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카와 세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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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내야수와 외야수를 소화했다. 오이타 공업고등학교 시절 골낭종으로 수술을 받았음에도 43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2000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1순위로 입단했다. 요코하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약했으며, 2008년 센트럴 리그 수위 타자, 2011년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했다. 2009년, 2013년,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참가했으며, 2014년 일본 시리즈 MVP, 2019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22년 은퇴 후, 2023년 오이타 B-링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두 번째 은퇴를 발표했으며, 2024년 시카고 컵스 스프링 캠프 임시 타격 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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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카와 세이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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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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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오이타현 오이타시 |
생년월일 | 1982년 8월 4일 |
신장 | 184cm |
체중 | 92kg |
포지션 | 1루수, 외야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클럽 경력 | |
고등학교 | 오이타현립 오이타 공업 고등학교 |
프로 입단 (NPB)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01년 ~ 2010년) |
독립리그 | 오이타 B-링스 (2023년) |
국가대표 경력 | |
야구 국가대표팀 | 야구 일본 대표팀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NPB 경력 | |
데뷔 (NPB) | 2001년 3월 30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
마지막 출장 (NPB) | 2022년 10월 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은퇴 경기) |
데뷔 (KAL) | 2023년 3월 18일 |
마지막 출장 (KAL) | 2023년 9월 24일 (은퇴 경기) |
타율 | 0.302 |
홈런 | 196 |
안타 | 2,186 |
타점 | 960 |
올스타 출전 | 6회 (2008년, 2009년, 2011년 ~ 2013년, 2017년) |
일본 시리즈 우승 | 8회 (2011년 일본 시리즈, 2014년 일본 시리즈, 2015년 일본 시리즈, 2017년 일본 시리즈–2021년 일본 시리즈) |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 | 3회 (2011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5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7년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
베스트 나인 | 5회 (2008년–2009년, 2011년–2013년) |
올스타전 MVP | 2회 (2013년, 2017년) |
퍼시픽 리그 MVP | 2011년 |
일본 시리즈 MVP | 2014년 일본 시리즈 |
교류전 MVP | 2011년 |
센트럴 리그 수위 타자 | 2008년 |
퍼시픽 리그 수위 타자 | 2011년 |
센트럴 리그 출루율 1위 | 2008년 |
센트럴 리그 최다 안타 | 2008년 |
퍼시픽 리그 최다 안타 | 2012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메달 | |
2009 로스앤젤레스 | 금메달 |
2. 프로 입단 전
오이타 현립 오이타 공업고등학교 시절 골낭종[123]으로 왼쪽 발뒤꿈치를 3차례 수술받았음에도 통산 43홈런을 기록했다. 3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오이타현 대회에 유격수로 출전하여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10]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2000년 일본 프로 야구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 우치카와를 1순위로 지명했다.
당시 오이타 공업고등학교의 감독이자 부친이었던 우치카와 잇칸이 호세이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에 우치카와 본인도 호세이 대학 진학이 확실시되고 있었다.[9] 그러나 2000년 11월 17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11] 히로시마 도요 카프도 지명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다리에 부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우치카와는 헤드코치 오시타 타케시 주도의 히로시마의 맹훈련에 불안을 느껴, 만약 히로시마에서 지명된다면 입단을 거부하고 진학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12] 요코하마와의 입단 계약 시에는 부상 치료를 보장하는 조건이 포함되었다.[12]
3. 프로 경력
### 2001년 ~ 2002년
프로 1년차부터 1군에서 경험했고 2년차인 2002년에는 대타로서 42경기에 출장,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001년에는 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1군 데뷔를 경험했다. 7월 20일 도쿄 돔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유격수로 교체 출전하여 7회에 사타케 겐타를 상대로 2루타를 쳐 득점을 기록했다[15]。2군에서는 이스턴 리그 3위인 47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2002년부터 등번호를 "'''2'''"로 변경하고, 대타로 42경기에 출전했다.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군에서는 7월 11일 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2년 연속으로 선출되어 5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안타를 쳐 득점도 기록했다. 7회부터는 2루수로 출전했다[16]。
### 2003년
스프링 캠프 도중 갑작스런 오른쪽 눈의 시력 저하로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시즌 도중 재조정 때문에 2군으로 격하된 이시이 다쿠로를 대신해서 5월부터는 2번·유격수의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몸상태가 계속 나빠지면서 오른손의 악력이 약해지는 등 공을 잡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6월에는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경에 1군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2루수로 기용되어 타율 3할 1푼 3리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몸상태가 나빠진 원인은 턱이 우측으로 구부러져 경추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어 시즌 종료 뒤에 가진 재계약 협상에서는 턱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연봉은 조금 불어나게 되었다(턱을 정형하지 않고 어금니가 서로 맞물릴 수 있도록 교정하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 2004년
개막전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 올라 7번·2루수로 출전하는 등 시즌 1년을 통해서 2루수로서의 선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타격에서는 개인 최다의 17개의 홈런을 때려내 득점권타율은 4할대 후반을 기록했다.
### 2005년
다네다 히토시가 타격 호조를 보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좌익수 포지션을 고이케 마사아키나 후루키 가쓰아키와 경쟁했지만, 후반기 주전 자리는 수비력이 높은 고이케에게 고정되어 우치카와는 대타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 2006년
사에키 다카히로를 필두로 팀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좌익수나 1루수로도 출전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100경기 출장과 100안타를 달성했지만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 2007년
다무라 히토시의 이적과 자신의 심각한 수비난에 의해 외야수로 변경되어 우익수에 고정되었다. 개막 이후부터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2군에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1군으로 복귀한 이후의 8월에는 타율 .448을 기록해 부활을 이루었다. 2007년 시즌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을 통해 외야수를 맡았다.[15]
### 2008년
개막 이후부터 타격 호조를 이루면서 사에키의 부진에 의해 4월말에는 1루수의 주전으로 차지했다. 타율이 4할을 넘는 시기도 길었고,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하는 등(외야수 부문), 2경기를 통해서 5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에 있어서 우타자로서는 1999년의 로버트 로즈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일본인 선수의 센트럴 리그 기록도 경신하는 타율 3할 7푼 8리 기록,[124]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위 타자 타이틀을 석권했다. 2008년 시즌은 최다 안타(189안타), 최고 출루율(.416)의 타이틀도 연거푸 차지한 것 외에도 득점권타율은 양대 리그 1위인 4할 4푼 9리를 기록했다. 팀내 우타자인 무라타 슈이치, 요시무라 유키와 함께 형성된 클린업 트리오는 침체되고 있는 팀에 있어 타 구단의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같은 해의 요코하마는 승률 .338로 "팀 승률보다 높은 타율로 수위 타자"는 오카무라 토시아키 이후 64년 만으로, 2023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도 전후 유일의 진기록이다.
###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제1라운드 2차전의 대한민국전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 김광현을 상대로 3루 선을 넘는 2타점 2루타를 쳐,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제2라운드 1위를 결정하는 대한민국전에서도, 선취점을 내준 직후 장원삼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쳤다. 결승전의 대한민국전에서는 6번 좌익수로 출전하여, 5회말 수비에서는 고영민이 친 날카로운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잡아내고, 정확한 송구로 2루에서 아웃시키는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 타격에서도 3안타로 활약했고, 10회초 선두 타자로서 우전 안타를 쳐, 주자로서 결승 득점의 홈을 밟았다. 이 대회에서는 주로 좌완 투수를 상대로 기용되어, 대회 성적은 6경기 출전에 타율 .333 (18타수 6안타), 1홈런이었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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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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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율2009 일본 6 20 18 3 6 1 0 1 10 4 0 1 0 0 2 0 0 1 1 .333 .400 .556 2013 6 25 23 4 8 0 1 1 13 4 1 2 0 0 1 0 1 3 1 .348 .400 .565 2017 6 10 8 1 3 2 0 0 5 3 0 0 0 1 2 0 0 1 0 .375 .455 .625
시즌에서는 마찬가지로 일본 대표로 선출된 무라타 슈이치가 대회 기간 중 3월 30일에 오른쪽 다리를 부상당했기 때문에, 우치카와가 개막 4번 타자를 맡아 전 타순에서의 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알렉스 라미레스와 끝까지 수위 타자 경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리그 2위의 타율 .318[18]을 기록했다. 이 해에 합류한 단 존슨이 1루수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 주로 좌익수를 맡았다.
### 2010년
6월 3일에 국내 FA권을 획득했다.[21] 6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오구라 신스케를 상대로 생애 첫 만루 홈런을 쳤다. 처음에는 주로 3번 1루수로 출전했지만, 시즌 도중에 합류한 브렛 하퍼가 1루만 수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즌 후반에는 1번 우익수 출전이 중심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리그 3위인 182안타를 기록했고, 생애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 3년 연속 타율 3할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8일, 국내 FA권 행사를 표명했고[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영입에 나섰고, 양 구단과 교섭한 끝에 12월 1일에 오이타현과 가장 가까운 구단인 소프트뱅크로 이적할 것을 표명했다.[22]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0년 오프시즌 동안, 그는 자유 계약 선수 옵션을 행사했으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그리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간의 수 주간의 협상 끝에, 최대 13억 6천만 엔의 4년 계약을 소프트뱅크와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12월 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정식 계약을 맺고, 같은 FA로 입단한 호소카와 토루와 함께 입단 회견을 가졌다[23]。계약 내용은 4년 계약으로 총액 5억 6000만 엔에서 13억 6000만 엔(금액은 추정) 사이의 변동제로, 등번호는 제2회 WBC에서도 착용한 "'''24'''"였다.
### 2011년
4월에 타율 .397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24][25] 교류전에서는 타율 .326(교류전 6위), 20타점(교류전 4위), 4홈런(교류전 7위 타이), 장타율 .554(교류전 2위)를 기록하며 팀의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고, 교류전 MVP를 수상했다.[26] 잦은 왼쪽 허벅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타율 .338를 기록하여 에토 신이치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양대 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했다.[27] 그 해 우치카와가 선제타를 때려낸 경기에서 팀은 14승 2무 3패(승률 .824)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 2차전에서 선제타를 때려내며 팀을 2003년 일본 시리즈 이후 일본 시리즈 진출로 이끌었고,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2월 1일에는 퍼시픽 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 2012년
2012년 시즌부터는 2011년까지 시바하라 히로시가 달았던 등번호 '''1'''번으로 변경되었다.[28] 6월은 월간 타율 .128로 고전했지만, 7월부터는 타율 .346으로, 5년 연속 타율 .300을 기록하여,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현상 유지인 1억 700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갱신했다.
### 2013년
제3회 WBC의 일본 대표 28명에 선출되었다[29]。네덜란드전에서는, 2회 초에 이번 대회 첫 홈런을 쳐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준결승의 푸에르토리코전에서는, 2점 뒤진 8회 말 1사 1·2루의 상황에서 투구 직후 1루 주자였던 우치카와가 달렸지만, 2루 주자였던 이바타 히로카즈가 2루 베이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1·2루 간의 협살 플레이로 아웃되어 팀의 준결승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연
도대
표경
기타
석타
수득
점안
타2
루
타3
루
타홈
런루
타타
점도
루도
루
실패희
생
타희
생
플라이사
구고
의
사구사
구삼
진병
살
타타
율출
루
율장
타
율2013 일본 6 25 23 4 8 0 1 1 13 4 1 2 0 0 1 0 1 3 1 .348 .400 .565
시즌에서는, 4월 29일의 대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요시미 유지로부터 사상 267번째의 통산 100호 홈런을 쳤다. 8월은 타율 .350·5홈런·21타점을 기록하여 통산 3번째 월간 MVP를 수상[30]。홈런(19개)·타점(92타점)은 자기 최고 기록, 타율도 6년 연속 3할을 넘는 활약으로 3년 연속 5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31]。이 해의 계약 갱신에서는, 4년 계약의 3년째였지만, 구단은 이 계약을 다시 맺는 형태로 새롭게 2014년부터의 4년 계약을 제시, 우치카와도 이에 합의했다.
### 2014년
7월에는 타율 .330·20타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본인 4번째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32], 타격 호조로 리그 우승,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패,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MVP를 획득했다. 오프의 10월 9일에 미일 야구 2014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3]。
### 2015년
2015년 3월 2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캡틴으로 취임한다. 캡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2012년 시즌의 고쿠보 히로키 이후로, 구단의 후쿠오카 이적 후에는, 아키야마 고지 (1999년~2002년), 고쿠보 히로키 (2009년~2012년)에 이어 역대 3번째가 된다[34]。 같은 해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쿠도 키미야스는, 전년 전 경기에서 4번 타자를 친 이대호의 타점 생산을 기대하여 5번으로 기용하고 있어, 우치카와는 4번 타자로서 기용되었다. 타율은 .284로 8년 연속 타율 3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캡틴·4번 타자로서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3경기 연속으로 결승 적시타를 쳐, 2011년에 이은 2번째 MVP를 획득했다. 그러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일본 시리즈 개막 전에 갈비뼈 골절이 발견되어, 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우치카와 부재 (4번 타자 대역은 이대호가 맡았다)를 느끼게 하지 않는 경기 운영으로 제3전 외에는 승리하여, 4승 1패로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12의 일본 대표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지만[35], 11월 1일에 앞서 언급한 부상으로 인해 사퇴했다[36]。12월 22일에 계약 갱신 교섭에 임하여, 4년 계약의 3년째를 3000만 엔 증액된 연봉 3억 3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금액은 추정)으로 계약했다[37]。
### 2016년
2016년에는 이대호의 퇴단으로 본격적으로 1루수로 전향했다(선수 등록은 외야수로 유지).[38] 이 해에도 4번에 고정되어, 141경기에 출전하여 2년 만에 3할대인 타율 .304를 기록하여, 본인 첫 100타점 초과인 106타점을 기록했다. 오프의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9]
### 2017년
제4회 WBC의 일본 대표 멤버로 선출되었다[40]。 2월 25일, 소속팀인 소프트뱅크와의 연습 경기에서 1루 수비 시에 타자 주자인 아키요와 충돌하여, 부상 교체했다[41]。 같은 날, 미야자키 시내의 병원에서 X선 검사·MRI 검사를 받은 결과, 탈구나 뼈의 이상은 없고 "오른쪽 어깨 타박"으로 진단되었다[42]。 그 후는 문제없이 경기에 출전하여[43], 3월 14일의 대 쿠바 대표에서는 8회에 대타로 등장하여 결승 희생 플라이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44]。
정규 시즌에서는, 3월 31일의 개막전 (대 롯데전)에 "4번·1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고[45], 4월 2일의 같은 경기 제3전에서는 시즌 제1호인 솔로 홈런을 치는 등[46], WBC 출전의 영향을 보이지 않고, 4월 25일에는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의 경기 전 연습에서 왼손 등에 타구가 맞아 타박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날 2안타를 기록하는 등[47] 3월·4월은 타율 .340·5홈런의 좋은 성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에도 5월 25일의 대 롯데전에서 이적 후 첫 3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호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48], 6월 2일의 세·파 교류전 (대 요코하마 DeNA전)의 타석에서 스윙했을 때 목의 왼쪽을 다쳐 부상 교체했고, 다음 날 3일에 1군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49]。 그 후의 검사에서 경추 염좌로 진단되어 재활조에서 조정을 받았지만[50], 6월 27일에 1군 복귀하여[51], 6월 29일의 대 닛폰햄전에서 선제 적시타를 쳤다[52]。 7월 14일·15일 양일에 개최된 마이 네비 올스타 게임 2017에서는,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함께 선수 간 투표로 선출되어[53], 14일의 제1전에서 결승타를 포함한 2안타를 쳐, 4년 만에 2번째 올스타 게임 MVP를 획득했다[54]。 그러나, 올스타 게임 후인 7월 23일의 대 롯데전에서 1루 수비로 타구를 처리할 때 왼손을 부상.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25일에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MRI 검사·CT 검사를 받은 결과, "왼손 엄지 기절골 척측 기저부의 박리 골절로 전치 6주 예상"으로 진단되어, 이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55]。 시즌 후반의 9월 30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겨우 1군 복귀하여, 적시타를 쳤지만[56], 정규 시즌은 부상의 영향도 있어 73경기 출전에 그쳐 10년 만에 출전 100경기를 밑돌았고,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규정 타석 도달과 시즌 100안타도 놓치는 등, 레귤러로 정착한 2008년 이후에서는 최저의 성적으로 끝났다. 홈런은 12개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확실시되던 통산 2000안타의 달성은 미뤄졌다.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 이탈 기간이 있었지만, 시즌 전반의 활약으로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제1전부터 제4전까지 4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치는 활약을 보여, 본인 통산 3번째 MVP를 획득[57]。 친정팀·요코하마 DeNA와의 일본 시리즈 제6전에서는, 9회 1사 상황에서 야마자키 야스아키로부터 동점 솔로 홈런을 치는 활약으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 2018년
2018년, 이 해부터 정식으로 내야수 등록이 되었다[59]。 5월 9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메트라이프 돔)에서 타케쿠마 쇼타로부터 중전 안타를 쳐, NPB 사상 51번째의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같은 달 5일의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 (후쿠오카 야후오쿠!돔)에서 달성을 눈앞에 두고 14타석 연속 무안타로 주춤하고 있었는데 달성했다. 호크스 구단의 선수로서는 전신인 난카이·다이에를 포함해 사상 7번째로, 35세 9개월에 달성은 1970년의 노무라 카츠야 (35세 3개월)에 이은 구단 사상 2번째의 연소 기록이 되었다. 또한 첫 출전부터 1800경기째에서의 기록 달성은 에노모토 키하치 (1830경기)를 제치고 역대 9위, 우타자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나가시마 시게오에 이은 역대 3위의 속도가 되었다[60]。
6월 29일, 야후오쿠 돔에서 경기 전에 명구회 입회 기념 행사가 열렸고,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 고문인 오 사다하루로부터 명구회의 블레이저가 증정되었다[61]。
그러나, 2000안타 달성 후 4월에 받은 오른쪽 무릎 데드볼에 의한 오른쪽 무릎 통증에 더해, 5월에는 왼쪽 발목에 자타구 맞아 이탈, 8월에는 피로성 컨디션 불량으로 재차 이탈하는 등 부상에도 시달렸고, 시즌 전체에서는 71경기에 출전해 타율 .242, 득점권 타율은 .194에 머무는 등, 전년의 성적을 더 밑도는 불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었다.
### 2019년
부터 팀의 주장 제도가 폐지되어, 유니폼에서 "'''C'''" 마크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구장의 전광 게시판에 표시되는 등록명을 풀 네임인 "'''우치카와 세이이치
3. 1.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시절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2000년 일본 프로 야구 신인 선수 선택 회의에서 우치카와를 1순위로 지명했다.
### 2001년 ~ 2002년
프로 1년차부터 1군에서 경험했고 2년차인 2002년에는 대타로서 42경기에 출장,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001년에는 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1군 데뷔를 경험했다. 7월 20일 도쿄 돔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유격수로 교체 출전하여 7회에 사타케 겐타를 상대로 2루타를 쳐 득점을 기록했다[15]。2군에서는 이스턴 리그 3위인 47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2002년부터 등번호를 "'''2'''"로 변경하고, 대타로 42경기에 출전했다.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군에서는 7월 11일 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2년 연속으로 선출되어 5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안타를 쳐 득점도 기록했다. 7회부터는 2루수로 출전했다[16]。
### 2003년
스프링 캠프 도중 갑작스런 오른쪽 눈의 시력 저하로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시즌 도중 재조정 때문에 2군으로 격하된 이시이 다쿠로를 대신해서 5월부터는 2번·유격수의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몸상태가 계속 나빠지면서 오른손의 악력이 약해지는 등 공을 잡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6월에는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경에 1군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2루수로 기용되어 타율 3할 1푼 3리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몸상태가 나빠진 원인은 턱이 우측으로 구부러져 경추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어 시즌 종료 뒤에 가진 재계약 협상에서는 턱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연봉은 조금 불어나게 되었다(턱을 정형하지 않고 어금니가 서로 맞물릴 수 있도록 교정하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 2004년
개막전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 올라 7번·2루수로 출전하는 등 시즌 1년을 통해서 2루수로서의 선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타격에서는 개인 최다의 17개의 홈런을 때려내 득점권타율은 4할대 후반을 기록했다.
### 2005년
다네다 히토시가 타격 호조를 보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좌익수 포지션을 고이케 마사아키나 후루키 가쓰아키와 경쟁했지만, 후반기 주전 자리는 수비력이 높은 고이케에게 고정되어 우치카와는 대타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 2006년
사에키 다카히로를 필두로 팀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좌익수나 1루수로도 출전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100경기 출장과 100안타를 달성했지만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 2007년
다무라 히토시의 이적과 자신의 심각한 수비난에 의해 외야수로 변경되어 우익수에 고정되었다. 개막 이후부터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2군에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1군으로 복귀한 이후의 8월에는 타율 .448을 기록해 부활을 이루었다. 2007년 시즌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을 통해 외야수를 맡았다.[15]
### 2008년
개막 이후부터 타격 호조를 이루면서 사에키의 부진에 의해 4월말에는 1루수의 주전으로 차지했다. 타율이 4할을 넘는 시기도 길었고,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하는 등(외야수 부문), 2경기를 통해서 5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에 있어서 우타자로서는 1999년의 로버트 로즈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일본인 선수의 센트럴 리그 기록도 경신하는 타율 3할 7푼 8리 기록,[124]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위 타자 타이틀을 석권했다. 2008년 시즌은 최다 안타(189안타), 최고 출루율(.416)의 타이틀도 연거푸 차지한 것 외에도 득점권타율은 양대 리그 1위인 4할 4푼 9리를 기록했다. 팀내 우타자인 무라타 슈이치, 요시무라 유키와 함께 형성된 클린업 트리오는 침체되고 있는 팀에 있어 타 구단의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같은 해의 요코하마는 승률 .338로 "팀 승률보다 높은 타율로 수위 타자"는 오카무라 토시아키 이후 64년 만으로, 2023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도 전후 유일의 진기록이다.
###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제1라운드 2차전의 대한민국전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 김광현을 상대로 3루 선을 넘는 2타점 2루타를 쳐,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제2라운드 1위를 결정하는 대한민국전에서도, 선취점을 내준 직후 장원삼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쳤다. 결승전의 대한민국전에서는 6번 좌익수로 출전하여, 5회말 수비에서는 고영민이 친 날카로운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잡아내고, 정확한 송구로 2루에서 아웃시키는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 타격에서도 3안타로 활약했고, 10회초 선두 타자로서 우전 안타를 쳐, 주자로서 결승 득점의 홈을 밟았다. 이 대회에서는 주로 좌완 투수를 상대로 기용되어, 대회 성적은 6경기 출전에 타율 .333 (18타수 6안타), 1홈런이었다.
시즌에서는 마찬가지로 일본 대표로 선출된 무라타 슈이치가 대회 기간 중 3월 30일에 오른쪽 다리를 부상당했기 때문에, 우치카와가 개막 4번 타자를 맡아 전 타순에서의 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알렉스 라미레스와 끝까지 수위 타자 경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리그 2위의 타율 .318[18]을 기록했다. 이 해에 합류한 단 존슨이 1루수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 주로 좌익수를 맡았다.
### 2010년
6월 3일에 국내 FA권을 획득했다.[21] 6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오구라 신스케를 상대로 생애 첫 만루 홈런을 쳤다. 처음에는 주로 3번 1루수로 출전했지만, 시즌 도중에 합류한 브렛 하퍼가 1루만 수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즌 후반에는 1번 우익수 출전이 중심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리그 3위인 182안타를 기록했고, 생애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 3년 연속 타율 3할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8일, 국내 FA권 행사를 표명했고[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영입에 나섰고, 양 구단과 교섭한 끝에 12월 1일에 오이타현과 가장 가까운 구단인 소프트뱅크로 이적할 것을 표명했다.[22]
3. 1. 1. 2001년 ~ 2002년
프로 1년차부터 1군에서 경험했고 2년차인 2002년에는 대타로서 42경기에 출장,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001년에는 3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1군 데뷔를 경험했다. 7월 20일 도쿄 돔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유격수로 교체 출전하여 7회에 사타케 겐타를 상대로 2루타를 쳐 득점을 기록했다[15]。2군에서는 이스턴 리그 3위인 47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2002년부터 등번호를 "'''2'''"로 변경하고, 대타로 42경기에 출전했다. 70타석에서 타율.333, 2홈런의 성적을 남겼다. 2군에서는 7월 11일 나가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2년 연속으로 선출되어 5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안타를 쳐 득점도 기록했다. 7회부터는 2루수로 출전했다[16]。
3. 1. 2. 2003년
스프링 캠프 도중 갑작스런 오른쪽 눈의 시력 저하로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시즌 도중 재조정 때문에 2군으로 격하된 이시이 다쿠로를 대신해서 5월부터는 2번·유격수의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몸상태가 계속 나빠지면서 오른손의 악력이 약해지는 등 공을 잡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6월에는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9월 경에 1군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2루수로 기용되어 타율 3할 1푼 3리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몸상태가 나빠진 원인은 턱이 우측으로 구부러져 경추의 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되어 시즌 종료 뒤에 가진 재계약 협상에서는 턱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연봉은 조금 불어나게 되었다(턱을 정형하지 않고 어금니가 서로 맞물릴 수 있도록 교정하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3. 1. 3. 2004년
개막전에서는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 올라 7번·2루수로 출전하는 등 시즌 1년을 통해서 2루수로서의 선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타격에서는 개인 최다의 17개의 홈런을 때려내 득점권타율은 4할대 후반을 기록했다.
3. 1. 4. 2005년
다네다 히토시가 타격 호조를 보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좌익수 포지션을 고이케 마사아키나 후루키 가쓰아키와 경쟁했지만, 후반기 주전 자리는 수비력이 높은 고이케에게 고정되어 우치카와는 대타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3. 1. 5. 2006년
사에키 다카히로를 필두로 팀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좌익수나 1루수로도 출전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으로 100경기 출장과 100안타를 달성했지만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3. 1. 6. 2007년
다무라 히토시의 이적과 자신의 심각한 수비난에 의해 외야수로 변경되어 우익수에 고정되었다. 개막 이후부터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2군에 강등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1군으로 복귀한 이후의 8월에는 타율 .448을 기록해 부활을 이루었다. 2007년 시즌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을 통해 외야수를 맡았다.[15]
3. 1. 7. 2008년
개막 이후부터 타격 호조를 이루면서 사에키의 부진에 의해 4월말에는 1루수의 주전으로 차지했다. 타율이 4할을 넘는 시기도 길었고,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하는 등(외야수 부문), 2경기를 통해서 5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시즌에 있어서 우타자로서는 1999년의 로버트 로즈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일본인 선수의 센트럴 리그 기록도 경신하는 타율 3할 7푼 8리 기록,[124] 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위 타자 타이틀을 석권했다. 2008년 시즌은 최다 안타(189안타), 최고 출루율(.416)의 타이틀도 연거푸 차지한 것 외에도 득점권타율은 양대 리그 1위인 4할 4푼 9리를 기록했다. 팀내 우타자인 무라타 슈이치, 요시무라 유키와 함께 형성된 클린업 트리오는 침체되고 있는 팀에 있어 타 구단의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같은 해의 요코하마는 승률 .338로 "팀 승률보다 높은 타율로 수위 타자"는 오카무라 토시아키 이후 64년 만으로, 2023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도 전후 유일의 진기록이다.
3. 1. 8.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제1라운드 2차전의 대한민국전에 6번 1루수로 선발 출전. 김광현을 상대로 3루 선을 넘는 2타점 2루타를 쳐,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제2라운드 1위를 결정하는 대한민국전에서도, 선취점을 내준 직후 장원삼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쳤다. 결승전의 대한민국전에서는 6번 좌익수로 출전하여, 5회말 수비에서는 고영민이 친 날카로운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잡아내고, 정확한 송구로 2루에서 아웃시키는 좋은 플레이를 보였다. 타격에서도 3안타로 활약했고, 10회초 선두 타자로서 우전 안타를 쳐, 주자로서 결승 득점의 홈을 밟았다. 이 대회에서는 주로 좌완 투수를 상대로 기용되어, 대회 성적은 6경기 출전에 타율 .333 (18타수 6안타), 1홈런이었다.
시즌에서는 마찬가지로 일본 대표로 선출된 무라타 슈이치가 대회 기간 중 3월 30일에 오른쪽 다리를 부상당했기 때문에, 우치카와가 개막 4번 타자를 맡아 전 타순에서의 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알렉스 라미레스와 끝까지 수위 타자 경쟁을 벌여, 최종적으로 리그 2위의 타율 .318[18]을 기록했다. 이 해에 합류한 단 존슨이 1루수로 기용되었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 주로 좌익수를 맡았다.
연 도 | 대 표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실패 | 희 생 타 | 희 생 플라이 | 사 구 | 고 의 사구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
2009 | 일본 | 6 | 20 | 18 | 3 | 6 | 1 | 0 | 1 | 10 | 4 | 0 | 1 | 0 | 0 | 2 | 0 | 0 | 1 | 1 | .333 | .400 | .556 |
2013 | 6 | 25 | 23 | 4 | 8 | 0 | 1 | 1 | 13 | 4 | 1 | 2 | 0 | 0 | 1 | 0 | 1 | 3 | 1 | .348 | .400 | .565 | |
2017 | 6 | 10 | 8 | 1 | 3 | 2 | 0 | 0 | 5 | 3 | 0 | 0 | 0 | 1 | 2 | 0 | 0 | 1 | 0 | .375 | .455 | .625 |
3. 1. 9. 2010년
6월 3일에 국내 FA권을 획득했다.[21] 6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오구라 신스케를 상대로 생애 첫 만루 홈런을 쳤다. 처음에는 주로 3번 1루수로 출전했지만, 시즌 도중에 합류한 브렛 하퍼가 1루만 수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즌 후반에는 1번 우익수 출전이 중심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리그 3위인 182안타를 기록했고, 생애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 3년 연속 타율 3할을 달성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8일, 국내 FA권 행사를 표명했고[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영입에 나섰고, 양 구단과 교섭한 끝에 12월 1일에 오이타현과 가장 가까운 구단인 소프트뱅크로 이적할 것을 표명했다.[22]3. 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0년 오프시즌 동안, 그는 자유 계약 선수 옵션을 행사했으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그리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간의 수 주간의 협상 끝에, 최대 13억 6천만 엔의 4년 계약을 소프트뱅크와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12월 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정식 계약을 맺고, 같은 FA로 입단한 호소카와 토루와 함께 입단 회견을 가졌다[23]。계약 내용은 4년 계약으로 총액 5억 6000만 엔에서 13억 6000만 엔(금액은 추정) 사이의 변동제로, 등번호는 제2회 WBC에서도 착용한 "'''24'''"였다.'''2011년'''에는 4월에 타율 .397, 안타·루타(38)로 리그 톱, 타점·2루타(5)로 리그 2위 타이, 장타율(.603)로 리그 3위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여, 본인 두 번째의 월간 MVP를 획득했다[24][25]。 게다가 교류전에서는 타율 .326(교류전 6위)・20타점(교류전 4위)・4홈런(교류전 7위 타이), 장타율 .554(교류전 2위)로 활약하며,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다. MVP도 획득했다[26]。잦은 왼쪽 다리 부상에 시달리며 1군 등록 말소나 벤치에 앉으면서 대타 출장에 그치는 경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 수위 타자를 사실상 확정지은 후에도 최종전까지 출장을 계속해 타율 .338로 본인 두 번째, 에토 신이치 (주니치·롯데) 이후 사상 두 번째의 세·파 양 리그에서의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27]。오프에는 등번호를 이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시바하라 히로시의 "'''1'''"으로 변경했다[28]。
'''2012년''' 6월 5일에 구단의 Twitter에서, 5일에 부인이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발표했다. 6월은 월간 타율 .128로 고전했지만, 7월부터는 타율 .346으로, 5년 연속 타율 .300을 기록하여,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현상 유지인 1억 700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갱신했다.
'''2013년''' 2월 20일에 제3회 WBC의 일본 대표 28명에 선출되었다[29]。3월 24일의 네덜란드전에서는, 2회 초에 이번 대회 첫 홈런을 쳐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준결승의 푸에르토리코전에서는, 2점 뒤진 8회 말 1사 1·2루의 상황에서 투구 직후 1루 주자였던 우치카와가 달렸지만, 2루 주자였던 이바타 히로카즈가 2루 베이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1·2루 간의 협살 플레이로 아웃되어 팀의 준결승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연 도 | 대 표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실패 | 희 생 타 | 희 생 플라이 | 사 구 | 고 의 사구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
2013 | 일본 | 6 | 25 | 23 | 4 | 8 | 0 | 1 | 1 | 13 | 4 | 1 | 2 | 0 | 0 | 1 | 0 | 1 | 3 | 1 | .348 | .400 | .565 |
시즌에서는, 4월 29일의 대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요시미 유지로부터 사상 267번째의 통산 100호 홈런을 쳤다. 8월은 타율 .350·5홈런·21타점을 기록하여 통산 3번째 월간 MVP를 수상[30]。홈런(19개)·타점(92타점)은 자기 최고 기록, 타율도 6년 연속 3할을 넘는 활약으로 3년 연속 5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31]。이 해의 계약 갱신에서는, 4년 계약의 3년째였지만, 구단은 이 계약을 다시 맺는 형태로 새롭게 2014년부터의 4년 계약을 제시, 우치카와도 이에 합의했다.
'''2014년'''에도, 7월에는 타율 .330·20타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본인 4번째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32], 타격 호조로 리그 우승, CS 제패,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MVP를 획득했다. 오프의 10월 9일에 미일 야구 2014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3]。
'''2015년''' 3월 2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캡틴으로 취임한다. 캡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2012년 시즌의 고쿠보 히로키 이후로, 구단의 후쿠오카 이적 후에는, 아키야마 고지 (1999년~2002년), 고쿠보 히로키 (2009년~2012년)에 이어 역대 3번째가 된다[34]。 같은 해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쿠도 키미야스는, 전년 전 경기에서 4번 타자를 친 이대호의 타점 생산을 기대하여 5번으로 기용하고 있어, 우치카와는 4번 타자로서 기용되었다. 타율은 .284로 8년 연속 타율 3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캡틴·4번 타자로서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3경기 연속으로 결승 적시타를 쳐, 2011년에 이은 2번째 MVP를 획득했다. 그러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일본 시리즈 개막 전에 갈비뼈 골절이 발견되어, 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우치카와 부재 (4번 타자 대역은 이대호가 맡았다)를 느끼게 하지 않는 경기 운영으로 제3전 외에는 승리하여, 4승 1패로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12의 일본 대표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지만[35], 11월 1일에 앞서 언급한 부상으로 인해 사퇴했다[36]。12월 22일에 계약 갱신 교섭에 임하여, 4년 계약의 3년째를 3000만 엔 증액된 연봉 3억 3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금액은 추정)으로 계약했다[37]。
'''2016년''' 7월 20일, 둘째 아이인 남자아이가 탄생했다고 보도되었다[38]。 같은 해에는 이대호의 퇴단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1루수로 전향 (선수 등록은 외야수로 유지). 이 해에도 4번에 고정되어, 141경기에 출전하여 2년 만에 3할대인 타율 .304를 기록하여, 본인 첫 100타점 초과인 106타점을 기록했다. 오프의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9]。
'''2017년''' 1월 28일에 제4회 WBC의 일본 대표 멤버로 선출된다[40]。
하지만 2월 25일, 소속팀인 소프트뱅크와의 연습 경기에서 1루 수비 시에 타자 주자인 아키요와 충돌하여, 부상 교체했다[41]。 같은 날, 미야자키 시내의 병원에서 X선 검사·MRI 검사를 받은 결과, 탈구나 뼈의 이상은 없고 "오른쪽 어깨 타박"으로 진단되었다[42]。 그 후는 문제없이 경기에 출전하여[43], 3월 14일의 대 쿠바 대표에서는 8회에 대타로 등장하여 결승 희생 플라이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44]。
정규 시즌에서는, 3월 31일의 개막전 (대 롯데전)에 "4번·1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고[45], 4월 2일의 같은 경기 제3전에서는 시즌 제1호인 솔로 홈런을 치는 등[46], WBC 출전의 영향을 보이지 않고, 4월 25일에는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의 경기 전 연습에서 왼손 등에 타구가 맞아 타박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날 2안타를 기록하는 등[47] 3월·4월은 타율 .340·5홈런의 좋은 성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에도 5월 25일의 대 롯데전에서 이적 후 첫 3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호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48], 6월 2일의 세·파 교류전 (대 요코하마 DeNA전)의 타석에서 스윙했을 때 목의 왼쪽을 다쳐 부상 교체했고, 다음 날 3일에 1군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49]。 그 후의 검사에서 경추 염좌로 진단되어 재활조에서 조정을 받았지만[50], 6월 27일에 1군 복귀하여[51], 6월 29일의 대 닛폰햄전에서 선제 적시타를 쳤다[52]。 7월 14일·15일 양일에 개최된 마이 네비 올스타 게임 2017에서는,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함께 선수 간 투표로 선출되어[53], 14일의 제1전에서 결승타를 포함한 2안타를 쳐, 4년 만에 2번째 올스타 게임 MVP를 획득했다[54]。 그러나, 올스타 게임 후인 7월 23일의 대 롯데전에서 1루 수비로 타구를 처리할 때 왼손을 부상.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25일에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MRI 검사·CT 검사를 받은 결과, "왼손 엄지 기절골 척측 기저부의 박리 골절로 전치 6주 예상"으로 진단되어, 이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55]。 시즌 후반의 9월 30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겨우 1군 복귀하여, 적시타를 쳤지만[56], 정규 시즌은 부상의 영향도 있어 73경기 출전에 그쳐 10년 만에 출전 100경기를 밑돌았고,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규정 타석 도달과 시즌 100안타도 놓치는 등, 레귤러로 정착한 2008년 이후에서는 최저의 성적으로 끝났다. 홈런은 12개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확실시되던 통산 2000안타의 달성은 미뤄졌다.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 이탈 기간이 있었지만, 시즌 전반의 활약으로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제1전부터 제4전까지 4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치는 활약을 보여, 본인 통산 3번째 MVP를 획득[57]。 친정팀·요코하마 DeNA와의 일본 시리즈 제6전에서는, 9회 1사 상황에서 야마자키 야스아키로부터 동점 솔로 홈런을 치는 활약으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오프의 12월 18일에 계약 갱신 교섭에 임하여, 이 시즌으로 4년 계약은 만료되었지만, 새롭게 2018년 시즌부터의 2년 계약, 5000만 엔 인상된 연봉 4억 엔 플러스 성과급 (금액은 추정)으로 계약 합의에 이르렀다[58]。
'''2018년''', 이 해부터 정식으로 내야수 등록이 되었다[59]。 5월 9일의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메트라이프 돔)에서 타케쿠마 쇼타로부터 중전 안타를 쳐, NPB 사상 51번째의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같은 달 5일의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 (후쿠오카 야후오쿠!돔)에서 달성을 눈앞에 두고 14타석 연속 무안타로 주춤하고 있었는데 달성했다. 호크스 구단의 선수로서는 전신인 난카이·다이에를 포함해 사상 7번째로, 35세 9개월에 달성은 1970년의 노무라 카츠야 (35세 3개월)에 이은 구단 사상 2번째의 연소 기록이 되었다. 또한 첫 출전부터 1800경기째에서의 기록 달성은 에노모토 키하치 (1830경기)를 제치고 역대 9위, 우타자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나가시마 시게오에 이은 역대 3위의 속도가 되었다[60]。
6월 29일, 야후오쿠 돔에서 경기 전에 명구회 입회 기념 행사가 열렸고,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 고문인 오 사다하루로부터 명구회의 블레이저가 증정되었다[61]。
그러나, 2000안타 달성 후 4월에 받은 오른쪽 무릎 데드볼에 의한 오른쪽 무릎 통증에 더해, 5월에는 왼쪽 발목에 자타구 맞아 이탈, 8월에는 피로성 컨디션 불량으로 재차 이탈하는 등 부상에도 시달렸고, 시즌 전체에서는 71경기에 출전해 타율 .242, 득점권 타율은 .194에 머무는 등, 전년의 성적을 더 밑도는 불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었다.
'''2019년'''부터 팀의 주장 제도가 폐지되어, 유니폼에서 "'''C'''" 마크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구장의 전광 게시판에 표시되는 등록명을 풀 네임인 "'''우치카와 세이이치'''"로 변경하여, 심기 일전을 도모했다[62]。 이에 따라, 등 네임도 "UCHIKAWA"에서 "'''S.UCHIKAWA'''"로 변경되었다. 춘계 캠프 중인 2월 13일에 셋째 아이인 남자아이가 탄생했다. 시즌에서는, 3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지만, 타율은 .256에 머물렀고, 득점권 타율은 2년 연속 .194, 특히 만루 상황에서 11타수 무안타로 끝나는 등, 팀도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2년 연속 2위에 그쳤지만, 전년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돌파해 구단 사상 첫 일본 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1루수로서 NPB 사상 2번째, 퍼시픽 리그에서는 첫 수비율 10할(무실책)을 기록해, 본인 첫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프로 19년 차·37세에 첫 수상은 최고령 기록이자 최만년 기록이다. 오프에, 야구 협약의 감액 제한(연봉 1억 엔 초과는 40%)에 가까운 1억 50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2억 5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63]。
'''2020년''', 개막 전 연습 경기에서 21타수 1안타로 대부진하여, 본인 17년 만에 2군에서 시작했다. 2군에서는 42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327의 고타율을 남기면서도 1군에 승격하지 못했고, 결과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시즌을 통틀어 1군 출전 없이 끝났다. 10월 28일, 다음 해의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현역 속행을 모색하여 같은 날까지 구단에 퇴단의 뜻을 신청[64], 11월 1일, 타마홈 스타디움 치쿠고에서 개최된 2군 경기 후, 팀을 대표하여 관객에게 사의를 표했을 때, "제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고 발언[65], 11월 2일, 구단 공식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퇴단이 발표되었다[66]。
3. 2. 1. 2011년
4월에 타율 .397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24][25] 교류전에서는 타율 .326(교류전 6위), 20타점(교류전 4위), 4홈런(교류전 7위 타이), 장타율 .554(교류전 2위)를 기록하며 팀의 교류전 우승에 기여했고, 교류전 MVP를 수상했다.[26] 잦은 왼쪽 허벅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타율 .338를 기록하여 에토 신이치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양대 리그 수위타자를 차지했다.[27] 그 해 우치카와가 선제타를 때려낸 경기에서 팀은 14승 2무 3패(승률 .824)를 기록했다.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 2차전에서 선제타를 때려내며 팀을 2003년 일본 시리즈 이후 일본 시리즈 진출로 이끌었고,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2월 1일에는 퍼시픽 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3. 2. 2. 2012년
2012년 시즌부터는 2011년까지 시바하라 히로시가 달았던 등번호 '''1'''번으로 변경되었다.[28] 6월은 월간 타율 .128로 고전했지만, 7월부터는 타율 .346으로, 5년 연속 타율 .300을 기록하여,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현상 유지인 1억 7000만 엔(금액은 추정)으로 갱신했다.3. 2. 3. 2013년
제3회 WBC의 일본 대표 28명에 선출되었다[29]。네덜란드전에서는, 2회 초에 이번 대회 첫 홈런을 쳐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준결승의 푸에르토리코전에서는, 2점 뒤진 8회 말 1사 1·2루의 상황에서 투구 직후 1루 주자였던 우치카와가 달렸지만, 2루 주자였던 이바타 히로카즈가 2루 베이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1·2루 간의 협살 플레이로 아웃되어 팀의 준결승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시즌에서는, 4월 29일의 대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요시미 유지로부터 사상 267번째의 통산 100호 홈런을 쳤다. 8월은 타율 .350·5홈런·21타점을 기록하여 통산 3번째 월간 MVP를 수상[30]。홈런(19개)·타점(92타점)은 자기 최고 기록, 타율도 6년 연속 3할을 넘는 활약으로 3년 연속 5번째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다[31]。이 해의 계약 갱신에서는, 4년 계약의 3년째였지만, 구단은 이 계약을 다시 맺는 형태로 새롭게 2014년부터의 4년 계약을 제시, 우치카와도 이에 합의했다.
연 도 | 대 표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실패 | 희 생 타 | 희 생 플라이 | 사 구 | 고 의 사구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
2013 | 일본 | 6 | 25 | 23 | 4 | 8 | 0 | 1 | 1 | 13 | 4 | 1 | 2 | 0 | 0 | 1 | 0 | 1 | 3 | 1 | .348 | .400 | .565 |
-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3. 2. 4. 2014년
7월에는 타율 .330·20타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본인 4번째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32], 타격 호조로 리그 우승,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패,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MVP를 획득했다. 오프의 10월 9일에 미일 야구 2014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3]。3. 2. 5. 2015년
2015년 3월 2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캡틴으로 취임한다. 캡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2012년 시즌의 고쿠보 히로키 이후로, 구단의 후쿠오카 이적 후에는, 아키야마 고지 (1999년~2002년), 고쿠보 히로키 (2009년~2012년)에 이어 역대 3번째가 된다[34]。 같은 해부터 감독으로 취임한 쿠도 키미야스는, 전년 전 경기에서 4번 타자를 친 이대호의 타점 생산을 기대하여 5번으로 기용하고 있어, 우치카와는 4번 타자로서 기용되었다. 타율은 .284로 8년 연속 타율 3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캡틴·4번 타자로서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3경기 연속으로 결승 적시타를 쳐, 2011년에 이은 2번째 MVP를 획득했다. 그러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일본 시리즈 개막 전에 갈비뼈 골절이 발견되어, 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팀은 우치카와 부재 (4번 타자 대역은 이대호가 맡았다)를 느끼게 하지 않는 경기 운영으로 제3전 외에는 승리하여, 4승 1패로 2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12의 일본 대표 최종 로스터 28명에 선출되었지만[35], 11월 1일에 앞서 언급한 부상으로 인해 사퇴했다[36]。12월 22일에 계약 갱신 교섭에 임하여, 4년 계약의 3년째를 3000만 엔 증액된 연봉 3억 3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금액은 추정)으로 계약했다[37]。
3. 2. 6. 2016년
2016년에는 이대호의 퇴단으로 본격적으로 1루수로 전향했다(선수 등록은 외야수로 유지).[38] 이 해에도 4번에 고정되어, 141경기에 출전하여 2년 만에 3할대인 타율 .304를 기록하여, 본인 첫 100타점 초과인 106타점을 기록했다. 오프의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39]3. 2. 7. 2017년
제4회 WBC의 일본 대표 멤버로 선출되었다[40]。 2월 25일, 소속팀인 소프트뱅크와의 연습 경기에서 1루 수비 시에 타자 주자인 아키요와 충돌하여, 부상 교체했다[41]。 같은 날, 미야자키 시내의 병원에서 X선 검사·MRI 검사를 받은 결과, 탈구나 뼈의 이상은 없고 "오른쪽 어깨 타박"으로 진단되었다[42]。 그 후는 문제없이 경기에 출전하여[43], 3월 14일의 대 쿠바 대표에서는 8회에 대타로 등장하여 결승 희생 플라이를 쳐 승리에 기여했다[44]。정규 시즌에서는, 3월 31일의 개막전 (대 롯데전)에 "4번·1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시즌 첫 안타를 기록했고[45], 4월 2일의 같은 경기 제3전에서는 시즌 제1호인 솔로 홈런을 치는 등[46], WBC 출전의 영향을 보이지 않고, 4월 25일에는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의 경기 전 연습에서 왼손 등에 타구가 맞아 타박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날 2안타를 기록하는 등[47] 3월·4월은 타율 .340·5홈런의 좋은 성적으로 시작했다. 그 후에도 5월 25일의 대 롯데전에서 이적 후 첫 3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등 호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48], 6월 2일의 세·파 교류전 (대 요코하마 DeNA전)의 타석에서 스윙했을 때 목의 왼쪽을 다쳐 부상 교체했고, 다음 날 3일에 1군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49]。 그 후의 검사에서 경추 염좌로 진단되어 재활조에서 조정을 받았지만[50], 6월 27일에 1군 복귀하여[51], 6월 29일의 대 닛폰햄전에서 선제 적시타를 쳤다[52]。 7월 14일·15일 양일에 개최된 마이 네비 올스타 게임 2017에서는, 알프레도 데스파이네와 함께 선수 간 투표로 선출되어[53], 14일의 제1전에서 결승타를 포함한 2안타를 쳐, 4년 만에 2번째 올스타 게임 MVP를 획득했다[54]。 그러나, 올스타 게임 후인 7월 23일의 대 롯데전에서 1루 수비로 타구를 처리할 때 왼손을 부상. 부기가 가라앉지 않아, 25일에 센다이 시내의 병원에서 MRI 검사·CT 검사를 받은 결과, "왼손 엄지 기절골 척측 기저부의 박리 골절로 전치 6주 예상"으로 진단되어, 이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55]。 시즌 후반의 9월 30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겨우 1군 복귀하여, 적시타를 쳤지만[56], 정규 시즌은 부상의 영향도 있어 73경기 출전에 그쳐 10년 만에 출전 100경기를 밑돌았고,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규정 타석 도달과 시즌 100안타도 놓치는 등, 레귤러로 정착한 2008년 이후에서는 최저의 성적으로 끝났다. 홈런은 12개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확실시되던 통산 2000안타의 달성은 미뤄졌다.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 이탈 기간이 있었지만, 시즌 전반의 활약으로 2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제1전부터 제4전까지 4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치는 활약을 보여, 본인 통산 3번째 MVP를 획득[57]。 친정팀·요코하마 DeNA와의 일본 시리즈 제6전에서는, 9회 1사 상황에서 야마자키 야스아키로부터 동점 솔로 홈런을 치는 활약으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3. 2. 8. 2018년
2018년, 이 해부터 정식으로 내야수 등록이 되었다[59]。 5월 9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 (메트라이프 돔)에서 타케쿠마 쇼타로부터 중전 안타를 쳐, NPB 사상 51번째의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같은 달 5일의 대 오릭스 버팔로스전 (후쿠오카 야후오쿠!돔)에서 달성을 눈앞에 두고 14타석 연속 무안타로 주춤하고 있었는데 달성했다. 호크스 구단의 선수로서는 전신인 난카이·다이에를 포함해 사상 7번째로, 35세 9개월에 달성은 1970년의 노무라 카츠야 (35세 3개월)에 이은 구단 사상 2번째의 연소 기록이 되었다. 또한 첫 출전부터 1800경기째에서의 기록 달성은 에노모토 키하치 (1830경기)를 제치고 역대 9위, 우타자로는 알렉스 라미레스, 나가시마 시게오에 이은 역대 3위의 속도가 되었다[60]。6월 29일, 야후오쿠 돔에서 경기 전에 명구회 입회 기념 행사가 열렸고,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 고문인 오 사다하루로부터 명구회의 블레이저가 증정되었다[61]。
그러나, 2000안타 달성 후 4월에 받은 오른쪽 무릎 데드볼에 의한 오른쪽 무릎 통증에 더해, 5월에는 왼쪽 발목에 자타구 맞아 이탈, 8월에는 피로성 컨디션 불량으로 재차 이탈하는 등 부상에도 시달렸고, 시즌 전체에서는 71경기에 출전해 타율 .242, 득점권 타율은 .194에 머무는 등, 전년의 성적을 더 밑도는 불만족스러운 시즌이 되었다.
3. 2. 9. 2019년
부터 팀의 주장 제도가 폐지되어, 유니폼에서 "'''C'''" 마크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구장의 전광 게시판에 표시되는 등록명을 풀 네임인 "'''우치카와 세이이치'''"로 변경하여, 심기 일전을 도모했다[62]。 이에 따라, 등 네임도 "UCHIKAWA"에서 "'''S.UCHIKAWA'''"로 변경되었다. 춘계 캠프 중인 2월 13일에 셋째 아이인 남자아이가 탄생했다. 시즌에서는, 3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했지만, 타율은 .256에 머물렀고, 득점권 타율은 2년 연속 .194, 특히 만루 상황에서 11타수 무안타로 끝나는 등, 팀도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2년 연속 2위에 그쳤지만, 전년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돌파해 구단 사상 첫 일본 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1루수로서 NPB 사상 2번째, 퍼시픽 리그에서는 첫 수비율 10할(무실책)을 기록해, 본인 첫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프로 19년 차·37세에 첫 수상은 최고령 기록이자 최만년 기록이다. 오프에, 야구 협약의 감액 제한(연봉 1억 엔 초과는 40%)에 가까운 1억 50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2억 5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63]。3. 2. 10. 2020년
2020년, 개막 전 연습 경기에서 21타수 1안타로 매우 부진하여, 본인 17년 만에 2군에서 시작했다.[64] 2군에서는 42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327의 고타율을 남겼지만 1군에 승격하지 못했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시즌 동안 1군 출전 없이 끝났다. 10월 28일, 다음 해의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현역 속행을 모색하여 같은 날까지 구단에 퇴단 의사를 신청했고,[64] 11월 1일, 타마홈 스타디움 치쿠고에서 개최된 2군 경기 후, 팀을 대표하여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할 때, "제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라고 발언했다.[65] 11월 2일, 구단 공식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퇴단이 발표되었다.[66]3. 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2020년 12월 11일, 우치카와는 NPB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계약을 맺고 기자 회견을 열었다.[2]
소프트뱅크 퇴단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영입에 나서, 2020년 12월 8일에 우치카와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발표했다[67]。 등번호는 동세대인 다나카 히로야스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7'''」이며, 추정 연봉은 2억 엔 삭감된 5000만 엔[68]。 야쿠르트를 선택한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요코하마 시대에 지도를 받은 스기무라 시게루 1군 타격 코치가 있다는 점과, 자신의 타격에도 참고가 될 아오키 노리치카, 야마다 테츠토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21년, 개막전에는 '5번·1루'로 선발 출장했고, 7월 9일 대 히로시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헤로니모 프랑스아로부터 이적 후 첫 번째 사요나라 적시타를 날렸다.[69] 소프트뱅크 시대부터 5년 연속 출전한 2021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대타로 2경기에 출전했다. 시리즈를 야쿠르트가 제패함에 따라, 2017~2020년 소프트뱅크 4연패와 합쳐 일본 시리즈 '1인 5연패'를 달성했다.[69]
2022년 7월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주력 선수들이 대량으로 이탈하면서 1군에 긴급 승격되어, 같은 달 14일 대 주니치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3번·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시즌 첫 출전을 했다. 공식전에서는 2015년 10월 5일 대 라쿠텐전 이후 약 7년 만에 외야수로서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외야 수비 자체는 2017년 이후 5년 만). 그러나 14타수 3안타로 두드러진 활약을 남기지 못하고, 21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70]。
2022년 9월 28일, 2022년 시즌을 끝으로 NPB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2022년 10월 3일, 같은 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사카구치 토모타카・시마 모히로와 함께 은퇴 세리머니가 열렸고, 쿠도 키미야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3. 3. 1. 2021년
2021년, 개막전에는 '5번·1루'로 선발 출장했고, 7월 9일 대 히로시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헤로니모 프랑스아로부터 이적 후 첫 번째 사요나라 적시타를 날렸다.[69] 소프트뱅크 시대부터 5년 연속 출전한 2021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대타로 2경기에 출전했다. 시리즈를 야쿠르트가 제패함에 따라, 2017~2020년 소프트뱅크 4연패와 합쳐 일본 시리즈 '1인 5연패'를 달성했다.[69]3. 3. 2. 2022년
2022년 7월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주력 선수들이 대량으로 이탈하면서 1군에 긴급 승격되어, 같은 달 14일 대 주니치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 「3번·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시즌 첫 출전을 했다. 공식전에서는 2015년 10월 5일 대 라쿠텐전 이후 약 7년 만에 외야수로서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외야 수비 자체는 2017년 이후 5년 만). 그러나 14타수 3안타로 두드러진 활약을 남기지 못하고, 21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70]。9월 28일, 2022년 시즌을 끝으로 NPB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10월 3일, 같은 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사카구치 토모타카・시마 모히로와 함께 은퇴 세리머니가 열렸고, 쿠도 키미야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4. 은퇴 이후
2023년 12월 3일,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출신지인 오이타현을 연고지로 하는 규슈 아시아 리그의 오이타 B-링스에 입단했다[71][72]。 오이타를 현역 마지막 구단으로 삼을 의향으로, 간토를 거점으로 훈련을 하고, 경기는 오이타현에서의 홈 경기를 중심으로 출전하는 방식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75]。
2023년 9월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두 번째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완전히 마치는 것을 밝혔다[77]。 은퇴 기념식에서 우치카와는 "생명을 깎아 싸워온 프로 야구 인생이 오늘로 끝이라는 것은 매우 슬픈 마음과 동시에 안도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78][79]。
시즌 종료 후인 10월 11일에 은퇴가 리그에서 공시되었다[80]。 우치카와의 은퇴로 인해 마루하 시절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재적했던 선수가 모두 은퇴했다.
2024년 2월 14일, MLB의 시카고 컵스 스프링 캠프 임시 타격 코치로 초빙되었다. 컵스에는 NPB 시절 말년에 자율 훈련을 함께 했던 스즈키 세이야가 재적하고 있다[81]。
5. 플레이 스타일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빠른 타격 유형으로 삼진과 볼넷이 모두 적은 편이다.[82] 원래는 공을 앞에서 처리하는 타격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기무라 시게루의 조언에 따라 타격 스타일을 바꿔 넓은 각도로 안타를 양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83] 와다 가즈히로가 캠프 중에 커브 머신만 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린 공을 강하게 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라고 언급했다.[84]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좌완 투수 상대 타율이 3할 5푼 6리를 기록하는 등 좌완 투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85] 특히 2008년에는 좌완 투수 상대 타율이 4할 3푼 9리를 기록하여, WBC에서 일본 대표팀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85]
우타자이면서 1루 도달까지 4.20초로 평균 이상의 주력을 갖추고 있다.[87] 외야 수비에서는 우익선 근처 타구에 약하고 우익수 수비 범위는 평균을 밑돌지만,[88] 좌익수 수비에서는 2012년에 평균을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89] 내야 수비에서는 입스 때문에 짧은 송구를 어려워했지만, 외야 수비에서의 송구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2019년 시즌에는 1루수로 130경기에 출전하여 무실책을 기록, 퍼시픽 리그 최초로 1루수 수비율 10할을 기록했으며, 이는 NPB 전체에서 두 번째 기록이다.[90] 같은 해 19년차에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 수상했다.[91]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6. 1. 타이틀
수위 타자는 2회(2008년, 2011년)를 기록했다. 양대 리그에서 모두 수위 타자를 기록한 것은 에토 신이치 이후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역사상 두 번째이다.[107] 최다 안타는 2회(2008년, 2012년) 기록했으며, 양대 리그에서 모두 최다 안타를 기록한 것은 하리모토 이사오 이후 역사상 두 번째이다. 최고 출루율은 1회(2008년) 기록했다.6. 2. 수상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여러 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MVP를 수상했고,[127] 베스트 나인에 5회(2008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3년) 선정되었다.[125] 2019년에는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 1루수 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센트럴 리그 회장 특별상을 받았다.[126] 월간 MVP는 5회(2008년 8월, 2011년 4월, 2013년 8월, 2014년 7월, 2016년 9월) 수상했다.센트럴·퍼시픽 교류전 MVP(2011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 3회(2011년, 2015년, 2017년), 일본 시리즈 MVP 1회(2014년)를 받았다. 올스타전 MVP는 2회(2013년 제3전, 2017년 제1전) 수상했다.
그 외, 2011년 일본 시리즈 특별상(모두가 선택하는 코나미상, 드림 나인상, BASEBALL HEROES상),[108] 2008년 오이타 시민 영예상, 2011년 퍼시픽 리그 특별 표창, 2011년 보치 프로 스포츠 대상 공로상,[108] 2012년 야나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MVP상을 받았다.[109] 2022년에는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표창(세, 파 양 리그 공로상)을 수상했다.
7. 개인 기록
; 첫 기록
- 첫 출장: 2001년 3월 3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9회말에 존 주버의 대주자로 출장
- 첫 타석: 2001년 10월 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2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6회말에 마에다 히로츠구로부터 투수 땅볼
- 첫 안타: 2002년 4월 24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5차전(삿포로 돔), 9회말에 에디 갤러드로부터 우전 안타
- 첫 선발 출장: 2002년 5월 3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번·2루수로 선발 출장
- 첫 홈런·첫 타점: 2002년 7월 7일, 대 주니치 드래곤즈 15차전(이시카와현립 야구장), 5회초에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좌월 솔로
- 첫 도루: 2003년 6월 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3회말에 2루 도루(투수: 구도 기미야스, 포수: 무라타 요시노리)
; 획기적인 기록
- 1000안타: 2011년 6월 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4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6회말에 히가시노 슌으로부터 우전 안타 ※역대 265번째[110]
- 1000경기 출장: 2011년 9월 25일, 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4차전(일본제지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3번・좌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446번째[111]
- 100홈런: 2013년 4월 29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6차전(QVC 마린 필드), 1회초에 요시미 유지로부터 중월 솔로 ※역대 267번째[112]
- 1500안타: 2014년 7월 11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9차전(삿포로 돔), 1회초에 우라노 히로시로부터 유격수 내야 안타 ※역대 116번째[113]
- 1500경기 출장: 2015년 7월 15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2차전(오비히로의 숲 야구장), 4번・좌익수로 선발 출장 ※역대 184번째[114]
- 150홈런: 2016년 4월 27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 4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1회초에 토오메이 다이키로부터 좌월 2점 홈런 ※역대 162번째[115]
- 300 2루타: 2016년 6월 30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4차전(후쿠오카 야후! 돔), 1회말에 카라카와 유키로부터 우월 2루타 ※역대 67번째[116]
- 2000안타: 2018년 5월 9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6차전(메트라이프 돔), 8회초에 타케쿠마 쇼타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51번째[117]
- 3000루타: 2019년 4월 21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6차전(메트라이프 돔), 6회초에 사노 야스오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58번째[118]
- 350 2루타: 2019년 7월 28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 18차전(후쿠오카 야후! 돔), 1회말에 타케야스 다이치로부터 좌중간 2루타 ※역대 43번째[119]
- 2000경기 출장: 2021년 7월 6일, 대 한신 타이거스 13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9회말에 요시다 다이키의 대타로 출장 ※역대 53번째[120]
;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기록
- 통산 54안타 ※역대 1위
- 통산 31타점 ※역대 1위
- 통산 10홈런 ※역대 1위
- 통산 93루타 ※역대 1위
: 모두 1973~82년 및 2004~06년에 퍼시픽 리그에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을 포함해도 통산 1위.
; 기타 기록
- 3타석 연속 홈런: 2004년 5월 1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1회말・3회말에 키사라기 히로시, 4회말에 매튜 랜들로부터
- 전 구단으로부터 홈런: 2011년 6월 19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5회초에 스다 코타로부터 좌월 솔로 ※역대 21번째
- 올스타전 출장: 6회 (2008년, 2009년, 2011년 - 2013년, 2017년)
- 정규 시즌, 일본 시리즈, 올스타전에서 MVP 선정 ※가와카미 테츠하루, 오시타 히로시, 후쿠모토 유타카, 토머스 오말리, 후루타 아츠야, 마츠이 히데키에 이어 역대 7번째
7. 1. 첫 기록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첫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첫 출장 : 2001년 3월 3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9회말에 존 주버의 대주자로 출장했다.
- 첫 타석 : 2001년 10월 7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2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6회말에 마에다 히로츠구로부터 투수 땅볼을 기록했다.
- 첫 안타 : 2002년 4월 24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5차전(삿포로 돔)에서 9회말에 에디 겔러드로부터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 첫 선발 출장 : 2002년 5월 3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 7번·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 첫 홈런·첫 타점 : 2002년 7월 7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5차전(이시카와 현립 야구장)에서 5회초에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 첫 도루 : 2003년 6월 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3회말에 2루를 훔쳤다.(투수 : 구도 기미야스, 포수 : 무라타 요시노리)
7. 2. 기록 달성 경력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프로 선수 생활 동안 여러 기록을 달성했다. 2011년 6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6회말 도노 슌에게서 우전 안타를 쳐내며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265번째).[110] 같은 해 9월 2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3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0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역대 446번째).[111]2013년 4월 29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초 요시미 유지에게서 중월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67번째).[112] 2014년 7월 1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초 우라노 히로시에게서 유격수 내야 안타를 기록하며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116번째).[113]
2016년 4월 27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초 토오메이 다이키에게서 좌월 2점 홈런을 쳐내며 통산 150홈런을 달성했다(역대 162번째).[115] 2018년 5월 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초 타케쿠마 쇼타에게서 중전 안타를 기록하며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역대 51번째).[117]
2019년 7월 28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기에서는 1회말 타케야스 다이치에게서 좌중간 2루타를 기록하며 통산 350개의 2루타를 달성했다(역대 43번째).[119]
그 외에도 2004년 5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3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고, 2011년 6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는 5회초 스다 코타에게서 좌월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했다(역대 21번째).
8. 기타
우치카와 세이이치는 2008년부터 2009년, 2011년부터 2013년, 그리고 2017년에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2004년 5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1회말과 3회말 기사누키 히로시, 4회말 맷 랜들로부터 3타석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2011년 6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5회초 스다 고타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날리며 역대 21번째로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했다.
날짜 | 상대 팀 | 구장 | 이닝 | 상대 투수 | 통산 홈런수 | |
---|---|---|---|---|---|---|
1 | 2002년 7월 7일 | 주니치 15차전 | 이시카와 현립 야구장 | 5회초 | 야마이 다이스케 | 1 |
2 | 4월 6일 | 요미우리 15차전 | 도쿄 돔 | 8회초 | 오카지마 히데키 | 2 |
3 | 2003년 6월 3일 | 야쿠르트 10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7회말 | 가와바타 류 | 3 |
4 | 2004년 4월 9일 | 히로시마 1차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2회초 | 구로다 히로키 | 7 |
5 | 4월 28일 | 한신 4차전 | 한신 고시엔 구장 | 7회초 | 요시노 마코토 | 12 |
6 | 2005년 5월 17일 | 오릭스 1차전 | 오사카 돔 | 8회초 | 가와고에 히데타카 | 24 |
7 | 5월 22일 | 세이부 3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1회말 | 야마기시 미노루 | 25 |
8 | 2006년 5월 11일 | 라쿠텐 3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4회말 | 아이쿄 히사시 | 31 |
9 | 2008년 5월 21일 | 닛폰햄 2차전 | 삿포로 돔 | 8회초 | 호시노 야치호 | 42 |
10 | 2009년 6월 7일 | 지바 롯데 3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4회말 | 나루세 요시히사 | 64 |
11 | 2010년 6월 15일 | 소프트뱅크 4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4회말 | 오구라 신스케 | 72 |
12 | 2011년 6월 19일 | 요코하마 4차전 | 요코하마 스타디움 | 5회초 | 스다 고타 |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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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WBC日本代表28選手の発表
https://npb.jp/japan[...]
2013-02-20
[30]
뉴스
内川月間MVP ろっ骨骨折に耐え猛打賞6度
http://www.nishinipp[...]
2013-09-07
[31]
뉴스
ソフトB 内川3年連続選出/ベストナイン
https://www.nikkansp[...]
2013-11-23
[32]
웹사이트
2014年7月度「日本生命月間MVP賞」受賞選手 (パシフィック・リーグ)
https://npb.jp/award[...]
2014-08-08
[33]
웹사이트
2014年10月9日 侍ジャパン「2014 SUZUKI 日米野球」出場選手発表!
https://www.japan-ba[...]
2014-10-09
[34]
웹사이트
2015/03/24(火) 選手 内川選手がキャプテンに就任!意気込みを語る
https://www.softbank[...]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オフィシャルサイト
2017-12-13
[35]
웹사이트
「WBSC プレミア12」侍ジャパントップチーム最終ロースター28名発表!!
https://www.japan-ba[...]
2015-10-09
[36]
웹사이트
侍ジャパントップチーム、出場選手変更のお知らせ
https://www.japan-ba[...]
2015-11-01
[37]
뉴스
ソフトバンク・内川、3000万円増の3億3000万円で更改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5-12-22
[38]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の第2子となる男児誕生を発表
http://www.sanspo.co[...]
SANSPO.COM
2017-07-21
[39]
웹사이트
11月に東京ドームで開催する侍ジャパン強化試合に出場する選手28名が決定
https://www.japan-ba[...]
2016-10-18
[40]
웹사이트
WBC侍28人決定、全12球団から選出/一覧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1-28
[41]
웹사이트
侍ジャパン内川が負傷退場 打者走者と激突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2-25
[42]
웹사이트
侍内川は「右肩打撲」と診断 脱臼や骨の異常はなし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2-25
[43]
웹사이트
右肩痛の侍内川が「6番指名打者」で先発出場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3-01
[44]
웹사이트
侍「代打の切り札」内川勝ち越し犠飛 小林に代わり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3-14
[45]
웹사이트
2017/03/31(金)第1回戦 福岡ソフトバンク vs 千葉ロッ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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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オフィシャルサイト
2017-03-31
[46]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先制弾&V打 監督「さすが4番」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4-03
[47]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4番内川強行!左手負傷もなんの2安打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4-26
[48]
웹사이트
移籍後初3試合連続弾ソフトバンク内川「たまた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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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5-25
[49]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が首の左側を痛め登録を抹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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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6-03
[50]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憧れの選手」井口引退を惜しむ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6-20
[51]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ら登録/プロ野球27日公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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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6-27
[52]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が復帰初適時打「ベースさまさま」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06-29
[53]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デスパイネが選手間投票で球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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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6-29
[54]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2度目MVP「申し訳ないな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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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7-14
[55]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左手剥離骨折で全治6週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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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7-26
[56]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CS行ける!復帰初安打が適時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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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7-09-30
[57]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MVP 5戦連続打点!最後もV打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7-10-22
[58]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が5000万円増の4億円+出来高払いで更改 新たに2年契約
https://www.sanspo.c[...]
SANSPO.COM
2017-12-18
[59]
웹사이트
2017/12/25(月)プレスリリース 内川聖一選手の守備位置変更について
https://www.softbank[...]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オフィシャルサイト
2017-12-25
[60]
웹사이트
ソフトB内川ついに決めた!2000安打 史上51人目、右打者3位のスピード到達
https://www.nishinip[...]
西日本新聞社
2018-05-09
[61]
뉴스
王会長から名球会ブレザー SB内川「肩にズシッと…」
https://www.asahi.co[...]
朝日新聞
2018-06-30
[62]
웹사이트
内川、主将制度廃止に「申し訳ない」 登録名も変更し心機一転
https://www.nishinip[...]
2019-01-31
[63]
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新しい経験」 年俸大幅ダウンでも笑顔の理由
https://web.archive.[...]
西日本スポーツ
2019-12-27
[64]
웹사이트
内川聖一がソフトバンク退団へ 球団に申し入れ、移籍し現役続行模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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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日本スポーツ
2020-10-28
[65]
뉴스
内川涙こらえファンに別れ、退団の胸中明かす 拍手と「帰ってこいよ」の声
https://www.nishinip[...]
西日本新聞社
2020-11-01
[66]
웹사이트
内川聖一選手の退団について|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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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67]
뉴스
ヤクルトが内川と入団合意し11日に正式契約することを発表
https://www.sanspo.c[...]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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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ヤクルトの内川「もうひと花咲かせる!」1年契約で年俸5000万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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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69]
웹사이트
ヤクルト内川聖一が日本シリーズ“1人5連覇” 喜び爆発
https://www.nikkansp[...]
2021-11-28
[70]
뉴스
内川聖一、福留孝介、金子千尋……崖っぷち「大物選手」の“それぞれの事情”
https://www.dailyshi[...]
2022-07-28
[71]
뉴스
「NPB引退」内川聖一が独立リーグで現役続行 両リーグ首位打者が故郷の大分球団に入団
https://web.archive.[...]
2022-12-03
[72]
뉴스
内川聖一、独立リーグ大分B―リングス入団…第二の野球人生、地元で恩返し
https://hochi.news/a[...]
2022-12-03
[73]
뉴스
内川聖一「地元で最後にプレーしたい」独立リーグ大分でのプレーを表明 背番号24
https://web.archive.[...]
2022-12-03
[74]
Youtube
【緊急生配信】内川聖一選手入団記者会見
https://www.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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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内川聖一「おなかいっぱいになるまで」独立リーグで現役続行 背番号24を選んだわけ
https://nishispo.nis[...]
2022-12-04
[76]
뉴스
内川聖一、独立L・大分デビュー戦で決勝3ラン本塁打など4打点!「後悔のないように、思いきって」
https://news.yahoo.c[...]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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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聖一 インスタで引退報告「2023シーズンをもちましてプロ野球選手を卒業します」 - スポニチ Sponichi Annex 野球
https://www.sponichi[...]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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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が現役ラストゲーム 「命をかけて命を削ってやってきた野球人生…すごく寂しい気持ちと同時に…」(スポニチアネックス)
https://news.yahoo.c[...]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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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聖一、引退セレモニーで号泣 サプライズで鳥越裕介氏が花束贈呈 「藤岡コーチが投げてくれると思ったけど…」とジョークも(西スポWEB OTTO!)
https://news.yahoo.c[...]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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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選手契約(10月11日)
https://bfk.or.j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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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ブスが内川聖一氏を臨時打撃コーチとして招へい 親交の深い鈴木誠也の希望が実現 - MLB : 日刊スポーツ
https://www.nikkansp[...]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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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プロ野球】コーチの真髄(3)~横浜・杉村繁「ふたりの大打者を育てた挫折組のあふれる愛情」
http://blog.shue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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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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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川聖一、打撃開眼への道の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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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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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WBC】1位通過へカギ握る“左キラー”内川
http://sankei.jp.m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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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内川偉業は高卒右打者で最速到達、落合に次ぐ高打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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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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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10
アスペクトムッ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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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ball Lab守備評価~Right Fie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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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プロ野球を統計学と客観分析で考える セイバーメトリクス・レポート2
水曜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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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ソフトバンク】内川が最遅記録を更新 プロ19年目で初のGG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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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知新聞社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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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ソフトB・内川 史上最遅記録19年目のGグラブ初受賞「夢みた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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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ポーツニッポン新聞社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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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現役スカウト部長が見た日本チーム
日本スポーツ企画出版社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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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ヤクルト1号!新天地でもお決まりあごタッチ「やるなら思い切りやれよ」
https://www.sanspo.c[...]
2021-03-04
[94]
웹사이트
内川ヤクルト入り決断!背番「7」有力 交渉解禁日に即決、背景に恩師の存在と家族会議
https://www.nishinip[...]
西日本スポーツ
2020-12-08
[95]
웹사이트
「チーム内川」自主トレスタート 日向市 プロゴルファーの三重野らも集結
https://www.nishinip[...]
西日本スポーツ
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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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ソフトB内川、他球団の若手と「チーム内川」結成だ
https://www.sanspo.c[...]
SANSPO.COM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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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と合同トレを行った広島・鈴木の言葉「去年をいかに忘れられるか」
https://www.sanspo.c[...]
SANSPO.COM
201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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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ソフトB内川「間合いの勝負ワクワクした」 家族で大相撲九州場所観戦
https://www.nishinip[...]
西日本スポーツ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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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本多、琴奨菊の訪問にびっくり 練習中に内野席で発見…パパトークも
https://www.nishinip[...]
西日本スポーツ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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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田中隼磨オフィシャルブログ 『うっち〜』
https://ameblo.jp/ha[...]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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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隼磨も感激 ソフトB内川がJ2松本サポ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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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田中隼磨オフィシャルブログ 『刺激』
https://ameblo.jp/ha[...]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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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ソフトバンク内川聖一“2000安打”を東京女子流が祝福「応援歌 今も歌わせていただいています」
https://japan.techin[...]
20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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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球史に残る“遅咲きの大器” 屈指の右打者・内川聖一選手が刻む驚異の記録|パ・リーグ.com|プロ野球
https://pacificleagu[...]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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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https://number.bun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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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s://www.kanal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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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ソフトバンク・内川、両リーグで首位打者 パ全日程終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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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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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11年度 日本プロスポーツ大賞 授賞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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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益財団法人[[日本プロスポーツ協会]]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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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2012ヤナセ・プロ野球MVP賞 表彰結果のご案内
https://www.yanase.c[...]
[[ヤナセ]]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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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選手が通算1000本安打を達成しました
https://sp.softbankh[...]
2022-10-04
[111]
웹사이트
内川選手が通算1000試合出場を達成しました
https://sp.softbankh[...]
2022-10-04
[112]
웹사이트
内川選手が通算100本塁打を達成しました
https://sp.softbankh[...]
2022-10-04
[113]
웹사이트
ソフトB・内川 通算116人目の1500安打達成!!
https://baseballking[...]
2022-10-04
[114]
웹사이트
内川選手が通算1500試合出場を達成しました
https://sp.softbankh[...]
2022-10-04
[115]
웹사이트
内川選手が通算150本塁打を達成しました!
https://sp.softbankh[...]
2022-10-04
[116]
웹사이트
SB内川、史上67人目の通算300二塁打&2打席連続タイムリー 「翔の為に」
https://full-count.j[...]
2022-10-04
[117]
웹사이트
ソフトB内川、2000安打達成! 王手から15打席目「やっと、やっと打てた」
https://baseballking[...]
2022-10-04
[118]
뉴스
ソフトバンク内川3000塁打「もっと打たないと」
https://www.nikkansp[...]
2022-10-04
[119]
뉴스
ソフトバンク内川、史上43人目の通算350二塁打
https://www.nikkansp[...]
2022-10-04
[120]
뉴스
ヤクルト内川聖一が通算2000試合出場 史上53人目
https://www.nikkansp[...]
202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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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内川聖一&岩隈久志&小野伸二が『すぽると!』新解説者 本田真凜は「αすぽると!」に登場
https://www.oricon.c[...]
oricon ME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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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ソフトバンク - 契約更改 - プロ野球
https://www.nikkansp[...]
[[닛칸 스포츠]]
2017-12-26
[123]
문서
뼈에 구멍이 생기는 병이다.
[124]
문서
종래는 195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가와카미 데쓰하루]]가 3할 7푼 7리로, 불과 1리차였다.
[125]
문서
"* 1루수 부문 : 2008년* 외야수 부문 : 2009년, 2011년, 2012년"
[126]
문서
우타자로서는 역대 최고 타율을 기록한 공로로 선정됨.
[127]
문서
역대 두 번째가 되는 양대 리그에서 수위타자를 획득한 공로로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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