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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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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손강은 후한 말 요동 태수로, 아버지 공손탁의 뒤를 이어 요동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189년 아버지 공손탁이 요동 태수가 된 후 중원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했으며, 204년 아버지 사망 후 요동 태수를 계승했다. 그는 조조에게 형식적으로 복종했지만, 실제로는 반독립적인 지배를 유지했다. 207년, 조조에게 패한 원희와 원상 형제를 참수하여 조조에게 바치고 양평후와 좌장군에 임명되었다. 또한 고구려를 침략하여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대방군을 설치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사후에는 동생 공손공이 요동태수를 이었으며, 위나라 조비로부터 대사마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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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강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공손강
본명공손강 (公孫康)
로마자 표기Gongsun Kang
직위후한 요동태수 겸 좌장군, 사후 대사마 추증
작위양평후 (襄平侯)
출생년도172년
사망년도210년
출생지유주 요동군 양평현
아버지공손탁
형제공손공(동생)
자녀공손황, 공손연(차남)
직업군인, 정치가, 군벌
관직 정보
관직좌장군 (左將軍)
임기 시작207년
임기 종료210년
군주헌제
관직요동태수 (遼東太守)
임기 시작204년
임기 종료210년
군주헌제
전임자공손탁
후임자공손공
기타 정보
소속요동에서 독자 세력 유지

2. 생애

공손강은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양평현령 공손소에게 무시당했다. 189년(중평 6년) 아버지 공손탁이 요동태수가 되자, 중원의 혼란을 틈타 독자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2. 1. 요동 태수 계승과 독자 세력 구축

204년(건안 9년) 아버지 공손탁이 죽자 요동태수 지위를 물려받았다. 형식적으로는 한나라 재상 조조의 신하였지만, 자신의 영토는 중앙 정부로부터 반독립적인 상태로 유지했다. 아버지가 자칭했던 평주목으로서 유성오환(柳城―)의 초왕(峭王)에게 한충(韓忠)을 보내 선우의 인수를 주었는데 견초가 기지를 발휘한 탓에 실패하고 그들은 사공기주목 조조에게 붙었다.[9]

날로 강성해지는 한과 에 대항하여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을 갈라 대방군을 신설하고 공손모(公孫模)와 장창(張敞)으로 하여금 한과 예를 쳐서 흩어졌던 유민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10]

207년 원희, 원상 형제요서에서 조조에게 완전히 패하고 수천 명만 이끌고 의탁하러 왔다. 원상은 용력이 있어 원희에게 ‘공손강을 죽이고 요동군을 기반으로 한다면 재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공손강은 공손강대로 그 형제를 잡아 나라에 공을 세우기 위해 복병을 숨겨두고 그들을 불러들였다. 원희와 원상이 들어오자마자 포박하여 얼어붙은 위에 앉혔다. 원상의 “아직 죽지 않은 동안의 추위를 참지 못하겠으니 앉을 자리 정도는 주는 것이 옳소.”라는 에 “경의 머리가 만 를 가게 생겼는데 자리는 무슨 자리!”라 답하며 참수하였다.[11] 그 머리들을 조조에게 보낸 공으로 양평후(襄平侯)와 좌장군을 받았다.

이후 죽었을 때 아들 공손황공손연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동생인 공손공이 요동태수를 이었다. 위나라황제가 된 조비221년(황초 2년)에[12] 대사마추증해줬다.

2. 2. 대외 관계

공손강은 후한 중앙 정부가 임명한 요동 태수 공손도의 아들이었다. 204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요동, 현도군, 낙랑군의 영토를 지배했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한나라 재상 조조의 신하였지만, 자신의 영토는 중앙 정부로부터 반독립적인 상태로 유지했다.

2. 2. 1. 고구려와의 관계

204년, 공손강은 고구려의 왕 산상왕의 형인 발기가 3만 명의 군사를 요청하며 고구려 침략을 돕자 이를 지원했다.[4] 같은 해, 공손강은 낙랑군의 남쪽 절반을 분리하여 대방군을 설치했다. 고구려는 첫 번째 침략을 물리치고 발기를 죽였지만,[5] 공손강은 209년에 다시 고구려를 침략하여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고구려를 약화시켰다.[6] 요동의 압박으로 인해 고구려는 수도를 훈강 유역에서 환도산성 인근 압록강 유역으로 옮겨야 했다.[7]

2. 2. 2. 한(韓)과 예(濊)와의 관계

204년(건안 9년), 날로 강성해지는 한과 에 대항하여 낙랑군의 둔유현(屯有縣) 이남을 갈라 대방군을 신설하고 공손모(公孫模)와 장창(張敞)으로 하여금 한과 예를 쳐서 흩어졌던 유민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10] 같은 시기, 낙랑군 18성의 남쪽 절반인 둔유현(현재의 황해북도 황주?) 이남을 떼어내 대방군을 설치하고, 삼한과 까지 세력을 넓혔다.[8]

2. 2. 3. 원희, 원상 형제 처형

207년 원희, 원상 형제가 요서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수천 명만 이끌고 의탁하러 왔다. 원상은 용력이 있어 원희에게 ‘공손강을 죽이고 요동군을 기반으로 한다면 재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공손강은 그 형제를 잡아 나라에 공을 세우기 위해 복병을 숨겨두고 그들을 불러들였다. 원희와 원상이 들어오자마자 포박하여 얼어붙은 위에 앉혔다. 원상의 “아직 죽지 않은 동안의 추위를 참지 못하겠으니 앉을 자리 정도는 주는 것이 옳소.”라는 에 “경의 머리가 만 를 가게 생겼는데 자리는 무슨 자리!”라 답하며 참수하였다.[11] 그 머리들을 조조에게 보낸 공으로 양평후(襄平侯)와 좌장군을 받았다.

2. 3. 사망과 후계

공손강이 사망하자 아들인 공손황공손연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동생인 공손공이 요동태수를 이었다.[12] 조비위나라의 황제가 된 후 221년(황초 2년)에 공손강에게 대사마를 추증했다.[12]

3. 부하


  • 한충
  • 공손모
  • 장창

4. 가계

공손탁

5.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희, 원상 형제를 베는 대목에서만 등장한다.

참조

[1] 문서
[2] 문서
[3] 문서
[4] 뉴스 History: King Sansang https://world.kbs.co[...] 2023-08-30
[5] 뉴스 History: King Sansang https://world.kbs.co[...] 2023-08-30
[6] 서적 A Biographical Dictionary of Later Han to the Three Kingdoms Brill
[7] 서적 State Formation in Korea Curzon Press
[8] 문서
[9] 서적 《삼국지》26권 위서 제26 견초
[10] 서적 《삼국지》30권 위서 제30 [[동이]] 한. 대방군은 건안 연간에 설치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록이 없다.
[11] 서적 《[[후한서]]》74권下 열전 제64下 [[원소 (후한)|원소]] [[원담|자담]]. 비슷한 내용이 《삼국지》6권 위서 제6 원소에 [[배송지]]가 인용한 《전략》(典略)에도 실려있다. 《전략》에서는 공손강의 대사를 원희가 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12] 서적 《삼국지》2권 위서 제2 문제 조비 황초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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