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투르크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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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리아 투르크멘은 11세기부터 시리아에 존재해 온 튀르크계 민족이다. 셀주크 제국 시대부터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쳐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대까지 시리아에 정착해왔으며, 특히 알레포를 중심으로 북부 지역에 많이 거주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터키의 지원을 받아 정부군에 대항했으며,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시리아 투르크멘은 터키어를 사용하며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아랍화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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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투르크멘 | |
---|---|
개요 | |
집단 명칭 | 시리아 투르크멘 |
기타 명칭 | 시리아 투르코만 시리아 튀르크인 시리아의 튀르크인 |
사용 언어 | 터키어 아랍어 |
종교 | 주로 수니 이슬람, 소수 알레비 |
관련 민족 | 튀르키예인 이라크 투르크멘 팔레스타인 투르크멘 이집트의 튀르크인 레바논 투르크멘 이스라엘 투르크멘 아제르바이잔인 |
분포 지역 | |
거주 지역 | 정착 지역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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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시리아로 튀르크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6][1] 그러나 대부분의 투르크멘족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가 1516년 시리아를 정복한 후 이 지역에 정착했다.[100][7] 오스만 행정부는 아나톨리아에서 온 투르크멘 가족들이 오스만 시리아 (이후 시리아 빌라예트)의 여러 도시의 농촌 배후지에 마을을 세우도록 장려했다.[6] 아나톨리아에서 시리아로의 이주는 1918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4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시리아 투르크멘 공동체는 프랑스 위임통치령과 시리아 공화국 형성 기간 동안에도 이 지역에 계속 거주했다.[6]
2. 1. 셀주크 시대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시리아로 튀르크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6][1] 1064년, 튀르크멘 왕자 이븐 칸과 1,000명의 궁수들이 알레포에 들어선 것이 시리아 투르크멘의 시리아 진출에 대한 첫 기록이다.[9][10] 아랍 미르다시드 아미르 아티야 이븐 살리흐는 자신의 바누 킬라브 부족민에 맞서기 위해 경쟁자인 마흐무드 이븐 나스르를 지지하고자 그를 초청했다.[9][10]이 지역에서 투르크멘의 지배는 셀주크의 중동 정복과 함께 시작되었다. 1071년 셀주크 투르크가 북부 시리아에 진입하면서 튀르크 유목민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고, 1078년에는 다마스쿠스를, 1086년에는 알레포를 점령했다.[11] 12세기까지 튀르크계 장기 왕조 (셀주크 제국의 봉신)는 십자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알레포 지역에 투르크멘을 계속 정착시켰다. 튀르크계 통치자들은 군사적 봉사에 대한 대가로 투르크멘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분배했다.[8]
2. 2. 맘루크 시대
1260년, 튀르크 및 체르케스 술탄들이 통치하던 맘루크 술탄국은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여 시리아에 진입했다. 카이로는 맘루크 술탄국의 수도였지만, 다마스쿠스는 두 번째 수도가 되었다.[12] 13세기까지 투르크멘족은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군대의 일부를 이루며 이 지역에 정착했다.[13] 맘루크의 바흐리 술탄인 바이바르스는 카라를 파괴한 후 1265년에 투르크멘족을 그 도시에 정착시켰다. 2년 후, 그는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 해안에 더 많은 투르크멘족을 정착시켰다. 투르크멘족은 1280년 크라크 데 슈발리에의 무슬림 사령관에 의해 마르가트를 점령하는 데 지원을 요청받았다.[13] 맘루크 시대 후기의 작가 아흐마드 알-칼카샨디는 투르크멘족이 대시리아의 정규군에서 분견대를 형성했다고 언급했다. 15세기까지 무슬림 작가 할릴 알-자히리는 시리아에 18만 명의 투르크멘 병사와 2만 명의 쿠르드 병사가 있다고 기록했다.[13] 투르크멘족은 주로 알레포 지방에 거주했으며, 알-하디르 알-술라이마니와 같은 교외 지역에 정착했고, 해안과 골란 고원 근처에도 거주했다.[13]
2. 3. 오스만 시대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통치 기간 동안 시리아로의 튀르크 이주가 시작되었다.[6][1] 그러나 대부분의 투르크멘족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가 1516년 시리아를 정복한 후 이 지역에 정착했다.[100][7] 오스만 행정부는 아나톨리아에서 온 투르크멘 가족들이[2] 오스만 시리아(나중에는 시리아 빌라예트)의 여러 도시의 농촌 배후지에 마을을 세우도록 장려했다.[6]
시리아에 대한 맘루크의 지배는 오스만 술탄 셀림 1세가 1516~17년에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종식되었다.[14] 그 후 오스만 행정부는 아나톨리아의 튀르크 유목민들에게 이 지역의 전략적 지역에 정착하도록 장려했다. 16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은 베두인을 감시하고 무테셀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홈스와 하마 주변의 농촌 지역에 투르크멘족을 계속 정착시켰다.[15]

아나톨리아에서 오스만 시리아로의 튀르크 이주는 1918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거의 400년 동안 지속되었다.[7] 여러 시리아 도시의 농촌 배후지에 걸쳐 튀르크인 정착은 이 지역의 다른 민족 집단의 인구적 무게와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된 국가 주도의 인구 이동이었다. 또한, 투르크멘족은 오스만 권위를 주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역 헌병 역할을 했다.[6]
19세기 말, 러시아에 토지를 빼앗긴 많은 튀르크 난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지역, 특히 발칸 반도에서 1878년에서 1906년 사이에 오스만 시리아에 정착했고, 오스만 국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토지를 제공했다.[16] Dawn Chatty에 따르면, 이러한 투르크멘 정착민들은 (체르케스인 및 체첸인 난민과 함께) 술탄에게 충성하는 신민이 되었으며 "농업에 성공하고 자신들의 마을을 건설한 토지에 대한 어떠한 베두인의 주장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16]
프랑스 지리학자 비탈 퀴네(1833–96)에 따르면, 알레포 산자크에서 오스만 투르크인(투르크멘 유목민 제외)은 시리아 아랍인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을 형성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La Turquie d'Asie, géographie administrative: statistique, descriptive et raisonnée de chaque province de l'Asie Mineure''(아시아의 터키, 행정 지리학: 소아시아 각 지방의 통계, 기술 및 합리적 설명)에서 그는 산자크의 인구 구조가 다음과 같다고 언급했다.
2. 4. 프랑스 위임통치 시대
1921년 앙카라 조약에 따라 알렉산드레타(현재의 하타이)는 프랑스 위임통치령 아래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이 조약 제7조는 "이 지역의 터키인 거주자는 문화 발전을 위한 모든 편의를 누릴 수 있다. 터키어는 공용어로 인정된다."라고 명시하여 터키는 처음에 만족했다. 또한 제9조는 오스만 제국의 초대 통치자 오스만 1세의 할아버지인 술레이만 샤의 술레이만 샤의 묘가 "그 부속물과 함께 터키의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명시했다.[18]1936년 프랑스 인구 조사에 따른 하타이 주의 인구는 다음과 같다.[19]
민족 집단 | 거주민 | % |
---|---|---|
터키인 | 85,800 | 39% |
알라위파 | 61,600 | 28% |
아르메니아인 | 24,200 | 11% |
수니파 아랍인 | 22,000 | 10% |
기타 기독교인 | 17,600 | 8% |
체르케스인, 유대인, 쿠르드인 | 8,800 | 4% |
총계 | 220,000 | 100% |
1936년 9월, 프랑스는 알렉산드레타를 포함한 시리아에 완전한 독립을 부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터키 공화국의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알렉산드레타에 자체 독립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20] 이 문제는 국제 연맹에 제기되었고, 1937년 1월 국제 연맹은 이 지역에 사절단을 보냈다. 사절단은 터키인이 다수를 구성한다고 결론 내렸고, 1938년 7월까지 이 지역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터키인은 새로 설립된 하타이 공화국의 40석 의회에서 22석을 차지하여 다수를 차지했으며, 하타이 공화국은 프랑스-터키 공동 보호령으로 남았다.[21] 하타이 공화국은 터키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앙카라에 하타이의 터키 공화국과의 통일을 청원했다. 프랑스는 마침내 1939년 7월 23일에 터키의 병합에 동의했다.[20]
2. 5. 시리아 공화국 시대
1921년 앙카라 조약에 따라 알렉산드레타(현재의 하타이)는 프랑스 위임통치령 아래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터키는 이 조약에 처음에는 만족했는데, 제7조에서 "이 지역의 터키인 거주자는 문화 발전을 위한 모든 편의를 누릴 수 있다. 터키어는 공용어로 인정된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18] 또한, 제9조는 최초의 오스만 제국 통치자 오스만 1세의 할아버지인 술레이만 샤의 술레이만 샤의 묘가 "그 부속물과 함께 터키의 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명시했다.[18]민족 집단 | 거주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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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 | 85,800 | 39% |
알라위파 | 61,600 | 28% |
아르메니아인 | 24,200 | 11% |
수니파 아랍인 | 22,000 | 10% |
기타 기독교인 | 17,600 | 8% |
체르케스인, 유대인, 쿠르드인 | 8,800 | 4% |
총계 | 220,000 | 100% |
1936년 9월, 프랑스는 알렉산드레타를 포함한 시리아에 완전한 독립을 부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터키 공화국의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알렉산드레타에 자체 독립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20] 이 문제는 국제 연맹에 제기되었고, 국제 연맹은 1937년 1월에 이 지역에 사절단을 보냈다. 사절단은 터키인이 다수를 구성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1938년 7월까지 이 지역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터키인은 새로 설립된 하타이 공화국의 40석 의회에서 22석을 차지하여 다수를 차지했으며, 하타이 공화국은 프랑스-터키 공동 보호령으로 남았다.[21] 하타이 공화국은 터키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앙카라에 하타이의 터키 공화국과의 통일을 청원했다. 프랑스는 마침내 1939년 7월 23일에 터키의 병합에 동의했다.[20] 오늘날 바이어부자크 지역, 라타키아 북부 지역을 포함하는 해안 및 농촌 지역에는 상당한 투르크멘족이 존재하며, 일부 터키인들은 이곳을 "현대 터키 하타이 주의 연장선"으로 간주한다.[22]
1939년 산자크 알렉산드레타가 터키 공화국의 하타이 주로 편입된 후, 일부 터키인 가문이 시리아의 새로운 국경으로 이주하여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주에 정착했다.[24] 이에 따라 다마스쿠스의 알-살리히야 구역과 같은 새로운 "터키 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리아-터키 국경 양쪽에 거주하는 투르크멘 가문의 가족 통합은 시리아 혁명이 발발할 때까지 70년 이상 지속되었다.[24]
1950년까지 라타키아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서 큰 경제적 잠재력을 보여주었고, 농촌 마을에 거주하는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이 이미 그곳에 정착한 투르크멘 공동체에 합류했다. 그 결과 현재 라타키아 중심부와 주변에 총 265개의 터키 마을이 있다.[25]
도시 이주 외에도 "토지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투르크멘이 소유한 토지가 국유화되었고 아랍인들이 터키 국경 근처 지역으로 재정착되었다. 아랍화 정책으로 터키 마을의 이름이 아랍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다.[25] 따라서 1945년에서 1953년 사이에 시리아 투르크멘의 터키로의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터키 남부의 크리칸, 알렉산드레타, 아다나에 정착했다.[24]
시리아 영토에 남아 있는 터키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의 문화적 및 정치적 권리는 어떠한 법적 헌법 하에서도 보장되지 않았다.[25] 대규모 집단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냈지만, 소규모 집단으로 생활하는 투르크멘은 상당 부분 아랍화되었다. 어쨌든 이 소수 민족은 터키 학교나 협회를 개설할 권리가 없었다.[25]
2. 6. 시리아 내전 (2011–현재)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인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부와 이슬람 국가(ISIL)의 공격으로 인해 고향에서 쫓겨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34] 시리아 투르크멘인들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정부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100] 여러 시리아 투르크멘 정당들은 국민 연합 야당 그룹에 소속된 시리아 투르크멘 회의 아래 연합했다.[100] 2015년에는 제2 해안 사단이 결성되었으며, 술탄 무라드 사단을 포함한 투르크멘 여단은 자유 시리아군(FSA)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셀주크 여단과 만비지 투르크멘 여단은 인민수비대 (YPG)와 함께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민주군 (SDF)에 합류했다.[100]2. 6. 1. 난민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많은 수의 시리아 투르크멘이 집에서 쫓겨났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부의 공격과 이슬람 국가(ISIL)의 테러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34] 하마 주, 홈스 주, 라타키아 주의 투르크멘 마을은 시리아 정부에 의해 파괴되었고, 알레포 주의 투르크멘 마을은 ISIL에 의해 점령되었다.[34]시리아 투르크멘은 튀르키예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 정부에 맞서 무기를 들었다.[100] 2015년에 결성된 제2 해안 사단과 투르크멘 민병대 그룹인 술탄 무라드 사단을 포함하여 투르크멘 여단은 자유 시리아군(FSA)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 다른 시리아 투르크멘 부대인 셀주크 여단과 만비지 투르크멘 여단은 시리아 민주군(SDF)에 합류했다.[100]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시리아 난민 (시리아 투르크멘 포함)들이 터키, 요르단, 레바논 및 북부 이라크로 망명을 신청했으며,[35] 여러 서유럽 국가 및 오스트레일리아로도 망명을 신청했다.[37] 또한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인들이 집에서 국내 실향민이 되어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2012년 유엔 난민 기구는 시리아 투르크멘이 터키로 들어온 첫 번째 난민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38]
로이터 통신은 2015년에 러시아가 시리아 투르크멘 지역을 공격한 사건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투르크멘 민족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전에 북부 라타키아에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고 보도했다.[39] 알자지라 잉글리시 또한 "투르크멘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확대"로 인해 "라타키아 북부에서만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실향했다"고 보도했다.[40]
3. 인구
11세기 셀주크 제국 통치 시기부터 튀르크인의 시리아 이주가 시작되었다.[6][1] 그러나 본격적인 투르크멘족 정착은 1516년 오스만 제국 술탄 셀림 1세의 시리아 정복 이후 이루어졌다.[100][7] 오스만 행정부는 아나톨리아 출신 투르크멘 가족들이 오스만 시리아(시리아 빌라예트) 농촌 지역에 마을을 건설하도록 장려했다.[2][6] 1918년 오스만 제국 해체까지 400년 이상 아나톨리아에서 시리아로 이주가 계속되었고, 시리아 투르크멘 공동체는 프랑스 위임 통치령과 시리아 공화국 시기에도 이 지역에 남았다.[6]
1939년 산자크 알렉산드레타가 터키 공화국 하타이 주로 편입되면서 일부 투르크인 가문이 시리아 국경 지역으로 이주하여 알레포, 다마스쿠스 주에 정착했다.[24] 다마스쿠스 알-살리히야 구역과 같은 "터키 거리"가 생겨났고, 시리아-터키 국경 양쪽 투르크멘 가문의 가족 통합은 시리아 혁명 이전까지 70년 이상 지속되었다.[24]
1950년까지 라타키아는 시리아 최대 항구 도시로 성장했고, 농촌의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이 이미 정착한 투르크멘 공동체에 합류했다. 현재 라타키아 중심부와 주변에는 총 265개의 터키 마을이 있다.[25]
"토지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투르크멘 소유 토지가 국유화되고 아랍인들이 터키 국경 근처로 재정착되는 과정에서 아랍화 정책으로 터키 마을 이름이 아랍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다.[25] 1945~1953년 시리아 투르크멘의 터키로의 대규모 이주가 있었고, 이들은 터키 남부 크리칸, 알렉산드레타, 아다나 등에 정착했다.[24]
시리아에 남은 터키어 사용 소수 민족의 문화적, 정치적 권리는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25] 대규모 집단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켰지만, 소규모 집단은 상당 부분 아랍화되었다. 이들은 터키 학교나 협회를 개설할 권리가 없었다.[25]
시리아 내전 이후, 세바스티안 마이젤 조교수는 시리아 투르크멘 인구를 약 25만 명(인구의 약 1%)으로 추정했다.[52] 반면 피에르 베코슈 교수는 2011년 이전 수니파 무슬림 투르크멘만 시리아 인구의 4%(약 100만 명)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존 쇼프 교수는 2018년 튀르키예어 사용 시리아 투르크멘이 인구의 약 4~5%라고 말했다.[49] 타에프 엘-아자리 교수, 세바스티앙 페루즈 박사,[4] 폴 안토노풀로스 박사[54]는 모두 약 100만 명의 튀르키예어 사용 시리아 투르크멘이 있다고 언급했다. 엘다드 J. 파르도 박사와 마야 야코비는 75만~150만 명으로 추산했다.[55] 데이비드 에이크먼 교수는 "시리아에 약 170만 명의 튀르크인이 있다"고 말했다.[56] 조나단 스파이어 박사와 노르웨이 교회 원조, 세계 교회 협의회 협력 보고서는 투르크멘 수를 50만~300만 명으로 추정한다.[57][58] 피에르 피치닌 교수는 튀르키예어 사용 시리아 투르크멘은 150만 명이지만, 아랍어를 모국어로 채택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전체 인구는 350만~600만 명(인구의 15~20%)이라고 주장한다.[50]
3. 1. 현재 인구
20세기 말까지 래리 클라크 박사는 시리아에 "20만 명 이상"의 투르크멘이 있다고 밝혔으며,[26] Deutsche Orient-Stiftungde는 80만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했다.[27] 다니엘 파이프스 교수,[28] 이타마르 라비노비치 교수,[29] 모셰 마오즈 교수,[30] 니콜라오스 반 담 박사,[31] 헨리 먼슨 박사,[32] 알라스데어 드라이스데일 교수와 레이먼드 히네부시 교수[33]를 포함한 수많은 학자들은 터키어를 사용하는 수니파 무슬림 인구 (아랍화되거나 알레비/시아파 투르크멘을 제외)를 시리아 인구의 약 3%로 추정했다.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시리아 난민 (시리아 투르크멘 포함)들이 터키, 요르단, 레바논 및 북부 이라크로 망명을 신청했으며,[35] 여러 서유럽 국가 및 오스트레일리아로도 망명을 신청했다.[37] 또한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인들이 국내 실향민이 되어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2012년 유엔 난민 기구는 시리아 투르크멘이 터키로 들어온 첫 번째 난민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38]
로이터 통신은 2015년에 러시아가 시리아 투르크멘 지역을 공격한 사건 (러시아 항공기가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격추된 후)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투르크멘 민족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전에 북부 라타키아에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고 보도했다.[39] 알자지라 잉글리시 또한 "투르크멘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확대"로 인해 "라타키아 북부에서만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실향했다"고 보도했다.[40]
시리아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총 인원에 대한 신뢰할 만한 추정치는 없다. 공식 인구 조사가 시민들에게 종교에 대해서만 질문했기 때문에 시리아 시민들은 자신의 민족 기원이나 모국어를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UNHCR 보고서에서 압델와헤드 메키-베라다 박사 등은 시리아인 대다수가 "아랍인"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하지만, 이는 민족적 소속이 아닌 사용 언어(아랍어)를 기반으로 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총'' 시리아 투르크멘 인구(즉, 터키어를 사용하는 투르크멘과 아랍화된 투르크멘 포함)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야기했다.[25]
타에프 엘-아자리 교수에 따르면 시리아 투르크멘은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 지역에서 잊혀진 소수 민족"이었다. 압델와헤드 메키-베라다 박사 등, 피에르 베쿠슈 교수, 존 쇼프 교수,[49] 피에르 피치닌 교수,[50] 그리고 페터 베른슈테트 박사는 모두 터키어를 사용하는 시리아 투르크멘을 (각각 아랍인과 쿠르드족 다음으로)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 집단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아랍 개혁 이니셔티브가 발표한 보고서는 아랍화된 투르크멘도 고려한다면 그들이 두 번째로 큰 민족 집단을 형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2. 국외 거주자 (난민)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많은 수의 시리아 투르크멘은 집에서 쫓겨나 터키, 요르단, 레바논, 북부 이라크 등지로 망명을 신청했다.[35] 일부는 서유럽 국가 및 오스트레일리아로도 망명을 신청했다.[37] 또한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인들이 국내 실향민이 되어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부의 공격과 이슬람 국가(ISIL)의 테러 공격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하마 주, 홈스 주, 라타키아 주의 투르크멘 마을은 시리아 정부에 의해 파괴되었고, 알레포 주의 투르크멘 마을은 ISIL에 의해 점령되었다.[34]
2012년 유엔 난민 기구는 시리아 투르크멘이 터키로 들어온 첫 번째 난민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38]
로이터 통신은 2015년에 러시아가 시리아 투르크멘 지역을 공격한 사건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투르크멘 민족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전에 북부 라타키아에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한다"고 보도했다.[39] 알자지라 잉글리시 또한 "투르크멘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확대"로 인해 "라타키아 북부에서만 30만 명의 투르크멘이 실향했다"고 보도했다.[40]

4. 문화
시리아 투르크멘족은 중동 외에도 주로 서유럽(특히 독일)으로 피난했지만, 일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먼 국가에서도 피난처를 제공받았다.[37]
4. 1. 언어


''아랍어와 언어학 백과사전''에 따르면, 터키어는 시리아에서 세 번째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다(아랍어와 쿠르드어 다음으로). 이 언어는 투르크멘 소수 민족에 의해 주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마을, 알레포 북쪽, 그리고 시리아-터키 국경을 따라 북부 해안에서 사용된다.[73][74][75] 또한 칼라문 산맥 지역과 홈스 지역에도 터키 언어 섬이 존재한다. 더욱이 시리아 아랍어 방언은 터키어에서 많은 차용어를 빌려왔다. 무스타파 칼리파는 투르크멘족이 농촌의 터키어 사용 투르크멘족(시리아 투르크멘족의 30%를 구성)과 도시의 아랍어 사용 투르크멘족, 두 그룹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3]
시리아 전역에서 다양한 터키어 방언이 사용된다: 알레포에서는 킬리스와 안테프 방언을 사용하고, 텔 아비야드와 라카에서는 우르파 방언을 사용하며, 바이어부자크에서는 터키어의 하타이/야이랄다으 방언을 사용한다.[76] 터키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홈스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시리아 투르크멘족은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지만 아랍어를 더 능숙하게 구사한다.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투르크멘족은 요르크 방언의 터키어를 사용한다.[76]
2018년, 엘다드 J. 파르도 박사와 마야 야코비는 시리아 국가 교육 과정에서 터키어(또는 쿠르드어나 아람어)가 제1언어 또는 제2언어로 가르쳐지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55]
4. 2. 종교
시리아 투르크멘족 대다수는 수니 무슬림이다.[3][31][58][77] 하지만, 소수의 시아 무슬림(특히 알레비와 벡타시 신자)도 존재한다. 알리 외즈튀르크멘은 투르크멘 공동체의 99%가 수니파이며, 나머지 1%가 시아 이슬람을 따른다고 주장한다.[78]
노와르족(이동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종종 "집시"로 묘사된다[79]) 중 일부는 터키어를 사용하며,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투르크멘이라고 밝힌다.[81]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수니파, 시아파, 알레비파/벡타시교 종교 단체에 속한다.[81][80]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81]
5. 정착 지역
시리아 투르크멘은 11세기부터 시리아에 존재해 왔다.[8] 1064년 투르크멘 왕자 이븐 칸과 궁수 1,000명이 알레포에 들어서면서 투르크멘 군대의 시리아 진출이 처음 기록되었다.[9][10] 셀주크 제국이 중동을 정복하면서 투르크멘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1071년 북부 시리아에 진입하면서 터키 유목민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다.[11] 12세기까지 장기 왕조는 십자군에 맞서기 위해 알레포 지역에 투르크멘을 계속 정착시켰다.[8]
1260년, 맘루크 술탄국은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여 시리아에 진입했다. 카이로는 맘루크 술탄국의 수도였지만, 다마스쿠스는 두 번째 수도가 되었다.[12] 13세기까지 투르크멘족은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군대의 일부를 이루며 이 지역에 정착했다.[13] 맘루크의 바흐리 술탄인 바이바르스는 1265년에 투르크멘족을 카라에 정착시켰다. 2년 후, 그는 시리아 해안에 더 많은 투르크멘족을 정착시켰다.[13] 맘루크 시대 후기의 작가 아흐마드 알-칼카샨디는 투르크멘족이 대시리아의 정규군에서 분견대를 형성했다고 언급했다. 15세기까지 무슬림 작가 할릴 알-자히리는 시리아에 18만 명의 투르크멘 병사와 2만 명의 쿠르드 병사가 있다고 기록했다.[13]
오스만 제국 술탄 셀림 1세가 1516~17년에 시리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맘루크의 지배는 종식되었다.[14] 그 후 오스만 행정부는 아나톨리아의 튀르크 유목민들에게 이 지역의 전략적 지역에 정착하도록 장려했다. 16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은 베두인을 감시하고 무테셀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홈스와 하마 주변의 농촌 지역에 투르크멘족을 계속 정착시켰다.[15] 아나톨리아에서 오스만 시리아로의 튀르크 이주는 1918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거의 400년 동안 지속되었다.[7]
19세기 말, 러시아에 토지를 빼앗긴 많은 튀르크 난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지역, 특히 발칸 반도에서 1878년에서 1906년 사이에 오스만 시리아에 정착했고, 오스만 국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토지를 제공했다.[16]
시리아 및 레바논에 대한 프랑스 위임통치 시기인 1921년, 앙카라 조약에 따라 알렉산드레타 (현재의 하타이)는 자치 정부를 수립했다. 터키는 이 조약에 처음에는 만족했는데, 제7조에서 "이 지역의 터키인 거주자는 문화 발전을 위한 모든 편의를 누릴 수 있다. 터키어는 공용어로 인정된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18] 1936년 9월, 프랑스는 알렉산드레타를 포함한 시리아에 완전한 독립을 부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터키 공화국의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알렉산드레타에 자체 독립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20] 이 문제는 국제 연맹에 제기되었고, 1938년 7월까지 이 지역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터키인은 새로 설립된 하타이 공화국의 40석 의회에서 22석을 차지하여 다수를 차지했으며, 하타이 공화국은 프랑스-터키 공동 보호령으로 남았다.[21] 하타이 공화국은 터키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앙카라에 하타이의 터키 공화국과의 통일을 청원했다. 프랑스는 마침내 1939년 7월 23일에 터키의 병합에 동의했다.[20]
1939년 산자크 알렉산드레타가 터키 공화국의 하타이 주로 편입된 후, 일부 터키인 가문이 시리아의 새로운 국경으로 이주하여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주에 정착했다.[24] 1950년까지 라타키아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서 큰 경제적 잠재력을 보여주었고, 농촌 마을에 거주하는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이 이미 그곳에 정착한 투르크멘 공동체에 합류했다. 그 결과 현재 라타키아 중심부와 주변에 총 265개의 터키 마을이 있다.[25]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인들이 터키, 요르단, 레바논 및 북부 이라크로 망명을 신청했다.[35]
대부분의 시리아 투르크멘족은 북부 유프라테스 강 주변, 시리아-터키 국경 근처에 거주하지만, 시리아 중부와 골란 고원 근처 남부 지역까지 여러 주에 걸쳐 흩어져 있다. 특히 투르크멘족은 시리아의 여섯 주, 즉 알레포 주, 다마스쿠스 주, 홈스 주, 하마 주, 라타키아 주 및 쿠네이트라 주의 도시 중심지와 시골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3] 다라 주에도 소규모 투르크멘 공동체가 있으며, 타르투스 주, 라카 주, 이드리브 주에도 투르크멘 공동체가 있다.[34]
시리아 투르크멘의 주요 정착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알레포 주: 알레포 시 (부스탄 알-바샤, 하이다리야, 흘록, 셰이크 히지르, 셰이크 페리즈, 살라딘, 오와이자), 아자즈, 알-밥, 자라블루스, 알-라이
- 라타키아 주: 투르크멘 산맥(자발 알-투르크만), 알-바드루시야, 움 알-투요르
- 다마스쿠스 주: 다마스쿠스 시 (하레트 알 투르크만)
- 홈스 주: 홈스 시, 카라 아브샤르, 이날루, 카푸샤크, 가르나타, 알-크라드, 부르지 카이, 알-삼릴, 훌라 평원
- 하마 주: 하마 시, 바바 아미르 하라스, 아크라브, 탈라프
- 쿠네이트라 주: 쿠네이트라 지역, 다바비예, 레자니예, 신디예네, 아인울 카라, 아인울 심심, 울라이카, 아인울 알라크, 아흐메디예, 카페르 나파, 무기르, 하피르, 휴세이니예, 아인 아이세
6. 차별
프랑스 위임 통치령 시대부터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에 이르기까지, 시리아 투르크멘 공동체의 일부는 터키 문화와 언어를 잃었다.[82] 소수 민족으로 남은 많은 시리아 투르크멘은 아랍화되어 아랍인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차별적인 국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터키 정체성과 언어를 유지해 온 지역에서는 아랍화가 예외적인 현상이었다.[82]
하페즈 알 아사드 통치 하에서는 시리아 투르크멘의 터키어 출판이 금지되었다.[100][83]
시리아 투르크멘은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 있었으며, ''알 바와바''는 아사드가 알라위파에게 혜택을 주려 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르부자크 투르크멘은 "학위 유무와 관계없이 알라위파를 먼저 뽑았고, 투르크멘은 직업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84]
7. 저명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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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샴사딘, 오스만 종교 학자
- 칸지 유세프 파샤 자데, 겐치 파샤-자데, 1807–1811년 다마스쿠스 주 오스만 총독.
- 알-아즘 가문[86][89]
- 압둘라 파샤 알-아즘, 다마스쿠스 오스만 총독
- 아사드 파샤 알-아즘, 하마 및 다마스쿠스 오스만 총독
- 하키 알-아즘, 전 시리아 총리
- إبراهيم العظم|이브라힘 빈 타헤르 빈 아흐메드 알-아젬ar, 시인 및 인권 운동가
- 이스마일 파샤 알-아즘, 하마, 홈스 트리폴리 및 다마스쿠스 오스만 총독
- 할리드 알-아즘, 6번의 전 시리아 총리[89]
- محمد فوزي العظم|무함마드 파우지 파샤 알-아즘ar, 시리아 최초 국회의 첫 번째 의장
- 무함마드 파샤 알-아즘, 시돈 및 다마스쿠스 오스만 총독
- 라피크 베이 알-아즘, 지식인, 작가 및 정치가
- 사데딘 파샤 알-아즘, 알레포 및 이집트(외 다수) 오스만 총독
- صادق العظم|사디크 알-아즘 (오스만 사령관)ar, 여행가 및 오스만 군 사령관
- 사디크 자랄 알-아즘, 다마스쿠스 대학교 현대 유럽 철학 명예 교수[89]
- 술레이만 파샤 알-아즘, 트리폴리, 시돈 및 다마스쿠스 오스만 총독
- 아델 알-아즈마, 정치가
- 바시르 알-아즈마, 시리아 총리 (1962)
- 나비 알-아즈마, 요르단 내무부 장관 (1925)[90]
- 야세르 알-아즈마, 배우
- 유수프 알-아즈마, 시리아 국방부 장관 (1920)[90]
- 아지즈 알-아즈메
- 수브히 바라카트, 시리아 초대 대통령 (1922–1925)[91]
- 부르한 아사프 벨게, 튀르키예 정치가[92]
- 마르담 베이 가문:[93][23][94]
- عدنان مردم بك|아드난 마르담 베이ar, 변호사, 극작가 및 시인
- Farouk Mardam-Bey|파루크 마르담-베이프랑스어, 프랑스 사서, 역사학자 및 출판인
- 가다 마르담 베이, 시리아 TV 최초 프로그램 디렉터
- حيدر مردم بك|하이데르 마르담 베이ar, 외교관
- 자밀 마르담 베이, 시리아 총리 (1936–1939)[94]
- 칼레드 마르담-베이, 영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및 mIRC 제작자
- 칼릴 마르담 베이, 시리아 국가 작곡가
- راشد باشا مردم بك|라시드 파샤 마르담 베이ar, 판사
- 살마 마르담 베이, 작가[94]
- Sami Mardam-Bey|사미 마르담-베이프랑스어, 부통령으로 선출된 정치가
- محمد البزم|무함마드 알-베즘ar, 시인
- 제밀 빌셀, 튀르키예 정치가 및 학자[95]
- 에민 보조을란, 시리아 투르크멘 의회 제2대 의장 (2016–현재)
- 메흐메트 푸아드 카림, 튀르키예 정치가[96]
- 타나 뎁시, 배우
- 타라 뎁시, 배우
- 모하마드 에마디, 경제 및 대외 통상부 장관[82]
- 나디아 알-가지, 변호사, 작가, TV 진행자[97]
- 사이드 알-가지, 시리아 총리 (1954년 및 1955–56년)[97]
- 사티 알-후스리, 작가[98]
- 메넬 입티셈, 가수 (The Voice 프랑스 참가자)[99]
- 사미 사비트 카라만, 튀르키예 육군 장군
- 할레드 코자, 시리아 국민 연합 의장 (2015–2016)[100]
- 메흐메트 무히틴 쿠르티쉬, 튀르키예 군인
- 산하리브 말키, 축구 선수
- 타키 아드-딘 무함마드 이븐 마루프, 폴리매스[101]
- 가이쓰 모피드, 예술가[102]
- 압두르라만 무스타파, 시리아 투르크멘 의회 초대 의장 (2012–2016)[103]
- 후다 나아마니, 페미니스트 작가[97]
- 무스타파 나이마, 오스만 역사학자
- 아흐마드 나미, 시리아 제2대 대통령 (1926–1928)[104] 및 오스만 제국 다맛
- 마흐무드 카밀 파샤, 오스만 육군 장군
- 제키 파샤, 오스만 튀르키예 야전 사령관
- 아부 칼릴 카바니, 극작가 및 작곡가[105][106]
- 니자르 카바니, 외교관, 시인 및 출판인[106]
- 사바 카바니, 주미 시리아 대사 (1974–1981)[106]
- 자녀:
- 라나 카바니, 시리아 문화 역사학자
- 슈크리 알-쿠와틀리, 독립 후 시리아 초대 대통령 (1943–1949) 및 (1955–1958).
- 알리예 로나, 튀르키예 배우[107]
- 레시트 로나바르, 오스만 총독 및 튀르키예 정치가[108]
- 슐레이만 샤
- 할라 쇼카트, 배우[109]
- 아디브 시샤클리, 시리아 총리 겸 대통령 (1953–1954)
- 탈랄 실로, 전 시리아 민주군 대변인.[110]
- 아딜 샨, 가수[111]
- Mehmet Şandır|메흐메트 샨디르tr, 튀르키예 정치가[22]
- 파키제 타르지, 튀르키예 최초의 여성 산부인과 의사[112]
- 무스타파 툴라스, 시리아 국방부 장관 (1972–2004)[113]
- 자녀:
- 마나프 툴라스, 전 준장
- 피라스 툴라스, 재벌
- 하산 투르크마니, 국방부 장관 (2004–2009)[114]
- 자녀:
- 빌랄 투르크마니, 시리아 주간지 ''Abyad wa Aswad'' 소유자
- 림 투르크마니, 천체 물리학자
- Refi' Cevad Ulunay|레피 제바트 울루나이tr, 튀르키예 작가
- 수아트 하이리 윌규플뤼, 튀르키예 총리 (1965)[85]
- Necdet Yılmaz|네크데트 이을마즈tr, 튀르키예 정치가
- 후스니 알-자임, 시리아 대통령 (1949)[115]
- 무함마드 하베스, 자라불루스 민간 의회 의장 (2016년 8월부터)
- 아흐메드 오스만, 옛 SAA 대령, 2013년부터 술탄 무라드 사단의 지도자[116]
- 누르 앗 딘 , 튀르크계 젠기 왕조의 일원으로, 시리아 셀주크 제국의 지방을 통치했다.
- 이마드 앗 딘 장기, 모술, 알레포, 하마, 에데사를 통치한 튀르크 아타베그였다. 그는 젠기 왕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 투투쉬 1세, 셀주크 다마스쿠스 에미르.
- 아크 순쿠르 알-하집, 셀주크 알레포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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