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브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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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움브리아주는 이탈리아의 주로, 토스카나주, 마르케주, 라치오주와 접하며 해안선이 없고 다른 국가와 국경을 접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지형은 아펜니노산맥의 일부를 포함하며, 테베레강 계곡을 따라 평평하고 비옥한 지역도 있다. 주요 도시로는 페루자, 테르니, 폴리뇨 등이 있다. 이 지역은 고대 움브리족에서 유래되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교황령에 속해 상업적으로 번영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페루자파 화가들이 활동했으며,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현재 경제는 중소기업이 주도하며, 농업, 특히 올리브 오일, 포도, 송로 버섯 생산이 활발하다. 움브리아는 한때 이탈리아 공산당의 거점이었으나, 2019년 선거에서 중도우파가 승리했다. 주요 스포츠 팀으로는 테르나나 칼초, 페루자 칼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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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메노호는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에 있는 호수로, 지질학적 특징, 기후, 역사적 중요성, 그리고 자연 공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움브리아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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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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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움브리아 주 |
국가 | 이탈리아 |
위치 | 이탈리아 중부 |
수도 | 페루자 |
면적 | 8,456km² |
인구 | 853,726명 (2024년)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인구 지명 | (남성) (여성) |
시간대 | CET (+1) |
일광 절약 시간제 | CEST (+2) |
ISO 3166 코드 | IT-55 |
NUTS 지역 | ITE |
공식 웹사이트 | 움브리아 주 공식 웹사이트 |
행정 | |
주지사 | 스테파니아 프로이에티 (무소속) |
경제 | |
GDP (2021년) | 228억 5900만 유로 |
인적 개발 지수 (HDI, 2021년) | 0.900 (매우 높음, 이탈리아 내 12위) |
하위 행정 구역 | |
도 | 페루자, 테르니 |
코무네 수 | 92 |
기타 정보 |
2. 지리
움브리아주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하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토스카나주, 동쪽으로는 마르케주, 남쪽으로는 라치오주와 접한다. 해안선이 없고 다른 국가와 국경을 접하지 않는 유일한 주이다. 지형은 구릉과 산지가 대부분이며, 테베레강 계곡 주변은 평평하고 비옥하다. 중앙 아펜니노산맥이 뻗어 있으며, 마르케주와의 경계에 있는 몬테 베토레 (2476m)가 가장 높고, 아티글리아노 (96m)가 가장 낮다. 치타 디 카스텔로의 ''코무네''는 마르케주 내에 몬테 루페르토라는 월경지를 가지고 있다. 1440년부터 1826년까지 존속했던 작은 공화국 코스파이아도 움브리아주에 속했다.
움브리아 계곡("발레 움브라", 페루자-스폴레토)과 테베레 계곡("발 테베리나", 치타 디 카스텔로-라치오 국경)이 있다. 테베레강은 라치오와의 경계를 이루지만, 발원지는 토스카나주에 있다. 테베레강의 주요 지류는 키아시오강 (바스티아 움브라까지 인구 희박, 토르지아노에서 테베레강과 합류), 토피노강 (플라미니아 가도가 지나는 고개로 아펜니노산맥 관통, 폴리뇨에서 방향 전환, 베토나 아래에서 키아시오강과 합류), 네라강 (테르니 남쪽에서 테베레강과 합류, "발네리나" 계곡 형성, 상류는 협곡, 하류는 범람원)이다.
고대에는 라쿠스 클리토리우스와 라쿠스 움베르라는 두 호수가 있었으나 고대 로마 시대에 배수되었다. 4세기 지진과 로마 제국 붕괴로 다시 물이 찼으나, 13세기 성 베네딕토 수도회가 재배수 작업을 시작하여 18세기에 완료되었다.
동쪽 지역은 단층이 많아 지진이 잦다. 1997년 지진 (노체라 움브라, 괄도 타디노, 아시시, 폴리뇨 피해)과 2016년 8월 및 10월 지진 (노르치아와 발네리나 피해)이 있었다.[3]
움브리아는 조수에 카르두치의 시에서 유래한 ''Il cuore verde d'Italia''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으로 불린다.
2. 1. 위치 및 지형
움브리아주는 서쪽과 북쪽으로는 토스카나주, 동쪽으로는 마르케주, 남쪽으로는 라치오주와 접해 있다. 이탈리아에서 해안선도 없고 다른 국가와 국경을 접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다. 지형은 부분적으로 구릉과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테베레강 계곡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는 평평하고 비옥하다. 중앙 아펜니노산맥의 일부를 포함하며, 마르케주와의 경계에 있는 몬테 베토레가 해발 2476m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며, 가장 낮은 지점은 아티글리아노로 해발 96m이다. 치타 디 카스텔로의 ''코무네''는 마르케주 내에 몬테 루페르토라는 월경지를 가지고 있다.움브리아주는 페루자에서 스폴레토까지 이어지는 움브리아 계곡("발레 움브라")과 치타 디 카스텔로에서 라치오와의 국경까지의 첫 번째 계곡의 북쪽과 서쪽에 있는 테베레 계곡("발 테베리나")의 두 계곡을 가로지른다. 테베레강은 라치오와의 대략적인 경계를 형성하지만, 그 발원지는 토스카나주 경계 너머에 있다. 테베레강의 세 개의 주요 지류는 움브리아주를 통해 남쪽으로 흐른다. 키아시오강 유역은 바스티아 움브라까지 비교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약 10km 더 가면 토르지아노에서 테베레강에 합류한다. 토피노강은 플라미니아 가도와 그 후속 도로가 따르는 고개를 통해 아펜니노산맥을 가르며, 폴리뇨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베토나 아래에서 키아시오강과 합류하기 전에 북서쪽으로 몇 킬로미터를 흐른다. 세 번째 강은 네라강으로, 테르니에서 더욱 남쪽으로 흘러 테베레강으로 흘러든다. 그 계곡은 "발네리나"라고 불린다. 상부 네라강은 산에 협곡을 낸다. 하부 네라강 유역에서는 넓은 범람원을 만들었다.
고대에는 평야가 라쿠스 클리토리우스와 라쿠스 움베르라는 얕고 서로 연결된 두 개의 호수로 덮여 있었다. 이 호수는 여러 세기에 걸쳐 고대 로마에 의해 배수되었다. 4세기의 지진과 로마 제국의 정치적 붕괴로 인해 유역이 다시 채워졌다. 약 천 년 후, 500년 동안 두 번째로 배수되었다. 성 베네딕토 수도회 수도사들이 13세기에 이 과정을 시작했고, 배수는 18세기에 폴리뇨 출신의 기술자에 의해 완료되었다.
이 지역의 동쪽 부분은 많은 단층을 지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최근 지진은 1997년 지진 (노체라 움브라, 괄도 타디노, 아시시, 폴리뇨 강타)과 2016년 8월 및 2016년 10월 지진 (노르치아와 발네리나 강타)이 있었다.[3]
문학에서 움브리아는 ''Il cuore verde d'Italia'' 또는 ''이탈리아의 녹색 심장''으로 불린다. 이 문구는 움브리아주의 클리투노강의 원천을 주제로 한 조수에 카르두치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2. 2. 주요 강과 호수
움브리아주를 흐르는 테베레강은 라치오주와의 경계 부근을 지나지만, 발원지는 토스카나주 경계 너머에 있다. 테베레강의 세 주요 지류는 움브리아주를 통해 남쪽으로 흐른다. 키아시오강은 바스티아 움브라까지 비교적 사람이 살지 않다가 약 10km 더 가서 토르지아노에서 테베레강에 합류한다. 토피노강은 플라미니아 가도와 그 후속 도로가 지나는 고개를 통해 아펜니노산맥을 가르며, 폴리뇨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베토나 아래에서 키아시오강과 합류하기 전 북서쪽으로 몇 킬로미터 흐른다. 네라강은 테르니 남쪽에서 테베레강으로 합류하며, 그 계곡은 "발네리나"라고 불린다. 상부 네라강은 산에 협곡을 내고, 하부 테베레 유역|테베레 유역it에서는 넓은 범람원을 만들었다.[3]고대에는 이 평야가 라쿠스 클리토리우스와 라쿠스 움베르라는 얕고 서로 연결된 두 호수로 덮여 있었으나, 고대 로마 시대에 배수되었다. 4세기 지진과 로마 제국 붕괴로 유역이 다시 채워졌지만, 약 천 년 후 성 베네딕토 수도회 수도사들이 13세기에 다시 배수 작업을 시작해 18세기에 폴리뇨 출신 기술자에 의해 완료되었다.
2. 3. 기후
움브리아주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포도와 올리브 재배가 활발하다.2. 4. 주요 도시
도시 | 현 | 인구 (2011년 1월 1일 기준)[37] |
---|---|---|
페루자 | 페루자 현 | 168,169명 |
테르니 | 테르니 현 | 113,324명 |
폴리뇨 | 페루자 현 | 58,162명 |
치타 디 카스텔로 | 페루자 현 | 40,567명 |
스폴레토 | 페루자 현 | 39,574명 |
구비오 | 페루자 현 | 32,998명 |
움브리아 주의 이름은 기원전 6세기경 이 지역에 살았던 움브리족에서 유래되었다. 움브리족은 움브리아어라고 불리는 라틴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다. 현대의 움브리아 주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 움브리아 주는 현재의 마르케주 북부, 라벤나까지 미쳤지만 테베레강 서안을 포함하지 않아 범위가 달랐다. 고대에는 테베레강 서안의 페루자는 에트루리아에 속했고, 노르차 주변은 사비니족의 영토였다.[12]
이 외에도 아시시, 나르니, 오르비에토, 토디 등의 도시가 있다.
3. 역사
중세부터 근세에 걸쳐 로마 교황령에 속했으며, 상업으로 번영했다. 중세 말기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세운 탁발 수도회 프란치스코회는 가톨릭 세계 최대의 수도회 중 하나가 되었고, 아시시는 현재도 이탈리아 국내에서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순례지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페루자에 페루자파라고 불리는 화가 그룹이 나왔다. 1860년,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22]
3. 1. 고대
이 지역은 이탈리아 민족인 움브리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이들은 로마인의 팽창에 흡수되었다. 에트루리아인과 달리 움브리족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도시 사회에서 살지 않았고, 아펜니노 산맥에 위치한 작은 거주지에 거주했다.[4] 대 플리니우스는 부족 이름에 대한 기발한 파생어를 그리스어 ὄμβρος (''ombros'', "소나기")에서 유래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친숙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이끌었고, 그들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했다.[5] 실제로 그들은 비슷한 기원을 가진 더 광범위한 인접 민족 집단에 속했다. 그들의 언어는 움브리아어였으며, 이는 라틴어와 오스크어와 관련된 이탈리아어파 중 하나였다. 오늘날 구비오 마을에는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에 움브리아어로 쓰여진 이고비나 석판이 있으며, 이는 오스코움브리아어파 언어 중 가장 길고 중요한 문서이다.[6] 이 지역의 북부 지역은 갈리아 부족이 점령했다.
움브리족은 아마도 이웃 민족과 마찬가지로 테라마라와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의 원-빌라노바 문화를 창시한 사람들로부터 기원했으며, 이들은 청동기 시대 초기에 북동부 이탈리아로 들어왔다.[11]
에트루리아인은 움브리족의 주요 적이었다. 에트루리아의 침략은 기원전 700년경부터 500년경까지 서해안에서 북쪽과 동쪽으로 뻗어 있었다. 결국 그들은 움브리족을 아펜니노 산맥 고지대로 몰아냈고 300개의 움브리아 마을을 점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브리아 인구는 정복된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1] 에트루리아와 움브리아의 경계는 테베레강이었으며,[7] 이는 토디의 고대 이름인 ''툴라르''( "경계")로 증명된다.[8]
에트루리아의 몰락 이후, 움브리아인들은 사무스인이 로마에 맞서 삼니움 전쟁을 벌이는 것을 도왔다 (기원전 308년). 나중에는 사무니움과의 통신이 로마 요새인 나르니아에 의해 방해받았다 (기원전 299년에 정복된 움브리아 ''네퀴눔''의 자리에 기원전 229년에 설립).[9][10][11] 로마인들은 센티눔 전투 (기원전 295년)에서 사무니움인과 그들의 갈리아 동맹을 물리쳤다.[10] 동맹 움브리아인과 에트루리아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동시 로마 공격으로부터 각자의 영토를 방어해야 했고, 센티눔에서는 사무니움인들을 돕지 못했다.
센티눔에서의 로마의 승리는 로마 통치 하의 통합 시기를 시작했으며, 로마인들은 스폴레티움과 같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플라미니아 가도 (기원전 219년)를 건설했다.[10] 플라미니아 가도는 움브리아에서 로마의 발전을 위한 주요 통로가 되었다.[10]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한니발의 침략 동안 트라시메노 호 전투는 오늘날의 움브리아 영토 내에서 벌어졌지만,[10] 지역 주민들은 침략자를 돕지 않았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간의 로마 내전 (기원전 40년) 동안, 페루지아시는 안토니우스를 지지했고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대 플리니우스 시대에는 49개의 독립 공동체가 여전히 움브리아에 존재했고, 비문의 풍부함과 제국 군대의 높은 신병 비율은 그 인구를 증명한다.[11]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움브리아는 로마 이탈리아의 Regio VI가 되었다.[10]
현대 움브리아는 로마 움브리아와 다르다. 로마 움브리아는 현재 마르케주 북부 대부분에서 라벤나까지 뻗어 있었지만, 에트루리아에 속한 테베레강 서쪽 기슭은 제외되었다.[10] 따라서 페루시아는 에트루리아 도시였고 노르시아 주변 지역은 사비니 영토에 속했다.[12]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동고트족과 비잔틴 제국은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고, 이 두 민족 간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타기나이 전투는 현대의 괄도 타디노 근처에서 벌어졌다.[13]
3. 2. 중세
고트 전쟁 직후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입하여 오늘날 움브리아 남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폴레토 공국을 세웠지만, 비잔틴 제국은 로마와 라벤나 총독부 및 펜타폴리스 공국을 연결하는 플라미니아 가도를 따라 회랑을 유지할 수 있었다.[10] 샤를마뉴가 롬바르드 왕국의 대부분을 정복했을 때, 일부 움브리아 영토는 교황에게 주어졌고, 교황은 그들에 대한 세속적 권력을 확립했다.[14] 일부 도시들은 ''코뮌''이라는 자율성을 획득했다.[14] 이 도시들은 종종 교황령과 신성 로마 제국 사이 또는 구엘프당과 기벨린당 사이의 갈등 속에서 서로 자주 전쟁을 벌였다.
14세기 초, ''시뇨리아''가 등장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치타 디 카스텔로의 비텔리,[15] 페루자의 바글리오니,[16] 폴리뇨의 트린치였지만, 같은 세기 중반에 추기경 힐 알바레스 카리요 데 알보르노스에 의해 이 지역은 교황령에 병합되었다.[18]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아비뇽에서 로마로 교황의 귀환을 준비했다. 치타 디 카스텔로는 나중에 체사레 보르자에 의해 교황령에 병합되었다.[19] 15세기 동안 르네상스는 이 지역 북부로 퍼져나갔다.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이전에는 움브리아 남부에 있던 스폴레토 공국의 이름을 따서 "두카토"라고 불렸던 이 지역의 이름을 다시 "움브리아"라는 고대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20] 교황 바오로 3세는 페루자에 그의 이름을 딴 ''로카 파올리나''라는 요새를 세워 16세기에 움브리아에 대한 교황의 우위를 강화했다. 교황령은 18세기 말까지 이 지역을 통치했다.[18]
3. 3. 근현대
프랑스 혁명과 이탈리아에 대한 프랑스의 정복 이후, 움브리아는 덧없는 로마 공화국 (1798–1799)에 편입되었고, 이후에는 나폴레옹 제국의 일부가 되어 트라시메네 데파르트망으로 불렸다.[21]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교황은 움브리아를 되찾아 1860년까지 통치했다.[22] 그 해,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동안, 움브리아는 마르케, 에밀리아 로마냐의 일부와 함께 피에몬테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병합되었고, 페루자의 사람들은 같은 해 교황의 억압을 상징하는 로카 파올리나를 파괴했다.[22] 이듬해 움브리아 지역은 수도 페루자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22] 주로 농업에 기반을 둔 이 지역의 경제는 19세기 말, 마르모레 폭포로 인한 풍부한 전력과 외딴 위치로 인해 테르니에 건설된 주요 제철소인 ''테르니 철강 공장''의 설립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23]
당시 움브리아 지역은 오늘날보다 약간 더 컸으며, 현재 라치오의 일부인 남쪽의 리에티를 포함했다.[22] 리에티는 1923년에 분리되어 로마 현(라치오)에 편입되었다.[22] 1927년, 움브리아 지역은 페루자 현과 테르니 현으로 분할되었다.[22]
제2차 세계 대전 중, 테르니와 폴리뇨와 같은 이 지역의 산업 중심지는 심하게 폭격을 받았고, 1944년에는 연합군과 고딕 선으로 후퇴하는 독일군 사이의 격전지가 되었다.[24] 1946년, 움브리아는 페루자 현과 테르니 현을 포함하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레지오네로 편입되었다.[24]
4. 행정 구역
움브리아 주는 페루자도와 테르니도 두 개의 도로 구성되어 있다.[37]
움브리아 주에는 92개의 코무네가 있으며, 이는 아오스타 계곡 자치주 다음으로 적은 수이다.
5. 인구
ISTAT 추산(2008년)에 따르면, 움브리아에는 외국 출생 이민자 75,631명이 거주하며, 이는 지역 전체 인구의 8.5%에 해당한다.
6. 문화
움브리아주의 문화는 축제, 예술, 언어, 세계유산 등으로 대표된다.
구비오에서는 매년 5월 15일에 성 우발도 축일을 기념하는 "체리 축제(Ceri 축제)"가 열린다.[38] 1160년부터 이어져 온 이 축제는 성 게오르기우스, 안토니우스 대제 등 성인을 상징하는 거대한 "촛불"을 들고 세 팀이 경주를 벌이는 행사다. 각 팀은 고유한 색상의 옷을 입고 높이 4m, 무게 약 280kg의 나무 조각상을 싣고 산을 오른다. 체리는 움브리아주 문장에도 사용될 만큼 중요한 상징이다.
움브리아주는 아시시의 '칼렌디마지오', 폴리뇨의 '기오스트라 델라 퀸타나' 등 역사적인 축제와 페루자에서 매년 7월에 열리는 '움브리아 재즈', 스폴레토에서 매년 6-7월에 열리는 '페스티벌 데이 두에 몬디(두 세계 축제)' 등 다양한 축제로도 유명하다.
2006년 (ISTAT) 통계에 따르면, 움브리아 주민들은 가정에서 이탈리아어와 지방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38]
언어 | 전국 (%) | 움브리아주 (%) |
---|---|---|
이탈리아어만 또는 주로 이탈리아어 | 45.5 | 41.0 |
지방 언어만 또는 주로 지방 언어 | 16.0 | 14.9 |
이탈리아어와 지방 언어 모두 사용 | 32.5 | 37.7 |
기타 언어 | 5.1 | 5.4 |
움브리아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아시시, 프란체스코 성당과 관련 수도 시설군과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족: 권세의 발자취 (568-774년)의 일부인 스폴레토의 산 살바토레 성당, 캄펠로 술 클리툰노의 클리툰노 소신전이 있다.
6. 1. 예술

'''페루자도:'''
'''테르니도:'''

6. 2. 축제
움브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는 구비오에서 열리는 성 우발도 축일로도 알려진 "체리 축제(Ceri 축제)"이다. 이 경주는 1160년부터 매년 5월 15일에 열리고 있다. 이 축제는 성 우발도(구비오의 수호성인), 성 조르조(성 게오르기우스), 성 안토니오(안토니우스 대제)를 포함한 성인으로 장식된 커다란 상징적인 "촛불"을 들고, 세 개의 '체리올리' 팀이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서 달리는 경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체리올리는 자신이 지지하는 성인에 따라 노란색, 파란색 또는 검은색의 독특한 색상으로 된 옷을 입고 흰색 바지와 빨간색 허리띠와 넥밴드를 착용한다. 그들은 '팔라초 데이 콘솔리' 앞 광장에서 성 우발도 성당까지 산의 대부분을 올라가며 각 팀은 모래시계 모양과 유사한 높이 4m, 무게 약 280kg의 나무 팔각형 프리즘 위에 자신의 성인 조각상을 싣고 간다.
이 경주는 강한 헌신적, 시민적,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민속 행사 중 하나이며, 따라서 체리는 현대 행정 구역으로서 움브리아의 문장에 문장 부호로 선택되었다.
움브리아는 체리 축제와 같은 역사적 축제뿐만 아니라 아시시의 '칼렌디마지오'와 폴리뇨의 '기오스트라 델라 퀸타나'로도 유명하지만, '움브리아 재즈'라는 가장 큰 재즈 음악 축제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움브리아 재즈'는 1973년 축제로 시작되어 2003년부터 움브리아의 수도인 "페루자"에서 7월에 개최되었으며 모든 재즈와 좋은 음악 애호가들의 고정된 약속이 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축제는 매년 6월부터 7월 초까지 스폴레토에서 열리는 연례 여름 음악 및 오페라 축제인 '페스티벌 데이 두에 몬디(두 세계 축제)'이다.
6. 3. 언어
2006년 (ISTAT) 통계에 따르면, 6세 이상 움브리아 주민의 가정 내 대화에서 언어 사용 상황은 다음과 같다.[38]가정 내 대화에서의 사용 언어 | 전국 | 주 |
---|---|---|
이탈리아어만 또는 주로 이탈리아어 | 45.5% | 41.0% |
지방 언어만 또는 주로 지방 언어 | 16.0% | 14.9% |
이탈리아어와 지방 언어 모두 사용 | 32.5% | 37.7% |
기타 언어 | 5.1% | 5.4% |
- 이탈리아어: Italiano|이탈리아노it
- 지방 언어: Dialetto|디알레토it
- 기타 언어: Altra lingua|알트라 링구아it
6. 4. 세계유산
7. 경제
현재의 경제 구조는 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련의 변화를 거치면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들이 급격히 성장했고, 이 지역의 산업 기반을 특징짓던 대기업들은 점차 축소되었다. 이러한 구조 조정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치타 디 카스텔로가 있는 상 티베르 계곡이다. 테르니 제철소(스테인리스강, 티타늄, 합금강)와 가공 회사(자동차, 스테인리스강 튜브, 산업용 식품 시설)는 움브리아 주 전체 GDP의 20~25%를 차지한다. 테르니에는 또한 화학, 수력 발전, 재생 에너지원, 섬유 (알칸타라, 캐시미어) 분야의 많은 다국적 기업이 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장식용 세라믹 산업이 매우 높이 평가받고 있다.
움브리아 농업은 담배, 올리브 오일, 포도원으로 유명하며, 이 곳에서 와인이 생산된다. 지역 품종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중세 도시 주변의 포도원으로 농업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흰색 오르비에토가 있다. 주목할 만한 와인으로는 토디의 그레체토가 있다. 움브리아에서 생산되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와인으로는 토르지아노와 몬테팔코의 로쏘가 있다. 움브리아 와이너리는 지역 와인 제조업자들이 대중에게 와이너리를 개방하는 "칸티네 아페르테" 또는 "오픈 셀러" 행사의 중심이다. 또 다른 전형적인 움브리아 제품은 이탈리아에서 이 제품의 45%를 생산하는 지역인 발네리나에서 발견되는 검은 송로 버섯이다.
움브리아의 식품 산업은 가공된 돼지고기, 과자, 파스타, 발네리나의 전통 제품(송로 버섯, 렌즈콩, 치즈)을 보존된 형태로 생산한다.
2020년 실업률은 8.2%였다.
8. 정치
움브리아주는 한때 이탈리아 공산당의 강력한 거점이었으며, 토스카나, 에밀리아로마냐, 마르케와 함께 당시 이탈리아의 "붉은 지역"으로 알려졌다.[35] 50년 이상 민주당과 좌파 정당의 거점으로 여겨졌지만, 2019년 중도우파 연합의 후보인 도나텔라 테세이가 중도좌파의 경쟁자인 빈첸초 비안코니를 상대로 주의 대통령 선거에서 57.5%의 득표율을 얻으며 승리했다.[36]
9. 스포츠
움브리아주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은 다음과 같다. 소속 리그는 2012-13 시즌 기준이다.
구단명 | 연고지 | 소속 리그 |
---|---|---|
테르나나 칼초 | 테르니현 테르니 | 세리에 B (2부 리그) |
페루자 칼초 | 페루자현 페루자 |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3부 리그) |
AS 구비오 1910 | 페루자현 구비오 |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3부 리그) |
폴리뇨 칼초 | 페루자현 폴리뇨 | 레가 프로 세콘다 디비시오네 (4부 리그) |
5부 리그(아마추어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D에서는 라치오주, 토스카나주의 클럽과 함께 지로네 E에 속한다. 움브리아주의 지방 리그(6부 리그)로 에체렌차 움브리아(Eccellenza Umbria)가 있다.
10. 저명한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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