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유철도 EH10형 전기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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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H10형 전기기관차는 1950년대 일본국유철도에서 도카이도 본선의 화물 수송을 위해 개발된 일본 최초의 8축 대형 전기 기관차이다. 10‰의 경사가 있는 세키가하라 구간을 1,200t 화물 열차로 운행하기 위해 EF15형보다 향상된 성능으로 개발되었으며, 8개의 주 전동기를 탑재하여 강력한 견인력을 발휘했다. 차체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영구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으며, 산업 디자이너 하기와라 마사오가 디자인하여 흑색 차체에 황색 띠를 적용했다. 초기에는 도카이도 본선에서 고속 화물 열차 견인에 투입되었으며, 이후 EF60형 등장으로 일반 화물용으로 운용 구간이 축소되었다. 1981년 운행이 종료되었으며, 61호기가 오사카의 히가시아와지 미나미 공원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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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유철도 EH10형 전기기관차 | |
---|---|
기본 정보 | |
![]() | |
형식 | 전기 기관차 |
동력 방식 | 전기 |
전기 시스템 | 직류 1,500V |
견인 전동기 | 직류 |
축 배열 | (Bo-Bo)+(Bo-Bo) |
퇴역 | 1981년 |
폐차 | 1982년 |
제작 기간 | 1954년 - 1957년 |
제작 회사 | 도시바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 중공업 히타치 |
제작 수량 | 64량 |
운영 기관 | 일본국유철도 |
치수 | |
무게 | |
기관차 중량 | 116 톤 |
축중 | 14.5 톤 |
성능 | |
정격 출력 | 2,530 kW |
정격 견인력 | 191.0 kN |
구동 방식 | 1단 기어 감속, 현수식 |
기어비 | 21:77 = 1:3.67 (고속 시험기 25:77 = 1:3.08) |
제어 방식 | 저항 제어, 직병렬 조합 제어, 약계자 제어 |
제어 장치 | 전자 공기 단위 스위치식 |
기타 | |
UIC 분류 | Bo′Bo′+Bo′Bo′ |
보안 장치 | ATS-S |
대차 | DT101형 |
제동 방식 | EL14AAS형 자동 공기 브레이크, 수동 브레이크 |
2. 등장배경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걸쳐 도카이도 본선에는 화물 운송 수요가 급증하여, 대형 증기 기관차로 최대 1,200t의 중량급 화물열차가 운행되었다.[5] 운송 능력 부족과 석탄 공급난으로 인해 1951년 재개된 도카이도 본선 전철화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어, 1953년에는 하마마츠-나고야 간 전철화가 완료되었다.[5] 같은 해 나고야- 이나자와간이 연장되었고, 1955년에는 마이바라까지, 1956년에는 도카이도 본선 전 구간 전철화가 완료되었다.[5]
하지만 오가키-세키가하라 구간은 10‰의 경사가 6km나 이어져 기관차 견인 중량급 화물 열차에게 난관이었다.[5] 1953년 당시 최신 화물용 전기 기관차였던 EF15형으로도 이 구간에서 1,200t 열차를 단독으로 견인하면 주 전동기의 과열이나 플래시오버가 우려되었고, 충분한 속도를 낼 수 없어 여객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것으로 예상되었다.[5]
이에 주 전동기를 강제 냉각하거나 보조 기관차를 연결하는 방안이 고려되었으나, 전자는 임시방편이며 후자는 기관차 운용이 복잡해져 전철화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문제가 있었다.[5] 결국 EF15형을 능가하는 성능의 기관차를 개발하여 세키가하라 구간의 문제를 극복하고, 화물 열차 증편 및 속도 향상을 도모하기로 결정되었다.[5] 이에 따라 EF15형(6축, 주 전동기 6개)과 거의 같은 성능의 주 전동기를 8개 사용하는, 일본 최초의 8동축 대형 기관차인 EH10형이 개발되었다.[6][7] 실제 설계는 1946~1947년경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제작은 보류되었고, 도카이도선 전철화가 진척되면서 강력한 화물 열차 견인 기관차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54년에 설계가 완료되어 제작에 들어갔다.[8][9][10]
3. 기본 구조
동축을 8축으로 하여 길이 22.5m에 이르는 장대한 차체는 중앙에서 이분할되어 이 두 차체를 영구 연결하는 특이한 구조였다. 두 차체 간은 영구 연결기로 결합되었는데 이를 금속제의 관통 덮개가 두르고 있었으며 이 사이로 고압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전장이 지금까지의 기관차보다 길었기 때문에, 구내 유효장의 기관차 점용선로를 줄이기 위해(한정된 구내 유효길이에서 기관차가 점용하는 길이가 길어지면 그만큼 화차를 적게 연결해야 하므로) 기존의 화물용 전기기관차가 표준으로 가지고 있던 전두부의 갑판은 폐지하였다.[11]
기존의 국철 전기 기관차는 강판 부재를 조립하지 않고 일체 주조한 강철로 구성된 대차 프레임이 기초였는데, 이 끝에는 선륜이 결합되어 주행시 견인력은 대차 프레임의 끝에 장비된 연결기에서 직접 객차·화차에 전해졌다. 크기는 다르지만 증기 기관차와 동일한 구조이다. 2대의 대차는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어 견인력은 대차 사이에서도 직접 전달되는 구조였다. 한편 차체는 프레임을 갖추되 스스로의 강도를 유지하는 기능만 가져 기기를 덮고 대차 프레임에 실린 존재였다.
본 형식에서는 이 전통적인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전동차와 같은 주조 강제 2축 보기 대차를 장비했다. 견인력은 대차로부터 차체의 프레임을 거쳐서 연결기에 전달되게 된다. 재래의 대형 전기 기관차는 장대한 대차 구조에 의해 곡선의 원활한 통과를 위해 선륜이 필수였으나 보기 대차를 장비한 EH10형은 선륜이 필요없었다.
일본의 전기 기관차사를 둘러봐도 유수의 초중량급의 기관차이기는 하지만 대차 틀을 기초로 하는 구조와 양쪽 선륜을 폐지하면서 출력 향상에 비해 대폭 경량화가 도모되었다. 운전 정비 중량은 118.4t이었으며 축중은 14.8t이다(양산기는 운전 정비 중량 116.0t, 축중 14.5t). EF15(운전 정비 중량 102.0t, 축중 14.4t)와 비교하여, 시제기 16.4t, 양산기 14t의 중량 증가로 억제한 실적은 무게 절감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기관차와 달리 선륜이 없기 때문에 전축 구동이 되어, 무게 전부를 점착력 확보에 활용할 수 있게 되어 견인력이 향상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 축중이 무거워지면, 로컬선은 물론 대부분의 지방 간선에서도 전용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중축중에 견디는 도카이도 본선에서의 운용에 특화하도록 결심한 기관차였기에, 이만큼 과감한 설계를 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3. 1. 전장 기기
주 전동기는 절연 강화 등을 통해 내열 대책을 실시한 MT43형을 8기 탑재하여 정격 출력 2,600kW를 발생시켰다[12]。이는 EF66형이 정격 출력 3,900kW를 달성하기 전까지 일본 국내 전기 기관차 중 최대 출력이었다. 제어 시스템은 수동 진단식 단위 스위치 제어 방식으로, 기존 EF15형과 큰 차이는 없으며 평범하지만 신뢰성을 중시한 방식이다.
EF15형에 비해 출력이 30% 이상 향상되어 1,200t 열차를 견인하여 관가라 고개를 넘는 성능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평탄 구간에서의 주행 성능에도 여유가 생겨 화물 열차의 속도 향상에도 기여했다.[13] 출력에 비해 기기에 여유가 있었고, EF15형 및 EF58형의 경험을 반영했기 때문에 주 전동기 및 보조 기기의 고장이 적었다.[13]
하지만 H형 기관차로 8개의 모터를 직병렬 조합으로 제어하도록 회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6개 모터 직병렬 조합 제어 방식인 다른 F형 기관차와 출력 특성의 차이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표준적인 F형 기관차와 상호 동조가 어려워 F형 기관차의 보조 기관차 연결을 통한 운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3. 2. 차체 디자인
차체 디자인은 민간 공업 디자이너인 하기와라 마사오가 담당했다.[14] 국철 차량으로서는 비교적 빠르게 스타일링을 외부 디자이너에게 위탁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전면 형태는 각져 있지만 창 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고 중앙에서 이분할되어 있다. 2매 창은 동시기의 80계 전동차, 또한 전면 창부를 오목하게 하는 수법은 72계 전동차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차체 도색은 세상에서 "곰벌"이라고 불린 흑색에 황색의 가는 띠를 넣은 다소 위압적인 것으로, 이전의 전기 기관차의 갈색 도색에 비해 더욱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14] 이것도 하기와라의 발안에 의한 것이다. 덧붙여 국철의 전기 기관차로서는 처음으로 전면 하부에 스커트를 장착했다.[14] 역시 하기와라의 발안이다. 이 스커트는 양산차에서 하반부를 스노우 플로우로 교환할 수 있는 구조로 변경되었지만, 작업의 번거로움이나 유도원용 발판과 함께 스커트의 하반부를 떼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하여 점차 스노우 플로우를 장착하는 일이 없어졌고, 후년에는 일부에서 스커트의 상하를 용접 고정, 연결기 좌우에 있는 스노우 플로우 설치용 볼트를 철거했다.[15]
4. 형태별
4. 1. 시작기
1-4호기가 시작기에 해당한다. 가와사키 차량, 히타치 제작소, 도시바, 미쓰비시에서 각각 1량씩 제조했다. 외관상 특징으로 집전장치(팬터그래프)가 중앙부에 있는 점이 꼽힌다. 팬터그래프 2기는 팬터그래프 간 연결선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 차체 중앙 근처에 설치되었다. 1·3호기는 검은색에 노란색 띠, 2·4호기는 포도색 2호(일본국유철도의 지정도료 중 하나로 갈색에 가까움)에 은빛 띠를 도장했다. 두 도장을 비교 검토한 결과 검은 바탕에 노란색 띠를 정식으로 채용, 양산기는 모두 이 도장으로 완성되었다. 2호기와 4호기는 이후 검수를 거쳐 도장을 교체했다.
4. 2. 양산기
시작기의 운용 실적을 바탕으로 세부 설계가 변경되었다. 운전 정비 중량은 116t(축중 14.5t)으로 균등화되었고, 운전석 면적이 확대되었다. 분기기, 급곡선 통과시를 고려하여 연결기를 100mm 앞으로 돌출시켜 전장을 200mm 연장했다. 팬터그래프의 위치는 양쪽 끝으로 옮겨졌는데, 이는 팬터그래프 간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가선에 가해지는 상승압력이 과해지거나 고속주행 중 공진을 일으켜 가선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팬터그래프 위치로 시작기와 구별이 가능하다.4. 3. 고속시험기
15호기는 제작 당시부터 고속 주전동기를 장착하고 기어비를 고속 운행에 맞게 조정했다(25:77 = 1:3.08).[16] 도색 역시 포도색 2호 도장에 은색 띠를 둘러 일반 차량과 차별화했다.[16] 1955년 도쿄 시바우라 전기(東芝)에서 완성되었으며, 전자 직통 브레이크도 장착한 고속 시험기였다.[16] 1958년에 기어비와 도색을 양산기와 동일하게 개수하였으며, 1960년에는 전자 직통 브레이크도 철거되었다.[16]5. 시험
5. 1. 고속도시험
1955년 당시 도카이도 본선의 수송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열차의 고속화가 시급해졌고, 그 일환으로 도쿄역 - 오사카역 간을 6시간 30분으로 잇는 초특급 열차 운행 계획이 검토되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1955년 12월 EH10 15호기와 경량 객차를 이용해 고속열차 견인 시험이 이루어졌다. 시험 결과 최고 120km/h를 달성하였고, 특급 "쓰바메"의 정기여객열차 견인에도 시험 투입되어 좋은 성적을 얻었다.이 실적에 따라 우등 여객열차를 견인하기 위한 8축 기관차 EH50형 제작 계획이 제시되었으나, 무거운 축중의 기관차를 고속 운행하는 경우 궤도 강화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막대한 예산이 들어 국철은 우등열차에 대해서는 151계 등의 경량 고속 전동차를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여객용 H급 기관차는 양산되지 못했고, EH10 15호기도 화물용으로 개조되었다. 한편, EH50형과 함께 주간 고속 우등 여객 열차용으로 예상되었던 경량 구조의 고정 편성 객차는 야간 특급 여객 열차의 서비스 개선으로 계획이 변경되어 20계 객차로 실현되었다.
5. 2. 점착성능시험
1966년 14호기와 64호기를 고후 기관구에 대여하여 주오 본선 고후-가미스와 간 25‰ 경사 구간에서 점착성능시험을 실시했다. 5월 14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시험 결과, 견인 톤수 650t에서 공전이 발생하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이로 인해 EH10형의 급구배 구간 투입은 중단되었다.6. 개조
운용 말기, 팬터그래프 부품 부족으로 인해 일부 차량이 PS22B 팬터그래프로 교체되었다.[22][23] 1976년 2월 21호기가 PS22B를 장착한 것을 시작으로 10량 가량이 교체되었는데, 이는 잉여 PS15형 팬터그래프를 통해 다른 차량의 예비 부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도카이도 본선·산요 본선의 열차 속도 향상에 따라, 중·고속 영역에서의 속도 제어 범위를 넓히기 위해 약계자 제어를 직병렬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시험이 1962년 49호기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22][23] 1,200t 열차 견인 시험 운전에서 운전 시분 단축과 전력 소비 개선이 확인되어 1965년까지 전 차량에 적용되었다.
본 형식은 당초 구형 화물용 전기 기관차의 통례로서 하나의 차륜에 2개의 모래통을 갖추고 있었으나, 성능 및 운전에 여유가 있어 한쪽의 모래통은 사용이 중지되었다. 1974년 이후에는 제1차륜과 제8차륜 내측의 모래통을 철거하고, 다른 모래통도 사용 중지된 것은 모래 살포관을 제거해 갔다.[15]
51호기와 60호기는 측면 중앙의 공기 필터가 변형된 쇠창살형 필터였고(60호기는 일시적), 30호기는 비닐록 필터를 장비하였다.
7. 운용
EH10형 전기기관차는 초기에는 도카이도 본선의 고속 화물 및 중량 화물용으로 사용되었다. 1956년 도카이도 본선 전선 전철화 후에는 주로 급행 화물 열차나 1,200t 열차를 시오도메 - 스이타 조차장 간에 직통 운전하는 운용에 투입되었다. 1959년 11월부터는 도쿄(시오도메) - 오사카(우메다) 간 운행이 시작된 국철 최초의 컨테이너 특급 화물 열차 "다카라호" 견인에 투입되어 고출력을 발휘하며 활약했다.
1960년대 이후 EF60형 전기 기관차 등 신형 6축 전기 기관차의 등장과 컨테이너 열차 등의 고속화로 인해, EH10형은 점차 일반 화물용으로 전용되었다. 운용 구간은 도카이도 본선(미노아카사카 지선을 포함), 산요 본선(오카야마 조차장 이동), 우노선, 오카토선(오카자키 - 기타노마스즈카 간)으로 한정되었다.
산요 본선 오카야마 이서 구간은 세노하치 통과 시 보조 기관차와의 출력 불균형 문제와 운용상의 복잡함 때문에 입선하지 않았다. 1966년에 이토자키 기관구에 시운전 및 훈련용으로 51호기가 대여되기도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1975년 이후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대형 기관차였기 때문에 다른 구간으로 전용하기 어려워 운용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1981년 4월 1일 우노발 스이타 조차장행 3370 열차를 마지막으로 운용이 종료되었고, 1982년 모든 차량이 폐차되었다.
8. 보존
[2]
EH10형 전기기관차 중 61호기만이 오사카 히가시아와지 미나미 공원에 정태 보존되어 있으며, 다른 차량은 모두 해체되었다.[2] 61호기는 평소에는 펜스 너머로 견학이 가능하며, 7월 초순에는 펜스를 제거하고 차내를 견학할 수 있다.
9. 분류
EH10 형식명의 'E'는 전기 기관차를, 'H'는 8개의 구동 차축을, '10'은 최고 속도가 85km/h 이하인 기관차를 의미한다.
```source
이 기관차 형식에 대한 EH0 분류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 E: 전기 기관차
- H: 8개의 구동 차축
- 10: 최고 속도가 85km/h 이하인 기관차
참조
[1]
서적
国鉄機関車事典: 蒸気・電気・ディーゼル機関車66形式
Sankaido
1999
[2]
서적
国鉄&jr 保存車大全 2015-2016
Ikaros Publications Ltd.
2014-11-25
[3]
서적
日立評論
https://www.hitachih[...]
日立製作所
1954-11
[4]
문서
8軸の機関車は[[JR貨物EH500形電気機関車|EH500形]]が登場するまで、国鉄・JRグループでは本機が唯一の存在であった。私鉄では[[黒部峡谷鉄道EH形電気機関車]]も存在するが、これは実質的に片運転台D型機関車2両を常時重連の固定編成として運用しているものである(性格としては[[国鉄DD50形ディーゼル機関車|DD50形]]に近い)。
[5]
문서
新鶴見 - 吹田間の直通貨物列車で所要時間を17時間前後から12時間台に短縮、列車本数の多さや待避線の不足から旅客列車が貨物列車に合わせた低速運転を行っていた平塚 - 沼津間のダイヤを改善して20本から30本の列車増発余力を確保できると考えられていた。
[6]
간행물
『鉄道ピクトリアル』1967年6月号
[7]
간행물
『鉄道ファン』1976年6月号
[8]
서적
交通技術
交通協力会
1953-06
[9]
서적
交通技術
交通協力会
1953-03
[10]
서적
交通技術
交通協力会
1954-06
[11]
문서
限りある構内有効長の中で、機関車が占用する長さが大きくなると、その分だけ[[貨車]]の連結両数が減る。
[12]
서적
鉄道辞典 上巻
https://transport.or[...]
日本国有鉄道
1958
[13]
간행물
『鉄道ピクトリアル』1967年6月号
[14]
문서
鉄道貨物輸送で国鉄と関係が深かった[[日本通運]]がトラックなどに使用していた黄色を取り入れたものであるという。また、1960年代前半まで急行貨物列車に多用された[[国鉄ワキ1形貨車|ワキ1形]]・[[国鉄ワキ1000形貨車|ワキ1000形]]などの[[有蓋車|有蓋貨車]]も黒色に黄色の帯と急行標記を配した塗装であった。なお、貨車の黄帯塗装が65km/h制限車を指すものになったのは[[ヨンサントオ|1968年10月ダイヤ改正]]に際しての対応であり、同時期には貨車自体の高速化や特急貨物列車の登場もあって急行貨物用としての黄帯や標記を施した有蓋貨車は消滅していた。
[15]
간행물
『鉄道ファン』1976年6月号
[16]
서적
東芝レビュー
東芝技術企画部
1956-01
[17]
서적
保線年報 1955年
日本保線協会
1956
[18]
서적
国鉄時代32号 P110
ネコ・パブリッシング
2013-02-01
[19]
서적
車両と電気
車両電気協会
1956-05
[20]
서적
車輛工学
車輛工学社
1957-09
[21]
서적
交通技術
交通協力会
1957-05
[22]
간행물
『鉄道ピクトリアル』1967年6月号
[23]
간행물
『鉄道ファン』1976年6月号
[24]
간행물
『鉄道ファン』1976年6月号
[25]
간행물
『鉄道ファン』1976年6月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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