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타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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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오타케마루는 헤이안 시대부터 전해지는 일본의 전설 속 귀신으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에 의해 토벌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무로마치 시대에 노 연극 '다무라'를 통해 오오타케마루 전설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오토기조시, 무로마치 모노가타리, 조루리 등 다양한 이야기로 재창조되었다. 특히 도호쿠 지방에서는 다테 마사무네의 선전과 결합하여 '타무라 삼대기'라는 연극으로 널리 퍼졌다. 오오타케마루는 스즈카 산의 악귀로 묘사되기도 하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 오오타케마루는 슈텐도지, 타마모노마에와 함께 일본 3대 요괴로 꼽히기도 한다. 현대에는 게임과 만화 등 대중문화에서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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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케마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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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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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다케마루(嶽丸) |
성별 | 남성 |
출신지 | 이와테산 스즈카산 |
전승 | |
주요 등장 작품 | 다무라마로 설화 슈텐도지 |
관련 인물 |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스즈카고젠 슈텐도지 미야즈카히메 |
특징 | 귀신 도적 |
무기 | 대통연(大通連) 소통연(小通連) |
2. 역사
오오타케마루 전설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의 쿠스코의 변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 당시 사가 천황의 명을 받은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에서 후지와라노 나카나리를 토벌했는데, 이후 타무라마로가 사망한 뒤 역병이 크게 유행하자 스즈카 산에서 죽은 나카나리의 원령이 재앙을 일으킨다는 믿음이 생겨났다[5]. 이러한 원령 설화는 훗날 스즈카 산을 근거지로 하는 강력한 존재, 즉 오오타케마루 이야기의 바탕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 작품 '다무라' 등에서 스즈카 산의 악마 또는 귀신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토기조시 '스즈카노 소시'나 무로마치 이야기 '타무라노 소시'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이 명확히 등장하고,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고젠과 같은 신비로운 여성의 도움을 받아 오오타케마루를 퇴치하는 구체적인 설화가 형성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조루리나 우키요에 그림 등을 통해 오오타케마루 이야기가 서민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졌다. 또한 이 이야기는 도호쿠 지방으로 전파되어 그 지역에 전해지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관련 전설들과 융합되었다. 특히 센다이 번에서는 다테 마사무네가 영지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를 활용하면서, 오오타케마루의 활동 무대가 스즈카 산뿐만 아니라 도호쿠 지방의 여러 장소로 확장되는 등 이야기의 내용이 변형되고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2. 1. 쿠스코의 변과 스즈카 산 도적의 집념
헤이안 시대 초 다이도 5년 9월 6일 (율리우스력 810년 10월 7일), 헤이제이 상황이 헤이안쿄를 폐지하고 헤이죠쿄로 천도하라는 조칙을 내리면서 쿠스코의 변이 시작되었다. 이에 사가 천황은 처음에는 조칙에 따라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등을 조궁사로 임명했으나, 9월 10일 (10월 11일)에는 입장을 바꿔 삼관에 굳관사를 파견하고 후지와라노 나카나리를 체포하여 우효에후에 감금한 뒤 사도곤노카미로 좌천시켰다. 또한 후지와라노 쿠스코의 관위를 박탈하고 죄를 묻는 조서를 발표했으며, 조궁사였던 타무라마로를 다이나곤으로 승진시켰다. 이때 오미국에는 오노노 미네모리와 함께 타무라마로의 차남 사카노우에노 히로노가 파견되었다.9월 11일 (10월 12일) 이른 아침, 헤이제이 상황은 쿠스코와 함께 도고쿠(동쪽 지방)를 향해 헤이죠쿄를 떠났다. 사가 천황의 명을 받은 타무라마로는 미노도에서 상황 일행을 막기 위해 후미야노 와타마로에게 동행을 요청하고, 우지 다리, 야마자키 다리, 요도시 나루터에 병력을 배치했다. 그날 밤, 나카나리는 키노 키요나리와 스미요시노 토요츠구에 의해 우효에후에서 살해되었다.
9월 12일 (10월 13일), 상황 일행이 야마토국 소에카미군 코시다 촌(나라현 나라시 키타노쇼마치・히가시쿠조마치 부근)에 이르렀을 때 타무라마로가 이끄는 군대에 길이 막혔다. 결국 상황은 헤이죠쿄로 돌아와 삭발하고 불문에 귀의했으며, 쿠스코는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마쿠라 시대 초(1195년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역사 이야기 『미즈카가미』에는 이 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헤이제이 상황이 군사를 일으켜 후지와라노 쿠스코와 함께 가마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자, 대외기 카미츠케노 에이토가 이를 사가 천황에게 알렸고, 전날 다이나곤으로 임명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재상 후미야노 와타마로를 보내 길을 막고 후지와라노 나카나리를 사살했다는 내용이다. 이 시기부터 쿠스코의 변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헤이제이 상황의 삭발과 쿠스코의 자결을 중심으로 한 전설적인 요소가 섞여 환상적인 이야기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시가현 코카시 도야마정에 있는 타무라 신사의 기록과 구전에 따르면, 덴분 10년 4월 17일 (1541년 5월 12일)에 정리된 『오미 주 코카 군 톤구노마키 토야마고 쇼이치이 타카쿠라 타무라 신사・스즈카 신사 연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쿠스코의 변 당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는 사가 천황의 명으로 스즈카 산으로 가서 후지와라노 나카나리를 토벌했다. 그러나 타무라마로가 사망한 코닌 2년 가을부터 천하에 역병이 크게 유행했다. 점을 쳐보니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에서 퇴치한 적도(후지와라노 나카나리)의 집념이 재앙을 일으키고 있으며, 스즈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 원인이라 하였다. 이에 스즈카 산 서쪽의 후타고야마 봉우리에 타무라마로를 모시는 신사를 세워 스즈카 산의 바람을 막으려 했다. 코닌 3년 1월 18일 (812년 3월 4일)에 천궁을 행하고 액막이 제사를 지내자 역병이 그쳤다고 한다. 신사는 원래 후타고야마에 있었으나, 세 번이나 떠내려와 타무라마로가 진을 쳤던 스즈카사의 숲에 자리 잡게 되었고, 결국 코닌 13년 4월 8일 (822년 5월 2일)에 스즈카사와 함께 모시게 되었다[5].
타무라마로가 헤이제이 상황의 동쪽 행차를 저지하고 스즈카 산에서 상황 측의 후지와라노 나카나리 군대를 토벌했다는 이야기는 『카모코타이진구키』 등 다른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쿠스코의 변에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에게 스즈카 산에서 죽임을 당한 후지와라노 나카나리의 원령 이야기는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 전설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2. 2. 오타케마루 설화의 성립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세아미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노 작품 '다무라'에서 오오타케마루 전설의 초기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동쪽 지방의 한 승려가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유래를 설명하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검은 구름과 철화를 날려 수천의 분신으로 변신하고, 산처럼 거대한 세이슈 스즈카의 악마(장면에 따라서는 귀신)를 천수관음의 도움으로 물리쳤다고 이야기한다. '다무라'는 스즈카 산 도적들의 원한이 악마나 귀신으로 형상화된 이야기와 기요미즈데라의 유래, 그리고 스즈카 고개에 전해 내려오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을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무로마치 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서는 '다무라'를 바탕으로 한 오토기조시 '스즈카노 소시'나 무로마치 모노가타리 '다무라노 소시'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다무라노 소시'에서는 스즈카의 귀신 오오타케마루를 물리친 인물이 후지와라 토시히토의 아들인 '이나세 고로 사카노우에 토시무네'로 설정되어 있다.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은 이 '스즈카노 소시(타무라노 소시)' 이전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야기 속에서 3대 타무라마로 장군은 천녀인 스즈카 고젠 또는 제6천마왕의 딸 타치에보시와 부부의 연을 맺고, 아내가 된 그녀의 도움을 받아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라는 귀신을 물리친다. 고조루리 '다무라'의 이즈미 다유 쇼혼(정본)에서는 타무라마로가 싸운 오오타케마루를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수천의 부하를 이끌고" 스즈카 산에 내려온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키노우미가 지은 조루리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등장했다. 또한 '도카이도 명소도회' 제2권에는 타무라 장군이 스즈카의 귀신을 퇴치하는 장면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으며,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도카이도 53차' 중 츠치야마 그림에서도 타무라마로와 스즈카 고젠이 스즈카 산의 귀신을 물리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도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쿠마츠 시대에는 다카스기 신사쿠가 에도 유학을 오가던 중 스즈카 고개를 지나며 한시를 지었는데, 영웅(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이 적(귀신)을 물리친 곳이 바로 이 부근일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현재의 타무라 신사에서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의 악귀를 평정했다는 유래를 전하고 있다.
2. 3. 도호쿠 지방 전승의 정착
전국 시대 말기인 덴쇼 18년(1590년), 다테 마사무네는 카사이 씨와 오사키 씨가 다스리던 무츠국 중부(현재의 미야기현 북부에서 이와테현 남부)로 세력을 넓히려 했다. 마사무네는 이키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한 뒤,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카사이와 오사키의 13개 군을 차지했다(카사이 오사키 잇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의 다테 씨에 대한 반감이 깊었기 때문에, 타무라 씨 가문 출신의 메고히메를 정실로 맞이한 마사무네는 다테 씨 지배의 정당성을 알리고 새로운 영지민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역인 아쿠로오를 토벌하는 무장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를 찬양하는 내용의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라는 센다이 번 고유의 예능을 활용했다.이후 에도 시대에 도호쿠 지방으로 오토기조시 『스즈카의 소자』나 무로마치 이야기 『타무라의 소자』, 고조루리 『타무라』,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탄생기』 등이 전해졌다. 이 이야기들은 옛 센다이 번 지역이나 키타카미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탓코쿠구(達谷窟)의 아쿠로오 이야기 등, 도호쿠 각지에 남아 있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과 융합되었다. 그 결과 오쿠 조루리의 대표적인 작품인 『타무라 삼대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타무라의 소자』 등 기존 이야기에서는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에서 토벌된 후 부활하여 키리야마에서 다시 토벌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타무라 삼대기』에서는 오오타케마루가 탓코쿠구, 키리야마, 소노가타케산 등지를 옮겨 다니며 싸우는 이야기로 내용이 바뀌었다.
3. 전설의 개요
다무라語り로 알려진 『다무라의 소자』에 따르면, 토시히토 장군의 아들인 다무라마루(다무라마루 토시무네)가 퇴치한 이세국 스즈카 산의 귀신이 오오타케마루이다. 다무라마루의 이름은 이야기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여기서는 '다무라마루'로 통일한다.
나라현 하세데라의 영험담을 기록한 가마쿠라 시대 전기의 불교 설화집 『하세데라 영험기』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사적과 결부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설화집에서는 동쪽 오랑캐(東夷)가 히타치국까지 쳐들어온다고 묘사되지만, 아직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하세데라 영험기』 성립 약 400년 후인 안에이 연간(1772년-1781년)에 센다이 번이 편찬한 『풍토기 어용 서출』이다. 이 책에 수록된 미야기현 토메시 화족사의 연기에서는 이세국 스즈카 산까지 쳐들어온 귀신으로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연기는 『하세데라 영험기』의 기본적인 구조를 따르면서도, 스즈카고젠이 등장하고 귀신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으로 쳐들어간다는 내용으로 바뀌는 등, 오토기조시 『타무라의 소자』와 같은 후대 작품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가 변화하며 오오타케마루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승은 오슈 7관음 신앙과 관련이 깊으며, 지리적으로는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가 주로 이야기된 미야기현, 이와테현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3. 1. 타무라노 소시
간무 천황 시대에 이세국 스즈카 산에 오오타케마루라는 귀신이 나타나 스즈카 고개를 오가는 백성을 습격하고 수도로 가는 공물을 약탈했다. 천황은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에게 오오타케마루 토벌을 명했다. 타무라마로는 3만 기의 군사를 이끌고 스즈카 산으로 향했지만, 오오타케마루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꾀를 써서 봉우리의 검은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기며, 폭풍우를 일으켜 번개를 치고 불비를 내리는 등 타무라마로의 군사를 수년에 걸쳐 발을 묶었다.한편, 스즈카 산에는 스즈카 고젠이라는 천녀도 살고 있었다. 오오타케마루는 스즈카 고젠의 미모에 반해 하룻밤 인연을 맺고 싶어 했고, 아름다운 동자나 공경 등으로 변신하여 밤마다 스즈카 고젠의 거처로 갔지만, 그의 정체를 신통력으로 간파한 스즈카 고젠에게 외면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오타케마루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타무라마로가 신불에게 기원하자, 그날 밤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오오타케마루를 토벌하기 위해 스즈카 고젠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타무라마로는 3만 기의 군사를 수도로 돌려보내고 혼자 스즈카 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16세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났고, 그녀의 안내로 거처에 들어가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저는 스즈카 산의 귀신을 토벌하는 당신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제가 계략을 써서 오오타케마루를 물리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도움을 약속했다. 이 여성이 바로 스즈카 고젠이었다.
스즈카 고젠의 안내로 오오타케마루가 사는 스즈카 산의 귀신성에 도착했지만, 스즈카 고젠은 "오오타케마루는 삼명의 검의 보호를 받는 한 쓰러뜨릴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스즈카 고젠의 거처로 돌아가자, 그날 밤에도 동자로 변신한 오오타케마루가 찾아왔다. 스즈카 고젠은 "타무라마로라는 장군이 제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호신도로 당신의 삼명의 검을 잠시 맡아주십시오"라고 처음으로 말을 건넸고, 오오타케마루로부터 다이츠렌과 쇼츠렌 두 자루의 검을 얻었다. 나머지 한 자루인 켄묘렌은 천축에 있다고 했다.
다음 날 밤, 다시 거처로 온 오오타케마루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타무라마로와 격전을 벌였다. 정체를 드러낸 오오타케마루는 키가 십 장이나 되는 귀신이 되어 해와 달처럼 빛나는 눈으로 타무라마로를 노려보고, 천지를 울리며, 얼음 같은 검이나 창을 300개쯤 던졌다. 하지만 타무라마로의 양옆에 서 있는 천수관음과 비사문천이 검과 창을 모두 쳐냈다. 오오타케마루가 수천의 귀신으로 분신하자 타무라마로가 신통의 활을 쏘았고, 하나의 화살이 천 개의 화살로, 천 개의 화살이 만 개의 화살로 분열하여 수천 귀신의 얼굴을 모두 쏘았다. 오오타케마루는 저항했지만, 마지막에는 타무라마로가 던진 소하야노츠루기에 목이 떨어졌다.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수도로 옮겨져 천황이 보았고, 타무라마로는 무공으로 하사받은 이가 국에서 스즈카 고젠과 부부로 살았으며, 딸 코린도 태어났다.
오오타케마루에 이어 오미 국의 타카마루도 퇴치하고 세월이 흐른 뒤, 혼백이 되어 천축으로 돌아간 오오타케마루가 켄묘렌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 무쓰 국 기리야마에 틀어박혀 일본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타무라마로는 200세나 된 노인에게서 받은 명마를 타고 무쓰로 향했다. 오오타케마루는 기리야마에 난공불락의 귀신성을 쌓았지만, 타무라마로는 예전에 스즈카 산의 귀신성을 보았기 때문에 옆길로 귀신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에 에조가시마에서 돌아온 오오타케마루가 천축에 혼 하나를 남겨두었다고 비웃었지만, 타무라마로는 다이츠렌과 쇼츠렌에 켄묘렌까지 갖추었다고 응수했다. 화가 난 오오타케마루는 삼면귀에게 명하여 큰 돌을 비처럼 내리게 했지만 타무라마로에게 맞지 않았고, 타무라마로는 신통의 활로 삼면귀를 쳐 죽였다. 분을 참지 못한 오오타케마루는 타무라마로에게 달려들었지만, 소하야노츠루기에 의해 두 번째로 목이 떨어졌다.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하늘로 솟아올라 타무라마로의 투구에 달라붙었지만, 투구를 겹쳐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고,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그대로 죽었다. 남은 귀신들은 옥문에 걸리고,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우지의 보장에 보관되었다.
3. 2. 오쿠 조루리판
전국 시대 말기인 덴쇼 18년(1590년), 다테 마사무네는 카사이 씨와 오사키 씨가 다스리던 무츠국 중부(현재의 미야기현 북부~이와테현 남부)로 세력을 넓히려 했다. 그는 농민 봉기를 부추기고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카사이・오사키 지역을 차지했다(카사이 오사키 잇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반감이 심하자, 마사무네는 자신의 정실 메고히메가 타무라 씨 출신임을 이용하여 지배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악당 아쿠로오를 물리치는 영웅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를 칭송하는 내용의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를 만들어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에도 시대에 들어 도호쿠 지방에는 오토기조시 『스즈카의 소자』나 무로마치 시대 이야기 『타무라의 소자』, 고조루리 『타무라』,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탄생기』 등이 전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구 센다이 번이나 키타카미강 유역을 중심으로 탓코쿠구(達谷窟)의 아쿠로오 전설 등 도호쿠 각지에 남아있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과 합쳐져 오쿠 조루리의 대표작 『타무라 삼대기』로 발전했다. 『타무라의 소자』 등에서는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에서 토벌된 후 되살아나 키리야마에서 다시 토벌되지만, 『타무라 삼대기』에서는 탓코쿠구, 키리야마, 소노가타케산 등을 옮겨 다니며 싸우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가마쿠라 시대 전기에 쓰인 불교 설화집 『하세데라 영험기』에는 나라현 사쿠라이시 하세의 하세데라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설화집에는 오슈 산자코(奥州散在郷)에 하세 신앙을 전파하고 각지에 신하세데라를 세운 권진성들이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업적과 결부시켜 만든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문헌에는 아직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하세데라 영험기』 성립 약 400년 후인 안에이 연간(1772년-1781년)에 센다이 번이 편찬한 『풍토기 어용 서출』이다. 이 책의 "화족사 서상(華足寺書上)"에 수록된 "타무라 장군님 오슈 7개소 관음 어건립 유래의 일(田村将軍様奥州七ヶ所観音御建立由来の事)"에는 미야기현 토메시 토와정에 있는 화족사의 유래와 함께 오슈 7관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이세국 스즈카 산까지 쳐들어온 귀신으로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된다.
『하세데라 영험기』에서는 동쪽 오랑캐(東夷)가 히타치국까지 쳐들어온다고 되어 있지만, 『풍토기 어용 서출』에서는 귀신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으로 쳐들어간다고 묘사된다. 또한 스즈카고젠이 등장하는 등, 기본적인 구조는 『하세데라 영험기』를 따르면서도, 화족사의 연기에서는 오토기조시 『타무라의 소자』 등 후대 작품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거나 내용이 바뀌면서 오오타케마루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슈 7관음은 지리적으로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가 주로 공연되었던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결론적으로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는 무로마치 시대 교토에서 유래한 『타무라의 소자』가 에도 시대 도호쿠 지방으로 전해지면서, 다테 번을 중심으로 현지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예: 탓코쿠구에 비사문천을 모신 이야기 등 『아즈마카가미』 기록)과 결합하여 확대되고 재창작된 것이다. 도호쿠 지방의 특색에 맞게 내용이 각색된 점이 특징이다.
4. 지역 전설
나라현 사쿠라이시 하세에 있는 하세데라의 영험담을 기록한 가마쿠라 시대 전기 불교 설화집 『하세데라 영험기』에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동이(東夷)를 정벌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그로부터 약 400년 후인 안에이 연간(1772년-1781년)에 센다이 번이 정리한 『풍토기 어용 서출』이다. 이 책에 실린 "타무라 장군님 오슈 7개소 관음 어건립 유래의 일"에는 미야기현 토메시 토와정에 있는 화족사의 연기와 함께 오슈 7관음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오오타케마루는 이세국 스즈카 산까지 쳐들어간 귀신으로 묘사된다. 『풍토기 어용 서출』은 『하세데라 영험기』의 기본적인 구조를 따르면서도, 오토기조시 『타무라의 소자』 등 후대 이야기의 영향을 받아 내용을 추가하고 바꾸면서 오오타케마루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오슈 7관음 전설은 주로 미야기현과 이와테현 지역에서 전승되었으며,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와테현 게센 지방에서는 오슈 7관음 전설에서 파생된 이야기로, 오오타케마루의 잔당으로 여겨지는 세 마리 귀신(하야토라, 킨조, 이노쿠마)을 타무라마로가 퇴치했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 이와테현 오후나토시 이가와의 이가와 관음(하세데라)에서는 '킨조'를 퇴치했다고 전해진다.
-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오토모마치의 오토모 관음(조젠지)에서는 '하야토라'를 퇴치했다고 전해진다.
-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야하타마치의 야하타 관음(간논지)에서는 '이노쿠마'를 퇴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전설들은 도호쿠 지방에 뿌리내린 관음 신앙이 시간이 흐르면서 오토기조시 등 다른 이야기들과 결합하여 오오타케마루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4. 1. 미에현・시가현
미에현과 시가현에 걸쳐 있는 스즈카 고개 일대에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의 귀신을 토벌했다는 전설과 관련된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에도 시대에 간행된 『이세 신궁 명소 그림책』의 「스즈카 산」 항목을 보면, 스즈카 고개의 거울 바위를 경계로 이세 방면에는 스즈카 신사가, 오미 방면에는 타무라 명신(메이지 40년에 카타야마 신사에 합사된, 코카시의 타무라 신사와는 다른 신사)이 그려져 있다. 이는 교토와 탄바 국 경계의 아타고 산에 모셔진 쇼군 지장 보살처럼 타무라마로를 장군 지장으로 여겨 모신 것으로, 타무라 장군과 스즈카 곤겐을 한 쌍으로 하는 사이에노카미 신앙이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스즈카 고개에는 현재 스즈카 신사와 타무라 신사가 합사된 카타야마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시가현 코카시에는 스즈카 산의 악귀를 평정한 타무라마로를 모시는 타무라 신사가 있다[5]. 또한 타무라마로가 토벌에 대한 보답으로 당우를 짓고 비사문천을 모셨다는 레이야쿠지, 히가시오미시에는 십일면관세음보살 석상을 안치하고 귀신 토벌을 기원했다는 키타무키 이와야 십일면관음, 그리고 토벌된 오오타케마루를 정중히 묻었다는 목 무덤이 남아 있는 젠쇼지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4. 2. 효고현
효고현 가토시에 위치한 시미즈데라에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에조의 역적 다카마로를 토벌하고 스즈카 산의 귀신 퇴치를 완수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소하야(騒速)와 부검(副剣) 두 자루를 봉납했다는 절의 전설이 전해진다. 이는 오토기조시에서 타무라마로가 소하야노츠루기(騒速の剣)를 사용하여 오오타케마루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유물은 '대도 세 자루, 부속 칼집 금구 10개'라는 명칭으로 일본의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시미즈데라가 소장하고 도쿄 국립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5. 해설
일본의 전설에 등장하는 강력한 귀신 또는 요괴이다. 주로 미에현과 시가현 경계의 스즈카 산을 거점으로 삼아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전해진다.
오오타케마루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의 무장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그를 퇴치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며, 이 과정에서 스즈카 고젠이라는 신비로운 여성의 도움을 받거나 때로는 대립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파생되었다. 오오타케마루 전설의 기원은 헤이안 시대 쿠스코의 변과 관련된 원령 설화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무로마치 시대에 노 『다무라』, 오토기조시 『스즈카의 소시』, 『타무라노 소시』 등의 문학 작품을 통해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과 구체적인 이야기가 형성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조루리나 우키요에 등 대중문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도호쿠 지방에서는 지역 전설과 결합하여 『타무라 삼대기』와 같은 독자적인 이야기로 발전하기도 했다. 한때 아쿠로오와 동일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관련 설화들을 비교해 볼 때 별개의 존재로 구분된다. 민속학자 고마츠 가즈히코는 오오타케마루를 슈텐도지, 타마모노마에와 더불어 일본 3대 요괴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5. 1. 아쿠로오와의 관계
이노 가쿠는 각지에 전해지는 전승 속 오오타케마루, 오오타케마루, 다이부마루, 다이모마루 등의 이름이 모두 변형된 것이며, 오오타카마루가 '악사(惡事)의 타카마루'를 거쳐 아쿠로오(悪路王)와 통하므로 원래는 하나의 대상을 가리켰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은 『스즈카의 소시』 이전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도호쿠 지방에 남아있는 오오타케마루 전설은 『타무라의 소시』가 해당 지역에 전해진 이후, 사찰의 유래담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이며, 이노 가쿠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또한 『타무라의 소시』에서는 아쿠로오를 물리치는 인물이 타무라마로 토시무네의 아버지인 토시히토 장군으로 나온다. 그는 아내인 테루히미마에(照日御前)를 납치한 아쿠로오를 구라마 산의 비사문천에게서 받은 검으로 퇴치한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서는 아쿠로오, 타카마루, 오오타케마루는 각각 다른 귀신으로 다루어진다.
5. 2. 오타케마루와의 관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와 오오타케마루의 관계는 역사적 사실과 후대의 설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형성되었다. 그 시작은 헤이안 시대 초기의 쿠스코의 변(8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 당시 타무라마로는 사가 천황 측에서 헤이제이 상황 측의 후지와라노 나카나리 등을 진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시가현코카시에 위치한 타무라 신사의 기록에 따르면, 타무라마로 사후 고닌 2년(811년) 가을부터 역병이 유행했는데, 점을 쳐보니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에서 퇴치했던 '적도(賊徒)'의 집념, 즉 나카나리의 원령이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원령을 막기 위해 스즈카 산 서쪽 후타고야마 봉우리에 타무라마로를 모시는 신사를 세웠고, 고닌 3년(812년)에 제사를 지내자 역병이 멎었다고 한다. 신사는 이후 타무라마로가 진을 쳤던 스즈카사의 숲으로 옮겨져 고닌 13년(822년)에 스즈카 사(社)와 함께 모셔졌다고 전해진다.[5] 쿠스코의 변에서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에서 벤 후지와라노 나카나리의 원령 이야기가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 전설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세아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노 '다무라'에서는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유래를 설명하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천수관음의 가호로 스즈카 산의 '악마' 혹은 '귀신'을 퇴치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스즈카 산의 적도(나카나리) 원령이 악마나 귀신으로 형상화되고, 기요미즈데라 창건 설화 및 타무라마로 전설과 결합되면서 오오타케마루 전설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 이후에는 '다무라'를 바탕으로 한 오토기조시 '스즈카노 소시'나 무로마치 모노가타리 '다무라노 소시' 등이 만들어졌다. 이 작품들에서 비로소 스즈카 산의 귀신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이 명확히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서 타무라마로(작품에 따라 '이나세 고로 사카노우에 토시무네' 등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함)는 천녀 스즈카 고젠 또는 제6천마왕의 딸 타치에보시와 부부의 연을 맺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오오타케마루를 퇴치한다. 고조루리 '다무라'에서는 오오타케마루가 "일본을 덮으려 수천의 권속을 거느리고" 스즈카 산에 내려온 강력한 존재로 묘사된다.
에도 시대에는 키노우미의 조루리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만들어지고, '도카이도 명소도회'나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도카이도 53차' 그림 등에도 타무라마로와 스즈카 고젠의 오오타케마루 퇴치 장면이 그려지는 등, 이 이야기는 서민 문화 속에 널리 퍼져나갔다. 바쿠마츠의 다카스기 신사쿠 역시 스즈카 고개를 지나며 타무라마로의 귀신 퇴치 설화를 떠올리는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타무라 신사에서도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의 악귀를 평정했다는 유래를 전하고 있다.
한편, 전국 시대 말기 도호쿠 지방에서는 다테 마사무네가 이 전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카사이 오사키 잇키를 진압하고 새롭게 영지를 얻은 마사무네는 타무라 씨 출신인 정실 메고히메와의 관계를 내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영민들에게 선전할 목적으로, 타무라마로가 악귀(오오타케마루 등)를 토벌하는 무용담을 강조한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라는 독자적인 예능을 만들어 보급했다.
에도 시대 도호쿠 지방에서는 교토에서 유래한 『스즈카노 소시』, 『타무라노 소시』 등이 전해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예: 탓코쿠구의 아쿠로오 퇴치 설화)과 융합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는 도호쿠 지방의 지리적 배경과 전설이 풍부하게 반영된 것이 특징이다. 『타무라의 소자』 등에서는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에서 퇴치된 후 키리야마에서 부활하여 다시 토벌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타무라 삼대기』에서는 탓코쿠구, 키리야마, 소노가타케산 등 도호쿠 각지를 전전하는 이야기로 확장·변형되었다.
'''『타무라의 소자』에 나타난 오오타케마루 퇴치 이야기'''
간무 천황 시대에 이세국 스즈카 산에 오오타케마루라는 귀신이 나타나 스즈카 고개를 오가는 백성을 습격하여 수도로 가는 공물을 약탈했다. 천황은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에게 오오타케마루의 토벌을 명했다. 타무라마로는 3만 기의 군사를 이끌고 스즈카 산으로 향했지만, 오오타케마루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꾀를 써서 봉우리의 검은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기고, 폭풍우를 일으켜 번개를 치고, 불비를 내려 타무라마로의 군사를 수년에 걸쳐 발을 묶었다.
한편, 스즈카 산에는 스즈카 고젠이라는 천녀도 살고 있었다. 오오타케마루는 스즈카 고젠의 미모에 하룻밤 인연을 맺고 싶어 마음을 졸였고, 아름다운 동자나 공경 등으로 변신하여 밤마다 스즈카 고젠의 관저로 갔지만, 그 사실을 신통력으로 간파하고 있던 스즈카 고젠으로부터의 답가는 없었고,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오타케마루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타무라마로가 신불에게 기원하자, 그날 밤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오오타케마루를 토벌하기 위해 스즈카 고젠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했다. 타무라마로는 3만 기의 군사를 수도로 돌려보내고, 혼자 스즈카 산으로 향하자 16세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나 유혹에 이끌려 관저로 들어가 침실에서 인연을 맺자 "저는 스즈카 산의 귀신을 토벌하는 당신을 돕기 위해 천강했습니다. 제가 계략을 써서 오오타케마루를 쳐 없애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도움을 주었다. 이 여성이 바로 스즈카 고젠이었다.
스즈카 고젠의 안내로 오오타케마루가 사는 스즈카 산의 귀신성에 도착했지만, 스즈카 고젠으로부터 "오오타케마루는 삼명의 검의 보호를 받는 한 쓰러뜨릴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스즈카 고젠의 관저로 돌아가자, 그날 밤에도 동자로 변신한 오오타케마루가 찾아왔으므로, 스즈카 고젠이 "타무라마로라는 장군이 제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호신도로 당신의 삼명의 검을 잠시 맡아주십시오"라고 처음으로 답가하자, 오오타케마루로부터 다이츠렌과 쇼츠렌을 얻었다. 켄묘렌은 천축에 있다고 한다.
다음 날 밤에도 관저로 온 오오타케마루는,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타무라마로와 격전을 벌인다. 정체를 드러낸 오오타케마루는 키가 십 장이나 되는 귀신이 되어 해와 달처럼 빛나는 눈으로 타무라마로를 노려보고, 천지를 울리며, 얼음 같은 검이나 창을 300개쯤 던졌지만, 타무라마로의 양 옆에 서 있는 천수관음과 비사문천이 검과 창을 모두 쳐냈다. 오오타케마루가 수천의 귀신으로 분신하자 타무라마로가 신통의 활을 쏘아, 하나의 화살이 천 개의 화살로, 천 개의 화살이 만 개의 화살로 분열하여 수천의 귀신의 얼굴을 모두 쏘았다. 오오타케마루는 저항했지만, 마지막에는 타무라마로가 던진 소하야노츠루기에 목이 떨어졌다.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수도로 옮겨져 천황이 보았고, 타무라마로는 무공으로 하사받은 이가 국에서 스즈카 고젠과 부부로 살았으며, 딸 코린도 태어났다.
오오타케마루에 이어 오미 국의 타카마루도 퇴치하고 세월이 흐른 뒤, 혼백이 되어 천축으로 돌아간 오오타케마루가 켄묘렌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 무쓰 국 기리야마에 틀어박혀 일본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타무라마로는 200세나 된 노인에게서 받은 명마를 타고 무쓰로 향했다. 오오타케마루는 기리야마에 난공불락의 귀신성을 쌓았지만, 타무라마로는 예전에 스즈카 산의 귀신성을 보았기 때문에 옆길로 귀신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에 에조가시마에서 오오타케마루가 돌아와, 천축에 혼을 하나 남겨두었다고 비웃지만, 타무라마로는 다이츠렌과 쇼츠렌에 켄묘렌까지 갖추었다고 응수했고, 화가 난 오오타케마루는 삼면귀에게 명하여 큰 돌을 비처럼 내리게 했지만 타무라마로에게 맞지 않았고, 타무라마로는 신통의 활로 삼면귀를 쳐 죽였다. 분을 참지 못한 오오타케마루는 타무라마로에게 달려들었지만, 소하야노츠루기에 의해 두 번째로 목이 떨어졌다.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하늘로 솟아올라 타무라마로의 투구에 달라붙었지만, 투구를 겹쳐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고,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그대로 죽었다. 남은 귀신들은 옥문에 걸리고, 오오타케마루의 목은 우지의 보장에 보관되었다.
'''불교 설화와 오오타케마루'''
나라현사쿠라이시하세에 있는 하세데라의 영험담이 기록된 가마쿠라 시대 전기의 불교 설화집 『하세데라 영험기』에서는 산자코의 새로운 하세데라와 6개의 절의 유래가 이야기된다. 오슈 산자코에 하세 신앙을 전하고, 각지에 신하세데라를 건립한 권진성들에 의해 창출, 관리된 이 설화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사적과 결부되어 만들어졌다.
『하세데라 영험기』가 성립된 지 약 400년 후인 안에이 연간(1772년 - 1781년)에 센다이 번이 정리한 『풍토기 어용 서출』의 "화족사 서상"에 수록된 "타무라 장군님 오슈 7개소 관음 어건립 유래의 일"에서는 6개의 절 중 하나로 미야기현토메시토와정에 있는 화족사의 연기와 함께 오슈 7관음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 연기 속에서 이세국 스즈카 산까지 쳐들어간 귀신으로 '''오오타케마루'''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세데라 영험기』에서는 동이가 히타치국까지 쳐들어오는 것에 대해, 『풍토기 어용 서출』에서는 귀신 오오타케마루가 스즈카 산으로 쳐들어간다고 한다. 그 외에도 스즈카고젠이 등장하는 등, 기본적인 구조는 『하세데라 영험기』를 남기면서, 화족사의 연기에서는 오토기조시 『타무라의 소자』 등 후대의 작품과 교류하여, 새로운 이야기의 삽입과 개변이 이루어져 오오타케마루가 등장했다. 오슈 7관음은, 지역적으로는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가 이야기된 미야기현, 이와테현이 중심이 된다.
'''오쿠 조루리 『타무라 삼대기』의 오오타케마루'''
오쿠조루리 『다무라 삼대기』의 줄거리는, 무로마치 시대의 교토에서 시작된 『다무라의 소자』가 에도 시대의 도호쿠 지방으로 전해지면서 이를 토대로 하여 근세의 다테 번을 중심으로 오쿠조루리로서 확대·재생된 내용이다. "닷코쿠굴(達谷窟)이 바위에 있는 암자에 미도(御堂)를 건립하여 비사문천(毘沙門天)을 봉안했다" 등, 『아즈마카가미』를 비롯하여 옛날부터 도호쿠 지방에서 알려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전설에 준한 내용이 풍부하게 반영되어, 도호쿠 지방에 맞춰 개변된 것이 특징이다.
닌묘 천황 시대, 이세국 스즈카 산에 내려온 타테에보시가 일본을 덮으려 하자, 일본에는 타테에보시에 못지않은 귀신도 있었다. 두 사람이 협력하면 일본은 전멸하므로, 황제는 타무라마로 노리토에게 타테에보시 정벌을 명했다. 타테에보시는 일본을 마국으로 만들기 위해, 오오타케마루에게 여러 차례 협력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고, 타테에보시를 치는 데 마음이 흔들린 타무라마로 노리토와 부부가 되어 아이도 낳고, 악심을 고쳐 일본의 악마를 잠재우려 했다. 타무라마로 노리토에게 오미국 카마가하라의 아카시의 타카마루 토벌이 명해졌고, 히타치국 카시마의 우라, 치쿠라가오카의 "다이린가 굴"로 몰아붙여, 타테에보시의 도움으로 타카마루를 치고, 시체를 해중에서 끌어올려 비젠국에 장사 지내 공양하고, 무덤 위에 "키히츠의 궁의 다이묘진"을 권청했다. 타무라마로 노리토 부부는 이세국으로 돌아가지만, 타무라마로 노리토와 부부가 되어 함께 타카마루를 토벌한 것을 원망한 오오타케마루가 타테에보시를 납치하러 왔다. 타테에보시는 오오타케마루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잡혀 타무라마로 노리토에게 쳐지게 하라고 가르쳐, 두 사람은 울면서 헤어졌다.
다음 해, 오슈 키리야마의 천상에 오오타케마루가 나타나 일본에서 인종이 절멸한다고 가모묘진의 신칙이 내려졌으므로, 타무라마로 노리토에게 오오타케마루 정벌의 선지가 내려졌다. 타무라마로 노리토는 도성의 여러 신불에게 기원하고, 가신 카스미노 츄타와 함께 좋은 말에 올라 하늘을 날아 오슈로 출발했다. 신통력으로 타무라마로 노리토의 오슈 도착을 안 타테에보시가, 오오타케마루는 천축의 "칸히라 텐노"와 협력하여 일본을 덮기 위해 부재임을 가르쳐, 오오타케마루의 500의 권속을 신통의 밧줄로 묶고, 닷키가 굴의 문을 열어 타무라마로 노리토를 안으로 안내하고, 그날 밤을 두 사람이 함께 보냈다. 천축에서 돌아온 오오타케마루는 타테에보시가 타무라마로 노리토를 유인하고, 권속들을 묶어 놓은 것을 알고 분노하여, 문을 부수고 정과 횡수를 합치자 권속들의 밧줄이 남김없이 풀렸다. 오오타케마루는 "타무라마로 노리토 주종과 타테에보시를 산산이 부수는 것은 쉽지만, 대망을 품은 몸으로 천한 자의 시체를 보고는 성취할 수 없다. 키리야마 선정에 들어가, 타테에보시에게 빠져 잃어버린 삼명 육명의 신통력을 되찾아, 도성에서 황제를 산산이 부숴주겠다"라고 뛰쳐나가, 키리야마에 들어갔다. 타무라마로 노리토와 타테에보시는 다이츠렌, 쇼츠렌, 검명검, 소야의 검을 허공에 던져 오오타케마루의 권속의 귀신을 남김없이 쳤다. 오오타케마루가 키리야마에 3일 들어가면 삼명 육명의 신통력을 얻어 도성으로 올라가 버리지만, 산에 들어가는 동안 사람을 만나면 성취하지 못한다. 타무라마로 노리토와 타테에보시는 키리야마로 급히 달려가, 타무라마로 노리토가 정정당당하게 나타나 승부를 완수하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자, 인왕 서서 나타난 오오타케마루가 껄껄 웃으며 "너희들을 산산이 부수는 것은 쉽지만, 천한 자의 시체를 보고는 나의 대망에 방해가 되므로, 이곳도 허락하겠다. 나중에 깨닫게 해주겠다"라고 외치고 모습을 감췄다. 타테에보시는 신통력을 고치려면 멀리 가지 않고, 노다케 산의 "키린가 굴"일 것이라고 가르쳐, 주종 3명은 노다케 산을 향해 급히 갔다.
노다케 산에 도착했지만 타테에보시의 신통력도 통하지 않고, 키린가 굴의 입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3명은 불신에게 기원하자 굴의 문은 쇠로 묶여 있고, 오오타케마루는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는 것은 두 눈뿐. 오오타케마루는 키리야마에서 산산이 부숴버렸으면 하고 분노하며 탄식한다. 타무라마로 노리토는 다이츠렌, 쇼츠렌, 켄묘렌, 소야의 검을 던져 관음에게 기원하자, 검은 허공을 베어 돌며, 오오타케마루의 해골을 4개로 잘랐다. 오오타케마루의 머리는 하늘로 솟아올라 "이 무념을 타무라마로 노리토로 풀겠다"라고 화염을 뿜으며 5번 날아다니며 타무라마로 노리토의 갑옷 꼭대기를 갉아먹고, 오슈와 데와의 경계로 날아가, 그 땅은 "오니코베"라고 불렸다. 오오타케마루의 시체는 그 지역 사람들과 사누마의 고향으로 옮겨져, 시체를 지키기 위해 카스미노 츄타를 남겨두고, 타무라마로 노리토 부부는 이세의 어전으로 돌아갔다.
타테에보시는 며칠 후에 천명이 다한다고 말하고, 타무라마로 노리토는 울면서 도성으로 참내하여 귀신을 봉하는 선지가 내려졌다. 타무라마로 노리토는 히에이 산의 좌주·지카쿠 승정과 요시다 사가를 데리고 오슈로 향했다. 닷키가 굴에서는 지카쿠 승정이 7일 7야의 호마를 태우고, 요시다 사가가 108체의 비사문천을 조립했다. 노다케 산에서는 키린가 굴을 평평하게 하여 오오타케마루의 머리를 쌓아 무덤에 관음당을 짓고, 무이 산 노봉사의 현판을 걸었다. 마키 산에는 몸통을 쌓아 무덤을 만들고, 관음당을 건립했다. 토야마에도 다리를 쌓아 관음당을 짓고, 사누마의 고향의 오오타케마루의 시체를 둔 곳에도 손을 대어 무덤을 쌓고 지명을 오오타케로 하여 관음당을 건립했다. 노다케 산, 마키 산, 토야마, 오오타케에는 지카쿠 승정이 직접 만든 관음이 모셔졌다.
'''전설의 변천과 해석'''
『다무라의 소자』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기요미즈데라의 가호로 스즈카 산의 귀신을 퇴치하는 요곡 『다무라』를 바탕으로, 『구라마데라 연기』, 『신도집』, 『오에야마 에코토바』 등의 영향을 보인다. 『다무라 삼대기』에서 무대가 도호쿠로 확대된 것은 타무라마루에게 에미시 정벌의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무라의 소자』에서 스즈카 산은 스즈카 고젠, 오타케마루, 타카마루가 출현하는 중요한 무대이며, 『다무라 삼대기』에서도 타치에보시를 출현시키고 있다. 그러나 『다무라의 소자』에서 악로왕·재생한 오타케마루가 출현하는 무츠 국, 타카마루가 도망가는 시나노 국, 후지 산, 소토가하마 등의 묘사는 지명을 나열하는 데 그쳐 추상적이다. 반면에 『다무라 삼대기』에서는 도호쿠의 묘사가 자세해진다. 특히 중요한 무대가 되는 히타치 국 카시마의 우라는 『다무라의 소자』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무라 삼대기』에서 목 무덤을 쌓아 관음당을 세운 노토가네 관음(엔호지), 몸통 무덤을 쌓아 관음당을 세운 마키야마 관음(바이케이 사), 발 무덤을 쌓아 관음당을 세운 토야마 관음(다이쿄지)은 오슈 삼 관음 (타무라 삼 관음)이라고 불린다. 이 중 노토가네 관음과 마키야마 관음은 손 무덤을 쌓아 관음당을 세운 사누마고의 오타케 관음(고후쿠지)과 함께 오슈 칠 관음에도 꼽힌다.
오니쿠비는 현재의 미야기현 오사키시 나루코 온천 오니쿠비에 해당한다. 원래는 『무츠 이야기』에 기술된 옛 전쟁터인 "오니키리베"가 변한 것으로, 초카이 산의 신이 벤 귀신의 머리가 날아와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다무라 삼대기』에 채용되었다.
효고현가토시에 있는 시미즈데라에는 에조의 역적 다카마로를 토벌하고, '''스즈카 산의 귀신''' 퇴치를 해낸 것에 보답하기 위해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소하야와 부검 2자루를 봉납했다는 절의 전설이 있으며, 오토기조시에서는 소하야노츠루기를 사용하여 오오타케마루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가 투영되어 있다. 현재는 '대도 세 자루, 부속 칼집 금구 10개'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당 절에서 소장하고, 도쿄 국립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아베 미키오는 이와테 산의 연기에 보이는 무츠 국 키리야마의 오오타케마루는 난부 씨가 모리오카에 본거지를 둔 근세에 에도와 카미가타에서 흥륭한 고정유리에서 새롭게 본지담이 창출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발생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이 아니겠는가 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토 마사토시는 교토의 『타무라의 소자』에서는 슈텐도지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지만, 도호쿠의 『타무라 삼대기』에서는 이와테 산 연기를 받아들여 이와테 산의 지주신처럼 변질되었다고 한다.
5. 3. 3대 요괴
문화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고마츠 가즈히코는 오늘날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헤이안쿄에서는 오에산의 슈텐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유명한 요괴였다고 설명한다. 그는 "만약 중세 사람들, 특히 수도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요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슈텐도지, 타마모노마에, 오오타케마루 이 세 요괴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며 이들을 3대 요괴로 꼽았다.고마츠는 이들이 3대 요괴로 여겨진 배경에는 특별한 취급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가 꼽은 3대 요괴는 모두 퇴치된 후 그 유해나 유해의 일부가 지배자(교토의 천황을 중심으로 한 세력)의 권력을 상징하는 '보물 창고'에 안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보물 창고는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세운 뵤도인의 보물 창고를 가리킨다.
또한, 요괴의 머리나 유해를 보물 창고에 보관하는 것은 어탁이나 박제와 비슷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퇴치 전승의 기념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마츠는 중세에 퇴치된 수많은 요괴 중에서 이 세 요괴가 선택된 것은, 보물 창고 소유자가 이들의 강력한 힘을 제압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뛰어난 무력, 지략, 신불의 가호를 나타내기 위해 뵤도인 보물 창고에 보관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요괴'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6. 대중문화 속 오타케마루
- 음양사: NPC 및 보스 몬스터로 등장한다.
- Nioh 2: 게임 본편과 DLC의 주요 적으로 등장한다.
- Fate/Extra - FoxTail: 만화판에서 스즈카 고젠의 배경 이야기에서 언급된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세아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노 연극 '다무라'에서 오오타케마루 전설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동쪽 나라의 승려가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유래를 설명하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검은 구름과 철화(鉄火)를 날리고 수천의 분신으로 변하여 스즈카 산의 거대한 '''악마''' 또는 '''귀신'''을 천수관음의 도움으로 물리쳤다고 이야기한다. '다무라'는 스즈카 산의 도적 무리가 악마나 귀신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와 기요미즈데라의 유래, 스즈카 고개에 전해지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로마치 시대 중후반에는 '다무라'를 기반으로 한 오토기조시 '스즈카노 소시'나 무로마치 모노가타리 '다무라노 소시' 등이 만들어졌다. '다무라노 소시'에서는 스즈카의 귀신 '''오오타케마루'''를 물리친 인물이 후지와라 토시히토의 아들인 '이나세 고로 사카노우에 토시무네'로 설정되어 있다. 오오타케마루라는 이름은 '스즈카노 소시(타무라노 소시)'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야기 속에서 3대 타무라마로 장군은 천녀인 스즈카 고젠 또는 제6천마왕의 딸 타치에보시와 결혼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스즈카 산의 귀신 오오타케마루를 물리친다. 고조루리(古浄瑠璃) '다무라'의 이즈미 다유 쇼혼(泉太夫正本)에서는 타무라마로와 싸운 '''오오타케마루'''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수천의 부하를 이끌고" 스즈카 산에 내려왔다고 묘사된다.
에도 시대 중기에는 키노우미(紀上海)가 쓴 조루리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만들어졌다. 또한 '도카이도 명소도회'(東海道名所図会) 제2권에는 타무라마로 장군이 스즈카 산의 귀신을 퇴치하는 장면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고,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도카이도 53차' 중 츠치야마(土山) 그림에도 타무라마로와 스즈카 고젠이 스즈카 산의 귀신을 물리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에도 시대 서민들에게도 스즈카 산의 오오타케마루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쿠마츠 시대에는 다카스기 신사쿠가 에도로 유학을 가던 중 스즈카 고개를 지나며 영웅(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이 적(귀신)을 물리친 곳이 바로 이 근방일 것이라는 내용의 한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전승들은 현재 타무라 신사에서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스즈카 산의 '''악귀'''를 평정했다는 신사의 유래로 이어지고 있다.
'''관련 작품'''
- 『다무라』 (たむら)
- 『스즈카 산』 (すずかやま)
- 『다무라 소시』 (たむらのぞうし)
- 『스즈카 소시』 (すずかのぞうし)
-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루 탄생기』 (さかのうえのたむらまるたんじょうき)
- 『스즈카 산 오오타케마루』 (すずかやま おおたけまる)
- 『다무라 삼대기』 (たむらさんだいき)
- 『다무라 이대기』 (たむらにだいき)
- 『스즈카 산 ~ 삼명의 검』 (すずかやま さんめいのけん)
- 『닷코쿠굴』 (たっこくのいわや)
참조
[1]
간행물
鈴鹿峠と坂上田村麻呂
https://mie-u.repo.n[...]
三重大学人文学部考古学・日本史・東洋史研究室, 三重大学人文学部考古学
2008-03
[2]
서적
鬼と修験のフォークロア
法政大学出版局
2007-03-01
[3]
논문
妖怪変化の身上調書
2007
[4]
서적
大迫力!日本の妖怪大百科
西東社
2014
[5]
간행물
鈴鹿峠と坂上田村麻呂
三重大学人文学部考古学・日本史・東洋史研究室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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