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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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나즈시는 붕어를 소금에 절인 후 밥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 일본의 전통 발효 음식이다. 3~4세기부터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며, 10세기 문헌에 기록이 남아있다. 주로 시가현에서 생산되며, 붕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후 밥을 채워 1~2년 동안 발효시킨다. 젖산 발효를 통해 부패를 방지하고 감칠맛을 더하며, 유기산을 함유하여 보존성을 높인다. 얇게 썰어 먹거나 차밥으로 즐기며, 알은 치즈와 같은 풍미를 낸다.
후나즈시는 나라 시대부터 그 역사를 찾을 수 있다. 나가야 왕가의 목간과 니조 거리 목간에서 "후나즈시" 또는 "스시부나"라는 단어가 발견된다.[9] 헤이안 시대의 『엔기시키』에는 오미 국 쓰쿠마 조리실(시가현 마이바라시)에서 "스시부나"를 공납했으며, "쌀"과 "소금"을 사용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10][28]
2. 역사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중 위문으로 후나즈시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히데요시는 이에 대한 답례로 주인을 보냈다고 한다.
에도 시대에는 오미국(시가현)에서 봄에 잡힌 붕어와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잡히는 단풍붕어를 이용하여 "후나즈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름의 고온을 거치지 않은 단풍붕어로 만든 스시(鮓)는 발효가 늦어져 점차 쇠퇴하였다.[13][29] 현재 시가현의 "후나즈시"는 봄에 잡힌 붕어를 사용한다.[14]
14세기에는 나무 통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 통은 후나즈시 생산에도 사용되었다.[17] 1483년과 1485년, 치카모토의 일기에는 오미국의 롯카쿠 씨족으로부터 후나즈시를 선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11]
17세기 요리책 ''고루이 니치요 료리 쇼''(合類日用料理抄)에는 "오미의 후나로 스시 만드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15][16] 겨울에 붕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후, 검은 쌀을 끓여 소금과 섞어 붕어와 함께 용기에 넣고 숙성시키는 방식이다.
18세기 시인 요사 부손은 후나즈시와 관련된 하이쿠를 남겼으며,[17] 1788년에는 화가 시바 코칸이 시가현 히노시에서 3년간 보존된 후나즈시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19]
19세기에는 마사오카 시키가 후나즈시에 대한 하이쿠와 에세이를 남겼다.[21] 1904년에 출판된 책에는 후나즈시를 이용한 수프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22] 1916년의 한 에세이에는 후나즈시의 냄새 때문에 먹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23]
1935년에는 시가현 내 여러 지역에서 후나즈시가 상업적으로 생산되었다.[11] 1950년대에는 후나즈시 제조 용기가 나무 통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생산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24] 1998년에는 시가현의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1] 최근에는 비와호의 환경 변화와 침입종으로 인해 후나즈시의 주재료인 니고로부나의 수가 감소하고, 후나즈시를 만드는 가구 수도 줄어들고 있다.[1]
2. 1. 기원
''후나즈시''는 나레즈시의 일종으로, 생선을 소금에 절였다가 밥과 함께 젖산균으로 발효시켜 만든 음식이다.[1] 17세기 이전까지 ''스시''는 나레즈시를 의미했으며, 현대의 스시처럼 식초를 섞은 밥으로 만드는 방식은 17세기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3]
나레즈시의 기원은 동남아시아 윈난성의 산악 지역에서 발견된 생선 저장 방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이론도 존재한다.[4] 2세기 설문해자에는 "시큼한 생선"을 의미하는 "鮓"라는 글자가 등장하지만, 제조법은 불분명하다.[7] 3세기 남중국의 석명에는 소금과 쌀을 섞어 생선을 발효시키는 방법이 묘사되어 있어, 기본적인 과정은 이미 이 시기에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7] 그러나 일본의 초밥은 일본 자체적으로 재발견되었다는 이론도 있다.[7]
나가야 왕자 (684 – 729년 3월 20일)의 궁궐 목간과 니조 거리 목간에서 ''후나즈시''와 ''스시-후나''라는 단어가 발견된다.[9] 10세기에 쓰여진 엔기시키에는 일본 각지에서 생산된 ''나레즈시''가 세금으로 수도에 수집되는 방식이 묘사되어 있다.[7] 일본 음식 역사학자 시노다 오사무(篠田統)는 엔기시키에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잉어 초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 초밥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본다.[7] 같은 엔기시키에는 오미국의 지쿠마-쿠리야(현재의 시가현 마이바라시)에서 붕어를 쌀과 젖산 발효시키는 ''후나즈시''의 원형이 이미 이 시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10]
16세기 센고쿠 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오다 노부나가는 그의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살해당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로 미쓰히데가 대접받은 생선이 썩었다고 불평한 것에 앙심을 품었다는 설이 있다. 이 식사에 ''후나즈시''도 제공되었다.[12]
에도 시대에는 오미국 (시가현)에서 봄철에 잡은 붕어와 가을과 겨울철의 붉은 잎 붕어로 ''후나즈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름철의 고온을 거치지 않은 붉은 잎 붕어로 만든 ''후나즈시''는 발효가 느려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13] 현재 시가현의 "후나즈시"는 봄 붕어로 만들어진다.[14] 19세기까지는 산란이 없는 붕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17] 에도 시대까지 많은 문서에서 ''겐고로부나''(''Carassius cuvieri'')가 원료로 사용되었다고 언급했지만, 현재는 이것이 실제로는 ''니고로부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17]
2. 2. 일본 전래
나라 시대까지 후나즈시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며, 나가야 왕가의 목간과 니조 거리 목간에 "후나즈시" 또는 "스시부나"라는 단어가 나타난다.[9] 헤이안 시대의 『엔기시키』 기록에 따르면, 오미 국 쓰쿠마 조리실(시가현 마이바라시)에서 "스시부나"가 공납되었으며, "쌀"과 "소금"을 사용하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10][28]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중 위문으로 후나즈시를 보냈고, 히데요시는 답례로 주인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 오미 국(시가현)에서는 봄에 잡힌 붕어와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잡히는 단풍붕어로 "후나즈시"를 만들었지만, 여름의 고온을 거치지 않은 단풍붕어 스시(鮓)는 발효가 늦어져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13][29] 현재 시가현의 "후나즈시"는 봄에 잡힌 붕어를 사용한다.[14]
많은 문헌에서 ''나레즈시''가 동남아시아 윈난 성 산악 지역에서 발견된 생선 저장 방법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론도 존재한다.[4]
고대 중국의 ''자''(鮓)와 일본 ''나레즈시''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일본에서는 8세기에 쓰여진 법전인 요로령에 "鮓"라는 글자가 등장한다.[7] 9세기 ''신센지쿄''에는 "스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7] "스시"는 형용사 "시다"의 명사형이므로, 생선이 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쌀을 이용한 젖산 발효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후나즈시''는 고대 일본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14세기까지는 항아리와 같은 토기 용기가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나무 통이 ''후나즈시''를 만드는 용기로 사용된다.[17]
3세기 또는 4세기로 추정되는 전설적인 인물 스진 천황의 왕자 토요키 이리히코가 시가현 모리야마시에 들렀을 때 마을 사람들로부터 ''후나즈시''를 대접받았다는 전설이 있다.[8]
10세기 행정 매뉴얼 ''엔기시키''에는 일본 각지에서 생산된 생선 종류인 ''나레즈시''가 세금으로 수도에 수집되는 방식이 묘사되어 있다.[7] 20세기 일본 음식 역사학자 시노다 오사무(篠田統)는 ''엔기시키''에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잉어 초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 초밥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본다.[7]
같은 ''엔기시키''에는 중앙 정부가 오미 국 지쿠마-쿠리야(현재 시가현 마이바라시)에 용기, 천, 삼, 사케, 쌀, 소금, 대두를 제공했으며, 이후 간장(오늘날의 간장이 아님)에 절여 소금에 절인 ''스시-후나''를 만들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 묘사로부터 붕어를 쌀과 젖산 발효시키는 ''후나즈시''의 원형이 이 시기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10]
11세기 ''신사루가쿠키''는 붕어에 관해 오미를 언급하고 있다.[10]
붕어를 난소와 함께 ''후나즈시''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12세기 ''곤자쿠 모노가타리슈''에는 식초에 절인 난소를 가진 붕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10] 그러나 19세기까지 난소는 종종 사용되지 않았다.[17]
14세기에는 나무 통/원통을 만드는 과정이 개발되었다. 통은 ''후나즈시'' 생산에도 사용되었지만, 그 시작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다.[17] 사케 통에는 새 나무가, ''후나즈시''에는 낡은 나무가 선호되었다. 후나즈시 통은 작았기 때문에 사케 통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24]
1483년과 1485년, 치카모토의 일기에는 오미 국에 근거지를 둔 롯카쿠 씨족으로부터 ''후나즈시''를 선물받았다는 기록이 있다.[11]
16세기 일본 내전인 센고쿠 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오다 노부나가는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살해당했다. 살해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미쓰히데가 살해 직전 노부나가가 대접받은 생선이 썩었다고 불평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 이 식사에는 ''후나즈시''도 제공되었다.[12]
17세기 요리책 ''고루이 니치요 료리 쇼''(合類日用料理抄)에는 "오미의 후나로 스시 만드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 겨울에는 아가미 구멍을 통해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머리를 제거한 다음 소금을 넣은 용기에 넣어 소금에 절인다. 그 후, 검은 쌀을 물을 적게 하여 끓여 소금과 섞어 생선과 함께 용기에 넣고 덮개를 덮고 무게를 올려 놓는다. 약 20일 후, 무게를 조금 줄인다. 약 70일 후에는 먹을 수 있다. 덮개 위에 무거운 추를 올려 하중을 균등하게 한 후 덮개 위에 소금물을 저장하면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뼈가 부드러워지고 다음 가을까지 두면 맛이 더 좋아진다.[15][16] 덮개 위 물은 매일 교체한다. 겨울에 생산을 시작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여름에 생산을 시작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17] 현재 ''후나즈시'' 제조법은 고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현대에는 무게가 점차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18]
이 시대 문헌은 종종 오미 붕어를 ''겐고로부나''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비와호에서 잡힌 붕어 대부분이 당시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겐고로부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이며, ''겐고로부나''와 ''니고로부나''가 일반적으로 구별된 것은 1920년대까지였다.[17]
18세기 시인 요사 부손은 "''후나즈시''를 먹으려다 히코네 성 위로 구름이 보이는구나" (鮒鮓や彦根が城に雲かかる), "여름 들판에서, 얼마 동안 ''후나즈시''를 보지 못했음을 깨닫다" (鮒鮓の便りも遠き夏野哉)와 같은 하이쿠를 남겼다.[17]
1788년 8월, 화가 시바 코칸은 시가현 히노시에 들러 3년 동안 보존된 ''후나즈시''를 먹었다.[19]
1896년, 일본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후나즈시를 먹는 동안, 세타는 저녁이 되었고 미이데라 사찰의 종소리가 들렸다." (鮒鮓や瀬田の夕照三井の鐘)라는 하이쿠를 썼다. 그는 "보쿠쥬 한 방울"이라는 에세이에서 "요즘 사람들은 ''후나즈시''를 만드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를 사용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21]
1904년에 출판된 책에는 "수프 그릇에 ''후나즈시''에 소금을 약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덮어두면 잠시 후 맛있는 수프가 된다."라고 적혀 있다.[22]
1916년 출판된 에세이에서, 저자는 고향에서 온 ''겐고로부나 후나즈시''를 집주인에게 주었는데, 술을 좋아하던 집주인이 기뻐했다. 그러나 저자가 친구들에게 대접했을 때, 냄새 때문에 모두 먹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저자는 쌀 위에 ''후나즈시''를 올려놓고 뜨거운 반차 녹차를 부어 차즈케(녹차를 곁들인 밥)로 먹었다."[23]
1935년, ''후나즈시''의 상업적 생산은 야스, 이누카미, 다카시마, 구리타, 가모, 간자키, 히가시아자이 순으로 이루어졌다.[11]
1950년대에는 ''후나즈시''를 만드는 용기가 나무 통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유지 관리가 더 쉬워지고 발효가 더 안정되었다.[24]
2. 3. 중세-근세
나라 시대 나가야 왕자 (684 – 729년 3월 20일)의 궁궐 목간과 니조 거리 ''목간''에서 ''후나즈시''와 ''스시-후나''라는 단어가 발견된다.[9]
헤이안 시대인 10세기에 쓰여진 행정 매뉴얼인 ''엔기시키''에는 일본 각지에서 생산된 생선 종류인 ''나레즈시''가 세금으로 수도로 수집되는 방식이 묘사되어 있다.[7] 20세기 일본 음식 역사학자 시노다 오사무(篠田統)는 ''엔기시키''에 중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잉어 초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 초밥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본다.[7] 같은 ''엔기시키''에는 중앙 정부가 오늘날에도 ''후나즈시'' 생산지로 알려진 오미국의 지쿠마-쿠리야(현재의 시가현 마이바라시)에 용기, 천, 삼, 사케, 쌀, 소금, 대두를 제공했으며, 이후 간장(오늘날의 간장이 아님)에 절여 소금에 절여 ''스시-후나''를 만들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묘사로부터 붕어를 쌀과 젖산 발효시키는 ''후나즈시''의 원형이 이미 이 시기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10] 11세기의 ''신사루가쿠키''는 붕어에 관해 오미를 언급하고 있다.[10]
붕어를 난소와 함께 ''후나즈시''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12세기의 ''곤자쿠 모노가타리슈''에는 식초에 절인 난소를 가진 붕어에 대한 언급이 있다.[10]
14세기에 나무 통/원통을 만드는 과정이 개발되었다. 통은 ''후나즈시'' 생산에 사용되었지만, 그 시작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다.[17] 1483년과 1485년, 치카모토의 일기에는 오미국에 근거지를 둔 롯카쿠 씨족으로부터 ''후나즈시''를 선물받았다는 기록이 있다.[11]
16세기 일본 센고쿠 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오다 노부나가는 그의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살해당했다. 살해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한 가지 설은 미쓰히데가 살해 직전 노부나가가 대접받은 생선이 썩었다고 불평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나즈시''도 이 식사에 제공되었다.[12] 임진왜란 때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중 위문으로 후나즈시를 보냈고, 히데요시는 답례로 주인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인 17세기에 시작된 ''후나즈시''는 봄철에 잡은 붕어와 가을과 겨울철의 붉은 잎 붕어로 오미국 (시가현)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름철의 고온을 거치지 않은 붉은 잎 붕어로 만든 ''후나즈시''의 발효 과정은 느리고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13] 현재 시가현의 "후나즈시"는 봄 붕어로 만들어진다.[14] 17세기 요리책 ''고루이 니치요 료리 쇼''(合類日用料理抄)에는 "오미의 후나로 스시 만드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15][16]
18세기 시인 요사 부손은 "''후나즈시''를 먹으려다 히코네 성 위로 구름이 보이는구나" (鮒鮓や彦根が城に雲かかる), "여름 들판에서, 얼마 동안 ''후나즈시''를 보지 못했음을 깨닫다" (鮒鮓の便りも遠き夏野哉)와 같은 하이쿠를 남겼다.[17] 1788년 8월, 화가 시바 코칸은 시가현 히노시에 들러 3년 동안 보존된 ''후나즈시''를 먹었다.[19]
1896년, 일본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후나즈시를 먹는 동안, 세타는 저녁이 되었고 미이데라 사찰의 종소리가 들렸다." (鮒鮓や瀬田の夕照三井の鐘)라는 하이쿠를 썼다.[21]
2. 4. 근대-현대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중 위문으로 후나즈시를 보냈고, 히데요시는 답례로 주인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도 시대에는 오미국(시가현)에서 봄에 잡힌 붕어와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잡히는 단풍붕어로 "후나즈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름철 고온을 거치지 않은 단풍붕어로 만든 스시(鮓)는 발효가 늦어져 점차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13] 현재 시가현의 "후나즈시"는 봄에 잡힌 붕어를 사용한다.[14]
17세기 요리책 ''고루이 니치요 료리 쇼''(合類日用料理抄)에는 "오미의 후나로 스시 만드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 겨울에는 아가미 구멍을 통해 생선의 내장을 제거하고 머리를 제거한 다음 소금을 넣은 용기에 넣어 소금에 절인다. 그 후, 검은 쌀을 물을 적게 하여 끓여 소금과 섞어 생선과 함께 용기에 넣고 덮개를 덮고 무게를 올려 놓는다. 약 20일 후, 무게를 조금 줄인다. 약 70일 후에는 먹을 수 있다. 덮개 위에 무거운 추를 올려 하중을 균등하게 한 후 덮개 위에 소금물을 저장하면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뼈가 부드러워지고 다음 가을까지 두면 맛이 더 좋아진다.[15][16]
덮개 위의 물은 매일 교체한다. 겨울에 생산을 시작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여름에 생산을 시작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17] 또한, 현재의 ''후나즈시'' 제조법은 고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현대 사례에서 무게가 점차 증가한다.[18]
이 시대의 문헌은 종종 오미 붕어를 ''겐고로부나''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와호에서 잡힌 붕어의 대부분이 당시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겐고로부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이며, ''겐고로부나''와 ''니고로부나''가 일반적으로 구별된 것은 1920년대까지였다.[17]
18세기 시인 요사 부손은 "''후나즈시''를 먹으려다 히코네 성 위로 구름이 보이는구나" (鮒鮓や彦根が城に雲かかる), "여름 들판에서, 얼마 동안 ''후나즈시''를 보지 못했음을 깨닫다" (鮒鮓の便りも遠き夏野哉)와 같은 하이쿠를 남겼다.[17]
1788년 8월, 화가 시바 코칸은 시가현 히노시에 들러 3년 동안 보존된 ''후나즈시''를 먹었다.[19]
1896년, 일본 시인 마사오카 시키는 "후나즈시를 먹는 동안, 세타는 저녁이 되었고 미이데라 사찰의 종소리가 들렸다." (鮒鮓や瀬田の夕照三井の鐘)라는 하이쿠를 썼다. 그는 또한 "보쿠쥬 한 방울"이라는 에세이에서 "요즘 사람들은 ''후나즈시''를 만드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를 사용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21]
1904년에 출판된 책에는 "수프 그릇에 ''후나즈시''에 소금을 약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덮어두면 잠시 후 맛있는 수프가 된다."라고 적혀 있다.[22]
1916년에 출판된 에세이에서, 저자는 고향에서 온 ''겐고로부나 후나즈시''를 그의 집주인에게 주었는데, 술을 좋아하던 집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저자가 친구들에게 그것을 대접했을 때, 그들은 냄새 때문에 모두 먹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저자는 쌀 위에 ''후나즈시''를 올려놓고 뜨거운 반차 녹차를 부어 차즈케(녹차를 곁들인 밥)로 먹었다."[23]
1935년, ''후나즈시''의 상업적 생산은 야스, 이누카미, 다카시마, 구리타, 가모, 간자키, 히가시아자이 순으로 이루어졌다.[11]
1950년대에는 ''후나즈시''를 만드는 용기가 나무 통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유지 관리가 더 쉬워지고 발효가 더 안정되었다.[24]
1998년, 시가현의 무형 민속 문화재로 음식으로서 선정되었다.[1]
최근 몇 년 동안, 비와호의 산란 환경 악화와 침입종에 의한 먹이 피해로 인해 ''니고로부나''의 수가 감소하고, ''후나즈시''를 만드는 가구 수도 줄어들고 있다.[1]
3. 제조 방법
후나즈시는 붕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후 밥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 붕어는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 다음 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하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밥을 채운다. 큰 통에 밥과 소금에 절인 붕어를 넣어 1년에서 2년 동안 발효시킨다.[1] 발효에 사용된 밥은 버리고 생선만 먹는다.[2]
현대의 스시는 식초를 섞은 밥으로 만들지만, 17세기 이전까지 ''스시''는 나레즈시를 의미했다.[3]
젖산균과 효모의 작용을 이용하는 발효 식품으로, 유기산으로 젖산 외에 개미산,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낙산 등이 검출된다.[25] 생선 육질의 자기 소화에 의해 생성되는 여러 엑기스 성분, 그리고 유산균, 혐기성 세균, 효모 등에 의해 생성되는 유기산과 알코올 등에 의해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진다.[25] 유기산 등의 영향으로 pH가 낮아져 보존성도 높아진다.[25]
먹는 방법은 붕어를 얇게 썰어 접시에 담아 먹거나, 그대로 먹거나, 오차즈케와 같이 차를 부어 먹는 등 다양하다. 알 부분은 치즈와 같은 향과 식감을 가지고 있다.
3. 1. 재료
후나즈시의 주재료는 비와호의 고유종인 니고로부나(''Carassius auratus grandoculis'')이다.[1][5] 전통적으로 산란기의 암컷 붕어가 주로 사용되었지만,[17] 에도 시대 문헌에는 겐고로부나(Carassius cuvieri)가 원료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17] 그러나 현재는 이것이 실제로는 ''니고로부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17]
최근 비와호의 산란 환경 악화와 침입종에 의한 먹이 피해로 ''니고로부나''의 수가 감소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1][4] 시가현에서는 ''니고로부나'' 자원 회복을 위해 치어 방류 및 호숫가 갈대 군락 보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4]
시가현에서는 ''니고로부나'' 외에도 갈겨니(ugui), 참갈겨니(hasu), 모로코(moroko), 은어(Ayu Biwa trout), 잉어(koi), 미꾸라지(dojo) 등 다양한 민물고기를 사용한 나레즈시도 만든다.[6]
3. 2. 과정
후나즈시는 붕어의 내장을 전부 제거하고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 다음, 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하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밥을 채운 다음 큰 통에 밥과 소금에 절인 붕어를 넣어 1년에서 2년 동안 발효시켜 만든다.[4] 발효가 끝난 후나즈시에서 밥을 제거하고 썰어서 그냥 먹거나, 차를 넣어 먹는 일종의 국밥인 오차즈케(お茶漬け일본어)의 형태로 먹는다.
제조 과정은 판매업체나 가정마다 다르다.[4][6] 현대에는 대부분 초봄에 생선을 소금에 절인다. 비늘, 아가미, 그리고 난소를 제외한 내장을 제거한 생선에 소금을 채워 넣고, 여름까지 나무 통에 겹겹이 쌓아 보관한다.
여름에는 생선을 헹궈 소금기를 빼고, 말린 후, 밥을 지은 쌀 위에 나무 통에 넣는다. 그 위에 쌀을 더 뿌리고, 다시 생선을 놓는다. 여러 겹을 쌓은 후, 덮개를 덮고 그 위에 추를 올려놓는다. 그 후 겨울까지 몇 달 동안 보관하여 발효시킨다.[6]
''후나즈시''의 맛과 보존성은 주로 이 쌀 절임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여겨진다.[4] 초기 단계의 소금 절임 과정은 또한 부패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자가 분해의 진행을 억제하며, 고기를 건조, 경화 및 출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4]
''후나즈시''는 젖산균과 효모의 작용을 이용하는 발효 식품이다.[4] 젖산 발효에는 공기 차단이 중요하며, 물을 사용하여 덮개의 상단을 덮어왔다. 현재는 비닐 봉투를 통 위에 덮고, 봉투에 생선과 쌀을 채운 후, 봉투 입구를 닫고 덮개와 추를 봉투 위에 올려 물 없이 공기를 차단한다.
생선 1kg당 제조하려면 통 하나에 생선 40~50마리, 쌀 27kg, 소금 15kg이 들어간다.[11]
현재 시가현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반적인 제법은 다음과 같다.[30]
1. 봄에 잡은 붕어의 비늘과 아가미, 난소 이외의 내장을 제거한다. 내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배를 가르지 않고, 끝을 구부린 금속 막대 등을 붕어의 입에서 삽입하여 내장을 걸어 꺼낸다. 그리고 붕어 복강 내에 소금을 채워 넣고, 이것을 소금을 깐 통에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소금을 겹겹이 쌓고, 거기에 소금을 채운 붕어를 나란히 놓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을 덮고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냉암소에 보관한다. 이것을 "소금 절임"이라고 한다.
2. 여름의 토용 무렵까지 소금에 절인 후, 붕어를 꺼내어 물로 잘 씻어 소금기를 뺀다. 소금 맛이 약간 남을 정도로 소금기를 빼고, 다음으로 밥을 붕어의 몸 안에 채운다. 이 밥에는 소금을 섞지만, "소금 절임"한 붕어에는 소금 맛이 배어있기 때문에, 밥에 소금을 섞지 않는 방법도 있다. 또한,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술을 첨가하는 제법도 있다. 통 안에는 붕어뿐만 아니라 밥도 번갈아 가며 깔고, 붕어는 몸 안과 밖에서 밥에 둘러싸인 상태로 채워진다. 덮개 뚜껑 위에서 무거운 돌을 올려놓고 냉암소에 보관한다. 젖산 발효에는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무거운 돌을 올린 후에 통에 물을 채우는 것이 행해져 왔지만, 현재는 통에 비닐 봉투를 깔고 붕어와 밥을 채운 다음, 비닐 봉투 입구를 막고 덮개 뚜껑과 무거운 돌을 올려 물을 채우지 않고 공기를 차단하는 방법도 사용된다.
3. 여름의 토용 무렵에 밥 절임을 하면, 늦가을에는 먹을 수 있다. 또한, 1년에서 2, 3년 정도 밥 절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 통 안의 붕어는 젖산 발효에 의해 부패가 방지되고, 아미노산 등의 감칠맛 성분이 증가한다.
4. 밥 절임을 한 후에, 술지게미나 된장에 절이기도 한다.
4. 먹는 방법
붕어의 내장을 전부 제거하고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 다음, 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하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밥을 채운 다음 큰 통에 밥과 소금에 절인 붕어를 넣어 1년에서 2년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난 붕어초밥에서 밥을 제거하고 썰어서 그냥 먹거나, 차를 넣어 먹는 일종의 국밥인 오차즈케(お茶漬け일본어)의 형태로 먹는다.[1]
얇게 썰어 사케와 함께 간식으로 먹거나, 차즈케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1] 알 부분은 치즈와 같은 향과 식감을 가지고 있다.[2]
5. 생화학적 특징
후나즈시는 젖산균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나레즈시의 일종이다.[1] 젖산은 뼈를 부드럽게 만들어 생선을 뼈째 먹을 수 있게 한다.[1] 후나즈시는 젖산, 개미산,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부티르산과 같은 유기산을 함유하고 있어 pH를 낮추어 보존성을 높인다.[4]
후나즈시는 유산균과 효모의 작용을 이용한 발효 식품이다.[25] 유기산으로 젖산 외에 개미산,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낙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25] 생선 육질의 자기 소화에 의해 생성되는 여러 엑기스 성분, 그리고 유산균, 혐기성 세균, 효모 등에 의해 생성되는 유기산과 알코올 등에 의해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진다.[25]
6. 현대의 문제점
최근 몇 년 동안, 비와호의 산란 환경 악화와 침입종에 의한 먹이 피해로 인해 ''후나즈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니고로부나''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1] இதனால் ''후나즈시''를 만드는 가구 수도 줄어들고 있다.[1] 시가현은 비와호에 어린 물고기를 방류하고 호숫가의 갈대 군락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4]
7. 다른 발효 음식과의 비교
후나즈시는 유산균과 효모의 작용을 이용한 발효 식품이다.[25] 유기산으로 젖산 외에 개미산, 아세트산, 프로피온산, 낙산 등이 검출된다.[25] 생선 육질의 자체 소화에 의해 생성되는 여러 엑기스 성분, 그리고 유산균, 혐기성 세균, 효모 등에 의해 생성되는 유기산과 알코올 등에 의해 독특한 풍미가 만들어진다.[25] 유기산 등의 영향으로 pH가 낮아져 보존성도 높아진다.[25]
후나즈시는 냄새가 강한 음식 중 하나로, 냄새 정도를 나타내는 앨러배스터(Au) 단위로 측정했을 때 486 Au이다.[33] 이는 낫토(452 Au)보다 강하고, 구사야(구운 것, 1267 Au)보다는 약한 수치이다.
음식명 | 앨러배스터 단위 (Au) |
---|---|
수르스트뢰밍 | 8070 |
홍어회 | 6230 |
에피큐어 치즈 (통조림 치즈) | 1870 |
두리안 | 1650 |
키비악 | 1370 |
구사야 (구운 것) | 1267 |
후나즈시 | 486 |
낫토 | 452 |
구사야 (가열 전 말린 것) | 447 |
타쿠앙 절임 (묵은 것) | 430 |
취두부 | 420 |
8. 명칭
鮒鮓일본어는 나레즈시의 일종이다.[1] 나레즈시는 생선을 여러 달 동안 소금에 절인 후 소금을 제거하고 밥과 섞어 젖산균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발효에 사용된 밥은 버리고 생선만 먹는다.[2] 현대의 스시는 식초를 섞은 밥으로 만들지만, 이는 17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전까지 ''스시''라는 단어는 나레즈시를 의미했다.[3]
많은 문헌에서 나레즈시가 동남아시아 윈난성의 산악 지역에서 발견된 생선 저장 방법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론도 존재한다.[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산란을 가진 붕어가 ''후나즈시''에 사용된다. 그러나 19세기까지는 산란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17] 알 부분은 치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2]
''후나즈시''와 ''스시-후나''라는 단어는 나가야 왕자 (684 – 729년 3월 20일)의 궁궐 목간과 니조 거리 목간에서 발견된다.[9]
「후나즈시」라는 단어는 표기가 다양하다. 한자의 뜻을 정확하게 적용하면, "붕어의 삭힌 초밥"이라는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鮒鮓'''"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鮒寿司'''" 등의 다른 표기가 많이 사용된다. "寿司"는 "鮨(삭힌 초밥 이외의 초밥)"를 차자로 바꾼 것으로, "속성 초밥"을 의미하므로 의미상 모순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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