 있어야 한다며 거절한다. 트리스탄의 부하 쿠르베날은 더욱 무례하게 이졸데가 트리스탄에게 명령할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며, 이졸데의 약혼자였던 모롤트가 트리스탄에게 살해당했음을 상기시킨다(Herr Morold zog zu Meere herde).
브랑갱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이졸데는 '서술과 저주' 아리아를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 모롤트가 죽은 후, '탄트리스'라는 이름의 낯선 사내가 작은 배(von einem Kahn, der klein und armde)에서 치명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고, 이졸데는 자신의 치유 능력으로 그를 살렸다. 그러나 치료 과정에서 그가 바로 약혼자를 죽인 트리스탄임을 알게 되었다. 이졸데는 무력하게 누워있는 트리스탄을 그의 칼로 죽이려 했지만, 트리스탄이 칼이 아닌 자신의 눈을 바라보자(Er sah' mir in die Augende) 마음이 흔들려 그를 죽이지 못했다. 트리스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났지만, 결국 이졸데를 자신의 삼촌인 마르크 왕과 결혼시키기 위해 돌아왔다. 이 배신에 격분한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속죄의 술을 마시라고 요구하며 약 상자에서 병을 꺼낸다. 브랑갱은 그것이 치명적인 독약임을 알고 경악한다.
쿠르베날이 나타나 항해가 곧 끝난다고 알리자(Auf auf! Ihr Frauen!de), 이졸데는 트리스탄이 와서 속죄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왕 앞에 나가지 않겠다고 전한다. 트리스탄이 도착하자 이졸데는 그의 행동을 비난하며, 그가 자신에게 목숨 빚을 졌고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말한다. 이졸데는 모롤트의 무기를 축복하며 복수를 맹세했었다. 트리스탄은 자신의 칼을 내밀지만 이졸데는 거절하고 속죄의 술을 함께 마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랑갱은 용서를 위한 약이라며 준비한 술을 가져온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마법 능력을 알기에 그 술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음을 짐작한다(Wohl kenn' ich Irlands Königinde). 항해의 끝자락에서 트리스탄은 술을 마시고, 이졸데도 남은 절반을 마신다. 술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지만, 죽음 대신 두 사람에게 격정적이고 끊임없는 사랑을 불러일으킨다(Tristan!de Isolde!de). 쿠르베날이 마르크 왕의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두 사람의 황홀경을 깨뜨린다. 이졸데가 브랑갱에게 어떤 약을 준비했는지 묻자, 브랑갱은 선원들이 왕의 도착을 외치는 가운데 그것은 독약이 아니었으며, 이졸데를 구하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대신 넣었다고 고백한다.
4. 2. 2막
늦은 밤 마르케 왕의 궁전 정원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2막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4. 3. 3막
브리타니에 위치한 트리스탄의 성을 배경으로 한다.
5. 음악적 특징
대본 표지 그림 (연도 미상)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화성, 선율, 관현악법 등 여러 측면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주며 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전통적인 조성 체계를 뒤흔든 트리스탄 화음,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무한 선율, 그리고 특정 인물이나 개념을 상징하는 라이트모티프의 독특한 활용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 전체의 극적인 긴장감과 심오한 감정 표현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데 기여한다.
5. 1. 트리스탄 화음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유럽 음악의 기반이 되어 온 고전적 기능 화성의 붕괴를 가져온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음악사적 혁신은 반음계를 극한까지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특히 제1막 전주곡의 시작 부분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88]
특히 전주곡 첫 부분에 등장하는, 흔히 '트리스탄 화음'이라 불리는 화음은 전통적인 조성 체계 안에서는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모호성을 지닌다. 이 화음과 뒤따르는 불협화음들은 즉각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다음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며 해결을 계속해서 지연시킨다. 이러한 기법은 듣는 이에게 불안정함과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과 죽음, 밤과 낮, 갈망과 해소 불가능한 열정이라는 주제를 음악적으로 암시하고 구현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조성 음악의 해체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후 현대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5. 2. 무한 선율
바그너는 음악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싫어하여, 선율의 구분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종지감 있는 화음 사용을 피했다. 대신 음악이 계속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주거나(가종지), 한 선율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선율이 이전 선율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정교하게 만들었다. 이를 '''무한 선율'''이라고 한다.[98]
예를 들어, 1막 1장에서 이졸데가 노래를 마치는 부분 「바람아, 상으로 주마」에서는 강한 결의를 표현하기 위해 이졸데의 선율은 하단조의 으뜸음으로 마무리된다. 이때 악기 편성 역시 낮은 음에 집중하여 종결되는 느낌을 강화한다. 하지만 동시에 화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반음계적 상행과 하행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한다. 즉, 여기서는 선율의 구분을 만들면서도 음악의 흐름을 멈추지 않기 위해 서로 다른 기법이 동시에 사용된 것이다.
바그너는 이러한 음악의 연속성을 더 큰 규모로 확장하여 적용한 것을 '''이행의 기법'''(Die Kunst des Übergangesde)이라고 불렀다.
1859년 12월 29일 마틸데 베젠도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그너는 이 기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가장 섬세하고 가장 매끄러운 기법의 최고 걸작은 물론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장대한 장면입니다. 2장 서두에서는 매우 격렬한 감정의 여러 모습 속에서 넘실거리는 <생>이 표현되고, 마지막에는 가장 엄숙하고 은밀한 <죽음>에 대한 소망에 이릅니다. 이것이 두 개의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여운 당신, 제가 어떻게 이 기둥들을 연결하고, 어떻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다리를 놓았는지 봐주세요. 이것이 바로 제 음악 형식의 비밀입니다.」
바그너가 언급한 2막 2장의 과정, 즉 "넘실거리는 생에서 가장 엄숙하고 은밀한 죽음에 대한 소망에 이르는" 부분은 독일의 음악학자 카를 다알하우스(1928년-)의 분석에 따르면, 간주곡(브란갱의 「감시의 노래」)을 사이에 둔 「낮의 대화」와 「밤의 노래」로 구성된다. 이 두 부분은 서로 다른 원리로 작곡되었다. 「낮의 대화」에서는 「낮의 동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동기를 통한 통일성을 추구하는 반면, 「밤의 노래」에서는 반주 리듬의 싱코페이션, 변박자, 칸타빌레 선율, 증삼화음 등 동기 외의 다른 음악적 요소들에 공통성을 부여하여 자연스러운 전환을 이루고 있다.
「이행의 기법」은 많은 바그너 연구자들에 의해 언급되어 왔지만, 구체적인 분석은 부족했다. 다알하우스의 연구는 이러한 분석의 첫 시도였으며, 이처럼 '여러 원리에 의한 창작'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99][100]
5. 3. 라이트모티프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에서 수많은 리트모티프(지도 동기)를 구사했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리트모티프의 사용을 비교적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1막의 ‘바다(항해)의 동기’, 2막의 ‘낮(빛)의 동기’, 3막의 ‘탄식의 선율’이나 ‘카레올의 동기’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동기는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작품 전체의 핵심이 되는 것은 1막 서두에 등장하는 ‘동경의 동기 A’(반음계적 하강)와 ‘동경의 동기 B’(반음계적 상승)이다. 이 두 동기는 작품의 모든 장면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모티프는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면서도 함께 결합되어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의미로 명확히 고정하기 어렵고 때로는 모순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다른 요소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리트모티프가 이 작품에서는 음악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별’과 ‘관련’의 복잡한 관계는 ‘이행의 기법’과도 연결된다.[97]
6. 영향 및 평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발표 이후 서양 음악사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혁신적인 화성법과 관현악 기법, 사랑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탐구는 후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초연 당시부터 엇갈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오페라의 음악은 다양한 형태로 편곡되어 연주회장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으며, 작품의 주제와 내용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고 인용되었다.
6. 1. 서양 음악사에 미친 영향
오페라의 서곡과 이졸데의 마지막 아리아 "Mild und leisede"는 바그너 자신에 의해 ''프렐류드와 리베스토트''라는 제목의 콘서트 버전으로 편곡되었다. 이 편곡은 오페라 전체의 초연(1865년)보다 앞선 1862년에 처음 연주되었다. 바그너는 원래 서곡을 "Liebestodde"(사랑-죽음)라고 불렀고, 이졸데의 마지막 아리아는 "Verklärungde"(변용)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1867년 프란츠 리스트가 이 아리아의 피아노 편곡을 만들면서 "Liebestodde"(S.447)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 명칭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리스트의 편곡은 오페라가 널리 공연되기 전에 유럽 전역에 알려지는 데 기여했다.[37]
서곡과 그 시작 부분의 유명한 "트리스탄 코드"가 대중 앞에서 처음 연주된 것은 1859년 3월 12일 프라하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에서였다. 한스 폰 뷔로가 지휘했으며, 그는 이 연주를 위해 자신만의 콘서트 엔딩을 만들었다. 바그너는 이를 허락했지만 만족하지는 않았고 나중에 자신의 버전을 만들었다.[34][35] 바그너 자신도 1860년 파리 테아트르 이탈리앵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서곡을 연주했다.[36]
바그너는 1862년 콘서트 공연을 위해 2막 사랑 이중창의 콘서트 엔딩을 작곡했으나 당시에는 연주되지 못했다. 이 악보는 오랫동안 분실되었다가 2000년에 플라시도 도밍고, 데보라 포이트, 그리고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의해 처음 녹음되었다.[38]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은 후대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다양한 편곡과 오마주 작품을 탄생시켰다.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또한,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은 그의 1929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음악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6. 2. 철학적, 사상적 영향
루트비히 지기스문트 룰(Ludwig Sigismund Ruhl)이 그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초상화 (1815)
1854년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은 것은 바그너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정신적, 예술적 재평가를 가져왔다.[13]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에 의해 만들어진 진지한 분위기, 황홀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는 분위기"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구상을 고무했다고 언급했다.[13]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적 세계관, 존재의 근본적인 힘으로서 “생의 의지”(독일어: Wille zum Leben)의 우위, 그리고 음악이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가장 고귀한 예술이라는 개념은 바그너에게 깊은 공감을 주었다.[13]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작품을 작곡했는데, 이 작품들의 대본은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음악이 오페라를 지배한다.[13] 이는 바그너가 이전에 『미래의 예술 작품』(1849)에서 음악, 시, 극이 균형을 이루고 총체예술에서 동등한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바그너는 그의 작품 중 가장 교향곡적인 풍부함을 보여주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14] 음악 자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개념, 즉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결코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며 갈망과 고통의 순환으로 이어지는 힘을 구현한다. 바그너는 해결되지 않은 화성적 긴장과 극단적인 반음계주의를 사용하여 영원한 동경과 해결의 부재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오페라의 마지막 순간, 이졸데가 변용을 겪고 "사랑의 죽음"(독일어: Liebestod)을 맞이할 때에야 음악적 긴장이 해소된다. 음악의 열정은 종종 "관능적"이고 "에로틱"하다고 묘사되는데,[15] 이는 불륜 관계인 연인들의 욕망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성적 욕구가 의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입장과도 일치한다.[16]
바그너는 2막에서 "낮"과 "밤"의 은유를 사용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존재하는 영역을 구분한다. 낮은 사회적 의무와 제약의 외부 세계(마르케 왕의 궁정)를, 밤은 진실, 사랑, 진정한 존재가 지배하는 내면 세계를 나타낸다. 밤의 영역은 또한 죽음과 연결되는데, 진정한 합일은 물질 세계를 넘어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이를 쇼펜하우어 철학의 현상(낮)과 본체(밤, 초월적 존재) 개념과 연결시켰다.
1850년대 중반, 바그너는 영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855년에는 인도의 종교에 주목하여 뷔르누프의 ''인도 불교사 서설''과 홀츠만의 ''인도 서사시''에 실린 힌두교 경전을 접했다.[18] 쇼펜하우어를 읽기 전인 1852년에도 이미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를 극찬했다.[19] 쇼펜하우어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같은 독일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을 언급한 것은 바그너의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러한 영향은 오페라 곳곳에 나타난다. 1막 끝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시는 사랑의 묘약은 단순한 춘약이 아니라, 그들을 물질적인 낮의 환상에서 벗어나 밤의 더 높은 영적 통찰로 이끄는 계기로 작용한다. 트리스탄은 2막에서 묘약이 가져온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묘약이여! 묘약이여!''
:''그 마법의 훌륭한 기술이여!''
:''죽음의 문을 통해 나에게 흘러들어왔네,''
:''넓고 열린, 나에게 보여주었네,''
:''내가 보기만을 꿈꿔왔던 것,''
:''밤의 경이로운 영역!''
신화학자 캠벨은 이 순간을 마야의 베일이 걷히는 것으로 해석했다.[20] 마야는 인도 종교에서 물질 세계의 외양, 즉 영적 실재의 본질을 감추는 환상을 의미하며, 쇼펜하우어의 "현상" 개념과 유사하다. 트리스탄은 낮의 거짓된 "위장"을 비난하고 오직 "거룩한 밤"만을 갈망한다.
:''오, 이제 우리는 밤에 기름을 부었네!''
:''질투심으로 가득 찬 배신의 낮은,''
:''그 위장으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거짓말로 우리를 속일 수 없네!''
:''낮의 속임수 속에서,''
:''단 하나의 갈망이 남아 있네—''
:''거룩한 밤에 대한 갈망,''
:''영원한 사랑만이 참된 곳,''
:''사랑은 기쁨으로 웃네!''
이후 이어지는 2막의 유명한 이중창 "사랑의 밤"(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오 징크 헤르니더, 나흐트 데어 리베de)에서 연인들은 영원한 밤에 자신들을 바치며 초월적인 "사랑의 죽음"을 통한 합일을 갈망한다. 이는 개별적 자아가 해체되어 서로 그리고 "최고의 사랑"과 하나가 되는 경험으로, 기독교 신비주의의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우니오 미스티카la)이나 수피즘에서 자아 소멸을 통한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파나" 개념과 유사성을 보인다.
:''트리스탄인 당신, 이졸데인 나, 더 이상 트리스탄이 아니네!''
:''이졸데인 당신, 트리스탄인 나, 더 이상 이졸데가 아니네!''
:''이름을 짓지 않고, 분리하지 않고,''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불태우며;''
:''끝없는, 영원한, 하나의 의식:''
:''최고의 사랑의 기쁨으로 열렬히 타오르는 마음!''
마지막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독일어: Liebestod) 또는 "변용" 장면은 동양 사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졸데가 숨쉬는 것을 묘사하는 독일어 'Atem'(숨)은 영혼 또는 영원한 자아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트만과 어원적으로 연결된다. 그녀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으며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불교의 열반 개념과 관련지어 해석되기도 한다. (당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는 열반을 '무(無)'의 상태로 이해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무한한 팽창 속에서,''
:''울려 퍼지는 부름 속에서,''
:''세상의 숨결, 모두에게 흘러들어오는!''
:''가라앉다…''
:''침몰하다…''
:''무의식…''
:''최고의 행복!''
바그너 학자 존 포한카(John Pohanka)는 바그너 작품에 대한 영적 영향이 대본에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바그너 음악과 드라마 자체가 일부 청중에게 신비적 경험과 유사한 변혁적이고 형언할 수 없는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21]
사상적으로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의 서사시 『밤의 찬가』(1800년)의 영향도 중요하다. 이 작품은 밤의 우월성을 노래하고 죽음과 밤을 동일시하는데, 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사랑의 이중창"의 주제와 깊이 연관된다.[79][86]
토마스 만은 『쇼펜하우어에 관한 에세이』(1938년)에서 『트리스탄』이 쇼펜하우어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의지의 부정〉보다는 사랑과 성(性)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의지 자체, 즉 쇼펜하우어 철학의 "에로틱한 감미로움, 도취적인 에센스"를 추출해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87][88] 쇼펜하우어의 영향과 비극적 구조 때문에 오페라의 "비관주의"가 자주 언급되지만, 학자 조지 에인슬리 하이트는 이를 베단타 철학, 불교, 초기 기독교 등 여러 종교 및 철학 체계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비관주의와 연결시켰다.[22]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주요 작품 중 유일하게 '신'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성서적 은유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1막에서 이졸데가 언급하는 "주인의 두려움"은 성서의 "주를 경외함"을, 2막에서 이졸데가 외치는 "밤이 되어라"(Es werde Nacht|에스 베르데 나흐트de)는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Es werde Licht|에스 베르데 리히트de)를 연상시킨다. 또한 3막에서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도착을 묘사하는 방식은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물 위를 걷는 장면을 암시하며, "마지막 기운"(letzte Labung|레츠테 라붕de)은 가톨릭의 "병자성사"(letzte Ölung|레츠테 욀룽de)를 떠올리게 한다.
트리스탄은 2막에서 멜로트의 칼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3막에서는 상처의 붕대를 풀어헤치는 등 자살 충동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빛이 비치지 않는 나라", "어두운 밤의 나라"라고 부르며, 태생적으로 "죽음의 나라"에 속한 인물처럼 묘사된다. 그에게 사랑은 죽음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89] 이러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은 『파르지팔』의 암포르타스와 유사하며, 초기 구상에서는 파르지팔이 3막에 등장하는 설정도 있었다.
바그너는 작곡 당시 티치아노의 그림 "성모 승천"에 감명받아 "아순타는 성모가 아니다. 사랑으로 정화된 이졸데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졸데를 단순한 연인이 아닌 영혼의 구원자로서 성스러운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90] 음악적으로도 마지막의 C장조 화음은 종교 음악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정화된 이졸데의 최후에 종교적 이미지를 더한다.[91]
6. 3. 비판적 평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늘날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널리 공연되고 있지만, 초연 당시에는 비평가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받았다. 1865년 7월 5일자 《알게마이네 무지칼리체 차이퉁》은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온갖 자극적인 장치로 치장된 관능적 쾌락의 찬양이며, 인간에게는 '비둘기처럼 살다가 '달콤한 향기 속에서 숨처럼 사라지는 것'보다 더 높은 운명이 없다는, 끊임없는 물질주의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음악은 단어에 예속되었고, 뮤즈 중 가장 이상적인 존재가 음탕한 그림을 위한 색깔을 갈아내도록 만들어졌다… (바그너는) 관능 자체를 그의 드라마의 진정한 주제로 만든다… 우리는 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무대 공연이 음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바그너는 그의 독일 관객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강화할 북유럽 사가의 영웅들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관능을 통해 영웅의 삶이 파멸되는 모습이다.
음악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릭은 1868년 《트리스탄》 서곡에 대해 "낡은 이탈리아 그림의 순교자(포르미아의 에라스무스)를 연상시키는데, 그의 창자가 천천히 릴에 감겨 몸에서 풀리는 모습"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23][24] 1882년 런던 드러리 레인 극장에서 열린 첫 공연에 대해 《더 에라》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 우리는 바그너 후기 작품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동물적 욕정에 대한 숭배에 대해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 《트리스탄》에는 《발퀴레》만큼 역겨운 것은 없다고 인정하지만, 시스템은 같다. 그 욕정은 그 자체로 불경스럽고, 그 묘사는 불순하며,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러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것을 기뻐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경향은 해롭다고 확신하며, 따라서 바그너의 음악이 그 놀라운 기술과 힘에도 불구하고 매료시키는 사람보다 혐오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에 다소 위안을 삼을 만한 이유가 있다.[25]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트리스탄》을 관람한 후 불편함을 토로했다. "잠 못 이루고 밤새 울었던 사람들을 몇몇 알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여기서 굉장히 불편함을 느낀다. 때로는 미친 사람들 공동체 속의 유일한 정상적인 사람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유일하게 눈먼 사람처럼, 학자들의 대학에서 더듬거리는 유일한 야만인처럼 느껴지며, 그리고 예배 중에는 항상 천국에 있는 이단자처럼 느껴진다." [26] 작곡가 클라라 슈만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내 생애 가장 불쾌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27]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트리스탄》에 대한 평가는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는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 앞에서 "경외심과 공포에 떨었다"고 고백했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완벽한 바그너주의자: 니벨룽의 반지에 대한 논평》에서 《트리스탄》이 "연인의 결합을 수반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놀랍도록 강렬하고 충실하게 번역한 것"이며 "파괴와 죽음의 시"라고 묘사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처음에는 《트리스탄》의 불협화음을 비판하며 "고양이를 죽이고 바위를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 것"이라고 혹평했지만, 나중에는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일원이 되었고, 1892년 코지마 바그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처음으로 《트리스탄》을 지휘했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멋진 날이었다"고 감격을 표현했다. 1935년에는 대본 작가 요제프 그레고어에게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19세기 전체의 갈망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낭만주의의 종말"이라고 평가했다. [28]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1889년 학생 시절 처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 그래서 나는 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최상층 객석에 앉아 있었고, 첼로의 첫 소리부터 내 마음은 경련처럼 수축되었다… 이전에는 내 영혼이 그러한 소리와 열정의 홍수로 범람한 적이 없었고, 내 마음이 그러한 동경과 숭고한 행복으로 소모된 적이 없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바그너는 나의 신이었고, 나는 그의 예언자가 되고 싶었다.[29]
현대 음악의 선구자인 아르놀드 쇤베르크는 《트리스탄》에서 나타나는 바그너의 화성 기법을 분석하며, 그것이 기존의 조성 체계를 넘어서는 혁신적인 시도임을 지적했다. 그는 이 기법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고 독립적이지 않은 배회, 고향 없는, 조화의 영역 사이를 돌아다니는 현상; 약점을 정찰하는 스파이;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것; 그들 자신의 개성의 항복이 그 자체로 목적인 탈영병들"이라고 묘사했다.
젊은 시절 바그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모든 예술의 진정한 《형이상학적 작품》"이라 칭하며 "밤과 죽음의 비밀에 대한 끝없는 달콤한 갈망… 그것은 단순한 위대함으로 인해 압도적이다"라고 극찬했다. 1868년 친구 에르빈 로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서곡을 듣고 "내 안의 모든 신경이 흥분하고, 이 서곡만큼 오랫동안 지속되는 황홀감을 느낀 지 오래되었다"고 썼다. 비록 나중에 바그너와 사상적으로 결별했지만, 니체는 《트리스탄》을 여전히 걸작으로 인정하며 "지금도 나는 《트리스탄》만큼 위험한 매력, 소름 끼치고 행복한 무한함을 행사하는 작품을 여전히 찾고 있다. 나는 모든 예술에서 헛되이 찾았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그 "끝없는 반복"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그는 서곡의 주제를 "미래와 인간 영혼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가장 특별하고 독특한 장식 중 하나"라고 묘사했다. [30][31]
6. 4.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후대의 작곡가들과 다양한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바그너 생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에서 이 오페라의 음악적 요소나 주제가 인용되거나 패러디되었다.
바그너 자신은 오페라의 서곡과 이졸데의 3막 아리아 "Mild und leise|온화하고 조용히deu"를 콘서트 버전으로 편곡하여 ''프렐류드와 리베스토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편곡은 1862년에 처음 공연되었는데, 이는 오페라 전체 초연(1865년)보다 몇 년 앞선 것이었다. ''리베스토트''는 관현악만으로 연주되거나, 소프라노가 부활한 트리스탄을 보는 이졸데의 환영을 노래하는 형태로 연주될 수 있다. 서곡과 그 시작의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이 대중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1859년 3월 12일 프라하에서 한스 폰 뷔로의 지휘로 열린 자선 콘서트에서였다. 뷔로는 이 연주를 위해 자신만의 콘서트용 결말을 만들었으며, 바그너는 이를 허락했지만 나중에 직접 자신의 버전을 작곡했다.[34][35] 바그너는 서곡을 "리베스토트(사랑-죽음)"로, 이졸데의 마지막 아리아 "온화하고 조용히"는 "Verklärung|베어클레어룽deu(변용)"이라고 불렀다.
1867년, 바그너의 장인인 프란츠 리스트는 "온화하고 조용히"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며 "리베스토트"(S.447)라는 제목을 붙였다. 리스트는 악보에 2막 사랑 이중창의 가사 "sehnend verlangter Liebestod|간절히 바라던 사랑-죽음deu"에 해당하는 4마디 모티브를 추가했다. 리스트의 이 편곡은 오페라 자체가 널리 공연되기 전에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마지막 장면을 "리베스토트"라고 부르는 관행을 굳히는 데 기여했다. 이 편곡은 1875년에 개정되었다.[37]
바그너는 1862년 계획했던 콘서트 공연을 위해 2막 사랑 이중창의 콘서트용 결말을 작곡했으나, 이 공연은 실현되지 않았고 악보는 1950년까지 분실 상태였다. 이후 개인 소장품에서 발견되어 다니엘 바렌보임을 거쳐 안토니오 파파노에게 전달되었다. 이 콘서트 결말이 포함된 첫 녹음은 2000년, 파파노의 지휘 아래 플라시도 도밍고, 데보라 포이트,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다.[38]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시절, 바그너 오페라 음악을 관현악만으로 연주하는 "교향곡 종합(Symphonic Syntheses)"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 중 1막 서곡, 2막의 Liebesnacht|리베스나흐트deu(사랑의 밤), 3막의 Liebestod|리베스토트deu(사랑의 죽음) 등을 포함한 '긴 버전'과, 2막과 3막의 음악을 짧게 편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음악" 버전을 만들어 녹음했다.
영국의 작곡가 로널드 스티븐슨은 이 오페라를 바탕으로 두 개의 편곡을 남겼다. 하나는 1999년 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양치기의 노래를 위한 푸가''이고,[41] 다른 하나는 톰 허버드의 스코틀랜드어 서사시 '이졸데의 사랑-죽음(Isolde's Luve-Daith)' 구절을 목소리와 오르간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42] 후자의 초연은 2003년 에든버러에서 있었다.[43]
음악 외적으로는 영화 감독 루이스 부뉴엘이 그의 1929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음악으로 칼 밤베르거가 지휘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녹음을 사용했으며, 미술 분야에서는 오브리 비어즐리가 이졸데를 주제로 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6. 5. 관련 인물
리하르트 바그너: 작곡가. 1849년 드레스덴 5월 봉기에 연루되어 취리히로 망명했다.[7] 이곳에서 후원자인 오토 베센도르크와 그의 아내 마틸데 베센도르크를 만났다. 바그너는 마틸데와 깊은 관계를 맺었으며, 이 경험은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작곡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작품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오페라를 구상했으며, 1857년부터 1859년까지 취리히, 베네치아, 루체른 등지에서 작품을 완성했다.[58] 바그너는 이 작품을 자신의 "예술의 최고봉"으로 여겼다.[60]
마틸데 베센도르크: 바그너의 후원자 오토 베센도르크의 아내. 바그너와 깊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었으며, 이는 오페라의 내용과 베센도르크 가곡 작곡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7] 바그너는 오페라 대본을 마틸데에게 헌정했으며, 베센도르크 가곡 중 두 곡("꿈", "온실에서")은 오페라의 주요 선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58] 바그너와의 관계는 그의 아내 민나에게 발각되어 결국 바그너가 취리히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62]
민나 플라너: 바그너의 첫 번째 아내. 남편과 마틸데 베센도르크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갈등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바그너와 별거하게 되었다.[62]
오토 베센도르크: 부유한 비단 상인이자 바그너의 후원자. 바그너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아내 마틸데와 바그너의 관계가 드러난 후에도 한동안 지원을 계속했다.[62]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중세 독일 시인. 그의 서사시 《트리스탄》은 바그너가 오페라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전이 되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 철학자. 그의 염세주의 철학, 특히 사랑과 죽음에 대한 관념은 바그너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오페라의 주제 의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철학을 접한 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노발리스: 독일 낭만주의 시인. 그의 서사시 《밤의 찬가》(1800년)는 오페라 2막 사랑의 이중창 내용과 유사성을 보여 바그너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를 리터: 바그너의 친구. 그가 트리스탄 전설을 극화하려 시도했던 것이 바그너가 직접 이 이야기를 다루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바그너는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밝혔다.
프란츠 리스트: 작곡가이자 바그너의 친구. 바그너는 1854년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쇼펜하우어의 영향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구상을 밝히며,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이상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했다.
코지마 바그너: 프란츠 리스트의 딸이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으며, 훗날 바그너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바그너가 1857년 취리히에서 완성된 오페라 대본을 낭독할 때 청중으로 참석했다.
한스 폰 뷜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을 지휘했으며, 작품을 "지금까지의 음악 전반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극찬했다.[61]
루트비히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와 말비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부부 성악가. 1865년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에서 열린 초연에서 각각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을 맡아 열연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독일 철학자. 초기에는 바그너를 열렬히 지지했으나 이후 관계가 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해 "위험한 매력에 차 있고, 무한한 전율과 감미로움을 함께 지닌 작품"이라며 높이 평가했다.[113]
토마스 만: 독일 작가. 바그너의 작품,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깊은 영향을 받아 동명의 소설 《트리스탄》(1903년)을 집필하는 등 바그너와 관련된 다수의 저작과 평론을 남겼다.
6. 6. 관련 작품
베젠도르크 가곡집: 마틸데 베젠도르크의 시에 바그너가 곡을 붙인 가곡집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으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 가곡집의 5곡 중 "꿈"과 "온실에서"에는 "트리스탄에 대한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각각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2막 "사랑의 이중창"과 3막 전주곡의 선율로 활용되었다.
지크프리트: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제3부에 해당한다. 바그너는 『지크프리트』의 작곡을 중단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지크프리트』 작곡 중단 기간에,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이어 "가벼운 희극"으로 계획되어 작곡된 악극이다. 제3막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선율이 인용되기도 한다.
파르지팔: 바그너의 마지막 악극이다. 초기 구상 단계에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제3막에 파르지팔이 등장하는 안도 있었으며, 두 작품 등장인물의 역할과 관련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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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The premiere of Tristan und Isolde
https://www.historyt[...]
History Today Ltd. Company no. 1556332.
2024-10-31
[2]
논문
Richard Wagner's Wesendonck Lieder: Isolde Personified
https://www.research[...]
2024-10-31
[3]
논문
Western Buddhism: Past, Present and Future
https://citeseerx.is[...]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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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っときわめる! 1曲1冊シリーズ03
ON BOOKS adv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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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っときわめる! 1曲1冊シリーズ03
ON BOOKS adv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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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っときわめる! 1曲1冊シリーズ03
ON BOOKS adv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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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っときわめる! 1曲1冊シリーズ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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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リスタンとイゾルデ』のピアノ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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