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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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 아이파크는 1979년 새한자동차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대우 로얄즈, 부산 대우 로얄즈, 부산 아이콘스를 거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이다. 1984년, 1987년, 1991년, 1997년에 K리그에서 우승했으며, 1985-86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과 1986년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현재는 구덕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며, 2024년에는 조성환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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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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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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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부산 아이파크 축구단 |
영문 명칭 | Busan IPark Football Club |
이전 명칭 | 새한 자동차 축구단 (1979~1980) 대우 축구단 (1980~1982) 대우 로얄즈 (1983~1995) 부산 대우 로얄즈 (1996~1999) 부산 아이콘스 (2000~2004) |
별칭 | 방패군단 |
마스코트 | 똑띠, 해라 |
창단일 | 1979년 11월 22일 |
연고지 | 부산광역시 |
연맹 | 한국프로축구연맹 |
경기장 | 구덕운동장 |
수용 인원 | 12,349명 |
소유주 | HDC그룹 |
구단주 | 정몽규 |
대표이사 | 김병석 |
감독 | 조성환 |
리그 | K리그2 |
시즌 | 2024 |
순위 | 5위 (승격 준PO 탈락) |
현재 시즌 | 2024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클럽 색상 | |
기본 색상 | 빨강, 하양 |
유니폼 정보 | |
홈 유니폼 | 상의: 빨강색, 양팔 빨강색 하의: 검정색 양말: 검정색 |
원정 유니폼 | 상의: 흰색 하의: 흰색 양말: 흰색 |
수상 내역 | |
K리그1 우승 횟수 | 4회 |
K리그2 우승 횟수 | 0회 |
FA컵 우승 횟수 | 1회 |
리그컵 우승 횟수 | 3회 |
슈퍼컵 우승 횟수 | 0회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횟수 | 1회 (전신) |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 | 1회 |
2. 역사
부산 아이파크는 대우그룹 산하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1979년 11월 22일 창단한 새한자동차 축구단이 모태이다. 1979년 10월 해체된 한국산업은행 축구단의 선수들을 주축으로 21명의 선수단을 꾸렸고, 이종환 감독이 초대 사령탑을 맡았으며 1980년 실업축구 대회에 참가하였다.[14] 1980년 10월 '''대우 축구단'''으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였고,[15] 1981년 제29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16]
1982년 국내축구단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약 43일간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하였다. 1983년 한국프로축구 리그 원년에 수퍼리그에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참여하여[17] 우승 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최다 관중(16경기, 34만 7895명)을 동원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대우그룹은 매 홈경기때마다 자동차, VTR, 냉장고, 세탁기 등을 경품으로 내놓는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K리그 최초로 아르헨티나 출신 판초 곤잘레스 외국인 코치를 선임하고 클럽시스템을 도입, 운영하였다.
시즌 후 김우중 대우그룹 총수는 대우 축구단을 프로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18] 거제고등학교와 아주대학교 축구부를 대우 축구단의 산하 축구단으로 삼아 유소년 선수 수급 시스템을 구축했다.[19] 1983년 12월 3일 국내 프로축구단 제 3호로 프로화에 성공하여,[21] 1984년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8승 4무 2패 승점 29점으로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22]
1985-86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1986년 K리그 시즌에 돌입했지만, 리그 1라운드 4위, 2라운드 3위에 그치며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대우 로얄즈는 1986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대한민국 클럽 최초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23] 1987년에는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강 클럽으로 자리매김했고,[24] 같은 해 K리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8년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최하위를 기록한 후, 1989년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을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여 K리그 최초 외국인 감독 영입 기록을 세웠다.[25] 1989년에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연간회원제를 도입하였다. 1991년 헝가리 출신 비츠케이 베르탈란 감독 지휘 하에 K리그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26] 비츠케이 감독 시절 세운 K리그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최초의 기록이며, 1991년 K리그 최초로 프로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1996년 완전지역연고제 도입으로 구단 명칭을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변경했다. 1997년 리그,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으로 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 전관왕을 달성했고,[27] K리그 최초 4회 우승 업적도 달성했다. 부산 최초로 팬클럽을 창설했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전방위 베스트Xl를 배출했다. 또한 프로축구팀 사상 최다연승인 7연승을 최초로 달성하였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제도를 도입했으며 연맹이 은퇴식을 마련하였다. 축구게임 피파2000에 클래식팀으로 K리그 및 아시아 클럽 최초로 수록하였다. 1999년 사상 첫 리그 비우승팀으로써 시즌 MVP를 배출하였다.
1983년 시즌 대부분 기간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대우는 데뷔 시즌 2위를 기록했다. 마산 시리즈에서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할렐루야 FC에 1점 차로 우승을 내주었다.[1]
두 번째 시즌에 구단은 프로로 전환하여 대우 로얄즈(Daewoo Royals)로 이름을 바꾸고, 1984년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유공 코끼리를 합계 2-1로 꺾고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8 시즌은 안정환 선수의 등장을 알린 해였지만, 로얄즈는 중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규 시즌 4위를 기록하며 1999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 진출, 결승전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계 4-2로 패했다.[2]
1999년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재정난에 처하면서 부산 대우 로얄즈는 매각 대상이 되었다.[28] 2000년 2월 10일 현대산업개발이 로얄즈 축구단을 인수하였는데,[29] 롯데, 제일제당 등이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30]
인수 후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콘스로 변경하고 팀 컬러를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었으며, 2000년 3월 7일 재창단식을 통해 공식 출범하였다.[31] 모기업 변경의 여파로 부산 아이콘스는 부진을 거듭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32] 구덕운동장 보수 공사로 대구, 창원 등에서 홈 경기를 치르면서 관중 수도 급감하였다.[33] 2001년에는 국내 프로 구단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하였다.
2004년 초, 부산 아이콘스는 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34] 팬들의 거센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에 직면한[35] 부산 아이콘스는 연고지 이전 철회를 시사했고, 안양 LG 치타스가 FC 서울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서울로 연고 이전하면서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다.[36][37]
2005년 2월 통영컵부터 구단명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했다.[38]
부산 아이파크는 1999년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모기업 대우그룹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매각 대상이 되었고, 2000년 2월 10일 HDC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다.[28][29] 인수 당시 롯데, CJ 등이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30]
인수 후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콘스로 변경하고 팀 컬러를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었으며, 2000년 3월 7일 재창단식을 통해 공식 출범했다.[31] 모기업 변경의 여파로 부산 아이콘스는 부진을 거듭하여 6위로 시즌을 마감했고,[32] 구덕운동장 보수 공사로 인해 대구, 창원 등에서 홈경기를 치르면서 관중 수가 급감했다.[33] 2001년에는 국내 프로 구단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했다.
2004년 초, 부산 아이콘스는 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으나,[34] 팬들의 반발과 여론 악화로 철회했다.[35] 안양 LG 치타스가 FC 서울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다.[36][37]
2005년 2월, 통영컵 대회부터 구단명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했고,[38] 그해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5 시즌 시작과 함께 구단주가 구단명을 부산 아이파크(현 부산 아이파크)로 변경한 이후, 부산은 2005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인천 유나이티드에 패했다.
2007년 7월, 앤디 에글리 감독 사퇴 후 박성화 감독이 취임했으나, 곧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사퇴했다.[39] 이에 서포터즈와 붉은악마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항의했다.[40] 2007 시즌 종료 후 황선홍 감독이 선임되었고, 2008년 1월에는 안정환을 영입하는 등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41] 황선홍 감독 부임 이후, 부산은 김창수, 정성훈, 양동현, 김근철과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한상운, 박희도, 박종우 등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8 시즌과 2009 시즌에는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2009 피스컵 코리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황선홍 감독은 부산 감독으로서 마지막 시즌인 2010년에 2010년 대한축구협회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계약 만료 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
FC 서울의 안익수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 시즌 승부조작 여파에도 불구하고 K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안익수 감독 체제에서 부산은 정규 시즌 5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패했다. 2012년 엠블럼이 소폭 변경되었고, 아이파크의 영문 철자가 I'Park에서 IPark로 변경되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 부산 소속 김창수, 박종우, 이범영이 발탁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한지호, 임상협 등 선수들이 화제가 되면서 여성 팬들이 증가했고,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여성 팬 비중을 더욱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2012 시즌 종료 후 안익수 감독이 성남으로 떠나고 윤성효 감독이 부임했다. 2013 시즌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중위권에 자리매김했으나, 2014 시즌에는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하고 8위를 기록했다.
2015년 7월, 윤성효 감독 사임 후 최영준 감독이 선임되었으나, 수원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42] 이는 기업 구단 최초이자 리그 우승팀의 첫 강등이었다. 9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던 부산 아이파크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최승인, 고경민, 스토야노비치, 이원영, 차영환, 김현성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으나, 리그 중후반까지 승격권과 거리가 멀었다.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서울 이랜드를 제치고 5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강원 FC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43] 최영준 감독과 변명기 사장이 사임하고, 최만희 사장과 조진호 감독이 취임했다.[43] 2017시즌 리그 전경기를 구덕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44]
2017년 3월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 승리를 시작으로, 이정협이 리그 개막 후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아드리아노의 기록을 경신했다. FA컵에서는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등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에 패하며 리그 2위를 확정지었고, 이틀 뒤 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45] 10월 25일 수원 삼성과의 FA컵 준결승에서 승리하며 K리그 챌린지 팀 최초로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아산 무궁화를 꺾고 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FA컵 결승에서도 울산 현대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부산은 2017 시즌에서 K리그 챌린지 준우승을 차지했고, 경남 FC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부산은 또한 FA컵 결승에 진출하여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등 상위 리그 팀들을 꺾었지만, 결승에서 울산 현대에게 패했다.
2017년 12월, 최윤겸 감독이 선임되었고, 차영환이 상주 상무에 입대했다. 2018년 1월, 임상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고, FC 서울에서 김치우를 영입했다. K리그2에서 3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FC 서울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 최만희 대표이사와 최윤겸 감독은 사임했고, 조덕제 감독과 이기형 수석코치, 노상래 코치가 부임했다. 2018 시즌에는 강원 FC에서 승격을 이끌었던 최윤겸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 2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FC 서울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
2018년 K리그2에서 고경민은 K리그1,2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2019년 K리그 최초로 호물로가 PK로 헤트트릭을 기록했고, 권혁규는 K리그 최초로 준프로 계약을 맺었다. K리그2 2위를 거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 FC를 꺾고 구단 첫 승격을 달성했다. 부산은 2019 시즌에서 리그 최다 득점 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부산 아이파크는 광주 FC에 이어 K리그 2에서 2위를 차지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20년에는 파이널 B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남 FC에 연패하며 강등되었다. 2020 시즌은 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부산은 곧 강등권 싸움에 휘말렸고, 조덕제 감독은 부진한 성적 끝에 9월에 팀을 떠났습니다. 이기형이 시즌 남은 4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이끌었습니다. 부산은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최하위를 기록, K리그 2로 강등되었다.
2021년 K리그 최초로 공동 주장을 선임했다. 2021 시즌 시작과 함께 부산 구단은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규성과 이동준이 최준, 박정인, 이상헌, 정훈성을 영입하면서 팀을 떠났습니다. 다른 주요 선수들인 한지호, 강민수, 로물로, 김문환, 권혁규 또한 팀을 떠났습니다. 안병준을 비롯해 안준수, 박민규, 발렌티노스 시엘리스, 도마고이 드로즈덱, 라이언 에드워즈가 영입되었다.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리카르도 페레스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리그 최악의 수비(56실점)를 기록하고 득점은 주로 두 선수(안병준과 박정인)에 의존하면서 부산은 리그 5위를 기록,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규가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고, 최준과 안병준이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안병준은 득점왕과 MVP를 2년 연속 수상했다.
2022년에는 K리그2 최하위권인 10위에 그쳤다.
2023 시즌을 앞두고 박진섭 감독을 선임하며 리빌딩 의지를 드러냈다.
창단 45주년인 2024시즌 도중 박진섭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조성환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7월에 선임되었다.
부산 아이파크의 구단 명칭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79년 한국산업은행 축구부의 후신으로 창단된 새한자동차 축구단이 시초이며, 이듬해인 1980년 대우가 스폰서가 되면서 대우 로얄즈(대우 로얄즈한국어)로 개명했다. 이는 당시 대우에서 판매하던 고급 승용차 "로얄"에서 따온 이름이다. 1983년 프로리그 시작과 함께 참가하였다.
1996년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대우 로얄즈한국어)로 개명하였고, 2000년 현대그룹 계열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현대산업개발(HDC)이 스폰서가 되면서 부산 아이콘스(부산 아이콘스한국어)로 변경되었다. 2005년에는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딴 부산 아이파크(부산 아이파크한국어)로 팀 명칭이 바뀌었다. 2012년부터 영어 표기가 "I'PARK"에서 "IPARK"로 변경되었다.
구단명 | 기간 |
---|---|
새한자동차 축구단 (Saehan Motors FC) | 1979년–1980년 |
대우 축구단 (Daewoo FC) | 1980년–1982년 |
대우 로열스 (Daewoo Royals) | 1983년–1995년 |
부산 대우 로열스 (Pusan Daewoo Royals) | 1996년–2000년 |
부산 아이콘스 (Pusan i.cons) | 2000년–2002년 |
부산 아이콘스 (Busan I'Cons) | 2002년–2005년 |
부산 아이파크 (Busan I'Park) | 2005년–2011년 |
부산 아이파크 (Busan IPark) | 2012년–현재 |
2. 1. 실업축구단 시절과 대우 로얄즈 초창기 (1979–1985)
부산 아이파크는 대우그룹 산하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에서 1979년 11월 22일 창단한 새한자동차 축구단이 모태이다. 1979년 10월 해체된 한국산업은행 축구단의 선수들을 주축으로 21명의 선수단을 꾸렸고, 이종환 감독이 초대 사령탑을 맡았으며 1980년 실업축구 대회에 참가하였다.[14] 1980년 10월 '''대우 축구단'''으로 구단 명칭을 변경하였고,[15] 1981년 제29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16]1982년 국내축구단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약 43일간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하였다. 1983년 한국프로축구 리그 원년에 수퍼리그에 실업축구단 자격으로 참여하여[17] 우승 팀인 할렐루야 축구단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최다 관중(16경기, 34만 7895명)을 동원한 팀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대우그룹은 매 홈경기때마다 자동차, VTR, 냉장고, 세탁기 등을 경품으로 내놓는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K리그 최초로 아르헨티나 출신 판초 곤잘레스 외국인 코치를 선임하고 클럽시스템을 도입, 운영하였다.
시즌 후 김우중 대우그룹 총수는 대우 축구단을 프로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18] 거제고등학교와 아주대학교 축구부를 대우 축구단의 산하 축구단으로 삼아 유소년 선수 수급 시스템을 구축했다.[19] 1983년 12월 3일 국내 프로축구단 제 3호로 프로화에 성공하여, [21] 1984년 축구대제전 수퍼리그에서 8승 4무 2패 승점 29점으로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22]
1985-86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1986년 K리그 시즌에 돌입했지만, 리그 1라운드 4위, 2라운드 3위에 그치며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2. 2. 대우 로얄즈의 전성기 (1986–1999)
대우 로얄즈는 1986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대한민국 클럽 최초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23] 1987년에는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강 클럽으로 자리매김했고,[24] 같은 해 K리그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1988년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최하위를 기록한 후, 1989년 동독 출신 프랑크 엥겔을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여 K리그 최초 외국인 감독 영입 기록을 세웠다.[25] 1989년에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연간회원제를 도입하였다. 1991년 헝가리 출신 비츠케이 베르탈란 감독 지휘 하에 K리그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26] 비츠케이 감독 시절 세운 K리그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최초의 기록이며, 1991년 K리그 최초로 프로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1996년 완전지역연고제 도입으로 구단 명칭을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변경했다. 1997년 리그,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우승으로 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 전관왕을 달성했고,[27] K리그 최초 4회 우승 업적도 달성했다. 부산 최초로 팬클럽을 창설했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전방위 베스트Xl를 배출했다. 또한 프로축구팀 사상 최다연승인 7연승을 최초로 달성하였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로 영구결번제도를 도입했으며 연맹이 은퇴식을 마련하였다. 축구게임 피파2000에 클래식팀으로 K리그 및 아시아 클럽 최초로 수록하였다. 1999년 사상 첫 리그 비우승팀으로써 시즌 MVP를 배출하였다.
1983년 시즌 대부분 기간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대우는 데뷔 시즌 2위를 기록했다. 마산 시리즈에서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할렐루야 FC에 1점 차로 우승을 내주었다.[1]
두 번째 시즌에 구단은 프로로 전환하여 대우 로얄즈(Daewoo Royals)로 이름을 바꾸고, 1984년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유공 코끼리를 합계 2-1로 꺾고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8 시즌은 안정환 선수의 등장을 알린 해였지만, 로얄즈는 중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규 시즌 4위를 기록하며 1999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 진출, 결승전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계 4-2로 패했다.[2]
2. 3. 부산 아이콘스 (2000–2005)
1999년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재정난에 처하면서 부산 대우 로얄즈는 매각 대상이 되었다.[28] 2000년 2월 10일 현대산업개발이 로얄즈 축구단을 인수하였는데,[29] 롯데, 제일제당 등이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30]인수 후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콘스로 변경하고 팀 컬러를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었으며, 2000년 3월 7일 재창단식을 통해 공식 출범하였다.[31] 모기업 변경의 여파로 부산 아이콘스는 부진을 거듭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32] 구덕운동장 보수 공사로 대구, 창원 등에서 홈 경기를 치르면서 관중 수도 급감하였다.[33] 2001년에는 국내 프로 구단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하였다.
2004년 초, 부산 아이콘스는 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34] 팬들의 거센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에 직면한[35] 부산 아이콘스는 연고지 이전 철회를 시사했고, 안양 LG 치타스가 FC 서울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서울로 연고 이전하면서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다.[36][37]
2005년 2월 통영컵부터 구단명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했다.[38]
2. 4. 부산 아이파크 (2005 - 현재)
부산 아이파크는 1999년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모기업 대우그룹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매각 대상이 되었고, 2000년 2월 10일 HDC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다.[28][29] 인수 당시 롯데, CJ 등이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30]인수 후 구단 명칭을 부산 아이콘스로 변경하고 팀 컬러를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었으며, 2000년 3월 7일 재창단식을 통해 공식 출범했다.[31] 모기업 변경의 여파로 부산 아이콘스는 부진을 거듭하여 6위로 시즌을 마감했고,[32] 구덕운동장 보수 공사로 인해 대구, 창원 등에서 홈경기를 치르면서 관중 수가 급감했다.[33] 2001년에는 국내 프로 구단 최초로 코칭스쿨을 개설했다.
2004년 초, 부산 아이콘스는 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으나,[34] 팬들의 반발과 여론 악화로 철회했다.[35] 안양 LG 치타스가 FC 서울로 구단명을 변경하고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부산에 잔류하게 되었다.[36][37]
2005년 2월, 통영컵 대회부터 구단명을 현재의 부산 아이파크(Busan I'Park)로 변경했고,[38] 그해 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5 시즌 시작과 함께 구단주가 구단명을 부산 아이파크(현 부산 아이파크)로 변경한 이후, 부산은 2005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인천 유나이티드에 패했다.
2007년 7월, 앤디 에글리 감독 사퇴 후 박성화 감독이 취임했으나, 곧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사퇴했다.[39] 이에 서포터즈와 붉은악마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항의했다.[40] 2007 시즌 종료 후 황선홍 감독이 선임되었고, 2008년 1월에는 안정환을 영입하는 등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41] 황선홍 감독 부임 이후, 부산은 김창수, 정성훈, 양동현, 김근철과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한상운, 박희도, 박종우 등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8 시즌과 2009 시즌에는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2009 피스컵 코리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황선홍 감독은 부산 감독으로서 마지막 시즌인 2010년에 2010년 대한축구협회컵 결승전에 진출했고, 계약 만료 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
FC 서울의 안익수 수석코치가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1 시즌 승부조작 여파에도 불구하고 K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안익수 감독 체제에서 부산은 정규 시즌 5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패했다. 2012년 엠블럼이 소폭 변경되었고, 아이파크의 영문 철자가 I'Park에서 IPark로 변경되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 부산 소속 김창수, 박종우, 이범영이 발탁되어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한지호, 임상협 등 선수들이 화제가 되면서 여성 팬들이 증가했고,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여성 팬 비중을 더욱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2012 시즌 종료 후 안익수 감독이 성남으로 떠나고 윤성효 감독이 부임했다. 2013 시즌 상위 스플릿에 진출하며 중위권에 자리매김했으나, 2014 시즌에는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하고 8위를 기록했다.
2015년 7월, 윤성효 감독 사임 후 최영준 감독이 선임되었으나, 수원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42] 이는 기업 구단 최초이자 리그 우승팀의 첫 강등이었다. 9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던 부산 아이파크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최승인, 고경민, 스토야노비치, 이원영, 차영환, 김현성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했으나, 리그 중후반까지 승격권과 거리가 멀었다.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서울 이랜드를 제치고 5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강원 FC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43] 최영준 감독과 변명기 사장이 사임하고, 최만희 사장과 조진호 감독이 취임했다.[43] 2017시즌 리그 전경기를 구덕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44]
2017년 3월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 승리를 시작으로, 이정협이 리그 개막 후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아드리아노의 기록을 경신했다. FA컵에서는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등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에 패하며 리그 2위를 확정지었고, 이틀 뒤 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별세했다.[45] 10월 25일 수원 삼성과의 FA컵 준결승에서 승리하며 K리그 챌린지 팀 최초로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아산 무궁화를 꺾고 상주 상무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FA컵 결승에서도 울산 현대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부산은 2017 시즌에서 K리그 챌린지 준우승을 차지했고, 경남 FC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부산은 또한 FA컵 결승에 진출하여 FC 서울, 전남 드래곤즈 등 상위 리그 팀들을 꺾었지만, 결승에서 울산 현대에게 패했다.
2017년 12월, 최윤겸 감독이 선임되었고, 차영환이 상주 상무에 입대했다. 2018년 1월, 임상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고, FC 서울에서 김치우를 영입했다. K리그2에서 3위를 기록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FC 서울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 최만희 대표이사와 최윤겸 감독은 사임했고, 조덕제 감독과 이기형 수석코치, 노상래 코치가 부임했다. 2018 시즌에는 강원 FC에서 승격을 이끌었던 최윤겸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부산 아이파크는 K리그 2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FC 서울에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다.
2018년 K리그2에서 고경민은 K리그1,2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2019년 K리그 최초로 호물로가 PK로 헤트트릭을 기록했고, 권혁규는 K리그 최초로 준프로 계약을 맺었다. K리그2 2위를 거쳐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경남 FC를 꺾고 구단 첫 승격을 달성했다. 부산은 2019 시즌에서 리그 최다 득점 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부산 아이파크는 광주 FC에 이어 K리그 2에서 2위를 차지하며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20년에는 파이널 B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남 FC에 연패하며 강등되었다. 2020 시즌은 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부산은 곧 강등권 싸움에 휘말렸고, 조덕제 감독은 부진한 성적 끝에 9월에 팀을 떠났습니다. 이기형이 시즌 남은 4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이끌었습니다. 부산은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최하위를 기록, K리그 2로 강등되었다.
2021년 K리그 최초로 공동 주장을 선임했다. 2021 시즌 시작과 함께 부산 구단은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규성과 이동준이 최준, 박정인, 이상헌, 정훈성을 영입하면서 팀을 떠났습니다. 다른 주요 선수들인 한지호, 강민수, 로물로, 김문환, 권혁규 또한 팀을 떠났습니다. 안병준을 비롯해 안준수, 박민규, 발렌티노스 시엘리스, 도마고이 드로즈덱, 라이언 에드워즈가 영입되었다.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인 리카르도 페레스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리그 최악의 수비(56실점)를 기록하고 득점은 주로 두 선수(안병준과 박정인)에 의존하면서 부산은 리그 5위를 기록,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규가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고, 최준과 안병준이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안병준은 득점왕과 MVP를 2년 연속 수상했다.
2022년에는 K리그2 최하위권인 10위에 그쳤다.
2023 시즌을 앞두고 박진섭 감독을 선임하며 리빌딩 의지를 드러냈다.
창단 45주년인 2024시즌 도중 박진섭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고, 조성환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7월에 선임되었다.
2. 5. 구단 명칭 변천사
wikitext부산 아이파크의 구단 명칭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79년 한국산업은행 축구부의 후신으로 창단된 새한자동차 축구단이 시초이며, 이듬해인 1980년 대우가 스폰서가 되면서 대우 로얄즈(대우 로얄즈한국어)로 개명했다. 이는 당시 대우에서 판매하던 고급 승용차 "로얄"에서 따온 이름이다. 1983년 프로리그 시작과 함께 참가하였다.
1996년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대우 로얄즈한국어)로 개명하였고, 2000년 현대그룹 계열의 부동산 개발업체인 현대산업개발(HDC)이 스폰서가 되면서 부산 아이콘스(부산 아이콘스한국어)로 변경되었다. 2005년에는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딴 부산 아이파크(부산 아이파크한국어)로 팀 명칭이 바뀌었다. 2012년부터 영어 표기가 "I'PARK"에서 "IPARK"로 변경되었다.
구단명 | 기간 |
---|---|
새한자동차 축구단 (Saehan Motors FC) | 1979년–1980년 |
대우 축구단 (Daewoo FC) | 1980년–1982년 |
대우 로열스 (Daewoo Royals) | 1983년–1995년 |
부산 대우 로열스 (Pusan Daewoo Royals) | 1996년–2000년 |
부산 아이콘스 (Pusan i.cons) | 2000년–2002년 |
부산 아이콘스 (Busan I'Cons) | 2002년–2005년 |
부산 아이파크 (Busan I'Park) | 2005년–2011년 |
부산 아이파크 (Busan IPark) | 2012년–현재 |
2024년 5월 9일 기준 부산 아이파크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8]
3. 선수단
번호 포지션 이름 국적 1 GK 구상민 대한민국 2 FW 이동훈 대한민국 5 DF 조위제 대한민국 6 MF 이동수 대한민국 7 FW 페신/Pessinpt 브라질 8 MF 임민혁 대한민국 14 MF 이승기 대한민국 18 DF 이현규 대한민국 20 DF 이한도 대한민국 22 DF 강지훈 대한민국 24 MF 천지현 대한민국 30 DF 김희승 대한민국 31 GK 이승규 대한민국 39 MF 허승찬 대한민국 45 DF 황준호 대한민국 47 MF 손휘 대한민국 50 DF 정성우 대한민국 FW 이현준 대한민국 MF 전승민 대한민국 GK 김유래 대한민국 FW 백가온 대한민국 FW 김현민 대한민국 DF 권한진 대한민국 DF 김상원 대한민국 DF 장호익 대한민국 DF 김진래 대한민국 DF 정호근 대한민국 FW 전성진 대한민국 DF 김동욱 대한민국 DF 홍재석 (울산에서 임대) 대한민국 DF 박창우 대한민국 FW 김민기 대한민국 GK 박대한 대한민국
3. 1. 현재 선수 명단
2024년 5월 9일 기준 부산 아이파크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8]
번호 | 포지션 | 이름 |
---|---|---|
1 | GK | 구상민 |
2 | FW | 이동훈 |
5 | DF | 조위제 |
6 | MF | 이동수 |
7 | FW | 페신/Pessinpt |
8 | MF | 임민혁 |
14 | MF | 이승기 |
18 | DF | 이현규 |
20 | DF | 이한도 |
22 | DF | 강지훈 |
24 | MF | 천지현 |
30 | DF | 김희승 |
31 | GK | 이승규 |
39 | MF | 허승찬 |
45 | DF | 황준호 |
47 | MF | 손휘 |
50 | DF | 정성우 |
FW | 이현준 | |
MF | 전승민 | |
GK | 김유래 | |
FW | 백가온 | |
FW | 김현민 | |
DF | 권한진 | |
DF | 김상원 | |
DF | 장호익 | |
DF | 김진래 | |
DF | 정호근 | |
FW | 전성진 | |
DF | 김동욱 | |
DF | 홍재석 ( 울산에서 임대) | |
DF | 박창우 | |
FW | 김민기 | |
GK | 박대한 |
3. 2. 임대 및 군 복무 중인 선수
포지션 | 이름 | 비고 |
---|---|---|
DF | 홍욱현 |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중 |
MF | 최기윤 |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중 |
MF | 조민호 | 전주시민축구단으로 임대 |
DF | 최예훈 |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중 |
FW | 김찬 |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중 |
DF | 최동렬 | 부산교통공사로 임대 |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4. 코칭 스태프
조성환이 감독을 맡고 있으며, 오장은이 수석 코치를, 배일환이 코치를 맡고 있다.[9] 권한진은 플레잉코치이며, 양동원은 골키퍼 코치를 맡고 있다. 피지컬 코치는 오지우이다.[9]
5. 경영진
정몽규가 구단주이며, 대표이사는 김병석이다. 전력강화실장은 송선호가 담당하고 있다. 경영기획실장은 송민철이다.
6. 우승 기록
6. 1. 국내 대회
K리그1에서 1984, 1987, 1991, 1997 시즌에 우승하여 총 4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3, 1990, 1999 시즌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K리그2에서는 2017, 2019, 2023 시즌에 준우승을 차지하였다.대한민국 내셔널리그에서는 1981년 춘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대한민국 FA컵에서는 2004년에 우승하였고, 2010년, 2017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리그컵에서는 1997년 아디다스컵, 1997년 프로스펙스컵, 1998년 필립모리스코리아컵에서 우승하여 총 3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6년, 1999년 추가, 2001년, 2009년, 2011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9년에 우승하였고, 1990년에는 2군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8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배에서는 1981년에 준우승을, 대한민국 슈퍼컵에서는 2005년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6. 2. 국제 대회
부산 아이파크는 여러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기록이 있다. 1985-86 시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86년에는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하였다. 또한 2012년에는 하와이안 아일랜드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6. 3. 친선 대회
2013년 구정컵에서 우승하였다. 2012년에는 하와이 국제축구대회에서 우승하였다. 2013년 창 촌부리 인비테이션에서 우승하였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통영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2년 하와이안 아일랜드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하였다. 1985-86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였다. 1986 아프로아시아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였다.7. 시즌 결과
부산 아이파크의 시즌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시즌 | 리그 | FA컵 | ACL | 기타 | |||||||||
---|---|---|---|---|---|---|---|---|---|---|---|---|---|
등급[46]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순위 | ||||
1983 | 1 | 16 | 6 | 7 | 3 | 21 | 14 | +7 | 19 | 2 | - | - | - |
1984 | 28 | 17 | 6 | 5 | 47 | 23 | +24 | 59 | 1 | - | - | - | |
1985 | 21 | 9 | 7 | 5 | 22 | 16 | +6 | 25 | 3 | - | - | - | |
1986 | 20 | 10 | 2 | 8 | 26 | 24 | +2 | 22 | 4 | - | 우승 | AACC - 우승 | |
1987 | 32 | 16 | 14 | 2 | 41 | 20 | +21 | 46 | 1 | - | - | - | |
1988 | 24 | 8 | 5 | 11 | 28 | 30 | -2 | 21 | 5 | - | - | - | |
1989 | 40 | 14 | 14 | 12 | 44 | 44 | 0 | 42 | 3 | - | - | - | |
1990 | 30 | 12 | 11 | 7 | 30 | 25 | +5 | 35 | 2 | - | - | - | |
1991 | 30 | 17 | 18 | 5 | 49 | 32 | +17 | 52 | 1 | - | - | - | |
1992 | 30 | 7 | 14 | 9 | 26 | 33 | -7 | 28 | 5 | - | - | LC - 6위 | |
1993 | 30 | 5 | 15 | 10 | 22 | 32 | -10 | 40 | 6 | - | - | LC - 3위 | |
1994 | 30 | 7 | 6 | 17 | 37 | 56 | -19 | 27 | 6 | - | - | LC - 3위 | |
1995 | 28 | 9 | 5 | 14 | 30 | 40 | -10 | 32 | 5 | - | - | LC - 3위 | |
1996 | 32 | 9 | 9 | 14 | 45 | 51 | -6 | 36 | 6 | 8강 | - | LC - 3위 | |
1997 | 18 | 11 | 4 | 3 | 24 | 9 | +15 | 37 | 1 | 1R | - | LC(A) - 우승 | |
LC(P) - 우승 | |||||||||||||
1998 | 18 | 6 | 4 | 8 | 27 | 22 | +5 | 25 | 5 | 8강 | - | LC(A) - 조별리그 | |
LC(P) - 우승 | |||||||||||||
1999 | 27 | 10 | 4 | 13 | 37 | 36 | +1 | 37 | 2[47] | 16강 | 8강 | LC(A) - 예선 | |
LC(D) - 준우승 | |||||||||||||
2000 | 27 | 9 | 2 | 16 | 42 | 42 | 0 | 29 | 6 | 준결승 | - | LC(A) - 8강 | |
LC(D) - 조별리그 | |||||||||||||
2001 | 27 | 10 | 11 | 6 | 38 | 33 | +5 | 41 | 5 | 8강 | - | LC - 준우승 | |
2002 | 27 | 6 | 8 | 13 | 36 | 45 | -9 | 26 | 9 | 8강 | - | LC - 조별리그 | |
2003 | 44 | 13 | 10 | 21 | 41 | 71 | -30 | 49 | 9 | 32강 | - | - | |
2004 | 24 | 6 | 12 | 6 | 21 | 19 | +2 | 30 | 7 | 우승 | - | LC - 13위 | |
2005 | 24 | 7 | 7 | 10 | 28 | 31 | -3 | 28 | 10 | 32강 | 준결승 | LC - 13위 | |
SC - 준우승 | |||||||||||||
2006 | 26 | 9 | 7 | 10 | 40 | 42 | -2 | 34 | 8 | 16강 | - | LC - 10위 | |
2007 | 26 | 4 | 8 | 14 | 20 | 39 | -19 | 20 | 13 | 8강 | - | LC - 조별리그 | |
2008 | 26 | 5 | 7 | 14 | 30 | 39 | -9 | 22 | 12 | 16강 | - | LC - 6강 | |
2009 | 28 | 7 | 8 | 13 | 36 | 42 | -6 | 29 | 12 | 16강 | - | LC - 준우승 | |
2010 | 28 | 8 | 9 | 11 | 36 | 37 | -1 | 33 | 8 | 준우승 | - | LC - 8강 | |
2011 | 30 | 13 | 7 | 10 | 49 | 43 | +6 | 46 | 6[48] | 8강 | - | LC - 준우승 | |
2012 | 44 | 13 | 14 | 17 | 40 | 51 | -11 | 53 | 7 | 32강 | - | - | |
2013 | 38 | 14 | 10 | 14 | 43 | 41 | +2 | 52 | 6 | 준결승 | - | - | |
2014 | 38 | 10 | 13 | 15 | 37 | 49 | -12 | 43 | 8 | 8강 | - | - | |
2015 | 38 | 5 | 11 | 22 | 30 | 55 | -25 | 26 | 11↓ | 32강 | - | - | |
2016 | 2 | 40 | 19 | 7 | 14 | 52 | 39 | +13 | 64 | 5 | 16강 | - | - |
2017 | 36 | 19 | 11 | 6 | 52 | 30 | +22 | 68 | 2 | 준우승 | - | - | |
2018 | 36 | 14 | 14 | 8 | 53 | 35 | +18 | 56 | 3 | 16강 | - | - | |
2019 | 36 | 18 | 13 | 5 | 72 | 47 | +25 | 67 | 2↑ | 3R | - | - | |
2020 | 1 | 27 | 5 | 10 | 12 | 25 | 38 | -13 | 25 | 12↓ | 8강 | - | - |
2021 | 2 | 36 | 12 | 9 | 15 | 46 | 56 | -10 | 45 | 5 | 3R | - | - |
2022 | 40 | 9 | 9 | 22 | 35 | 52 | -18 | 36 | 10 | 3R | - | - | |
2023 | 36 | 20 | 10 | 6 | 50 | 29 | +27 | 70 | 2 | 3R | - | - | |
2024 | 36 | - | - |
2005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고 8강에서 알 사드를 합계 5-1로 이겼으나, 준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에 합계 0-7로 패했다.
시즌 | 리그 | 대한민국 FA컵 | 챔피언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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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순위 | |||
2005 | K리그 | 24 | 7 | 7 | 10 | 28 | 31 | 28 | 10위 | 1라운드 탈락 | 4강 탈락 |
8. 역대 감독
새한자동차 축구단 창단 감독
1983
뇌출혈로 사망(1999/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